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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그 성격이 어떠하든, 글쓴이의 삶을 반영해야만 그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공감을 이끌어낼 수가 있다. 그런 점에서 리뷰를 한 편 쓰더라도 글쓴이의 생각이 보이지 않으면, 나에게는 무미건조하게 느껴지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저자의 생각과 삶이 충분하게 느껴지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고 여겨졌다. 이 책의 저자는 다양한 수상 경력을 지니고 있는 소설가이지만, 나에게는 무척 생소한 이름이었다.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이라는 부제가 의미 있게 다가왔고, 책을 읽는 내내 소설가로서의 저자의 자의식이 강하게 느껴졌다. 여성 문인으로서 활동하면서 느꼈던 다양한 경험과 생각들은 물론,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저자는 그의 산문들에서 아주 진중하게 토로하고 있었다.
소설가인 저자에게 '산문집이라는 형식은 정말로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라는 다짐과 함께,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쓸 수도 톱아볼 수도 없는 글들을 모아'서 엮은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1부의 맨 앞에 수록된 '여성시라는 장르 규칙'이라는 글에서 시인 박서원의 작품을 인용하면서, 한국에서 여성이 문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와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아울러 소설가로 자리를 잡게 되는 과정에서 겪었던 여러 경험들과 생각들, 또는 다른 작가들에 대한 상념들과 까마득한 어린 시절의 기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들이 1부의 글들에 제시되어 있다. 이러한 글들을 읽으면서, 글쓰기에 대해서 매우 진중하게 생각하는 저자의 태도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의 가치를 삶 속에서 증명하고 싶다'는 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이라는 제목의 2부에서는, 과거에 이혼한 작은 아버지의 두 딸이 외국에 입양되었고 수소문 끝에 만났던 경험을 풀어놓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어지는 글들은 대체로 여성으로서의 자의식과 페미니즘에 입각한 저자의 생각과 다른 작가들의 작품들에 대한 독후기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저자의 유년과 청소년기를 관통했던 1990년대를 '알지 못했던 세계'라고 칭하며 돌아보기도 하고, 우리 사회에서 일상화된 '여성 혐오'의 현상들에 대해서 강하게 문제 제기를 던지기도 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월북작가이자 임화의 부인으로만 평가되는 소설가 지하련의 <체향초>라는 작품에 대한 여성주의적 독법을 다룬 내용이었다. 아마도 최근의 연구들에서는 지하련을 비롯한 여성 작가들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내려지고 있다고 하니, 작품과 함께 새로운 해석에 대한 글들을 자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3부에 수록된 글들은 대체로 저자가 소설을 쓰면서 소재로 취했던 주변 사람의 삶과 그에 대한 자신의 창작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때로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을 작가와 동일시하는 시선에서 움추러들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작업에 대한 나름의 자부심을 드러내는 내용들이었다. 짧지만 나에게 인상적이었던 글은 저자가 글쓰기에서 '필드워크의 스승'을 언급한 내용 중에, 최근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게 된 소설가 전성태의 이름을 발견한 부분이었다. 대학생 시절 '빨간 펜을 들고 교정자의 자세'로 작품을 손봐주면서 '그동안 관습적으로 써왔던 잘못된 표현들을 수정'했던 그를 글쓰기의 스승으로 여긴다고 고백하고 있다. 며칠 전 그와 함께 점심을 먹을 기회가 있어 전성태 선생에게 이 내용을 넌지시 전했다. 한참 동안 저자의 대학 시절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대화 주제로 삼았는데, 지인을 통해 듣는 저자의 면모가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이 책에 발문을 쓴 소설가 최은영의 '나의 오랜 친구 민정이'라는 글 역시 저자를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겠다. 그동안 저자의 작품을 읽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생각나지 않지만,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자의 작품을 꼼꼼하게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산문이라고 그저 가볍지 않고, 자신의 글과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토로하는 내용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저자의 글을 통해 그가 살아왔던 삶의 내역은 물론, 소설가로서의 자신의 생각을 펼쳐내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었다. 