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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
이 책은
이 책 『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은 저자의 <세계일주 단독 항해기>이다.
저자는 알랭 제르보, <프랑스의 신화적인 국민 영웅이다. ‘20세기의 오디세우스’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젊은 시절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하고, 축구를 즐기는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 뛰어난 무공을 세웠다. 무엇보다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조그마한 돛배로 세계일주 단독 항해에 성공하는 초인적인 성과를 남겼다.>
이 책의 내용은
마오리족의 한 사람이 그에 대해 한 말이다. 그처럼 그는 보통의 유럽인과는 달리 여행한 지역의 문화를 경외감으로 바라본 사람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그의 문화관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다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그래서 이 책에서 살펴볼 것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고독한 항해자로, 그가 요트를 타고 바다에서만 700일 넘게 보내고, 4만 마일의 뱃길을 주파(224쪽)하면서 겪은 해양모험담으로 읽어보는 것이다. 그런 모험 때문에 그를 ‘20세기의 오디세우스’라는 별명으로 부르는 것이다.
두 번째 그의 타자 문화에 대한 경외심을 찾아볼 수 있다. 그가 여행중 만난 폴리네시아를 비롯한 타자 문화를 대하는 그의 인생관을 표현하는 구절이 있어 소개한다.
그런 그의 눈에 보인 것들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자.
그는 특히 그런 원주민 민족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도착한 지역마다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서, 위와 같은 기록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유럽 제국은 어떻게 그들을 지배했는가
그런 문화를 지닌 민족들을 유럽인들은 어떻게 대했을까?
원주민들을 식민지의 종으로 여기는 행태를 저자는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는 다른 결의 사람들도 있다.
여기에서 ‘장애’라는 말은 잘못된 번역이 아닌가 싶다. (물리적인 것은 아닌) ‘장벽’이라고 하는 게 옳을 듯하다.
이런 인물 만나, 역사의 기록으로 남겨둔 것도 이 책의 의미가 있다.
유럽 제국들이 가서 뿌려놓은 문명, 그리고 기독교의 모습은?
기독교에도 여러 갈래가 있는데, 근본주의 기독교가 들어가 뿌리를 내리는 바람에 ‘그들의 생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고 하니, 안타깝다.
다시, 이 책은
‘20세기의 오디세우스’ 라는 말에 끌려 이 책을 열었다. 처음으로 바다를 우리 인생의 은유로 읽기 시작한 『오디세이아』의 주인공이 바로 오디세우스다. 그만큼 바다는 인생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저자는 그런 바다를 요트를 타고 다니며 파도와 바람과 맞서 싸우며, 인생을 모험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또한 폴리네시아 원주민을 만나 그들의 순수한 문화를 찾아 보여주었는데, 그런 저자의 노력, 지금도 제국주의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이 세상에 반면교사가 될 것이다.
이 책은 그런 저자를 기리는 책으로, 새겨 읽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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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작은 터전 안에 머무르지 않고 끝없이 펼쳐진 평원, 대양을 향해 나아가는 결단은 실로 대단합니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대하소설 <대망(도쿠가와 이에야스)>에 보면 이른바 남만인, 홍모인 들을 평하며 "야만인들이기는 하나 그 먼 곳에서 험한 파고를 헤치고 여기까지 온 걸 보면 대단하지 않냐"는 말을 합니다. 사실 이야말로 코미디 같은 품평이며, 서양인들이 19세기 한때 서세동점을 주도하며 세계의 패권을 잡은 건 15세기부터 꾸준히 시도해 온 저런 모험 정신, 탐구 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만인은 제 좁은 방구석에 머물며 밖에 나갈 줄 모른 채 남을 평가하는 일에만 맛이 들린 종족들을 가리키는 게 맞습니다.
이 책은 프랑스인 알랭 제르보가 1929년에 쓴 기행문이자 에세이입니다. 알랭 제르보는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했으며 동시에 이런 명저를 지을 만큼 폭 넓고 정확한 인문 지리 지식을 보유한 매우 뛰어난 지성인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엄친아 소리를 들을 만한, 공부도 잘하고 운동 실력도 빼어난 만능인이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당대에 국민영웅으로 사랑 받았겠죠. 이 저자분에 대해서는 책 말미 20여 페이지에 달하는 역자 정진국씨의 "귀로에서"라는 해설을 읽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본문도 엄청 유익하고 재미있지만 해설도 그에 못지 않습니다. 참고로 이 멋진 책의 제목은 "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이 구절도 제목으로 멋지죠)"이지만 원제 Sur la route du retour 역시 프랑스어로 "귀로에서"라는 뜻입니다.
