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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 4 : 관도에서 갈린 운명> 이희재 / 휴머니스트 (2016) [My Review MMCCCXXV / 휴머니스트 53번째 리뷰] 고품격 월간 리뷰전문잡지 <책이 있는 구석방> 일백쉰네 번째 리뷰는 조조와 원소가 운명의 대결을 벌이는 가운데 유비 삼형제는 흩어졌다 모이길 반복하며 떠돌이 생활을 면치 못하는 <이희재 삼국지 4>다. 진수의 <삼국지>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는 비교하며 읽으며 '팩트 체크'를 하는 것은 이제 한물 갔다. 소설 <삼국지>를 읽으며 역사 공부가 가능한지 따지는 것도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AI 인공지능으로 언제든 '검색'이 가능한 시대가 되었는데, 누가 그 방대한 분량을 일일이 따지며 읽겠느냔 말이다. 그러니 이젠 <삼국지>와 <삼국지연의>를 별개의 감상으로 읽어도 무방하다. 소설을 읽고 '역사'에 관심을 높이고, 역사를 읽으며 '소설'이 지닌 의미를 되새기는 것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삼국지>를 헤아릴 수 없이 읽은 나이가 되자 둘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더 무의미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럼 책 속으로 풍덩 빠져 보자. <이희재 삼국지 4> 관점 포인트 : 조조의 품에서 벗어난 간신히 벗어난 유비는 서주에서 세력을 정비하며 '원술의 북상'을 기다렸다 끝장을 낸다. 그렇게 원술은 한껏 욕심을 부려 '황제'가 되었지만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비명횡사하고 만다. 이렇게 여포에 이어 또 한 명의 영웅이 사그라들며 서서히 '관도대전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서주에서 모처럼 '재기'를 도모하던 유비가 조조군에 괴멸 당하며 삼형제가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었다. 조조 입장에서 유비가 원소와 손을 잡고 양방향에서 협공을 당하는 것이 가장 껄끄러웠기 때문이다. 더구나 조조는 여포 토벌 당시에 서주의 백성들이 유비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모습을 직접 보았다. 그렇기에 유비가 서주에 뿌리를 탄탄하게 내리고 세력을 강하게 키우기 전에 짓밟아주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그런 까닭에 유비가 재정비를 하기도 전에 조조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유비를 공략하기 바빴다. 조조로서는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조조가 서주를 공격하려 원정을 나섰을 때 '본진'에 해당하는 허도를 원소가 찌르기라도 하면 조조는 꼼짝없이 대군을 회군해서 허도를 지키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유비도 이를 간파하고 원소에게 동맹을 제안하고, 조조가 서주 공략에 나서면 허도를 공격해주십사 요청했던 것이다. 그런데 원소는 그릇이 작은 인물이었다. 천기를 읽어내는 재주가 없어서 고작 '귀염둥이 셋째 원상이 고뿔에 걸렸다'는 이유를 대며 천재일우의 기회를 날려버리고 만다. 유비가 조조의 대군을 서주에 묶어둔 사이에 원소가 70만 대군을 이끌고 허도를 공략해서 헌제를 가로챌 수만 있었다면, 천하를 차지한 것은 조조가 아니라 원소였을텐데 말이다. 암튼 원소는 그 좋은 기회를 날려버리고 만다. 덕분에 유비는 죽을 맛이다. 조조는 인재가 많고 유비는 동원할 수 있는 군사 수가 턱 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변변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장비는 단 한 번의 기습공격 실패로 '피트 아웃' 당하고, 유비는 원소 진영으로 '피트 인' 했으며, 관우는 유비의 처와 식솔을 데리고 '하비성'에서 옴싹달짝할 수 없는 곤궁한 처지에 몰리고 만다. 여기서 조조는 '인재 욕심'을 부려서 관우를 자신의 부하로 삼고자 하지만, 결과적으로 관우는 다시 '유비의 품'으로 가버리고 만다. 소설에서는 이 대목에서 '오관육참장'이니 '단기천리'니 하면서 관우의 명성을 드높이지만 '정사'에는 없는 '허구적 묘사'에 불과하다. 관우가 안량과 문추를 단 칼에 죽였다는 내용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문추를 죽인 기록은 있지만, 안량과 맞대결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나관중은 왜 이렇게 관우를 띄워 주었는가? 