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두 8편의 단편이 실려 있습니다.
<나를 이겨라>에는 작가 성지혜님과 고 박경리 선생 사이의 여러 인연, 또 유명한 문인들의 사연이 나옵니다. 소설의 형식이지만 회고담이나 마찬가지인 듯 보입니다. 박경리 선생뿐 아니라 <등신불>, <무녀도>, <화랑의 후예> 등 훨씬 앞선 시기에 걸작을 남긴 거장 김동리 선생도 등장하며, 거제와 통영이 낳은 위대한 시인인 청마 유치환 선생이라든가 이영도 선생, 교과서에도 작품이 여럿 실린 시조시인 이호우 선생 등 전설적인 문학가들이 두루 언급됩니다(실명 언급은 없으나 "사위분"인 김지하 시인도 아주 잠시 출현). 바로 다음에 나오는 작품에 쓰이기도 한 단어(동음이의어)인데, 유치환 선생은 특히 시 <깃발>에서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이란 명 구절로 사랑 받은 시인이기도 합니다.
이영도 선생에 대해서는 "섬섬옥수가 아닌 손"이란 묘사가 특히 기억에 남네요. 작가님은 ㅈ여고 출신이라고 나오며 독자인 저도 개인적으로 진주 출신 지인들이 꽤 되는데(고교 은사님 포함) 하나같이 자부심이 높고 명문교를 나온 엘리트들이 많습니다. 이처럼 고장 자체가 교육을 중시하고 문장을 숭상하는 분위기가 뿌리 깊다 보니 그런 결과가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진주, 통영, 고성 일대가 다 그러하죠.
작가님이 언니처럼 따른다는 김지연 작가님도 원래 이름이 "명자"이셨으며 성 작가님도 본명인 "명숙(밝을 명이 아니라 숨 명 자라고 나옵니다)" 대신 김시종 선생에게 새 이름 "효장"을 받습니다. 이처럼 젊은 시절에 거장에게 손수 필명을 지어 받은 체험이 정말 큰 영광이었을 듯합니다. 박경리 선생의 <시장과 전장> 창작을 둘러싼 비화도 소개되는데... 이 <나를 이겨라>는 30쪽 남짓 분량입니다만 사연과 인물들이 묵직해서인지 읽으면서 아주 긴 장편처럼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저희 모친이 통영여고 졸업자라서 더 관심 깊게 읽었습니다.
<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는 이 책의 표제작입니다. 냄새에 관해 개인적으로 특별한 사연이 있는 화자 새미와 그 딸 토리, 또 남편분 항조, 돈 많은 70대 과부이신 "마님", 이분이 키우는 개 린드버그, 돌아가신 남편 루이 등이 등장합니다. 터키에는 터키석이 없고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으며 새미가 모으는 향수병에는 정작 향수가 없습니다. 왜 컨텐트인 향수는 간혹 버리기까지 하며 병만 모은 컬렉션인지는 작품만 읽어도 어느 정도 눈치를 챌 수 있으며 최대한 돌려 말하는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주제에 대한 감도 잡힙니다. 수집가들이 마음에 드는 아이템을 발견했으나 현금이 부족할 때 자신의 다른 수집품과 교환하는 모습도 인상 깊었습니다. 향수는 香水이며 鄕愁가 아니지만.
오동은 왜 그저 오동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느티는 항상 뒤에 "나무"가 붙어야 하는가. 한남동 회장님 댁에서 정원사를 지낸 기현은 미조 앞에서 자신의 어머니를 내내 "나를 낳은... 생모"라 지칭하며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대화의 말투라든가 인생에 대한 씁쓸한 관조 어린 그 내용만 보면 인생의 황혼을 벌써 지난 두 분이 나누는 말 같습니다만 사실 두 사람 다 아직 젊다면 젊은 나이입니다. 미조는 자신이 근무하는 유치원에 일일 강사로 기현을 초빙합니다. 원아들에게 들려 줄 강연치고는 좀 내용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듭니다만. 여튼 앞 작품의 새미처럼 미조도 크리스천인지 예루살렘 등 성지 순례 이야기가 또 등장합니다. 맨 앞 작품 <나를 이겨라>에도 민족주의 관련 언급이 자주 나왔는데 여기서도 가상의 원로 목사님 설교를 통해 단 지파와 우리 민족 사이의 연관이 짧게 코멘트됩니다. 두 사람 다 생계가 막막할 뻔한 상황에서 부유한 인척 등의 연줄로 직업을 마련한 사연도 비슷합니다. 서신 교류 말고 몸소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어디서 별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을지요. 김광섭 시인 作 <저녁에>의 한 구절처럼.
