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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주열전 - 세종편- >>
이한우님의 군주열전 시리즈 그 두번째 [세종]편이다. 우선 본책은 박영규님의 세종대왕실록보다는 좀 따분하고 읽기가 그리 녹녹치 않은편이다. 그러나 실록의 관점에서 해석하였으며, 흥미위주보다는 세종이 가지고 있는 진면목을 충분히 보여 줬다고 해야할 것 같고, 아마 여태까지 나온 세종관련서적중에서는 단연으뜸으로 보인다.
우선 본책을 읽고나서 느낀점 세종에 대해서 너무나도 몰랐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세종도 사람이엇구나 하는 생각... 조선시대 제왕의 훈련은 세자시절부터 세자시강원이라는 싱크탱크에 의해 군주의 자질을 훈련받게 되어있어 군주로 즉위시 제왕의 기본소양을 갖춘상태에서 치세에 들어가는게 모범이었다. 그러나 세종의 경우 이런한 준비과정이 없이 즉위하였지만 태종의 섭정이 다름없는 기간동안 정치의 모든 것을 틀어잡앗다는 점은 그가 바로 준비된 군주가 아니였나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세종은 아버지의 태종의 탁월한 선택에 한치의 부끄러움없이 보답하였다고 할까 아버지가 만들어준 가마솥에 가득 흰쌀밥을 짖어 자자손손대대로 조선왕조를 먹여살린 군주라고하면 너무 비약적일지 모르지만 세종시대는 조선왕조 500년을 버티게 해준 거름이었다고 본다 흔히들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존재한다면 난 단연코 세종이 좀더 살아서 치세를 했다면...
세종치세기간은 32년 그 기간동안 정치, 경제, 국방, 기술, 법령, 의전음악, 인사, 그리고 정말 희대의 발명인 훈민정음창제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치적을 남겼다. 물론 이런 치적을 남길 수 있엇던 가장 큰 원인은 세종의 인재관과 백성에 대한 애민관이 다른 군주들과 차별화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을것이다. 신인 인재의 발굴(집현전을 통한)고 발굴한 인재의 적재적소의 배치(김종서,정인지,신숙주,박연등)와 원로들(황희,맹사성,류관,이수,윤회)의 조화속에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신하들을 설득해가면서 정무처리 하는 모습은 관연 세종만의 전매특허인 셈이다.
그리고 여태까지 우리는 세종의 밝은면만을 강조하고 보아왓지만 여기선 어두운 면을 통한 인간세종의 모습을 보게끔 해준다. 우선 세종 개인적으로 봐서 치세기간동안 요즘을 치면 상복을 입은 기간만 10년이 넘는다. 위로 태종, 원경왕후, 왕비는 소헌왕후, 대군 둘과 장녀인 정소공주의 죽음으로 상치르기에 바빳다 할만큼 어두운 그림자에서 지내야했다 특히 소헌왕후의 사망이후 세종도 역시 평상심을 잃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근본적인 병세까지 한몫 거들었지만 또한 세자(문종)빈의 당시로는 엽기적인 이색행각(동성애포함)을 포함한 폐세자빈사건과 원자인 단종의 탄생까지 무려 14년이란 세월을 인내해야햇던 점등은 세종의 다른 면이다. 마지막으로 세자가 아닌 두 대군(수양,안평)에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점이 향후 자신의 사후 이후 벌어지는 골육상쟁과 자신의 아들내지는 제자랄 할수 있는 신하들의 배신등 세종자신으로서는 어찌보면 아버지인 태종보다는 후계선택에 소질이 없엇나 보다.....
세종의 밝으면, 어두운면을 보앗지만 역시 세종이다. 아니 세종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다시한번 더 들게 하는 내용이다... 참고로 박영규님의 한권으로 읽는 세종대왕실록과, 이한우님의 군주열전 시리지 태종을 같이보면좀더 행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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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에 '킹스 스피치'란 영화를 보았습니다.. '조지'왕의 차남인 '찰스'는 잘 생기고, 멋진 형 '에드워드'에게 놀림을 당했던 기억에 '말 더듬이'가 되지요
그렇지만, 무엇이든지 뛰어난 형이 있으므로 '찰스'는 자신이 왕이 될 생각도 , 되리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에드워드'의 갑작스러운 퇴위는.. 준비되지 않았던 왕.... 왕이 되고싶지 않았던 왕자 '찰스'를 왕위로 떠밀지만..
