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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이름만으로도 그녀의 이야기는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는 대표적인 여류작가이다. 일단 그녀의 이야기는 읽지 않으면 않될 것 같은... 그래서 찾게된 소설집이었다... 솔직히...예전에 신경숙이라는 이름 석자에 기대어 읽게 되었던 단편집..
웬지 일상적이지 않은 주인공들의 바라다보면서 ... 그래도 유명한 여류 작가의 소설이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세련되었어.... 하면서 하지만 왜 이리 말을 어렵게 할까하는 생각도 하면서....
하지만 다시 접해본 그녀의 글은 여전히 그대로이지만 나에게는 웬지 예전의 느낌과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엄마를 부탁해>로 화제를 모았고 그 후 <모르는 여인들>까지 최근의 소설을 본 후 다시 찾아보게 된 그녀의 단편집...
딸기밭이라는 상큼할 것 같은 제목과는 그 이미지가 다르게 이 단편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웬지 모르게 다들 불안하다 7개월밖에 되지 않은 면역결핍의 딸을 수두로 잃은 엄마.. 혼란스러웠던 사회속에서 유일하게 빛을 반짝이던 유와 접근금지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남자와의 기억속에서 혼란스런 나와 처녀.. 아내와의 이혼을 앞두고 자신을 친자식보다 더 보듬어주던 새어머니와의 시간을 갖는 아들.. 갑작스런 폭우로 인해 목숨을 잃고 육체를 이탈하여 친구들과의 점심약속장소로 가 작별인사를 하는 M.. 자신이 폐암이라는 것을 끝까지 숨기고 사랑하는 남편과 언니에게 죽음을 남기고 떠난 동생..
일상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가고 ,지극히 사회적이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상실을 채워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눈물이며 보듬기이다.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 그저 이야기로만 하자면 한두장 간단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 내면과 그것을 표현하기 위한 언어와 문장 선택에 열정을 보인다.
역시 그녀는 대화조차도 그 흔한 따옴표로 묶어 읽기 편하게끔 해주지 않는다. 여기까지가 대화이고 여기부터가 서술임을 내가 느껴야한다 하지만 그게 더 자연스런 것이 그녀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
10여년이 지나 다시 펼쳐보는 그녀의 이야기는 그녀를 표현하는 상징적인 단어라고 생각되는 내면,은유, 상징등이 깊숙히 포진해있는 듯한 느낌이다. 재미라는 것을 기대하기 보다는 깊음, 울림, 저림 , 아림..등을 느끼게 해주는 그런 그녀의 오래전 이야기들이 새삼 새롭다.. 이렇듯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찾아보는 작가들의 예전 이야기들.. 오히려 그들을 더욱 확실히 알기에 더 좋은 기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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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 작가의 글은 자주 접하는 편인데, 여동생이 올린 딸기밭이 있길래 퍼왔습니다...
지금까지의 신경숙의 작품들은 빈방,마당 등 황폐해진것들을 찾아다녔고 거기에 살았던 물건들로 인해 회상과 잔잔한 정겨움을 사연으로 모아 글을 옮겼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자전적인 느낌이 많이 들었었다. 그러나 지금 읽은 이 책은 보편적이고 세상과 인간을 향한 열린시선을 보여준다.
이번 작품은 6가지의 짧은 이야기를 다루었다.
작가가 내포하고자했던 깊은 뜻을 모두 알려하기엔 나의 비평과 이해력이 부족할 정도로 심도있는 글이라 생각된다.
