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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어려운 책, 그러나 왕수인은 달랐다.
"아직은 어려운 책, 그러나 왕수인은 달랐다." 내용보기
사서삼경 읽기로 해서 마지막으로 읽은 책인데 쉽지 않다. 하늘의 도와 인간의 도덕성을 연결하고, 언제나 정성을 다해야하며 중용을 추구하지만 그 중용이라는 것이 상황과 맥락에 따라 상이하다는 것이 내가 이해한 내용이다. 논어 맹자에 비해 형이상학적이다.내 짧은 지식으로는 사서삼경이라는 것 자체가 주희가 성리학을 정립하면서 핵심 경전으로 삼은 것이고 중용은 <예기>라는
"아직은 어려운 책, 그러나 왕수인은 달랐다." 내용보기
사서삼경 읽기로 해서 마지막으로 읽은 책인데 쉽지 않다. 하늘의 도와 인간의 도덕성을 연결하고, 언제나 정성을 다해야하며 중용을 추구하지만 그 중용이라는 것이 상황과 맥락에 따라 상이하다는 것이 내가 이해한 내용이다. 논어 맹자에 비해 형이상학적이다.

내 짧은 지식으로는 사서삼경이라는 것 자체가 주희가 성리학을 정립하면서 핵심 경전으로 삼은 것이고 중용은 <예기>라는 책에 챕터였는데 성리학에서 중용이 갖는 중요한 위치로 인해 독립된 경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버전의 중용이 갖는 장점으로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성리학에 대해 굉장히 디테일하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석으로는 주희의 해석이 달리고 부록으로는 왕수인의 해석이 달린다. 천리, 격물치지, 지행합일 등 성리학자들의 해석이 중용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비록 번역일지언정 원텍스트들을 접한 것으로 아쉬운 독서경험을 만족하고자 한다.

주희와 왕수인의 텍스트중 더 인상깊은 것은 놀랍게도 왕수인이었다. 왕수인의 논리가 굉장히 철학적이고 창의롭다. 왜 성리학에서 벗어나 “양명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으로 명명되었는지 이해가 간다. 먼저 주희와 양명(왕수인)놀라운 것은 같은 경전을 가지고 이렇게 같으면서도 다르게 특정한 사상을 창조해낸 그들이다. 왕수인은 격물치지가 마음속에 천리를 갖추고 있기에 사물과 세상 이전에 있으며 이는 언제나 정성을 다해 또렷한 일관성을 지닌다는 것을 역설한다. 여기서 생각난 서양 철학자가 있다. 선험, a priori! 임마누엘 칸트다. 이미 다 지식을 알고 있는 선험적 지식이 있다는 주장이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칸트를 떠올리기 어렵지 않았다.

공자도 맹자도 이렇게까지 몰입감 넘쳐서 읽은적이 없다. 제자들의 질문 수위도 촌철살인이고 왕수인도 너무 말이 되기 말해서 다 설득당한다. 단숨에 명나라 학자의 글을 안쉬고 다 읽었다. 유교를 베이스로 한 형이상학이다. 그러나 성리학과 다르기때문에 그 낯선 주장을 받아들이는 경험이 새로웠다.

말 나온 김에 동양고전에 대해서도 대략적으로 이야기하고싶다. 특히 동양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동양인임에도 서양고전이 익숙한 나에게(아마 많은 이들이 나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서양과 동양의 사유를 스스로 생각해볼 기회룰 주기도 했다.

고대 중국인들은 혼란한 시대가운데서도 굉장히 유하게 사고하고 자연에 맡길 줄 알았다.
’조화‘라는 말로 동양철학이 설명된다고 이전까지 여겼는데 조화라는 말만으로는 담아내기 어려운 것 같다.
하늘과 인간에 대한 순박하고 낙천적인 믿음이 있었다. 이미 천리와 착한 마음이 마음 속에 갖춰져 있으니 자신을 닦고학문에 힘쓰며 정성스럽게 노력하면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자신을 탐구하면 세계를 알 수 있으리라는희망을 품었던 루소와도 맥을 같이 하는 것 같다. 서양철학자와 또 비교가낭한 것은 양명인데 양명의 격물치지가 사물로나아가기 전에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 칸트의 선험과 비슷하다. 모두를 원래는 선한존재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게감춰져 있기에 자신을 수양해야하는 것이다.

서양이서는 이상이 주로 꿈이랑 연결되는데 동양은
이상을 꿈이아닌 현실에서 찾는다. 현실은 자연과 도와 하늘이다. 역사도 있다. 요순임금과 주 무왕과 문왕이다. 서양에서 이상적인 군주상은 위대하고 강력하며 우월한 존재로 그려지는 반면에 동양에서는 유순하고 유덕하여 착한 임금같다. 특히 순 임금이 기구한 운명 속에서도 끝까지 울면서 효를 다하고자했다는 게 감동적이다. 인간적이면서도 고결해서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맹자의 여민동락도 여기서 나온디. 군주가 백성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군주도 같이 기뻐하고 즐긴다.

예의 개념도 짚고 넘어갈 부분인데 공자말대로 먼저 예보다는 본래 인이 더 중요하다는 점을 인지해야한다. 그리고 그렇기에 예는 시대와 맥락에 따라 변하고 공자도 자기 나라의 예를 거집하지 않고 주나라 예를 채택했다.

인은 무엇인가? 공자는 인에 데해서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 말을 아꼈다. 인은 사람인자와 둘 이 자가 합쳐진 것으로 두사람의 관계의 핵심이다. 동양사상이 좋은점은 인간관계와 도덕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인데 인은 사람다움이라고번역되기도 하고 사랑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의문이 남는다. 춘추전국시대때 마을에서 애를 젖갈로 담가 먹을정도로 잔인하고 예가 무너졌다는데 그런 시대의철학이라기에는 너무 순박한 면이 있다. 백성들보다는 군자와 왕에 초점을 맞춰서 그런 것 같다. 읽다보니 느낀것인데 모두 정치철학서이다. 형식 자체도 맹자가 왕들에기 조언을 주고 논어에서도 제자들과 공자가 고문으로서 등용되고 등등.

그래도 이런 이상적인 가치들을 줄기차게 역설하는데도 불구하고 맹자가 제시한 항심이라는 게 지금도 유효한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맹자는 돈이랑 먹고고살 기반이 있어야 항심이 생긴다는데(무항산 무항심) 어쨌든 늘 정성스럽게 산다는 중용의 가르침이 중요하다는 게 중용으로 맺은 사서의 전체적인 독후감이 될 것이다.


이러한 바, 대저 중용은 2차 텍스트로 넘어가기 위한 필연적인 다리이지 않을 성 싶다.
b*****2 2025.01.0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