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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학이 너무 좋아"란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정작 실학이 뭔데? 하고 물으면 실용주의 학문? 정도의 대답밖에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조선 후기 북학파를 비롯 실학파라 불리우는 사람들에 관련된 이야기나 실학을 다루는 책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있다. 깊이 공부할 마음 자세도 갖추지 못하면서도 수박 겉핥기 식으로 그들의 인생을 엿보고 멋지다는 짧은 감탄사로 마무리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역사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에 대한 생각은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시리 과거 이야기를 들여다 보면 암기자세를 갖게 된다. 이 책의 제목이 마음에 와 닿았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내가 좋다고 관심갖고 있는 실학을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은데, 객관적 사실에 대한 나열이 아닌 작가의 산문집이란 점이 역사 앞에서 주뼛거리고 있는 나에게 딱 필요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였다는 저자의 타이틀도 좋았지만 다산연구소 소장과 실학박물관 관장을 지냈다는 작가의 이력에 더욱 신뢰감이 생겼다. 실학박물관에 아이와 함께 가서 좋은 추억을 쌓았던 기억이 있다. 어설프게 알고 있는 엄마의 설명에 대한 신뢰도가 없었기에 때마침 있었던 해설사의 설명을 아이에게 반 강제로 같이 듣자고 설득하였는데 결국 나 혼자만 재밌게 듣고 아이와 남편은 둘이 돌아다니면서 그들만의 관람으로 즐거워했던 기억이 난다. 꼭 그들의 업적을 주입식으로 암기시키고 익히게 할 필요보다는 저절로 스며들게 하여도 좋았을 것을 극성이 아니라 하면서도 극성 엄마가 맞았던 것 같아 후회가 되긴한다. 프롤로그에 나온 실학을 실학하려는 사람이란 문장이 너무도 멋지게 다가왔다. 나 또한 그리 살고 싶다고 꿈꿔왔는데, 작가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잘 정리된 이 부분이 마음을 좀 더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담겨져 있는 내용은 그동안 작가가 썼던 칼럼들을 여섯가지 주제로 엮어 만들 글이다. 실학에 대한 지식 전달을 목표로한 책이였다면 좀 힘들겠다 싶었을텐데 짧은 칼럼 형식의 글이라 각각의 글을 읽으면서 깨닫고 마음에 새겨지는 부분이 많아서 좋았다. 애써 칼럼을 찾아 읽는 수고로움 따윈 하지 않는 나에게 칼럼이 주는 매력도 새롭게 느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읽고 싶은 것만 읽는 다는 현상을 깨달은지 오래지 않다. 도대체 어느 부분에서 오해가 생길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아도 답이 안나오는 경우가 왕왕 있었는데 우리는 모두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을 깨닫고 난 후 모든 것이 이해 되었다. 정조의 비밀어찰과 실학을 보는 관점을 통한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통한 통찰 부분도 인상깊게 다가왔다. 중화와 화이론에 대한 부분도 재미있었다. 나의 조상이라고 늘 자부심 있게 말하고 있는 이익과 홍대용의 화이일야론의 주장을 보면서 오랑캐의 영역이 어디까지일까 궁금했던 부분이 해소되었다. 서구중심주의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기도 하였었는데 작가의 말대로 홍대용의 화이일 사상이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며칠 전 읽었던 <흠흠신서>의 정약용과 셜록 홈즈, <정의란 무엇인가>의 마이클 샌델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앞부분에서는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주장을 공통된 주제로 엮은 이야기들이라면 뒤로 갈 수록 공동체와 세계 속 우리라는 확장된 의미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언제나 역사 속의 역사 알기에만 급급한 나였는데 오늘 날 세걔 속의 우리와 연계된 실학 사상을 바라보며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도 관심가지려 하지 않았던 것이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숲을 산책하며 힐링하는 시간을 갖겠노라는 철없는 가벼움으로 책장을 펼쳤지만 실천이라는 실학의 본질을 깨닫고 나니 발걸음이 무겁단 생각으로 책장을 덮게 되었다. 방법을 일러줬으니 실천하라는 말은 내가 매일 아이에게 하는 잔소리였는데, 실학을 실학하려는 사람이란 말이 더욱 마음에 새겨지게 되었다.
