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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1 : 서남전쟁과 위구르 봉기 - 굽시니스트 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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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이라는 구시대의 잔재를 청산하려는 일본과 옛 정복지를 다시 제국을 유지하려는 청.  근대화의 길목에서 '일국'을 건설하기 위한 두 국가의 승부수에 동아시아가 들썩인다!  - 책 표지 내용 中에서 -  [본격 한중일 세계사 11]은 일본의 서남전쟁과 중국의 위구르 봉기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 이 사건들은 사실 우리에게 너무나 생소한 그들의 역사이다. 지금까지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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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족이라는 구시대의 잔재를 청산하려는 일본과 옛 정복지를 다시 제국을 유지하려는 청.

 근대화의 길목에서 '일국'을 건설하기 위한 두 국가의 승부수에 동아시아가 들썩인다!

 - 책 표지 내용 中에서 -


 [본격 한중일 세계사 11]은 일본의 서남전쟁과 중국의 위구르 봉기에 관하여 다루고 있다. 이 사건들은 사실 우리에게 너무나 생소한 그들의 역사이다. 지금까지 교과서(내가 배웠을 당시의 기준)에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은 내용이기 때문에 정식 역사로서 접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두 사건은 어떻게 보면 우리와는 별개의 국지적인 그들 내부의 사정이라고 볼 수 있지만, 알게 모르게 현재 동아시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1876년 3월, 일본은 '폐도령(廢刀令)'을 발령한다. 이름 그대로 허리에 칼을 차고 다니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이어서 1876년 10월, '질록처분'을 발표하는데 이는 그동안 사족에게 지급되던 녹봉을 채권화한 금록공채로 나눠준다는 것이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등장한 이 두 가지의 조치는 사족을 겨냥한 것이었다. 애초 막부를 몰아내고 메이지 유신을 가능케 한 것은 사쓰마와 조슈를 비롯한 각 번의 사족(사무라이)의 봉기로 인한 것이었다. 이들은 그 목표를 달성하였지만, 1871년에 단행된 '폐번치현'과 신분제도 철폐에 의하여 사족이 설 자리와 특권이 대폭 축소되었다. 그러니 수백만에 달하는 사족의 불만은 커져만 갔고 10권에서는 그러한 불만을 달래기 위하여 '정한론'과 같은 대외 정벌이 주장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폐도령'과 '질록처분'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것이었다. '폐도령'은 사족(사무라이)의 상징인 검을 휴대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아예 사족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었고, '질록처분'은 사족의 경제력을 무너뜨리는 조치였기 때문이다. 오랜기간 지배층으로 군림하고 더구나 막부를 몰아내고 현재 정부의 근간을 형성하는 데 공을 세웠다고 생각한 사족들에게는 이러한 정부의 조치에 대한 분노는 증폭되었으며 급기야 곳곳에서 사족의 반란이 터져나오게 된다.

 

 여기에서 생각해 볼 부분은 개혁으로 인하여 소외되거나 특권을 빼앗기게 된 계층의 반응이다. 조선의 지배 계층은 소위 양반으로 불리우는 사대부였으며 일본은 바로 사무라이였다. 1895년 조선 역시 개혁의 일환으로 '단발령'을 실시한다. 상투를 자르라는 지시인데, 이는 일본의 '폐도령'과 같은 의미이다. 조선에서 상투는 유교질서에 대한 부정으로 간주되어 양반의 반발을 야기하였고, 일본은 칼의 휴대를 금지함으로써 사족이 들고 일어서게 된 것이었다. 다만 조선은 두 차례로 시행된 '단발령'이 반란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지배층인 양반 또는 사대부는 칼이 아닌 으로 상징되는 세력이었고 또한 유교적인 질서에서 반란은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단발령'에 분노한 조선의 민중들이 당시 총리대신인 김홍집을 거리에서 몽둥이로 벌집을 만들어 죽이는 과격한 사건도 있었지만, 그 불만이 정부에 대한 반란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불만이 을미의병을 통한 항일 운동의 동력이 되기도 하였다. (이는 '단발령'이 친일 내각에 의하여 추진되었기에 그 배후 세력을 일본으로 보고 그들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폭발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일본의 반발 세력은 로 상징되는 사족들이었다. 당시 메이지 유신의 내각의 주요 인물들인 기도 다카요시(조슈 출신), 오쿠보 도시미치(사쓰마 출신)도 사족 출신이었기 때문에 충분히 사족들의 반발을 예상하였음에도 그들은 사족의 신분 철폐와 경제적 지원을 끊어버린 것이었다. 조선의 양반과 사대부가 반발은 하되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던 것에 반하여 일본의 사족들은 그들의 상징인 칼을 뽑아 곳곳에서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질록처분'이 발표되자마자 구마모토에서는 사족들이 반란을 일으켜 구마모토 진대 사령관과 현령(도지사)을 살해하였고, 정부 역시(정부의 요인들 역시 사족 출신이니) 무력으로 그들을 제압한다. 이러한 반란은 이후 일본 곳곳에서 발생하는데, 조슈와 사쓰마에서 일어난 두 반란 사건은 각각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에 이 책에서는 꽤 상세히 다루게 된다.

