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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어느 가족(2018), 원더풀 라이프(200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걸어도 걸어도(2009)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몇 편을 만났다. 그 중 <바닷마을 다이어리>는 고감독님의 작품인줄 모르고 만나기도 했고,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처럼 찾아서 만난 영화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고감독님의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어준 <어느 가족>이 있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2011)’은 중간 즈음 멈췄으니 제외하기로 한다)
그의 영화를 만나면 스스로를 향한 나 자신의 시선과 타인과의 관계(그 관계에는 ‘가족’ 역시 포함된다)에 대해 한동안 곱씹게 된다. 언뜻 영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 생각할 수도 있을텐데, 그렇게 이야기들을 되새기다보면 영화와는 무관해 보이던 일상과 닿아있는 상념들이나 감정의 이면에 숨겨진 상처 같은 것들을 떠올리게도 된다. 이웃 말순님의 글로 이 책을 알게 되었을 때 주저 없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이런 생각들이 내 안에 고여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처음 페이지를 펼쳤을 때는 많은 부분이 정치적인 이슈와 닿아 있어 내 예상과 다른 전개에 조금 당황하기도 했다. 영화감독이니 당연히(이 역시 선입견일테지만) 영화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룰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이 책 이전에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이 출판되었다는 것은 책을 읽는 도중 알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이 ‘국가’나 ‘국익’이라는 ‘큰 이야기’로 회수되어 가는 상황 속에서 영화감독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큰 이야기’ (오른쪽이든 왼쪽이든)에 맞서 그 이야기를 상대화할 다양한 ‘작은 이야기’를 계속 내놓는 것이며, 그것이 결과적으로 그 나라의 문화를 풍요롭게 만든다고 생각해왔다. p.25
그렇다면 그들에게 자신의 행위를 총괄하라고 강요하는 우리는 일장기와 기미가요가 완수해온 역할을 어떤 형태로 총괄한 걸까? 사죄는 끝난 걸까? ‘침략 전쟁은 없었다’는 식의 주장이 큰 목소리로 들려오게 된 현재 상황 속에서, 일본인이 50년 전에 저지른 행위에 대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당사자 의식을 가지고 생각하고 있을까? p.49
상대의 이름을 빼앗는 것도, 땅을 빼앗는 것도, 문화를 빼앗은 것에 대한 책임도 60년간 유야무야 내버려두면 어물쩍 넘어갈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 오늘날의 일본 사회가 열두 살 소년을 살인으로 향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사회는 그 소년에게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나쁘다’고 가르쳤던가? 약자를 폭력적으로 지배하면 안 된다고 가르쳤던가? 가르친 건 그 반대 아니었던가? 그렇게 생각하며 사회의 죄를 스스로 짊어지고, 사회 개혁에 피 흘릴 각오를 하는 것이 정치의 본래 역할 아닌가? pp.53-54
오늘날 일본 정치권에서 가장 부족한 것이 바로 이 능력 아닐지요. 그들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기 위해서만 언어를 씁니다. 그것이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상상력도, 듣는 능력도 없습니다. p.89
이름과 땅과 문화를 빼앗겼던 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이기에 유독 크게 와닿는 대목들이 있었는데(격하게 고개를 끄덕여가면서 말이다), 책의 중간을 넘어가다보니 이 글이 과연 특정 ‘국가’에만 해당하는 것인기 싶어졌다. 창씨개명과 무력을 앞세운 영토 침략이 아니더라도 현대사회를 살고있는 우리도 타인의 이름을 무시하고 나와 다른 문화에 대해 비하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것을 나를 포함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라 당연시 여기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과연 나는 얼마나 당당하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내 안의 물음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자기와 모습이 다르거나, 다른 신을 믿거나, 다른 형태로 생활하면 ‘왠지 기분 나쁘다’는 거겠지요. 이해가 안돼. 그래서 무서워. 그렇다면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될 텐데요...... 미디어는 그것을 위해 존재할 텐데, 지금은 반대로 상호 이해(대화)에 방해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기에는 ‘반대로’ 그들이 보기에는 우리도 충분히 꺼림칙하지 않은가 하는 시선이 아무래도 빠져 있는 듯합니다. p.79
이런 그의 생각들이 영화에 담겨져 있었구나, 생각하니 그의 영화를 볼 때마다 되새겨지던 불편함이, 한없이 곱씹어 생각에 빠지게 했던 질문들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상대의 언어로 이야기하기’ 위헤서는 우선 철저하게 상대의 언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테면 제가 쓰는 ‘희망’이라는 말과 상대가 쓰는 ‘희망’이라는 말이 과연 같은 의미인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대부분은 다릅니다. 거기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인생을 걸어왔고 상이한 가치관으로 살았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다르다’는 것이 대전제이고 그 위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모색해 나갑니다. p.88
타인은 나와 다르다는 ‘당연’하지만, 종종 잊곤 하는 전제를 받아들이고 서로 소통하는 것이야말로 다양성을을 강조하면서도 자꾸만 극단으로 치달아 편협해져가는 우리 사회에 절실한 자세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항상 그러하듯, 이 글을 적고 있는 나부터 잊지말고 지켜야할 덕목이다.
