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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확히 이기적인 우리의 마음이 허용하는 한에서만 진보해나갈 수 있다
"세상은 정확히 이기적인 우리의 마음이 허용하는 한에서만 진보해나갈 수 있다" 내용보기
네이버 백과사전은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을 요약하여 한 마디로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주의”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즘을 풀어 설명하면서, 위와 같은 요약 정의가 사실은 불합리하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일방적인 비난을 통하여 마키아벨리는 정치가는 그의 정치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떠한 수단을 사용하여도 좋다고 생각하
"세상은 정확히 이기적인 우리의 마음이 허용하는 한에서만 진보해나갈 수 있다" 내용보기
네이버 백과사전은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을 요약하여 한 마디로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 권모술수주의”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키아벨리즘을 풀어 설명하면서, 위와 같은 요약 정의가 사실은 불합리하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일방적인 비난을 통하여 마키아벨리는 정치가는 그의 정치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어떠한 수단을 사용하여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인 것처럼 일반인에게 인식되었고, 그러한 생각이 마키아벨리즘을 낳게 되었다. 그리하여 역사상의 모든 음흉하고 비열한 행위는 모두가 마키아벨리즘의 실천이라고 간주되었으며, 마키아벨리 자신이 마치 무슨 음모가인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였다. 이는 어떤 인간의 사상이 그 인간의 참다운 의도를 떠나서 세상 사람들에게 단편적으로만 이해되고 비난받는 것의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마키아벨리의 사상이 그의 사후에 이와 같은 운명에 처해진 것을 빗대어서 “마키아벨리의 인생은 그의 사후에 새로 시작되었다”는 말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네이버 백과사전) ‘인간의 사상이 그 인간의 참다운 의도를 떠나서 세상 사람들에게 단편적으로만 이해되고 비난받는 것의 본보기’라고 말할 만큼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보편적’입니다. 마키아벨리즘에 대해 전문적으로 연구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와 같은 요약 정의의 뜻으로 ‘마키아벨리즘’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저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 책은 마키아벨리와 마키아벨리즘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고 있습니다. 나아가 이승만에서 노무현에 이르기까지의 한국 헌정사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현실’의 방법론을 말한 마키아벨리즘을 ‘우리의 현실’에 비추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시도는, 최소한 저에게는, 성공적이었습니다. 진정한 마키아벨리즘, 마키아벨리스트가 어떠한 것인지를 알 수 있었고, 그 잣대를 가지고 역대 한국의 군주(대통령)들을 평가하는 대목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여가며 책을 읽어나갔습니다. 마키아벨리즘의 핵심은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 있습니다. 위에서 이미 정의했듯이 흔히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을 마키아벨리즘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책의 앞 부분에서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말하려 했던 바는 사리사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천박한 처세술이 아니었다.”(p.25) 다시 말해 마키아벨리가 말한 것은 모든 목적이 아니라 ‘좋은’ 목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선악의 가치 판단이 필요없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으며, 오히려 끊임없이 선악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좋은 목적’은 곧 ‘국가’입니다. 저자의 말을 종합하면 마키아벨리즘은 이러한 것입니다. “나쁜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좋은 목적을 달성해야한 한다는 현실에 근거한 방법론”입니다. 좋은 목적과 나쁜 수단의 관계에 관한 마키아벨리의 인식은 이 땅의 민초들도 익히 알고 있는 평범한 진리를 넘어서지 않습니다. 사리사욕을 위해 마키아벨리를 들먹이는 사이비 마키아벨리스트에 의해 한낱 권모술수의 처세론으로 격하된 것입니다. 저자의 주장, 즉 책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생략하겠습니다. 마키아벨리즘과 반마키아벨리즘의 변증법, 마키아벨리스트와 사이비 마키아벨리스트, 법치와 반법치, 법 없는 세상의 역사적 실패 등 어느 하나 따로 떼어내서 말하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또한 이런 방법으로 제가 이 책을 통해 느낀 바를 결코 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혼란’과 '흥분‘의 제 기분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으로 이 책의 가치에 대한 저의 평가를 대신하고자 합니다. 이 책은 얇지만, 저의 세계관을 흔들 만큼 강력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결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면서도, 현실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인한 정신적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고 있지 못한 저에게 이 책은 중요한 텍스트가 될 것 같습니다. 한동안 놓고 있었던 사회과학 책 읽기에 이 책이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 같습니다.
n******8 2005.06.27.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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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통령 중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는?
"한국 대통령 중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는?" 내용보기
지난 22일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모습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치욕스러운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민주주의는목적뿐만 아니라 절차까지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미디어법 날치기는 둘 다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대한민국 헌정사에는 이런 질곡과 치욕스러운 일들이 많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사사오입개헌과 부정선거를 자행했고, 조봉암 선생같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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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날치기로 통과시키는 모습은 대한민국 헌정사에 치욕스러운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민주주의는목적뿐만 아니라 절차까지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미디어법 날치기는 둘 다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대한민국 헌정사에는 이런 질곡과 치욕스러운 일들이 많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사사오입개헌과 부정선거를 자행했고, 조봉암 선생같은 이들을 제거하였다. 박정희는 헌법을 유린했고, 마지막에는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체육관 선거로 종신 대통령이 되려고 했다. 전두환 역시 헌법을 유린하였고, 수 많은 인민들을 피흘리게 했다.