 

 먼저 조슈에서 발생한 '하기의 난'마에바라 잇세이가 주동이 된다. 그는 요시다 쇼인의 '쇼카손주쿠' 출신으로서 인의를 중시하는 인물이었고, 참의로서 메이지 정권의 주요 멤버로 자리하게 된다. 그는 일본의 근대화 정책 중 하나인 징병제에 반대하였으며 이 와중에 벌어진 조슈 기병대 해산이 결정되자 기병대는 소요를 일으켰지만, 같은 조슈 출신인 기도 다카요시는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주모자 93명을 모두 처형한다. 평소 인의를 중시하던 마에바라 잇세이는 그러한 기도의 처사에 항의하는 뜻으로 모든 관직을 사직하고 조슈로 귀향한다. 유신의 거물이자 쇼카손주쿠의 대선배였던 마에바라는 조슈의 지역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결국 그는 규슈의 사족 반란에 동참하여 '순국군'을 조직하여 거병하게 된다. 1876년 이들의 거병은 결국 정부군에 의하여 제압되고 12월 3일 마에바라는 사형을 선고받고 결국 참수당하게 된다. 또한 쇼카손주쿠 학생 다수와 요시다 쇼인 가문 사람들이 반란에 연루된 데 책임을 지고 교장이었던 다마키 분노신이 할복하게 된다.

 

 '하기의 난'의 주동자인 마에바라 잇세이가 쇼카손주쿠 출신이었다는 점과 이 사건으로 인한 쇼카손주쿠의 몰락은 현재 일본의 메이지 유신의 산파 역할을 했던 요시다 쇼인과 그가 세운 쇼카손주쿠의 실체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저자 역시 쇼카손주쿠가 작은 동네 서당이며 요시다 쇼인 역시 거기에서 제자들을 가르친 기간도 얼마 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현재 '쇼카손주쿠'가 메이지 유신의 태동에 크게 기여한 것처럼 비춰지지만 사실 마에바라 잇세이 역시 이곳에서 교육을 받은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고, 이곳 출신이라는 유신의 인물들 역시 어떻게 보면 깊은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쇼카손주쿠는 이후 내내 작은 서당과 같은 규모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하기의 난' 이후에는 아예 폐교하게 된다. 하지만 이토와 야마가타로 대변되는 조슈 출신의 권력자들은 자신들에 대한 미화로 '쇼카손주쿠'를 사적지로 지정하였으며 이후 작은 시골 마을임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일본 우익 정치의 본가라는 위상을 견지하게 된다. 현재 이곳은 일본의 야마구치현에 위치하는데, 현대 일본의 우익 정치가들은 이곳을 성역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의 총리였던 아베 신조 역시 바로 이곳 야마구치현 출신이었고, 2015년에 '쇼카손주쿠'를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등재되면서 더욱 일본 우익의 상징으로 거듭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쇼카손주쿠'를 마치 근대화의 대명사로 긍정적으로 다루는 것에 대해서는 좀 더 분별력을 갖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하기의 난'도 사족의 반란 중 제법 규모가 있었지만, 이 책의 부제인 '서남전쟁'은 사쓰마에서 일어난 사족의 반란이다. 이름에서 이미 '난(亂)'이 아닌 '전쟁'을 쓰고 있는 것에서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데,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사쓰마 지역이 사이고 다카모리를 주축으로 사족들이 굳건히 단결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1873년 10월, 정한론파는 결국 내각에서 축출되며 사이고 다카모리 역시 고향인 사쓰마로 귀향하게 된다. 사이고의 영향력 때문인지 그가 낙향하자 600여 명의 사쓰마 출신 정부 관리와 장교 역시 사직하고 그를 따랐으며, 근위대 사령관과 근위대의 절반 병력 역시 함께 사직하게 된다. 가고시마로 귀향한 사이고는 사쓰마인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면서 사쓰마에서 영향력을 확대한다. 같은 사쓰마 출신인 오쿠보 도시미치는 조슈와 타협하여 사족을 압박한다고 평가를 받는 것에 반하여 사이고는 진정한 애국자로 평가 받았기 때문이다. 사이고 일파는 사쓰마 곳곳에 사학을 설립하여 세력을 확대하였으며 정부에서 파견된 가고시마 현령마저 사이고에 동조하게 된다. 점점 세력을 규합하던 사이고는 사족들의 마지막 희망으로 자리하게 된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는 이러한 사이고 다카모리를 영웅처럼 묘사하고 있는데, 적어도 당시 사쓰마와 사족들에게는 그렇게 비춰졌을 것이다.(반대로 같은 사쓰마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오쿠보 도시미치는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1877년 2월 사이고는 거병을 하며 '서남전쟁'이 시작된다. 이들의 병력은 무려 1만 2천이었으니 그동안 발발한 사족의 반란과는 그 결이 달랐다. 이들은 가고시마에서 출병하여 구마모토를 점령하고 후쿠오카를 공략하려는 계획을 세웠고 적극적인 공세로 임하게 된다. 하지만 구마모토는 끝내 사이고에게 점령되지 않았으며 이로 인하여 사이고는 배후에 구마모토를 두고 후쿠오카에서 내려온 정부군과 결전을 벌이게 된다. 꽤 대등하게 싸웠지만, 결국 압도적인 병력과 화력에 재정비를 마친 정부군에게 사쓰마군은 그대로 밀려나고 1877년 9월 사이고 다카모리는 할복하게 되고 그를 지지하던 많은 사족들이 전사 또는 자결로 그의 뒤를 따르면서 결국 1877년 9월 24일 '서남전쟁'은 종료된다. 이로써 사족들의 반란은 잦아들면서 일본은 좀 더 본격적으로 근대화에 몰두하게 된다. (물론 전쟁이 끝난 이후 1878년 내무경이었던 오쿠보 도시미치나 가가번의 사족들에게 처참한 죽음을 맞이하였으니 사족들의 반란의 완벽한 종식은 좀 더 시간이 걸린 셈이다.) 