그 첫번째--지금 우리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 두번째--딸기밭 세번째--그가 모르는 장소 네번째--작별인사 다섯번째--어떤여자 여섯번째--그는 언제 오는가
첫번째는 7달 아기의 죽음으로 인해 부부가 각 방을 쓰며 지내온 2년여의 시간을 어느 눈이 오는날 죽은아기의 인기척을 느끼며 둘이 화해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두번째는 어릴적 아버지의 부재로 뭔가가 늘 부족했던 그녀에게 근친을 느끼는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되나 실제론 동성애적 "유"를 만나 자신을 뚫고 나오는 이야기이며,
세번째는 남편의 무관심으로 아내의 불륜까지 경험하여 이혼해주기에 이르러 엄마를 찾아와 서로의 이야기를 정겹게 하며,
네번째는 지리산에 들어갔던 친구가 폭우와 급류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나 점심시간에 모두 모이기로 한 친구들을 찾아와 자신의 죽음을 알리려하고 있으며,
다섯번째는 서로의 다른삶을 살고있으나 3남매의 아내로서, 작가로서의 밝고 경쾌한 삶과 나 자신의 삶이 대조적인것을 보여주는 짧은 내용이다.
마지막 여섯번째는 죽은 여동생으로 인해 제부와 처형의 이야기를 다루고있으나 돌연 자살을 하게된 동생의 죽음을 늘 의문스러워하던 언니와 신랑이 몇년후 그녀의 노트가 발견됨으로서 의문스러움을 풀려하는 내용이다.
짧아보이면서 슬슬 책장이 쉽게 내려갔던 소설중 하나이다.
그러나 신경숙의 깊은 내면을 그녀가 원하는대로 모두 소화하기엔 나의 부족함이 역력하다.
"허나 작품을 읽으면서의 공통점은 자신의 죽음을 다른 존재에게 알리고싶다는 그들의 사연을, 그리고 벌어진틈 그 어두운 블랙홀위로 시간은 흐르고 아름다운 풍경은 여전히 아름답다는 뜻을....신경숙은 이 세계의 슬픈 아름다움을 실현하고 있다. 신경숙은 그리고 그이 작품은 그래서 슬프고 또 그래서 아름답다"====비평글中 . . 내용은 간결했으나 자연스럽게 읽기에는 여전히 나의 소양이 부족함을 느끼게해주는 책이다.
슬슬 넘겨지는 책장이 그 이면에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것일까를 생각하려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6작품 모두가 다 그러하다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제목으로 다뤄진 "딸기밭"이 나에게 가장 어려운 숙제로 남는다.
제목만으로 간편할꺼 같았는데, 읽었을때는 나의 머리를 가장 복잡하게 만든 작품이니 말이다...ㅎㅎㅎ 이리하여 신경숙의 작품을 다시 한 번 접하게 되었다. 작가가 원하는 것들은 모두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나만의 작품해석으로 다룬다면 글을 읽는 재미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말로 나의 끝을 맺는다....ㅎㅎㅎ
*코멘트 : 아마도 여동생은 70년대후반 태생이어서 386세대가 겪은 경험칙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경숙 작가의 내면을 이해하기엔 다소 어려움이 있을 줄로 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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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소설은 기대하고 있는 바를 채워주고도 긴 여운이 남을 만큼 울림이 강하다. 책을 다 보고 난 뒤 한 동안 침잠하는 기분이었다. 아주 예전에 책 속의 몇 개의 단편만 읽고 던져 두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 땐 내가 조금 심란했었나 보다... 이런 존재감있는 소설을 던져 두다니 말이다. 총 여섯 개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가장 맘에 드는 이야기는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 <그가 모르는 장소>와 마지막 이야기 <그는 언제 오는가>였다. <딸기밭>은 그 중 하나의 단편이다.
딸기와 신경숙은 별로 어울릴 것 같지 않았다. '딸기'하면 생각나는 것이 세상에 그보다 멋진 빨강은 존재할 것 같지 않는 유혹의 색깔을 가진 과일이며 토마스 하아디의 소설 <테스>를 한 방에 무너뜨리는 위력의 열매이자 한국 토속적 에로티시즘의 결정체인 영화 <산딸기> 여주인공의 불타는 듯한 입술이 연상되는 단어였다.