* 해당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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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의 숲에서 오늘을 보다
조선에도 영국의 명탐정 셜록홈즈처럼 뛰어난 탐정 수사관이 있었으니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차이가 있다면 셜록은 현장에서 탁월한 관찰력을 보여주면서 해결이 전혀 불가능할 것 같은 사건을 해결하는데, 다산은 공안과 검안 등 사건 기록의 면밀한 검토만으로 난해한 사건을 명쾌하게 해결하였다. 다산의 형사사건 해결능력을 알게 된 정조는 그를 형조참의, 지금으로 치면 경찰청장 정도 되는 위치 수사 책임자로 임명한 것이다. 정조는 ‘함봉련 사건’을 의안, 의심이 나는 사건으로 간주하고 다산에게 다시 자세히 조사할 것을 명했다. 한 마디로 살인자가 뒤 바뀐 사건을 다산은 정교한 논리로 파헤쳐 진상을 밝히고 살인자의 누명을 쓴 함봉련의 억울함은 해결해 주고, 진짜 범인을 잡아 관부에 넘겨 재수사를 명했다.(~32면)
수령이 잘못하면 그 결과가 백성들에게 치명적인 것이다. 어떤 사람이 수령 노릇을 할 것인가? “덕이 있어도 위엄이 없으면 잘할 수 없고, 뜻이 있어도 발지 않으면 잘할 수 없다.” 제 한 몸 착하더라도 아전을 통솔할 위엄이 없으면 잘할 수 없고, 선정을 베풀려는 뜻이 있더라도 일을 처리하는 명석함이 없으면 잘할 수 없다. 요컨대 통솔력과 직무능력이 있어야 한다. 현대의 지방행정은 다산이 살았던 시대와 다르다. 무엇보다 지방자치단체의 장을 선거로 뽑는다. 선거에는 유권자의 책임이 크다. 안면과 연고로 뽑아서는 안된다. 공동체의 안녕와 번영을 위해 냉정하게 판단하고 투표해야 한다. 몇 년 전 대통령 선거에서 많은 사람이 부패 혐의가 있어도 능력이 있어서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줄 것을 기대하여 투표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기대였다. 그는 대통령이라는 나라를 다스리고 대표하는 최고 공직자의 지위에 있으면서 나라와 국민을 우선하기 보다는 자신의 사적 재산을 증식하는데 주력했다. 현재 그 사실이 문제가 되어 옥중에 수감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63면)
실학, 좋은 말이다. 실사구시, 실질적인 사실에서 올바른 것을 구한다. 실학은 실질적인 학문이란 뜻으로 현실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학문을 일컫는 말이다. 나는 최근에 한 영화를 보았는데, 그 영화에서 진정한 실학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산어보”라는 영화였는데, 사실 이 영화의 제목은 책이름이기도 하다. 영화 <자산어보>는 흑산에 유배된 정약용의 형인 정약전과 창대란 어부가 함께 그곳에서는 나는 물고기를 잡고 관찰하여 우리나라 최초의 해양 생물 백과사전인 <자산어보>를 집필하는 과정을 보여준 작품이었는데, 정약전이 이렇게 이 책을 집필한 이유가 여러 사람들에게 흑산도에서 나는 물고기에 대한 특성과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누군가를 위해서, 삶에 실질적인 도움과 혜택을 주기 위한 학문, 그것이 바로 실학이다. 이 작품은 ‘무릇 학문이란 실제로 백성의 생활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이념, 즉 실학사상이 잘 담겨진 작품이었다. 정약전은 절해고도 흑산도에서 섬 백성들의 생활에 보탬이 되고자 ‘우리 바다의 우리 물고기들의 정보를 취합하여 어보, 즉 물고기 족보를 만들어 그 제목을 <자산어보>라 하였고, 그 동생 정약용은 18년 강진에 유배되어 있으면서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 국가와 백성들을 위한 실질적인 학문과 내용이 담긴 책을 저술하였다.
