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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그로쓰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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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나는 조급했다. 요즘은 휴학 한 번 안 하고 졸업 안 하는 사람이 없다지만, 당시에 대학 졸업까지 6년이 걸렸다면 뭔가 착실한 대학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대학 졸업 전까지 목표 했었던 국가고시 패스를 결국 성공하지 못한 채 졸업했고, 전공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회사였지만 계속된 취업 실패를 견디지 못해 입사했던 곳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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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나는 조급했다. 요즘은 휴학 한 번 안 하고 졸업 안 하는 사람이 없다지만, 당시에 대학 졸업까지 6년이 걸렸다면 뭔가 착실한 대학 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대학 졸업 전까지 목표 했었던 국가고시 패스를 결국 성공하지 못한 채 졸업했고, 전공과는 아무 관련도 없는 회사였지만 계속된 취업 실패를 견디지 못해 입사했던 곳이기에,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빨리 성공하고 자리를 잡고 싶었던 게다. 그런데 사회 초년생의 삶은 생각 이상 혹독했고 갈피를 잡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반 년 가까이 거의 포기 상태에 있다가 가까스로 다른 곳으로 이직했다. 그리고는 그 때부터는 마냥 달렸다. 일이 재밌거나 적성에 맞는 것도 아니었고 회사도 지금 기준에서는 정말 구닥다리 식으로 운영됐었지만, 어쨌든 나는 출발이 많이 늦었으니 어서 빨리 해서 따라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회사를 다니고 두 곳의 대학원을 거치며 학위도 2개나 더 취득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렇게 달리고 달렸건만, 내가 원하는 목표에 가까워 지는 것 같지가 않았다. 오히려 더 멀어지는 느낌만 강했다. 처음에는 내가 부족하니까 그렇겠지 생각했지만, 지난 몇 년간 목격한 전 세계적인 전염병, 기후위기, 경제불평등과 사회갈등은 내 능력 부족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에 충분했다. 그렇다면 이 많은 문제점들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를 찾아가며 만났던 것이 바로 탈성장이었다.

서론이 무척 길었는데, 이 책은 탈성장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크게 부담 갖지 않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책의 분량도 많지 않고 쉬운 언어로 되어 있다. 탈성장의 핵심인 자본주의와 성장 지상주의를 벗어나 밖에서 그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점에서 이 책은 분명 많은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경제가 무한정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유한한 물질로 구성된 이 지구에 사는 이상 너무나 당연한 진실임에도 불구하고, 20세기 동안 거의 인지된 바가 없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경제학에서 생겨난 이 성장 이데올로기는 이제 정치와 사회 전반까지 안정적으로 확장되었으며, 자연히 기업, 은행, 정부의 모든 운영 전략들은 이윤과 GDP의 계속적 증가를 전제로 수립된다. 잘 산다는 것은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소비함을 의미한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진지하게 '과연 그 전제가 타당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까? 하다 못해 학자들조차도 매년 더 많은 논문을 출판하려고 애쓰는 이 시대에 말이다.

탈성장(혹은 성장 지양, 적정 성장)은 "물질 사용량, 시장 거래량 증대를 억지하고 경제 성장 없이도" 인간이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관계와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속도를 늦추고, 사람들의 시간과 에너지를 해방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통과 슬픔에서 탈출하기 위해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구매하는 지금의 이 시스템에서 탈출하기 위해서이다. 

개인적으로 불교 수행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 책의 탈성장 개념이 불교 수행과 많은 접점을 갖고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탈성장은 단순히 경제 성장을 억지하자는 일차적인 주장을 넘어서서, "삶의 여정이 관용과 자비, 자기와 타자를 돌보는 행위에 소용"되어야 한다는 내용과 "안분지족하는 즐거움과 번영을 특징으로 하는 좋은 삶에 관한 비전"으로의 전환을 포함한다. 단일한 이론이나 행동 계획이 아닌 매우 다양한 사상가와 활동가로 구성된 네트워크가 여러 실험과 논의를 하고 있다는 점도 탈성장과 종교적인 수행과 접점을 발견하게 된 이유가 아닐까 싶다.