 

한 때는 민주주의를 외쳤던 김영삼 전 대통령 역시 쿠데타 주역이었던 노태우와 김종필과 손을 잡았다. 정치를 권모술수의 현장으로 만들고, 헌정을 유린하면서 그들이 내세웠던 말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였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민주적 절차 따위는 잠시 접어 두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 논리였다.

 

이럴 때 문득 떠오른 말은 마키아벨리즘이라고 부르는 "성공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이다. 그런데 마키아벨리는 사리사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는 처세술을 주장한 사람이 아니었다. 김욱은 <마키아벨리즘을 읽는 한국 헌정사>에서 마키아벨리즘을 통하여 이승만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조명하고 있다. 우리 헌정사뿐만 아니라 마키아벨리즘의 새로운 발견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사익을 나쁜 것으로, 공익을 좋은 것으로 규정하여 공익을 권장한다. 즉 마키아벨리에게 좋은 목적이란 공동체의 이익이다. 그럼 공동체의 이익이란 무엇인가?

 

마키아벨리는 "백 명을 구하기 위해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처럼, 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나쁜 수단이 목적으로 전화되어 좋은 목적을 상쇄하는 결과를 가져오지만 이는 좋은 목적을 위해 정당화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김욱은 말한다.  즉, 나쁜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좋은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의 이익이다. 가장 큰 공동체가 국가이다.

 

마키아벨리가 지은 <군주론>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군주제를 주장한 사람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아니다.  김욱은 "공동체에 도움이 된다면 군주국이든, 공화국이든 아니면 다른 정부형태도 상관없었다"고 주장한다. 군주국과 공화국 중 어느 것을 선호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마키아벨리즘을 요약하면 어떤 경우라도 공동체의 이익이라는 좋은 목적을 추구한다는 전제 위에 있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그 군주가 목적인 정당성(인민주권)과 수단인 정통성(민주절차를 통한 권력승계)을 가져야만 정권의 지속여부가 결정된다고 김욱은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헌정사를 기록하고 있는 군주들(대통령)은 어떻게 평가받을 수 있는가? 김욱은 "한국 헌정사는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부도덕한 정치 과정과 민주주의에 대한 민중의 열망, 도덕적 요구가 뒤얽힌 질곡의 역사였다"는 냉혹한 평가를 내린다.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로 칭송받는 이승만을 김욱은 "분단 대한민국의 건국 과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을 훔침으로써 얻어낸 영광"이라면서 "그의 반역 행위는 대한민국 건국을 친일 세력과 함께 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친일파와 함께 한 것이 심각한 반역행위인 이유는 "헌법 제정 권력이 당연히 갖추어야 할 독립적이고 배타적인 권력을 형성하지 못한 것으로" 그는 이를 '원죄'라고까지 표현한다. 이유는 친일파가 이 땅의 주인이 아니라 인민이 주인인데 주인 중 한쪽인 북쪽 인민들을 이승만은 철저히 배격했기 때문이다. 사적 이익을 위해 공동체의 이익을 버린 것으로 마키아벨리즘이 아니다.