그저 일상을 펼쳐놓고 아름답게만 꾸미려고만 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중심으로 글을 써내려가는 저자의 자세가 더욱 견고하게 느껴졌다.(차니)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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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직업인 사람은 소설과 산문 중 어느 쪽이 쓰기가 더 어려울까. 산문은 그냥 자기 얘기를 쓰면 되고 소설은 새로운 세계와 인물을 창조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소설이 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박민정 작가의 산문을 보면 산문 쓰는 일이 더 어렵다고 한다. 아무래도 자신이 창조해낸 인물 뒤에 숨어서 본래의 자기 모습은 감출 수 있는 소설에 비해 산문은 나를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내야 해서 말을 꺼내는 거 자체가 힘든 일일 수 있다는 생각은 든다. 첫 산문집이라 더 고민이 많았을 작가의 첫 산문집에는 소설에 대한 고민들, 여성에 대한 고민들이 꽤 심도 있게 풀려 있다.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말이 아니라 본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것에 대해 가졌던 생각들을 차분히 기술하신 것임에도 그녀의 모든 의견을 지지하고 싶어졌다. 작가님이 그동안 꾸준히 담아오신 주제에 맞게 산문집의 시작은 여성에 대한 이야기로 출발한다. 개인적으로 박서원 시인은 접해본 적이 없었는데 여성이라서 삶이 왜곡되었던 작가로 소개하고 있다. 성폭력을 당했던 여성 작가에 대한 세상의 시선. 그 이력 때문에 작가의 가치를 왜곡하는 건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겠지만 그녀를 보면서 그 사건을 떠올리지 않는 것도 마냥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여성작가를 바라보는 다른 여성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서 떠올리는 일 자체와 작가를 평가하는 일은 별개의 사안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여성작가의 불행이 거의 전부 성폭력을 매개하고 있다는 걸, 그리고 세상은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 조사하고 고발하는 것보다 그런 일을 겪고도 살아남아 용감하고 청순하게 버텨주는 사람을 원한다는 걸 나는 정말 너무 싫어했다. (p22) 산문집을 출간하시고 인터뷰하셨던 기사를 보니 제목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편집부에서는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을 추천하셨지만 작가님께서는 누군가가 블로그의 소설에 달아주신 댓글에서 영감을 받으셔서 '잊지 않음'이라고 결정하셨다고 한다. 실제로 책을 보면 제목은 '잊지 않음'이지만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도 부제처럼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책의 2부에 나왔던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에서 너무 어려서 그 시대를 이해하지 못했던 시기였더라도 그 시대를 나의 산문으로 풀어낼 수 있다는 개념이 인상적이었고 동의하고 싶었다. 나의 산문이란 언제나 내 육체가 거했던 그 당시에 완성되지 않았고, 내가 그것을 끊임없이 재의미화하며 성장해갔을 때 어느 날 비로소 만들어졌다. 1983년에 일은 2018년쯤 되면 더욱 명확해지고, 자료는 넘쳐나며, 발언은 꼿꼿해진다. (p71)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발문을 써주신 최은영 작가와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들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서 서로를 알아보게 되었고 박민정 작가가 대학생이 되었을 때 이미 대학생이었던 최은영 작가는 무수히 많은 책들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박민정 작가가 먼저 어린 나이에 정식 작가가 되었고 그 사실은 다소 침체되어 있던 최은영 작가에게 새로운 동기가 되어 그녀도 후에 작가가 되었다. 참 아름다운 관계라는 생각이 든다. 여성으로서, 작가로서 진심으로 응원하고 위로해주었던 연대가 지금 이 시대에 귀한 소설을 소장할 수 있게 해 준 것 같다. 두 사람의 소설은 또 다른 애착심을 가지고 읽게 될 것 같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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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경험과 기억은 인생의 반향점이 된다. 때로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나타나고 힘을 발휘해 적용되기도 한다. 그건 강렬했다기보다 불편하고 난해한 기억이거나 경험이다. 어쩌면 지우고 싶은, 잊고 싶은 것들일 수도 있다. 왜? 란 질문을 반복하게 만드는 것. 그런 것들이 삶을 바꾸고 흔든다. 모두에게 다 그런 건 아니다. 누군가는 그 기억을 그냥 과거로 치부하고 기억하지 않음으로 인식한다. 그 기억은 내 것이 아니라고 기억으로부터 멀리 도망치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끊임없는 질문으로 이어간다. 기억의 실체를 찾아, 기억의 부여하는 의미를 찾는다. 『잊지 않음』이란 단호한 제목의 산문집을 쓴 작가 박민정은 후자다.
