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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 멀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 게이츠 재단(Gates Foundation) 또는 B&MGF는 재정이 투명하게 운영되는 민간 재단 중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재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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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에서 보아서는 한 권의 책이지만 사실 부록으로 또 한 권의 책이 이어져 있다. 앞쪽에는 탐사전문 기자이자 생태분야에서 10여권의 책을 펴낸 저자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가 최근 이혼한 멜린다 게이츠와 함께 세운 재단의 문제점들을 쭉 언급하고 있으며, 뒤쪽에는 토론토 대학 보건정책학 교수가 쓴 논문이 등장하는데 비슷한 논조로 록펠러 재단과 게이츠 재단을 비교하며 문제점들을 나열하고 있다. 게이츠 재단의 문제는 한마디로 기술 독점을 옹호하며 특허권을 신봉해왔던 빌 게이츠가 해 온 사업 방식과 똑같은 것에서 오는 것이라면서 오직 대기업과 과학기술이 이 세상을 구하는 해법이라고 확신하고 밀어붙이는 자선 사업 방식에 있다고 지적한다. 게이츠 재단의 돈은 방위산업체, 정유업체, 유통업체 같은 대기업에 대한 투자자금으로 할당되어 수백 개 기업의 출자금으로 사용되며, 오직 배당금만 자선 활동에 투입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빌 게이츠는 은퇴 후 재단을 운영하며 자산이 더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이게 이른바 자선 자본주의라는 것인데, 자신의 성공 수완을 기부활동에 접목시켜 구조적인 측면에서 빈곤 문제를 더욱 심화하는 다수의 다국적 기업들과 긴밀히 결탁해 돈을 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빌 게이츠는 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위해 목돈을 내놓았지만 동시에 각국 수장들을 종용하여 수천억 달러를 백신사들에 건너게 했고, 실험이 완료되지 않은 그 백신을 각국은 앞다퉈 사들였으며, 그가 앞장서서 컨소시엄을 구성한 백신사들은 잭팟의 기쁨을 누리고 있다고 언급한다. 또한 게이츠 재단은 코카콜라 주식도 보유하고 있는데, 재단 보조금의 일부는 개도국 내에 코카콜라 자회사 설립을 장려하는데 사용되었고, 마이크로소프트의 아프리카 사업 확대는 게이츠 재단의 활동이 아프리카 지역에서 확대된 것과 일치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기후변화를 막으려면 우리의 생활 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필요하며 아울러 우리의 공공정책을 되짚어보는 동시에 기업의 운영 방식도 재고해야 하지만 정작 게이츠 재단은 그런 것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농업 분야 역시 자연의 힘에 의지하기보다는 유전자 변형 기술 같은 생명과학 기술 및 화학 기술의 힘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집약적 농업 방식을 도입하겠다는 것이 게이츠 재단의 입장이라 한다. 어떤 문제이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해법보다는 기술적인 대안을 우선시 하는게 바로 게이츠 재단의 모습이라면서 말이다.
게이츠 재단은 또한 전 세계에 그 영향력을 행사하며 정치권 지도부와 여론을 쥐락펴락할 뿐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한다. 특히 WHO의 경우 2000년대 이후 게이츠 재단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보건 분야의 정책 우선 과제를 선정함에 있어 게이츠 재단의 영향력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재단의 자금을 받지 않거나 재단의 시각과 맞지 않는 NGO와 대학은 물론 재단에서 별로 중요시하지 않는 보건 관련 문제들도 소외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게이츠 재단이 막대한 자금력으로 전 세계 보건 분야에서의 수많은 사업 진행을 좌지우지할 수 있음에도 그 어떤 외부 감시도 거의 받지 않는 것이 문제라 지적한다. 이 책 후반부에 록펠러 재단과 게이츠 재단을 비교한 이야기가 이어지는데, 록펠러 재단의 경우 재단 활동이 기업 자체를 확장하고 그 이익을 높이는데 직접 관련되었다기 보다는 더 큰 목표, 즉 외국 및 국내의 산업과 투자를 활성화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었고, 특히 공중보건은 공공의 영역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게이츠 재단은 자선사업에 민간 주체들을 끌어들여 부당할 만큼 큰 권력을 행사하며 공익을 좌우하고 있는게 문제라 언급하고 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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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아래 순수하게 선한 자본가는 없다고 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 이야기일지 궁금했다. 코로나19로 우리의 삶의 전반적인 모습이 바뀌었고, 현재는 백신이 뜨거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었다. 백신에 관하여 빈부격차 그리고 계층간의 모습이 명백한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것 같아서 안타까웠는데, 한편에서는 백신에 관련하여 많은 음모론같은 이야기가 퍼지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에 우리가 아는 빌게이츠가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접하기 전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곤 했다. 음모론이라고 치부하기만하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니 정말 놀랬고, 어떤 이야기를 다뤘을지 궁금해서 선택한 책이었다. 