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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가 『안나 카레니나』를 처음 읽었던 때는 청소년기 때다. 작품성보다는 '연애 소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격정의 사랑을 그린 이 책이 당연히 호기심이 발동한 것이다. 특히 작가가 러시아(구 소련) 작가라는 점도 묘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독자가 청소년 때는 소련 해체 전이라 우리로서는 적성 국가였고 그들의 정치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문화마저 국내 유입은 거의 불가능하거나 통제를 통해 들어오는 상황이었다. 다만 이 소설은 소련이 들어서기 전 제정 러시아 시절의 이야기이고 당시 러시아의 정치 및 사회가 왕과 귀족 중심의 체제였고, 국민은 도탄에 빠진 상태여서 인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소련 공산주의가 들어서기 좋은 토양이었다. 더욱이 이 소설은 당시의 러시아 사회의 모순과 부패 등을 정확하게 담고 있어 연애소설이라기보다는 리얼리즘에 입각한 현실 타파의 사상을 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다만 소설에서 직접적인 언급이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문학적 한계선에 정확히 닿아 있다고 봐야 한다. 제정 러시아의 부패 정치와 귀족들의 향락의 재정을 담당한 국민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표현함으로써 반정부, 반왕정, 반귀족의 민주주의 사상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독자도 청소년기 때는 러시아(소련)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신문이나 TV에 나오는 소식이라고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서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공산주의에 대해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차단된 상태였기 때문에 러시아에 대한 지식은 거의 전무 상태였다.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러시아는 공산주의 종주국이며 6.25때 남침을 묵인하고 북한에 무기를 원조해준, 우리로서는 적성국가였고 원수의 나라라는 사실만 학교에서 배웠을 뿐이다. 이 책 『안나 카레니나』는 대문호의 작품이라는 것과 정치적 이념이 없는 단순 문학적 성과만 높이 평가돼 우리나라에서도 자유롭게 번역 출판됐으리라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다. 톨스토이는 도스도옙스키와 함께 '러시아' 하면 3대 대문호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대부분 '인간 삶'에 맞춰져 있어 도스토옙스키와 대조되는 듯하다. 아무튼 그때는 톨스토이는 사회적 신분에서 작품 평가가 조금 절하되었다는 생각을 지금도 갖고 있다. 도스도옙스키와 달리 백작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귀족 계급으로서 이룬 러시아 문학의 최고봉 중의 한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격정적인 연애소설이 가능했던 것도 그가 귀족 출신의 작가라는 점이 한몫 했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해본다. 그러나 이 소설이 안나 카레니나와 그 남편 카레닌, 안나와 사랑에 빠지는 남자 브론스키의 이야기만이 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면 『안나 카레니나』는 격정적인 연애소설로서만 한 자리를 선점하였을 것이다. 연애소설 자체가 주는 매력과 불안과 괴로움, 질투, 증오, 광기의 감정들이 가져오는 인간적 고뇌, 심리적 통찰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의 사랑에 대비되는 레빈과 키티의 사랑 이야기를 엮어 놓음으로써 독자들이 더욱 극명하게 사랑과 인생의 의미를 고찰하도록 만든다. 레빈과 키티가 인연을 맺기까지, 안나와 브론스크가 인연을 맺기까지 그들 모두의 인연의 고리가 얽혀 있음도 소설의 긴장감과 상처를 극대화시키며 한 단계 높은 진지한 성찰을 하도록 이끈다. "안나 카레니나의 당신의 나내로 살 수 있는 곳으로 '떠나자'는 말에는 인간의 도덕과 시선이란 것이 얼마나 넘어서기 힘든 현실인가를 분명히 담고 있다. 그녀 또한 순진하게 행복을 그려 보는 듯하지만 결국 이곳,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않을 소망임을 알고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세상 모두로부터 버림받더라도,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내던지더라도 당신만은 포기할 수 없다는 격정. 가슴 안에 생의 불꽃을 구원과도 같이 달고 있던 사람이 절대적으로 느껴지는 대상을 만났을 때 할 수밖에 없는 선택. 마음속에 폭발하기 직전처럼 부풀어 오른 열망을 간직하던 사랑이 그 촉매제를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다. 안나 카레니나도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속이지 않고 진실되게 전부를 걸고 만다."(「에필로그」 중에서) 『안나 카레니나』가 백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독자들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이유는 치명적인 사랑이야기가 주는 흡입력은 물론 제도와 가족의 문제, 19세기 러시아 귀족계급의 생활, 계급 간 갈등과 인간의 도덕적 모순, 농업 경영 문제, 전쟁을 배경으로 한 박애주의 등을 등장인물들의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발전시킨 뛰어난 작가적 역량에 있다. 일찍이 토마스 만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조금의 군더더기도 없고 한 점 흠잡을 데 없는 작품’이라고 격찬하였으며, 실로 이 소설은 그 찬사에 어긋남이 없는 걸작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또 하나의 장점은 전지적 시점임에도 내면의 독백을 통해 인물들의 생각이나 느낌을 아주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또한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의 전통 계승자답게 탁월한 사실성, 사람의 내면을 다루는 심리적 통찰, 역사적 특징을 포착하는 능력에 감탄과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소설은 격정적 사랑에 대한 열망 못지않게 삶에 대한 허무주의와 싸우는 등장인물(레빈으로 대표되는)의 이야기가 심도 있게 진행된다. 이는 톨스토이 자신이 젊은 시절 거부하지 못하고 즐겼던 쾌락적 유희와 뒤따라오는 허무함, 자괴감, 무의미함을 뼈저리게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처절히 괴로워하며 힘들어한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귀족 출신의 지식인으로서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를 직접 개선하지 못하는 자책감과 이렇게 살아서는 '인간도 나라'도 안 된다는 뼈저린 반성의 성찰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죽음에 대한 공포와 삶의 무상함, 정서적 불안정함과 여기에서 오는 정신적 위기는 톨스토이 자신이 고작 9살이던 때에 부모를 잃은 경험에서 기인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톨스토이 자신이 추구하던 이상적 자아와 실제 모습 간의 격차, 자신의 부부 사이도 『안나 카레리나』에 그려 놓은 레빈과 키티처럼 이상적이길 바랐으나 실제로는 그러하지 못했던 현실, 문학을 포기하고 종교에 깊이 빠질 정도로 힘겹게 겪었던 삶의 위기 등이 그의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소설의 진정성을 더한다.
