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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탓할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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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그 양상에 따라 각기 향유하는 계층이 다르며, 그 세분화의 정도는 너무도 치밀한 나머지 2살 터울이 지는 동생과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이다. 어딘가 모르게 가벼운 것 같아 보이고, 소위 ‘버릇없다’고 이야기되는, 어쩌면 우리 사회는 ‘젊다’는 것에 대해 이중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도 같다. 모든 것이 가능한, 그래서 여느 연령대보다도 생기 넘치는, 하지만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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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그 양상에 따라 각기 향유하는 계층이 다르며, 그 세분화의 정도는 너무도 치밀한 나머지 2살 터울이 지는 동생과 대화가 통하지 않을 정도이다. 어딘가 모르게 가벼운 것 같아 보이고, 소위 ‘버릇없다’고 이야기되는, 어쩌면 우리 사회는 ‘젊다’는 것에 대해 이중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도 같다. 모든 것이 가능한, 그래서 여느 연령대보다도 생기 넘치는, 하지만 모든 것을 알아서는 안 되는 나이가 10대이다. 더구나 우리 사회와 같이 단 한가지의 목표만이 정당화되어지는 곳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오직 한 가지의 길은 바로 공부이다. 공부 이외의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존재로 그들은 종종 묘사된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친구를 만나거나 취미생활 따위를 할 시간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쉽게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일방적인 것일 뿐이다. 어른의 관점을 하고 그들에게 다가서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견지하고 있는 시각은 우리 자신의 것일 뿐, 그 안에는 10대의 목소리가 없으니 말이다. 다양한 청소년 문제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원조 교제 문제가 우리 사회에 가져다 준 파장은 실로 컸다. 과거 원조 교제의 문제는 분명 타락한 일부 문제아들의 문제로 치부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었다. 하지만 사회의 개방화와 더불어 청소년들의 성 윤리 역시 급속히 변화하기 시작했으며, 오히려 원조교제에 있어서 청소녀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성을 팔기 시작했다는 것이 과거와는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녀들에게 성은 더 이상 금기시되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쉬쉬하며 숨겨야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는 것으로 성은 치부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의 성이 음성화된 것이었다면 이제는 자연스럽게 교류될 수 있는 것으로 그 성격이 변화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청소녀들의 변화를 사회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같은 청소년이라 할지라도 남성과 여성(청소녀)을 구분, 남성들의 성경험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를 가하지 않으면서도 청소녀의 성은 보호되어야만 하는 것, 지켜져야만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여성을 정숙한 여성과 그렇지 않은 여성으로 구분, 원조 교제를 하는 청소녀들을 후자의 영역으로 구분 짓는 시선 역시 여전하다. 그러다보니 법의 영역에서는 원조 교제의 두 주체 중 성을 구입한 남성만을 처벌하지만, 법 외적인 영역에서는 원조 교제에 뛰어든 청소녀들을 비난하는 것이다. 실제로 자본을 통해 10대의 성을 사는 남성들의 명단을 공개된다. 하지만 원조 교제를 한 청소녀들이 왜 원조교제에 뛰어들게 되었는지에 대한 진실된 고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언론 매체에서는 성을 판 쪽이 여성, 그것도 10대 청소녀였음을 강조하기 위한 듯한 기사를 작성, 보도한다. 글을 읽었을 땐 10대 여성이 그 주체인 것처럼 느껴지는, 하지만 그러한 뉘앙스에도 불구하고 성을 판 주체가 10대 여성인 경우는 그리 높지 않은 것이다. 이렇듯 성을 파는 개인에 대한 제재는 개인의 영역을 뛰어넘어 원조 교제를 근본적으로 가능케 하는 남성 중심적 사회 문화에 대한 제재로까지 이어지진 못하고 있으며, 원조 교제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피상적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취하고 있는 관점은 독특하다 말할 수 있다. 성의 주체로서 청소녀를 설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부정적인 관점을 탈피했다고 볼 수 있다. 왜 그녀들이 자신의 성을 판매하고자 하는 결정을 하게 된 것인지를 묻다 보면 우리는 거대한 사회 구조와 접하게 된다. 또래 문화에서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필요해 그녀들은 소비를 해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성의 노동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나이가 어린 청소녀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하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남성) 청소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임금이 주어진다. 오히려 청소녀들은 성희롱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건전한 노동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그녀들에게 원조 교제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한 가지의 방법으로써 아주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자신을 철저히 망가뜨리지만 타인에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소매치기나 도둑질 보다 오히려 건전한 것으로 그녀들에게는 여겨지기도 한다. 그녀들의 이러한 자금(?) 욕구가 남성들의 성 구매 욕구와 만났을 때 비로소 원조교제라는 하나의 거래가 성사되게 된다. 사회는 계속 변화할 것이며 성에 대한 관점 역시 변화해왔고 변화할 것이다. 청소년들 역시 이러한 변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성교제가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고, 해서는 안 될 것과 해도 되는 것의 경계가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변화 양상을 살펴볼 때, 청소년들에게 성에 대한 무지를 강요하는 것보다는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관점을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편이 더 나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타락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으로 성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여겨질 수 있을 때 원조 교제를 둘러싼 문제 역시 해결에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될 것이다.
q*****2 2005.05.29.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원조 교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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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아이들-원조 교제와 청소녀]. 만약 '아이들'을 '내딸'이라 할 때 나는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김고연주씨의 글을 딸을 가진 아빠로서, 김고연주씨도 말했지만 딸, 아내, 누나, 여동생은 성녀이기를 원하지만 어쩌면 내 자신도 한 인간으로서 청소녀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의미있는 질문을 던질 필요성이 있었다.물론 모든 남성이 청소녀를 성관계의 대상으로 인식하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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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묻는 아이들-원조 교제와 청소녀]. 만약 '아이들'을 '내딸'이라 할 때 나는 이 책을 어떻게 읽었을까? 김고연주씨의 글을 딸을 가진 아빠로서, 김고연주씨도 말했지만 딸, 아내, 누나, 여동생은 성녀이기를 원하지만 어쩌면 내 자신도 한 인간으로서 청소녀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의미있는 질문을 던질 필요성이 있었다.