 

 '서남전쟁'으로 대변되는 사족들의 반란은 개혁이라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음을 보여준다. 일본은 지배층이 사족이었고, 메이지 유신이라는 개혁을 이룬 것도 사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배제하는 과정에서 치열한 내분이 일어났으니 개혁은 어느 정도 희생을 감수해야 가능함을 잘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폐지하고 몇몇 혁신적인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그것은 진정한 개혁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세도정치 세력과 일정 부분 연대하면서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였고, 그로 인하여 조선의 체제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기 때문이다. 꼭 피를 불러야만 개혁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기득권층과 타협하면서 기존의 테두리 안에서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결코 개혁이 아니다. 혁신과 개혁을 내세우면서 기존 정권을 비판하고 새롭게 정권을 장악하지만 별반 나아지지 않는 현재 우리의 역사를 보면 개혁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볼 픽요가 있다. 그러고보면 과거에서 현재까지 우리의 역사에서 과연 '성공한 개혁'이라 불리울만한 것이 있었던가?

 

 현재 '신장 위구르 자치구'라 불리우는 지역은 청나라 말기 혼란한 상황이었다. 청의 지배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수의 이슬람 민족과 세력들에 의하여 분할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청나라의 좌종당은 이홍장과 '해방새방(海防塞防) 논쟁'을 벌이면서 이 지역에 대한 청나라의 지배권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좌종당은 신강지역을 수복하여 육로로 유입되는 열강의 세력, 특히 러시아의 진출을 막아야 한다는 '새방(塞防)'을 주장하였고, 이홍장은 과거 열강이 강력한 함대로 중국에 진출하였으며 떠오르는 강국인 일본을 막기 위해서라도 해군을 증강해야 한다는 '해방(海防)'을 주장하였던 것이다. 결국 좌종당의 의견이 받아들여지면서 좌종당은 막대한 지원을 통하여 재무장을 할 수 있었으며, 반대로 이홍장은 해군 증강에 차질을 빚게 된다. 아닌게 아니라 이홍장의 입장에서 좌종당에 지원되는 자금이라면 당시 일본 해군의 3배에 해당되는 함선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그의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었고, 이는 훗날 청일전쟁에서 청나라의 북양함대가 일본에게 뼈아픈 패배를 당하는 결과로 나오게 된다. 

 

 어쨌든 좌종당은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1875년부터 1876년까지 신강 원정 준비에만 몰두하게 된다. 당시 신강은 야쿱 벡이라는 인물이 이슬람 세력을 규합하여 정권을 수립한 상태였는데, 그는 국제적인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권모술수로 신간 지역의 이슬람 세력을 차례로 정복한 상황에서 그는 러시아와 영국, 심지어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정권을 인정받는 수완을 발휘하였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이 책에서는 러시아와 영국의 '그레이트 게임'의 내용을 소개하면서 이 지역에 대한 당시의 역사를 보다 폭넓게 살펴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1885년부터 1887년까지 영국은 조선의 거문도를 불법으로 점령하였다. 당시 이 사건은 조선과 영국의 무력 분쟁으로 치닫지 않았고, 점령이라기 보다는 불법 주둔의 형태였으며 당시 영국은 의외로(?) 거문도 주민들에게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였고 의료 혜택도 제공하였으니 섬 주민과 영국 해군 사이에 원만한 관계가 형성되었다. 사실 영국이 거문도를 점유한 이유는 그 타겟이 조선이 아니라 러시아였기 때문이다. 즉, 러시아가 한반도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아예 거문도를 점령하여 경고하고자 하였던 것이었다. 이처럼 19~20세기 초에 영국과 러시아는 전세계 곳곳에서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는데, 중앙아시아의 내륙 지배권을 놓고 다툰 것을 '그레이트 게임'이라 부른다. 

 

 영국은 러시아가 점점 중앙아시아로 진출하는 것을 경계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의 주요 식민지였던 인도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를 통하여 손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었다. 반대로 러시아 역시 인도에서 영국이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로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지역에서 두 국가의 세력 다툼은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아프간이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았던 것도 이들의 완충지대 역할을 하기 때문이었는데, 야쿱 벡의 신강 역시 그러한 위치에 있었다. 영국령 인도에서 신강을 차지하자니 파미르 고원과 카라코람산맥 등 험난한 자연 지형 때문에 공격이 쉽지 않았고, 러시아 역시 청나라와 영국의 눈치 때문에 신강을 간단히 차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야쿱 벡은 이런 상황을 이용하여 영국과 러시아에 등거리 외교를 제안하여 정권을 인정받았으며, 또한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정권을 인정 받으면서 내부의 이슬람 세력 역시 단속할 수 있었다. 하지만 청나라의 좌종당은 야쿱 벡의 정권을 인정할 수 없었다. 원래 그곳은 청나라의 지배를 받던 지역이었으며,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이홍장과 논쟁까지 벌이면서 추진한 원정이었기에 그로서는 꼭 신강 지역을 차지해야 했다. 