마음속에 폭발하기 직전의 열망을 간직하던 사람이 그 촉매제를 만났을 때, 그것을 거부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들에게는 그 촉매제와 그로 인해 생성된 세상이 자기 세계의 전부인 듯 여겨지며, 자기 일생을 구원하여 신세계를 열어 줄 유일무이한 기적으로 여겨진다. 그 사랑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만큼 열망하기 때문에, 세상의 규범에 기반한 시선이 올바르게 느껴지지 않고 세상의 시선 따위는 두렵지 않은 것이다. 그렇지만 세상 모두에게 까발려진 인간의 도덕에 반하는 사건 뒤에 남겨지는 것은 한 인간의 성장이 아니라 파멸로의 귀결이 자연스러울지 모른다. 더구나 불안정한 안나의 위치로 인해 사랑의 균형은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 삶의 기반을 뒤흔드는 위태로운 현실, 이어 오는 혼돈, 세상에 퍼지는 은밀한 소문들, 세상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 안나가 느끼는 압박감. 안나가 보이는 불안한 모습들은 그녀의 아름다움과 거부하기 힘든 매력에도 불구하고 브론스키를 점점 멀어지게 만든다. 그녀가 한 남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사랑하는 남자의 마음이 멀어지면서 느끼는 모욕감에도 불구하고 그가 떠날까 봐 두려움에 급급하게 만드는 것이다. ‘안나는 그가 자기를 무거운 짐으로 아는 것도 자유를 버리고 자기한테 돌아오기가 서운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으나, 아무튼 그가 돌아온다고 생각하니 기뻤다.’ 그리고 그(사랑)에게 이끌려 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순간에도 ‘안나는 제정신이 들어 자기의 결심을 깨뜨린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는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일을 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자기를 억제할 수가 없었다’는 본문 문장에서 알 수 있듯이, “하느님, 제 모든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신을 부르짖으면서도 자신의 갈망을 이겨 내지 못하고 만다.
일반적인 자유라는 것의 매력을 맛보지 못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갈구할 대상을 만났을 때, 이 세상의 그 무엇도 그들을 말릴 수는 없는 것이다. 톨스토이 자신이 도덕적 규범에서 벗어난 쾌락을 추구했고 그 유희를 탐하고 난 이후 몰려오는 자괴감으로 괴로워했다. 더불어 작가적 명성에 뒤따라오는 막대한 부의 소유로 인한 괴로움, 사회적 지위에서 오는 사람들의 관심과 개인 사이에서 느끼는 모순 등 자신의 이상과 현실의 격차 때문에도 힘들어했고, 세상에서 그를 위선자로 바라보는 시선과 가족의 요구 사이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그로 인해 톨스토이는 중년 이후 삶의 깊은 위기를 겪게 된다. 말년에 이르러서도 청빈함과 금욕을 추구하면서도 안락한 생활을 원하는 자신의 모습을 견디기 힘들어했고, 자신의 이상적 모습에 실제의 자신을 도달하게 하고자 저작권을 포기하려는 결심까지 한다. 이는 가족 간 불화를 절정으로 치닫게 만드는 도화선이 된다. 풍부한 감수성을 갖는 톨스토이가 포용하는 감정적 영역이 컸던 만큼이나, 그에 상응하는 엄격한 이성으로 인해 일상을 심각히 괴롭힐 정도의 자기반성을 요구했던 것이다. 청렴한 삶을 추구하고자 한 톨스토이의 의지는 그를 신과의 합일을 지향하는 결과로 이끈다.
