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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말 출생인 토머스 불핀치는 원래 고전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은행에 다니며 유럽 고대 신화를 정리해 미국인들에게 서구 문명의 근간을 소개했다는 독특한 이력도 눈에 띈다. 현대에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는 읽히는 신화집이 바로 그의 저서가 된 데는 이 책을 읽고 나면 백배 공감되리라 생각한다.
짐작하다시피 본서를 통해 우리는 고대의 여러 시인뿐만 아니라 그리스 로마 신화를 주제로 한 많은 문학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중 ‘사포’는 ‘열 번째 무사’라고 불렸던 그리스 최초의 여성 시인이라고 한다. 여러 문학 작품과 더불어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은 책에 실린 도면 역시 무척 인상적이라는 점이다. 덕분에 환상적인 작법의 영국의 존 워터 하우스도 기호 화가 리스트에 추가되었다.
다른 관련 도서와 함께 동시에 읽다가 본서를 완독하려고 보니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대해 개괄적으로 짚어봐야 할 필요성을 느껴 서양 고전학자인 김헌 교수의 동영상 강의([최강1교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들었다. 모두가 알지만 원문을 제대로 읽어본 이는 별로 없다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활약을 다룬 전쟁사)와 『오디세이아』(트로이 전쟁 후 영웅 오디세우스의 약 10년간에 걸친 귀향 모험담) 20세기 프랑스 문학의 거장인 르몽 크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모든 위대한 문학 작품은 『일리아스』거나 『오디세이아』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제목과 줄거리만 전해지는 다른 작품들과 달리 트로이 전쟁 서사시 중 온전히 전해지는 유일무이한 문헌이라고 한다. 그 두 작품의 저자인 호메로스는 고대 그리스 최대의 시인으로 트로이 전쟁 이후인 암흑기(BC1,100~750)를 지나 상고기(BC750~480) 초기에 활약했다고 한다. 참고로 트로이 전쟁은 그 훨씬 전인 미노아 문명(BC3,000~1,100)에 이은 미케네 문명(BC1,600~1,100)이 쇠퇴할 즈음에 발발한 전쟁이다. 이 전쟁은 미케네의 왕인 아가멤논이 스파르타 왕이자 동생인 메넬라오스를 위시해 그리스 연합군을 결성해 동생의 아내 헬레네를 납치한 파리스(프리아모스 왕의 아들, 트로이의 왕자)의 나라인 트로이를 침략한 전쟁이다.
고대 시인들과 트로이 전쟁, 그리고 이후 오디세우스와 아이네이아스의 모험이 본서를 구성하고 있는 주 내용이다. 먼저 트로이 전쟁의 주역인 아킬레우스는 바다의 신 테티스와 인간인 펠레우스 사이에서 태어난 반인반신이다. 테티스는 제우스가 눈독 들인 신이었지만 프로메테우스의 예언, 즉 그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신에 버금갈 거라는 것 때문에 제우스조차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미모의 여신이다. 이를 못내 아쉬워하던 제우스는 그녀를 인간에게 시집보내지만 그녀의 부탁만은 잘 들어주었다. 현대에 치명적인 약점이라 일컫는 아킬레스건은 바로 그녀의 아들 아킬레우스에 유래가 있지만, 사실 그건 아들을 불사의 신으로 만들고자 한 테티스의 치명적인 실수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녀가 영원불멸의 스틱스 강에 아들의 발꿈치를 잡고 담갔기 때문에 아들이 아킬레스건에 화살을 맞고 죽게 되었으니 말이다.
트로이 함락의 최대 공신은 이타카의 꾀돌이 오디세우스다. 그는 나무를 모아 초대형 목마를 만들어 그 안에 그리스 연합군의 병사를 숨긴 뒤 후퇴를 위장한다. 대형 목마를 불신한 몇몇 신하들은 그를 불태우라 권하지만, 프리아모스 왕은 목마를 트로이 성城안으로 가져와 밤늦도록 곤드레만드레 승전 파티에 열을 올리고, 그렇게 모두가 잠든 사이를 노린 그리스군은 목마 밖으로 나와 순식간에 트로이를 포위하고 함락시킨다.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 왕족으로 앙키세스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이다 산에 버려진 채 5살까지 요정들에 의해 양육되다 5살 이후에 앙키세스가 데려와 트로이에서 길렀다고 한다. 사촌 헥토르와 함께 트로이 전쟁에서 활약한 전사였던 그는 전쟁에서 살아남은 유민들과 가족들을 데리고 트로이를 탈출해 트라키아 해안에 도시를 건설하려는데 기이한 일을 겪고 그곳을 떠나 델로스 섬에 상륙한다. 하지만 옛 조상을 찾으라는 아폴론의 신탁을 받고 크레타에 도시를 건설하지만 환자가 속출하는데다 좀처럼 곡식이 맺히지 않던 중 트로이 종족의 조상인 다르다노스가 처음 이주했던 헤스페리아로 가라는 꿈을 꾼다. 그 후에도 하르피이아(여자 얼굴에 새 몸통을 가진 괴물)가 사는 섬, 헥토르의 미망인 아내 안드로마케(그리스 장군 헬레노스와 재혼)가 있는 에페이로스, 심지어 저승에 가 아버지를 만나기도 하고 그곳에서 페르세포네, 헤카테 그리고 에리니에스 등 지옥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기도 한다. 오이디푸스 못지않게 험난하고 기나긴 모험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영웅들에 비해 덜 알려져서인지 아이네이아스의 신화는 유독 새롭게 다가왔다. 그런 만큼 가장 흥미롭게 읽혔던 부분이기도 하다. 이밖에도 로이코스, 카메나이, 아켈로오스, 알케스티스, 엔디미온, 아키스 등 낯선 인물들의 등장이 1권보다 2권이 좀 더 가독력이 좋았던 이유다. 특히 엔디미온은 달과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가 반한 아주 잘생긴 양치기 청년이다. 제우스는 그에게 영원한 젊음과 잠을 내려 주었고, 그러느라 돌보지 못한 그의 양 떼와 재산을 아르테미스가 지키고 돌봐 주었다니 문득 세 가지 생각이 든다. 얼마나 미남이길래? 제우스는 그만큼 아르테미스를 아꼈구나, 그렇다고 영원히 잠들게 할 것까지야... 그럼 아래, 엔디미온을 노래한 두 시인의 시와 함께 위의 장면을 상상해 보자.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 책은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외에도 고대 아폴로도로스의 『도서관』, 에우리피데스의 『엘렉트라』, 밀턴의 『실낙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학 작품을 인용하고 화가와 명화에 대한 부연 설명에 간간이 계보까지 실어 고전과 문학, 그리고 예술을 아우르는 일석다조의 장점을 가지고 있다. 번역도 매끄럽고, 어디에 역점을 두고 읽더라도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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