<청백리의 숨결>에는 오리 이원익, 미수 허목, 그리고 서애 류성룡 세 분 재상의 생애가 화자 류담을 통해 이야기됩니다. 잘 알려진 예송 이야기도 있고, 우암한테 미수가 비상을 처방해 준 이야기 등등 해서 마치 예전 벽초나 월탄의 작품에 구수한 옛 야사가 실린 작품을 읽는 느낌인데... 안현철 박사, 장규호 화백 등 가상의 인물들이 가끔 한 마디씩 거드는 속에 작가의 진짜 의도(?)가 숨어 있는 듯도 하네요. 이처럼 뛰어난 지성인들, 유능한 관료들이 조심스럽게 그 초석을 놓은 나라였기에 조선이 가난할망정 그 시대 다른 나라들을 고려할 때 비교적 태평성대를 누린 건데... 작품 마무리는 "현재 대한민국이 누리는 풍요 예찬"으로까지 이어집니다.
<미우새의 날개는 어디로 갔을까>. 레게머리... 1990년대에 크게 유행한 스타일인데 dreadlock(p146)이라고도 하죠. 그런데 이야기는 성경 속의 나실인(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모릅니다)까지 미쳐 삼손과 들릴라(데릴라)까지 나옵니다. 지혜가 두개골에 있다, 머리털은 그 알곡이다... 삼손이라고 하면 그저 힘만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개인이나 겨레나 그 생존의 비결은 지혜에 있습니다. 다리가 불편한 분(문맥상 심인성 같습니다만), 지성이 약간 미발달한 청소년... 그런데도 분위기는 어둡지 않고 오히려 럭셔리에 가까운 건 저만의 착각인지. 이 작품도 <향수병...>에서처럼 방대한 인문 지식이 수놓아졌습니다.
이 책에 실린 다른 작품들도 그렇지만 맨 앞 작품만 빼고 외국인들이 꼭 얼굴을 내밉니다. 인물들은 외국을 자주 다니거나 외국인과 깊이 교류하거나 해서 글로벌한 감성(마인드까지는 모르겠지만)을 가진 이들입니다. <그 남자가 마냥 귀여워>에서는 한국형 미남, 외국에서 두루 통할 아름다운 얼굴에 대한 품평과 논의 끝에 혼혈아 이슈, 혈육에 대한 보편적인 그리움과 애정 문제까지 차분히 착륙합니다. 다른 작가 같으면 굉장히 심각하게, 그러나 뻔하게 발전할(퇴보할?) 주제인데도 말입니다.
<결을 향(向)한 단상>에서는 신화인지 기독교 성경인지 아리송한 이야기가 많은 결, 이런 결 저런 결 들을 건드리며 몽환적으로 펼쳐집니다. 번식은 사실 야만적이고 무섭지만 생명에게는 유일한 진리이죠.
"신의 손"은 보통 귀신 같이 골을 잘 잡아내는 축구 골키퍼를 칭송하는 단어인데(반대로 뻔뻔스러운 반칙에 대한 비꼼이거나), 여기서는 전혀 다른 뜻으로 쓰입니다. 에피그래프에 이사야서 49장 일부가 인용되는데... 이 작품은 이 책에 실린 중 저한테는 가장 서사가 뚜렷이 다가왔으며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나 싶었습니다.