 

 야쿱 벡은 청의 좌종당에 맞서 싸우면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청나라 정부에 화친을 요청한다. 즉, 청의 한 지방으로 복속하겠다는 것이었다. 청나라 역시 그러한 요청에 대하여 호의적이었지만, 좌종당은 중간에서 이러한 시도를 차단하며 무력으로 진압하게 된다. 효율이라는 측면에서 따진다면 야쿱 벡의 제안을 수용하는 것이 최선이었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좌종당은 개인적인 야심 때문에 결국 무력으로 신강을 수복하게 된 것이다. 좌종당의 이러한 정벌은 신강 지역을 수복하면서 동시에 위구르 세력을 복속시켰지만, 문제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는 점이다. 애초 야쿱 벡 정권을 인정해 주었다면 러시아와 영국이 그 지역을 공략하지 않기로 한 이상 그곳으로 러시아가 청나라로 진출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비용을 이홍장의 주장대로 해군에 투자했다면 청일전쟁에서 북양함대가 그리 간단히 전멸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청일전쟁 당시 북양함대에는 '정원호'와 '진원호'라는 거함이 있었고, 일본은 끝내 이들 전함을 격침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청나라는 예산 문제로 인하여 이들 두 거함에 재대로 된 탄약조차 탑재하지 못하여 해전에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좌종당의 선택이 오히려 중국의 입장에서는 유리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이 지역에 매장된 엄청난 양의 자원은 현재 중국이 이곳의 이슬람 세력에 대한 강력한 탄압이 이루어질 정도로 눈독을 들일만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이 추진하는 '일대일로' 사업에 있어서 꼭 필요한 지역이며 최근 미군이 철수한 아프간과도 맞닿아 있는 곳이니 좌종당이 이런 점까지 감안하였다면 혜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로 인한 여파로 인하여 이후 중국이 일본과 치룬 전쟁에서 무수한 희생을 감내해야 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여전히 논란의 여지는 있는 셈이다. 

 

 이처럼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의 '서남전쟁'과 중국의 '위구르 봉기'는 그 시대는 물론 현재의 시점에서 살펴보아도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낯선 역사이기에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 특유의 만화로 이해하기 쉽게 다루면서 동시에 저자의 예리한 해석이 곁들어져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우리가 배우거나 접하는 역사에서는 쉽게 살펴볼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에 이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분명 유요하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g*******7 2021.08.22. 신고 공감 17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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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11. 일본과 청, 두 나라가 혼란에 마침표를 찍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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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간에 이어, 일본의 '명치유신'이다. 일왕 명치(메이지)가 신정부의 수장이라고는 하나, 직접 통치하는 권력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입헌군주국'이라고 하기에도 좀 뭣하지만, 암튼, 일왕은 '명예회장'쯤 되고, 수상은 '바지사장'쯤 되지만, 실권은 바지사장에게 있는...따지고 보면, 과거 막부시절에도 일왕과 쇼군의 관계와 비슷한..암튼, 그렇다.     어쨌든, 명치유신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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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시간에 이어, 일본의 '명치유신'이다. 일왕 명치(메이지)가 신정부의 수장이라고는 하나, 직접 통치하는 권력자는 아니다. 그렇다고 '입헌군주국'이라고 하기에도 좀 뭣하지만, 암튼, 일왕은 '명예회장'쯤 되고, 수상은 '바지사장'쯤 되지만, 실권은 바지사장에게 있는...따지고 보면, 과거 막부시절에도 일왕과 쇼군의 관계와 비슷한..암튼, 그렇다.

 

  어쨌든, 명치유신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신정부'가 이끄는 신일본은 하루가 멀다하고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여기저기에서 불만이 속출하고 들불처럼 저항이 일어났는데, 그 마지막 저항인 '서남전쟁'이 일어난 원인을 볼작시면, '불평사족(신정부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하급 사무라이들)' 때문이었다. 신정부가 일본의 전통적인 '신분제'를 파기했지만, 여전히 '사무라이 계급'에게는 봉작을 하사하는 등 '과거신분'에 따른 차별은 여전했다. 그런데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놀고 먹기만 하는 '사무라이 계급'에게 지급한 봉작이 문제가 되었다. 신정부가 들어서면서 '개혁'을 실시하고 있는데, '들어갈 돈'이 얼마나 많겠느냔 말이다. 그런데도 '화족'이니 '공경귀족'이니 떠세를 부리면서 '정부의 세금'을 호로록 퍼드시고 계시니, 나라의 곳간이 텅텅 비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정부'는 사무라이에게 지급하던 '봉작'을 명예퇴직금 지급하듯이 '일정 금액'을 퉁쳐서 일시적으로 지급하고, 더는 주지 않겠다고 일방적인 선언을 해버리니 문제가 점점 커져버리게 된 셈이다. 그나마 높으신 사무라이들은 그 액수라도 많아서 몇 년간 버틸 여력이라도 있었겠지만, 애초에 '하급 사무라이들'에게는 지급조차 하지 않았으니, 사무라이 체면에 '농사'를 지을 수가 있나, '장사'를 할 수가 있나..그저 쫄쫄 굶어죽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들의 불만이 점점 커져만 가고 불평은 날로 늘어만 가니, 이것이 바로 '불평사족의 난'이다.

 

  이런 '불평사족들'의 근거지는 명치유신의 주역이었던 조슈와 사쓰마였다. 그밖에도 여러 곳에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고위 유신지사들의 고향이기도 했던 '조슈'와 '사쓰마'가 반란을 일으키니 유신지사들 체면도 말이 아니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신정부군은 저항세력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제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왜냐면 '반란군'의 주역들이 중앙정계에서 '권력다툼'을 벌어다 여의치 않자 '고향'으로 내려간 유명인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겉으로 드러난 명분은 '불평사족의 난'이었지만, 내부로는 신정부의 '유신지사들끼리의 권력다툼의 연장선'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그렇게 조슈지사들이 쳐발리고, 이제 사쓰마지사들이 똘똘 뭉쳐 '서남전쟁'을 일으켰다.

