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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일암 고목
불일암 오르는 길 우두커니 서 있다 비자榧子 고목 한그루
겉껍질은 세월에 벗겨주고 속껍질은 가슴애피로 벗겨주었나 작은 바람에도 위태롭게 지팡이 짚으신
부르튼 피부 비집고 몇 개 위태롭게 난 잎들 백토 진토 비집고 나온 나의 배내옷
바람인가 오음五音의 노래인가 숭숭 뚫린 껍질 새 채 다 못 부르신 아, 그대로만 서 있어도 좋으실 어머니
불일암은 법정 스님이 계신 곳이 아닌가. 살아생전 머물던 곳이고 열반 뒤에도 암자 앞 후박나무 아래에 묻히셨다. 스님은 돌아가신 뒤에도 후박나무 너른 품으로 세상을 품어주고 있으리라. 시인이 주목한 나무는 하늘 향해 당당히 오르는 마당의 후박나무가 아니다. 불일암 오르는 길에 우두커니 서 있는 비자나무 고목 한 그루다. 겉껍질을 세월에 벗겨주고 속 껍질조차 벗겨주어 헐벗은 나무, 작은 바람에도 넘어질 듯 위태롭게 지팡이 짚고 서 있다. 놀라워라, 부르튼 피부 비집고 잎 몇 개가 마치 나의 배내옷처럼 위태롭게 솟아나 있다. 내 존재를 있게 한 당신, 어머니의 몸 일부를 찢고 나온 나. 당신은 구멍 숭숭 뚫린 채 바람을 맞으며 서 있다. 고목일지라도 그렇게, 그대로만 서 있어도 좋겠다, 나의 고목, 어머니!
시인의 소개 글을 읽는다. “민속학자이자, 판소리와 무가를 구성지게 풀어낼 줄 아는 소리꾼이다. 진도 출신으로서 성장 과정에서 남도의 원형적 삶을 직접 체험하고 그 문화를 몸으로 지니고 있는 그는, 남도의 인적 문화적 자산으로서도 소중한 가치가 있다. 이 시집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 역시 전라남도 방언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남도 정서와 문화적 숨결을 잘 드러낸 것을 들 수 있다. 남도 가락, 설화와 전설, 시가 등 고전을 차용 또는 인유한 시편들을 많이 선보이는데, 이는 전통적 정서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처절한 가족사와 남도의 삶, 그리고 전통문화의 결합이 두드러진다. 「아무 글자든 쓰거라」,「벙어리 바람」,「차씨를 심으며」같은 작품이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