문학수첩 이덕화 주간이 쓴 권말의 작품해설을 보면 "소설은 어떤 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인과 관계에 의한 긴장을 유발하는 서사(p265)"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와 비슷하게 "희곡은 의지와 의지 사이 갈등의 집약"이란 정의도 있죠. 그 갈등이라든가 긴장은 그리스 고전에서처럼 영웅들, 혹은 신들 사이에 벌어지는 거창한 것만은 아닙니다. 한 개인의 내면에서 벌어지는 작은 망설임이라든가, 기분 상함이라든가, 괜한 젠체함이라든가, 무료하기 짝이 없어서 나 혹은 내 지인의 잔잔한 호수 같은 마음에 던진 작은 돌 하나가 빚은 소소한 파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게 다 갈등이고 긴장인데, 때로는 이것이 거대한 역사와 사건과 작은 접점을 빚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작은 개인의 새초롬한 내면으로 별 파문 없이 복귀했다 해도 얼마든지 명작 소설의 멋진 성취가 될 수 있겠죠.
*출판사에서 제공된 도서를 받고 주관적으로 작성된 서평입니다. |
|
|
|
작가는 글을 쓰기로 작정한 계기가 있다.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작가로서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여고시절 박경리 작가를 만난 순간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저자의 도발은 즉시 이 책을 읽고 싶게 했다. 존경하는 작가를 만난 순간, 미래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강단성은 그동안 얼마나 소설가의 꿈이 간절했는지 보여준다. 글 한 번 써보자고 대들며 닮고 싶은 작가가 있다는 점은 큰 자산이다. 글 길을 잃고 우왕좌왕할 때 등대가 되어준다. 저자는 박경리라는 거목을 등대 삼아 소설을 빚었다. 소설 속의 외침은 그동안 삶의 역경 속에서도 신앙과 글쟁이로서의 굳은 다짐을 주춧돌 삼아 글 쓰는 삶을 이어가리라 고백한다. 때론 느리게, 때론 몰아치는 숨으로 이야기를 잇는 문체가 무척 신선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느낌을 준 소설집이다.
글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접하는 게 제목이다. 제목의 의미를 유추해보며 글의 행간을 짐작한다. 그러면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슬그머니 글 속에 들어간다. 하지만 “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라는 제목은 한참 동안 생각하게 했다. 향수 없는 향수병을 어디에 쓸까. 향수병은 있지만 인공의 향수는 향수가 아니라는 뜻일까. 단순히 향수병엔 향수가 없음을 말하는 걸까.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책을 접했다. 총 8편의 소설이 담겨있다
<나를 이겨라>는 저자가 소설가가 된 계기와 역경을 극복하며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을 이야기한 소설이다. 저자는 여고시절 박경리 작가를 만난다. 그러면서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평소 흠모하는 작가가 진주에 온다는 기사를 접한 저자는 바로 작가를 만나러 갔다고 한다. “저도 선생님처럼 소설가가 되고 싶어요.”라며 고백한다. 그날 이후로 박경리 작가의 그림자를 쫓으며 소설 쓰는 사람이 되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가르는 어떤 계기는 드라마 속에 나 나오듯 극적 순간 같아도 이런 현실은 늘 존재한다. 어쩌면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다양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현실일 때도 있다. 저자는 대작가들로부터 작가의 소질을 인정받고 몇 개의 필명까지 받는다. 결국 현재의 필명 ‘지혜’는 기도 중에 하나님께 받은 은사의 선물이다. 삶의 중간에 시들병이라는 무기력에도 빠졌다. 글쓰기에 큰 위기가 왔다. 결국 저자는 신앙심으로 극복하고 “나를 이겨라”라는 박경리 작가의 덕담을 가슴에 새긴다.
