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영원한 본질’을 구성하는 피라모스와 티스베 이야기는 “붉은 열매로 우리 사랑을 기억해 주세요.”라는 스위트한 제목을 달고 있다. 갈라진 벽 틈으로 연인의 목소리를 듣고자 하는 간절함이 엿보이는 그림 「티스베」를 보라. 사랑에 빠지면 흔히 콩깍지가 씐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연인에 관계된 것이라면 촉각을 곤두세워 자신의 모든 감각을 총동원할 수밖에. 한 번이라도 찐사랑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피라모스는 바빌로니아에서 가장 잘생긴 총각이고 티스베는 가장 아름다운 처녀였습니다.”(72쪽) 어려서부터 이웃하여 함께 성장한 둘의 우정은 어느덧 사랑으로 변한다. 하지만 양가 부모들의 반대로 더 애틋하고 강렬해질 수밖에 없는 그들의 러브스토리는 처음부터 결말까지 <로미오와 줄리엣>과 너무나 유사하다. 그렇게 둘은 온몸이 달아올랐고, 그 절박함과 간절함은 마침내 벽의 갈라진 틈을 발견해낸다. 애달픈 사랑을 비유하듯 벽은 그들을 가로막고 있지만 사랑의 대화만은 어쩌지 못하고 그 수많은 시간들을 수수방관한다.
야반도주한 티스베는 샘에서 목을 축이던 암사자를 만나 황급히 도망치다 그만 베일을 떨어뜨리는데, 어둠 속에서 흐느적거리던 베일을 사자가 사정없이 물어뜯는 바람에 뒤늦게 그녀를 따라 나온 피라모스는 그 피 묻은 베일을 보곤 연인이 죽은 걸로 오해하고는 단검으로 자살하고 만다. 그때 그가 흘린 피가 흰 뽕나무를 온통 검붉게 물들인 이후로 뽕나무 열매인 오디의 색깔이 검붉은 색을 띠게 되었다고 한다. 불행하게도 티스베 역시 죽은 연인을 발견하고 절규하며 마지막 소원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 - 불쌍한 부모님, 우리 둘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세요. 일편단심 서로 사랑하다 한날한시에 죽으니, 우리 둘을 한 무덤에 묻어 주세요. 그리고 뽕나무여, 너의 검붉은 열매로 사람들이 우리의 죽음을 기억하게 해 다오.”(76쪽) 왜 부모들은 소를 잃고 나서야 외양간을 고치는 건지, 원. 티스베의 부모는 죽은 딸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준다. 시인 토머스 모어는 둘을 갈라놓은 ‘벽’을, 포르투갈의 카몽이스는 두 사람의 이야기와 뽕나무 열매의 전설에 대한 내용을 자신들의 시에 담았다고 한다.
글라우코스와 스킬라 이야기는 신화의 환타지를 십분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둘의 이야기는 어딘가 <인어 공주>나 <백설 공주>와 조금씩 닮아 보인다. 여기서 마녀 키르케가 등장하는데 그녀는 자신이 짝사랑하는 이(글라우코스)가 다른 여인(스킬라)을 사랑하자 질투에 눈이 먼 마법사 캐릭터다. 원래 어부였던 글라우코스는 어느 날 풀밭 위의 물고기들이 물속인 듯 팔팔하게 헤엄치는 걸 보고는 풀밭의 영성을 의심해 자신도 그 풀을 뜯어 먹고는 심한 갈증을 느껴 강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그런데 웬일인지 강물의 신들은 그를 환대하다 못해 동료로 받아들이고는 그를 인어의 형상으로 변신시켜 주는데, 글라우코스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굉장히 흡족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물가에서 다리를 씻고 있는 스킬라에게 한눈에 반해 섣불리 드러낸 자신의 모습을 보고 기겁하며 도망가는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마녀인 키르케에게 도움을 청하러 간다. 하지만 그를 도와줄리 만무했던 키르케는 자신의 (비틀린) 조언에도 불구하고 오직 스킬라를 향한 사랑의 염불만을 늘어놓는 그를 보고는 분노를 불태우며 독초로 만든 약을 스킬라가 즐기는 바다에 붓고는 주문을 외운다. 그리고 이를 모르는 스킬라는 독초 가득한 물속으로 뛰어든 후 바다 괴물로 변하더니 뱃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우게 된다. 그렇게 그녀는 오디세우스의 동료 여섯 명을 잡아먹고 아이네이아스의 배를 난파시키려 했다고 전해진다.
시인 존 키츠는 「엔디미온」에서 다른 결말을 적고 있는데, 글라우코스가 키르케의 유혹에 넘어갔다가 그녀의 잔혹한 면모를 목격하고는 황급히 도망치려다 붙잡혀 노쇠한 모습으로 천 년을 지내야 하는 저주에 걸린 채 바닷가로 돌아갔다가 스킬라의 시체까지 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글라우코스의 다음 행보가 기가 막힌다. 물에 빠져 죽은 모든 연인들의 시체를 천 년 동안 모으다 보면 신들이 아끼는 청년이 나타나 자신을 도와줄 거라 믿었던 그 앞에 엔디미온이 나타나 그에게 젊음을 되찾아 주고 스킬라를 포함한 모든 익사한 연인들을 되살려 주었다는 것이다. 가장 흥미롭게 읽혔던 대목 중 하나다.