작가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 묻는 이도 있을 것이다. 소설을 쓰는 일이 문학 속에 거하는 삶이니 타인을 관찰하고 사회를 바라보는 냉철한 시선이 존재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걸 주문처럼 외고 소설을 쓸 때마다 기억하고 애쓰는 작가의 고충을 독자는 알 수 없다. 섣불리 자신의 서사가 아니냐고 짐작하고 판단할 뿐.
어떤 의미에서 작가의 산문집은 그래서 더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사고, 작가가 그리는 소설에 대한 미래, 소설을 쓰면서 스스로가 다짐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주는 그런 산문집이라면 훨씬 소설을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평론가의 해설이나 서평이 아닌 작가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소설의 해석이라면 더욱 소설을 풍성하게 만들 것이다. 사실 박민정의 산문집은 쉽지 않았다. 그건 작가의 개인적인 고백을 읽는 일이었고 동시대의 아픔과 폭력을 향한 태도였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박민정의 소설은 내게 어려웠다. 많은 소설을 읽지도 못했다. 겨우 단편집 한 권과 몇 편의 단편이 전부다. 그 역시 제대로 읽지 않았다. 작가가 소설을 통해 들려주려는 목소리를 나는 듣지 못했고 그 목소리가 무엇을 말하는지도 몰랐던 것이다.
작가가 주목하는 것들, 여성과 일상이 된 폭력의 삶이었다. 그 시작은 이혼한 작은 아버지가 두 딸을 해외로 입양 보냈다는 사실과 작가 스스로의 경험이다. 아들인 남동생은 키우고 딸이라는 이유로 입양을 보냈다니, 이해할 수가 없다. 그 시대 그런 이유로 선택당하지 않고 버려진 이들이 모두 여성이라는걸. 작가는 만약 그 상황이라면 자신도 버려질 수 있었다는 불안을 경험한다. 학교 안에서 자행되었던 추행과 폭언들, 수직적 관계에 대한 분노에 대항하지 모 못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작가가 다짐하듯 쓴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매우 부끄럽다. 경험했으므로 더욱 그들을 이해하고 그 편이 되어주어야 하는데, 건너왔다는 이유로 이제 잊고 살아온 나의 시간을 반성한다.
학생 인권은 몇 번을 말해도 모자람이 없다. 머리카락 기른다고 자유롭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잊지 않기 위해 여학생들의 복숭아뼈를 끝없이 감각한다. 그것이 내 것이었다는 걸 잊고 ‘요즘 애들 편하다’라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서. (46쪽)
내가 쓰는 모든 소설이 그렇듯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항상 뒤늦게 슬퍼진다. (165쪽)
지금껏 내가 만난 소설가의 산문 가운데 가장 특별한 산문집이다. 솔직하면서도 당당한 용기가 놀랍고 고맙다고 할까. 어려워서 그렇기도 하고 작가로의 무엇을 써야 하고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고민하고 고뇌하는 모습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박민정의 산문집을 읽고 지나온 역사의 아픔을 경험하지 않았다고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고 가담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말할 기회가 제한되고 제외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같은 시대를 살면서 나는 그저 타인의 일이라 여기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여겼던 순간에 대한 미안함과 함께.