경세유표에서 정약용은 선비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일하는 사회를 도모했다. 심지어 국왕조차도 부지런하고 치밀하게 일하는 사람이었다. 정약용은 사적인 이익을 위한 중간 착취를 배제하고 공적 시스템을 바로잡고자 했는데, 이 시스템의 정점에 있는 국왕은 공적인 존재로서, 구름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었다. 국왕을 보좌하는 신료들도 당연했다. 정약용이 꿈꾼 나라는 모두 함께 일하고, 모두 함께 벌고, 모두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였고, 공정한 사회 세상이었다.(55면)
하지만 세상은 정약용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은 정약용의 주장과는 반대로 흘러갔고, 인생의 절정기 무렵, 한참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해야 할 시간에 그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산의 정신적 지주이자 학문적 동지, 정치적 파트너였던 군왕 정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정조의 죽음과 함께 다산 또한 무너졌고, 그는 한 개인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무려 18년이란 세월을 전라남도 땅끝 강진에 유배되었다. 다산의 18년 유배 기간은 정약용에게도 불행이었지만, 조선의 모든 것이 이때부터 무너지기 시작했고, 더 큰 불행은 조선이라는 나라가 정약용의 유배 시점으로부터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조선도 문제였지만, 지금 대한민국도 상황이 그리 썩 좋은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현 정부가 막 출범하였을 때는 국민들의 기대치가 높았다. 정국을 잘 이끌어 침제된 대한민국의 경기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것으로, 하지만 4년이 지난 지금 분우기는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 같다.…부동산값 상승에 따른 주거 불안정, 사교육에 따른 교육비 부담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문제다. 여기에 최저임금인상 문제까지(~186면)
실학의 숲에서 오늘을 보다 가독성이 좋고, 내용도 훌륭하며 굉장히 좋은 책이다. 책의 내용과 제목이 아주 잘 맞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내공이 느껴졌는데, 공부를 굉장히 많이 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역사와 한문학에 정통하면서 동시에 현 시국의 정치, 경제, 사회 상황까지 아울러 꿰고 있지 않고는 쓸 수 없는 글들이다. 이 책을 통해 옛 사람들이 생각했던 실학과 현대 사회의 여러 문제들과 어떻게 연결 지어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지혜와 온고지신의 의미에 대해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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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유난히 다산 정약용에 관한 책들이 눈에 많이 들어온다. 그의 학문적 연구결과나 그가 활동하던 당시의 정세가 지금과 비슷해서 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다산연구소 소장과 실학박물관 관장을 역임했었던 김태희님이 그동안 써왔던 짧은 산문들을 주제별로 역어놓은 것이다 저자의 다산에 대한 깊은 학식과 현재의 모습을 관통하는 역사의식이 남다르게 잘 표현된 글들이 많다고 생각이 든다
다산과 정조는 거의 항상 같이 연구되는 것 같다. 조선 개혁의 최고 정점에서 갑자기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린 변화의 노력들이 안타까울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다산의 학문적 위업뿐만 아니라, 정조시대에 대해서도 그 이면의 모습을 더 잘 이해하게 된거 같다. 정조는 당시 노론의 최고수장이던 심환지와 알려진바와 달리 매우 긴밀하게 소통하는 관계였고, 서로의 체면을 세우기위해 밀실정치도 했던 모습도 있었다. 어째 되었던 정조는 나름의 방식대로 소통의 노력을 했던 군주이다. 소통을 이야기하자면 세종만한 인물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이런 조선의 정세와 우리나라 정치와 사회의 여러 이슈의 순간에 다산과 조선의 왕들의 시대적 고충들을 비교하면서 배울점들이 참 많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대통령의 화려한 등장과 열린 민주당의 몰락을 보며, 변하지 않으면 여기저기서 탈이 나는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한민국호의 은유적 표현들은 하나같이 어쩜 그렇게 딱들어맞는지, 당시의 정치가들과 관료들의 또다른 모습이 다시금 마음을 아프게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살아가면서 세월호나 여러 공직기관들의 비리를 통해 올바른 개혁과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지를 이야기하고, 복잡한 국제 정세속에서 줏대를 갖고 나아가야할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고민을 쏟아놓고 함께 고민하는 글들속에서 저자의 진정성이 느껴진다. 화이론으로 표현되는 이원론적 가치관으로는 명청의 변화의 세상에 합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지금 현 시대도 보수와 진보가 끝없는 대결국면으로 달려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그렇게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지만 창조적 리더십이 바로 세워지고, 다문화세상에서의 조화로운 발전을 통해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고민하게 하는 글들이 참 좋다.