 

박정희는 어떤가? 박정희는 분명 인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여였다. 박정희를 추앙하는 이들도 민주주의는 훼손되었지만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했다고 주장하면서 박정희 독재를 정당화시킨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헌법을 개정하고 정적을 암살하려했으며 사법 살인을 부추기고 언론을 통제"했다. 사적 이익을 위해 공동체의 이익이 침해받은 것이다. 결국 박정희는 김재규에 의해 살해된다. 김욱은 이를 "마키아벨리즘이 실패했다는 선언"이라고 주장한다.

 

김영삼은 누구인가? 그는 오랫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 하지만 그는 "민주화 투쟁의 적이었던 군사 파쇼 집단과 동지가 되어" 3당 야합을 했다. 한 때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그가 왜 군사 파쇼 집단과 동지가 되었을까?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김욱의 말을 들어보자.

 

애초에 김영삼은 수단을 정당화하기 위한 목적 따위는 없었다. 권력 자체가 목적이었다. 그는 그저 개인적 욕망의 대상을 향해 투쟁했으며 군주로서가 아니라 사적 개인으로서 존재했을 뿐이다. 김영삼은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가 아니었다(60쪽)

 

김영삼은 자신과 박정희를 비교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겠지만 김욱은 박정희는 먹고사는(목적) 문제를 위해 모든 힘을 숭상했지만 김영삼은 힘 그 자체를 숭상했다는 냉혹한 평가를 내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들어보자. 이승만은 정당성, 박정희는 정당성과 정통성, 김영삼은 정당성이 없었지만 김대중은 정당성과 정통성 모두 문제가 없었다고 김욱은 주장한다. 이승만부터 김영삼까지 이어져왔던 정통성과 정당성 문제가 비로소 해소된 것이다.

 

하지만 김욱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 기간 동안 전두환과 노태우라는 학살자를 용서하고, 박정희 기념관을 지원했으며 그의 아들들은 부정부패를 일삼았다고 말한다.

 

이런 점에서 김욱은 "그가 만약 뛰어난 마키아벨리스트였다면 '혐오스러운 학살자'를 사적으로 용서함으로써 자신의 공적인 결과에 보탬을 주려는 따위의 어리석은 시도는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왜 그랬을까? 김욱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너무 늦게 군주가 되었고, 이것이 한국 정치의 비극이라고 안타까워한다.

 

김욱은 노 전 대통령을 "정치의 이단자"라고 말하는데 그가 진보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도 개의치 않는 역사의 정당성을 따진다. 이것은 정치인으로서 특히 한국의 정치인으로서는 치명적인 약점"이었고, "50년 동안 정당성과 정통성의 부재 속에서 살아온 우리 현실에서 정당성과 정통성을 따지며 정치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정당성과 정통성을 따지면서 정치를 했다. 즉 인민의 이익과 절차적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고, 대통령까지 지냈다. 이승만과 노무현에 이르기까지 우리 헌정사는 정당성과 정통성을 함께 갖추었던 군주를 잘 만나지 못했다. 김대중과 노무현이 거의 유일한 군주였다.

 

하지만 또 다시 역사가 거꾸로 가고 있다. 정통성은 있지만 정당성을 상실해버린 정권인 이명박 정권은 인민 주권을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는 인민이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 풀어가야 한다. 희망을 잃지 않으면 된다. 역사의 주체는 인민 자신이다.