빌게이츠는 유명한 타임지에 기부천사로 기사가 날만큼 어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금액을 자신의 재단인 게이츠 재단을 통해 해마다 기부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재단 자선활동의 밑천이 되는 자금의 흐름의 근원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우선 마이크로소프트의 라이센스 기반의 수익 구조에 대한 이야기와 재단의 기금이 수백개의 기업의 출자금으로 사용되고 있고, 빈곤을 없애는것과 거리가 먼, 방위사업체나 정유업체, 코카콜라, 유전자 변형식품의 기업등에 쏟아지고 있는것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특히 유전자 변형 식품개발에 지지하고 아프리카의 식량문제를 해결할거라고 생각했던 사업들의 이면을 다루고 있었다. 이 이야기에 들어가기 앞서 빌게이츠의 성장기에대해 이야기한 부분에서도 많은 부분이 그의 인성을 드러내고 있었는데, QDOS를 사들여서 MS 고유 운영체를 만들어 운영체계를 만들어 판권을 부여한것과, 컴퓨터 애호가들이 무상으로 베이식 프로그램을 공유하던것을 불만스러워하던 모습들, 인터넷 익스플로어를 출시하고 무상으로 배포하여 넷스케이프가 파산위기에 몰렸던 사건 등이었다. 지금 개발중인 종자사업과, 에이즈,결핵,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기금사용에 대해서도 막대한 기부금을 사용함에 있어 강력한 관여를 하고 있는것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처음 이야기한 순수하게 선한 자본가는 없는것에 순수한 기부자는 없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함께 갖게 했던것 같다. 세계의 자금이 한곳에서 나오고 있다는것도 다시한번 눈여겨 봐야할것이란걸 깨닫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한명의 권력자에 의해 좌지우지 될 수 있다는걸 여러가지 사실로 알 수 있었다. 루머를 명백하게 밝힐만한 이야기는 없었지만 그가 지금 행하고 있는 행위들에 대한 사실을 깨닫기에 충분했던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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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죽기 전까지 자신의 재산 중 95퍼센트를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한 빌 게이츠, 그가 기부라는 제도를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프랑스 기자이자 작가로 활동중인 저자 <리오넬 아스트뤽 Lionel Astruc>의 <빌 게이츠는 왜 아프리카에 갔을까> (배영란 옮김, 소소의책 펴냄>은 기부 사업은 세계화된 경제계에서 가장 번창하는 산업임을 설명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악랄한 자본가 노릇을 하다 어느 날 깨우친 바가 있어 선량한 자선가로 변모한 것이 아니라 자선의 이름으로 세계의 보건, 농업, 기후 정책에 개이바여 더 큰 자본을 확보할 수 있는 정책적·구조적 개입의 교두보를 확보한 것이라고 정리한다. 다만 빌 게이츠만 악의적으로 깎아내리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몇몇 '초특급'거대부호가 관용의 탈을 쓰고 자선사업을 통해 보건, 환경 등의 분야를 장악하고 신자유주의 체제를 강화하는 전략을 규명해보고자 함이라고 밝히고 있다. 2018년 기준 900억 달러의 재산을 가진 빌 게이츠는 2008년부터 재단사업을 시작한다.
재단의 활동범위는 교육, 빈곤, 백신, 농업 등 넓은 분야에 435억 달러에 달하는 기부액으로 100여 개 이상의 국가에서 활동하는 세계 최대의 자선사업 재단이다. 억만장자 빌 게이츠의 철학은 2015년도에 작성 편지에서 알 수 있다고 한다. '신규 백신이 보급되고, 보다 강인한 작물 재배가 이뤄질 뿐 아니라 더욱 저렴한 가격의 스마트폰과 태블릿 기기가 보급되는 등 기술혁신에 의한 진보'가 진행된다는 시각에서 기술우선, 즉 특허를 중심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보건과 기후변화 문제, 심지어 문맹 문제까지도 '정치적 고민이나 노력 없이' 신기술의 힘만으로 완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기부천사로 알려진 그가 무엇이 문제라는 것일까? 빌 게이츠에 대한 언론의 평가는 우호적이다. 그럴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게이츠가 후원하는 교육과정을 밟은 기자와 보조금을 받은 학자들에 의해 엄청난 지원을 받는 언론을 통해 나오는 평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MS의 수익성 조세회피 정책에서 얻어진 소득 외에 게이츠재단으로 들어가는 돈은 또 있다. 바로 재단 출자 투자금에서 비롯된 돈이다. 사실 재단으로 투입되는 자금은 직접적으로 이용되지 않으며, 해당 자금은 일단 (재단의 투자 펀드인) 재단 트러스트를 통해 선투자가 이뤄진다. 게이츠 재단의 자선사업자금은 재단 트러스트 조직에 의한 이 같은 기업 투자금에서 나오며, 트러스트 조직이 자산을 관리하고 돈을 투자하면 게이츠 재단은 투자사업에서 얻은 배당금을 배준하는 구조다. 그런데 문제는 게이츠 재단의 기금을 불려준 기업들이 하나 같이 빈곤의 확대에 일조하고 사회정의를 해치며 세계 경제구조를 불평등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해당 기업들은 대부분 인권과 노동권을 유린하고 환경을 훼손하며 조세 회피 정책을 펴는 것으로 극심한 비판을 받는다. - 본문 중에서 -
빌 게이츠를 중심으로 한 복잡한 자금 구조 덕분에 그는 자신의 재단을 이용해 게이츠 재단과 연계된투자 대상 기업들의 주력 사업에 힘을 실어 줄 수 있어 자선사업을 내세워 주주들의 수익과 영리성 기업의 활동을 더욱 장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재단을 통해' 돈을 푸는 듯하면서도 자신의 '투자 편드 배당금을 통해' 더 많은 돈을 거머쥔다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들을 들고 있는데, 재단이 코카콜라 주식을 보유하거나 몬산토 같은 기업에 후원하면서 투자도 함께 하는 등의 사례를 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아프리카에 진출하는 정황을 살펴보면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그에게는 돈을 버는 것과 자산사업을 하는 것은 서로 이율배반적인게 아니라 '자선 자본주의'논리에서 보면 아프리카에서 기업 주도로 발전을 꾀한다거나 정부가 