자세한 내용을 보시려면 ISO 국제인증전문기관 : 네이버카페(naver.com) 사이트를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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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實學 조선 후기 정약용, 박지원, 이익 등으로 대표되는 실사구시를 추구하는 학문... 난 뭐 이정도로 알고 있었다. 새삼 책을 통해 실학實學은 허학虛學의 상대적 개념이라는 걸 알게된다. 실학이란 '실제로 소용되는 참된 학문'이고 허학이란 '공리공론에 기초한 헛된 학문'이라고 구분되었단다. 그래서 처음에는 중용中庸이 실학이고, 불교와 도교는 허학이라고 했단다. 나중에는 사장학詞章學은 허학이고, 경학經學을 실학이라고 했다지... 가만히 생각해보면 '실제로 소용되는 학문'이란 아닌 것이 없는 것 아닐까? 하다못해 우리가 말장난이자 궤변이라고 했던 소피스트들도 인간이 만물의 척도임을 주장하며 개인주의를 이끌었다고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여하튼... 조선 후기의 실사구시를 내세우며 '실제로 소용되는 참된 학문'을 표방하던 그 한 흐름은 왜 조선 후기 우리의 삶을 크게 바꾸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되고 말았을까? 어쩌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단순히 나만의 생각이고 그들이 이룬 업적과 영향은 엄청난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왜 난 꼭 그렇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것일까?
어느 한쪽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말할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자유와 평등, 발전과 분배, 알 권리와 개인 정보 보호... 중간점을 찾아가는 것이 너무 힘들다. 한 발자국도 자기 쪽으로 손해보기 싫어하는 우리네 욕심이 합의에 도달하기를 힘들게 한다. 설마 거부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저자는 그동안의 글들을 엮어서 단행본을 내면서 스스로의 지향점을 상기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여섯 가지의 지향점을 준거로하여 책은 여섯 가지 범주로 나뉘어져 있다고 보인다. 그래서인지 글 속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을 많이 드러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더불어 세계사와 그 세계 속의 우리나라에 대한 관심을 말하고있는 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열린 세계를 지향하던 박지원의 '열하일기'도... 백성들의 평안을 추구하던 김육의 노력도... 아래로부터의 권력과 백성을 사랑하라는 정약용의 '목민심서'... 실사구시와 경세유표를 부르짖던 이익의 '성호사설'... 이런 드높은 생각과 기개는 왜 꽃피워서 우리 민족의 발전된 모습을 만들어내지 못했을까... 하는... 위정자의 의지가 문제였을까... 아니면 분열과 권력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힌 수구세력의 아집이 문제였을까... 결국 소통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양보와 타협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실학의 관점에서 오늘의 우리를 평가할 때 우리는 더 나아가지 못한 과거의 역사를 비판하면서도 또다시 동일한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아주 어설픈 생각을 해본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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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의 숲을 걸으며
오늘 소개할 책은 빈빈책방에서 출판한 김태희 소장님의 <실학의 숲에서 오늘을 보다>이다.
저자인 김태희 소장님은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경제학 부전공), 한국학 중앙연구원 정치학과에서 〈정조의 통합정치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조선 후기 정치사상, 조선 후기 정치사상, 특히 실학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 다산연구소 소장과 실학박물관 관장을 지냈다. [ 실학의 숲에서 오늘을 보다 책날개 중 ]
우리는 오늘날의 현실을 조선 후기와 자주 비교하곤 한다. 외세의 침략에 국운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던 조선 후기는 세계 최강의 주변 국가들로 인해 여전히 자주적인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이 비슷하다는 느낌에서 그럴 것이다. 물론 현재의 대한민국은 역사 속 그 어느 때보다 자주적이고 국운이 융성한 시절임은 분명하다.