톨스토이의 오랜 고뇌가 반영된 『안나 카레니나』에는 오랫동안 소망하던 것의 완전한 실현에도 불구하고 전적으로 행복하다고는 느끼지 못하는 인간들의 면면이 잘 드러나 있다. 그들은 결국 그 실물을 움켜쥐지만 대개의 경우 그 만족스런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한다. 왜 그러는 것인지는 본문의 다음 내용이 잘 말해 준다. ‘그는 곧 그러한 욕망의 실현은 전부터 기대하고 있던 행복의 커다란 산에 비하면 불과 한 알의 모래알을 얻은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행복이 욕망의 실현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범하는 예의 과오를 범하고 또 깨달은 것이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의 부제로 '복수는 내가 하리라. 내 이를 보복하리'라고 썼다. "이는 성경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세상의 어떤 만남은 아름다운 사랑과 결과를 낳기도 하지만, 어떤 만남들은 상처를 낳고 분노와 증오를 낳고 보복을 낳고 파국을 맞는다. 톨스토이가 그와 같은 성경 구절을 부제로 인용한 이유는 인간사에 어쩌지 못하게 벌어지는 그 일들을 재단하고 비난하는 것은 인간의 자격 바깥에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 터이다. 또한 『안나 카레니나』가 단순한 애정 소설이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이 된 것은 사랑으로 인하여 변모하는 인간의 이야기에서 끝나지 않고 제도와 도덕, 인간의 모순되는 부분까지 뛰어난 통찰력을 작품 안아 녹여낸 데 있다."(「에필로그」 중에서)
저자 : 레프 톨스토이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두 살과 아홉 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를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 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뽈랴나에 농민 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 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 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크로이체르 소나타』『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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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를 읽기로 결심한 후 처음 만난 버전은 출판사 민음사에서 나온 총 3권의 안나 카레니나였다. 재미있는 전개에 푹 빠져서 읽었지만 2권을 끝내 마치지 못하고 오래 시간이 흘러버렸다. 이후 다시 안나 카네니나 읽기에 도전한 건 한 두껍지만 한 권으로 나온 스타북스의 안나 카레니나이다!
많은 책에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여러 가지 이유로 오르내린 안나 카레리나 읽기 추천은 자연스럽게 나도 꼭 읽어보고 싶다는 호기심으로 이끌어 이 책을 결국 읽게 한 것 같다. 1877년 러시아에서 초판본이 나왔다는 안나카레니나…한국과 다른 러시아이시만 저 시기에 저런 내용의 소설이 나왔다는 것은 당시 엄청난 이슈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시작부터 안나 카레니나의 친오빠 가정의 불륜으로 시작하는, 그리고 안나는 그 불륜을 중재하는 역할이었는데!
1800년대 말 소설이라고는 절대 믿을 수 없는 요즘 현대판 <사랑과 전쟁>에서 겪는 이야기의 집합체를 다 모아놓은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이전에 읽은 다른 고전들보다 더 재미있게 읽은 책이기도 한 듯 하다. 등장인물들이 조금씩은 다 연관되어 있지만, 레닌과 키티의 열정 넘치고 예쁜 사랑이야기와, 아주 대조적인 안나의 불륜 이야기가 서로 교차되듯 한 번씩 나오기에 더 재미있었었던 같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결혼을 한다는 것에 대해 차마 생각하지 못한 혹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한 명의 생애주기를 이 소설을 통해서 보며 다 경험한 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도 불륜이라는 방식은 일반적으로 자연스럽거나 긍정적인 상황은 아니기에 이 소설의 결론도 그런 교훈을 주는 것일까 라고 생각해보게 한다. 다른 고전보다 양이 많아서 읽기가 부담스러울 줄 생각했지만 스타북스의 아주 두껍지 않은 한 권으로 나온 안나 카레리나는 뭔가 좀 더 양이 압축된 듯한 느낌은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왜 안나 카레니나를 읽어보라고 추천했는지에 대해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적어도 다른 고전들보다(많지 않지만 내가 읽은!) 흥미로운 사랑과 전쟁 이야기기에 많은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참으로 이상적인 커플인 레닌과 키티의 이야기의 많은 장면도 여운이 남는다. 1800년대 말 러시아의 평민(농부) 생활, 귀족들의 사교계 생활도 많이 엿볼 수 있었던, 재미난 소설이었다. 지인들 중에 톨 스토이 소설은 종교적 색채가 짙어서 읽기가 부담스럽다는 말을 많이 들었었는데, 톨스토이의 소설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그 사이에서 이 책은 아주 파격적인 주제의 소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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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_안나 카레니나_레프 톨스토이_스타북스 누가 이 작품에 돌을 던지겠는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기분 좋음이 있는 그런 것도 없다. 이를테면 씁쓸한 아메리카노 커피같다. 묵직함과 꽃향내 나는 신맛 등의 균형미 있는 맛. 레프 톨스토이의 대작'안나 카레니나'를 드디어 완독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 소설 또한 독자의 나이에 따라 이해 정도가 다를 것 같다. 단순히 애정소설로 치부 할 수 없는 큰 스케일이 있었다. 러시아의 사회적 풍토와 상류층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고 기독교적인 면도 있으며 서민들의 삶도 있다. 물론 안나와 브론스키, 키티와 레빈의 두 가지 사랑이 주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거기에 인생을 담은 철학적 고찰이 있고 갈등에 고뇌하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을 보며 일종의 대리만족을 느꼈다. 