<딸기밭>은 이제껏 작가에 대한 편견을 미련없이 버리게 한 작품이었다. 내재된 욕망의 결핍을 되찾아가는 신경숙식 에로틱모드라고 할까!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 는 읽는 내내 조바심이 나고 불편했다. 면역성 결핍 체질에 겨드랑이 밑에 날개모양의 혹까지 가지고 태어난 아이, 그 아이를 다른 세상으로 떠나 보내고 겪어야만 하는 젊은 부부의 무한한 공허가 한없이 펼쳐진다. 여자는 일상에 여전히 충실하고 승진까지 해내는 남자에 치를 떨지만 그는 그런 여자를 아무런 감정의 동요없이 보아 넘긴다. 눈보라치던 어느 밤 하얀 옷을 입은 아이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분명 그것은 환영이었지만, 그들은 놀라고 당황하고 급기야 서로의 처지가 너무나 같고 가련하다는 사실을 깨달게 된다. 아무렇지 않게 보이던 남자의 무너지듯 부서지는 흐느낌과 부쩍 말라버린 신체의 변화를 감지한 여자는 그를 끌어 안는다. 그도 그녀만큼... 아니 그녀보다 더한 고통으로 일상을 꾸려가고 있었다는 사실 앞에 눈물지며 .....
<그가 모르는 장소>는 서정적인 공간 묘사가 돋보였던 작품이다. 자신을 길러 준 어머니와의 깊은 교감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이혼을 결정하고 나서야 깨닫게 되어가는 과정에 감정이입이 막바지에 달했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진리인 듯 하다.
<그는 언제 오는가>, 동생의 자살로 인해 겪는 존재의 괴리감을 언니와 제부의 어느 날의 짧은 여행을 통해서 되새겨보는 이야기이다. 우리는 살면서 상대를 제대로 알고 가는걸까? 내 곁에 있는 그 사람을 사실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 드리고 있기는 하는 걸까? 읽는 내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다.
신경숙님의 최근 소설은 아직 읽기 전이다. 읽을거리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그의 소설은 언제나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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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썼으면 했는데, 이미 그 리뷰를 얼마 전에 썼기에, 이 여인을 떠올리면 어떤 이야기가 그 다음에 나와도 좋을지 생각하다 이 책이 스쳤다. 5월에는 <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맞겠다 싶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 책은 어느 달에나 달만 뜨면 그냥 읽어도 괜찮을 것 같다.
신경숙 작가를 이야기할 때 <외딴 방>, <깊은 슬픔>을 먼저 이야기하게 된다. 그만큼 강했다. 그리고 <엄마를 부탁해> 역시 강하다. 읽은 사람의 숫자와 읽은 사람의 마음에 파고드는 감정의 느낌 모두. 그렇다면 <딸기밭>이 주는 느낌은 어떤 것인가 하면 상실과 자존감이 무너진 여인이 내뱉는 독백들이 들어있다. 글씨만 덩그러니 있는 책표지를 넘기면 나타나는 여성들의 혼잣말과 생각의 흐름이 여성의 마음 밭이 어떤지 살펴보게 한다. 그 밭에서 사악하거나 잘못된 것은 없이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수긍하며 생각의 주파수를 맞춰 누군가의 마음이 보일 것 같은 장소.
2000년의 글이면 좀 오래된 느낌이 들만도 한데, 첫 번째 글은 마치 어느 모노드라마의 연극 한 편을 보는 듯 빠져들고, 두 번째 딸기밭에서는 눈이 부시게 하얗고 아름다운 본질에 대한 인간의 본능이 치닫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말한다. 그 어떤 느낌도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극에 달하고 부족하지 않으면서도 겸허한 느낌. 아마 신경숙 작가의 글의 힘은 독자 개인이 마음밭을 일구며 여러 군상들을 돌아보게 하는데 있지 않나 싶다. 그만큼 돌아보지 않으면 모를 사람들, 그만한 아픔이 있는지, 그만큼의 고뇌와 갈등이 있는지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보게 하는 것. 그래서 함부로 평가하거나 막말을 할 수 없게 하는 것.