탈성장을 말할 때 가장 먼저 듣는 반응은 '그럼 이제 재산도 갖지 말고 발전도 하지 말고 원시 시대로 돌아가자는 뜻이냐?' 라는 식의 반문이다. 탈성장은 사유재산 강제 몰수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기본적인 인간 자존감을 지속할 수 있는 삶, 안전과 건강이 보장된 삶, 서로가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연대된 삶, 그리고 여가생활과 자연을 향유하겠다는 포부인 것이다. 이러한 테두리 내에서 사유재산이 인정될 수 있고 필요한 발전도 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이 책은 지금까지 인간이 '이룩한' 문명 혹은 성장이 결코 자랑스러워하거나 앞으로의 인간의 삶에 밑거름으로 삼아야 할 역사로 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지금의 발전은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밟고 만든 것이며, 따라서 동일한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는 내 눈에 들어온 부분은 '2장 경제성장의 희생물'이었고, 여기서는 착취를 통한 경제성장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 2가지 메커니즘 즉, "인종주의적 지배를 통한 수탈 그리고 생산을 맡는 높은 남성과 재생산을 맡는 낮은 여성이라는 젠더 위계질서"를 통해, 경제성장을 위한 착취의 구조 형성과 정당화가 진행되었다. 남성은 '생산적' 노동을 하는 임금 노동자인 반면, 여성은 인간 자원을 생산하는 (즉, 출산) 역할 및 돌봄 노동 등 '재생산' 노동을 주로 담당했는데, 이들의 노동에 대해서는 임금 노동과 같이 가격을 매기지 않았고 자연히 보상을 받거나 권리 주장은 기대되지 못했다. 이를 통해 남성 위주의 경제는 비용 지급 없이 많은 이윤을 남기며 확장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다른 착취 시스템인 '세계화'는 "지정학적 강대국들이 개발 프로그램부터 노골적인 전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통 혹은 가치들을 이용"해서 약소국들을 제품의 원료 공급지이자 판매처로 만드는 것이다. 세계은행이 1950년대경 세계 인구의 2/3에 대해 개발이 필요한 '빈민'이라는 이름표를 멋대로 달면서, 그들이 갖고 있던 고유의 생활 방식 등은 유럽-미국식 제도에 의해 사라지게 한 것을 상기한다면 얼마나 오만하고 무지한 태도였던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하게 알아차려야 할 점은, 이러한 경제성장의 패러다임을 우리가 스스로 내재화 했다는 것에 있다. 경제성장은 부인할 수 없는 대전제이며, 그 시스템 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개인은 노동자가 되어야 하고, 생활을 필요한 모든 것은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사야 하며, 기회는 한정되어 있으니 시장에서 싸워야 한다는 것. 이 모든 것을 지금 이 시대에 사는 우리는 당연시 하고 있다. 힘들다고 하면서도 정작 그 울타리를 나와 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생존을 넘어서 개인의 "자부심과 자존감"의 문제로 연결되는데, 이를 성공적으로 연결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무한 성장을 계속해서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주의 사회와 도시 환경의 익명성"에서 개인은 소비와 소유를 통해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현대인에게 성공적으로 주입시킨 성장주의는 계속해서 성장만이 개인이 갖는 불안과 부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며, 우리의 경쟁 심리나 성장 욕구를 육성하여 왔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 것인가? 경제 성장을 당장에 멈춘다면 그동안의 역사에서 보아 왔던 것처럼 권위주의 세력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경제 쇠락을 초래한 집단을 비난할 것이고 앞으로 더 큰 어려움이 닥칠 것임을 주입시키면서 과거로 돌아가야 함을 역설할 것이다.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할 많은 노동자들이 이 주장에 동조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이들의 공감을 얻기 위한 꾸준한 경청과 대화가 필요하다. 기본소득 제도 등도 도움이 될 것이다. 연대해야 할 세력은 노동자 뿐만이 아니다. 페미니스트, 풀뿌피 환경정의 및 사회정의 활동가와 단체, 지역사회 등과의 조직화된 연대를 고려하여야 한다.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행복을 느끼는 구체적인 순간은 모든 개인이 다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과 같은 경쟁 체제에서 성장하지 않으면, 부를 쌓지 않으면 불행해 질 수 있다는 두려움의 패러다임 하에서는 행복할 가능성이 결코 높지 않으리라. 그런 차원에서 탈성장 옹호론자들이 꿈꾸는 사회, 즉 "노동 존엄성의 회복, 이기성을 덜 자극하는 경쟁, 더 평등한 관계, 개인의 성취로 순위가 매겨지지 않은 정체성, 연대감 넘치는 지역사회, 인간적인 삶의 리듬, 자연에 대한 존중"은 좀 더 행복할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곳임에는 틀림이 없으리라.

지금껏 제대로 깊이 의심해 본 적 없던 '성장'에 대해, 나를 포함한 대다수가 부지불식간에 이것을 개인의 삶과 사회의 대명제로 삼고 살아 왔음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었다. 그리고 탈성장 옹호론자가 말하는 그런 세상을 실제로 구현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던 점에서, 이론으로만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에서 희망을 보기도 했다. 다만, 탈성장 구현을 위해 내가 있는 이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그리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그림을 그리기 위한 총론으로서의 의미를 이 책에 부여하기에는 충분하다.

l*****8 2022.09.1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