이유는 딱 하나다. <삼국지>의 주인공으로 유비를 낙점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유비와 의형제를 맺은 관우와 장비의 '분량'을 늘일 수밖에 없었고, 기왕 늘이는 것이라면 낭만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띵호와~ 아니겠는가. 그래서 호뢰관에서 화웅과 대결할 때에도 관우는 조조가 권하는 술 한 잔조차 "이 술이 식기 전에 화웅의 목을 가져오겠다"는 명대사를 남긴 것이다. 이 역시 '정사'에는 없는 기록이다. 애초에 반동탁연합군에 '공손찬'이 참가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다. 그러니 아무런 지위가 없던 유비가 '공손찬 소속의 별군'으로 참가했다는 묘사조차 믿기 힘든 대목이다. 그래서 반동탁연합군이 동탁군과 싸워서 빛나는 전공을 세운 군웅은 '손견'이 유일하다. 그러니 여포를 상대로 유비 삼형제가 나서서 대등하게 싸웠다는 내용조차 '사실'이 아닌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따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소설 <삼국지>는 '그 자체'로 즐기면 될 뿐이다. 기왕 유비가 주인공이니 악당 조조가 천하를 차지하고 온갖 패악질을 다할 때, 착한 영웅 유비가 나서서 조조를 혼쭐 내줬다는 내용에 심취해서 읽으면 그 뿐이다. 왜냐면 고전소설 나름의 '주제'와 '교훈'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조와 원소의 운명을 가르는 '관도대전' 와중에도 유비와 관우, 장비, 심지어 조자룡까지 등장하여 이야기를 맛깔나게 진행시키는 것이다. 이런 맛깔난 '진행'이 아니라면 아무리 '관도대전'이라고 할지라도 지나치게 진지하고 지루할 따름이다. 진수의 <삼국지>가 그렇다. 한편, 손책은 장강 일대를 평정하고 '소패왕'이라는 별명답게 엄청난 활약을 한다. 하지만 조조와 원소가 한창 싸우고 있는 '관도대전'의 판세에 캐스팅보트를 선사할 수 있는 자리에 있었기에 챙길 수 있는 건 다 챙기는 노련함까지 보여줬지만, 과도한 욕심을 부리다 조조와 척을 지게 되고, 그로 인해 '사소한 원한'을 쌓은 것이 화근이 되어 자객의 습격을 받아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우길'이라는 도사마저 죽음으로 내몰았다가 끝내 자신의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하고 만다. 이렇게 해서 동오에는 손견, 손책에 이어 손권이 등장하게 된다. 나가는 글 : 결국 '관도대전'의 승패는 조조의 완승으로 끝맺게 된다. 원소는 70만 대군과 수많은 인재를 거느리고도 10만도 채 되지 않는 조조에게 패배하며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고, 후계자를 둘러싼 내홍을 겪으며 '원씨 가문'은 아예 멸족이 되다시피 역사속에서 사라져버리고 만다. 이제 조조는 명실공히 '하북의 패자'가 되어 중원을 독차지하게 된다. 이제 남은 군웅이라고는 동오의 손권과 형주의 유표, 익주의 유장, 한중의 장로, 서량의 마등과 한수 뿐이다. 그리고 아직도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지 못한 유비가 남았다. 시리즈 4권이 지나도록 유비는 '근거지' 하나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돌고 있다. 그런데도 이렇게 가진 것 없는 유비의 곁에 관우와 장비, 미축, 손건, 간옹, 그리고 새로 합류한 조운, 관평, 주창 등등 점점 세를 불려나간다. 이런 유비의 행보를 보면서 '끈끈한 유대감' 밖에 남지 않은 무리라면서 '조폭 집단' 같다는 혹독한 평가를 내리는 이들도 많다. 뭐, 나중 일이긴 하지만 관우와 장비의 죽음 때문에 유비는 '사사로운 정'을 내세워 국가간의 전쟁을 선포하는 군주답지 못한 행동을 보이는 것이 '결정적 증거'라면서 '빼박 조폭'이라고 주장한다. 딴에는 그렇다. 한 나라의 수장이 '동생의 죽음'을 이유로 국가대전을 벌이며 온 국민들을 전장터로 내몰면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겠냔 말이다. 이런 유비의 모습을 보고 '의리의 사나이' 정도면 모를까? '착한 영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점에서도 유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나관중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악당으로 자리매김한 조조에 비해서도 유비의 역량은 한참 부족해 보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비가 세운 촉한은 삼국 가운데 가장 먼저 망하지 않느냔 말이다. 조조, 손권, 유비 중에서도 '유비'가 가장 먼저 죽는다. 