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9:11-15에서 설명하듯이, ‘넉넉한 연보를 위한 하나님의 채워 주심’은 사실 더 큰 은혜의 순환의 한 부분이다. 헌금자들이 너그럽게 나누면 수혜자들은 하나님께 “감사”의 반응을 하게 된다(11-12절). 이 ‘유카리스티아’[eucharistia, 즉 하나님께 감사(charis)를 드리는 것, 9:15]라는 단어가 동일한 단어 ‘카리스’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바울은 앞에서 사람에게 헌금할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8:1, 9)와 헌금 자체(8:4, 6, 7; 9:8)를 가리킬 때 이 단어를 사용했다. 이렇게 바울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사람의 관대한 나눔을 가능하게 하고, 그것이 다시 하나님께 넘치는 감사를 불러일으키는 ‘카리스’의 순환을 그려 보인다. 우리는 여기서 일상적이고 실제적인 행동을 논하는 가운데 바울 특유의 방식대로 표출된, 그의 신학의 가장 심오한 요소 가운데 하나를 접한다.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카리스’는 이렇듯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9:13; 참고. 8:19, 23). 따라서 고린도 교인들은 이 은혜를 계속 전달하고 실제적으로 표현하는 그들의 역할을 하는 가운데, 이 복음의 핵심을 믿고 “복종”(obedience)하고 있음을 입증할 것이다(9:13; 참고. ‘믿음의 순종’, 롬 1:5). 바울이 여기서 암시하는 사실은, 이방인 회심자들이 예루살렘을 위한 성금에 동참함으로써 회의적인 유대인 동료들에게 그들의 믿음의 타당성과 복음에 참여하고 있음을 입증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그는 예루살렘 교회가 감사 기도를 드리는 장면을 상상한다(9:14; 하지만 롬 15:31에서 이 문제에 대한 바울의 염려를 참고하라). 하지만 더 광범위한 시각에서 보면, 그들의 헌금이 복음을 믿고 “복종”한 것이라는 그의 설명에서, 관대함이 기독교 신앙의 필수적 표지라는 그의 확신이 드러난다. 신자들이 관대한 마음으로 나누어 주는 것은, 자신들의 삶을 사로잡고 재정립하는 은혜의 힘에 순복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래서 바울은 이후 모든 인간의 나눔을 위해 채우시고 힘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사를 찬양하며 9장을 마무리한다. 하나님의 은사, 그리고 거기서 시작되는 구원은 결국 말로 담을 수 없을 만큼 심오하다(9:15; 참고. 롬 11:33-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