해설에서 표현한 '슬픈 아름다움'이라는 말이 정확할 것 같다. 슬프다. 슬퍼서 눈물이 굵은 눈물방울이 뚝 뚝 떨어지는데, 하얀 쉬폰케잌 한 조각이 눈앞에 있어 한 입 베어물고 싶은, 혹은 그저 예쁜 케잌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웃음짓게 만드는 희망 혹은 기대같은 것이 동시에 생기는 것. 그게 삶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것.
그저 읽고 망각하는 가벼움과는 다른, 글로만 채워진 책이라고는 생각하면 안 되는 소설이다. 누구나가 경험하지 못하는 삶의 무게감을 알려주면서 그것을 독자와 소설속 인물이 공유하게 하고, 존재의 힘이 서로를 보게 하는 데 그녀의 글만큼 정확하고 신중한 것을 찾기는 어렵다. 특히 세상의 약자인 아이들과 여성의 입장에 대해서 말할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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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게 인생인지도 모른다. 환영 뒤에 남은 그리움을 품고 이렇게 어딘가를 응시하고 앉아 있는 것. ( 그는 언제 오는가, p284 )
메마른 햇살에 물기를 머금은 자신의 눈을 비추어 본 적이 있는가,라고 물으며 이 책에 대한 서평의 서문을 열게 된 까닭은 이 책을 읽을 당시에 감정이 극도로 상승곡선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얘기해야겠다. 답답한 마음을 움켜잡았을 때 내 손 안에 아무 것도 없음이 확인되었을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눈을 시리게 만들어버린다. 그 때에 올해 칠월에 만났다가 주체할 수 없는 슬픔에 잠시 안녕,했었던 신경숙을 다시금 만났다. 내가 시월에 한일 중 가장 잘한 것이 있다면 신경숙의 「딸기밭」이라는 이 책을 만난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라는 책은 선물받고 겨우 일년, 이 책은 내가 중등교 때 동사무소에서 일하는 오빠에게서 받아온 책이었으니 10년까지는 되진 않았다하더라도 거진 8,9년은 되었을 것인데, (출판일은 2007.01.15로 되어있으나 초판발행일은 2000.02.28이다.) 어쨌든 그 둘이 나란히 함께 고스란히 뒤집혀있던 책 중 한 권이라는 명백한 사실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자질구레한 변명은 책의 표지를 포장지로 감싸고 싶었을 정도로 볼품없었다,라고 이야기하며, 그래서 읽고 싶은 욕심조차 생기지 않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실은 첫 단편 혹은 중편을 4,5번은 읽었다고, 그 느낌이 괜찮았지만 그 후의 것은 읽을 용기가 차마 생기지 않았다고. 그런데 「기차는 7시에 떠나네」를 올해에 읽고서 깊은 감명에 딸기밭을 읽어야겠다,라고 다짐한 이레에 처음 들었다.
일전에 난 김영하 작가의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라는 책을 많은 지인들의 추천으로 읽고 나서, 후에 오는 이유 모를 허무함을 감출 수 없어서 괴리감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단편 중 별 다섯개를 주고도 아깝지 않았던 김경욱 작가의 「위험한 독서」라는 책도 신경숙, 그와 감히 대적조차 할 수 없겠노라고, 그만큼 내가 읽어본 단편 중 감히 최고라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딸기밭」,「그가 모르는 장소」,「작별 인사」,「어떤 여자」,「그는 언제 오는가」라는 총 6개의 중,단편을 소개하고 있다. '아이의 죽음, 유의 죽음, 아내와의 이혼, M의 죽음, 순돌이의 실종, 동생의 죽음'이라는 것을 연상케하기에 충분한 것은 상실,이라는 단어 외에 어떤 단어를 결부시킬 수 있을까. 그러고 보면 (매우 주관적인 나의 시선에서)「딸기밭」은 「외딴 방」의, 「작별 인사」는 「엄마를 부탁해」의 표본인 것처럼 무척이나 닮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러고보면 저자는 슬픔이라는 보이지 않는 주체를 아름다움이라는 또 다른 형상으로 승화하여 우리에게 내놓고 있다.