그는 2차세계대전으로 위기에 닥친 '영국'을 구해내고.. 정신적인 지주이자, 뛰어난 성군이란 이름으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 또 한명의...'왕이 될 생각이 없었던 왕' 평생 독서를 즐기고 살고 싶었던 왕자가 있습니다.
'태종'의 세째아들 '충녕대군' 그는 말 그대로 세번째이기 때문에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리라고는 생각도 안했지만 그 역시 원하지도 않았던 자리로 올라가게 됩니다.
'세종, 조선의 표준을 세우다'는 '이한우'님의 '군주열전' 두번째 이야기입니다.. 차례대로 읽어야되는데... 개인적으로 '세종'대왕에 대해 궁금해서 사게 되었군요..
사실 '세종'을 '대왕'이라고 부르고 성군이라 칭하지만.. 실제론 가장 안 알려진 왕입니다..ㅋㅋㅋㅋ
드라마화 되려면, 극적인 사건들이 많아야 할텐데. '세종대왕'의 시대는 넘 평화로운 시대였으니까요..
그래서 KBS사극도 '용의눈물' -> '왕과비' 로..바로 뛰어가버리는... 이방원,연산군,수양대군,숙종과장희빈의 이야기는.. 정말 많은 드라마화 되었지만, 세종의 이야기를 드라마화한것은 잘 없었죠
그나마 KBS에서 방영되었던 '세종대왕'은 시청률이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세종대왕'의 이야기가 궁금하더라구요 조선에서 가장 성군이지만, 제대로 그에 대해서 모르는 거 같아서요
사실 '양녕대군'이 폐세자되자, 제일 먼저 논의되었던 것은.. 그의 후임으로 '양녕대군'의 장남이였답니다.. 우린 어릴때부터 막바로 '충녕대군'으로 간단히 넘어온걸로 알지만 실제로 논의가 많이 진행되었다고 이야기하네요
왜냐하면 신하들 입장에선 함부로 말했다가, 후에 목이 달아날수도..
그래서 '세종대왕'이 대단한 것은.. 자신의 세자즉위를 반대해서 귀양까지 갔던 '황희'를 포용했다는 거죠..
양녕에 비해 '세자'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던 '충녕'은 세자가 된후 두달만에..왕이 됩니다.. '태종'은 '세자'교육보다는 막바로 왕위를 물려주고 '견습왕'으로 일하게 한거죠 (사실 세자교육은 중요한듯 해요.. 사극 드라마에서 서자가 '춘추'를 읽었다가 왕한테 불려가 욕먹는 장면이 있었죠...네가 왜 '춘추'를 읽냐고?)
그래서 우리가 '세종대왕'의 업적으로 배우는 '대마도 정벌'같은 경우는 실제로 '태종'의 업적입니다..'태종'이 모든 일을 준비하고 진행했던 것이죠
초기에 '세종대왕'은 ...실제로 '태종'에게 모든것을 물어보고 일을 진행했고 그리고 두 왕의 존재는...나중에 큰 비극을 부르게 되지요.. 바로 '세종'의 장인인 '심온'집안의 참극입니다..
사실 별거 아닌 '군권'명령이였지만....왕의 입장에선 지휘체계란 중요한 법이고 그리고 한편, 외척을 제거하는 '태종'이 일부러 빌미를 잡은것일수도 있고요..
'세종'의 즉위 초기는 피비린내와 비극으로 시작하지만.. 그는 절대 절망하거나 무너지지 않고.. 조선의 표준을 세웁니다...정말 강한 왕이라는 생각을...
'준비되지 않았던 왕'이지만 '조선 역사상 최고의 성군'이 되었고 '조선의 표준을 세운 왕' 그에 대해서 넘 몰랐던게 많은만큼...넘 도움이 많이 되었던 '세종'의 이야기였습니다.