외부에서는 열강이 침략하고, 내부에서는 정치가 부패하여 혼란스러웠던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은 세계화의 흐름을 감지하고 실학을 통해 사회 전반을 혁신하고자 했다.
실학에 대해서는 실체에 관한 논란이 있지만, 실학 전문가인 저자의 말은 이 의문을 일소한다. 실용적인 학문을 실학이라는 관점에서 조선 전기에는 불교를 실학이라 불렀다. 지금 우리가 실학에 관한 논쟁을 벌이는 것도 100년 후에든 다른 관점에서 실학이 논의될 것이다.
김태희 소장님은 실학을 돌이켜보며 6가지 주제로 현재를 바라본다.
1부 실학의 숲 2부 역사의 창 3부 정치의 뜻 4부 공동체 풍경 5부 세계와 우리 6부 길을 걸으며
저자의 이야기 중 가장 놀라운 사실은 호치민과 목민심서에 관한 내용이다. 아마 한번은 들어보았을 이야기인데, 호치민이 매일 목민심서를 옆에 두고 이를 통해 국가의 통치 철학에 참고한다는 이야기이다.
나 역시 베트남이 공산국가라 여행하기를 꺼리던 가족에게 호치민과 목민심서를 이야기하며 국부와 우리가 목민심서로 강하게 연결되어있는데 걱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니 너무 충격적이었다.
사안이 중요해서 이 사실을 연구한 조사에 따르면 이야기는 1992년부터 지금까지 대량으로 판매된 소설에서 문헌상 처음으로 등장했고, 이후 문화재청장과 저명한 시은을 통해 다산 연구자에 의해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고 한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호치민의 기일에 목민심서로 같이 기린다는 이야기가 퍼져있다고 하니 진실을 알면 부끄러울 뿐이다.
실은 박헌영과 호치민이 친분이 있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고는 하나 하노이 호치민 박물관 측에 따르면 이와 관련한 어떤 증거도 없다고 한다. 이제부터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저자는 이야기를 맺는다.
다른 한 가지 놀라운 점은 정조 대왕 시절은 노론 벽파가 주도하는 정국으로 남인이 다수였던 실학자를 아꼈던 정조는 노론 벽파 세력과 싸우다 돌연한 죽음으로 자신의 이상을 완성하지 못한 개혁 군주라는 이미지가 사실은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는 노론 벽파의 영수인 심환지와 4년 동안 비밀편지를 297통이나 소통했다는 점이다. 비밀편지 속에 등장하는 정조의 상스러운 말이 알려졌을 때 놀라고 실록에 기록된 일이 알고 보니 사전에 심환지와 짜고 한 일도 있다고 하니 정조와 노론의 관계는 생각보다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면서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100통 이상의 편지를 써본 적이 없는데 일주일 동안 한 통에서 두통 가량의 편지를 썼다는 말은 서로 마음을 터놓는 관계였던 거로 보인다.
우리는 역사 속 인물의 현재의 잣대로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연암 박지원의 글은 그의 자유분방한 문체와 사상으로 금서로 취급되었다가 20세기 김택영에 의해 뛰어난 문장으로 평가했다.
다른 특징은 정조의 다산 정약용에 대한 신뢰다.
다산 정약용은 기록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고, 정조 대왕이 백성에게 필요한 정보를 요구할 때마다 최선을 다해 이를 수행했다.
일례로 전국의 나무에 관한 현황을 파악해 한 장으로 보고하라는 명령에 다산은 전국을 지역으로 나누고 최소 단위의 마을에 있는 나무를 헤아려 이를 합산했다.
다시 이를 정리해서 보고하니 정조가 마음에 들어 했다.
다산은 <경세유표>를 통해 낡은 제도를 고쳐 나라를 새롭게 하는 방안을 연구했고, <목민심서>를 통해 기존의 제도 아래에서도 목민관(지방 수령)이 잘만 운영하면 백성들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으로 판단했다.
목민심서의 제1조 재배의 첫 구절이 “다른 관직은 구해도 좋으나 목민의 벼슬은 함부로 구하지 말라”고 했다. 지방의 수령은 그 지역에서 마치 국왕처럼 여러 가지를 결정해야 했기 때문에 수령이 잘못하면 그 결과가 백성들에게 치명적으로 다가가기 때문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들었던 것 같은 김득신 선생에 관한 이야기다.