사랑이 다시 오면 이제는 그렇게 휘둘리지 않고 놀라지 않고 아프지 말아야지. 깊은 한숨과 함께하는 일이란 걸 인정해야지. 외로웠지만 사랑이 와서 내 존재의 안쪽을 변화시켰음도. 사랑은 허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 ( 작별인사, p148 ) 사랑이라는 밑도 끝도 알 수 없는 내면에 숨어있는 한창 회의감을 느끼고 있는 요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결국은 무슨 일이냐 묻는 엄마의 품에 파묻혀 울기, 내 이런 나약한 존재임을 진즉에 알고 있었는데 어쩌자고, 그렇게까지 될 때까지 방치해두었느냐,며 타박하며 눈물을 닦아주는 친구의 손길에 기대어 흐느끼기. 그러면서 저자의 저 문장에는 나도 좀 그러고 싶다고, 그런데 그게 안된다며, 당신은 그게 되느냐며 따져묻고 싶기도 수차례. 결국 공감할 수 없다고 고개를 돌려 외면하지만, 귓가에 딱지처럼 내려앉아 바둥거리고 있는 모양새로 나동그라져 있다.
처음 「외딴방」을 접했을 땐 차오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어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꺽꺽, 울었던 기억이 나는데 단편 중 「딸기밭」을 읽을 땐 그러지 않았던 것이 「그가 모르는 장소」, 「작별인사」,「그는 언제 오는가」를 읽으며 뭉클한 감정을 억누를 수 없음에 울음을 토해냈었더랬다. 참 오랜만이지 싶지,했다. 신경숙에게는 그런 힘이 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이 책은 장편소설이 아닌 중단편이기에 긴 호흡을 가지고 읽어나갈 수는 없다,는 점이 흠이라면 흠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다. 분명 읽어내리기 힘들 정도로 난해한 점도 없잖아 있고, 바로 그 점때문에 중간에 포기할런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도 이 책을 오롯이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기에 가타부타 설명할 수 있는 입장 또한 되지 못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만, 신경숙, 그의 책을 아끼고 사랑한다면 기꺼이 추천해주고 싶은 그런 책임엔 분명하다. 오랜만에 별 다섯개가 아깝지 않은 기고(奇觚)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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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 신경숙 작가의 작품들은 빠짐없이 사서 읽었다. 이 소설집에 실려 있는 소설들은 큰 사건이 있고, 그것을 풀어나가는 그런 이야기들은 아니다. 대단한 흥미거리를 주는 것들이 아니란 소리다. 그런데도 이 책은 읽으면 읽을 수록 가슴 한 켠을 저리게 만든다. 개인의 아픔을 보편적인 아픔으로 풀어낼 수 있는 힘은 그녀만의 문체에서 나오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타고난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 새로 나온 장편소설 리진을 읽어보지 못했다. 서둘러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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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2년째 책꽂이에 딸기밭이 꽂여있었다. 그런데 자꾸만 그책만큼은 피하고 싶어서일까? 손이 가지 않았다. 왜일까? 그건 작가 신경숙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있는 어두운 그림자 때문만은 아닐까? 오래전 서점 베스트 셀러 1위의 자리를 오래 지키고있던 '풍금이 있던 자리'를 무심코 사서 읽으면서 느꼈던 암울함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일것이다. 1년동안이란 길고도 짧은 시간을 중국에서 보냈다. 그런데 돌아온 지금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허탈감만 생겼다. 