그러므로 작가는 계속 쓸 것이다. 더 많은 여성의 이야기를, 주류가 아닌 비주류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여전한 차별과 폭력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이제 나는 조금 더 가까이 그녀의 소설에 다가갈 수 있다. 그리하여 그녀의 소설 속 인물의 삶이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라는 걸 느낄 수 있다. 제대로 만나지 못한 박민정 자각의 소설을 이 산문집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이다. 소설을 이해하기 보다 소설을 사랑하기 위해. 소설 속 그녀들을 더 많이 사랑하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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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움직일 엄청난 글은 아니니 큰 기대는 하지 말아달라'로 읽힌 들어가며는, 기대를 안하고 읽으면 얼마나 내가 만족할 책이 될 수 있을지 오히려 더 기대가 되면서 읽기 시작했다.
솔직하다. 몇 장 넘기지 않고서도 알 수 있었다. 소위 말하는 '갬성'을 생각한 멋들어지고 분위기에 취할 수 있는 에세이는 아니다. 어떤 에세이들은 읽다보면 작가와 나 사이에 한 겹의 얇은 막이 있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나의 개인적인 느낌일테지만) 그런데 이 책은 기름기가 쫙 빠져 있으면서도 읽을 수록 묘하게 빠져들고, 작가의 옹골찬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는 지점이 여러 번 있었다.
작가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인생, 그리고 책을 읽거나 지인과 대화를 나누며 느낀 소회를 풀어놓는다. 주변을 알아가면서도 이것이 결국 본인 소설의 소재가 됐을 때 허락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드는 죄책감에 대해 논할 때는 문득 작년 어떤 문학상의 사건이 떠올랐다. 허락을 받아서 시작했지만 변용된 부분에서 이것이 타인에 대한 작가의 평가처럼 보일까 두려워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소설가로서의 윤리 의식'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평소 별 생각 없이 재미있네, 재미없네, 이 부분은 와닿네 정도 에서 나의 감상은 그친다. 하지만 '독자로서의 윤리 의식'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고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문학상 수상 작가처럼 지인에 동의를 구하지 않고 쓴 소설을 단지 재미있었다라고 생각하고 끝낼 일은 아니었겠다. (변명하자면 읽고 난 뒤 일어난 일이긴 하다.)
아무튼 작가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이 문단에서 겪은 일을 적어내려가면서 단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상처를 통해 연단되었고, 자신의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한다. 다시 한 번 직업적 특성상 세상을 탐구해야하는데, 결국 자신의 소재로 도구적으로 사용되는 것 아닌가 하는 고민에서도 깊은 직업적 책임감도 볼 수 있었다. 작가로서의 힘든 일, 그리고 그 직업에 따라오는 필연적인 과정에서 작가는 좌절할만도 한 데 이 책을 통해 만난 작가는 좌절보다는 단단함을 선택한 것 같아 응원하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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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량만 놓고 보면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읽다 보니 속도가 나지 않았다. 첫 글에서 박서원 시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솔직히 아주 낯선 시인이다. 덕분에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몇 가지 정보도 얻고, 시인의 얼굴이 나온 책 표지도 볼 수 있었다. 어딘가에서 본 듯한 얼굴이다. 하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시집에 외모를 내세우면 눈길을 잘 주지 않는다. 어쩌면 집 안 책장을 뒤지면 박서원 시인의 책 한 권 정도 나올지 모르지만 자신할 수 없다. 나의 수집은 언제나 편향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박서원 시전집>에 자꾸 눈길이 갔다. 두툼한 분량을 생각하면 다 읽을 자신이 없는데 괜한 수집욕이 생긴다.
무심코 내뱉은 말 한 마디가 남성의 시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나라고 예외는 아니다. 자주 마눌님의 타박을 받는다. 이 산문집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많이 돌아보게 되었다. 완전히 고친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내 머릿속을 점령한 작가에 대한 인식을 다시 환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박민정 작가는 문창과를 나온 후 등단했는데 글쓰기 외에 다른 경험이 없다고 말한다. 글쓰기 경험을 얻기 위해 한 행동에 대한 반성은 읽으면서 그래도 그 지점까지 가지 않았냐고 말해주고 싶다. 다음 단계로 나아갔다면 삶의 방향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동의한다. 이 솔직함이 좋다.
