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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 】 _한지혜 / 교유서가
“마을에는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들어오는 길이고, 하나는 나가는 길이다. 들어오는 길은 푸르고, 나가는 길은 붉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들어오는 길을 푸른 길이라 부르고, 나가는 길은 붉은 길이라 부른다. 길은 그게 전부다.” 인풋과 아웃풋이 확연히 구분되어있다. 그런데 왜 들어오는 길은 푸르고, 나가는 길은 붉은 색일까? 들어오는 것은 생명이고, 나가는 것은 생명 없음이기 때문일까? 두 개의 길 사이에 동그랗게 마을이 들어서 있다. 꼭 웅덩이 같은 마을이다. 가끔 푸른 길을 따라 낯선 사람들이 들어오지만, 또 그만큼의 친숙한 사람들이 붉은 길로 빠져나간다. 그 마을을 지구라는 공간에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태어나는 생명들과 죽음으로 떠나는 영혼으로 대입시켜도 좋을 듯하다. 이 단편 속 화자의 직업은 이야기꾼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특징이 있다. 마을사람들은 나이가 먹으면 이야기꾼을 찾아온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알고 싶어 한다. 이야기꾼은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읽어준다(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준다).
한지혜 작가는 1988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안녕, 레나>로 문단에 데뷔했다. 이 소설집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 는 <안녕, 레나> (2004)의 개정판이다. 특징적인 것은 거의 20년 전에 쓴 글들이 시간이 흐른 지금 읽어도 바로 엊그제 출간된 내용인 듯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소설의 흐름이나 시대적 상황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집 첫머리에 실린 「외출」 이 특히 그러하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고루하더라도 그 시대의 문학은 그 시대의 언어로만 설명 가능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등단작이었던 「외출」 은 거의 손대지 않았다. 그 시대가 문학을 인식하는 태도와 문학에 대해 갖는 기준점은 그 시대가 선정한 신인의 문학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보기엔 그 시대나 이 시대나 사회를 형성하는 틀 자체의 변화가 거의 없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삶이 그렇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삶이 세워진 토대 자체가 확연히 다르다.
이 소설집에 실린 작가의 작품들의 공통점은 ‘삶과 죽음의 줄다리기’이다. 삶 앞에 그리고 곁에 죽음이 있다. 죽음 언저리에 삶이 묻어있다. 「외출」 화자의 주인공은 지방대 인문계를 졸업한 후 32군데에 이력서를 냈지만, 연락이 왔던 곳은 딱 2군데였다. 한곳은 제약회사였는데 주인공이 지원한 사보실이 아닌 텔레마케팅 부서를 권유하기에 가보지도 않았다. 또 다른 한곳은 민족문화에 대한 기사를 쓰는 작은 신문사였는데, 면접을 보기로 한 전날 사이비언론을 보도한 뉴스에 나왔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가봤지만,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그 후 어찌어찌 인맥을 동원해서 중견 광고회사에 1년 한정 인턴 사원으로 취직하지만, 1년도 못 채우고 잘린다. 화자는 가끔 유서를 쓴다. 그렇다고 정말 죽을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죽음에 대한 상상은 권태랄까 나른함이랄까 하는 것들을 잠시 소멸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죽는다고 생각하면 세상은 별것 아닌 것이 돼버리는 까닭이었다. 죽는 이유는 유서를 쓸 때마다 달랐다. 어떤 날은 가난을 견딜 수가 없어서 죽고, 어떤 날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서 죽고, 어떤 날은 나를 받아주지 않는 이 사회에 대한 분노를 표시하기 위해서 죽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지루해서 죽었다. 마지막 이유는 언제나 마음에 든다.”
