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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시를 즐겨 읽는 편이 아니다. 시에는 뭔가 예쁘고 아름다운 (때로는 암호같은) 단어들이 있다. 아무리 멋진 문장이라도 내 마음에 닿지 않으면 공허할 뿐이다. 그래도 가끔은 용기를 내어 시집을 들어본다. 난 새로운 걸 추구하니까. 그걸 시에서 찾을 수도 있으니까. 시집을 완독한 경우는 거의 없다. 소설은 나를 끌어당기는 마력같은 게 있어서 계속 읽게 되지만 시집은 그렇지 않다. 그런데 이 시집은 끝까지 읽었다. 읽다보니 어느 새 '해설' 페이지다.
이 시집에는 작고 여린 것들, 순간과 티끌, 햇빛과 바람 같은 아름답고 반짝거리는 것들에 대한 따스한 바라봄이 있다. '차고 습기찬 유령들만 기억하면 다른 유령들이 외로울 테니까요' 에서 미소지어진다. 또한 인간이 지구에 저지른 것들에 대한 비판이 있다. 자본의 속도에 도취되어 스스로를 죽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경고다.
멈춰야 해. 돌아가야 해. 그래야 서로 살아. - '마스크에 쓴 시 2' 에서 -
'춤추며 저항한다' 는 말을 나는 잊지 못한다. 그 현장을 직접 체험했다. 춤추며 노래하며 즐겁게 저항했다. 그게 가능할까? 가능했다. 시인이 그리는 따뜻한 연대 안에서. 밝음과 어두움, 빛과 그림자(그늘), 그 둘 모두 따스하게 바라보는 용기. 그렇게 시인은 현실에 닿아 있다.
'마스크에 쓴 시' 열 네 편을 읽으며 많이 아팠다. '오늘 만난 시집의 가제를 '평의회의 아름다움'이라고 적어두었다', '쉬잇! 조심조심 동심 앞에서는' 을 읽으며 따뜻해졌다. '사랑하여 쓰게 된 가계부', '울어주는 일, 시를 쓰는 일' 을 읽으며 공감했다.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 그건 치유와 재생의 출발점일 것이다. 슬픔과 기쁨, 불행과 행복, 여린 것과 강한 것은 모두 이어져 있다. '살처분', '기후변화', '코로나 19'로 혼란스런 나날이다. 이 시집은 그것들을 온전히 드러내고 따스하게 안아주고 있다. 그래서 더욱 짠하고 비릿하고 새싹같다.
세상 별거 없다 안다 그래도 좋다 그래서 좋다 이런 순간이
낡아가는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 장소는 낡지 않아. 늙을 뿐이지. 고통도 허기도 늘 새롭게 당도한다네.
늙어가는 것과 낡아가는 것, 이 둘의 차이는 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낡아가는 것보다 늙어가고 싶다. '시인 이모의 소임'(짖는 어린 조카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 '내가 돌본 줄 알았는데 나를 돌본 게 당신들이라는 천명(天命)이 곁에 늘 있었다는 깨달음'은 낡아가는 게 아니라 늙어가는 것이리라. 또한 늙음과 새로움은 관련이 적어 보인다. 하지만 늙음을 한발짝 떨어져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은 새로움의 연속이리라. 늙음은 미래라는 시간을 경험하는데 필요한 티켓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들이 모여서 미래를 이룬다고 볼 수도 있지만, 미래라는 희망이 없다면 현재를 살아가기 힘겹다. 아이들이라는 미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꺼이 늙어갈 수 있는 것이다. 지금껏 우리를 돌봐준 지구를 생각한다. 지구가 온전해야 우리의 미래도 온전할 테니까. 우리 모두는 별의 티끌이었으니까.