단순히 업적뿐만 아니라, '세종'대왕의 개인사도 이야기되서 잼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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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의 군주열전 여섯권 중에서 세종편을 마지막으로 읽었다. 시리즈에서 순서는 두번째지만 세종은 워낙 유명해서 책으로 읽을 마음이 좀처럼 나지 않았다. 역시 예상대로다. 세종은 성군이지만 세종때의 역사는 따분하다. 박진감 넘치는 권력투쟁도 없고 팽팽한 당쟁도 존재하지 않았다. 세종과 신하들 사이의 약간의 줄다리기만 가끔 있었을 뿐 모든게 잘 굴러가는 시대였다. 세종 자신도 자주 오류를 보여주지만 시행착오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상적인 정치를 보여주지만 타인과 자신의 정치에 이상주의적 이념을 강요하지 않았다. 반면에 청렴하지 못한 신하도 등용하고 잘못이 있지만 인맥과 정치적 고려로 넘어가는 현실적인 모습도 보여준다. 하지만 이 모든 잘못을 결과로 보여준 세종이다. 어찌 보면 군왕정치의 폐단이 될수도 있지만 결과가 좋아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견제가 많은 현대 정치제도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울 것이다.
개인적인 비리나 잘못은 과감하게 용서하고 직무상 능력으로만 인재를 판단한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중요시하는 현대에서 옳은 정치일까?
* 책 한권을 읽어도 감흥이 없는 자기계발서 같은 역사책이다. * 이한우의 시선은 개인적 비리는 과감히 덮고 능력만 보자는 쪽이다. 하지만 우리편의 경우는 통하지만 상대방 진영의 인물에게도 같은 주장을 펼칠 수 있을까? 내가하면 로맨스 남이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이 유행어가 된 요즘 쉽지 않아 보인다. * 세종의 고려사 편찬은 분명 왜곡 또는 어용작업이 들어갔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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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세종의 아들인 수양대군에 관심을 가져 그에 관한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다. 아들을 알려면 아무래도 아버지부터 먼저 아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그래서 참 먼길을 돌아왔다. 같은 서가에 있던 태종 편부터 먼저 읽고 세종 편을 마저 읽었다.
세종대왕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이 책을 일독하고나면 세종대왕에 대해 잘안다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내년에 kbs에서 세종대왕을 주인공으로 사극을 만든다고 하자 대다수 사람들이 하는 말이 참 지루하겠다는 것이다. 기존 사극에서 다루어졌던 정쟁도 없었고, 필시 세종대왕의 업적 위주로 갈 가능성이 있는데, 인간적 흠이 전혀없는 대왕의 삶을 다룬다면 얼마나 재미없겠는가, 사람들은 지레 짐작한다.
그러나 역사의 행간을 조금만 들추어보면 세종만큼 할말 많은 군왕도 없다. 위인전처럼 평화롭지 않았던 정권교체. 빛나는 업적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의 인간 세종의 지난한 노력. 훈민정음 창제과정의 숱한 대신들의 반대를 뚫은 돌파력. 말년에 불교에 심취하여 초심을 잃었던 인간 세종의 모습.
나는 언젠가 세종대왕을 다룬 제대로된 사극이 나왔으면 생각했다. 그러한 사극에 앞서 이런 볼만한 책이 먼저 나와 독자들을 찾아왔다.