「이사」에서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난 화자의 꿈은 룸펜이었으나, 화자가 12살 때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죽은 뒤로 그 꿈을 이루지 못한다. 「사루비아」는 기면증에 걸린 여인과 이유는 모르겠지만, 소소한 방화를 일삼는 요구르트 아줌마가 등장한다. 「목포행 완행열차」에서도 어김없이 죽음을 등에 진 여인이 등장한다. “언니, 저 처자가 참 곱지.(...) 예전에 언젠가 저런 뒷모습이 본 적이 있지라. 동그란 어깨는 저리 무겁게 쭉 늘어뜨렸는데, 걸음이 허방 위에 선 사람 마냥 사뿐사뿐 처량맞게 내딛는 폼이 꿈처럼 멋처럼 허랑허랑한데, 그게 죽으러 길 떠나는 사람 모습이라 안 하요.” 작가의 죽음 스토리는 「햇빛 밝은」에서 정점을 이룬다. “사람은 죽는다. 누구나 죽는다. 죽음이야말로 모든 사람이 유일하고 공평하게 나눠 받은 신의 선물이다.” ‘자살동호회’ 회원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죽든 말든 내 의지대로 하겠다는 것, 그것 한가지이다. 그러니 그들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간섭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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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쎄인트의책이야기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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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을과두갈래길을지나는방법에대하여 #한지혜 #교유서가 . . 한지혜소설가는 베스트셀러인 < #참괜찮은눈이온다 >의 저자로 유명하다. 하지만 나는 지난 2004년에 출간된 소설집 <안녕레나>가 남긴 인상이 더욱 크다. 이 책은 새로운 표제작으로 만나게 되었지만 지난 2004년에 출간된 <안녕레나>의 개정판이다. 그럼에도 <안녕레나>가 빠져있다. 소설 뒤 작가의 말에서 그 이유를 확인하고 작가의 결정을 존중하게 되었다. 문화사적인 의미는 있더라도 다시 호명할 이유를 고민했다고 작가는 밝혔다. 내가 2005년 즈음 그 소설을 읽을 때와 정보통신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기에 어쩌면 당시의 배경이 현재에 와서 읽히는데는 부담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하지만 그 외의 소설들은 당시 출간된 작품이 대체로 담겨있다. . . 가장 먼저 눈길을 끈 소설은 <호출1995>였다. 호출번호를 통해서 연결된 두 사람의 모습은 호기심을 자아내며 동시에 짧고 강한 아이러니를 남긴다. <안녕레나>를 읽었을 때 받은 인상과 닮아 있는 작품이었다. 이 책을 앞에서부터 차근차른 읽기보다는 <안녕레나>를 찾다가 작가의 말을 먼저 확인하여 자신의 방향과도 같다는 <왜 던지지않았을까, 소년은>을 다음으로 읽었다. 특히 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른 2002년 집단광기에 대한 연극을 준비하는 주인공의 시선으로 포착된 장면들은 나름의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나 역시 축구를 좋아하지 않아 좀더 적극적으로 대열에서 거리를 두었다면 주인공과 같은 생각에 다다르지 않았을까. 볼보이의 행동을 통해서 열기와 광기의 모습을 보였던 집단과 대비를 이루며 문제를 제기한다. 볼보이의 행동과 이를 지켜보는 주인공의 시선이 이 소설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할 듯 하다. 갈퉁이 폭력을 정의하며 "인간 존재가 그로인해 영향력을 받은 결과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 전부"를 의미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문제제기는 그 폭력의 범주에 적절하게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은 물론이고 자신의 마음도 스스로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읽지 못한다는 것이 의아하게 들리겠지만, 자신의 마음을 자신이 읽을 수 있다면 그것도 이상한 일이지 싶다. 일단 그들은 마음을 보지 못한다. 당연하다. 언제나 가장 가까운 것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203쪽) . . 표제작인 <한마을과 두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는 낯설지만 메시지가 분명한 우화이다. 타인의 마음으로 이야기를 해주는 이야기꾼이 마음을 읽는 자수비단 만드는 여인을 만나는 이야기다. 길지 않은 우화와도 같은 느낌을 주지만 한편으로는 나의 마음과 삶, 그리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강렬하게 소환하기도 한다. . . 십수년 전의 작품이지만 작가가 새롭게 문장을 다듬고 세상에 다시 나왔다. 시간의 경과이상으로 작품 하나하나의 진심이 느껴졌다. 협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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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주인공들이 겪는 여러 고난들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하는 시련들과 굉장히 닮아있었다. 