특히 감추어진 내면의 욕망과 슬픔과 겉도는 기쁨의 감정 교차가 긴장감과 몰입감을 주었고 작품의 배경을 통해 러시아 사람들의 일상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이 소설은 그 자체로 이야깃 거리가 풍부한 종합선물 세트같다. 그래서 재미있고 제법 굵직한 두께에도 끝까지 완독할 수 있었다. 사랑에 슬퍼할 땐 함께 욕도 해주고 말도 안되는 현실에 어이없어 하며 혼자 키득되었지만 그 이끌림의 힘이 명작이 가지는 매력처럼 보여졌다. 그래서 이 소설은 최소한 제대로 3번은 읽어야 이해가 될 것 같다. 사실 아직도 일부 이야기는 완벽히 이해를 못했다. 특히 결말 부분이 예상보다 상징성이 있어서 진지하게 다시 읽을 생각이다. 그리고 글로서 이해 못한 부분은 영상화가 된 영화를 보면 좀 더 나을 듯해서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두 말하면 입이 아프다. 이 소설은 죽기 전에 읽어야 할 고전 명작이기에 강력히 추천한다. BBC 선정 꼭 읽어야 하는 책 <뉴스위크> 선정 100대 명저 국립 중앙 도서관 선정 100대 명저 서울대학교 선정 권장도서 100선 이 정도면 인생을 살며 꼭 읽어야 할 소설이 분명했다. 아마도 원서는 훨씬 방대한 분량일 듯 싶다. 스타북스에서 번역 출간 된 건 축약본일 것 같다.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어서 아쉬웠다. 어느 책으로 번역을 한건지는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생각보다 많은 오타에 당황스러웠다. 분명 여러번 읽으며 오탈자를 잡았을 텐데. 다른 독자분들이 올려 놓은 것과 합치면 10개 이상이 되었다. 또한 전문 용어나, 역사적 고증에 관한 주석이 있었으면 더 풍부한 내용으로 이해가 쉬웠을텐데 그부분도 아쉬움이 있었다. '안나 카레니나'는 생각보다 등장인물들이 많아서 읽으면서 잘못 이해한 부분도 있었다. 첫부분에 인물관계도를 실었으면 덜 햇갈렸을 것이다. 표지 삽화에 대한 부분도 디자이너나 출처에 대한 것도 궁금했는데 표기가 안보였다. 아마도 표기없이 사용가능한 상업 일러스트로 보여졌다. 다른게 아니라 그림이 아름다워서 였다. 러시아 쪽 보다는 빅토리아 시대풍 의상 느낌이다. p59 "여자란 모든 것이 자기들을 중심으로 돌고 있는 나사와 같은 것이지. 우리 집에서도 재미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네. 아주 엉망이야. 이것도 저것도 모두 여자가 원인이야. 한번 자네의 의견을 말해 보게. 자네의 충고가 듣고 싶네." p113 키티는 바로 눈앞에 있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 보았다. 자기는 사랑에 가득 찬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데도 상대방이 아무런 응답을 주지 않는 이 눈길은, 그 후 오랫동안, 몇년이 지난 뒤까지도 쓰라린 부끄러움이 되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p397 그는 죽음이란 것이 존재해도 사람은 살고 또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느꼈다. 그는 사랑이야말로 자기른 절망으로부터 건져 주며, 절망의 위협에 노출됨으로써 이 사랑은 더욱 강렬해지고 순수해진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의 눈앞에서 죽음이라는 하나의 신비가 불가해한 채 사라지기도 전에, 사랑과 삶으로 인도하는 또 하나의 불가해한 신비가 태어난 것이다. p446 난 아무렇게도 생각지 않아요. 난 변함없이 안나를 좋아해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몽땅 사랑하는 것이지 그 사람에게 이러쿵저러쿵 조건을 붙이는 것이 아니잖아요.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안나 #안나 카레니나 #러시아소설 #레프 톨스토이 #명작 #스타북스 #문화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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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만한 분들은 잘 아는 작품이다. 이 책은 너무 유명한 저자와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분위기, 러시아 사회의 문제 만이 아닌, 만연했던 심리적 요인, 정서적인 부분을 잘 표현한 책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과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누구나 갖고 있는 인간 내면에 대한 묘사와 각자가 다른 입장을 추구하며 살면서도 어떤 것을 두려워 하며, 분명 잘못된 것에 대한 진단이나 비판보다는 이로 인해 미칠 또 다른 피해나 두려움으로 인해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되는 스토리 전개 등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어떤 형태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단순히 보기에는 연애소설, 애절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가정사, 가족사, 혹은 결혼과 불륜이라는 형태를 통해 사람들은 어떤 것에 집착하거나 보여지는 행위에 신경을 쓰고 살아가는지, 이에 대해서도 함께 판단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회적인 관념이나 규범이 강하게 존재해도, 어쩔 수 없이 펼쳐지는 인간의 본능과 쾌락, 욕망을 쫓는 행태에서 누구나 이런 고민과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겪지만 전혀 다른 선택을 내릴 수 있다는 발상 자체는 또 다른 의미에서 다소 충격적이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어떤 현상이나 문제에 대해 덮는다고 무조건 가려지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솔직함을 바탕으로 표현을 하기에는 또 다른 물의나 문제가 발생할 것 같은 묘한 심리적 갈등과 현실적인 상황은 왜 저자가 높은 평가를 받고 대중들에게 공감을 받는지, 이에 대해서도 판단해 보게 된다.
누군가와의 열렬한 사랑이 어떤 위치나 현실에 있어서 가능하며, 왜 사람들은 자신의 치부를 숨기려고 했으며, 이를 바라보는 제 3자의 관점에서는 어떤 동질감이나 문제의식을 갖게 하는지, 지금도 사회문제로 충분히 떠오를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진단이라 현실적으로 많은 공감을 얻게 될 작품이다. 권력을 가진 자, 부를 이룬 자라고 해서 도덕적, 윤리적 의식이 높은 것도 아니며 결국 우리 인간은 누구나 이런 내재된 욕망을 갖고 있고,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긴다면 또 다른 의미에서 자신이 바라는 가치를 위해 무모한 판단, 도전적인 결단을 내릴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 또한 들게 한다.