 

  어차피 결과는 '신정부군의 압승'이다. 하지만 '서남전쟁'이 중요하게 다뤄지는 까닭은 전쟁의 양상이 <라스트 사무라이>와 판박이처럼 똑같았기에 그렇다. 애초에 유신지사들은 '존왕양이'를 외치며 일왕에게 충성을 바치며 서양세력을 몰아내자는 명분을 내세워 '막부의 목숨줄'을 끊어놓았다. 막부의 정체가 바로 '사무라이 정신'이었는데 말이다. 그런 유신지사들이 스스로 '서양화'한 뒤에, 권력다툼을 벌였고, 권력에서 밀려난 이들은 낙향을 해서 '새로운 사무라이 정신'을 드높였던 것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아니 할 수 없다. 그래서 신정부군은 '서양의 신식무기와 전술'을 도입해 불평사족들을 발라버리고, 불평사족들은 상대적으로 낙후된 무기체제로 어쩔 수 없이 '발도(칼을 뽑아 듦)대 편제'를 구성해 전쟁을 치루니, 애초에 전쟁의 승패는 결정이 난 셈이었다.

 

  하지만 저항은 끝없이 이어지고 명치유신을 이끌던 유신지사들은 하나둘 죽거나 죽임을 당했고, 그 뒤에 바통을 이어받은 사람이 바로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였던 것이다. 천한 하급 사무라이 계급이었으나, '조슈 파이브'의 일원으로 일찍이 해외유학으로 외국인 친구도 많았고, 능수능란한 처세술과 달달한 달변으로 주위에 적보다는 친구가 더 많으며, 여자친구(?)는 더 많은 난봉꾼...쿨럭쿨럭...어쨌든, 이등박문의 등장으로 '개혁 드라이브'는 강경 이미지보다 부드러운 유화 제스처를 취하며 능구렁이 담 넘어가듯 진행되어 간다.

 

  한편, 청나라의 서쪽 변방인 '신장 위그르 지역'은 좌종당의 평정으로 안정(?)을 얻었는데, 평화(?)를 되찾기까지 '중앙아시아'를 두고 펼쳐진 영국과 러시아 간의 '더 그레이트 게임'이 바로 이곳을 배경으로 펼쳐졌다는 놀라운 사실을 접할 수 있다. 그레이트 게임이란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기 위해 '영국의 방해작전'을 총괄해서 일컫는 말이다. 러시아는 팽창정책을 펼치며 동쪽으로 국경을 광활하게 넓혀가지만, 정작 '부동항'을 얻지 못해 강대국의 필수요건인 '해군력'을 보유할 수 없어 곤란을 겪기 일쑤였다. 그렇게해서 '2차 아편전쟁'의 틈을 타서 연해주 지역까지 꽁으로 먹게 되지만, 블라디보스토크(해삼위)도 역시 일년의 3/4는 얼어붙어 있었기에, 러시아는 호시탐탐 '남하정책'을 펼치게 된다. 그러다 우연찮게 흑해연안의 '동그루지아 땅'을 차지하게 되면서 멀지 않은 곳에 '인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농담처럼 러시아가 인도를 차지하면 '부동항'을 어럽지 않게 얻을 수 있다는 꺼낸 말이 실제로 벌어지게 되면서 '더 그레이트 게임'의 연장전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러시아는 '중앙아시아'로 새롭게 눈을 돌린다.

 

  또한, 당시 중앙아시아는 여러 민족이 섞여 살면서 아웅다웅하고 있었다. 히말라야 산맥을 정점으로 티벳고원과 파미르고원이 연이어 있고, 그 사이에 타클라마칸 사막이 펼쳐진 황량한 '중앙아시아'는 의외로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고, 고원지대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물이 강을 이루고 군데군데 오아시스가 조성되었기에 '유목민' 일찌감치 터를 잡고 살았으며, 소박하지만 농사를 지어 먹고 살만한 지역이었다. 이런 '중앙아시아'에 카자흐스탄과 우즈벡키스탄, 아프가니스탄, 키르기스탄 민족들이 살고 있었는데, '동 키르기스탄'이 오늘날의 '신장 위그르 지역'에 포함되어 있어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곳이 중요한 까닭은 '이슬람 종파의 종교분쟁'과 '중국의 민족차별과 인권 유린'도 문제가 있기 때문이지만, 오늘날에는 이 지역에 '전세계 면화 생산량 1위', '중국 전체의 석유, 가스 매장량의 1/3', '금을 비롯해 수많은 희토류가 매장된 곳', 그리고 인도와의 국경분쟁 등등 중국이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보물지도'가 가득 쌓이고 묻힌 지역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중국의 미래를 보장할 천혜의 자원과 보물이 가득한 '중국의 목숨줄'이란 말이다. 그러니 중국이 순순히 이 지역을 내어줄 까닭은 절대로 없다. 이런 '중앙아시아'의 정황을 일찌감치 알았기에 중국이 탐을 낸 것은 아니고, 이 지역이 안정되어야 중국이 평안할 수 있었기에 얼마간 무리가 있었다고 해도 끝내 놓치지 않고 차지하게 된 셈이다.