상상력이 중요하다고들 여기저기서 거듭 말하는데, 이건 딱히 상대의 기분에 동화하는 게 아니라 자신과는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 그리고 그런 그들이 보는 우리의 것과는 다른 세계상을 상상하고 인정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그런 ‘타자’에 대한 상상이 훨씬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p.81
*나에게 적용하기 하나.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기(적용기한 : 지속) 두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찾아보기(적용기한 : 11월 중) *가장 먼저 보고 싶은 영화는 ‘태풍이 지나가고(2016)’
*Joy가 만난 고감독님 영화들 하나. 바닷마을 다이어리 바다고양이 식당에 가보고 싶다 : http://blog.yes24.com/document/9906806 두울. 어느 가족 아빠가 되고 싶었던 그와 엄마가 되고 싶었던 그녀 : http://blog.yes24.com/document/11223974 세엣. 원더풀 라이프 단 하나의 소중한 추억 : http://blog.yes24.com/document/13779698 네엣.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그렇게 가족이 된다 : http://blog.yes24.com/document/13830913
*기억에 남는 문장 나만 안전지대에서 중립을 지킬 수 있다는 건 어리광 섞인 오해이며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p.24
영상 제작자(전달자)는 시청자에게 그런 사유를 요구하기에 앞서, 먼저 스스로 거울을 앞두고 철저하가게 사유할 필요가 있다. p.50
지금, 현재만의 정서적 반응이나 판단에 휩쓸리지 않으려면 자기 안에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그 행위의 정당성을 제대로 확인해야 합니다. 거듭해서요. pp.69-70
아키 씨는 메일에서 “반대만 하는 건 누구라도 할 수 있어요” “달리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물으셨는데, 지금 그 질문에 대답한다면 ‘그럼에도 끝까지 계속 반대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의 첫걸음이라 생각합니다. p.70
그렇게 손에 넣은 모두가 비슷한 집에 살고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가치관 속에서 생활한다는 ‘안도감’, 사실 그것은 생물로서의 다양성을 잃는, 인간에게는 매우 불건강한 사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고 봅니다. p.81
‘말’은 정말 어렵습니다. 상대에게 가닿을 말로 이야기하는 건 웬만해선 힘들다고 생각해요. p.88
“나는 참배하고 싶으니까 하는 거야. 뭐가 나빠!” 라는 건 그저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일 뿐, 그 말과 행위가 어떤 형태로 상대에게 가닿을지 전혀 생각하지 않는 무책임한 자기표현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런 건 표현조차 아닙니다..(중략)..애초에 아무리 본인이 ‘사적인 참배’라고 말해봤자, 국내외에서 정치적 파문이 일고 있는 시점에서 그건 공적인 행위입니다. 본인이 사적인 참배로 생각하거나 말거나 그건 본인에게 말고는 전혀 의미가 없습니다. pp.89-90
말이란 입에서 나온 시점에 절반은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합니다. p.91
미아가 되었을 때 그 아이를 덮치는 불안은 아마도 부모를 잃었다는 단순한 감정이 아닐 것이다. 그건 나 따위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는 ‘세계’, 그리고 그 무관심과 어쩔 수 없이 직면하게 된다는 커다란 당혹감이다. p.103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받아주고 감싸주는 존재의 곁을 떠나 ‘타자’로서의(그것이 선의든 악의든) 세계와 마주하는-사람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누구나 경험해야 할 이런 뜻밖의 만남을 예행연습으로서 폭력적으로 강제 체험하는- 것이 미아라는 경험 아닐까. 바로 그래서 미아는 갓난아기처럼 울부짖는 것이다. pp.103-104
그리고 제아무리 울어봤자 이제는 고독하게 세계와 마주해나가야 한다고 깨달았을 때, 소년은 자신이 미아라는 점과 결별하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닐까. 그때를 경계로 어머니는 자신을 감싸 안아주는 세계 그 자체가 아니라 세계한구석에서 자신을 기다려줄 뿐인 조그만 존재로 변한다. 한때 미아였던 어른은 그것을 깨달은 순간 이번에는 남몰래 운다. p.104