선생은 만 번 이상 읽는 책들을 <독수기>에 따로 기록해두었다. 그는 <사기>의 ‘백이전’은 특히 좋아하며 11만 3천 번을 읽었다고 한다. 만 번도 부족해 억만 번을 읽겠다는 의지를 그의 거처 이름을 ‘억만재’로 지었다.
뛰는 자 위에 나는 자라고 했던가.
다산 정약용은 <독수기>의 내용이 가능한 것인지 본인이 몸소 따져보았다고 한다. 정약용 선생의 결론은 김득신 선생은 발췌독으로 가능한 것 같고, <독수기>의 내용은 선생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작고한 뒤에 누군가가 들은 말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 추측했다.
하지만 다산 정약용은 김득신을 근면하고 뛰어난 독서의 일인자라고 평가했다.
다산의 집요함과 꼼꼼함을 바탕으로 형사사건 해결 능력을 알게 된 정조는 그를 형조참의로 임명했다. 정조는 ‘함봉련 사건’의 의심이 가는 사건으로 간주하고, 다산에게 재조사할 것을 명했다.
함봉련 사건의 경우, 사건이 발생한 지 10년이 지나 오로지 1차와 2차의 조사 문안을 자세히 검토해 사건이 이상하다는 점을 밝혀냈다.
어떤 사건에 최종 판결을 내릴 때는 세 가지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하나는 피살자 가족의 진술, 다른 하나는 시신에 대한 검시, 마지막은 공인된 증거이다. 이 세 가지가 서로 합치하면 그 사건의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세 가지가 서로 어긋나면 그 사건은 아직 규명된 것이 아니라는 신념으로 함봉련 사건을 해결한다.
저자는 실학의 관점으로 바탕으로 근래 있었던 다양한 사건에 대한 평가를 소개한다. 세상의 이치와 사물의 질서를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고 질문하는 김태희 소장님의 <실학의 숲에서 오늘을 보다>를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실학의숲에서오늘을보다 #김태희 #빈빈책방 #실학 #에세이 #한국문학 #책과콩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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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 우리 조상들이 연구한 학문. 유교사상이 만연했던 조선 땅에서 '실용적인 학문'이 대두되었다고 해서 실학이라 불리었다. 실학이라하면 정약용 선생이 떠오른다. 이 정도가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만났던 실학에 대한 모든 것이었다. 이 책은 우리 조상들의 학문인 실학의 시각으로 현대를 바라보았다. 과연 조상들은 현대를 어떻게 평가할까 궁금했다. 책의 작가인 김태희 씨는 다산연구소 소장과 실학박물관 관장을 한, 상당히 이 분야에 일가견이 있으신 분이었다. 그 분이 바라보는 실학의 관점에서의 우리나라는 어떨까?
나는 3부 첫장에 나온 경청 관련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정치를 하기 위해서도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말을 잘하는 것 즉 소통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다.세종은 '함께 의논하자.' 라고 자주 말했다고 하며, 최윤덕을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신뢰했지만 무관출신이어서 '말이 절실하지 못한 것이 많다.' 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세종실록) 저자는 이에 덧붙여 소통을 할 때 가장 주의해야할 것으로 '이분법적 사고'를 든다. 말다툼을 하다보면 상대방이 100% 극악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항상 생각해야한다. 절대 100% 선은 없고, 악도 없다. 나의 견지나 상대방의 의견도 어느정도는 맞는 부분이 있고, 틀린 부분도 있다. 이런 것을 인정하고 대화를 나누어야지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의 수많은 사회 갈등이 이런 소통의 부재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추가로 해보며.. 이분법적 사고에 갇히지 말고 모두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해나갔으면 좋겠다. 이와 더불어서, 이렇게 동아시아 문화권은 한자 문화권으로 의견을 상소문 등의 '글'로 표현하였기에, 그리스의 폴리스의 문제에 관해 직접 연설하여 의견을 표출했던 것에서 비롯된 서양 문화권에 비해 연설 문화가 발전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며 현재 문화가 형성될 수 있었던 흥미로운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번째 기록하고 싶은 부분은, 성공에 대한 내용이다. '성공을 좇는 우리들은 성공에 환호하고, 성공한 사람과 자신을 일체화하고 성공한 사람의 뭔가를 배우려한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한 것이 있다. 상황이 변하고, 자신이 변한다. 이 부분을 읽고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읽은 기사(책으로도 나왔다.) 내용인 경험이 어떻게 경영에 해가 되는지에 대한 내용이 떠올랐다. 왜 경험이 많은 CEO보다, 루키인 CEO가 더 좋은 성과를 내는지 어떤 환경에서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되는지에 대한 내용이다. 사람들은 흔히 성공한 사람대로 따라하려고 하면 잘될 것이라 생각한다. 또 자기 자신의 성공 경험에서도 배워 똑같이 하려한다. 그러나 언제나 상황이 변하고 운도 따르기 때문에 너무 큰 신뢰는 오히려 독이 된다. 진정의 성공은 나의 성공방식에 대한 아집을 버렸을 때 일어날 수 있다.