 

  그런데 '중앙아시아 민족'은 왜 강대국들의 등살을 견디지 못하고 이리저리 흔들리기만 했던 것일까? 원래 이 지역은 '비단길(실크로드)'에서도 살짝 벗어난 곳이었고, 황량한 초원만 펼쳐져 있었기에 '유목민들의 터전'에 불과했다. 과거의 강대국들도 이 지역을 차지해봤자 별다른 소득이 없었기에 건드리지 않고 평화롭게 지냈었는데, 일찍이 '이슬람 문명'이 전파되면서 '계파간 종교갈등'이 심심찮게 일어나던 것이 '민족 갈등'으로 번지며, 화합보다는 분쟁이 더 일상이었던 지역이었다. 그렇게 '내부적 갈등'으로 여러 왕조가 일어서고 들어섰으며 망했다가 다시 뭉치는 등 복잡한 나날을 보냈다가 청왕조가 힘을 길러 이슬람 세력을 밀어내고 차지한 뒤로는 '청나라 땅'으로 오랫동안 자리잡혔다.

 

  그 사이에 '중국 한족'도 이슬람화하여 무슬림이 되는 등 지리적으로 꽤나 멀었던 곳이었으며, 시간적으로도 외딴 곳이 되었던 셈이다. 그러다 억세게 운이 좋은 '미소년 무용수' 출신의 야쿱 벡이 등장하면서 '신장 지역에 새로운 이슬람 왕조'를 만들었다. 마침맞게 러시아의 남하정책이 펼쳐지면서 카자흐스탄과 우즈벡키스탄, 키르기스탄 지역을 차지하게 되었고, 이를 경계하던 영국이 개입하면서 '야쿱 벡 왕조'는 두 강대국의 완충지역으로 자리잡으며 안정을 누렸다. 여기에 쐐기를 박기 위해 '야쿱 벡'은 이슬람의 원조격인 '오스만제국'에게서도 인정을 받으며, 안정적으로 왕국을 이어가려 했지만, 청왕조가 태평천국의 난을 얼추 정리하고, 염군의 난과 둥간 혁명까지 진압하고 나자 서서히 '신장 위그르 지역'을 되찾기 위해 군대를 보내고 있었다.

 

  청나라의 등장에 '더 그레이트 게임'은 다른 양상으로 펼쳐지게 된다. 영국과 러시아는 굳이 분쟁을 일으켜 어느 한쪽으로 힘의 균형이 넘어가는 것을 꺼리며 '야쿱 벡 정권'을 인정하고 안정을 꾀하는 한편, 청나라 조정을 압박해서 군대의 진군을 막아보려 했으나, 청나라의 군대는 멈추지 않고 진격해나가기만 한다. 눈에 보이는 승리를 앞에 두고 멈추는 바보는 없을 것이라는 속셈이었던 것일까? 어쨌든, '야쿱 벡'은 청나라의 공격에도 별다른 반격을 하지 않으며 끝까지 '강대국들의 원조'를 기다리며, 청왕조에도 공격을 멈춰줄 것을 거듭 요청하지만, 이미 시작된 전쟁을 되돌리기엔 너무나도 빈약한 평화의 외침이었다. 끝내 청나라 군대의 공격을 눈앞에 두고서 '내분'에 빠진 야쿱 벡 정권은 그대로 청나라에 흡수되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신장 위그르 지역'은 이렇게 중국영토가 되었다. 분열에 분열을 거듭한 '이 지역'에 과연 평화로운 독립의 기회가 다시 찾아올 것인가?

 

  일본도, 청나라도 모두 큰 혼란을 겪고 난 뒤에 '마침표'를 찍으려 하는데, 과연 잘 찍혔을까?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z******8 2022.08.25.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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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이른 나이에 쓰러져간 수많은 희생이 안타깝다.
"너무 이른 나이에 쓰러져간 수많은 희생이 안타깝다." 내용보기
며칠 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함으로써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집권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아프가니스탄은 외세의 침입과 내전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한국전쟁이 끝나는 1953년 이후, 남북한과 중일 사이에 국지적 충돌은 간혹 발생하였지만, 전면전은 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지내고 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이 발생한 기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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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고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점령함으로써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집권이 시작되었다. 그동안 아프가니스탄은 외세의 침입과 내전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하였다. 한국전쟁이 끝나는 1953년 이후, 남북한과 중일 사이에 국지적 충돌은 간혹 발생하였지만, 전면전은 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지내고 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이 발생한 기간이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이렇듯 전쟁은 우리 가까이에 있지만, 국가 지도부와 국민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전쟁을 피할 수도 있다.

가끔 나는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의 기본 조건일까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그 조건에 맞게 태어날 수는 없지만, 그 조건에 맞는 곳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은 아주 큰 행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던진 질문에 내가 찾은 조건은 전쟁이 없는 시기와 장소에 태어나 살아가는 것이다.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을 바라보면, 그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진다. (아프가니스탄에 빨리 평화가 오기를 바란다.)