해외 입양에 대한 글은 놀랍다. 사촌 언니들이 해외 입양되어 떠난 후 다시 한국에 돌아와 보여준 감정의 편린들은 냉정하고, 현실적이고, 아련하다. 작가가 읽고 본 소설이나 영화에 대한 감상을 적은 글들은 호기심을 불러오고, 그 깊이나 다른 해석에 고개를 끄덕인다. 개인의 기억과 사회의 역사를 혼동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면 이 분석들은 날카롭고 나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보게 한다. 그녀가 여성이었기에 겪어야 했던 혐오와 여성 착취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우리 사회의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일상 속에 그 뿌리가 얼마나 깊은 지 알게 된다. 쉽게 빠르게 읽기에는 담고 있는 이야기가 무겁다.
아직 박민정 작가의 소설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기에 작품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다. 출간된 목록을 찾아보니 <멜랑콜리 해피엔딩>에서 한 번 읽은 적 있는데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쓴 서평에도 박민정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말했듯이 나의 한국 소설가에 대한 시간은 너무 더디게 나아간다. 모델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소설에서 작가의 동생과 인터뷰한 내용이 나오는데 생활인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다. 작가나 모델이나 불러주지 않으면 생계가 힘들다. 그리고 예상 외의 인물이 쓴 글이 하나 나온다. 최은영 작가다. 역시 사 놓고 몇 년 동안 묵혀 두고 있지만 박민정 작가보다는 개인적으로 인지도가 더 높다. 이들의 인연을 풀어낸 소소한 글은 삶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안에 이 두 작가 중 한 명의 소설은 읽고 싶은데 과연 어떨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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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있음에도 사는 문제를 걱정하는 것이 인간의 일이라면, 쓰고 있음에도 쓰는 문제를 걱정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 아닌가 싶다. 소설가 박민정의 산문집 <잊지 않음>을 읽으며, 나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쓰고, 쓰는 문제를 걱정하면서도, 더 잘 쓰지 못함을, 더 제대로 쓰지 못함을 괴로워하는 작가의 모습을 여실히 보았다.
이 책에 드러나는 박민정의 모습은, 그야말로 소설가가 되기 위해 태어나고, 소설가가 되는 것만을 생각하며 살아온 사람 같다. 그도 그럴 게, 박민정은 아주 어릴 때부터 소설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고,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소설을 썼으며, 대학에선 문예 창작을 전공했고, 모두가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을 때 그는 등단을 준비했다. 그리하여 2009년 <작가세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으나, 정식으로 소설가가 된 후에 체감한 '소설 쓰기의 무게'는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무거워서, 오랫동안 고통받고 상처 입은 듯 보인다.
그로 하여금 소설 쓰기를 어렵게 한 요인 중 하나는, 그가 소설가이기 이전에 여성이라는 것이다. 오랫동안 한국 문단은 한국 사회의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남성이 권력을 차지하고 남성이 여론을 주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 여성인 그의 글은 오독되고 오해받기 일쑤였다. 그가 직접 경험한 일에 관해 쓰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신경증 환자의 헛소리 취급했고, 그가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문제의식을 느낀 일에 관해 쓰면 "네가 그 일에 관해 아냐!"라는 질책 어린 일갈이 돌아왔다. 그는 "허구를 만드는 테크니션"일 뿐인데, 사람들은 그가 만든 허구를 보지 않고 그(가 여성이라는 사실)만 보았다.
