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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있는 여기, 모든 장소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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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해지는 날씨에 조금은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서 표지 자체부터 따뜻함이 묻어 나오는 책 한 권을 골랐다. 펑펑 눈이 내리는 곳에 포장마차라니 너무 좋다. 진짜 좋다. 나 저기 있고 싶다는 생각에 책은 넘기지도 못하고 한참을 쳐다봤다. 이 책은 장소에 대한 책이다. 별다른 생각 없이 수많은 공간에 머물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식하지 않고 습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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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해지는 날씨에 조금은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서 표지 자체부터 따뜻함이 묻어 나오는 책 한 권을 골랐다.

펑펑 눈이 내리는 곳에 포장마차라니 너무 좋다. 진짜 좋다. 나 저기 있고 싶다는 생각에 책은 넘기지도 못하고 한참을 쳐다봤다.

이 책은 장소에 대한 책이다.

별다른 생각 없이 수많은 공간에 머물며 하루를 보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식하지 않고 습관처럼 매일 다채로운 장소를 지나가고 머물고 그 속에 일상을 채워간다.

 

이 사소한 공간들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며, 그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느끼고 경험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우리 생활의 절반은 그냥 지나가고 사라질 것이다. 언 차창의 서리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소함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p9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장소는 36곳이다. 작가처럼 나도 이 중에서 내 이야기를 담고 싶은 몇몇 장소를 골라보았다.

책 본문의 사진은 인스타그램 사용자분들에게 직접 허락을 구하고 담았다고 한다. 나는 픽사 베이에서 가져왔다.

 

 

첫번째 장소 : 자동차

 

비 오는 날 차를 운전한다는 건 얇은 우비 한 장 걸치고 빗속을 걷는 것과 같다. 비와 나 사이를 가르는 얇은 막은 내게 비가 선사하는 감각의 향연을 선택적 감각으로 전달해 준다. 비 오는 날 자동차 안의 느낌도 마찬가지다. 수채화처럼 흘러내리는 차창 밖 풍경과 나는, 어느 감각에 있어선 완전하게 동기화되지만 또 다른 감각에서는 완벽하게 동떨어지고 만다. p21

 

비 오는 날과 자동차라니.. 생각만 해도 너무 멋진 조합이 아닌가!

학창 시절에는 비 오는 날을 참 싫어했다. 그 이유는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기 때문이다. 만석도 모자라서 꾸겨 타야 하는 버스 안에서 비 오는 날이면 꿉꿉함과 함께 젖은 우산까지 패키지로 있다 보니 정말 싫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나서 보니 비 오는 날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비 오는 날과 카페의 조합 그리고 비 오는 날과 운전의 조합은 환상적이다.

 

창이 넓은 카페에 앉아서 조용히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 멍 때리는 그 시간이 참 좋다. 아무 생각 하지 않고 그냥 바라만 봐도 좋은 그 순간. 살면서 이런 쉼도 필요하니까.

그리고 비 오는 날의 운전은 꼭 음악과 함께! 비 오는 날은 라디오 선곡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엄청 큰 공간인 것 같지만 생각보다 작고 자기만의 세계를 느낄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자동차가 아닐까 싶다.

 


 

 

두 번째 장소 : 휴게소

 

부산 여행을 가던 중 우연히 들렸던 휴게소는 바로 군위휴게소이다. 처음에는 이곳이 정말 휴게소가 맞나 싶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상주방향과 부산방향 모두 레트로 감성으로 꾸며져있다고 한다.

새벽에 화장실만 잠깐 들렸다 나와서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들러보고 싶은 휴게소이다.

요즘은 휴게소가 단순히 쉬어가는 공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지나치는 공간이 아닌 머무는 공간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휴게소는 여정의 출발이자 끝이다. 여행의 시작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는 비일상적 탈주의 공간이고, 돌아오면서는 여행으로 들떴던 감정을 갈무리하고 일상으로 복귀를 준비하는 마지막 장소다. p26

 

휴게소는 멈춤의 장소다. 달리던 속도와 목적을 내려놓은 정지된 시간이다. 우리 삶에 설렘과 기대가 있다면 그것은 뛰거나 나아갈 때가 아니라 이렇게 멈춰있는 순간일 것이다. p28

 

 

휴게소를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호두과자이다. 나의 최애 휴게소 간식! 아메리카노랑 같이 먹으면 정말 꿀맛이다.

예전에는 호두과자를 파는 곳이 휴게소밖에 없고 왠지 다른 곳이 아닌 휴게소에서 파는 호두과자가 더 맛있어서 남편이 고속도로를 탈 때면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추억의 호두과자.. 지금은 나보다 아이들이 휴게소에 들리면 꼭 사달라고 하는 간식 중 하나가 되었지만.

 

세 번째 장소 : 카페

 

카페는 단순히 커피나 음료를 파는 매장이 아니다. 카페의 본질은 커피라는 음료가 아니라 머문다는 행위와 공간이다. p43

 

이곳에 나온 장소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장소를 하나 뽑으라면 당연히 카페!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난 카페를 선택할 것이다.