이런 저자들을 보면 인문 지리 지식도 빼어나지만 언어학적 호기심과 감각, 습득력도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제르보 자신이 타고난 머리 자체가 대단해서이겠지만, 생소한 언어를 접했을 때 일단 배우고 싶어하고, 어떤 사전의 체계적 지식도 없이 네이티브의 말을 듣는 즉시 형태소와 음운을 분석하고, 그것을 모국어나 자신이 아는 다른 외국어와 대조하고... 이런 과정이 거의 본능적으로 행해지는 듯합니다. 이 책 p17 같은 곳에서 제르보는 현지인의 ng 발음 같은 것을, 자신이 전에 들었던 동폴리네시아에서는 못 듣던 것이라며 즉시 분석하려 듭니다. 사실 한국인 입장에서는 프랑스어 특유의 ng 역시 어말의 자음이 아니라 모음과 일체화하여 발성되는 그 자체가 신기합니다. 중국어도 이를 운모로 처리하며 별개의 자음으로 취급하지 않죠.
"건강하고 잘생긴 인종이다.(p20)" 제르보보다 훨씬 앞선 시기 프랑스인들이나 영국인들도 미지의 세계(그들 입장에서)를 탐험하며, 그저 현지인을 무지하고 추하다며 무시하기만 한 게 아니라, 이처럼 훌륭하고 강건한 육신, 건강한 정신을 가진 이들은 존중했습니다. 이를테면 인도 북서부의 펀자브인, 네팔의 구르카인, 또 시크 교도 등은 영국 제국주의자들에게 특별 대우를 받았고 일부 탐험가들의 눈에 비친 마사시족도 그러했습니다. 조선인들에 대해서도 비숍 부인이 대체로 칭찬을 했었죠. 잘난 건 누구 눈으로 봐도 잘난 것입니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착륙에 성공했을 때 암스트롱, 올드린, 콜린스 등의 "우주인"들도 다 신체 강건하고 빼어난 지능, 상황 대처 능력을 갖춘 엘리트들이었습니다. 이 책 p48 같은 곳에서 제르보와 그의 동료들이 겪는 고초를 보면, 오늘날 무슨 호화 크루즈를 타고 세계를 일주하며 즐기는 항해 같은 것은 그저 도락이나 호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뭐 간혹 뱃멀미하는 사람도 있겠으나 고작 그 정도이며, 제르보가 활약하던 시기만 해도 먼 거리 항해는 목숨을 걸거나 신체 일부가 크게 다칠 각오를 하지 않으면 감행할 수 없던 "모험"이었죠. 제르보는 20세기 초반 사람이라서 그 전 세기와 상황이 같지는 않았겠지만 여튼 책에서 보듯 이런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선교단이란 사실 만만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길에서 아주 간혹 마주치곤 하는 이들을 대단한 존경심을 갖고 대하지는 않겠지만, 15세기 이래 해외에 파견되는 선교단은 대단한 자질로 무장한 인재들이었고 현지에 자리를 잡거나 했을 때 누리게 되는 특권도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이 책에도 p55 같은 곳에 "왕의 권력은 허울뿐이었다. 모든 일을, 마리스트 선교단이 선택한 토착귀족 장관들이 선택했다"는 구절이 있는데, 일단 토착 귀족과 협력하게 된 선교단은 정치, 행정, 경제 모든 면에서 그 지역의 실권을 장악하게 되는 거고 조선의 경우 이재수의 난도 따지고 보면 이런 배경이 있죠. 혹은 18세기 과라니 족의 사정도 이것과 비슷했을 겁니다. 선교단은 아주 간혹 로마의 본진(Holy See. 당시에는 바티칸이 그저 지명이었으므로)이나 식민 본국과 충돌까지 했으니 말입니다.