그토록 그를 괴롭게 하는 소설을, 계속해서 쓰는 이유는 뭘까. 평생 쓰는 일만을 꿈꾸었고 쓰는 법밖에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의 눈에 담기는 장면들과 그의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들이 그로 하여금 계속해서 글을 쓰게 추동하는 것 같다. 어릴 적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창밖으로 보았던 집창촌의 풍경이라든가, 딸이라는 이유로 해외에 입양된 사촌 언니들에 대한 생각이라든가. 그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해, 오늘도 책상 앞에서 고뇌하고 있을 그의 모습이 선연하다. 부디 계속 감각하고, 감각한 것에 대해 써주기를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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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사촌언니들의 해외입양 1990년대 성폭행, 강간,면도칼로 찢긴 흔적의 고모 가방 2000년대 유니텔 pc통신 안에서 이대생(여성 고유명사) 군대 보내자, 된장녀 혐오 / 강제 징용 피해자의 외손녀
나는 80년대를 살아본적은 없었지만 유튜브로 본 80년대는 경제성장이 높아지고, 88올림픽 정도였다. 90년대, 2000년대에도 어렸을 적이라 사회에 관심이 없고, 몰랐다. 그런데 이책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지나쳤을 시기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에 들어서 엄마와 얘기하던 중 기형아일수도 있다고 했던 아이가 지금 생각해보니 여자아이여서 낙태를 권유한게 아닐까 싶다는 생각도 하셨다고 한다.
여성들의 이야기에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잊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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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쪽 결국 상대는 나에게 대체 가능한 존재인데 나는 상대에게 유일해야 한다는 건 이기적인 욕망일 뿐이다. 그러므로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대체될 수 있는 사람이다.
101쪽 신토불이 따위 주장하지 않아도 국내에는 일본제만큼 좋은 물건이 많았다. 내가 오랫동안 써온 일본제를 대체할 만한 소비재가 생각보다 너무나 많았다는 것이다.
109쪽 언어는 결국 그것을 사용하는 사회의 재현이어서, 타국의 언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세계의 일부가 되고 싶은 욕망에 다름없는 것이다.
121쪽 어떤 여자애게는 "왜 거절하지 않았어? 너도 좋았어?" 라는 가치 없는 질문이 꽂히고, 어떤 여자에게는 "왜 아이를 낳으려고 하지 않아?"라는 질문이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사회에서 비수로 와닿는다.
196쪽 상황은 다양했을지 몰라도 주로 피해자는 청년 여성, 가해자는 중년 남성이었다. 이러한 구도는 피해자가 무력이 부족하며 계산이 빠르지 못한 '여성'이며 가해자는 악락하고 힘세며 이기적인 '남성'임을 동시에 의미한다. 해를 가한 쪽은 아버지거나 나이 많은 애인이거나 권위를 가진 선생이거나 길에서 만난 위협적인 남성이다. 굳이 그가 힘이 세거나 나이가 많거나 피해자를 위협하는 권력을 갖고 있다고 묘사하지 않아도 이미 '남성'이다.
203쪽 이것은 이야기일뿐이며, 화자와 작가를 분리하는 것이 소설 장르의 기본 전제라는 것은 중학생들도 알고 있다. 그러나 진짜 현실속에서 여성작가는 여성 시민으로서, 즉 열등 시민으로서 겪어던 곤경만큼이나 이중의 부담을 안고 있다.
204쪽 더이상 여성작가로서 쓸데없이 가져야 하는 압박과 죄책감으로부터는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다. 나는 어쨌거나 이야기의 힘과 매혹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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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를 쓰기에 앞서, 소설가 박민정의 글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것을 밝힌다. 그리하여 가능한 쓰여진 문장 그대로 읽을 수 있었으나, 한편으로는 다른 작품에서부터 이어져오는 맥락들은 이해할 수 없어서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지 않아도 충분히 읽을 수 있는 글이다.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마음이 뭔가 묵직해지는 것을 느꼈다. 굉장히 담백한 산문같은데 읽고 나면 글이 주는 무언가가 있다. 작가가 이해한 우리네 현실, 작가가 읽은 글과 시, 그리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마치 제3자의 입장에서 쓴 서평처럼 보이는데, 그 안에는 분노와 두려움같은 감정들이 엿보이기도 했다.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고급스러운 언어로 후려치는 느낌이다.