역사에서 뚝 떨어져 나온 세종이 아닌, 태종의 아들로서의 세종도 새로웠다. 아버지와 닮은 듯 다른 그의 정치철학. 가히 수성의 군주로써 모자람이 없다 할만하다. 그렇다고 세종이 완벽 그 자체도 아니었다. 그도 일개 인간에 불과했다. 그런 모습도 친근하기까지 하다. [인상깊은구절] 태종의 정치가 표범의 정치라면 세종의 정치는 곰의 정치라 할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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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박종화의 세종대왕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는 정말 제대로 쓰인 소설을 읽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오늘은 정말로 제대로 된 책을 한 권 읽은 느낌이다. 성군으로 영웅화된, 또는 박제화된 세종이 아니라, 그 당시의 생생한 기록을 함께 읽으면서 그 당시의 인물이 되어서 내가 세종이 되어보기도 하고, 또 황희도 되어보면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또한 인간적인 세종을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
| 이 책은 별로 학술적이지도 않았고, 그다지 어렵지도 않았지만, 세종대왕에 대하여 잘 기술해 놓은 책이 었던것 같다. 한반도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군인 세종대왕을 인자한 옆집 할아버지와 같은 수준으로까지 친근감을 느낄수있도록 해준 책이다. 세종대왕이라면 학창시절 역사교과서 속에서, 그리고 간간히 읽은 위인전 속에서 발견한, 상당히 간략화되고 정제된 모습으로 기억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생각을 한다. 그래서 우리가 기억하는 세종대왕이란, 한글을 창제하고, 아악을 정비하고, 6진을 개척하는 등의 업적위주로 나열된 심하게 말하면 박제화된 세종이 대부분이다. 이 책은 세종의 업적뿐만 아니라 세종의 적나라한 성품과 치적과 그 시대의 고민과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들을 바라보는 세종대왕의 시각까지를 고스란히 담아내고자 한 흔적들이 역력했다. 간혹, 저자의 상상력이 약간씩 가미되기는 했으나, 충분히 타당한 상상력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세종대왕도 갖가지 병으로 고통스러워 했으며, 아버지 태종의 흔적때문에 괴로워도 했고, 사사건건 신하들과 부딫혔으며,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다. 역사책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색다른 책읽는 재미가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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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명성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세종대왕 집권기간에 수많은 발명품과 제도가 만들어졌으며 이는 지금 우리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가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과학, 법, 음악, 군사, 역사 등 다방면에서 훌륭한 업적을 남겼다. 이런 세종대왕을 우리는 친근하고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의 인품이나 성격은 어땠을까?”라는 질문에는 답하기가 곤란해진다. 겉으로 드러난 세종의 업적은 달달 외워 알지만 그의 내면세계를 파악하려는 시도가 부족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은 세종의 정치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성격 등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들도 일부 헤아려볼 수 있다.
세종대왕을 말할 때, 아버지 태종 이방원을 빼놓을 수 없다. 외형적으로도 호방한 성격의 태종과 은근과 끊기의 세종은 정치적인 성향으로 봤을 때는 극과 극의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사뭇 처신과 방법은 달랐어도 태종과 세종 모두 왕권강화를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태종은 아들 세종이 올바른 정치를 펼 수 있는 밑바탕을 일구기 위해 그의 집권 기간을 피의 향연으로 물들였다. 이는 세종에게 정치적으로 방해가 될 만한 인물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해서 세종 시대의 문화, 정치적으로 활짝 피게 되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태종은 조선사에서도 부정적인 이미지로 대변되고 있다.
세종은 그런 아버지 태종의 뜻을 거스르거나 반하는 행동을 하지 않은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세종의 치세 동안 아버지 태종에게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장인 심온을 복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태종의 뜻을 받드는 세종의 결단으로 봐야 할 것이다. 세종 집권 초기에는 상왕인 태종의 그늘에 가려 뚜렷한 정책을 펼치지 못하고 태종이 모든 전권을 휘두르며 세종은 견습왕으로서 역할만 해야 했다. 이 시기에 세종은 임금으로서 갖추어야 할 학문에 매진하게 된다. 호학하는 성격의 세종은 현실정치에 학문적 이론을 가미하여 당대의 어떠한 관료나 학자보다도 출중한 학문을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신하들과 파워게임에서 앞서나가게 된다.