이번에 나온 11권도 일본과 중국의 내전 이야기이다. 무엇을 위해 죽이고 죽었는지 아이러니하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안정적으로 국가가 운영되면서 근대화에 성공했다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번 11권을 통해서 그렇지 않고, 참 많은 피를 흘렸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중국 또한 오늘날 신장위그르자치 지역이 어떤 역사적 궤적을 밟아 온 것인지를 어렴풋하게나마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11권의 이야기 전개 방식도 역시 실망시키지 않고, 저자의 높은 흡인력을 보여 주었다. 피를 그만 흘렸으면 좋은데, 다음 12권은 임오군란을 다룬다고 하니... 또 피를 볼 것 같다. 너무 이른 나이에 쓰러져간 수많은 희생이 안타깝다.

d*******a 2021.08.1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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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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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시니스트의 한중일 세계사는 엑셀을 제대로 밣고 있습니다. 11권은 일본의 서남 전쟁과 중국의 위구르 봉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일본의 서남 전쟁은 세이난 전쟁이라고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아주 미화가 잘되서 알려졌지요. 우리의 굽본좌는 그런 화장칠을 와르르 벗겨내고 실상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메이지 유신을 이끌었던 3걸 중 사이고의 퇴장과 사족의 몰락이 서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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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시니스트의 한중일 세계사는 엑셀을 제대로 밣고 있습니다.

11권은 일본의 서남 전쟁과 중국의 위구르 봉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일본의 서남 전쟁은 세이난 전쟁이라고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아주 미화가 잘되서 알려졌지요.

우리의 굽본좌는 그런 화장칠을 와르르 벗겨내고 실상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메이지 유신을 이끌었던 3걸 중 사이고의 퇴장과 사족의 몰락이 서남 전쟁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또한 혁명의 끝이기도 했지요.

일본은 이 전쟁을 끝으로 내전을 끝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구르 봉기를 본격적으로 다룬 점은 좀 의외였습니다.

물론 요즘 상화에서 위구르 문제를 다뤄야 겠지만 당시 상황에서 한중일을 중점으로 설명하는데

위구르 문제까지 본격적으로 다룰 필요가 있나 의문이 들었는데...

 

위구르 문제를 다루면서 영국과 러시아의 그레이트 게임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이해해야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를 이해할수 있습니다.

 

최근 청나라말 좌종당이 신강성을 다시 수복한 것에 대해서 높게 평가하고 혜안이 있다고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굽본좌는 여기에 의문을 제기하고 청조의 정책과 좌종당의 원정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카슈카르의 지배자가 된 야툽 벡은 제대로된 통치자가 아니었으며

위구르인들과 민족적으로 달랐고 통치는 가혹했기에 나라가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가 가질수 있는 유일한 장점은 러시와와 영국의 사이에 끼여서 중립지대화를 추구했습니다.

또한 청조에 대해서도 신하를 자처하면서 복속하는 외교적 정책도 선택하려 들었습니다.

그러나 좌종당은 기어이 카슈가르 재정복을 해냅니다.

 

이는 외세의 침투를 막고 분열을 봉합할 업적이라고 여겼을지 모르지만

좌종당은 이 원정에 어마어마한 예산을 날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재정복한 지역은 그 예산을 메울 부유한 지역이 아니었으며 통치를 지속하기위해서는 예산을 퍼다 부어야 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 예산이 일본 해군보다 3배 정도 만들 정도였다니 이홍장을 견제하기 위해서라지만 어머어마한 자원을 날려버린 셈입니다.

 

당시 청조는 늦어진 산업화를 빠른 속도로 추구하면서 해안방어 전력을 빨리 키웠어야 할 시점입니다.

우리는 그에 소홀한 청조가 청일전쟁에서 패배하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지요.

이 패배는 청조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이후 외세 침략은 더욱 거세집니다.

 

차라리 야툽벡을 형식상으로 복속시키면서 러시아와 영국의 완충지대로 사용하면서 시간을 끌면서

산업을 키우고 청군을 개혁하고 해군력을 더 키웠어야 했습니다.

결국 여기서 근대로 가는 길에서 일본이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서서히 윤곽이 더 드러나고 있네요.

 

흥미로운 내용이 너무 잘 소개하고 있어서 권해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9***d 2021.08.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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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역사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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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1권에서는 일본 근대에서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지만 한국에서는 몇몇 근대 주요 일본인이 얽혔다는 것과 그 일본인의 이름 정도만 주로 언급되는 사건인 서남전쟁을 다룹니다. 서남전쟁이 일본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주요 인물이 어떤 행보를 보였으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적절한 패러디와 함께 만화 형식으로 재이있게 구성했습니다. 위구르 전쟁도 상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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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1권에서는 일본 근대에서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지만 한국에서는 몇몇 근대 주요 일본인이 얽혔다는 것과 그 일본인의 이름 정도만 주로 언급되는 사건인 서남전쟁을 다룹니다. 서남전쟁이 일본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주요 인물이 어떤 행보를 보였으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등을 적절한 패러디와 함께 만화 형식으로 재이있게 구성했습니다. 위구르 전쟁도 상세하게 다룹니다
h*****a 2022.05.2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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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입력서남 전쟁과 위구르 정벌을 이 책보다 더 일목요연하게 보여줄 수 있을까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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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1권은 13권이 나올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정주행할까 아니면 참지 말고 지금 읽어 버릴까 갈등하다가, 참는건 병이 될 수 있다 싶어 읽어버렸습니다. 물론 12권도 기다리고 있지요. 11권에서도 굽시니스트 님은 정말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아니 기대를 저버리긴 커녕, 한국사를 포함한 동아시아 역사가 이렇게 세계사의 맥락에서 입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책은 아마 최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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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1권은 13권이 나올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정주행할까 아니면 참지 말고 지금 읽어 버릴까 갈등하다가, 참는건 병이 될 수 있다 싶어 읽어버렸습니다. 물론 12권도 기다리고 있지요.