내 맘이 쉴곳이 없다고나 할까. 이제서야 책을 꺼냈다. 내 맘속에 있는 이런 허전함이 그책을 끌어당긴것은 아닐까? 책을 꺼내들기 시작하면서 흡입력있게 나를 빨려 들어가게했다. 우울한 빗소리와 죽음이나 상실에 대해 궂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내가 그속에 있다. 나는 이책은 아니 신경숙의 책은 아무 생각없이 쉽게 대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책을 읽다가 너무나도 큰 상처를 받지 않을까 싶기 때문에.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우울하고 허탈하던 요즘에 읽었던 그 책이 동질감같은 것을 느끼게 하면서 위안을 주었다. 다 잃어버린 뒤에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처럼. 어제까지 내내 내리던 비가 오늘 맑은 하늘을 비춘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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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작가의 책을 접해 본 건 아니지만 누가 나에게 우리 나라에서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난 서슴없이 ‘신경숙’ 이라고 말할 것이다. 절대 가볍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다. 이 분의 소설들을 읽으면서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읽고나면 짙은 남색의 하늘이 떠오른다. 왜 일까? 예전에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맑게 개인 하늘보다 짙은 남색이 낀 하늘을 보는 게 좋다고. 그건 슬퍼지기 때문이라고. 「깊은 슬픔」을 읽었을 때도 「기차는 7시에....」를 읽었을 때도 읽고나서의 느낌은 똑같았었다. 가슴 찡하게 슬픈 게 아니라 마음에 어떤 공허를 남긴 채 오랫동안 슬픔을 느끼게 해주었다. 소설 속에 푹 빠지게 하는 흡인력. 그래서 책을 손에서 때면 오랫동안 그 여운을 간직하게 해주는 ‘신경숙’작가의 소설들. 그래서 짙은 남색이 낀 하늘을 보는 걸 좋아하듯 난 이 작가의 소설을 읽는 게 좋다.
《딸기밭》제목 부터가 어딘가 모르게 귀엽지 않은가... 이 책은 여섯 편의 단편 소설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다. 긴 장편보다 부담없이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짧은 글로도 사람 마음을 이리도 감동 시킬수 있다는 거에 대해서 놀랐다. 읽는 처음부터 훌쩍훌쩍도 아니고 평펑 울었다. 〈지금 우리 곁에 누가 있는 걸까요〉였는데 죽은 아기에 대한 엄마와 아빠의 사랑과 아이를 잃은 부모의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이라는 게 때론 말도 안되는 기적을 일으킬수 도 있다는 걸 알았다. 〈딸기밭〉이 책의 제목이기도 하여 읽기 전부터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솔직히 여기 실린 소설들 중에서 제일 이해가 안갔다. 나만 그러는 건지는 모르지만 이 작가의 책은 너무 심오한 뜻이 담긴 내용이 많아 가끔 읽을 때마다 어렵게 하곤 한다. 이 걸 읽고 딱 떠오른 단어는 ‘엽기’였다. 한마디로 엽기적이 었던 것 같다. 특히 딸기밭 속에서 두 여자의 동성애를 착각 시키는 엽기라고 밖에 표현 할수 없는 행동은 정말 압도적이었다. 정말 많이 생각 해봤다. 이게 뜻하는게 뭘까? 결국 짧은 내 머리로 해석한 결과는 어려서부터 상처투성이의 슬픔만을 간직 한채 살아온 주인공 여자가 아무리 봐도 밝기만 하고 당당하기만 한 유에게 열등감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열등감의 한계를 넘어서 죽이고 싶을 만큼 부럽고 미웠던 마음속의 주문이 빚어낸 행동이었던 것 같다는 거였다. 그렇게 생각 하고 나니깐 그 여자가 왜그리도 측은하게 느껴지던지 인간의 욕망이 어떤 것인지 그 모습이 어떤 건인지 그 여자와 그 남자와 유를 통해 알수 있었다.