그러나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건 촬영 현장에 약속 시간보다 한 시간 빨리 혼자 운전하고 와서 대기실에서 대본을 무릎 위에 펼쳐둔 채 눈을 감고 홀로 대사를 연습하는 키린씨다. p.114
그때 키린 씨가 가진 손도끼는 자기 자신 위로 들려 있다. 남을 향한 엄격함보다 더한 엄격함으로, 그는 본인을 지적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은 정말로 아름답다. 성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p.115
잘 표현이 안 되지만 바통을 건네받은 느낌이랄까요. “뒷 일은 잘 부탁해” 하며 건네준 것을 소중히 품고 달리자는 각오 같은 것. 그 각오가 있어야 비로소 그 사람에 대해 쓰거나 말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합니다. p.133
아 참, 점심을 먹으러 간 바닷가 레스토랑에서 양조위(!)를 만나서 인사를 했고, 박찬욱 감독의 신작에서 주연을 맡은 송강호 씨와 서서 얘기를 나눴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공식 상영회에 와준 쥘리에트 비노슈 씨와 점심을 함께 먹기도 했네요. 그런 멋진 시간도 있었습니다. p.149 *송강호, 쥘리에트 비노슈를 만나다니, 부러운 마음이 가득하다. 하지만 그중 단연 양조위! 양조위 라니!! (고감독님도 느낌표를 표시하지 않았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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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너무 마음이 상해서 리뷰 먼저 씁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스24에서 다시는 양장본 도서를 구입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책의 파손으로 인해 무려 두번의 반송과 세번의 배송 후에야 제대로 된 책을 받았습니다.
모서리가 약한 하드커버의 책을 완충 포장도 없이 한 장의 에어캡에 그냥 담아 똑같이 보내기를 두 번. 예스에서 포장을 불량하게하여 파손이 된 경우로 즉, 똑같은 위치에 똑같은 파손이 두번이나 있었던 것 입니다.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던 예스에서 이런 식으로 책을 보낼 줄은 몰랐거든요. 아...그 사진과 설명은 그저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을 뿐인거구나...했습니다.
또한 고객센터에서는 책의 파손으로 인해 여러번 교환을 해야하는 구입자의 번거로움은 개의치 않은 듯 그저 교환해주겠다는 것만 강조한 아주 건조한 답변 만이 이어졌습니다.
좋아하는 감독님의 책을 읽기도 전에 '예스에서 양장본을 구입하며 생각한 것'을 후기로 남깁니다.
그리고 제가 무슨 일을 하게 되더라도 성의없는 예스 고객센터와 같이 일하지 말자고 다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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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라이프를 15년쯤 전에 본 것이 이 감독 영화의 첫번째 관람이였다. 그 이후에 '다큐멘터리적인' '포스트 야스지로' 등의 수사와함께 그의 영화를 봐왔었다. 영화 자서전이라고 할 만큼 데뷔이후의 본인 얘기를 솔직하게 보여줌으로써 작가의 연출관, 영화에 대한, 다큐멘터리에 대한 인식,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고 대하는 방식들을 엿볼수 있다. 좋아하는 작가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간만에 아주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 바로 이전에 읽었던 왕가위의 인터뷰집이 전형적인 영화인에 대한 책이였다면 이 책은 고레에다 히로카즈라는 한 인간을 보여주는 값진 자서전같은 에세이라고나 할까. 마치 손열음의 음악을 좋아했지만 그녀의 책을 읽고 손열음이 좋아졌듯이, 원래 고레에다의 영화를 좋아했지만 이제는 인간 고레에다가 더 좋아졌다. 깊은 감수성에 사람에대한 이해와 사랑, 사회와 역사에대한 고찰을 갖고있는 사람좋은 작가, 아니 장인을 만나는것은, 정말, 기분좋은 경험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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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름을 몰라도 영화 어느 장면을 보여주면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장면들이 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어느 뉴스화면에서 스치듯 본 것 같은데 영화이미지처럼 기억되는 것들이. 평범한 장면들이 왜 보는 사람의 마음을 그곳에 머물게 하는 것일까?