파란색 보석하면 사파이어를 떠올린다. 파랗다 못해 멍든 푸르름을 머금은 청량감이 일등이다. 터키석 또한 파란색이다. 사파이어에 흰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린 듯 조금 연한 파랑이다. 향수와 보석은 여자들 취향 중에 조금은 고급 진 부류에 속한다. 향수야 그렇다 치지만 색상 별로 온갖 의미를 지닌 돌덩이에 경제적 가치를 지닌 로망의 물건이다. 터키석의 파란빛을 사모한다는 새미는 남편이 터키 출장길에 사 온 터키석 두 알을 선물 받는다. 보석과 향수, 살아가는데 필요하진 않지만 만족감을 주는 물건이다. 보석을 좋아하는 새침데기 성향의 새미가 모으기 시작한 향수병, 빈 향수병을 모으기 위해 값비싼 향수를 사는 새미 취미의 원인은 가족력에서 기인한다. 윗대로 냄새를 풍기는 체질 때문이다. 역겨운 냄새를 감추기 위해 향수를 사 모으기 시작했고, 급기야 향수병의 고급 진 외양에 빠진다. 새미는 전통 물품을 파는 세계 곳곳을 찾아 헤맨다. 진품이나 모조품을 가리지 않는다. 문양의 미에 빠진 새미의 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 향수가 없는 향수병은 빈 병이다. 빈 향수병이 가득한 집에 부부의 애정이 머물지는 않았다.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만의 향기를 지
녔잖아. 냄새가 싫다고 스스로 고립시키면 사람 사귐도 순조롭지 못하고 외톨이로 살아가기 마련이거든.” 남편의 충고는 향수병에 집착하는 아내의 수집병에 대한 충고였다. 새미 특유의 냄새에 사랑의 코가 멀었다는 남편, 수술로 특유의 냄새가 없어진 새미를 대하는 남편의 흔들리는 마음, 냄새를 그대로 물려받은 딸 토리의 결심, 이들은 냄새로 인해 향수를 접했다. 그러면서 차츰 인간에게 풍기는 진정한 향수가 무엇인지 알아간다. 결국 “이젠 진정한 향수를 지녀야지”라며 예루살렘 부활절 대축제 순례 여행을 계획한다. 나의 향은 무엇일까. 나만 모르는 향이 있고 모두 다 아는 향이 있을 터이다. 뿌리지 않아도 풍기는 자연스렁 향, 나만의 향이 좋은 향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결을 향한 단상>에서는 다솔이, 엄마의 자궁에서 잉태되어 느끼는 ‘숨결’로 시작한다. 그는 세상에 온갖 의구심을 품고 바람과 함께 거리를 떠돈다. 바람과 함께 성장하는 다솔, 제주도의 하르방을 보고 돌의 숨결을 느낀다. 앙코르 와트에서는 세월의 이끼가 돌의 문양과 어우러지는 신비스러움을 본다. 자연의 품에서 떠돌다 갈릴리 호숫가에 도착해 성인식을 치른다. 다시 돌아온 다솔은 정착하기 위해 지리산 토굴에 둥지를 튼다. 움막을 짓고 채소를 가꾸며 연명을 하지만 인간적인 욕망은 잠재울 수가 없다. 결국 다솔은 세상으로 나와 결혼식을 치른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성인식을 함께 했던 나탈리의 구애로 다솔은 사랑하는 여인과 둥지를 튼다. 이렇게 “항시 너를 지키는 눈동자가 있다"라는 엄마의 충언은 아들에게 현실이 되었다.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순간 홀로 견뎌야 한다. 탯줄을 벗어난 인간은 독립적이다. 그 이치를 알아버렸나. 다솔의 여정은 생에 대한 온갖 의문으로 시작한다. 맨몸으로 겪고 느낀다. 인간은 육체적, 정신적으로도 혼자 살 수 없다는 이치를 깨닫는다. 다솔은 생에 육신과 영혼의 합일을 가져온 아내를 만났다. 저자는 결국 완전한 삶은 다솔이 도착한 지점임을 보여준다. 도착점은 다시 시작점이 되지만, 찾고 구하며 자신의 길을 나가는 이 일이 인생임을 말한다.