〈그가 모르는 장소〉는 정말 깊은 슬픔이 베어있는 소설이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읽던 중에 책을 접고 한참을 울기도 했었다. 어머니와 아들이 마음의 고향같은 호숫가에서 나누는 정다운 대화. 그 속에 깊게 자리잡은 슬픈 이야기들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한번도 가 본적은 없지만 이런 곳이겠거니 하는 호수의 적막하고 고요한 모습. 그 곳에서 불을 피우고 나란히 앉아 대화를 했을 두 모자가 지금도 연상이 된다. 불행은 한 순간에 온다고 했던가... 정말 지극히도 평범한 일상 속에서 피어나는 불행들. 또 그런 불행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슬픈 인생의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어려서부터 버림받을까 두려워 했다던 아들의 고백, 난쟁이를 낳는 집안의 유전이 무서워 자식도 안 낳고 너 하나 위해서 살았다는 어머니의 고백을 들으며 정말 가슴이 저려옴을 느꼈다. 저마다 아픔과 상처를 껴안고 사람들은 인생을 살아가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작별 인사〉를 읽으면 서는 줄곧 한 생각 밖에 없었다. 꼭 꽃게를 먹어봐야겠다는 생각. 오랜만에 친구들이 만나 점심을 같이 먹기 위해 점심을 준비하는 모습이 정말 실감나게 전개되어있다. 그러면서 주인공 나의 아픈 과거의 회상도 나타나고 있다. 영혼을 떠도는 모습으로 친구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설정이 독특하고 끝에 나의 죽음을 안 친구들이 술픔을 못 이겨 그동안 차린 점심을 던지고 엎고 그야말로 엽기적인 행동들을 보인다. 어떻게 보면 이 장면이 웃길 수도 있겠지만 난 여기서 더 큰 슬픔을 느꼈다. 평소 때처럼 음식 준비를 하는 친구들 죽어 현실을 보고 과거를 회상하는 나. 그 사이에 슬픔이란 단어. 독특한 설정의 재미있었던 소설이었다.
〈어떤 여자〉는 이 중에서 가장 짧은 내용으로 도심 속의 여자. 그리고 시골에 사는 여자. 이 두 여자의 전화통화를 주 내용으로 담고 있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가장 귀해하고 소중히 여기는 것은 쓸쓸하고 가난하고 넘치는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셨다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또 도심 속에 적막함과 시골의 정겨움. 시골에 사는 그 어떤 여자의 웃음 소리에 베어있는 따뜻함이 느껴졌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언제 오는가〉는 처형과 제부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죽은 동생이자 죽은 아내인 미란를 중심으로 즉음과 그 이후에 남은 사람들의 아픔이 나타나 있었다. 너무나 평범한 일상속에서 갑자기 죽은 미란. 작가는 이 세상은 틈을 벌이고 있고 그 속으로 불현듯 불행은 찾아온다고 했다. 그리고 주인공 나는 말한다. 그런 무질서가 싫다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정말 마음에 와닿는 구절들이 참 많았다. 인생의 덧없음. 슬픔을 만나고 불행을 만나고 이겨내고 그러면서 사람은 사는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슬픔을 껴안고 살아가는 것. 그게 인생인 것 같고 그 인생을 이 작가는 글로 표현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감히 생각 해봤다. [인상깊은구절] 사랑이 다시 오면 이제는 그렇게 휘둘리지 않고 놀라지 않고 아프지 말아야지. 깊은 한숨과 함께하는 일이란 걸 인정해야지. 외로웠지만 사랑이 와서 내 존재의 안쪽을 변화시켰음도. 사랑은 허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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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소설이 발표될 때마다 설레이며 서점으로 달려가곤 했다. 이번에도 책을 사들곤 투명한 비닐로 반듯이 쌌다. 신경숙의 소설이 담긴 표지에 지하철을 오가며 읽는 나의 손떼를 묻히기 싫었기 때문이다. 마치 그녀의 소설에 덧떼를 남기는 것만 같아서... <오래전 집을="" 떠날="" 때="">를 읽으며, 아름다운 문체로 매료시키던 그녀의 소설이 더이상 힘을 지니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쉬워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딸기밭]을 손에 집어든 순간 아쉬움들을 어느 정도 떨어낼 수 있었다. 단편으로 문예지에 실리던 그녀의 글들은 '죽음'이라는 화두를 빼놓지 않았다. 그 단편들이 이렇게 하나의 소설집으로 엮어지니 그녀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은 죽음만이 아니었구나 싶다. 언제 찾아들지 모르는 그를 늘 곁에 두고도, 두려움없이 살아가는 우리! 그를 인식하지 못하는 무심함에 화를 내고 있는 걸까?