많은 부조리가 없어졌고,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물림되어 남아있는 사회적 문제와 악습도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겉모습이 화려해졌을 뿐, 속 알맹이는 과거와 현재가 별다를 바 없다는 사실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9개의 단편소설에서는 공통적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여러 세대를 그리고 있는데, 이 중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4편은 ‘외출’, ‘사루비아’, ‘왜 던지지 않았을까, 소년은’, ‘햇빛 밝은’이다. _ ‘외출’은 광고대행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는 현경을 통해 험난한 청년취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현경’이 성추행을 하는 할아버지가 아닌, 알면서도 당하는 어린 여자아이의 뺨을 때리는 충격적인 묘사를 통해 사회적 불만을 상위층이 아닌 약자에게 해소하려 하는 인간 군상을 표현한 것 같았다. 그리고 여자아이는 비윤리적인 걸 발견해도 자신의 안위를 위해 눈 감고 살아가는 현대인(인간상)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사루비아’는 불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듯했다. 전지적 작가 시점과 주인공 독백이 번갈아 나오는 구성이 특이했는데, 뒤에 나오는 반전으로 인해 기가 막힌 구성이었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스포일러 없이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작가 시점에서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방화 사건이 묘사되고, 독백에서는 여자가 밝아 보이면서도 어둡게 자신의 팔자를 이야기한다. 이 두 시점이 이어지다가 결국 방화범은 누구인지 밝혀지게 되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파트이다. ‘왜 던지지 않았을까, 소년은’은 작가님이 2002년 월드컵 때 직접 목도하신 사건을 바탕으로 쓰여진 이야기라고 한다. 화자는 온 대한민국이 월드컵으로 떠들썩해지며 하나의 ‘축제’가 되자 연극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이 없어졌음을 한탄하고, 결국 월드컵 경기를 보러 가게 된다. 그 경기에서 한 볼보이는 규칙에 따라 선수에게 공을 던지지 않았지만, 규칙 따위 모르는 관객들의 야유를 받게 된다. 이 이야기를 읽는 동안 모두가 미친 세상에서는 정상인이 미친 것이라는 비유가 떠올랐다. 자신의 역할을 다했을 뿐인 볼보이가 다수의 축제를 망쳤다는 이유로 질타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규칙을 어기면서도 반듯한 사람들을 야유해왔나 되돌아보게 되었다. 여담이지만, 주인공이 느끼는 월드컵에 대한 언짢음이 평소 내가 생각하던 월드컵과 거의 똑같아서 소름 돋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햇빛 밝은‘은 죽음을 꿈꾸는 사람들의 모임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인물들 각자가 과거에 죽으려고 했던 경험을 들려주고, 다양한 자살 방법을 공유한다. 재밌는 점은 인물들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N이나 R 따위로 불린다는 것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인터넷 속 익명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기도 했고 뉴스에서 보도하는 ‘김 모 씨’처럼 들리기도 했다. 어쩌면 죽음을 앞둔 서로에게 이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묘사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다소 들뜬 목소리로 나섰지만 침묵이 워낙 커서 다시 묻히고 말았다.”- p.147였다. 침묵 자체는 아무 소리가 없지만, 모인 이들의 심란한 마음이 귀를 닫아버림을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신박했다. _ 나는 언제쯤 이런 문장을, 또 이런 이야기를 써볼 수 있을까 감탄하며 읽었던 단편 소설집이었다. 또한 열심히 살아가면서 취업 문제에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모습에 특히 공감이 갔다. 과거에서 나아지지 않은 현재를 살아가야 한다는 게 안타깝지만, 그래서 더욱 젊음을 불태우며 노력하는 우리가 찬란하다. 비단 청년세대 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가 노력한 만큼 이루어지는 세상이 오길 고대한다. * 출판사 서포터즈로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개인의 주관적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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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라는 산문집으로 처음 접했던 한지혜 작가의 신작소설집인줄 알았는데 ㅋ 2004년에 작가의 첫 작품집이었던 『안녕, 레나』의 개정판이었다. 총 아홉 편의 단편들이 들어있다. 지금 읽어도 전혀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그땐 IMF로 살기가 힘든 청춘들이였고 지금은 COVID-19로 힘든 청춘들로 바뀌었을 뿐, 청춘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은 것 같다.
「외출」은 비정규직의 고구마 천개 먹은 날의 연속으로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는 자신의 행동과 똑같은 모습을 보이는 슬기를 통해서 세상을 멋지게 속인 줄 알고 있지만 오히려 세상이 슬기를, 그녀를 이용만 하는 바보, 멍충이, 천치라고 자각하게 된다. 출근 할 곳 없는 날, 외출했다가 길을 잃어, 잘 모르는 길을 종일 헤매다 온 기분으로 대신하고 있었다. 출근하는 직장인들은 사표를 써놓고 매일 출근한다는데 그녀는 가끔 유서를 쓴다. 다양한 죽는 이유를 대면서.
「자전거 타는 여자」는 일곱살 때 옆집 노인의 죽음을 보고 토를 한 사건으로 죽음을 더럽고 추한 것으로 기억에 남아서인지 누군가의 부고 소식을 듣게 되면 역류하는 위액의 씁쓸한 맛을 느끼곤 한다. 무엇에 그렇게 반응하는 것인지 그녀는 스스로를 의심한다. 죽음 때문이었을까? 늙음 때문이었을까?