물론 사회적인 질서나 관념, 사람들의 정서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선과 악, 옳고 그름의 개념으로 책을 바라보며 공감할 수도 있지만 한 개인의 생각이나 지향점, 서로 다른 방향성을 추구할 때, 어떤 형태로 갈등적인 부분이 드러나며 이를 표현하면서도 또 다른 누군가들에게 공감을 얻는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부분인지, <안나 카레니나> 를 통해 판단해 보게 된다. 책에서 표현되는 서정적인 부분과 감정에 대한 풍부한 묘사, 심리적 갈등이나 요인에 대한 예술적 접근을 통해 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과 풍자, 그러나 개인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독자들에게 일정한 공감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예술작품으로도 볼 수 있는 책이다. 가볍게 읽지만 현실적인 메시지를 전해 받을 수 있는 이 책을 통해 안나 카레니나는 무엇을 표현하며 의미하고 있는지 판단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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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문학세계가 오롯이 녹여져있는 "안나 카레니나"는 1877년에 쓰여진 한 여자의 비극적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위선에 찬 러시아 귀족사회와 정교를 비판하던 그는 "톨스토이 주의"라는 사상을 만들기도 하는데 결혼, 계급, 종교 등의 사회구조에 대한 고민이 집약적으로 서술되어 있어 이 책은 오랜 시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꾸준히 사랑받아오고 있다. 원작은 1,726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장편소설이지만 스타북스에서 새롭게 출간된 이 책은 안나 카레니나의 축약판이라고 봐도 손색없을 정도로 내용이 알차게 담겨있으니 고전 읽기에 부담을 느낀 사람이 있다면 도전해보기 좋을듯하다. "행복한 가정은 살아가는 모습이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괴로워하는 법이다"라는 문장으로 소설의 막을 열어 안나의 비극적 결말이 예상되는듯하다. 사교계의 꽃으로 불리우는 안나는 호화로운 생활 속 반복되는 일상과 애정없는 카레닌과의 결혼생활에 싫증을 느끼던 중 동생 부부의 이혼을 막기 위해 찾아간 자리에서 만난 청년 브론스키에게 한눈에 반해 험난한 사랑을 이뤄가게 되는데 떳떳하지 못한 사랑은 그녀를 파멸로 이끌고 불안한 격정이 독자들로 하여금 위태롭게 다가오게 된다. 인간사에 벌어지는 그 일들을 재단하고 비난하는 것은 인간의 자격 바깥에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 한 톨스토이의 뜻을 상기시킬 필요가 있어 보인다. 놀랍도록 생생하고 관능적인 이 작품은 인물의 감정선이 섬세해 안나의 관점에서, 때로는 키티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그때그때 작품이 새롭게 다가올 것이다. 안나가 온전히 그녀로 살아갈 수 있는 낙원은 과연 어디에 있을지, 존재하기는 하는 건지 문득 궁금해진다. [본 포스팅은 네이버 카페 문화충전200%의 서평으로 제공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안나카레니나#레프톨스토이#스타북스#문화충전#문화충전200#러시아소설#명작#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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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살아가는 모습이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괴로워하는 법이다 ' 톨스토이의 장편소설 '안나카레니나'는 이렇게 시작된다 안나의 오빠인 스테판의 외도로 인한 오블론스키 집안의 어수선한 분위기로 여동생 안나의 등장을 예고한다 아이를 많이 낳고 매력을 잃은 아내에게 실망한 스테판은 가정교사와 부적절한 관계를 갖게 되고 그 사실을 알게된 올케 돌리가 오빠와 헤어지겠다고 하자 그녀를 설득하고 화해시키기 위해 기차를 타고 오빠의 집으로 향한다 그러는 도중 기차역에서 멋진 청년장교 브론스키와 운명적인 첫만남을 가지게된다 20살 차이의 남편과 8년동안의 무료한 결혼생활을 하던 안나는 열정적으로 자신에게 구애하는 브론스키의 매력에 파져들게되고 사랑을 뿌리치지 못하고 결국 받아들이게 된다 시간이 지나며 사교계에 소문이 퍼지자 그들은 여행을 떠나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만 명예욕이 강한 브론스키는 동료의 출세를 보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한때 안나에게 첫눈에 반하고 그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여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단순하고 무료해진 자신의 생활을 깨닫게되고 안나는 차츰 그의 사랑이 식어가는 느낌을 참을 수 없어 하며 그들의 사랑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게된다 이쯤에서 한때는 더없이 아름다웠으나 시작에 문제가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한편 돌리의 여동생 키티는 브론스키의 구애를 기다리며 그녀를 짝사랑하는 시골 귀족 레빈의 청혼을 거절하지만 브론스키의 행보에 실망한 나머지 병을 얻어 요양을 가게된다 레빈 또한 좌절하고 시골로 돌아가 농사를 지으며 농노와 같은 생활을 하며 농사를 짓는 데서 느끼는 몰입의 경지에 빠져든다 그러다 요양으로 어느덧 건강을 회복한 키티를 친구 스테판의 주선으로 다시 만나게되고 그녀를 아직도 사랑함을 확신한 그는 키티에게 청혼하고 결국 결혼하게된다 그들은 의견차로 소소하게 다투기도 하지만 서로의 진실한 사랑이 차츰차츰 성장해감을 느끼며 행복한 가정을 지켜나간다 어릴적 세계의 명화를 즐겨보던 중 우연히 보게된 ' 안나카레니나'는 이렇듯 영화로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땐 브론스키가 너무 멋져 보였고 그래서 안나의 사랑을 응원했다 왠지 남편은 안나의 사랑에 방해되는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그만큼 그들은 빛나는 한쌍이었고 안나의 죽음은 너무 갑작스러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영화라는 특수성 때문이기도 했으리라 만약 안나가 키티처럼 결혼전의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 과연 브론스키의 관심을 끌 수 있었을까? 가장 좋은 결론은 브론스키가 미혼인 안나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사는건데 아니면 안나가 레닌과 같은 사람과 결혼했다면? 