그는 늘 불청객으로 우리를 찾아온다. 적당한 핑게를 대어 돌려보내거나, 아무도 없는 것마냥 조용히 그가 돌아서기를 기다릴 수도 없다. 미리 전화를 걸어 약속시간을 정할 수도 없고, 늦출 수도 없다. 잉태되는 순간을 결정할 수 없듯이, 사라져야 하는 시간도 선택하지 못한다. 알고보면 우리가 결정하고 행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미약한 것인지... 신경숙은 말한다. 죽음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라고. 죽음이 남기고 간 충격과 흔적들을 받아들이고 삭이는 것은 우리가 살아있는 댓가일런지 모르겠다. 그가 찾아오는 것이 못내 싫은 만큼, 안타까움이 깊은 만큼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사랑하기를,작가는 이 소설집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상깊은구절] 사랑이 다시 오면 이제는 그렇게 휘둘리지 않고 놀라지 않고 아프지 말아야지. 외로웠지만 사랑이 와서 내 존재의 안쪽을 변화시켰음도. 사랑은 허물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도. (작별 인사 중, p.148) 자신의 꿈은 사랑하는 사람과 모든 일을 함께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상처도 함께하고 슬픔도 함께하는 것이라고. 사랑이 늦게 온 것이 죄라고 하더군요. 나를 만나기 전에, 승희를 낳기 전에 만났으면 좋을 사람을 이제서야 만난 거라구요. 그 사람하고는 무슨 일이든 함께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장소는 그 사람이라고...... (그가 모르는 장소 중, p.136) 존재하는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지 자신의 죽음을 다른 존재에게 알리고 싶어한다. 단 한 사람만에게라도, 어쩌면 단 한 사람에게만. (그는 언제 오는가 중, p.230)오래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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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딸기밭이라는 소설집을 읽었다. 요즘들어 신경숙이 다시 보인다. 물론 나는 늘 나만의 평론과 독후감을 써내는 사람이긴 하지만 뭐랄까.... 신경숙은 표현력이 뛰어나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하는 것이 많은데, 그것은 화자의 감정 상태와 주인공을 가장 많이 자세히 노출할 수 있는 방법이라 그런지 몰라도 책 속의 주인공들 하나 하나가 너무 선명하게 각인되는 듯한 느낌.... 나는 원래 화려한 문체는 좋아하지 않는다. 단순하게 평일한 언어속에서 아름다움과 감동을 주는 문체를 좋아하는데.... 내가 그런 글이 맘에 들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 오랫만에 책다운 책을 읽었다는 느낌. ^^ 역시 책을 읽고 사니 행복하다. 히히~~ 그리고 요즘 부쩍 다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신경숙의 아름다운 그늘에서도.... 역시 표현력이 대단한 작가라 느낀 적이 있다. 그런데 이번에두 마찬가지다.근데 원래 나는 베스트 셀러나 이름난 작가의 책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뻔하다는.... 솔직히 나의 자만감도 어느 정도 작용하지 않나 싶다. 오히려 구석에서 먼지를 뽀얗게 덮고 있는 책을 찾아 읽고 느끼는 편을 좋아한다. 그것보다는 내 자신이 그런 발견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 나느 지극히 페미니스트인것 같다. 이름난 작가, 이름난 배우.... 그런 사람들의 헛점을 발견하기를 좋아하고, 그런 발견 자체를 즐기는 사람인 것 같다. 불행하게도.... ^^ 추리 소설을 읽으면 다 읽기도 전에 범인을 지목하고 뿌듯해 하는 인간이다. 그런데 신경숙이라는 작가는 솔직히 꼬투리 잡을 것이 없는 것 같다. 단, 한가지가 있다면 너무 추상적인 주제들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나는 현실적이지 못한 것들은 늘 비웃는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점이 아쉽다. 암튼 신경숙 표현력이 너무 좋다. 히히~~ 오늘의 독후감은 어설픈 평론.... 그만써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