세종의 외모를 간략하게 살펴보자면 육식을 좋아하고 운동을 멀리해서 체형이 비만형으로 잔병치레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화를 발산하지 않고 참는 성격이라 온갖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문에 세종의 몸이 더욱 쇠하게 된다. 여기에 대군이나 공주들이 일찍이 세상을 떠나 세종 말년에는 정신적으로 피폐한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유교국가인 조선에서 임금이 불교에 심취하여 신하들과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이런 모습을 읽으면서 우리가 위대하다고 생각한 세종도 개인적인 고뇌와 자식에 대한 부성애를 느끼는 보통의 인간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종대왕 업적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많지만 한편으로는 아버지와 아들의 도움도 많이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태종이 정치적 여건을 마련해 주었고 아들 문종에게 정사를 돌보도록 함으로써 세종대왕의 대표적 업적을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또한 많은 대군들로 하여금 정치에 관여하게 하였다. 이는 이 책의 저자도 지적했듯이 훗날 불화의 싹이 되었지만 말이다. 나는 이 책에서 세종대왕의 업적을 알게 된 것도 좋았지만 이 책을 통해서는 세종대왕의 인간적인 매력에 충분히 빠져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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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상 가장 모범적인 성군을 꼽으라면 많고 많은 지도자 중 단연 으뜸은 바로 세종이다. 아마 이런 주장에 태클을 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며, 일반적인 여론, 전문가, 학계에서도 세종은 우리나라를 대표할 수 있는 가장 모범적인 지도자로 입을 모은다. 세종의 업적은 굳이 일일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대부분 다 알고 있다. 집현전을 설립하여 문풍을 드높인 점, 훈민정음을 만들어 문자를 통하게 한 점, 《고려사》 정리를 통해 지난 역사를 정리한 점, 법제와 음악에 있어서도 획기적인 발전을 이룬 점, 실용 과학에 있어서도 두각을 드러낸 점, 문치뿐만이 아니라 국경에 있어서도 4군 6진을 개척하여 지금의 국경선을 확보한 점 등등... 국가의 전반적인 부분에 있어서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줬다. 그래서 우리는 세종을 가장 이상적인 수성형 군주로 꼽으며 치세의 시대에 가장 모범적인 지도자로 꼽았다. 세종의 업적을 살펴보면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세종은 일을 추진하기에 앞서 그 일과 관련된 원론적이며, 표준적인 지식을 스스로 최대한 습득하려고 노력한다. 그 뒤 습득한 표준을 바탕으로 목표를 설정한 후 적절한 인사에게 일에 관한 프로젝트를 일임하고 자신은 진행되는 일을 관찰하며 지켜본다. 재미있는 점은 이 시대에 원론적이며 표준적인 지식은 성리학적 사고와 밀접하게 관련됐다. 그렇기에 신하들은 그런 중국중심적 성리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일을 추진하였는데, 세종은 그런 신하들에게 '조선적인' 색깔을 요구했다. 역사에 있어서도, 음악에 있어서도, 법제에 있어서도 그랬으며, 이 책에는 거론되지 않았지만 과학 기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세종은 중국의 표준적인 지식과 기준들을 절대 등외시 하지 않았지만, 중국의 지식과 기준을 참고하여 '조선만의 표준'을 설정하려고 노력했다. 그러한 노력이 정점에 달해 표출된 것이 바로 '훈민정음' 창제였다. 세종의 시기는 이렇듯 정치, 행정적인 부분과 문화적인 부분에서 자주성이 강하게 나타났던 시기다. 또한 세종이 성과를 냈던 업적들은 인내심이 없다면 절대 당대에 꽃을 피울 수 없는 '장기간 프로젝트'가 대부분이었다. 그럼에도 세종은 특유의 뚝심을 발휘하여, 인내하며 우직하게 황소처럼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나라의 전반에 걸쳐 묵묵하게 발전을 도모했다. 시도만으로도 의미 있는 프로젝트들이 성과 역시 좋으니, 당대의 사람들과 후대의 사람들이 세종을 으뜸으로 꼽은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물론 세종의 업적은 세종 자신의 탁월함에서 기인한 것이겠지만, 이 모든 업적을 그가 혼자서 한 것은 아니다. 