후려치는 글을 읽고 나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꾹꾹 눌러두었던 인생의 상처들이 글자 위로 떠오르는데, 그걸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드니 읽는 입장에서도 꽤나 무력해진다. 때문에 작가의 글이 서늘한 복수의 칼날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작가는 글이라는 수단에 숨어든 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한 번쯤은 속 시원한 사이다 같은 말을 날려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작가를 비판하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내 마음이 아려서 그렇다. 작가의 삶에 나타나 제멋대로 상처를 남긴 사람들이 괘씸해서. 한편으로는 나도 잘 못하는 걸 남에게 부추기는 못된 심보인 것도 같다.
살다보면 이런 생각을 종종 한다. 나는 온전한 나일까, 아니면 내가 속한 사회와 문화가 만든 산물일까.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 혹은 슬퍼하고 분노하는 것까지도 사회가 세뇌시킨 감정은 아닐까, 하는 생각. 이런 생각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보면, 나라는 고유한 정체성은 없다는 생각에 제법 슬퍼진다. 그렇다고 사회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오롯이 내멋대로 살겠다는, 내가 최고라는 생각만으로 살고 싶은 것도 아니다. 할 수만 있다면 벤다이어그램처럼 이 두 영역을 손에 쥐고는, 두 원을 천천히 겹쳐가며 나에게 가장 최적화된 균형점을 찾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렵다. 그렇게만 된다면 삶이 주는 상처를 덜 받을 것만 같은데 말이다.
오늘도 이 복잡다단한 생각을 맴돌며 이런 결론을 내려 본다. 타인이 만들어낸 사회의 역사는 어떻게든 개인 안에 새겨지고, 그것이 저마다의 다양한 모습으로 재창조되어 세상에 나올 때, 그것이 각자가 써내려가는 고유한 인생이 된다고. 이것이 지금의 내가 내릴 수 있는 최선의 결론이다.
그리하여, 타인의 역사를 산문으로 그려낸 박민정 작가의 인생을, 일부분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어서 기뻤다. 주로 소설을 쓴다는 걸 알지만, 작가의 다음 산문집은 언제가 될지. 문득 궁금해진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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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기 위해, 세계를 끝없이 감각하며 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아직 ‘나’를 감각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나에게 ‘세계’라는 것은 좁게만 느껴진다. 책은 타인의 역사와 나의 역사를 끝없이 감각하는 박민정이라는 사람의 산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작가의 산문을 읽으며 잊지 않기 위해 세계를 감각하는 모양을 따라 그려본다. 잘 그려지기도 하고 잘 그려지지 않기도 한다. 처음에는 내가 아닌 다른 한 개인의 산문이라고만 생각하며 한 발짝 떨어져서 읽다가, 점점 가까워지더니 어떤 글에서는 읽기를 멈추고 잠시 머물러 있기도 했는데 그때 희미하게나마 알 것 같았다. 나는 지금 박민정이라는 타인의 산문을 통해 세계를 감각하고 있다는 것을, 각자의 세계이지만 그것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 세계를 끝없이 감각하며 쓴’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 공감이라는 말로는 차마 다 설명할 수도 없는 공통의 경험과 그것에서 비롯된 진술들. 자기가 여자애라는 걸 알고 난 어느 순간부터, 여성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엄정한 사실을 내면화하는 삶 속에선 ‘우리’가 같은 운명에 얼마나 자주 처해지는지를. (120쪽) ’ ‘‘우리’가 같은 운명에 얼마나 자주 처해지는지를.’ 이 문장을 읽고 확실히 알았다. 나의 세계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나만의 일은 아니라는 것과 나 역시 이에 대해 서술하고 싶었다는 것을. 여자의 삶, 여자인 삶을 말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겪은 일을 각자의 산문으로 써나가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다. 