물론 모든 남성이 청소녀를 성관계의 대상으로 인식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실 매우 답답한 글 읽기였다. 약간은 기분 나쁜 면도 있었고. 하지만 이미 기성세대가 되어 버린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도덕과 윤리의식을 청소녀와 내 딸에게 강요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성'을 고귀함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고귀함이란 부부사이에 이루어질 수 있는 가장 존엄한 행위, 가장 사랑스러운 행위, 가장 쾌락적인 행위 모두가 포함된다. 그런 생각은 오늘의 성의식의 기준에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이에게 강요하는 누를 범해서도 안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필요하다. 남성들이 청소녀들에게 성을 '돈'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사려고 하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돈이 성을 지배하게 되면 이는 청소녀가 천박한 자본주의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 20만원, 100만원이 성을 사고 파는 매개체가 될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이런 이해가 김고연주씨와 다를 수 있다.

나느 청소녀들이 성을 자기의 가치를 인정하는 중요한 부분임을 말하고 싶다. 존엄하다는 말을 했는데, 이는 천박한 자본주의의 희생물이 아니라 자기가 성을 알고, 성을 통하여 자기를 알고 성을 통하여 인간을 알고 성을 통하여 사회를 알고 성을 통하여 자기와 다른 인격체를 알아야 함을 말한다.

원조교제라는 말의 첫 의미는 긍정적이라 했다. 이것인 우리에게는 부정적으로 각인되어 있다. 원조교제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아이들의 근본적 생각이 무엇인지 직접 대면을 해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잘은 모르지만 청소녀들은 분명 우리의 과거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이 간격을 좁히는 일을 바로 우리 자신이 해야 될 것같다. 글을 쓰고 보니 나도 기성세대임을 부정할 수 없다.
k****e 2007.08.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