여러가지 가정을 해보게 된다 브론스키는 자유분방한 어머니의 영향으로 사교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편이었지만 나름 절도 있는 생활을 할 줄 알고 자신의 사랑을 지키려는 노력도 하는 멋진 남자로 그려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사교계에서 자신의 입지가 불안해진 안나는 급기야 브론스키를 의심하게 되고 브론스키도 그녀에 대한 사랑이 식어감을 느낀다 안나는 결국 그에게 복수하는 심정으로 그녀 자신을 죽게한다 톨스토이는 등장인물들 각자의 심리나 성격묘사를 뛰어나게 잘 해서 우리를 놀라게 하는데 그중 레빈은 톨스토이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느낀건 안나의 모습에서도 톨스토이의 젊은날의 방황과 혼란 잘못된 삶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작가는 어쩌면 안나의 죽음을 통해 자신의 과거의 과오를 벌주고 죽음으로 그 모든것을 지워버리고 속죄하고 싶어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작에서처럼 행복한 가정은 진리와 같아서 하나로 통하기때문에 엇비슷할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행한 가정은 행복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세력이 많을 수밖에 없기때문에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괴로워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 또한 하게된다 그만큼 행복한 결혼생활은 유지하기 힘들다는걸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안타깝지만 결국 안나의 죽음만이 이 갈등상황에 종지부를 찍을수 있는 임팩트있는 결론이었고 안나의 죽음이 암흑이었으므로 레빈과 키티의 소박한 결혼생활이 반딧불처럼 빛날 수 있었으리라 그들의 결혼생활은 평범하고 소박했지만 그렇기때문에 오히려 앞으로는 더 성장할 것을 기대하게된다 #안나카레니나 # 레프톨스토이 #리투서평단 #스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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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작품을 읽는 것은 뭔가 숭고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 같다. 그건 아마도 그가 작품속에 삶에 대한 철학과 인간이 가져야 할 도리,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들을 담아놓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릴때는 너무 직설적으로 교훈적인 문장을 나열하는 것이 유치해 보이기도 하고. 전지적으로 인간의 내면까지 담아내며 길게 묘사해 내는 그의 글들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느정도 인생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나이가 되어 그의 작품을 다시 읽어보니 이제서야 그의 작품이 주는 깊은 울림이랄까. 진중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끊없는 고찰을 담아놓은 역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한 가정은 살아가는 모습이 서로 엇비슷 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괴로워하는 법이다." 너무나 유명한 이문장이 바로 안나 까레니나의 첫문장이었다. 행복과 불행이라는 이 두단어가 가정이라는 단어와 만나면, 사랑이라는 양념을 치게 되면 어떻게 되는 지 너무나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이 책은 톨스토이가 정말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글속에 무수히 많이 담겨 있는 복선이며 암시가 그러하고 이야기의 처음과 끝을 기차역에서의 죽음으로 설정해 놓은 것까지.... 책을 읽기 전에는 그저 한 여자 안나의 일생 정도로만 생각하고 가볍게 읽어가기 시작했는데 그 안에는 정말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키디와 레빈의 사랑속에 담겨 있는 이야기들은 왠지 톨스토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노동을 신성시하고 하고 땅을 사랑했던 톨스토이의 마음을 오롯하게 담아 낸 듯해서 레빈이라는 인물에게 무한 매력과 응원을 나도 모르게 보내고 있었다. 사랑의 모습도 여러가지라 불타오르듯 한 순간에 빠져 버리는 열정같은 사랑이 있는가 하면, 오랜시간동안 서서히 그 사람을 오롯이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 들이면서 그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가치관까지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사랑이 있다는 거. 인생을 살면서 불타오르는 열정같은 사랑도 한번쯤은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마음으로 이해하고 믿음과 의리로 맺어지는 그런 사랑도 못지않은 참사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에게 이성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열정적인 사랑을 위해 불륜도, 사람들의 손가락질도 이겨낼 수 있는 그런 사랑을 멈추게 하는 것일까? 왜 안나는 남편과의 이혼을 쉽게 결정내리지 못한 걸까?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진짜 단순히 자식때문에? 죽음을 결심하고 최후를 맞이하는 순간 떠오르는 안나의 질문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당대의 여성들의 삶은 그저 남자에게 종속되어 살아야만 하는 그런 삶이었던 것일까? 그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이고 당당하고 광채가 나던 안나가 어떻게 한순간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건지... ㅠㅠ
"어떤 환경이든 사람이 적응 할 수 없는 것은 없다." 뭔가 내가 애정한 레빈마저 러시아 사교계의 흥청망청하는 그런 파티 문화에 적응하고 받아들이게 될 것 같은 이 문장. 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빈만큼은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끝없이 질문하면서 제대로(?) 살아갈거라는 믿음. 뭔가 권성징악(?)과 인과응보(?)의 냄새를 풍기는 톨스토의 작품들 속에서 결코 미워할수 없는, 연민을을 느끼게 하는 안나를 비롯해 주인공들이 뭔가 변화하고 살아움직이는 그런 생동감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작품이었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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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숙한 사랑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소설, 내게 안나 카레니나는 그러한 소설이었다.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 톨스토이의 여러 대표작 중에서도 사랑을 소재로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펼쳐나가는 안나 카레니나는 한 부부의 불륜 이야기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자신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가정교사와 바람난 스테판 아르카지치로 인해 그의 아내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그와 이혼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스테판의 여동생 안나 카레닌은 다리야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모스크바로 오게 되고, 이곳에서 우연히 만난 브론스키라는 군인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만 보면 흔하디 흔한 사랑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문제는 안나 카레닌이 이미 자식도 있는 기혼자라는 점이었다. 안나는 유부녀인 자신의 처지를 생각해 애써 브론스키와 거리를 두려고 노력해보았지만, 사랑 없이 결혼한 현남편과의 사이에서는 느껴본 적 없었던 열정적인 감정과 피할 수 없는 그의 매력, 끊임없는 그의 사랑 고백에 결국 불륜을 저지르게 된다.