초대형 기업에 우호적인 정책을 채택하도록 돕고 기업의 명성에 좋게 유지해줄 활동을 지속하면서 재단이 마이크로소프트를 돕는다는 것, 그는 아프리카를 흥미로운 사업 기회의 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재단의 의도에 따라 공중보건 계획의 방향이 왜곡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기존보건의료체계의 강화보다는 신규 의로체계의 구축에 더 적합한 방식으로 투자하려는 성향과, 기부자의 구미에 맞는 우선 과제의 설정은 비극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와 함께 빌 게이츠에 대한 찬양 일색의 정보와 그의 막강한 권력은 민주주의를 위협하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국가권력은 유권자에 의해 평가를 받지만 빌 게이츠는 막대한 자금으로 학자들과 GO,언론의 입을 간접적으로 막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누구의 통제도 필요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빌 게이츠라는 인물 한 사람을 넘어서서 소수의 '대부호'가 어마어마한 권력을 쥐고 있는 '자선 자본주의' 관행자체를 경게해야 한다. 빌 게이츠든 마크저커버그든 때로는 학생같은 모습으로, 때로는 바람직한 아버지상으로 따뜻하고 온화하게 내비치는 이들의 얼굴 뒤에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환경을 유린하는 과격한 시스템이 숨어 있다. 위선이 자선이라는 이름의 탈을 쓰고 나타날 땐 이들의 힘을 말단 부분에서만 조사할 게 아니라 그 뿌리부터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자산 자본주의'를 키워가는 양분은 부의 축적에 있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
기부를 통해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이 사업을 더욱 번창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지만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현상이 점점 더해가는 현실에서 나눔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활동이 아닐 수 없다. 과거 국내 굴지의 기업이 기업의 잘못을 댓가로 사회환원을 했던 것이 기억에 있다. 그 행위가 어쩌면 또 다른 부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빌 게이츠가 아닌 우리 사회 주변에서 일어나고 잇는 이와 같은 현상들을 주의깊게 살펴봐야 하는 이유를 깨닫게 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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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신대륙에 당도한 유럽인들은 자연과 공존하던 선주민들을 학살하고, 선주민들이 공유하던 자원과 자연을 사유화했다. 그리고 그 자연을 팔아 부와 절대 권력을 차지한다. 식물의 '종자'는 수천 년간 인류가 함께 일구고 가꿔온 작업의 결실이다. 어느날 갑자기 몬산토라는 화학기업이 등장해 종자에 '약간의 변형'을 가했다는 구실로 종자에 대한 모든 독점적 권리를 가로챈다. 컴퓨터 산업의 태동기, 거의 모든 것이 오픈 소스 체제였던 시절, 빌 게이츠는 모두가 공유하던 컴퓨터 기술에 자신의 기술을 가미하여 특허를 출원했고, 공공재처럼 사용되던 초기 컴퓨터 기술들을 자신만의 것으로 사유화한다. 2000년, 성공과 부의 상징이 된 빌 게이츠는 게이츠 재단을 설립하고 돌연 자선사업가로 변신한다. 이제 빌 게이츠는 세상에서 가장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이 되었다. 게이츠 재단에서 후원하는 많은 사업은 중요하고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고 있다. 문제는 이런 유용한 공익 사업이 숲을 가리는 나무들이라는 점이다. 초특급 거대 부호들이 관용의 탈을 쓴 자선사업을 통해 보건, 환경 등의 분야를 장악하고, 자신들이 편승한 신자유주의 체체를 강화하고, 불투명한 자금 구조를 통해 더욱 배를 불리는 '자선 자본주의'의 민낯을 가리는. '자선 자본주의'라는 신조어는 빌 게이츠에 의해 생겨났다. 이는 억만장자들이 자신의 성공 수완을 기부 활동에 접목시켜, 빈곤 구제에 시장 원리를 도입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오늘날 자선 자본주의는 호화로운 빌라나 전용기처럼 '슈퍼리치 클럽'에 들어가는 또 하나의 새로운 상징이다. 세계화된 경제에서 가장 번창하는 사업인 기부 사업은 교육 정책, 세계 농업, 보건 분야에서 억만장자들이 전대미문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컴퓨터 운영체제와 소프트웨어에 대한 독점으로 막대한 부를 구축한 빌 게이츠의 사업 방식은 그의 재단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빌 게이츠는 생물 자원을 이용하여 다국적기업이 특허를 출원하는 '생물 해적 행위'를 옹호함으로써 빈곤국에 대한 의료 혜택 접근을 제한했고, 재단은 인권과 노동권을 유린하고 환경을 훼손하며 조세 회피 정책으로 극심한 비판을 받는 많은 기업들에 투자한다. 재단은 자신들이 투자한 이들 업체들의 사업에 재단 기부금을 제공하여, 기부하는 돈보다 더 많은 돈을 회수한다. 빌 게이츠는 녹색 혁명을 주장하며, 자유로운 종자의 사용을 불법화하고 그 씨를 말리기 위해 활동한다. 특허받은 종자를 사용하도록 NGO와 자선 기관에 권고하고, 각국 정부가 지적 소유권을 제정하도록 압력을 넣는다. 그러나 녹색혁명의 폐단은 인도의 사례를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토양이 메마르고, 생물다양성이 빈약해지고, 기후 온난화가 초래되고, 농민은 빈곤해진다. 농민들은 자신들의 씨앗을 버리고 기업이 판매하는 씨앗과 화학비료까지 구매해야 한다. 몬산토는 수많은 농민들을 자살하게 만들었다. 보건 분야는 게이츠 재단에서 특히 관심을 갖는 분야다. 빌 게이츠는 백신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게이츠 재단은 효과적인 예비책 정도만 있으면 개선될 수 있는 만성질환과 아동 사망 관련 연구 지원은 등한시하면서, 에이즈와 소아마비 연구에만 우선권을 부여했다. 게이츠 재단의 막대한 보조금은 보건의료 체계를 왜곡시키고 있고, 빌 게이츠가 세계 보건 시장을 장악하게 만들어준다. 자선 자본주의 사업가에게 돈을 버는 것과 자선 사업을 하는 것은 이율배반이 아니다. 