아무래도 제르보 자신이 운동이나 잡기에 능하고 두뇌도 영리했던 만큼 현지 마타우투의 청년들과도 쉽게 친해졌을 겁니다. 평판은 이처럼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거지 소수의 친분을 의식적으로 조작해서 어울리지 않는 외투처럼 걸칠 수 있는 게 아니죠. 제대로 된 한 사람의 관찰자만 나타나도 "엉터리"라는 게 바로 판명이 되지 않습니까. 그냥 모자란 분수에 맞게 정직하게 살면 되지 뭐하러 그렇게 불안하게 사는지 모를 일이죠. "황토색 분장을 칠하고, 꽃잎을 엮어 목에 걸고 화관을 썼다. 춤은 활기와 야성미가 넘쳤다." 예를 들어 스트리트 워먼 파이터 같은 프로그램을 볼 때 우리가 받는 느낌 같은 걸까요?
"불 위를 걷는 사람들"의 능력은 봐도봐도 신기합니다. 저자도 그리 생각했지만, "교묘하게 위장된 환상일 것이다"라며 역시 지성인다운 분석력을 발휘하려 듭니다. 12일이 지나 그 유명한 부갱빌이 인상 깊게 보았던 에로망고 섬에 도착합니다. 부갱빌이 누구인지 모를 독자를 위해 책에서는 따로 각주를 달아 놓았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인물의 행적은, 그보다 앞서 태어난 또하나의 두드러진 인물의 전철과 궤가 겹치곤 하죠. 패튼은 생전에 자신이 한니발의 환생이라며 큰소리 쳤는데 비록 픽션상의 인물이라고는 하나 이 제르보를 20세기의 오디세우스라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 그리 과장만은 아닙니다.
섬들에는 영국 정부도 있고 프랑스 정부도 있다고 합니다. "멀티플 주리스딕션"이기라도 할까요? "각자 자기네 정부의 일을 보았는데 분쟁이 생기면 희한하게도 에스파냐 판사가 주재하는 국제법원이 맡았다" 독자가 읽기에도 정말 희한합니다. 이 정부와 법정이 자리한 콘도미니엄을 현지에서 판데모니엄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우습습니다. 제르보는 "태평양의 프랑스 총독 기용 씨"의 초대를 받았으나 일정을 수정하기 어려웠다고 합니다. 아직 전간기의 풍요를 누릴 프랑스, 그 식민지의 한 풍속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나는 그 사람이 스프레이호의 유명한 슬로컴 선장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곳을 30여년 전에 지나갔을 것이다." 촌장이 진짜 순종 양키라면서 늘씬하게 말랐다고 감탄하면서 전해 주는 이야기에 저자 제르보가 답을 하는 대목입니다. "벌써 30년이 지났어? 하긴." 옆에는 루이스라는 소년이 타는 듯한 호기심(책의 표현입니다)으로 눈을 반짝이며 제르보와 아빠인 촌장의 말을 듣습니다. 촌장은 제르보에게 부탁합니다. 아들을 데려가 달라고. 이 촌장은 현지인과 프랑스인의 혼혈들과 오래 섞여 살았는데 낭트 태생이라고 하니 본인은 순수 프랑스인인 셈입니다. 그래도 피부가 검게 그을렸고 현지의 풍토에 적응하다 보니 혼혈인지 헷갈리게 하나 봅니다. 프랑스인인데도 모국어를 거의 잊고 어설픈 영어와 현지어를 씁니다. 제르보는 여기서도 자신이 더 익숙한 폴리네시아를 떠올립니다. 촌장의 딸 하나가 시중을 드는데 정말 예전 영화에서 보듯 외지인에게 딸을 애써 주려는 현지인 추장의 클리셰 같은 행태를 보는 듯합니다. 물론 이 시점은 20세기 전반이라서 그런 풍습의 일환은 아니겠습니다만.
아무래도 태평양 상의 섬까지 건너와 살게 된 사람들은 매우 강건한 육신에 총명한 정신을 갖춘 사람들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래서 이 책 곳곳에는 훌륭한 외모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감탄이 자주 나옵니다. 또 아무래도 인구 수가 많다 보니 여기까지 건너 온 말레이 인들의 목격도 언급되는데 "남자 같지 않다"는 게 그의 평가입니다. 칭찬은 아니겠으나 이때로부터 몇 년 후 아인슈타인도 중국 근방의 사람들을 보고 비슷한 말을 한 적 있죠.