남편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을 모두 뒤로 하고 브론스키와 함께하게 된 안나의 앞은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만 같았지만, 안나는 점점 괴로워하게 된다. 이 불륜으로 인해 자식, 명예 등 많은 것을 잃게 된 안나였기에, 안나는 자신에게 남은 건 오직 브론스키라는 생각에 점점 브론스키에게 집착하게 되었고, 그의 사랑을 끊임없이 의심했으며, 그가 혹여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게 될까봐 두려워했고,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괴로워하며 점점 미쳐가게 된다.
안나 카레니나는 한마디로 '고전판 부부의 세계'와 같은 느낌이었다. 안나는 자신이 이루고 있던 기존의 안정적인 가정을 버리고 새 사랑을 찾아 떠났지만 오히려 불안해하였고, 영원할 것만 같았던 안나에 대한 브론스키의 사랑도 처음과 같이 한결같지는 않았다. 가정을 버리고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들의 사랑이 세기의 사랑인 것마냥 굴지만, 결국 그 끝은 '유한함'을 알지 못한다. 책을 읽는 내내 결혼생활은 100% 사랑만으로는 유지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가는 느낌이었다. 연애면 몰라도, 결혼은 단순히 사랑만 있어서는 안 된다. 사랑보다도,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이해하려 하고 서로 간의 신뢰가 끈끈하게 쌓여있을 때 비로소 건강한 결혼생활과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사실 난 책을 읽으며 안나의 첫번째 남편이었던 알렉세이를 굉장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평가 내렸다. 비록 안나와 알렉세이는 사랑 없이 결혼한 것이었지만, 알렉세이는 어찌되었든 끝까지 이성적인 태도로 안나를 존중해주었고, 결국엔 안나를 이해하며 안나의 불륜을 용서해주었다. 이런 사람이라면 비록 사랑이 결여되었더라도 안나도 꽤 괜찮은 결혼생활을 이어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안나는 마음이 끌리는 정렬적인 사랑을 선택하였고, 브론스키에 대한 안나의 사랑은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하는 방식이었다. 실제로 브론스키는 안나 외에 다른 여성에게 마음을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끊임없이 브론스키를 믿지 못하였고, 결국 그 끝은 암울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안나를 보며 연민의 감정이 들기도 하였다. 안나가 이렇게까지 브론스키에 집착하며 그의 애정을 끊임없이 갈구해간 이유는, 안나에겐 정말 사랑 외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나에게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안나는 불륜으로 인해 사회에서 거의 매장된 처지였기 때문에 사교계를 즐길 수도, 그렇다고 무언가를 배워 일을 할 수 있는 처지도 아니였다. 당시 사회상은 여성은 배움에 있어 뒷전이었으니깐. 이러한 이유들로 안나는 타인에 대한 애정을 갈구하는 것 이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기 때문에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나 싶다.
어찌되었든, 이렇게 잘못된 사랑의 예를 보여주는 안나와 브론스키 커플과 대조해, 이 소설에는 사랑의 정석을 보여주는 또 다른 한 커플이 등장한다. 바로 키티와 레빈 커플. 작가는 이 커플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와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진정한 사랑의 모습 등을 보여주고 있다. 이 대조되는 커플상으로 인해 독자는 성숙한 사랑의 의미에 대해 더욱더 깊게 깨닫게 되는 것만 같다.
굉장히 다양하고 입체적인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였던 안나 카레니나.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잡는 세세한 심리묘사와 흥미로운 스토리 전개, 그리고 예상치 못한 결말까지 여러모로 정말 많은 재미를 주었던 소설이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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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 겸 사상가인 레프 톨스토이는 "전쟁과 평화", "부활", "안나 카레니나", "이반 일리치의 죽음" 등 80년 넘는 생애 동안 수많은 작품을 남긴 위대한 문호입니다. 그의 작품 중에서 손꼽히는 <안나 카레니나>를 읽어보았습니다.
스테판 아르카지치와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부부로 별일 없이 아이들과 결혼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남편 스테판이 아이들의 가정교사와 외도한 사실을 알게 되며 같이 살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스테판은 용서를 구하지만 다리야의 마음을 돌릴 수 없고, 자신의 누이인 안나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안나는 오빠를 위해 기꺼이 모스크바로 옵니다. 안나가 도착하는 날, 스테판은 동생을 마중하러 나왔고, 알렉세이 브론스키는 군인으로 교양 있고 호감 가는 청년으로 어머니를 마중하러 나왔습니다. 브론스키와 안나가 서로 마주치며 무언가를 느낍니다. 그 느낌은 이곳에 지내며 계속 지속되어 안나와 브론스키는 서로 마음을 나누게 됩니다.
