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인호님은 역사소설가로 유명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로맨스 소설을 가장 맛깔나게 쓰는 작가이다. 데뷔작인 별들의 고향은 아무래도 세대 차이가 나다보니 별 감흥이 없지만 작가가 40대에 발표한 [겨울 나그네]는 사춘기의 여린 감성을 뚫고 나와 늘 나를 흥분케 하는 작품이었다. 그 때 내 친구들과 나는 빨리 어른이 되어 민우같은 남자를 만나는 게 꿈이었다. 이 책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아 내가 사랑하는 한국영화 중의 한 편이다. 그로부터 10년을 훌쩍 넘겨 작가가 우리 앞에 내어놓은 사랑 이야기는 남녀간의 사랑이 아니라 그 사랑을 뛰어넘은 모성의 이야기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한 남자를 사랑했던 여자의 사랑을 뛰어넘는 어머니의 사랑. 그것은 남녀간의 사랑이 그러하듯 치열하게 싸우면서 서로 미워하고 끊을 수 없음에 절망하며, 그럼에도 그 존재 이유로 삶의 가치를 두는 가장 원초적인 사랑의 모습인 것이다. 작품 속 어머니 장유진은 자존심이 강하면서도 딸 채희를 위해서는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스스럼없이 포기하고 치부도 자랑스럽게 보여주는 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반해 딸 채희는 아버지의 죽음에서 온 충격과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겪은 고통은 어머니의 탓으로 돌리며 30이 넘은 나이에도 자기를 학대하는 인물이다. 누군가 그랬다. 남자의 진정한 사랑을 받아본 여자는 평생 외롭지 않다고...어머니의 진실한 사랑을 깨닫고 비로소 자신을 사랑하게 된 채희의 경우도 틀리지 않으리라. |
| 충분히 행복할 수 있었던 남녀간의 사랑이 자식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맺어지지 못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되어버린 서글픈 이야기.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 눈물로 보낸 나의 사랑이여. 그립다. 어디로 갔는가 나의 사랑이여...' '사랑의 기쁨'이라는 노래의 가삿말이다. 나나 무스꾸리의 목소리로 몇 번 들어보았던 곡으로 나도 처음엔 노래 제목처럼 사랑의 기쁨을 찬미하는 줄로만 알았으나 가사로 확인한 결과 사랑의 슬픈 추억을 노래했다는 것을 알았다. 모대학 영문학교수 최현민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게 된 무명 번역작가이자 이혼녀인 장유진이 항상 흥얼거리던 곡이 이 사랑의 기쁨이다. 그들의 열렬한 사랑은 장유진의 딸 김채희라는 존재로 인해 끝내 맺어지지 못했다. 장유진은 딸 김채희에 대해 사랑 이상의 사랑, 자신의 사랑 즉 최현민과의 사랑보다 더 깊은 사랑이기에 장유진 본인의 사랑을 제쳐두고 자식을 택했다고 했다. 부모가 된 존재들은 이제 각자 개인만의 것이 아니다. 자녀가 태어남과 동시에 부모가 된 그들의 권리는 최소한의 것만 남겨두고 무상양도한다. 그 최소한의 권리마저도 경우에 따라 포기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관습화된 사회 통념의 틀 안에서 '나'라는 존재의 권리에 대해 침묵을 고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장유진의 경우는 좀 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혼한 남편의 교통사고의 충격으로 급성 자폐증세를 보이는 딸 채희는 장유진의 최현민과의 재혼에 대해 결코 동조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위에서 내가 부모 된 입장에서 권리포기 운운하는 것은 이 소설의 요지에 맞지 않는 것 같은 줄은 안다. 무수히 많은 예를 통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위대한 사랑이 확인되었다. 다만 이런 사회적으로 보편화된 객관적 틀에 얽매이지 말고 주관적 판단에 의한 나름의 주관적인 사랑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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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에서 96년까지 한국일보에 연재된 최인호 작가의 소설 '사랑의 기쁨'이다. 이 책을 읽고 난 느낌은 '허무'라고 하고싶다. 작가의 의도는, '사랑은 단순한 것' 이라는 것이지만, 사실 독자의 입장으로서는 상당히 빈약한 줄거리에 안개 속을 거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줄 뿐이다. 그 것은 이 소설의 태생적 한계, 즉 일간지 연재소설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채희'라는 주인공이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어머니의 남자를 찾으면서 사랑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연재소설으로는 보기드물게 긴장감이 없으며, 충분한 설명이 없어서 독자도 그저 답답해질 뿐이다. [인상깊은구절] <사랑의 기쁜=""> 역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즉 로맨스를 쓰고 싶다는 것이 내 처음의 창작 의도였었다. 다만 달라진 것은 그동안 10년의 세월이 흘렀으며 또한 처음에 쓴 것처럼 가톨릭에 귀의한 후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변화가 사랑에 대한 시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나도 모른다. 모든 작가에게 있어 사랑이야말로 불멸의 소재라면 비록 10년의 짧은 시차에 불과하지만 지금은 하늘과 땅만큼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시점일지도 모른다.사랑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