카페가 왜 좋냐고 묻는다면 이유는 없다. 그냥 그 공간이 참 좋다. 커피가 좋아서 그 공간이 좋은 걸까? 공간이 좋아서 커피가 맛있는 걸까?

요즘 카페는 커피가 주가 아닌 곳도 참 많다. 카페는 단순히 커피를 파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가 결합된 새로운 공간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네 번째 장소 : 장례식장

 

작년에는 한번, 이번 연도에도 한번 최근에는 장례식장에 다녀올 일이 많아졌다.

생각해 보니 결혼식은 한 번도 안 갔는데.. 아직 장례식을 더 많이 갈 나이는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오직 장례식장에 관해서는 나의 공간적 기호나 주관, 평가들이 작동하지를 않는다. 장례식 또한 공간을 제공하는 서비스업의 일종이므로 위치나 분위기, 인테리어, 음식, 그리고 직원의 태도까지 좋고 나쁨이 있을 텐데, 그렇게 공간에 예민한 내가 장례식장만 들어서면 아예 무감해진다. p86

 

이 글을 읽다 보니 나는 한 번도 장례식장을 서비스업의 일종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는 어떤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결혼식장을 떠올리면 음식 맛이 어땠는지 주차는 불편하지 않았는지 이것저것 따지기 바쁜데 장례식장에서 먹은 음식의 맛에 대해서 한 번도 불평해 본 적이 없다.

그만큼 장례식장이라는 공간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건물이라고 표현해야 할까? 공간이라는 사전적 단어만으로만 남아있는 것 같다.

 

 

실상 장례식장에서 가장 위로받는 것은 나 자신이다. 세상에 대한 집착에서 잠시 벗어나 망자로부터 일종의 외로워 안식을 얻는다. 그곳에 있다 보면 내가 품은 세상의 작고 큰 괴로움이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사건 앞에서 별일 아닌 것이 되고 만다. p87

 

 

작년에 고모부가 돌아가셨을 때 살면서 처음으로 입관이라는 것을 보았다. 생각보다 조금은 무서웠고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슬펐다.

고모부는 파킨슨이라는 tv에만 나오는 줄 알았던 병으로 돌아가셨는데 코로나 때문에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했다.

어릴 때 내 친구가 놀러 왔을 때 고모부가 춤춰줬던걸 기억할 만큼 고모부는 유머러스하고 따뜻한 분이셨는데..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장례식장의 기억은 아직도 그곳에 멈춰있다.

 


 

 

다섯 번째 장소 : 편의점

 

이 부분을 읽을 때 맞아 맞아 공감이 되면서 어찌나 웃기던지.

작가의 주변에도 귀촌을 선택한 사람이 생겼고 그곳을 방문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작가가 지인이게 이곳에 살면서 가장 힘든 점이 뭐냐고 물었더니 주변에 편의점 없는 것. 아주 미칠 것 같다고 했단다.

아.. 나도 처음에 이곳에 이사 왔을 때 주변에 편의점 없는 게 얼마나 힘들고 슬프던지.

제일 가까운 편의점이 차 타고 10분은 나가야 한다. 예전 경기도에 살 때는 뛰어서 1분 거리에 편의점이 2곳이나 있었는데 말이다.

 

밭 근처 편의점을 자주 들락날락하다 보니 주인아주머니랑 친해졌고 주인아주머니는 나를 서울 처녀라고 부른다.

결혼한 것도 아이가 있는 것도 알지만 시골이랑은 너무 안 어울린다면서 붙여준 별명이다.

이곳에 가면 아주머니가 구운 계란도 챙겨주고 바나나도 챙겨주신다. 집 주변에는 없지만 밭 주변에 이런 곳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집 옆에 편의점이 없어도 밭 주변에는 있으니까 그걸로 많은 위로를 받는다.

 

편의점은 외롭고 소란스러운 도시에서 길을 밝히는 물 위의 등대이다. 인적이 사라지고 어둠이 스며든 골목길 끝에 편의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졸아들었던 마음이 어느새 펴지고, p105

 


 

 

 

여섯 번째 장소 : 호텔

 

예전에는 어디 가서 잠자는 게 뭐 중요한가 그냥 대충 깨끗하면 자고 오는 거지라고 생각했었다.

어차피 밖에서도 놀다가 자는 건 한순간이고 잠깐 머무는 공간에 돈을 많이 쓰는 건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여행을 다니면서 그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에 대해 조금 더 고민해 본다.

그 순간 때문에 여행의 분위기가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저렴한 가격에 좋은 호텔을 많이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어설픈 곳보다는 돈을 조금 더 주고서라도 그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분위기, 서비스, 안락함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치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 때문에 호텔을 선택한다.

그리고 제일 좋은 건 피곤해도 조식은 필수. 내가 호텔을 고르는 가장 큰 기준은 취사 불가!! 무조건 취사가 불가한 곳으로 선택한다.