인도양을 통과하여 제르보는 무려 희망봉에까지 이릅니다. 이것은 사적인 항해이다 보니 위도 경도 등을 일일이 본인이 다 점검해야 하고 이 일정이 얼마나 고달프며 또 고도의 기술을 요할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세인트헬레나까지 와서 현지 군인들과 축구도 한 판 합니다. 프랑스의 만능 스포츠맨과 축구 종주국 청년 병사들과의 대결이 볼만했을 듯합니다.
카보 베르데를 지나 대서양에 진입한 그는 북위 5도(즉 적도 근방이라는 뜻이죠)상에서 상어떼를 만납니다. 얼마나 무서웠겠습니까? 우리 흑산도 앞바다에서 보곤 하는 홍어와 달리 몸집이 매우 큰 외투홍어도 목격합니다. 산 빈센테에서 그는 거의 좌초하여 여기서 피레크레를 잃을 뻔합니다. 책 처음부터 활유화하여 내내 언급되는 피레크레는 역주에 친절히 설명되었듯 파이어크레스트, 즉 그가 몰고 다니는 배 이름입니다. 배의 그림도 자세히 책에 그려져 있으니 배의 모양을 떠올려 가며 이 책을 읽어야 실감 만점입니다.
그는 긴 항해를 마치고 르아브르 항에 진입합니다. 혹시 그에게 사고나 나지 않았는지 영사관원과 기자들이 미리 알아보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이 무렵 미국의 린드버그라는 비행사가 큰 화제를 모아 가며 대서양을 비행기로 횡단한 역사를 알고 있습니다. 알랭 제르보란 이름이 낯선 독자라면 그 린드버그 비슷한 위상의, 프랑스 태생 셀럽이 펼친, 훨씬 더 어렵고 장거리에 걸친 항해였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용감한 사람의 위대한 모험 이야기는 시대를 초월하여 보편적 환영, 감탄, 열광을 모으게 마련입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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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후원을 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 / 파람북 / 알랭 제르보] 쌍돛대가 붙은 범선 산호초 사이로 태풍 난파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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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순간 돌풍에 휨싸였다. 해안에 뜬 '피레크레' 는 전속력을 내면서 높은 파도를 타며 나아갔다. 작은 원주민 돛배는 폭풍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파도가 거세게 밀려들면서 끊임없이 갑판을 때렸다. 줄인 돛이 너무 팽팽해, 끌어당겨 조금 느슨하게 풀어주었다.배를 돛에 맡긴 채 키 손장이를 묶어놓고 선실로 들어갔다. 엉망이었다. 선반위의 책들은 흩어져 있었다. 움직이는 것은 죄다 뒤죽박죽이었다. 미처 차곡차곡 실을 틈이 없었던 식량과 파일 모두 엉망이었다. (_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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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푸르름이다. 내가 좋아하는 계절인 여름도 이제 살며시 가을에게 자리를 내어주려는 요즘, 올해는 바닷가 한번 안 가본 아쉬움을 이 책을 통해 덜어내어 본다. 세계 일주 단독 항해기를 다룬 이 책의 주인공은 알랭 제르보이다. 여행기에서 찍은 사진과 함께 그의 항해 지도를 보면서 여행한 곳을 되짚어 보며 책을 읽어 나갔다. 저자는 프랑스인으로 '20세기 오디세우스'라는 별명을 가진 프랑스 국민 영웅이다. 또한 만능 스포츠맨으로 유럽인 최초 세계 일주 단독 향해를 성공함으로써 초인적인 성과를 남긴 인물이다. 말이 세계 일주 단독 향해이지 그 누가 쉽게 도전할 수 있을까. 망망대해에서 경주용 범선으로 그 험난함을 이겨내기가 얼마나 두렵고 힘들었을까를 상상하면 글쎄, 상상조차 버겁다. 그의 경주용 범선은 피레크레로 입면도와 평면도, 그리고 사진을 통해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큰 배를 타고 가도 폭풍을 동반한 거대한 파도를 만나면 두려운데 작은 경주용 범선으로 대자연의 힘을 몸소 겪으며 이겨낸 그의 도전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우리에겐 익숙한 휴양지 섬들의 등장은 반가우면서도 코로나로 인해 가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특히나 뉴칼레도니아의 아름다운 해변과 바다 색깔을 떠올리며 책 속으로 흠뻑 빠져보았다. 해양 문화를 탐구하며 자전적 기록이 담긴이 담긴 이 책은 다양한 남태평양의 섬과 원주민을 통해 그들만의 삶과 풍속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나 그가 남긴 사진과 함께 하니 더욱 내용에 몰입하기 좋았고 느낌을 생생히 전달받을 수 있었다. 