사회적으로 많은 비판을 담고 있지만, 사회의 인재 활용에 대한 이야기를 꼽아볼까 한다. 장점이나 잠재력은 보지 않고 포장되고 완성된 인재만을 찾으려 하는 행태. 조금 잘한다 싶으면 무너질 때까지 소모하는 현실. 또 한 분야에서 잘하는 인재를 정치에 끌어와 쓰는 등의 현실도 작가는 비판한다. 세종이 세상을 잘 다스릴 수 있었던 이유는, 세종이 리더십을 발휘했던 이유도 있지만 그에 앞서 세종을 리더의 자리에 발탁한 태종의 선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완성된 인재가 아니더라도.. 기회를 주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우리 모두가 생각해보아야하지 않을까.
구체적인 역사적 기록과 현대 시대의 다양한 예시를 들어 리더십, 공정성 등과 관련된 다양한 현대 사회문제들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다. 역사에는 항상 배울 것이 있다. 갈수록 다른 과목들의 중요성이 강화되고 있지만, 우리 삶에 교훈이 되는 역사공부는 늘 필수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본다.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실학의숲에서오늘을보다 #김태희산문집 #빈빈책방 #책콩 #책콩리뷰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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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오랫동안 조선 후기 정치사상과 실학을 연구한 학자로서 실학 정신이 과거의 학문이 아닌 살아있는 학문으로써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세상을 바라보는 안목과 통찰을 배우고 지금의 사회문제를 실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풀어보고 그 해답을 이 책을 통해 찾아보고자 하고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실학이라는 지식적 관점과 사상으로 그동안 써왔던 칼럼 등을 모아 여섯 가지 카테고리로 엮어 저자가 추구하고 있는 실학사상의 핵심을 알아볼 수 있으며 조선후기 정치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지금의 정치와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 속에서 어떻게 사고를 하고 행동을 해나가야 하는지 그리고 과거의 역사를 통찰하고 이해하면서 지금의 우리들이 어떻게 실천을 하고 실천의 방향성과 문제해결의 가르침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솔직히 실학사상 하면 떠오르는게 실제 생활을 중시하는 실사구시의 학문이라는 것과 다산 정약용, 연암 박지원, 성호 이익 등 인물들만 생각나는데 이 책에서는 실학을 바탕으로 한 조선후기 정치 상황과 특히 정조 시대와 다산 정약용 선생의 관한 다양한 역사적 지식을 만날 수 있을 것이며 조선후기 역사를 다양한 모습 바라보고 그 옛날 역사의 가르침으로 오늘을 이해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깊이 있는 지식을 느낄 수 있었으며 지난 칼럼의 주제와 지금의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같이 제시함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끊어지지 않고 연결이 되었음을 다시 한 번 깨닿는 시간이 되었다.
실학은 많은 것들이 오늘날과 연결되는 학문인 것 같다. 옛것에 대한 가르침이 오늘날의 문제 대해 통찰력이 생기고 문제의 해결 방향성을 제시함으로써 실학이라는 사상은 현재와 소통하고 있는 살아있는 학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