 

역사는 신비롭다. 아무도 역사의 정의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 같지만 역사는 자정력을 잃지 않는다. 우리의 역사가 이 신비를 웅변으로 입증하고 있다.(162쪽)

 

k****e 2009.07.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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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다시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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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마키아벨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특히 우리 사회에서 마키아벨리의 ‘권모술수’와 관련된 부분은 특정 개인의 정치 권력 쟁취 및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오용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두고 맹목적인 권력추구로 이해하곤 한다. 이와 같은 단순한 이해에 의한다면 우리나라 만큼이나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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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마키아벨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특히 우리 사회에서 마키아벨리의 ‘권모술수’와 관련된 부분은 특정 개인의 정치 권력 쟁취 및 유지를 위해 끊임없이 오용되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두고 맹목적인 권력추구로 이해하곤 한다. 이와 같은 단순한 이해에 의한다면 우리나라 만큼이나 마키아벨리의 사상에 충실한 국가도 없는 듯 하다. 친일 세력의 포용, 쿠데타, 각종 비리 등. 이 모든 것이 정권의 창출을 위해 부단히 사용되었던 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역사니 말이다. 역사를 평가하는 것은 조심스러운 작업이다. 이는 한 정권의 정당성 문제를 뛰어넘어 한 국가의 정당성 문제와도 연관이 된다. 정당성은 합법성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합법성의 영역에서 놓고 본다면 역대 정권들은 모두 나름대로 합법적이었다. 하지만 법의 실질적인 내용을 파고 들어간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마키아벨리의 사상 역시 마찬가지이다. 민중의 지지 부재 속에서 이승만은 정권을 잡기 위해 친일 세력과 결합했으며, 미군정의 지지 확보에 주력했다. 불법적으로 강행한 헌법 개헌까지, 그는 실로 권모술수에 능한 인물이었다. 박정희는 어떠한가? 경제성장이라는 결과는 오늘날 많은 이들로 하여금 그에 대한 향수를 갖게 만들고 있다. 쿠데타에 의한 정권 창출, 반공법, 유신헌법을 통한 정권 유지. 그 역시 권력을 유지하는데 있어서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저자는 이 모든 것을 비판하는 근거를 마키아벨리로부터 찾는다. 이들이 추구한 것은 전체적인 ‘선’이기 보다는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정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바로 마키아벨리의 생각이다. 만약 진정으로 도시를 잘 개혁하기 위해 군주국을 포기해야 할 경우 자신의 지위를 잃지 않으려고 개혁을 거부하는 사람도 어느 정도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군주국도 유지하면서 개혁할 수 있다면 [개혁하지 않는 것은] 용서받지 못한다. – p 53 그의 행동과 일생을 고려하면 행운이라고 볼 만한 것이 거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앞에서 보았듯이 그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수많은 어려움과 위험 속에 군경력을 통해 군주국을 얻었고 용기 있고 위험한 행동으로 그것을 지켰다. 그러나 시민들을 학살하고 친구들을 배신한 행동, 신의와 자비심과 믿음이 없는 행동은 미덕이라 부를 수 없다. 그런 방식으로 주권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명성을 얻지는 못한다. – p 109 역대 대통령들은 나름대로 마키아벨리즘을 활용했지만,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진 못했다. 그들은 ‘공동체를 위한 좋은 결과를 이루기 위해 나쁜 수단을 사용해도 된다’는 마키아벨리의 사상을 전적으로 잘못 이해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정치인들이 유독 도덕성에 있어서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한 사회에 부도덕한 정치인이 존재한다면, 그리고 그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된다면 그것은 그 사회의 민중들이 부도덕성을 암묵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역사의 잘못은 우리 모두의 잘못이고, 한 개인의 도덕 정화가 아닌 사회 전체 구조의 개혁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의미의 마키아벨리즘을 실현할 수 있게 된다. 저자는 많은 부분 노무현 정권에 대한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해 보인다. 마키아벨리즘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반 마키아벨리즘 속에서 저자는 진정한 의미의 (민중의) 이익이 추구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전의 대통령들에 비해 노무현이 이러한 변증법에 가까이 다가갔노라고 말한다. 그리고 ‘참여 정부’라는 단어 속에는 이전의 권위주의를 개선해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개선이라고 하는 것이 한 순간 획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시간이 아닐까 싶다.
이달의 사락 q*****2 2005.01.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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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논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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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군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말아라"   현재 마키아벨리를 알고 있는 대개의 사람들이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위의 한문장으로 요약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누군가의 입에서 마키아벨리의 이름이 나온다면 위의 한문장으로 해석하고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썰을 풀 것이다.   헌데 위의 문장으로만 그의 주장을 압축시킬 수가 없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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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군주론