재단과 기업이 서로 뒤섞여 투자에 기부의 옷을 입힘으로써 생기는 이득이 무엇이건, 한 가지는 분명하다. 빌 게이츠는 기부를 시작한 뒤 이전보다 더 부유해졌다는 점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빌 게이츠의 개인 자산은 2011년 560억 달러에서 2015년 789억 달러로 증가했다. 초국적인 권력을 가진 게이츠 재단의 활동은 그 어떤 민주적 통제도 받지 않는다. 빌 게이츠와 그 아내 멀린다 게이츠, 그리고 워런 버핏 세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는 게이츠 재단은 그 막대한 자금력으로 학자들과 NGO와 언론의 입을 막고 있고, 전 세계 보건 사업과 여러 나라의 정부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외부 감시도 받지 않는다. 막대한 권력을 손에 쥔 게이츠 재단은 반드시 독립된 기관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민간 재단 같은 자선 단체의 영향력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은 현재 상황에서 이 같은 주의와 경계는 더욱 필요하다. 수익에 집착하는 거대 기업이 정말로 빈곤과 불평등을 물리치고 사회 경제 정의를 추구하는지 예의 주시해야 한다. 우리는 빌 게이츠라는 인물 한 사람을 넘어서서 소수의 대부호가 어마어마한 권력을 쥐고 있는 '자선 자본주의' 관행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 빌 게이츠와 마크 저커버거의 온화한 얼굴 뒤에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환경을 유린하여 축적한 부가 숨어 있다.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주범은 돈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다. 빈곤을 없애기 위한 실절적인 대책은 부자 한 사람의 자비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존엄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2,30년 전, 많은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에게 빌 게이츠는 '선한 사람의 대명사'는 아니었다. 나를 포함한 많은 개발자들에게 그는 탁월한 프로그래머가 아니라 약삭빠르고 뻔뻔한 장사꾼으로 인식되었다. 돈을 주고 사들인 Dos 프로그램으로 IBM을 이용해 개인용 PC 시장을 장악한 후, 애플의 '매킨토시'를 본따 'Windows' OS를 만들어 PC 시장을 독점한 영악한 사업가. 독점한 Windows OS에 끼워넣기를 통하여, 인터넷 시대를 선도한 넷스케이프를 몰아내고,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그래픽 브라우저 시장의 새로운 지배자로 만든 반칙 기업가. 불법 독점으로 기업 강제 분할의 위기에 몰려있던 탐욕스러운 부자. 빌 게이츠의 대척점에서 'GNU 선언문'을 발표하고 '자유소프트웨어재단(FSF)'을 설립해 '카피레프트' 운동을 주도하며 마구잡이 지적 재산권에 대항했던 리차드 스톨만을 모든 개발자가 선호했던 것은 아니지만, 아이디어 도용과 지적 재산권에 대한 탐닉과 철옹성의 독점으로 부의 제국을 설립한 빌 게이츠를 경시하는 개발자들이 아주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상황은 많이 바뀌어 있다. '최후의 해커'라 불리던 탁월한 프로그래머 리차드 스톨만은 '소아성애' 관련 발언으로 배척받는 등 입지가 좁아졌고, 기업 강제 분할의 위기에서 살아남은 '제국의 황제' 빌 게이츠는 '당대 최고의 기부천사'로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인식의 근저에는 지적 재산권에 대한 대중의 많은 인식 변화가 있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오래전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에 제한을 둠으로써 돈을 벌어들이는 행위는 프로그램이 사용되는 범위와 방식을 제한하기 때문에 유해한 것이다. 이는 인간들이 프로그램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전체적인 풍요로움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선언하며 나를 감동시켰던 GNU의 정신은 지금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흘러간 옛 노래로 들릴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모든 지적 소유권은, 그것들이 어떻든지 그를 허용함으로써 사회 전체에 이득이 된다고 여겨져서, 사회가 허용할 때만 정당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지적 재산권을 창작자의 천부적인 권리라고 인식하고 지지한다. 사용자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이런 변화된 세상에서 특허와 지적 재산권을 희롱하며 자신만의 부유한 성을 쌓은 빌 게이츠는 풍요로운 부자 기업가로 존경을 받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철학을 고수한 리차드 스톨만은 현실 모르는 기인으로 경시되는 것 같다. 이제 세상은 포식자만을 존경하고 추앙한다. 그렇게 세상은 바뀌었고, 나는 바뀐 세상이 서글프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변하였어도 변할 수 없는 원칙이 있다. 그것은 '게이츠가 후원하는 교육과정을 밟은 기자가, 게이츠의 보조금을 받는 학자들이 수집하고 분석한 자료를 근거로, 게이츠가 돈을 대는 신문에, 게이츠가 지원하는 보건 관련 프로젝트에 관해 쓴 기사를 읽는' 세상을 우리가 그대로 따라가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현실을 바꾸지는 못할지라도, 나는 내 눈으로, 내 판단으로, 내 원칙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어쩌면 그것은 이 난폭한 세상에 한없이 무기력하게 남아 있는 나 자신에 대한 작은 위로일 지도 모른다. 예전에도 말했지만, 책은 또 다른 책을 부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몬산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졌다. 이제 나는 '몬산토 - 죽음을 생산하는 기업'과 '에코사이드 - 글리포세이트에 맞선 세계 시민 투쟁기'를 보관함에 집어 넣는다. 그렇게 시야를 넓혀간다. 