폭풍과 암초로 부서진 배를 수리하며 끝내 세계 일주를 성공한 그의 도전정신은 어디에서 탄생되었을까. 만능 스포츠맨이라는 수식어가 가히 그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글을 따라 남태평양의 사모아, 피지, 타히티는 물론 남태평양과 인도양, 대서양의 바다와 섬을 두루 구경하며 그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과 그들만의 풍속에 다가서며 나도 직접 가보고 싶어졌다. 어디를 가나 진심으로 환영하는 모습들이 참 순박하게 느껴졌으며 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저자의 모습도 감동적이었다. 여름의 끝자락에서 망망대해를 떠올리며 읽기 좋은 도서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저자와 함께하며 직접 향해를 떠난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특히나 바다와 섬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추천하는 도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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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네시아나의푸른영혼 #알랭제르보지음 #정진국옮김 #파람북 #세계일주단독항해기 항해, 세계일주, 여행이라 참 들으면 벅차고 또 좋을 것 같다. 알랭 제르보는 1892년 건초한 초소형 요트로 세계일주 단독항해를 성공해 낸 인물이다. 유럽인 중 최초로 지구바다 한바퀴를 일주하며 단독항해를 해냈다. 이 책의 좋은 점은 사진으로 알랭 제르보의 세계일주를 사진으로도 보여준다는 점으로 함께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고, 남태평양의 섬을 사랑한 마음이 한껏 느낄 수 있는 다큐멘터리 문학작품이다. 좋은것은 사진도 함께 있어서 좋았다. 섬마다의 분위기와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었다. 대략 이야기하자면 마누아섬의 원주민의 대부분은 산호를 삶아 우려내어 염색을 희게 했다. 알랭은 섬곳곳을 사랑하고 살피고 원주민을 존중하였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원주민의 도움도 받고, 지나가는 통보함 '카시오페호'를 우연치 않게 만나서 극적으로 요트를 고치는 등, 여러가지 사건들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 당당함과 친화력과 그의 젊음이 서려있는 항해기라고 보았다. 섬 특유의 분위기와 순수한 섬의 사람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어 행복한 여정으로 보았다. 중간중간 거쳐갔던 여정에 섬사람들은 살아있는 공기이며 알랭은 바람이었다. 주민들의 환대와 또다른이별을 통해 삶을 배웠다. 바다는 여전히 알랭을 부르고, 알랭은 다시 바다로 나가 항해를 끝내고, 마쳐야 했다. 중간중간 배를 수리하는 것도 주기적으로 하야하는 듯 했다. 알랭은 바다를 사랑했고, 섬을 잊지못하였고, 원주민의 순수함을 사랑했다. 몇년전에 나도 티비로 충남 당진 왜목마을에서, 왜목항에서 알랭과는 다르지만 국내최초로 단독, 무기항, 무원조 요트를 210일간 세계일주를 성공한 방송을 본 기억이 있다. 입고 먹는 것도 다 그 안에서 알아서 조달해야 하고, 바다의 칠흙같은 밤을 혼자 장장 몇달을 지내면서 바다와 맞서 싸우고, 낚시로 고기도 혼자잡으며 무슨 생각으로 저 망망대해를 보낼까 호기심이 많았다. 세계일주 성공을 위해서는 반드시 적도를 2회이상 통과해야 한다고 했다. 세계일주는 어떤 사람이든지 모두의 로망이며, 거기에다가 단독항해라니, 바다를 사랑하고, 항해를 사랑한 알랭 제르보의 작은 돛배로의 여행은 즐거웠다. #요트로세계일주 #세계일주단독항해 #푸르른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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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에 여름 휴가로 하와이에 다녀왔어요 그때 폴리네시안 민속촌에 갔었는데, 하와이 뿐 아니라 사모아, 통가, 타히티, 피지 등의 생활모습, 전통문화를 접할 수 있었어요 제가 잘 몰랐던 폴리네시안 나라들에 관심이 갔던 건 그때부터였어요 하와이도 좋았지만 좀 더 전통이 보존되고 있을 것 같은 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한국에 와서도 폴리네시아에 대해 찾아보다가 디즈니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배경이 된 곳이라고 알려진 사모아에 가보고 싶어졌죠 <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을 