여행을 가서까지 밥 차려 먹고 싶지는 않으니까. 그만큼 호텔이라는 공간이 주는 기쁨은 여행의 기쁨을 배가 되게 하는 건 분명 것 같다.

 

 

호텔은 잠시 머무는 집이다. 그 '잠시'라는 시간성에 주목해 호텔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이색적 흥취를 주려 한다. 그래서 호텔은 고성이든 고층 빌딩이든 한껏 기분을 고조시키는 표현과 장식적 언어로 공간을 채우고, 사람들이 집에서 경험하기 힘든 극진한 서비스로 제공하는 것이다. 여행은 일상의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잠시 다른 것을 먹고, 다른 곳을 보고 걸으며, 다른 생각과 마주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호텔은 '다른'차원의 공간이어야 한다. p134

 


 

 

일곱 번째 장소 : 지하철

 

내가 살면서 무궁화호를 이렇게 많이 탈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요즘 나의 출근길을 책임지는 무궁화호. 딱 한 정거장을 타고 가는데 8분이 걸린다.

차로는 20분이 걸리는 출근길을 8분 만에 데려다주는 마법 같은 기차다.

어릴 때는 무궁화호는 여행 갈 때나 타는 기차인 줄 알았는데 직접 타보니 서울 지하철과 별다를 게 없다는 것을 느낀다.

많은 사람들이 출퇴근용으로 기차를 이용하고 학생들의 등하굣길 친구가 되어주기도 한다.

지하철보다 비싸기는 하지만 마주 보는 공간이 아니라 앞을 보면서 지정된 좌석에 앉아 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지하가 아니라 서서히 바뀌어가는 계절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 또한 아주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어디쯤인지도 모를 이 땅밑 시간을 사람들은 체념과 상념으로 버텨낸다. p177

 

하지만 요즘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지하철 안에서 오히려 외로움을 느낀다. 지하철이 꽉 찬 진공 상태가 되었다. p181

 

 

 

서평을 쓰면서 나는 오늘 어떤 공간에 머물다 왔나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 공간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떤 사람들을 만났으며 무엇을 했는지 돌아보니 별다른 의식 없이 습관처럼 지나온 매일인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 매일매일 다른 일상이 끼어들어 내 삶을 새롭게 한다.

나는 어떤 공간에서는 많이 웃었고, 다른 공간에서는 조금 속상했던 것 같다. 또 힘들기도 했고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기도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일상적인 보통의 장소가 조금만 관심을 갖고 돌아보면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보통의 장소들이 보여 하루가 되고 추억이 되고 삶이 되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책을 읽으면서 여러 장소를 떠올리며 기억 저편에 잊고 살았던 추억들이 하나둘 피어오르며 조금은 센티해지기도 먹먹해지기도 했던 순간이다.

 

향으로 장소나 사람을 잘 기억하는 편인데 장소로 기억하는 추억은 뭔가 조금 더 이미지적이라고 해야 할까? 향보다는 생동감이 있게 필름처럼 지나간다.

일상이 쌓여 인생이되는 오늘. 내일 또 다른 공간에서도 잘 느끼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이길 바라며..

나의 장소에 새겨진 내 기억이 다른 사람의 기억을 꺼내는데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본다.

 

 

 

기억에 남는 문장들

 

나는 장소가 기억의 실체라고 믿는다. 생물학적으로 기억은 뇌활동의 산물이며, 의식과 마음속에 저장된 과거의 잔상이지만, 장소 없이는 결코 기억이 선명하게 출력되지 않는다. 기억은 장소에 묻히고, 우리가 그 장소에 다시 있을 때 공감각적 반응으로 기억의 상들이 맺힌다. p49

 

책은 한 권 한 권이 누군가의 장대한 인생이자 긴 시간과 역사의 압축판이다. 그런 책들이 나를 빙 둘러싸고 있는 것은 태양계와 은하계를 넘어 미지의 행성과 무한의 시공간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우주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p62

 

이런 측면에서 보면 목욕탕이야말로 진정 이상적인 공공공간이다. 공공공간은 신분과 계층을 초월해 어떠한 사회적 정치적 이념과 편향성에도 구애받지 않고 점유하거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p90

 

미술관은 생각이 깊어지는 공간이다. 그래서 미술관에서 나는 본다는 행위만큼 걷는다는 행위를 중요하게 여긴다. 정원이나 공원이 아님에도 미술관처럼 산책이 자연스러운 공간이 있을까? 그것도 실내에서 말이다. p114

 

과연 나는 그만큼이나 나의 삶에 충실하며, 주어진 조건 속에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가? 있고 없고, 많고 적고, 잘살고 못살고를 떠나 각자에게 주어진 여건 속에서 나는 내 삶에 얼마나 치열하고 성실하게 응하고 있을까? p187

 

 

l******i 2022.11.14. 신고 공감 5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