내 눈으로 보기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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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충격이었다. 내가 IT 기업에서 일하기까지, 빌 게이츠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성공한 기업가일 뿐만 아니라 자선 사업가로도 이름이 알려져있으니 말이다. 특히나 빌 게이츠의 부인인 멜린다 게이츠는 게이츠 재단을 이끌며 말라리아 및 소아마비를 퇴치한 공로로, 여성 리더로 존경받는 사람이다. 이런 그들에게, 그들의 활동과 그들의 의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책이었고, 읽어보니 타당한 주장을 하고 있어서 이런 대규모 자선 사업을 하는 재단의 다른 면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기회였다. 우선 책은 빌 게이츠가 막대한 부를 쌓게 된 과정이 과연 옳은가하는 의문에서부터 시작된다. 컴퓨터가 태동할 당시 모든 소프트웨어는 오픈 소스 체제로 무료로 공유를 하며 발전을 이루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빌게이츠는 학교 컴퓨터를 이용하여 만든 소프트웨어들을 특허를 통해 사유화해버린다. 그 이후로도, 몇 번의 공익에 반하는 행위로 결국 지금의 마이크로소프트를 키워냈고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독점 등의 부정적인 프레임이 씌워지게 된다. 이 프레임을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투자를 통한 자선사업을 통해 이미지 세탁에 성공하게 되는데 이 투자 사업 또한 의도나 결과의 긍정적 효과 측면에서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 우선 책 마지막에도 나오지만, 록펠러 재단과 마찬가지로 실질적인 공중보건을 탄탄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과정 없이 그저 눈에 보이는 병들을(단기 치료가 가능하고, 단순한 해결책으로 완치가 가능한 등의) 골라 치료를 한다. 막상 현지에서는 다른 병들이 더 문제가 극심한데, 그러한 처지에는 관심이 없다. 그리고 백신의 중요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재단과 긴밀히 연결된 제약 산업 등에 큰 부를 가져다 준다. 뿐만 아니라, 빈곤 퇴치라는 명목 하에 아프리카 농업 또한 GMO 등의 기술 중심적인 사고를 통해 개혁하려고 하는데, 몬산토가 현재 일으키고 있는 생물 다양성 파괴, 지역 농민들의 생계 파괴 등의 문제를 가속화 시킨다. 가장 큰 문제는 재단이 이렇게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동안 이를 감시하고 타당성을 검토해 반대할 세력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게이츠 재단은 현재 웬만한 국가들보다 많은 돈을 WHO에 뒷받침해주고 있으며, 수많은 언론사, 회사, 기자 양육 등에 투자를 하고 있다. 과연 누가 게이츠 재단의 혜택을 받지 않아서 그들에게 반기를 들 수 있을까? 게이츠 재단은 기부받는 돈을 트러스트 투자하여 그 과정에서 벌어들인, 배당받는 금액을 자선 사업에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투자하는 기업들은 환경오염 또는 빈곤, 비만을 일으키는 기업들이 많다는 모순도 있다. 이 모순적인 투자를 통해 재단은 해가 갈 수록 부를 계속 축적해나가고 있다. 이러한 그들의 자선사업이 계속되는 것이 과연 지구에 긍정적인 것일까? 재단 내 의사결정기구는 오로지 게이츠 부부가 다라는 것이, 지구의 중요한 문제들이 단순히 엄청난 부를 축적한 두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정말 무섭지 않은가? 바로 자본에 의한 민주주의 그 자체이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책을 읽기전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며 살고 있을 텐데, 이렇게 자선 사업의 이면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보며 다른 방면의 시각도 가져보면 좋겠다. . .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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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입니다>
책 중간쯤에 배치되어 있는 '옮긴이이 말'이 이 책의 핵심 내용을 잘 요약해주고 있고, 또 내 개인적으로도 옮긴이의 생각의 흐름에 크게 동감한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이전에는 '빌 게이츠'는 능력과 선함에 있어 타인의 추종을 불허하는 '초능력자' 가까운 위인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물론 최근 빌 게이츠의 이혼과 자녀들과의 불화 그리고 문란한 사생활 부분으로 모범성은 완전히 박탈되었지만, 그냥 역량 측면에서는 높이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가면서 '사업가'로서 '재산증식의 전문가'로서의 정당성에 대해서도 약간 의문을 품게 되었다.
법률적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았나 보다. 특허를 기반으로 한 지적재산의 사유화부분에 있어 어떻게는 법률적인 문제를 피해갔기 때문에 인터넷 운영체제 개발의 이익을 독차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왜 그렇게밖에 하지 못했을까? 왜 만인의 공동이익으로 공유하게 하지 못했을까 하는 궁금함이 생긴다.
그렇게 취득한 막대한 부를 빌 게이츠는 전례 없이 많은 액수로 기부를 해서 전 세계의 칭송을 한 몸에 받아왔다. 참 많은 언론과 책과 갖가지 매체를 통해 그의 천문학적인 기부 행위가 우러름의 대상이 되어왔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그런데, 그 기부행위 또는 기부재단의 설립과 운영 조차도 이 책에서는 오히려 더 크게 문제제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전 세계 기근 문제를 유전자 변형 식품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기술 중심의 해법. 유전자 변형 식품의 안정성과 토양파괴, 생물다양성 축소가 과연 장기적으로 인류에게 긍정적일까 하는 의문을 이 책은 제시하고 있다.
또한, 기부 금액이 한 국가의 기부금에 버금가는 엄청난 규모 때문에 오히려 게이츠 재단 자선 활동이 위험하다고 지적되고 있기도 하다.