읽게 된 것도 그런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테니스 선수였던 알랭 제르보의 항해기인 이 책은 1923-1929년을 배경으로 쓰여진 책이라 책에 나오는 폴리네시아 여러 곳의 모습은 현재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일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거의 100년 전의 이야기이니, 아직도 많은 원주민들이 그 모습 그대로 생활하고 있을 것 같진 않죠? 100년 전으로 돌아가 그의 항로를 따라 태평양을 건너, 인도양을 건너 떠나는 여행은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저는 모험심이 강하지도 않고 무서워하는 것도 많고 무엇보다 멀미도 심해서 감히 상상도 못할 여행인데, 알랭은 정착 생활보다 그의 배, 피레크레에서의 생활을 더욱 즐겼던 것 같아요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하는 날도 있고 육지를 밟지 못하고 한 달 넘게 바다 위에서 생활해야하는 때도 있는 생활을 즐긴 알랭은 어떤 성격의 사람일지 궁금해지더라구요 처음에는 인간관계에서 상처를 받아서 홀로 항해를 하나 싶었는데 섬에서 원주민들과도 잘 어울리는걸 보면 사람을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원주민들의 전통을 파괴하려는 자들은 싫어한 것 같지만요 해설을 읽으면서 그의 생애에 대해 어느 정도 궁금증이 풀리긴 했어요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이 영향을 미친게 아닌가 싶었어요 오랜 항해를 하려면 체력도 중요할 것 같은데 배에서 오래 있으면서 잘 먹을 수 있었을까 싶어요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항해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저는 폴리네시아는 폴리네시안 민속촌에서 본 나라만 떠올렸는데, 그 외에도 우리에게는 뉴칼레도니아로 더 잘 알려진 누벨칼레도니, 보라보라, 우베아 섬, 발리스 섬, 태평양에서 하와이, 누벨칼레도니 다음으로 크다는 비티 레부 섬 등 이름이 생소한 섬도 엄청 많더라구요 하와이만 해도 자연이 아름다운 곳이 많았는데 100년 전,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았던 곳들은 더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 많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알랭이 그곳을 사랑한 이유가, 항해를 마칠 때 아쉬워한 이유가 충분히 이해가 되더라구요 알랭에게는 그게 전부는 아니었겠지만요 이 책을 읽기 전, 폴리네시아에서 가장가보고 싶은 나라는 사모아였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부에 무심하고 재미있게 즐기면서 사는 피지 사람들을 보러 피지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거든요 [출판사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고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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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제르보 저의 『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 을 읽고 “젊음, 열정, 도전의 화신!” 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망망 바다위에 커다란 배도 아닌 홀로 작은 돛배를 타고서 아주 불확실한 거친 비바람과 해일, 파도 등을 헤치면서 자기 의지대로 다녔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보통 절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내륙에 태어나 지금까지 거주하고 있는 사람으로 바다에 대한 추억이나 낭만은 거의 없다. 어쩌다 가서 보는 바다는 멀리 바라보는 수평선과 함께 넓게 펼쳐진 잔잔한 바다와 함께 부두에 정박되어 있는 물고기 잡는 배들 모습과 어부들, 그리고 어촌 사람들의 평화스러운 모습이었다. 항구에서 조금 떨어진 섬들이 보이기는 하였지만 최근에는 연륙교로 이어져 변화된 모습으로 바뀌기도 하였다. 어쨌든 우리나라도 반도국으로서 꽤 많은 섬을 가진 3면이 바다로 면해 있지만 바다와 인연을 많이 갖지 않은 것은 나의 게으름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나의 바다에 대한 게으름을 싹 불식시켜 준 무시무시하면서 시원스런 걸작을 만나 한 여름 시간을 보낼 수 있어 너무너무 좋았다.