오늘 시집 한 권을 읽고 리뷰까지 썼으니 기분이 좋다(뿌듯). 아무 것도 할 게 없는 날이어서, 아무 거나 할 수 있는 날이었다. 선풍기 바람 속에서 시집 몇 페이지를 읽었으니 이제 '아침과 저녁의 산책을 출생 이전처럼 하는 것'을 해봐야겠다. -------------------------
오늘은 없는 날
아무것도 안 하는 중이에요. 행복하고 싶어서
정치 마케팅과 상품 마케팅에 유혹당하지 않게 말 많고 현란한 매체들에 귀 닫고 눈 감아요. 돈이든 권력이든 세력 불리는 일에 중독된 사람들 필요와 정의 타령에 넘어갈까봐 하늘을 봐요. 조용히 더 조용히 오늘은 없는 날
눈 뜨니 오늘이 있어 없는 날이라 부르기로 해요
없는 날에 할 일은 바람 속에서 시집 몇 페이지를 천천히 읽고 아침과 저녁의 산책을 출생 이전처럼 하는 것
지구가 우주의 일원으로 오늘을 걷고 운 좋게 지구에 탑승한 오십년 차 승객인 나도
지구와 함께 걸어요 지구의 입장에선 자갈돌 하나인 나 우주의 입장에선 티끌 한점도 안 되는 나 이토록 작은 존재에 허락된 하루를 오직 감사하면서
오늘은 없는 날 행복하고 싶어서 구름 버튼을 눌러 당신 목소리를 들어요 나야, 바람이 좋아 나와 함께 당신이 살아 있어 이렇게나 좋아 더 많이 아낄 수 있어 더 없이 좋은 날 사랑하는 일 말곤 아무것도 안 할래
어제도 내일도 없는 오늘 많이 행복해서 당신과 함께 산으로 가요 없는 날의 자유 푸른 바람 속을 무한무한 걷고 달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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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김선우 시인의 내 따스한 유령들를 보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본편의 대략적인 내용과 개인적인 감상이 포함되어 있으니 스포일러를 싫어하는 분들은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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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읽을 때 독자마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시에 대한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시가 나에게 감동을 주는지, 어떤 시가 나에게 충격을 주는지, 일정하게 받아들이는 선을 긋고 경계를 만들어 자기만족을 채우기에 급급할 때 김선우의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을 보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항상 시를 볼 때는 시어가 어떤가? 시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마치 집착을 달고 사는 환자처럼 매달리던 것이 시를 읽는 법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시집을 읽으며 이런 집착들은 무척 부질없는 시를 읽었다는 자기 합리화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시어 하나에서 느껴지는 섬세함과 그 시어가 보이는 선명한 주제의식은 시 한 편을 읽는데 큰 의미가 없었습니다. 마치 따스한 햇살 같은 자연스러운 이야기들을 마음속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나를 돌아보게 하는 무척 안정적이고 포근한 인상이 내 따스한 유령들의 전반적인 분위기였기 때문입니다. 치열한 삶의 경쟁에 매달리는 내가 아니라 자신 주변을 맴도는 작은 먼지 같은 것들이 오히려 인간적이고 아름답다는 것을 느끼며 무척 충격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에 눈길 한번 주지 않았나 생각하니 시를 읽고 있는 자신이 무척 부끄럽게 느껴지는 한 권의 시집이라 할 수 있었습니다. 