"군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말아라"

 

현재 마키아벨리를 알고 있는 대개의 사람들이 마키아벨리의 주장을 위의 한문장으로

요약하고 있을 것이다.

 

또한 현재 누군가의 입에서 마키아벨리의 이름이 나온다면 위의

한문장으로 해석하고 이해한 것을 바탕으로 썰을 풀 것이다.

 

헌데 위의 문장으로만 그의 주장을 압축시킬 수가 없댄다.

잠깐 딴소리하자면 사실 문제긴 한다.

앞뒤 싹둑 자르고, 몇개의 키워드만으로 한사람의 사상을 요약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다시 돌아와서 마키아벨리의 위의 주장에 대해서 잘 알려면은

군주가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이 공동체를 위한 선한 목적이어야 하고

수단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목적을 관철시키기 어렵거나 수단을 지속시키는데 비용이 과도한 그래서

좋은 목적의 선의를 변질시키는 수단은 배척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말라고 설파했다고 믿었던 마키아벨리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을 이기적으로 상정한 그의 인간관과 그가 이러한 사상을 정립했을 때의

그가 속한 이태리의 사회 배경을 총체적으로 보아야 그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마키아벨리의 주장 즉 마키아벨리즘을 바탕으로 우리 나라의 헌정사를 되새긴다.

이승만,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을 차례차례로 진단, 분석하며

김대중까지를 실패한 마키아벨리즘으로 규정하고 노무현에 대한 기대를 걸고 있다.

특히 노무현을 반마키아벨리즘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마키아벨리즘과 반마키아벨리즘은 같이 감을

얘기한다.

 

작자가 강준만과 김규항을 인용하며 대충의 서술의 논조를 보면(삼당합당에 대한 작가의 규정)

정치적 성향을 짐작할 수 있다.

책세상문고의 필진과 그 주제를 보면 기획측에서 이러한 정치적인 입장을 지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입장이 책세상의 공식적인 입장임은 분명해보이며, 따로 출간되고 있는 살림총서도 그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성향이 책세상이 선택하는 지식인-사실 주류의 입장과는 달리하는, 사실 주류의 위치에 서있지 못한-들로 인해 불가피하게 결정내려진 것은 아닌지 다시 말하면 책세상 총서가 비주류 지식인들의 지식유통의 장으로써 기능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여느 책세상문고처럼 쉽게 쓰려고 했으나

사실 잘 읽히지 않는 부분도 많고 지금도 반절이나 제대로 이해했을지 모르겠다.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

k*****k 2008.12.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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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즘의 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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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일생은 고달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마키아벨리즘으로 본 우리나라의 헌정사까지 나온 것을 보면 말이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일수밖에 없지만, 그들이 모인 사회, 혹은 국가는 공공선을 취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즉 부정의 도구가 선한 이익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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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일생은 고달팠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의 영향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마키아벨리즘으로 본 우리나라의 헌정사까지 나온 것을 보면 말이다. 마키아벨리는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일수밖에 없지만, 그들이 모인 사회, 혹은 국가는 공공선을 취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즉 부정의 도구가 선한 이익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주장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역사를 돌이켜볼때 그의 주장은 타당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대표적인 예가 세계경제공황때 미국에서 나온 대규모 공공사회정책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근간을 흔든다고 비난을 받았던 이 정책은 결과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을 더욱 강하게 하는데 기여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가설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위험천만하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도자는 도구도 사악하지만 목적마저 개인의 이익을 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c*****0 2003.07.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