아무리 지도자가 능력이 탁월하다 하더라도, 지도자 혼자서 조선 전반의 행정을 손수 도맡아 처리할 순 없다. 세종 시대가 빛날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세종의 뛰어난 인사 정책 때문이었다. 세종은 자신이 추진하려는 프로젝트의 적임자를 기가 막히게 찾아냈다. 문신이었던 김종서를 6진을 개척하는 무신으로 임명했으며, 음악에 뛰어난 감각을 지닌 박연을 발탁하고, 역시 음감이 뛰어난 맹사성을 기용했다. 전체적인 행정 컨트롤 타워는 황희에게 일임했으며, 깐깐한 보주수의자 허조를 예조에서 활동하게 하였고, 노비 출신인 장영실을 과학 분야에서 활동하게 배려했다. 세종의 인사정책은 태종의 인사정책과 비슷했는데 과가 있더라도 공이 높은 사람이라면 그대로 임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사람들을 부리는 스타일은 태종과는 달랐는데, 태종은 자신의 강력한 왕권을 과시하고, 신하들과의 정쟁을 통하여 왕권을 세웠다면, 세종은 정치 보복이나 정쟁보다는 사람들을 포용하는 리더십을 보여줬다. 여러 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졌으며 완벽주의적인 성격으로 일을 세심하게 관찰하는 지도자와, 적재적소에서 최선을 다하는 신료들의 컬래버레이션은 조선의 르네상스를 가져왔다. 그래서 세종 시대는 대표적인 태평성대의 시기로 인식됐으며, 세종은 조선의 화신으로 추앙받았다. 사람들은 세종 하면 안정적인 기반을 물려받아서 그저 발전만 시킨 지도자라고 생각하는데, 실제 역사는 다르다. 힘의 역학관계가 가장 정점으로 표출되는 정치판에서, 그저 태평하게 권력을 받아 다툼 없이 평화롭게 나라를 발전시켰다는 관념은 동화책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지 현실적으로 들리진 않는다. 세종 역시 자신의 정치권력을 다지기 위해 파워 게임에 몰두한 적도 있었다. 충녕대군 시절에는 일탈하는 세자 양녕을 견제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이를 통해 아버지 태종과 신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은연중에 과시하였다. 세자가 되어서도 실권을 잡고 있는 아버지의 눈밖에 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죽이고 살았으며, 태종 사후에는 강력한 왕권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신하들을 상대로 힘겨운 홀로서기를 해야만 했다. 그래도 세종 시기는 태종 시대와는 다르게 군신 간의 정쟁이 없는 편이었지만, 양녕 대군 문제와 세종의 불교 편애 때문에 격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즉 세종도 태종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파워게임에 신경을 썼던 지도자였다. 만약 세종이 정쟁에 있어 압도할 수 없는 힘을 가졌더라면, 그토록 공력이 들어가는 세종 시대의 굵직한 프로젝트들을 완수할 수 있었을까. 세종이 받았던 태종의 유산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거대했다. 막강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신권을 제압한 태종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정점의 위치에서 은퇴를 선언한다. 물론 이는 형식상의 은퇴였고, 실상은 정치 경험이 없는 세종을 정치적으로 길들이기 위해서였다. 이런 세종의 국왕 견습생 시절에 태종이 아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세종의 싱크탱크로 불리는 집현전이다. 집현전은 세종 시대를 대표하는 기관이라 세종이 양성한 기관으로 대부분 알고 있는데, 실상은 상왕 태종의 명으로 만들어진 기관이었다. 아마 태종은 왕이지만 정치 견습생에 불과한 세종의 친위세력을 양성하기 위해 집현전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태종은 세종에게 자신의 시대의 인사를 쓰지 말고 새 시대에는 새 인재를 등용하라고 조언하는데, 아마 그런 아들의 시대를 위해 배려한 것이 집현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세종은 태종 사후 태종의 인사들을 최대한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태종 시대의 중신들의 마음을 얻었다. 그중에는 세종의 장인 심온을 죽이는데 앞장선 유정현과 같은 인물도 있었지만, 세종은 정치보복의 길을 선택하지 않고 화합의 길로 나아갔다. 결과적으로 아버지는 아들을 배려한 것이고, 아들 역시 아버지의 사람들을 품어안으며,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지 않았던 셈이다. 