전반적으로 안온한 인상을 주는 시집이지만 그 속에 담긴 섬뜩한 시선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김선우 시인의 시집, 내 따스한 유령들이었고 최근 읽은 시집 가장 인상적인 시집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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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신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한자 詩는 言과 寺의 결합어이다. 즉 시란 신들의 거처인 사원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래서 시인은 신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다. 다소 억지스럽지만 시인이 신과 가까운 증거는 또 있다. 神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강조해서 말해 보라! 신, 시~~ㄴ ······~> 『시인』이 된다. ㅎㅎㅎ 김선우의 시를 한 편 읽어본다. 슬픔을 대하는 지혜/김선우 아침의 할머니가 말했어 슬픔은 숭고한 감정이란다 슬픔을 느낄 줄 알기에 인간은 보다 인간다워졌지 슬픔이 찾아오면 깊이 포옹하렴? 점심의 할머니가 말했어 슬픔을 너무 오래 방치하면 늪이 된단다 슬픔의 늪은 전염력이 강해서 한 번 빠지면 나오고 싶지 않아지지 습관이 된 슬픔은 인간을 나약하게 한단다? 저녁의 할머니가 말했어 슬픔을 깊이 느끼되 슬픔의 끝을 생각하렴 진짜 슬픔은 깊고 짧다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주어 슬픔을 벗어나는 지혜를 연습하렴 (시집 <아무것도 안 하는 날> 중에서) 슬픔에 사로잡힌 어린 영혼에게 건네는 신의 따뜻한 말씀이다. 김선우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이다. (사실은 여덟 번째 시집이다. 세월호 후 청춘의 학생들을 위한 시집 <댄스, 푸른푸른> 과 <아무것도 안 하는 날>이란 제목으로 두 권의 시집을 냈다) 시인 김선우는 지구의 여신인 가이아 신과 하나가 됐다. 가이아 여신의 고통과 전하는 말씀을 모든 존재에 깃든 신령(정령)들을 통해 읽으라고 부탁한다. 비에 묻어오는 아주 작은 찰나의 유령들, 나뭇잎 하나에 깃든, 한 줄기 바람으로 하늘하늘 나는 아주 작은 유령. 그리고 어린 아이, 고양이, 강아지, 숨어 있는 대숲의 정령들까지.... 또 우리 곁에 찾아온 바이러스 유령들까지. 저 멀리 까마득한 날로부터 뭍 존재들과 인간들에 깃든 신령! 사람들이 그들의 존재를 잊어버린 후 다가오는 위기...... 시인은 말한다. 모든 존재하는 것들은 연결되어 서로 의존해 있다. 나의 존재는 그들에 빚지고 있음을.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고 모두가 자유롭게 살아야 한다고... 사랑이야말로 자유를 완성! 각성한 이들의 사랑! 연대! 시인은 노동자들의 고통에, 세월호와 함께 스러져간 어린 영혼들에, 그리고 죽어가는 강물, 그 속에 깃든 숱한 생명들에 온전히 스며들어 노래해 왔다. 수년 전엔, 신라시대의 원효 스님을 소환하여 『발원』이란 제목의 소설을 냈다. 삶의 완성, 중생 속으로 합일해 간 원효를 통해 이 시대를 치유할 방도를 발원했다. 김선우 시인은 세상에 아픔에 깊이 스며든다. 마치 유마경의 주인공 유마거사 처럼 "세상이 아프니 나도 아프다."라고 말하는 듯 하다. 세상의 모든 아픔들을 위로하는 일, 곧 시를 쓰는 일. 사랑과 자유를 찾아 온 시인이 지천명의 나이를 지나며 얻은 天命에 귀 기울여 본다. <내 따스한 유령들>을 소리내 읽어 본다. 시 읽기를 통해 세상의 아픔을 각성하고 연대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자고 권함. 이번 시집 속에서 한 편을 골랐다. 비의 열반송/김선우 당신이 아는 나의 이야기도 당신이 모르는 나의 이야기도 당신이 알 수도 모를 수도 있는 나의 이야기도 내가 알거나 모르는 당신의 이야기도 비로 내린다 비가 내린다 누군가의 피로 자기 피를 만들지 않는 식물들의 귀가 커진다 어떤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와 함께 내리는 날 여기 ? 안쪽에선 비 오는 날이라 하고 여기 ? 바깥에선 위로와 정화의 날이라 한다 당신이 아는 나의 이야기도 당신이 모르는 나의 이야기도 당신이 알 수도 모를 수도 있는 나의 이야기도 내가 알거나 모르는 당신의 이야기도 비로 내린다 비가 내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