그것도 바다를 따라 하는 세계 일주 단독 항해기에 잠시 동참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저자인 알랭 제르보는 프랑스의 신화적인 국민 영웅이다. ‘20세기의 오디세우스’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젊은 시절 테니스 대회에서 우승하고, 축구를 즐기는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 뛰어난 무공을 세웠다. 무엇보다 유럽인으로서는 최초로 조그마한 돛배인 ‘피레크레호’로 대서양 단독 횡단에 성공한 최초의 인물이 된다. 또한 세계일주 단독 항해에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성공하는 초인적인 성과를 남겼다. 특히 이 책 『폴리네시아, 나의 푸른 영혼』(원제: 『귀로에서(Sur la route du retour)』)은 백미로 꼽힌다. 해양 다큐멘터리 문학의 세계적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책은 세계일주 단독 항해의 일기이자, 그가 사랑한 남태평양의 섬과 사람, 삶과 풍속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특히 남태평양의 폴리네시아의 여러 지역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신혼부부가 신혼여행지로 즐겨 찾는 태평양의 사모아, 피지, 타히티, 폴리네시아 등을 비롯해 호주 주변과 대서양의 수많은 섬과 바다가 끊임없이 책에 등장하여 반가웠다. 시간과 세월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관광지로서 현실과 저자가 당시 직접 섬을 밟았을 때 느꼈던 그곳의 진짜 순박했던 자연과 인간, 삶과 풍속에 대한 기록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어 너무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오늘날 점점 사라져가는 해양 문화의 본모습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기록이 바로 이 책이라는 사실이다. 저자는 바로 폴리네시아 등 남태평양의 바다와 섬과 사람에 매료되어 여러 섬을 오가며 그들의 문화를 옹호하고 지리와 역사를 연구하면서 생애의 마지막을 보냈다. 돛배‘피레크레’호를 탄 저자가 바다에서 나침판에 의지해서 항해를 한다. 온갖 악조건일 수밖에 없다. 물론 좋은 조건일 때는 극히 일부분이다. 하지만 기상조건은 수시로 바뀐다. 바람도...파도도...비도...구름도... 고래나 상어 떼 등도 수시로 괴롭힌다. 어찌할 것인가? 수많은 섬들과 협곡과 위험 조건들이 그냥 널려있다, ‘피레크레’호가 어딘간에 닻을 내려야 한다. 어떻게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어디에서 어떻게 수리를 해야 할 것인가?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 등등 알랭 제르보의 고독한 항해에 관한 일기이자, 그가 사랑한 남태평양의 섬과 인간과 그 삶에 대한 관찰기가 궁금하면 이 책을 한 번 보시면 폭염을 시원스럽게 물리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최근 떠오르는 해양 다큐멘터리 문학의 세계적 걸작 한국어판 초역이라 더 흥미로운 시간이 되리라 확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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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경제적 여유가 생기게 되면 세계 일주를 하고 싶은 꿈이 있을 것이다. 약 90년 전 프랑스 테니스 선수인 알랭 제르보는 28살에 영국으로 건너가 30년쯤 되는 중고 돛배를 구입하여 지브롤타에서 뉴욕까지 대서양을 101일 만에 횡단하게 되고 알랭 제르보는 여행에서 겪은 여행이야기를 이 책으로 만들게 된다. 실제 여행을 하면서 겪었던 많은 에피소드들도 재미가 있었고 간혹 모르는 지명이 나와 어려움은 있었지만 친절하게 그림 지도를 넣었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이해하기가 쉬웠고 책의 내용도 읽기 편했다.
책의 구성은 항해자의 열도, 불운한 항로, 다시 배를 띄우다, 귀로에서, 산호초 사이로, 태평양에서 인도양까지, 아라푸라해, 인도양을 건너며, 폭풍우 몰아치는 희망봉, 북반구로 돌아오다, 캅 베르 제도 체류, 귀환으로 구성되어 있다.
