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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지 못하는 내게...
"시를 쓰지 못하는 내게..." 내용보기
박지웅의 <나비가면>은 쉽게 읽히는 시는 아니었다. 어떤 시는 몇 번을 읽으면서 한 구절 한 구절 곱씹어야 겨우 해독이 되었고, 끝내 의미를 찾아내지 못하고 얼버무리고 넘어간 구절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책장이 넘어가는 것을, 그리하여 남아있는 장수가 점점 적어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놋그릇에 뼈다귀 하나 건져내나는 구석구석 빠는 놈, 나는 허둥지둥빠는 놈, 나는 침을
"시를 쓰지 못하는 내게..." 내용보기

박지웅의 <나비가면>은 쉽게 읽히는 시는 아니었다. 어떤 시는 몇 번을 읽으면서 한 구절 한 구절 곱씹어야 겨우 해독이 되었고, 끝내 의미를 찾아내지 못하고 얼버무리고 넘어간 구절도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책장이 넘어가는 것을, 그리하여 남아있는 장수가 점점 적어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놋그릇에 뼈다귀 하나 건져내

나는 구석구석 빠는 놈, 나는 허둥지둥

빠는 놈, 나는 침을 묻히는 놈


밥뚜껑에 쌓이는 뼈들

한때 소의 한 축이었으나 그림자도 없다

세상에 무덤덤한 일이 어디 있나

소에게는 놋그릇 속이 생지옥인 것을


옛 팔라리스왕은 나를 놋쇠황소에 집어넣고

배 밑에 장작을 쌓았다 불을 땠다

내 몸에 있는 춤을 모조리 꺼내었다

훗날 왕도 놋쇠형틀에 들어와 춤을 추었다


뼛국물을 들이켜며 뼈도 못 추린 이야기나

국물도 없는 생을 떠올리다

저세상 바닥까지 깨끗이 비우는 게 산목숨이라니


그럴 줄 알았다

여기가 지옥이다


벽에는 도가니탕 얼마 꼬리곰탕 얼마 수육 얼마

망자의 가격이 매겨진 비문을 훑으며


입을 벌린다, 아

나는 어쩌면 내 뱃속을 돌고 돌았던 걸까

밥자리에 다소곳이 따라붙은 놋쇠그립자


오래전 나는

내가 살아 있는 것에 반대하였다

-<놋쇠황소> 전문-


뭐, 이런 식이다.

그의 시에는 유독 동물이나 식물들의 삶과 죽음이 많이 등장한다. 소와 개와 닭과 까마귀와 나비와 꽃과 나무와... 생명이 있음으로 하여 필연적으로 죽음이 있는 것들인데, 그의 시에서 죽음은 삶의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로 읽힌다. 심지어 그는 생명 없는 것들에게조차 생명을 넣은 다음 또 그것들에게 죽음까지를 부여한다. 돌멩이와 흙과 재와 빈집과...


우리가 흔히 살았다고 하는 것들과 죽었다고 하는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시인의 입을 통해 일종의 영적인 제의를 거쳐 조상(弔喪)되거나 부활하거나 혹은 영멸(永滅)하는 존재가 된다. 때로는 아무 존재가 되지 않기도 한다.


무엇보다 나를 당황케 하고 절망케 한 것은 그의 詩語들이다. 이를테면,


손짓이 패총처럼 쌓인 눈을 가진 이들의 거처 <파도경전>

지금도 슬픔과 햇볕을 잘 구분하지 못해요 <흉>

소량의 교회 종소리 <유해동물>

황도 같은 달 <노력>

생년월일 없는 몸통을 우리는 눈사람이라고 불러요 <일도 열심히 하고 엄청 착했다>

밀물의 긴 종아리 <서쪽들의 밤>

바위로 눌러놓은 봄 <훌륭한 불행>

백년과 나비의 어디쯤에서 <백년과 나비의 어디쯤에 당신이>

......


그가 구사하는 낯선 언어들의 교직(交織)은 국민학교 때 검사 받기 위해 의무적으로 썼던 일기체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나의 글쓰기 마당을 한바탕 광풍처럼 휩쓸어 초토화시키고야 말았다. 그의 언어들은 나의 얕고 가벼운 글쓰기를 수없이 책망하고 전복시켰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그것들을 닮거나 선망하지 못하고 그저 포기하기로 쉽게 마음을 먹고 만다. 이것들은 그가 말[言]과 사투를 벌여 얻어낸 전리품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긁히고 찔리고 피흘리며 얻어낸 것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없는 말들을 찾기 위해 기꺼이 놋쇠황소 안에 들어갈 자신이 내게는 없다.


그러다가 문득, 나는 내 막냇동생보다도 어린 그의 분투가 너무 마음 아프고 걱정되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형이라도 되는 듯이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시인이여, 너무 아프진 마시고 너무 잘하려 애쓰진 마시오.” 시를 쓰지 못하는 내게 내가 보내는 야유와 자책임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c*******7 2025.11.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