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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과 나무와 벌레와 이야기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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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왕'이 가지는 매력은 주제가 단순하고 명쾌하다는 것에 있을 듯 싶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만화적인 표현이, 아니 만화로 그려진다면 더욱더 기분좋게 읽혀질 수 잇지 않을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게 되었다. 특히나 소설의 중반 이후에는 마치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렸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 '숲의 왕'은 난개발과 환경보존이라는 대립 구도에 대해 에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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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왕'이 가지는 매력은 주제가 단순하고 명쾌하다는 것에 있을 듯 싶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만화적인 표현이, 아니 만화로 그려진다면 더욱더 기분좋게 읽혀질 수 잇지 않을까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게 되었다. 특히나 소설의 중반 이후에는 마치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렸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 '숲의 왕'은 난개발과 환경보존이라는 대립 구도에 대해 에피쿠로스의 정원과 그 주변을 둘러싼 개발주체의 대립으로 일단 도식화시켜 볼 수 있겠지만 정원을 구성하는 각 구성원들의 다양성이 그 단순 도식화를 쉼사리 시도할 수 없도록 만든다. 정원의 사람들이 분명한 한가지 목표를 갖고 함께 생활하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어떤 역할들을 담당한다는 측면에서 환경보존이라는 대목표의 실천방안을 제시한다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환경보존론자들을 공격하는 무기들 역시 다양하다. 그것은 집단이기주의일 수도 있고 자본과 결탁된 정치세력일 수도 있다. 그것이 정원 주변을 둘러싼 여러 주체들 - 마을주민, 개발회사 사사장 등 - 이 그저 푸르기만한 현재의 자연이 자신들에게는 결코 아무런 이득을 당장 던져 주지 않는다라는 점에서 공감대를 형성, 정원의 무의미함을 표설하는 장면들에서 확실히 알 수 있다. 물론 이 소설은 자연의 모습을 보자는 것이 될 것이다. 오래전 대구의 한 절에서 스님께서 커피를 마실테냐 차를 마실테냐고 해서 차를 마시겠다고 했더니 커피에 길들여진 혀로는 차맛을 제대로 알기 힘들다고 충고해주던 기억이 난다. 굳이 콘크리트니 뭐니라는 걸 들먹이지 않더라도 생명력을 상실한 도시적 오브제들에 의해 길들여진 도시인들에게는 그저 햇살이 머금은 옅은 양념의 음식들이나 그저 물로만 우려낸 차들이 밍밍함으로 다가오는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이 소설이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기계, 상품, 네온 등에 길들여진 눈, 피부는 푸른 정기를 머금은 정원의 사람들, 푸른 정기를 내던지는 자연의 깨끗함 앞에서 오히려 숨이 막히는 경우랄까? 불순물이 적당히 섞인 공기에 익숙해져 있다보니 100% 산소를 마시면 오히려 호흡하기 어려운 경우란 얼마나 악의적으로 아이러니칼한가 말이다. 그 신선한 호흡을 들을 수 있는 '숲의 왕'이야말로 신비적 자연주의라는 수식어를 굳이 달지 않더라도 자연과의 교감이라는 거창한 용어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쉽사리 이해될 수 있는 자연의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그저 '자연보호'라는 낱말을 쉽사리 들먹일 수는 없었다. 자연보호라는 편안한 문구 뒤에는 마치 오리가 유유한 헤엄을 위해 발로 갖은 물질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의미들과 인간사적 코드들이 숨겨져 있는가 말이다.삶의 보호요, 인간의 보호요, 정신의 보호요... 유려한 문장들로 아름답게 표현된 이 소설의 가치는 물질의 가치를 결코 도외시하지 않으면서도 물질이 진정한 가치를 갖기 위해서는 과연 어디에 더 무게를 두어야 하는가하는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 하겠다.