마지막 표제작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는 한지혜 작가의 전생을 얘기하는 건 아닐까?라고 느꼈다. 윤회라는 것이 있어서 이야기꾼이었던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현생에서 글을 쓰는 작가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작가의 전생을 본 것 같다.
첫 산문집도 너무나 따뜻했었는데 소설집 단편들도 지금의 시간을 힘들게 지나가고 있는 모든 청춘들을 위로하려는 작가의 작지만 따스함으로 토닥토닥 해주는 손길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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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는 총 9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한지혜 작가의 소설집이다. 작가는 20년도 전에 쓴 소설을 다시 꺼내놓아 수정을 거쳐서 내놓은 작품이다. '문학이 시대상을 반영한다'라는 말처럼 작가는 20년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해가며 새로운 이야기를 쓴다기보다는 깊어진다는 말로 자신이 앞으로 갈 길을 조심히 내비친다.
인턴사원의 일상을 그린 <외출>은 한 사람의 기대와 포기 그리고 남들에 대한 호기심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현대인의 일상을 그리는 듯하다.
우리는 뭔가를 항상 포장하고 살아간다. 남들에게 보이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우리는 항상 고민을 하고 살아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런 고민들 속에서 세월이라는 말을 배울 수 있지만, 정작 필요한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들을 배우지 못한다.
<왜 던지지 않았을까, 소년은>을 보면서 '아, 그런 일도 있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다수가 무엇인가에 빠져있을 때, 우리는 그렇게 규칙을 어기고 살아가지는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경기가 끝난 후, 자동차 경적을 울리면서 도로를 질주하던 사람들이 생각난다. 우리는 그때 그것을 왜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어디로 갈 건지 정하고 가는 길은 아닌갑소?" (p.127)
자신이 살아온 게 꿈이 아닌가라고 할 정도로 참으로 힘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꽃길만 걸으면서 살아가는 것이 사람의 욕심이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는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도중에도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바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 것은 힘든 삶이더라도 아직은 살아갈만한 무엇인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두 갈래 길이란 들어오는 길과 나가는 길이라고 한다. 푸른 길과 붉은 길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각자의 몫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누군가에게는 푸른 길이 붉은 길이 되는 것처럼 어떤 색을 그려나갈지는 자신의 몫일 것이다.
<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는 삶과 죽음 그리고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를 이야기하는 듯하다. 자신을 포함한 세상 사람들이 자신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가면서 살아가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의 틀 안에서 우리를 맞춰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각자의 삶'이 있듯이 맞춰가고 있는 도중에도 우리는 우리만의 사정대로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런 선택들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면서 나 자신도 좋고 나쁨을 떠나서 나만의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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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을과 두 갈래 길을 지나는 방법에 대하여」
마을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하나는 들어오는 길이고, 하나는 나가는 길이다. 들어오는 길은 푸르고, 나가는 길은 붉다. 내 직업은 이야기꾼이다. 정확하게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가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그때가 오면 사람들은 나를 찾아온다.
길은 그게 전부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만 하다가 이제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시간이 되었다. 자신을 들여다 보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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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루비아」
대상도 까닭도 없는 증오가 골목 사이에서 탁탁 작은 불씨처럼 튀곤 했다.
방화는 매번 사흘 간격으로 일어났다.
요구르트병과 석유
불꽃과 사루비아
네 번의 방화
이름 모를 선인장은 팔각성냥
자해도 하고 불도 지르고 아이를 잃고 마음의 병을 얻었네. 맨 정신으로 어찌 살아갈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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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좋은 일과 나쁜 일은 언제나 같이 찾아온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런 듯싶다. 내 경우에는 대개 좋은 일이 먼저 찾아온다. 그러고 난 후에 찾아오는 나쁜 일은 언제나 앞서 찾아온 좋은 일들을 취소시키거나 아무것도 아니게 만들어버린다.
새 아파트로 이사가는 건 좋은 일. 그런데 회사는 짤리고 관리비는 내야하고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하는 현실은. 취직이 되는 곳으로 무조건 고고~~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은 입에 풀칠이 가능한 후에나 가능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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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
가끔은 유서를 쓰기도 했다. 죽음에 대한 상상은 권태랄까 나른함이랄까 하는 것들을 잠시 소멸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죽는다고 생각하면 세상은 별것 아닌 것이 돼버리는 까닭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지루해서 죽었다. 마지막 이유는 언제나 마음에 든다.
지루해 죽겠다. 심심해 죽겠다. 맛있어 죽겠다. 그러고보니 죽겠다란 단어를 참 많이도 쓰고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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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갈래 길이란 들어오는 길과 나가는 길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