시대가 20세기 초반 제국주의가 아직도 존재하던 시기에 여행을 했었기 때문에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 떠나는 간접적인 여행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 여행기가 의미 있게 다가왔던 건 현재 코로나로 인해서 해외여행을 하기에 많은 제약이 있기 때문인 거 같다. 홀로 돛배를 이끌고 여행을 한다는 것이 많은 위험이 존재하고 실제 저자도 어려움이 많았지만 배와 식량만을 가지고 항해를 하면서 책을 읽고 섬이나 육지에 도달해서는 저자가 좋아하는 테니스를 치거나 주민들과 축구 경기를 하는 등 자유로운 모습이 인상 깊었다. 20세기의 오디세우스라는 별명이 괜히 얻어진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코로나로 인해서 해외여행에 많은 제약이 있어서 해외여행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간접적으로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거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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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폭풍우가 덮쳤습니다. 뱃머리 쪽 돛대가 부러졌지요."
'20세기의 오디세우스'라는 별명을 가진 알랭 제르보, 그는 1893년 프랑스에서 태어나 1941년 동티모르에서 사망한 프랑스의 국민 영웅이다. 1923년 영국에서 30년된 경주용 범선을 구입해 프랑스 칸 항구에서 출발해 1929년 프랑스 서안 르아브르 항구로 돌아오는 단독항해로 세계일주를 유럽인 중 최초로 완주했다. 이 세계일주 전반부는 <혼자 대서양을 건너>, 그리고 이 책은 후반부 폴리네시아에서 프랑스 귀환까지 과정으로 <귀로에서>가 원저다.
Firecrest, 피레크레, 알랭의 작은 배로 유명해진 이름인데, 원래 굴뚝새의 일종으로 유럽에서 가장 작은 새를 가리키는 딱새의 속칭이다.
알랭은 혼자서 파레크레로 항해하면서 고독을 벗삼아 시간을 보내며 폴리네시아의 아름다운 섬과 다양한 원주민들의 원시적인 모습에 감탄했다. 개발된 곳보다 원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을 훌륭하게 생각한 의식있는 사람이었다. 폴리네시아의 보라보라 섬부터 사모아, 피지, 티모르와 인도양을 지나 희망봉을 거쳐 가면서 되도록이면 동포나 문명인보다 원주민이 거주하는 섬에 정박하길 원한 알랭을 보면 반제국주의 정신이 엿보인다.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서 물고기, 돌고래와 바닷새들의 놀이를 관찰하면서 인간의 근원적 본능도 놀이임을 깨닫기도 한다. 일용할 양식을 얻으려는 것은 합리적인 본능이라는 것을.
코코넛 섬에서 만난 촌장의 무용담에서 30년전에 지나간 스프레이호의 조슈아 슬로컴 선장 이야기도 나온다. 대머리에 염소수염을 길렀고 진짜 순종 양키더라면서. 그는 세계 최초 요트 세계일주자로 캐나디인이었다.
계속되는 항로 중 세인트 헬레나 섬?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섬이름이다. 나폴레옹의 유배지, 그 섬이다. 이 섬이 아프리카 옆에 있을 줄이야. 여태껏 지중해에 있는 섬인 줄 알았는데. 알랭은 죄수가 된 황제가 산책하던 오솔길을 혼자 생각에 잠겨 경건하게 걸어보기도 했다.
이 책의 곳곳에 첨부된 해도의 피레크레 궤적을 따라 가며 묘사해놓은 알랭의 세일링과 원주민과의 만남을 눈앞에 그리면서 이따끔 나오는 사진을 보면 마치 항해 영화를 보는 듯하다. 수차례 좌초되고 풍랑치는 대양에서 끊어지지 않는 그의 요트 세일링 열정에 숙연해지는 시간을 가진다. 여행을 좋아하고 세일링을 하시는 분이라면 필독의 책이 아닐까 싶다. 강력 추천한다.
<귀로에서>의 첫 번역작이라는데 아쉬운 점은 '망가레바'섬에 대한 주석이 선을 넘은 느낌이다. 프랑스 핵실험까지만 설명했으면 싶었지만 핵발전소와 후쿠시마에 대한 사견까지 기록에 넣은 건 무리수가 아니었을까. 이러니 안타깝지만 본문 번역의 문제가 있을지 의심의 여지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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