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제작인 익명의 섬은 시골 마을에 부임한 선생님(나)의 시선으로, '깨철네'라는 여자를 관찰하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그냥 문란하고 미친 여자라고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 여자는 마을이라는 폐쇄적인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혹은 그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기이한 '대지' 같은 존재였다. 도시에서 온 '나'는 도덕이니 윤리니 하며 그들을 판단하려 들지만, 결국 그 원초적인 생명력 앞에서는 자신의 지식이 얼마나 얄팍한 껍데기인지 깨닫게 된다. 그 과정이 꽤나 적나라하고 충격적이다. 솔직히 읽으면서 "와, 이거 너무 센 거 아니야?" 싶은 장면들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역겹기보다는 묘한 경외감 같은 게 들었다. 이 소설은 인간이 만들어놓은 문명이나 도덕이라는 게, 흙바닥 뒹구는 진짜 삶 앞에서는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준다. 카뮈가 부조리한 세상에서 이방인으로 살았다면, 이 소설 속 인물들은 부조리고 뭐고 그냥 끈질기게, 징그럽게 살아낸다. 그 에너지가 압도적이다. 이문열의 소설이 머리로만 읽는 게 아니라는 걸 확실히 보여주는 책이다. 세련되고 깔끔한 요즘 소설에서는 느낄 수 없는, 흙냄새와 땀 냄새가 진동하는 '진짜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한다. 다 읽고 나면 내가 알고 있던 도덕이나 상식이란 게 참 가볍게 느껴질 거다. 강렬하다. |
|
제가 서울에서 나고 자라고 50여년을 서울에서 살고 있는데 ... 좀 곤혹 스러운 점이 ... 있어요. 익명의 섬이라는 이 책 제목과 그 안의 여러 단편들을 읽고 드는 생각은 단지 제목 익명의 섬이에요. 서울 출신은 서울 토박이란 게 없어서 오히려 지방에서 올라와 향우회나 자기 고향사람들끼리 뭉치는 지역이나 동네에 가면 같은 서울이지만 곤혹스러운 점이 많아요. 손님은 그냥 밥 한끼 먹으러 온 건데 ... 그 외에 아무 것도 없이 그냥 밥 한끼 ... 그런데 그런 시골 출신들은 손님에게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네요. 결국 하는 얘기인 즉슨 나는 혹은 우리는 대단한 사람이다. 네가 모르는 나는 정말 큰 사람이다. 뭐 그런 거 같아요.//// 그런데 손님 입장에서는 일정한 돈을 내고 허기 채우는 거 외에는 바라는 게 없다는 사실을 좀 망각하는 거 같더라구요. 시골에서 살면 익명성이 보장 될까요 ? 서울에서 살면 익명성이 보장 될까요? 요즘 세상에서는 동네 변두리 사람들 민주시민이다. 그러면 민주시민 되는 거고 ... 나쁜 사람들이다 그럼 나쁜 사람되는 거고 .... 그 익명성이라는 게 개인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거 같은 생각이 들어요. 오히려 튀는 개인을 응징하기 위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을 겁박하거나 낙인을 주기 위해 사람들이 익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도시건 시골에서건 존재하는 거 같더라구요. .... 본래 농촌에서는 농경문화로 집단 따돌림이나 배척, 그와 반대로 품앗이, 강강술레(대동)가 존재해 왔죠., 글쎄...사람은 윤리적으로나 규범적으로 삶에 그닥 문제가 없으면 그런 익명의 무리들에 겁 먹을 필요는 없곘죠. .... 너무 적극적인 사람들은 그 집 밥먹으면서 그 집 종친회얘기를 들어야 하죠....' 그런데 자신이 벼슬 안하면 조상이나 윗대 누구 어른이 자기랑 도대체 무슨 상관입니까 ? 돈이나 받고 장사나 하지..... 자신이 하는 일이 맘에 별로 들지 않으니까 ... 뭔가 <대의>가 있고 <명분>이 있다는 그렇다고 생각하는 일에 스스로 그렇게들 생각하고 그렇게들 잘 뭉쳐요. 제가 서울사람이지만 그런 것을 보면 .... 참 ....만족스런 생활과는 개인의 만족이란 스스로의 생에 만족해야 하는데 너무 멀죠. 이문열 소설가의 소설은 완성도도 높고 재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익명성은 존재하지 않고.... 집단의 익명성은 넘쳐나는 세상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