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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흔든 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유행이 끝난 2015년 8월, 누가 누구에게 어디에서 어떻게 감염되었는지와는 한참 멀어 보이는 <한국의 건강 불평등>이라는 책이 출간되었다. 하지만, 이 책이 국제감염병 유행과 무관한 내용을 다룬다고는 볼 수는 없다. 메르스 환자가 늘어나고, 그들과 접촉한 격리 대상자가 늘어나자 평소에는 주목받지 못했던 의료시설이 중요해졌다. 병실 내 공기가 외부로 나가지 않아 전염 위험을 줄여주는 음압병상이 바로 그것이다. 평소에 국민들은 들어보지도 못했던 “음압병상”이 갑자기 긴급히 필요한 것이 되었고, 이런 병상은 필요하다고 해서 갑자기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더 나아가 음압병실을 갖추고 감염관리의 기본적인 요소들을 갖춘 병원에서 누군가들은 이들이 처한 의료 상황과 무관하게 감염병 환자 입원을 위해 병상을 비워줘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때 병상을 비워야 했던 사람들은 누구일까? 모두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었지만 이때 병원에서 밀려난 환자들이 누구인지 역시 언론과 시민사회의 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이들은 주로 민간 병원들이 치료를 기피하거나 꺼려하면서 주로 공공병원에 머물고 있던 결핵환자들이었다. 침이나 콧물의 형태로 전염되어 대략 2m 정도 떨어져 있으면 충분하고 보통의 마스크를 쓰면 막을 수 있었던 메르스(비말감염)와는 다르게 결핵은 공기를 통해 감염되는 질환(공기감염)이다. 공공병원에서 밀려난 또다른 환자들은 HIV에 감염된 에이즈 환자들이었다. 메르스가 유행과 같이 어떤 특별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뿐만은 아닐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 자원이 부족할 때 가장 먼저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되는 이들은 하나 같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이다. 어떤 이는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고, 또 다른 이들은 이런 상황을 사회적 부정의로 인식할 것이다. 이런 입장 차는 그저 정치적 견해의 차이일 뿐인가? 오래전부터 인구집단마다 건강 수준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그 이유를 연구해왔던 연구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가난하면 더 많이 아프고 일찍 죽는다는 그리 새롭지는 않은 서사는 건강불평등을 설명하는 아주 일부일 뿐이다. 건강불평등을 이해한다는 것은 서로 다른 사회에서 왜 어떤 경로로 건강 격차가 발생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불평등 또는 경사(gradient)가 사회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아는 것이다.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자원불평등의 결과로 나타나는 건강의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한 사회의 제도적 배열과 정치적 선택이 몸으로 드러나는 ‘사회적 현상’이 건강불평등인 것이다. 학술서의 외양을 하고 건조하게 한국의 건강 불평등을 써 내려가는 이 책은 건강 불평등이 무엇인지를 물으며 책을 시작한다. 서론은 보다 근본적으로 무엇이 건강이고 보건의료인지 그 개념을 캐묻는다. 이는 좀 의아한 방식일 수도 있다. 보건의료는 차치하더라도, 건강이라고 하면 이 분야를 전공하지 않은 사람도 일상적으로 쓰는 개념이 아닌가. 저자들은 병에 걸리지 않은 상태가 곧 건강한 상태라는, 모든 이들의 마음 속에 있는 건강 개념을 기각하는 방식으로 그 의아함을 걷어낸다. 대신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티아 센의 역량(capability) 개념과 건강을 연결하며 건강을 좋은 삶을 살게 하는 가능성이자, 능력으로 넓게 정의한다. 건강에 대한 정의가 넓어지면서 보건의료의 정의도 따라 확장된다. 보건의료는 병원에 가서 원인과 과정을 온전히 설명받지 못한 채 수동적으로 몸을 맡겨야 하는 ‘전문 기술’이 아니라, 총체적인 의미에서 건강을 나아지게 만들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기술의 총체가 된다. 이렇게 확장된 건강과 보건의료의 개념을 토대로 왜 모두가 평등하게 건강을 누려야 하는지, 또 이를 위해 무엇에 대한 평등이 필요한지를 답하려고 하면, 결국 이 문제가 사회적 가치의 문제이자 정치의 문제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한국의 상황은 어떤가? 책의 2부에서 설명하듯 절대적으로는 건강 불평등이 줄어들고 있지만,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 5년 전의 책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만, 불평등의 현황과 추세를 다루고 있는 6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건강 불평등의 결정요인 세 가지-지역, 노동, 젠더-는 여전히 유효하다. 정치적, 정책적 해결의 단위라는 점에서 지역이, 자본주의적 삶을 주조하는 핵심이라는 점에서 노동이, 남성시스젠더가 자신의 시선으로 만들어낸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다시 세워야 한다는 점에서 젠더가 앞으로도 중요한 결정요인이자 구조로 남을 수밖에 없다. 마지막 3부에서는 건강 불평등 완화를 위해 지금까지 이루어진 일을 비교적 담담하게 정리하고 평가한다. 하지만 책의 여러 곳에서 숨기지 못하고 드러나는, 이 책의 저자들이 정말 말하고 싶었던 내용은 건강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혹은 좀 더 급진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정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의 문제는 또한 ‘지체된 근대’와 함께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복잡하다.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과 달리, 한국에서는 공공성이나 사회적 연대의 이념이 채 성숙되지 않았고 사회보장이나 공공 서비스의 사회적 공급구조는 매우 취약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공세는 이러한 차이를 고려하지 않는다. (중략) 그렇다고 해서 불평등에 대처하는 노력이 주어진 환경의 제약만 받는 것은 아니다. 건강 형평성을 비롯한 어떤 사회적 가치가 실현되는 것은 환경뿐만 아니라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집단의 지향이나 노력에 크게 의존하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러한 점에서 건강의 형평을 지향하는 정책은 건강 불평등 문제가 얼마나 ‘정치화(politicize)’될 수 있는지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323쪽에서 부분 발췌, 강조는 저자)
이 글을 쓰고 있는 2020년 초, 예상보다 더 빠르게 또 다른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고 있다. 5년 전 한국이 메르스 바이러스 유행의 주 무대였던 것과 다르게 이번 유행은 주변 국가에서 시작되어 확산되었고, 한국은 그 영향을 받은 끝에 지역사회감염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다시 겪게 된 국제감염병 유행은 역설적이게도, 한국 사회가 시급하고 급박한 감염병을 쫓느라 정신이 팔려 보지 못했던 문제들을 생각해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인의 입국을 금지해야 한다는 식의 인종주의적 주장에 대한 논란이 그렇다. 국민의 범위와 경계가 모호해진 시대의 국민국가에서 인종을 범주로 한 배제는 정치적으로, 동시에 방역의 효과성 차원 모두에서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국제적으로 여러 국가들이 국적에 따른 배제와 같은 극단적인 조치를 취하고 있고, 이는 인종주의가 건강불평등을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구조이자 원인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학술서로 기획되었기에 다소 딱딱하지만, 보건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물론이고, 건강 불평등과 이를 결정하는 사회적 결정에 아주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과거의, 현재의, 그리고 미래의 건강 불평등을 헤아리는데 든든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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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가 되고 있는 한국의 건강불평등에 대해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건강불평등이 미국보다는 덜하겠지만 점점 심화되고 있으며 중요한 문제입니다. 연구 결과는 많이 발표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극복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한국의 건강불평등에 대해서 많은 연구성과가 있으신 연구자분들께서 일반인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발간한 책이라 생각됩니다. 이 책을 통해서 더 많은 관심과 적극적인 정책 시행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