가장 일찍 죽는 '주인공'도 주인공이라 부를 수 있겠느냔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나관중이 살던 시대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원말명초의 시기 말이다. 한족에게는 치욕스런 시대였을 것이다. 오랑캐라 불리던 '몽골족'에게 나라를 송두리채 빼앗기고 온갖 차별정책으로 유린 당했던 한이 서려있던 시절이었다. 나관중은 이런 시대를 살며 '한족 동포'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이야기를 해줄 필요성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럼 한족 최고의 전성기는 언제이고, 최고의 영웅은 누구였을까? 강력한 제국으로는 당나라 태종을 꼽을 수 있겠지만, 당은 여러 민족을 아우르는 정책을 내세웠다. 물론 '한족' 중심이었기에 최강국이었다는 명분은 세울 수 있었지만, 오랑캐를 혼쭐(?) 내줄 수 있는 영웅으로는 마땅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한족 최고'이자, '한족 최초' 타이틀을 갖고 있는 '한나라 유방'이 적임이었다. 그래서 유비의 외모마저 바꿔 버렸다. 유방이 귀가 컸다는 기록이 있었기에 유비의 귀도 어깨까지 내려오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렇게 주인공이 정해졌다. 한고조 유방을 꼭 닮은 '유비'로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천하 통일의 주역은 단연 '조조'였기 때문이다. 유비의 촉한은 별다른 역량도 뽐내지 못하고 제풀에 망해버렸다. 이래서는 주인공답지 못하다. 그럼 주인공이 죽고 나라가 멸망한 다음에도 길이길이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바로 '정통성'이다. 비록 살아생전에 이루지는 못했지만 죽고 망한 뒤에도 오롯이 살아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는 '정통성'을 세워주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촉한정통론'이다. 비록 천하 통일한 것은 조조가 세운 '위나라'지만, 1000년 뒤 오랑캐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한족'이 되살려내야 할 나라는 '한족의 뿌리'인 한나라이고, 후한이 멸망한 뒤에는 '촉한'으로 이어지고, 그 뒤를 '송'과 '명'이 이어간다는 정통론을 다시 세운 셈이다. 그런 남은 것은 '촉한정통론'이 옳다는 그럴 듯한 이야기가 마련되어야 했다. 역사사실 자체를 바꿀 수는 없으니 '소설의 허구성'을 빌어서 바꾸면 된다. 허구적 사실에 기대어 '유비 정통'을 세워려니 자연스레 '조조 역적'으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래서 날조(?)한 이야기가 바로 '여백사 사건'이다. 조조를 동탁을 암살하려 했던 의인이자 영웅이 아닌 자신의 목숨을 살리려고 아버지뻘 되는 사람조차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죽여버리는 냉혈한이자 '간웅'으로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희생자가 생겼다. 유비를 영웅답게 만들기 위해 관우를 너무 띄워주다보니 상대적으로 '장비'는 술주정뱅이에 사고뭉치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오로지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 말이다. 아무리 영웅이라도 '빈틈'이 있어야 인간미가 보이는 법인데 '정통성'을 세울 인물에게 빈틈을 보이게 할 수는 없으니, '주변 인물' 가운데 한 명을 모지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게 바로 '장비'였던 것이다. 그러면 장비는 모지리가 되어도 충분(?)할 인물이었는가? 도원결의 당시에 장비는 15살로 중2병이 한창일 나이였단다. 하지만 공부도 착실하게 잘 했고, 무예도 출중했고, 계책도 잘 쓰는 팔방미인이었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술'을 마셨다는 기록 자체가 아예 없었단다. 그러니 소설 속에서 장비가 술을 마시고 실수를 저지른 기록은 전부 뻥이다. 그리고 간간히 보이는 뛰어나게 성공한 계략은 장비의 본래 실력이고 말이다. 그리고 장비가 한 실수로 묘사된 것들은 대부분 '유비'와 '관우'가 했을 거라는 추측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이렇게 유비를 위한, 유비에 의한 '촉한정통론'을 소설 속에서 어떤 의도 썼는지 살펴보면서 읽어나가는 맛도 <삼국지>를 새롭게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다음에 계속. #리뷰 #에세이 #이희재삼국지 #휴머니스트 #촉한정통론 #억울한장비 #책이있는구석방 #추천도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