물꼬를 트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 지점에서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이라는 부제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시간들이라도 훗날 여러 자료와 글을 통해 지금의 나와 만날 수 있듯 우리는 그렇게 타인의 역사와 나의 산문과 함께 나아갈 것이다. 터진 물꼬들이 겹치기도 하고 겹치지 않기도 하면서, 잊지 않기 위해 세계를 끝없이 감각하는 것을 잊지 않으면서 더욱 멀리 나아가기를 이 책과 함께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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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역사가 우리의 연대기가 되기까지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잊지 않기 위해 한 걸음 다가서는 마음' ???가끔 터무니없는 사랑이 끝나고 난 다음 우울한 기분 때문에 시간을 낭비할 때마다 나는 다짐하곤 했다. 무슨 일이 있었어도 다시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걸어가면 된다고. 다시 인파 속으로. 부모님과 친구들과 거래처의 연락을 받고, 제시간에 출근을 하고, 끼니를 거르지 않으면 된다고. 그중 가장 잘해내고 싶은 일은 역시 인파를 헤치며 걷는 것이다. 행인들 중 누구도 새삼 돌아보지 않을 만큼 멀쩡한 표정으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_ p.34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걸어가면 된다고.' 이런 생각을 제법 많이 하는것 같다. '그중 가장 잘해내고 싶은 일은 역시 인파를 헤치며 걷는 것이다.' 정말이지 어떠한 일에 감정을 다쳤더라도 멀쩡한 표정으로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을 할때가 있다. 그런날에는 그러느라 힘들었는지 혼자 있게되면 무너질때가 있다. 뭐가 맞는 걸까. ???순전히 언어 때문에 사무치던 상처를 생각한다. 나의 말이 누군가에게 비수가 되고, 누군가의 말이 나를 아프게 만들 때. 그와 내가 동일한 모국의 언어를 사용한다는 사실 자체가 서러워서 언어를 처음 배우던 순간을 호출하곤 했다. 아직 아무런 의미도, 즉 어떤 경험도 담지하지 않은 우리말의 자음과 모음. _ p.109 ??요즘들어 많이 생각하는건데 말이 라는것이 한없이 조심해야하는것이고 또 한없는 위로가 되는것이라는 생각을 많이한다. 타인을 생각할때에 '말' 이라는것, '언어' 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가 없다. 나도 그러하다. 어떤사람에게는 내가 좋은 사람일수도 있지만 어떤사람에게는 좋지못한, 나쁜 사람 일 수 도 있다. 시간이 지나 자연스레 서로가 용서, 화해로 좋아지는 경우도 있으나 '말' 로 어그러진 사이는 그게 쉽지 않다. 차라리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면, 그래서 서로 알아듣지 못했다면 하는 순간도 당연히 있다. 감정을 불러들이는 '말' 감정을 표현하는 '언어' 그것과 함께 타인에 대한 나의 역사를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그러나 세상은 놀랍게도 또 새로운 인생을 허락한다. 나 자신 외에는 모두가 비정한 세상에서 내가 나의 이름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 소설은 허상과 같은 용기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것이 ‘정말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_ p.115-116 ??참 놀랍다. 세상은 새로운 인생을 허락한다. 어쩌면 세상은 우리가 더 많은 모험을 하도록 코너로 몰아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몰리다 보면 급한 마음에 새로운 세상의 절벽으로 뛰어들고 그속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한다. 참 인생이란 놀랍다. 내가 아이를 낳다니 그것도 둘 을?? ?책을 소개하는 글에서 보았다. “우리 육체 속에 연약하게 머물러 있던 기억을 놓치지 않기 위해 이렇게 만들고 쓴다” "어디쯤 가서 뒤돌아보고 있는지 알고 싶었다” 뒤돌아보고, 기록하며, 기억하는 일. 너무 멋있는 말 아닌가. 뒤돌아보고 기록하며 기억하는 일 잊지 않음_ 타인의 역사, 나의 산문 오랫동안 잊지 않을 글을 나는 읽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