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생 처음 접하는 세계, 어느새 남들은 이미 상당한 안목을 갖추고 이건 이렇더라 저건 저렇더라 고상한 이야기를 늘어놓지만 정작 자신은 뭐가 뭔지 하나도 알 수 없는.. 간절히 알고는 싶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이 세상 모든 ‘분야’란 것이 처음에는 다 그렇지 않을까. 어릴 때에는 지도자가 그야말로 기초 중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주지만, 어느 정도 머리가 굵어진 후 본인 스스로 어떤 분야에 흥미를 느꼈을 때, 하지만 더 이상 유치원반이나 기초반에서 배워나가기엔 나이도 시간도 허락치 않는다면 그 분야를 제대로 알아나가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책을 찾아봐도 마땅치 않고 인터넷이나 동호회를 찾아도 마땅치 않다. 클래식 음악에 우연히 흥미를 느꼈다 치자. 책을 들춰보면 이 한장의 명반 어쩌구 하면서 고명한 교수 내지 평론가가 음반을 하나씩 소개하며 이런저런 설명을 해 놓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쉬운 설명이라 해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클래식 음악의 세계는 얼마나 깊은가. 그리고 또 얼마나 방대한가. 그 수많은 작곡가들, 그 작곡가들의 또 수없이 많은 곡들, 그 곡들의 갖가지 형식이 저마다 다르고, 그 곡이 작곡된 시대적 배경이 또 다르고, 어디 그뿐인가. 쓰이는 악기도 많다. 그 악기마다 그것을 나름의 방식으로 다뤄온 이름있는 플레이어들이 한둘이 아니다. 해석이란 것도 있다. 인간이 최초로 자신의 연주에 ‘이름’을 걸기 시작해온 이래로 그 곡들 하나하나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양한 해석들이 또 탄생하지 않았는가. 그래서 평론이나 리뷰 하나를 봐도 “ 이 지휘자는 베토벤의 몇 번 교향곡을 이렇게 해석했는데 어디의 누구와 비교하면 이러저러하다. “ 이런 식이다. 사실 감상의 묘미는 그런 데 있는 것이리라. 어, 모짜르트의 이 곡, 내가 산 음반이랑 같은 곡인데 아주 다르게 들리네. 지휘자가 누구야? 음, 아무개로군. 그러고 보니 내 음반의 지휘자는 누구더라? 아, 저무개구나. 아무개 걸 좀더 찾아볼까? 엇, 똑 같은 쇼팽인데 이 피아니스트는 굉장히 부드럽네, 쇼팽은 다 신경질적인 줄 알았는데. 그동안 쇼팽 헛들었군. 기타 등등. 어느 한 세계의 문을 열어보았을 때, 진정 그 세계가 무엇인지 알고서 들어가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처음 어떤 직업을 꿈꿀 때 누가 처음부터 그 의미라든가 사명 같은 것을 제대로 알고서 뜻을 세우겠는가. 보통은 어느 누군가에게 반해서 그 세계에 끌려들어가는 것이겠지. 음악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처음 그 세계로의 발걸음을 이끄는 것은 세계 그 자체라기보다는 그 속에 우뚝 서서 혜성같이 빛나는(!) 스타라고 생각한다. 발터, 번스타인, 푸르트뱅글러, 루빈슈타인, 예후디 메뉴인, 하이페츠, 아르헤리치, 로스트로포비치, 미켈란젤리... 클래식 음악 매니아들에게는 이러한 이름이 마치 축구 매니아들에게 있어 베컴, 호나우두, 지단, 비에리 등등의 이름처럼 들릴 것이다. 고로, 결론은, 처음 클래식 음악을 들어보고, 또 배워보려 할 때 소나타 형식이 어쩌구 인상주의가 저쩌구 작곡가 연대기가 요렇고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명플레이어, 명지휘자, 명오케스트라들의 계보나 한 번 훑어보는 게 더 재미있을 것이란 얘기다. 덧붙여 각 클래식 음반 레이블들의 역사나 성격도- 도이치그라모폰, EMI, 소니, 필립스, 낙소스 등등의. 그들의 이름과 닉네임 정도만 귀에 익숙해져도 아마존 밀림 같은 클래식 음반 매장에서 음반 고르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몇 년 전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는 그래, 이거야!! 하며 기뻐했던 기억이 난다. 마치 은막의 할리우드 스타들 평론집, 혹은 기나긴 판타지물을 뒷받침해주는 종족•마법전서 같은 느낌으로 읽었다. 그때는 사지는 못하고 열심히 노트에 베껴 적어두었는데, 그때 알아둔 이름들이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른다. 적어도 음반 소개글을 읽을 때 어떤 맥락인지는 감을 잡게 되니까. 다만, 이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두께도 상당하고, 그 안의 내용도 아주 세세해서, 처음부터 완독하기보다는 곁에 두고 천천히 찾아보면서 음악도 직접 찾아 들어보면서 익히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바이올린, 피아노, 첼로, 비올라, 심지어는 플룻과 하프까지 명연주자들과 추천 음반 목록 및 설명이 나와 있고, 명지휘자들과 그들의 대표음반, 명성악가들과 그들의 대표곡들, 레이블과 그 레이블의 대표적인 음반들, 마지막으로 작곡가들의 간략한 일대기와 추천 음반 리스트가 실려 있다. 사도 후회없으리라 생각하지만 혹시나 해서 서점에 들를 기회가 생기면 한번 들춰보고 어떤 책인지 감 잡은 후에 주문해도 좋을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