빌 게이츠가 후원하는 학자금을 받은 기자, 후원받은 학자, 후원받은 언론사 이 엄청난 사슬이 만들어낸 홍보 카르텔도 게이츠 재단의 활동에 대한 그 어떤 감시와 견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세상 진실을 알게 해 준 이 책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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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는 왜 아프리카에 갔을까
최근 빌 게이츠에 대한 은밀한 사생활이 폭로되면서 그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다. 아동 성범죄 혐의로 체포된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가까이 지낸 사실이 아내 멀린다의 이혼 결심을 굳히게 한 계기라는 대서특필도 보았다. 그뿐 아니라 팬데믹 예언자로 불리는 빌 게이츠가 코로나19는 백신이 있어 종식될 것이라는 인터뷰를 했지만 어떤 이들은 그의 속셈을 이렇게 드러내기도 한다. ‘주기적인 백신 주사를 맞아서 다국적 제약 회사들에게 이익을 보장해주고, 디지털 백신여권을 발급받아 유엔이 추진하는 ID2020에 동참하면 이 코로나19 사태를 끝내게 해주겠다.’라고. 뺨때리고 얼르며 병주고 약주는 수법으로 국가와 시민을 겁박하여 팬테믹 기획자로써 돈을 갈취하고 저들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탄산칼슘 가루를 성층권에 뿌려 일부 햇빛을 차단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시험연구를 시행할 예정이라며 명목상 지구의 기온을 낮춰 기후재앙을 막는다는데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 기술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형태로 지구의 기상 체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렇듯 그에 대한 의문이 있어 이번 책을 자세히 읽어보게 되었다. 책은 그의 기부사업을 통해 마르지 않는 곳간의 비밀을 잘 설명해주었다. 또한 자선의 이름으로 세계의 보건, 농업, 기후정책에 개입하여 더 큰 자본을 확보할 수 있는 정책적이며 구조적인 개입의 교두보를 확보해왔다고 밝혔다. 카네기나 록펠러가 갔던 길과 비슷하다. 저자는 인도 반다나 시바의 시각에 영감을 얻어 ‘테크놀로지’ 로 지구를 살리고 인류를 구하겠다는 자선자본가의 위선을 고발한다. 게이츠 재단은 너그러운 독지가의 얼굴 이면에 공공 재정을 빈약하게 만드는 주범의 민낯을 갖고 있었다. 경제구조를 재편할 생각이나 민주주의, 시민의 힘에 대한 믿음도 없었다. 또한 빌 게이츠는 생물권 전체에 해가 되는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지지하며 시대에 역행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생물다양성의 소실과 세계화의 폭주를 야기한 경제 모델을 지지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그것은 대기업과 과학기술이 이 세상을 구하는 해법이라 생각하며 무엇보다 유전자변헝식품의 개발을 통해 아프리카 지역에 이를 활용하여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거라고 보는 시각이 대표적이다. 그 과정에서 자유로운 종자의 사용이 저해되거나 소규모 농가가 무너지고 자급 농업이 훼손되는 것 따위는 중요치않다. 불투명한 자금구조를 통해서 거물급 자산가들의 전략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제국이라 표현해도 무방할 만큼 게이츠 재단은 덴마크, 이탈리아보다 더 많은 기금을 내며 돈으로 권력을 움켜쥐고 있다.
하늘아래 순수하게 선한 자본가는 없다지만 빌 게이츠의 경우 이 ‘자선’ 사업은 재단을 통해 돈을 푸는 듯하면서도 자신의 ‘투자 펀드 배당금을 통해’ 더 많은 돈을 거머쥐게 만든다. 재단이 기부금을 이용해 재단의 투자 펀드 소속 기업을 후원하는 것이다. 이런 영리성 자선사업은 공익을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사적 이익으로 이어진다. 특히 보건 당국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에 대한 문제성은 심각했다. 출자자가 관심을 갖는 분야가 수혜자 국민의 우선적인 문제와 반드시 일치하진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이츠 재단은 에이즈, 결핵, 말라리아 퇴치 등 특정 질환에 재단 출연 기금의 대부분을 수직적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 재단의 기금을 가장 많이 지원받는 비정부기구 ‘패스’ 또한 제약 회사와의 로비 작업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고, 결국 빌 게이츠가 세계 보건시장을 장악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는 민주주의에 막대한 위협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관용으로 위장한 자선 자본주의의 실체에 대해 파헤쳐 본 시간이었다. 그를 비롯한 소수 권력을 통해 인류의 자원과 권리가 빼앗기고 있다면 이들의 자선 활동을 각국 정부와 시민들의 통제 아래에 놓여야 하겠다. 앞으로도 게이츠 재단의 행보를 유심히 살펴봐야 할 이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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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 '빌 게이츠는 왜 아프리카에 갔을까'를 보았을 때, 나는 당연히 긍정적인 부분으로만 생각을 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들여다보니 정반대의 의미가 아닌가. 다소 불편한 책을 만났다. 아니, 당황스럽다고 하는 게 맞는 걸까. 그동안 '빌 게이츠'하면 떠오르던 이미지를 일단 와장창 깨고 다른 면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을 한쪽 면만 바라보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반대면을 들여다볼 기회는 없었던 것이다. 이 책의 띠지에서는 질문을 던진다. 혹시 지금 우리는 '게이츠가 후원하는 교육과정을 밟은 기자가, 게이츠의 보조금을 받는 학자들이 수집하고 분석한 자료를 근거로, 게이츠가 돈을 대는 신문에, 게이츠가 지원하는 보건 관련 프로젝트에 관해 쓴 기사를' 읽고 있지 않은가? (띠지 중에서) 생각해 볼 문제다. 여기에 더해 '기부 사업은 억만장자들이 전대미문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었다.'