이미 수십 년 전부터 모아놓은 어느 날의 짧은 글들을 취사선택해서 그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영화를 하는 이유는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모두 이름을 알리는 것은 아닌데, 첫 영화부터 혹은 그의 작품 어느 하나부터 감독의 이름을 보게 되는 이유는 그의 글 속에서 충분히 드러난다.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자신의 인생이 잘 이끌려 왔다고 생각하는 저자 스스로의 마음이 이미 그의 영화 전반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젊은 나이에 생각할 수 없었던 일들을 나이들어 생각해보니 그 때 그 분이 참 많은 배려를 해주셨다고 말하는 부분이 글 속에 자주 나타난다.
협업이라는 영화작업이 쉽지만은 않다는 것도 말하는데 그 순간의 이야기는 작지 않다. 예산분배와 자금투입 혹은 다른 곳의 승인이나 도움을 받아야 가능한 상황에서 감독이 현장을 이끄는 사람으로 고민하고 결정해야 하는 것들은 이 책에서 심정은 무겁지만 글은 무겁지 않게 서술되어 있다. 그래서, 여러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왜 영화를 계속 찍고 있는지 이해된다.
이 책 첫 부분은 조용한 감독이 젊은 시절 가장 강하게 비판한 것 같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응답자의 말을 이끌어내면서 자신이 기획한 구조에 맞게 서술들을 따옴표에 넣는 기자들의 이야기. 구체적으로 회사 이름을 말하지 않지만 가끔 '이 감독이 왜 이런 말을 했을까?' 궁금했던 부분들에 대한 답이 된다. 감독의 직접적인 말이 아니라 말을 옮기는 사람이 자신에게 맞게 언어들을 해체하고 조합했다는 사실에 관해.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을 <기생충>과 비교하거나 감독의 영화 속에서 정치적인 비판이나 일본관료사회에 대한 대책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의 언어와 전혀 닿지 않는다. 그는 우라늄 농축액의 유출로 일본심해에서 <괴물>이 등장해서 열도를 일자로 횡단할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미제사건들을 놓고 <살인의 추억>을 말하거나 진짜로 눈이 많이 쌓이는 일본 영화감독이지만 일본의 현실을 <설국열차>로 보여주리라 마음먹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영화 화면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보이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노출하게 한다. 단순히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관객들의 눈 앞에 옮겨다 놓기 때문에 평범한 인물들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게 된다. 생각하지 않았던,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었던 현대인들에게 잃어버린 가치, 인간이기에 지닐 수 있는 선과 악의 경계에서의 판단, 자신이 선택할 수 없던 일의 결과를 놓고 한 개인의 인성과 감정이 다듬어지는 과정이 그의 영화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게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감독이 일본사회에서 살면서 갖는 기본적인 생각이다. 정치인이나 일본의 특정계층에 관한 자각보다 일반 시민들이 서로의 대상에 갖는 감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 하다. 특히 약자가 더 약한 사람을 향해 보여주는 증오와 잔인한 행동들은 생각해야 할 부분이 많은 지점이 된다. 그의 영화를 보면 삶과 죽음, 어린이와 노인, 완벽함과 부족함이 정확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은 영화보는 시간동안 어느 한 편에 서지 않는다. 그저 그들을 따라가게 한다.