성공한 시대로 평가받는 세종의 치세를 보며, 바람직한 지도자의 역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내가 생각했을 때 바람직한 지도자는 시대의 흐름을 읽고, 리더인 자신이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인식해야만 한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맞는 인사정책을 단행하여 일을 뚝심있게 진행해야만 한다. 세종은 이에 아주 모범적인 군주다. 세종의 시대에 바람직한 지도자 상은 내치를 정비하고 문물을 발전시키는 지도자였다. 아버지 태종은 세종에게 '모든 악역은 자신이 감당하고 주상은 성군의 길만을 걸으라.'라고 강조했다. 세종은 그런 아버지의 바람, 그리고 시대가 원하는 흐름과 바람을 외면하지 않았다. 시대는 난세에서 치세로 흘러가고 있었고, 그러한 시대에 필요한 지도자는 수성의 리더십이었다. 세종은 이에 충실한 지도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각각의 프로젝트에 걸맞은 인사를 배치하고 진행한 결과 조선은 꽃을 피울 수 있었다. 사실 세종의 시대는 다른 시대와는 다르게 신료들과의 정쟁이나 파워게임도 드물어서 다른 왕들의 시대보다 밋밋하게 읽혔다. 책의 구성은 서사적 흐름에 따라 이어지는 것이 아닌 각각의 업적들이 어떻게 진행됐고 어떻게 결실이 맺었는지 챕터별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책을 보며 일을 최우선적으로 중시하는 신료들의 태도와 완벽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깐깐하게 일을 점검하는 세종의 성격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세종의 시대는 태종의 시대처럼 정치 정쟁 등등이 없어서 표면적으로는 무미건조하게 읽힐 수 있겠지만, 다방면적인 일을 추진하고 열정 있게 이끌어간 세종의 내면은 저자의 말대로 엄청 뜨거웠을 것이다. 자신의 건강마저 챙기지 않고 일에 몰두하는 세종의 집념은 경외 그 자체였다. 그런 세종에게 아쉬운 부분은 역시 말년 후계구도에 대한 처우다. 나는 세종이 왜 세자가 아닌 대군들에게 정치를 맡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치세의 시기에 태어난 세종이라서 자식들의 우애를 믿은 것일까. 그런 안일한 생각 때문에 자신이 키웠던 싱크탱크들은 둘로 나눠 서로를 죽였고, 아들들도 옥좌를 두고 싸웠으니. 이 모든 사건의 원흉을 따져본다면 세종의 과오가 가장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는 나에게 세종과 같은 인물이 되라고 이야기했다. 그래서일까 공교롭게도 책을 통해 바라본 세종에게서 내 성격이 보이기도 했다. 독서를 함에 있어 다독보다는 정독, 한 가지 일을 추진할 때에는 집요하게 집중하는 점, 일을 할 때 근본 원리를 바탕으로 하여 적용하는 정석주의적인 태도, 잡기를 멀리하는 성격, 호학을 선호하지만 학문을 위한 학문보다는 실용에 바탕을 둔 학문을 선호하는 성향, 거기다 고기를 좋아하는 식성까지 등등... 알게 모르게 나에게 스며들었던 성격의 바탕은 세종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책은 전체적으로 세종의 업적을 잘 고찰하고 있다. 그렇기에 한 권으로 충분히 세종이라는 인물과 시대상을 읽어내기에 충분했다. (참고) 책에 있어서 한 가지를 지적해보자면 454쪽에 나오는 문장이다. '그(문종)의 효성은 지극했다. 직접 복어를 요리해 병중에 있던 아버지 세종에게 올리는가 하면 후원에 손수 앵두를 심어 세종이 맛볼 수 있도록 하였다.' 저자는 여기서 복어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복어로 쓰고 있는데, 여기서 쓴 복어(鰒魚)는 전복을 의미한다고 한다. 실록에 기록된 복이라는 한자도 전복 복(鰒)을 쓰고 있으며,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복어는 실록에 하돈(河豚)이라고 쓰고 있다. 생각해보면 당시 복어는 쉽게 식용할 수 없는 음식이었다. 세종, 문종 시대보다 훨씬 후대에 저술된 허균의 《도문대작》이라는 음식서에서 '복어는 한강에서 나는 것이 맛이 좋은데 독이 많아서 많이 죽는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즉 당시 독을 지닌 복어는 잘 못 조리할 시 목숨에 치명적인 음식이다. 따라서 문종이 위험한 복어를 손수 요리하여 진상했다기보다, 전복을 요리하여 바쳤지 않을까 생각한다. 1. 원전 실록에서 한자를 보고 의문이 생겨 더 찾아본 결과 '《왕의 한의학》 이상곤 - 사이언스 북스'라는 책에서 이에 대한 명쾌한 해설이 나와 있었기에 언급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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