라는 린제이 맥고이(사회학자)의 말도 유념해본다. 책을 읽기도 전에 강한 충격과 온갖 사색으로 마음이 복잡해진다. 마음을 가다듬고 이 책에서 어떤 진실을 들려주는지 『빌 게이츠는 왜 아프리카에 갔을까』를 읽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이 책의 저자는 리오넬 아스트뤽. 프랑스의 기자이자 작가로, 생태운동 관련 책을 다수 집필했다. (책날개 발췌) 2000년대 초 빌 게이츠는 성공한 부자에서 자선사업가로 돌연 변신한다. 부의 상징이었던 빌 게이츠가 언론을 통해 세계 최대의 기부 천사로 소개되며 관용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그에게 찬사를 보내는 보도가 쏟아졌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차마 믿기 힘든 뒷 이야기와 거대 부호들의 신종 전략인 '자선 자본주의'의 전형이 숨어 있었다. 이 책은 저자가 직접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자선 자본주의의 대표 주자인 게이츠 재단의 자금 흐름을 그 근원에서부터 추적한다. (책 뒤표지 중에서)
이 책은 총 4장으로 구성된다. 들어가며 '두 얼굴의 기부 천사'를 시작으로, 1장 '마이크로소프트 연대기', 2장 '돈이 있으면 권력도 따라온다', 3장 '관용의 옷을 입은 탐욕', 4장 '더 많이 갖기 위한 기부'로 이어지며, 후기 '시스템을 대표하는 얼굴_반다나 시바'와 감사의말, 옮긴이의 말, 주, 부록 '자선 자본주의의 과거와 현재_앤 엠마누엘 번'으로 마무리된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빌 게이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이면을 들여다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표지에 '거짓 관용'이라든가 '빌 게이츠의 미소 뒤에 감춰진 것들' 같은 단어를 보면 의아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눈 딱 감고 책 앞부분에서 목수정 작가의 추천의 말을 읽어나가기를 권한다. 시작부터 우리가 놓치고 있는 부분을 일러준다. 당연하게도, 하늘 아래 순수하게 선한 자본가는 없으며, 선한 절대 권력도 없다. 절대 권력은 더 큰 권력을 추구할 뿐. 이 명백한 사실이 어떤 사람에게선 예외로 적용된다면, 과도한 힘이 진실을 가리고 있는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5쪽)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불편하고 의아하고 무언가 근본부터 혼란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큰 고민거리는 자선사업은 무조건 좋은 거라고만 생각하던 데에서 오는 혼란스러움이었다. 빌 게이츠에게 돈을 버는 것과 자선사업을 하는 것은 서로 이율배반적인 게 아니다. 사실 '자선 자본주의' 논리에서 보면 아프리카에서 기업 주도로 발전을 꾀한다거나 정부가 초대형 기업에 우호적인 정책을 채택하도록 돕고 기업의 명성을 좋게 유지해줄 활동을 지속하면서 게이츠 재단이 마이크로소프트를 돕는다는 생각은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아프리카를 새롭고 흥미로운 사업 기회의 장으로 분명히 인식하는 것이다. 재단과 기업이 서로 뒤섞여 투자에 기부의 옷을 입힘으로써 생기는 이득이 무엇이건, 한 가지는 분명하다. 빌 게이츠는 기부를 시작한 뒤 이전보다 더 부유해졌다는 점이다. 가난한 사람들과 공익을 위해 선뜻 거액의 재산을 내놓는 '기부 천사' 이미지를 세간에 심어주고 있긴 하지만, 빌 게이츠 재산의 순수가치 평가액은 계속해서 증가 일로에 있다. (83쪽)
처음 이 책에서 '공공의 이익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빌 게이츠의 기부와 탐욕'이라는 말에 의아했는데, 이 책에서는 왜 그런지 조목조목 짚어준다. 불편하면서도 계속 보게 된다. 실눈 뜨고 공포영화를 보는 기분이랄까. 아니면 비밀을 들춰보는 느낌이랄까. 결과적으로는 이 책도 읽어볼 필요가 있었다. 민낯을 들여다본 듯한 느낌에 기분이 영 개운치 않으면서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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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의 행위에는 분명한 의도가 있고, 이 의도는 교묘하게 감춰지기도 한다. 대신 진짜 목적을 숨기고 그럴듯한 명분을 통해 대중을 속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신간 『빌 게이츠는 왜 아프리카에 갔을까』는 공공의 이익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선 자본주의의 민낯, 공공재의 사유화라는 문제를, 빌 게이츠의 행적을 통해 고발한다. 이 책에 따르면 빌 게이츠는 공공재를 사유화한 악마와 같다. 그는 자선자본가의 위선을 여지없이 보여주며, 생물다양성과 전통사회의 가치를 무너뜨리는 파괴자요, 공공의 재산을 가로채어 부를 축적해왔으면서도 그것에 대해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도둑놈과 다름없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에 묘사된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은 자기가 영원히 살 수 있는 존재라고 믿는 것 같다. 인간의 유한성을 외면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패악한 짓들을 벌일 수 있을까? 그는 지구의 생물권 전체에 해가 되는 시스템을 지속적으로 지지하면서, 오로지 기술만이 모든 인류의 문제의 해법인 양 시대를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인류의 당면 과제인 식량, 빈곤, 보건, 의료, 기후변화 문제에 있어 최근 그가 보여준 행보의 속내는 악마도 고개를 저을 만큼 사리사욕으로 똘똘 뭉친 인간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중국 사람이 다리 달린 것은 책상과 의자 빼놓고는 다 먹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자본가들은 자선과 기부라는 행위조차도 사업 대상이나 수단으로 활용해 부를 축적하는 데 여념이 없다. 특히 공공재와 마찬가지였던 프로그램 언어를 이용해 만든 주제에 거기에다가 특허, 즉 지적재산권을 취득해 부를 늘린 빌 게이츠는 더 큰 먹잇감인 ‘선행’이라는 인간의 선한 의지를 기업활동에 접목시켰다. 사업과 선행을 결부시키고, 수익활동을 빈민구제를 연계시키는 방식으로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부를 증대시키는 탁월한 사업 감각을 보여주었다.