어떤 문제 혹은 뉴스보도 한 줄이 영화를 생각하게 하는 발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영화의 동기가 되는 부분은 자신이 겪어보지 않은 미지의 대상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으로 단계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있다. 자신은 '여기'에 있지만 보지못한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연결해서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저 풀어놓는 행위로 영화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그리고, 현장에서 어린 아이들이나 배우들의 생각이 자신이 생각했던 상황과 다를 때는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하고 자신의 카메라 뒤로 물러나 렌즈를 응시한다. 그래서, 감독은 지휘관이 아니라 먼저 생각하고 판단하되 언제나 변화가능성을 열어둔 타협가의 모습으로 남는다. 자신의 성의 연원을 타인이 주는 불안감이 현대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서술하는 모습 역시 작은 이야기가 그의 영화의 전부와 맞닿아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 마지막 부분은 영화평론가와의 대담이다. 말줄임표 안에 생각하는 감독의 모습이, 조심스럽게 답하는 부분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분일 뿐 자신의 생각이 아닌 부분을 순차적 설명으로 표현하는 부분은 감독이 영화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상을 남긴다. 그에게 영화는 표현수단이 아니며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에 따라 감독의 생각을 알아 맞추는 것과는 전혀 다른, 영화 자체가 또 하나의 언어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멋있는 장면, 눈에 화려하게 들어오는 장면이 아니라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어느 장면과 대사가, 살면서 그 때 봤던 그 영화의 그 장면이 자꾸 생각나게 하는 감독. 이 책 역시 그런 감독의 모습과 닮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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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최애 감독님 고레에다 히로카즈. 그의 책이 나왔다. 걷는듯 천천히가 너무 좋았기 때문에 이번 책도 기대를 많이 했다. 하드커버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너무나 자서전 느낌이라 부담스럽기도 하다. 감독님의 가족 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으로서 영화의 제작과정과 배우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고 그의 가족 이야기와 감독 자신의 이야기까지 엿볼수있다. 걷는듯 천천히와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더 풍성해진 이야기들이라 반갑다. 감독님의 영화와 책을 계속해서 볼 수 있기를 바라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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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 말들이 많아서 다 적기가 부족하다. 영화를 대하는 감독의 진솔한 태도가 역시 좋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 새끼 소의 죽음에 눈물 흘리며 슬프지만 젖 짜기는 즐겁다는 복잡한 심정이 아이들 작품에 여실히 드러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은 매우 씩씩하고 아름다웠습니다. * 영화가 그런 주장을 소리 높여 하는 게 아니라 영화 그 자체가 풍성한 삶의 실감으로서 존재할 수 있을 것. * 저는 컷을 외친 다음에 히에이에게 "미안해. 멀리서 이런 장면을 찍으려고 일부러 유야한테 화내 달라고 했어"라고 설명했지만 두 아이는 한나절 동안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차를 타고 돌아 가는데도 둘 다 반대쪽을 보고 앉아 있어서 교코 역의 아유가 어이없다는 듯 "둘 다 바보 아냐? 연기란 말이야, 연기"라고 말했던 것이 그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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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드라마를 비롯 모든 작품을 보았다 감독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영화자서전 이라기에 꼭 읽고 싶었다
* 이런 말은 주제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타인인 저에게 정기적으로 남편 이야기를 하는 것은 도모코 씨에게 슬픔을 치유하는 과정이 된 측면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환상의 빛> 주인공처럼 가슴속 슬픔에 대해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다는 점이 인간의 씩씩함이자 아름다움 아닐까요. 그 슬픔을 받아주는 쪽이 될 수 있었던 귀중한 체험은 제게도 매우 의미 있었습니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을 축하합니다- 기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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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는 사실을 축적하여 진실을 그리는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 이지수 역 /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자서전 (映畵を撮りながら考えたこと) / 바다출판사 / 447쪽 / 2017 (20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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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일본영화가 많이 낯설던 시기에 나왔던 장편 영화 데뷔 에서 이제는 국내에서 인기 감독 반열에 까지 그만큼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인가 새삼 놀라움을 느끼게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들은 보긴 봤어도 딱히 팬인가 싶은 정도인데 영화 자서전 성격의 책이 나와서 감독의 역사를 훑어보는 좋은 기회인 듯 해서 구입을 하게 되었다. 이미 국내에도 대부분 소개가 되었던 대표적인 영화들에 대한 내용이 담긴 건 당연한 것 이겠지만 다큐멘터리 작업이나 드라마에 대한 부분도 상당 분량 차지하고 있어서 반가움 마음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