저자는 각각의 작품에서 이상적인 삶을 분주히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이렇게 소설을 누비며 드러나는 저자의 숨겨진 욕망은 어쩌면 나의 욕망과도 같았다. 글이라는 거울을 통해 비춘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다독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
|
|
|
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 성지혜 소설
[인간에게 가장 고귀한 피는 태어날 때 엄마의 자궁에서 흘린 피라고 하지 않습니까] [뜻과 행동은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되 , 분수와 복은 나보다 못한 사람과 비교하라] 사람을 만나보다보면 이런 생각을 한다. 수차례 걸쳐 본 사람이라도 처음 봤을 때의 이미지가 그 사람을 다 이루는 이미지라는 생각. 사람들은 처음 본 모습이 그의 전부라는 말을 하지 않지만 결국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다 보였다. 아닌 사람도 그랬지만, 나조차도 한번에 다 보이는 사람이었다. 이 책에서 본 성지혜 작가는 어렵지만 그녀의 세계에서 한 방향을 향해 끈기있게 나아가는 사람인 듯 싶었다. 다른 책은 읽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난 다른 책을 읽고도 같은 느낌을 받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내가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생소한 단어가 많아 끝까지 읽어나가는데 힘이 들었다. 그래서 열고 닫고를 반복하였지만, 끝끝내 다시 열어 읽어나갔다. 그만큼 작가가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이유겠지싶다. 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 이 책을 읽다보면 김영하 작가를 떠올리게 한다. 단편 소설로 사람에게 울림을 주는 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이며, 단편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알려준다. 단편이라서 성지혜 작가가 더 돋보이는 것 같다. 어느덧 서늘한 바람이 불고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이 되어간다. 문자만으로도 시원하고 따스한 감정을 느낄 수 있듯 살랑이는 바람 맞으며 읽기 좋은 책이다. (어려운 책이라 머리 식힐 바람이 필요하다고는 안하겠다). 어려운 책이라 그런지 끝을 봤을때의 보람과 만족감은 배로 느껴졌다. |
|
박경리 작가님의 고등학교 후배인 성지혜 작가님의 소설집. 가장 처음에 실린 《나를 이겨라》는 박경리 작가님과 사이의 관계에 대해 써 내려간 글처럼 보인다. 교통사고 위자료로 아들을 대학에 보낸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신의 손》, 그리고 실제 하는 오리 문화제의 주인공에 대해서 쓴 《청백리의 숨결》,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의 짧은 이야기 《그대와 나, 어디서 별이 되어 만나리》 등 총 8편의 짧은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무래도 소설로 알고 책을 읽기 시작하다 보니, 중간에 몇 번씩 혼돈이 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이겨라》는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로 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한 번 들었고. (자전적인 소설로 봐야 하나?) 《청백리의 숨결》도 오리 이원익의 청렴한 모습을 잘 고증했으며 서사화에 성공했다, 고 작품 해설에서 설명하고 있는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류담은 종손, 종부와 대담도 하고, 학생들과 질의응답시간도 갖긴 하지만, 저혈당으로 연인이 '숨진' 이야기나 사제지간인 안현철 박사와의 대화가 오리 이원익 선생에 대한 이야기와의 연관점을 못 찾아서 어려웠다.
개인적으로는 묘사나 대사 같은 것들이 이해하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었는데, '요 앙팡진 것', '인친 남자들', '또래 중에서 유일한 여친이 화답했습니다.' 이런 표현들이나, 중고등학생의 대사인데 다소 요즘 아이들 같지 않은 어휘를 구사한다던가, 스마트폰을 쓰는 30대 남녀니까... 최소한 10년 이내의 이야기일 텐데, 대화가 요즘 젊은이들 같지는 않은? 그런 느낌이 들어서. 이해가 가지 않는 단어들을 찾아보느라 중간중간에 흐름을 끊을 때가 많았다.
《결을 향한 단상》 같은 경우는, 첫날밤을 평생 동안 잊지 못한 남녀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 부분이 쏙 빠졌다가 마지막에 등장하기도 하고. 시간이 예고 없이 널뛰기할 때가 있어서 그 흐름을 잘 캐치하지 못하면, 어느새 이야기에서 이탈되어 버리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소설을 읽고 받아들이는 것은 개인차가 있고, 취향 또한 사람의 성향을 타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재미있는 소설이었겠지만, 나에게는 근래 들어 가장 읽기 힘든 소설이었다고 해두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