‘죽음도 초월한 사랑’ 이야기는 신화에서는 흔히 언급되는 주제다. 그중 덜 알려진 케익스와 알키오네의 러브 스토리에는 여러 신들이 등장하는데, 타나토스(죽음의 신), 히프노스(잠), 모르페우스(꿈, 진통제로 쓰이는 모르핀의 유래) 등 이들은 모두 카오스의 자식인 닉스(밤:夜)의 자식이거나 후손이다. 케익스는 테살리아의 왕으로 헤스페로스(샛별, 금성의 신)의 아들답게 준수한 용모였고, 그의 아내인 알키오네 역시 바람의 신인 아이올로스의 딸이었다. 어느 날 케익스는 형의 죽음과 함께 기이한 일들이 잇따르자 바다 멀리에 있는 카를로스로 가 아폴론의 신탁을 받기 위해 부득이 아내와 이별하게 되었는데,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도 남편 소식이 없자 그를 안타깝게 여기던 헤라 여신이 이리스(무지개 여신)를 히프노스에게 보낸다. 이에 히프노스는 아들 모르페우스를 불러 케익스로 변신해 알키오네의 꿈에 나타나 배가 난파해 그녀의 남편이 죽었음을 알려주라고 한다. 꿈에서 깬 알키오네는 방파제 아래 파도에 휩쓸려 온 남편의 시신을 보기 위해 어느 순간 새처럼 날아오르게 되었고, 이 비극적인 사랑을 가엾게 여긴 신들은 두 사람을 물총새로 변신시켜 주었다고 한다. 후에 그들은 바람의 신인 알키오네의 아버지의 보호 아래 새끼들까지 낳아 행복하게 살게 되었다고. 아래는 이 물총새 부부 이야기를 담은 「그리스도의 탄생에 부치는 찬가」의 일부다.
‘사랑이 다가오면 그 품에 안겨라.’에서는 노파로 변신한 계절의 신 베르툼누스의 지혜에 감탄한 동시에 그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던 포모나가 부러웠달가. 특히 베르툼누스는 온갖 야채와 식물, 꽃 등으로 표현한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아르침볼도의 작품 제목이기도 하기에 더 인상적이었다. 그런가 하면 생소한 이름의 이피스와 아낙사레테는 베르툼누스가 포모나에게 자신의 절박한 사랑을 전하기 위해 차용한 액자 구성의 이야기로 자신보다 훨씬 좋은 가문의 유부녀를 사랑한 몇몇 문학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어쨌든 주인공의 결말은 해피엔딩. 모든 수작을 마무리하고 본모습으로 돌아온 베르툼누스의 수려한 말솜씨에 반한 포모나는 마침내 그의 사랑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아레스의 신성한 뱀을 죽인 벌로 후손들이 끔찍하게 죽어 나가자 카드모스는 스스로 뱀이 되길 청하고, 그의 아내(하르모니아: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딸)도 자청해 남편을 따라 뱀으로 변하는데, 테바이의 선조 역시 뱀 이빨에서 태어났다. 그림 「카드모스와 하르모니아」는 성경의 이브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작품 설명에 따르면 하르모니아는 조화의 여신으로 불화의 여신인 에리스와 대척점에 있다고 한다. 이렇듯 뱀은 사악한 이미지뿐만 아니라 신성한 동물로 여겨지는 만큼 양가감정이 들곤 한다. 뭔가 불길하거나 신비로운 느낌?
아테나이에서 발생한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오비디우스가 쓴 것이라고 하는데, ‘미르미돈’은 참나무에서 떨어진 민족으로 트로이 전쟁 때 아킬레우스가 이끌고 간 군대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킬레우스의 조부인 아이아코스로 그를 찾아온 친구, 케팔로스가 그에게 던진 물음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러고 보면 신화도 꿈을 자주 차용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인간은 소원하는 바를 꿈을 통해 말하고 신이 이를 실현시켜 주는 식이랄까. 물론 전제조건은 있다. 인성과 선한 행동 그리고 신들에게 얼마나 충실했는가. 이쯤 되면 딱 권선징악인데. 어쨌든 아이아코스는 신들에게 후한 선물도 받고 죽어서는 저승의 3대 심판관이 된다.
후반부로 갈수록 반갑게도 아는 내용이 많아 인용된 문학 작품과 명화를 감상하는데 주력했다. 모처럼 풍요로운 감정을 느끼게 해 주는 책을 만났다. 독자로서 결코 흔하지 않은 행운이라 할 수 있겠다.
|
|
생생한 번역과 강대진 교수의 깊이 있는 해설 덕분에 신화를 새롭게 느낄 수 있습니다. 줄거리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신화 속 인물과 사건의 의미를 차근차근 풀어주어 읽는 재미와 생각할 거리를 함께 줍니다. 고전이 낯선 사람도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