스테판의 친구인 레빈은 다리야의 여동생 키티를 보고 반합니다. 그래서 춤을 신청하고 집을 방문하며 마음을 키웠으나 용기가 없어 자신의 영지에 내려갔습니다. 그동안 브론스키가 키티에게 관심을 표했고, 키티의 엄마도 레빈보다 브론스키가 낫다며 조언합니다. 두어 달 후에 레빈은 키티에 대한 마음이 일시적이지 않음을 깨닫고 키티에게 청혼을 합니다. 하지만 키티는 거절하지요. 내심 브론스키가 청혼할 거라 기대했지만 브론스키는 안나에게 빠져 그녀는 원인 모를 병에 걸립니다. 결국 요양 치료를 권유받고 이곳을 떠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기분전환을 하지요. 의사의 말대로 키니는 얼마 안 있어 기운을 차리게 되었고, 모스크바에서의 사건도 추억이 되었습니다. 안나는 오빠의 문제를 해결하고 페테르부르크로 갔습니다. 그런 그녀를 따라온 브론스키는 그녀에게 애정공세를 퍼붓습니다. 남들 모르게 만난다고 하지만 그의 사랑은 온 도시에 소문이 납니다. 안나도 견딜 수 없어 남편 알렉세이 알렌산드로비치에게 이를 고백하고 남편의 처분을 기다렸으나 남편은 이 일을 덮기로 합니다. 하지만 집으로 브론스키를 부른 안나의 행동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이혼을 요구합니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사랑은 어떻게 될지, 키티를 향한 레빈의 마음과 철없던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 키티는 또 어떻게 될지,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 확인하세요.
<안나 카레니나>는 브론스키와 레빈의 정반대 인물이 등장합니다. 브론스키는 이때까지 한 번도 가정생활이라는 것을 맛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젊었을 때 사교계의 빛나는 주인공이었고, 결혼 후 미망인이 된 후에도 많은 로맨스를 뿌려 사교계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었고요. 그는 관심 있는 여자와 결혼할 뜻도 없이 유혹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했고, 그것이 좋지 못한 행위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는 관심 있는 여자와의 만남에서 얻는 감정이 소중할 뿐이지요. 반면에 레빈은 가정생활에 진지한 인물로 플라토닉한 사랑을 꿈꾸는 순수한 인간입니다. 브론스키와 사랑을 나누는 안나와 레빈과 결혼하는 키티, 두 커플을 대비시켜 이들의 사랑이 현실 사회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 보여줍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지닌 가치관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고, 다른 쪽을 이해하지 못함을 느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지금 시대에서도 그럴진대 1877년 작품인 <안나 카레니나>가 그 시대 어떤 파장을 몰고 왔을지 상상이 됩니다. 시대를 앞서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여러분께 추천합니다.
네이버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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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소설을 접하기까지 제목으로만 알고 있었던 '안나 카레니나'. BBC 선정 '꼭 읽어야 할 책', <뉴스위크> 선정 '100대 명저', 국립중앙도서관 선정 '청소년 권장도서' 등 수많은 수식어를 달고 있는 이 책을 이제서야 만나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톨스토이 작품을 제대로 다 읽는 것도 이번이 처음인 듯하다.
스테판 아르카지치 오블론스키 공작은 가정부와의 바람이 들통나며 아내와 화해를 위해 안나를 부른다. 안나의 도움으로 스테판의 위기는 넘겼지만 안나가 위기에 빠지게 된다. 레빈은 키티를 사랑하지만 시골 생활을 하던 몇 개월 사이 경쟁자가 생겼고 키티는 이 경쟁자인 브론스키를 향한 사랑을 키우고 있었다. 키티에게 뒤늦게 청혼을 했지만 거절당한 레빈은 다시 시골로 돌아갔고, 청혼할 거라 생각했던 브론스키는 언니(스테판 아내) 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집에 방문한 안나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자신으로 인해 뭔가 삐걱임을 느낀 안나는 오빠의 가정사를 해결해 주고 바로 떠났지만 브론스키와의 본격적인 사랑이 싹트게 된다. 분명 아이가 있는 엄마이기에 이성적으로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안나를 마중 나온 남편을 바라보는 그녀의 시각이 달라졌고 아이를 바라보는 시각조차 달라졌음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건너서는 안되는 강을 건너버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알렉세이 알렉산드로비치는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로 인해 많은 갈등을 했다. 남몰래 사랑을 키워가던 안나와 브론스키 사이에 아이가 생기게 되자 도망치고 싶어 하던 브론스키의 모습에 실망도 했지만 사랑이라는 건 감추기 힘든 것인지 주변에서는 하나 둘 눈치를 채고 있었다. 가정을 뒤흔들면서 감행한 브론스키와의 사랑은 결코 평탄치 않았다. 파멸로 치닫는 것 같은 안나의 삶과 비교해 키티에게 거절당했던 레빈은 키티가 결혼하지 않았음을 알았고 키티와 사랑의 결실을 맺는다. 뭔가 계속 불안 안나와 브론스키에 비해 레빈과 키티 커플은 힐링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을 선물한다.
당시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인 관점에서 안나는 브론스키 말곤 믿을 구석은 없었을 것이다. 뭔가 확신이 있었다면 그런 극단적인 선택은 하지 않았겠지? 화려한 생활을 하다 불행의 길로 치달은 안나와 소박하지만 선행을 베풀며 살아가는 레빈, 키티의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한다.
출판사 지원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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