11권에서도 굽시니스트 님은 정말 기대를 저버리지 않네요. 아니 기대를 저버리긴 커녕, 한국사를 포함한 동아시아 역사가 이렇게 세계사의 맥락에서 입체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 책은 아마 최초가 아닌가 합니다.

무엇보다 감탄하게 만드는건 정말 두꺼운 지역역사 책에서나 엿볼 수 있는 어떤 영역의 무수한 세력들이 어떤 입장에서 어떤 행보를 취하고 서로 어떻게 상호작용하면서 재편되고 명멸하는지가 명쾌하게 서술되어 있다는 점인데요, 이건 위구르를 둘러싼 열강의 이해관계 뿐만아니라, 서남전쟁에서 각 중요인물들의 행보의 변화와 이합집산을 명료하고 알기쉽게 보여주시는 면에서도 드러납니다.

물론 병맛 유머가 간간이 등장하긴 하지만, 이 유머는 분위기를 헤치지 않으면서 오히려 암기에 도움이 되는 면이 있어 작가님의 재치가 더 부각되네요.

그리고 1권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잘 쓴 역사책을 읽을 때의 어떤 충만감이나 쾌감은 저자가 그 시대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서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해 줄 때인데요, 바로 이 점에서 굽시니스트 님은 사소한 것 하나도 해설없이 맥락없이 제시하지 않고 큰 틀과 작은 틀 모두에서 명료한 일관된 맥락과 배경과 원인을 제시 해 주셔서 너무 만족스럽습니다.

형식만 만화일 뿐 소장하면서 두고두고 몇 번씩 읽어볼 가치가 있는 정말 잘 쓰여진 걸작입니다.

 
YES마니아 : 로얄 c******e 2022.03.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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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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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만화로 유명한 굽시니스트 작가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11권이 나왔습니다. 이 시리즈 참 재미있는데 11권인데도 완결까지 절반도 안온거 같은데요. 언제까지 열심히 연재하실지 궁금합니다. 이번에는 서남전쟁과 위구르봉기인데요.. 중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네요. 위구르같은 나라가 중국으로부터 언제 독립할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 역사를 알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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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만화로 유명한 굽시니스트 작가의 본격 한중일 세계사 11권이 나왔습니다. 이 시리즈 참 재미있는데 11권인데도 완결까지 절반도 안온거 같은데요. 언제까지 열심히 연재하실지 궁금합니다. 이번에는 서남전쟁과 위구르봉기인데요.. 중국의 역사를 다루고 있네요. 위구르같은 나라가 중국으로부터 언제 독립할지 잘 모르겠지만 당시 역사를 알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m******5 2021.10.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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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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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한권... 한권씩 모으다 보니 어느덧 11권째까지 출간된것이다. 10권 출간된 이후 반환점을 찍고 다시 1권이 나와서 11권이 나온것이다. 1910년까지 다룬다하니 20권까지 이제 9권이 남은셈이다. 개인적으로 20권도 적당하지만 30권은 되야 책의 진행이 더 매끄럽지 않나 생각이 든다. 아니면 30권으로 1945년까지 다뤘다면 어땟을까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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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을 한권... 한권씩 모으다 보니 어느덧 11권째까지 출간된것이다. 10권 출간된 이후 반환점을 찍고 다시 1권이 나와서 11권이 나온것이다. 1910년까지 다룬다하니 20권까지 이제 9권이 남은셈이다. 개인적으로 20권도 적당하지만 30권은 되야 책의 진행이 더 매끄럽지 않나 생각이 든다. 아니면 30권으로 1945년까지 다뤘다면 어땟을까 생각이..



h********9 2021.09.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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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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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에서는 서남전쟁과 위구르 봉기라는 부제처럼 일본의 서남전쟁과 중국의 위구르 봉기를 주요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서남전쟁이라는 내전을 통해 불만세력을 일소한 일본은 본격적으로 개혁 및 해외진출을 시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고 그에 비해 청나라는 위구르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고 해군력 증진에 투자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위구르 문제에 개입하느라 그 타이밍을 놓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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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권에서는 서남전쟁과 위구르 봉기라는 부제처럼 일본의 서남전쟁과 중국의 위구르 봉기를 주요 주제로 다루고 있습니다. 서남전쟁이라는 내전을 통해 불만세력을 일소한 일본은 본격적으로 개혁 및 해외진출을 시도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고 그에 비해 청나라는 위구르 문제를 평화롭게 해결하고 해군력 증진에 투자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위구르 문제에 개입하느라 그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모습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YES마니아 : 골드 h******7 2021.09.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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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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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전쟁과 위구르 봉기편 점점 흥미를 더해가고 있어 몰입감에 빠져들게 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의 역사를 함께 다루어 관심과 이해에 있어 쉽고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그 어떤 역사서보다 19세기 이후 삼국의 역사를 비교적 쉽고 자세히 다루고 있어 역사에 관심이 있는 저로써는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약간 아쉬운 점은 발행일이 어떤 경우엔 너무 더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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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남전쟁과 위구르 봉기편

점점 흥미를 더해가고 있어 몰입감에 빠져들게 합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의 역사를 함께 다루어 관심과 이해에

있어 쉽고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그 어떤 역사서보다 19세기 이후 삼국의

역사를 비교적 쉽고 자세히 다루고 있어 역사에 관심이 있는 저로써는 많은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약간 아쉬운 점은 발행일이 어떤 경우엔 너무 더뎌 기다려

지는 점이 있습니다.

 

y***j 2021.08.3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