그는 뻔뻔하기 짝이 없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조세회피 전략은 결과적으로 미국 재무부, 다시 말해 시민의 세금으로 자선사업 기금을 충당하는 격이라는 내용을 보면서, 결국 최종 목적은 자신의 이익밖에 없으며, 인류의 공동 유산이나 쌓아온 가치 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물론 그런 것들이 자기 사욕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된다면 또 언제 태도를 바꿀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의 돈이 떨치는 위용은 언론에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자신에 대한 정당한 비판조차 음모론과 뒤섞이게 하여 실체를 감추는 데 성공했다.
빌 게이츠의 궁극적인 의도가 사악한 이유는, 재단과 관련한 재정 문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게이츠 재단에 기금을 대는 기업들은 하나같이 빈곤의 확대에 일조하고 사회정의를 해치며 세계 경제구조를 불평등하게 만드는 곳들이다. 인권과 노동권 유린, 환경 파괴, 조세 회피 정책을 펴는 것으로 비판 받는 그런 곳들 말이다. 이들은 서로 공생하는 관계로서, 사익을 위해 공익 활동을 하는 기만과 위선에 충실한 자들이다. 특히 아프리카의 농업에 영향을 미치려는 빌 게이츠의 전략에서 특허종자와 화학비료에 대한 아프리카 농민들의 의존도를 높이게 하고 생태적 대안을 배제하는 모습은 우리가 더 이상 드러나는 모습만으로 빌 게이츠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사실, 전쟁이라는 최악이면서도 합법적인 살인 사업이 횡행하는 것이 역사였고, 지금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런 것들을 보면 빌 게이츠의 자선 자본주의는 애교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엄밀히 얘기하자면 자선 자본주의는 가장 고도로 진화한 형태의 제국주의이자 인종차별이자 사기행각이자 위선이자 기만이자 살인 행위이자 지구 파괴 행위라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신간 『빌 게이츠는 왜 아프리카에 갔을까』는 우리가 개돼지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고 특정인을 찬양하지 않도록 합리적인 경계심을 갖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생겼다.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확대되는 영향력도 심상치 않은 상황인데, 이 둘의 관계는 어떻게 조율되고 있는 것일까?
네이버 「리앤프리 책카페」 카페 이벤트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읽고 쓴 서평입니다.
#빌게이츠는왜아프리카에갔을까, #리오넬아스트뤽, #배영란, #자선자본주의, #소소의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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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세계적 명망을 쌓았고 매우 유능한 인물, 뛰어난 리더십을 발현하는 인재로 평가받았지만 최근에는 그의 민낯이 밝혀지고 논란이 이어지면서 각종 음모론의 중심에 서있는 인물이다. 누구나 다 아는 빌 게이츠, 그리고 그가 운영하는 게이츠 재단에 대한 평가와 논란, 이를 통해 알아보는 자선 자본주의의 허상에 대해 말하며 책에서는 자본주의가 낳은 괴물, 또 다른 형태의 자본독점과 불법관행, 사회정의적 관점에서도 문제가 많다고 비판하며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우리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는 책이다. 더 많이 갖기 위해 자신의 탐욕을 숨기며 위선을 포장하는 다양한 형태의 자선단체, 기부단체의 존재, 이를 완전히 없앨 순 없을 것이다.
다만 이들의 탐욕에 놀아나지 않고 자본주의가 주는 올바른 가치, 사회정의의 실현, 코로나로 인해 더 어려워진 상황을 돕고 현실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방법론과 방향성이 무엇인지, 책을 통해 읽으며 답습해 보자. 또한 사회 구조적인 문제, 인식의 한계성, 양극화에 대한 논의는 진전되지만 구체적인 방안이나 실효성에 대한 의문 등 기부와 자선활동에 대한 색안경적 태도가 아닌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하며 거를 것은 확실히 걸러주는 자정효과와 작용이 필요하다는 것은 저자는 게이츠 재단의 사례를 통해 분석하며 조언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다양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환경문제, 농업문제, 보건위생에 대한 접근, 모든 것을 경제관계나 이해관계 등을 통해서만 해결하려는 가진 자들의 농간과 권력을 추종하기 위해 이를 암묵적으로 묵인하거나 동의하는 행태에 대해 맞서야만 쟁취할 수 있고 이들의 부정과 청탁, 욕망으로 가득한 세상의 모든 악에 대해서도 순기능적으로 활용하며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기부활동이나 자선단체의 행보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는 이들이 갖는 불투명성이나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는 정보의 한계,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자들에게 돌아가는 것이 없다는 다양한 형태의 고발과 제보가 이어졌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만큼 사람 위에 사람없고 그 누구도 자신의 사적 욕망이나 야망을 위해 또 다른 누군가를 희싱시킬 수 없다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 존엄성과 평등의 개념으로도 접근하며 이들의 활동에 대해 면밀히 살피면서 때로는 추적하는 마인드를 갖고 감시해야 할 것이다. 가난한 자들을 돕는다고 선동을 할 뿐, 구체적인 행동력은 이어졌는지, 아니면 실제 활동을 통해 돕고 있다면 그 이면에 숨은 의도나 계산된 결과물이 존재하지 않는지 등 이에 대해서도 엄청난 인적, 사회적 낭비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책을 통해 접하며 자선 자본주의의 허상에 대해 공감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면 유의미하면서도 현실적인 메시지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빌 게이츠는 왜 아프리카에 갔을까> 많은 분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이며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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