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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 최근(?)의 일화 한 토막으로부터 시작할까 합니다.
1990년대 중반 독일의 철학자 하버마스가 내한했을 때 우리나라의 한 학자가 "남북 통일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때 하버마스의 대답이 걸작입니다. 그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습니다. "그걸 왜 나한테 묻습니까?"
하버마스의 말은, 문제에 대한 정확한 해결 방안을 말한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떠안고 있는 해결의 당사자가 본인이 아니며, 따라서 자신의 의견이란 단지 참고사항일 뿐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일 겁니다.
《철학에서 이야기로 - 우리 시대의 노장 읽기》는 하버마스의 예에서 처럼 바로 '우리의 삶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간략하게 말해서, 중국이나 일본, 서구의 학자들이 동아시아 고전에 대해 해설해 놓은 책들이란 그네들의 삶의 상황에서 부딪힌 물음들을 고전에 투영한 결과일 뿐, 그래서 단지 참고사항일 뿐, 우리들의 삶의 문제가 녹아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이 책의 근본적인 문제의식입니다.
개인적으로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늘 궁금해하고 풀리지 않던 '철학'에 대한 의문, '중국 고전'에 대한 자세를 스스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먼저 '철학'이란 무엇인가?
동아시아 전통에서 철학이란 없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의 과거 문헌에 철학이란 말은 없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피타고라스가 최초로 말했던 'philosophy'를 일본 학자가 번역한 단어였습니다. 따라서 '동양 철학'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철학'이 없었는데 무슨 '동양 철학'.
그러나 지금은 아주 자연스럽게 서양 철학에 대비되는 말로 동양 철학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때 동양 철학은, 서양의 '철학'이라는 개념에 근거하여 동양의 사상의 흐름을 재구성한 것에 다름 아닙니다. 애초부터 종교적 성격이 강했던 동양 - 중국 사상을 논리적 합리적 성격이 매우 강한 철학으로 짜맞춘 결과가 바로,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동양 철학 혹은 중국 철학이라 불리우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것을 '철학 만들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원래 없었던 동양 철학이 근대에 와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여기에는 서양에 대한 동경과 사대적인 자세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데, 서양의 철학 잣대에 걸맞지 않은 많은 사상들이 동양 철학사에서 배제되거나 변방으로 취급되는 결과를 빚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노자》와 《장자》 또한 왜곡 또는 획일화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식에 종교로서의 도교와 철학으로서의 도가가 분리되어 인식된 것도 바로 이러한 작업 결과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중국 고전'을 어떻게 볼 것인가?
저자는 '고전에는 국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조선조 성리학자들이 조선의 현실에서 유가 경전을 읽었고 그 결과가 조선 성리학 전통을 창출했듯이, 《노자》나 《장자》 또한 우리의 언어로 우리의 현실에서 읽는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책은 '닫힌 경전'에서 '열린 텍스트로' 《노자》와 《장자》를 읽기를 시도합니다. 그 예로 먼저 서구인의 《노자》 읽기의 다양한 예를 언급하고, 언어적으로 더 친숙한 우리가 과연 그네들보다 더 《노자》와 《장자》를 잘 읽고 있는지 의문을 갖습니다.
'열린 텍스트'로 《노자》와 《장자》를 대했을 때,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무위자연, 도, 덕의 개념은 매우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노자》와 《장자》는 그 읽는 이에 따라 천의 얼굴로 보이는데, 특히 우리의 상식과는 달리 《노자》와 《장자》는 매우 '정치적인' 성격의 글로 볼 수 있습니다. 《노자》를 '도경'이 아닌 '덕경'을 중심으로 읽을 때 매우 실천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듯이, 《장자》를 '소요유'와 '제물론'이 아니라 '덕충부' '대종사' '응제왕' 등을 중심으로 보면 그 관점이 상당히 달라질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 3장에서는 《장자》에서 보이는 이상사회론을 통해 《장자》의 사회적 실천적 성격이 강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핵심은 마지막 4장에 있습니다. 제목은 〈역사에서 이야기로 - 《노자》와 《장자》의 이야기론적 해석을 위한 시론〉입니다. 제목은 좀 어렵지만 내용은 간결합니다.
선진 시대에는 중국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역사에서 말하는 《노자》나 《장자》도 없습니다. 그것들은 노장도 아니고 도가도 아니며 있는 그대로의 '텍스트'일 뿐입니다. 노자나 장자가 《사기》에 그려진 그런 삶을 살았다고 볼 증거도 없으며, 한대의 도가나 위진 시대의 노장처럼 해석해야할 의무도 없습니다. 오랜 기간에 걸쳐 편집된 《노자》와 《장자》는 한 나라, 한 시대의 사유에 지배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것은 중국만의 소유물도 아니고 사마천의 역사에 포섭되는 것도 아닌, 역사를 가로지르는 원형적인 '삶의 이야기'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결론적으로, 고전이 고전인 까닭은 그것들이 시대와 문화를 넘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잇는 삶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논어》나 《맹자》, 《노자》, 《장자》에는 '저기 그 때'의 어떤 고정된 진리나 원리가 박제된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삶을 반추해보도록 이야기 할 뿐입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이 '본문'이고 《노자》, 《장자》가 우리의 삶에 대한 '주석'이라고 생각하는 일일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읽어야지 고전을 억지로 읽으려 하거나 고전 속에 담긴 고원한 진리를 마치 신의 진리를 이야기하듯 전하는 것은 우리 시대에 적합한 《노자》,《장자》 읽기가 못 됩니다. 역사와 개념의 그늘에서 벗어나 고전을 본래의 '이야기'로 되돌려 놓아야 할 것입니다.
저자의 이야기를 마치 제 얘기하듯이 쓴 것은, 저자의 말에 십분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시대, 나의 삶의로서의 노장 읽기를 위해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를 샀습니다. 아직 얼마 읽어 보지 않았지만 '텍스트 - 이야기'로서의 노자를 통해 우리 삶을 되돌아 볼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 글자수 제한이 있어 중간중간 잘랐습니다. 원문은 예스24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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