[인상깊은구절]
자신의 제물을 움켜잡아 사지를 노끈처럼 휘늘어뜨리고 목을 부러뜨리고, 등골을 꺾고, 통뼈를 이루는 목질의 미세한 결 속까지 파고들어 그 층을 낱낱이 칼질해 화염의 절구통 속에서 가루로 바수어버리는 폭군 같은 신, 그는 눈곱만큼의 부끄러움도, 잠깐의 망설임도 없었다.
g******x 2001.08.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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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두려움과 공포심, 그리고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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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수 있는 여유의 시간들이 내게 얼마나 있을까. 너무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책들마다 경쟁적으로 광고의 힘을 빌어 세상을 따갑게 쏘아대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 책의 무용론이 있었지만 여전히 텍스트는 그 나름의 설 자리를 공고히 다지고 있다. 아마 디지탈보다는 고전적 독서의 자리매김이 사회의 묵시적 질서이기 때문이리다. 그러나 어쩌다 대형 서점에 들려 쪼
"내 안의 두려움과 공포심, 그리고 숲" 내용보기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여유의 시간들이 내게 얼마나 있을까. 너무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그 책들마다 경쟁적으로 광고의 힘을 빌어 세상을 따갑게 쏘아대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 책의 무용론이 있었지만 여전히 텍스트는 그 나름의 설 자리를 공고히 다지고 있다. 아마 디지탈보다는 고전적 독서의 자리매김이 사회의 묵시적 질서이기 때문이리다. 그러나 어쩌다 대형 서점에 들려 쪼그려 책을 고르는 아름다운 순간 말고는 대부분 신문광고나 인터넷 서점을 통한 책선택의 일상이 나를 폄하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 없다. 김영래의 숲의 왕도 그 중에 하나다. 지구의 화두인 환경과 자연에 대한 우주적 관심에 힘입어 소설의 영역이 넓혀지는 가능성을 제시하였겠구나 하는 생각과 어쩌면 나도 이러한 류의 소설을 써야 하지 않겠느냐는 참여에의 열망이 이 책을 선택하게 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문학동네의 소설적 성취도를 높이 평가하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친구의 방문처럼 즐겁고 들뜨는 일과 다를바가 없다. 그러나 책을 덮고 나서 내내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위험한 놀이를 마치고 집에 숨어 있는 아이가 엄마의 눈치를 살피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한 지경일 뿐이었다. 오대산 전나무 숲이나, 아니 작은 산이라도 상관은 없다. 이른 새벽의 숲을 거닐어 본 사람은 안다. 그 평화롭고 아늑한 삶의 풍경을 느껴본 사람은 안다. 살아야겠다. 이 숲이 있는 동안은 사람은 여전히 살아 있는 모든 것과 어울려 조화로운 우주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스스로 지니게 된다. 그 깨달음은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좋다, 참="" 좋다="">라는 표현을 우린 그렇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러나 김영래의 숲의 왕은 책을 읽는 사람에게 숲의 분위기를 느끼게 하기 보다는 근래에 많은 이들이 숲으로 가는 길이니, 답사니 하며 현장성과 인문성을 조합한 지구 환경 운동의 연장선에서 토론되는 갖가지 이론과 설들을 몇 사람의 입을 통해 힘들게 아주 어렵게 나열하고 있다. 도대체 어쩌자는 것인가. 이 책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 작가가 하고 싶은 세상에의 외침을 고답준론식으로 편성한 너무나 사적인 구성을 지녔다. 사람들은 소설을 통하여 상상력의 영역을 확장하곤 한다. 이 책은 그런 상상력의 확장보다는 지금까지 환경과 자연에 대해 논의되고 있는 기지의 사실들을 잘나게 뽐내고 있는 소설의 형식이다. 책방에 들려 그리 광고도 잘 되지 않은 책들을 이 것 저 것 고르면서 아 이거다 싶어 집에 와 한 순간에 읽어내는 그런 책과는 류를 달리하고 있다. 여전히 신문광고와 인터넷 서점의 검색만으로 내 자신을 소모시키는 일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렇게 읽고 나서 참 아쉽다고 생각될 때가 자신의 선택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싶다. 숱하게 쏟아져 나오는 북리뷰의 신문사 기자 등의 일상적이고 직업적인 소개글에 더 이상 현혹되지 말아야겠다. 숲은 우리에게 사색을 준다. 그 사색에는 말할 수 없이 확장된 의미와 상상력을 바탕으로 삶의 산책을 제공하는 힘이 있다. 숲에서 생명있는 모든 것들은 같은 조건의 삶을 이루고 있다. 숲을 둘러싼 탐욕의 시선들이 있는가 하면 숲에서 삶을 이루고자하는 더 많은 생의 의미들이 있는 것이다. 생의 의미 자체가 하나의 욕심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런 소박한 욕심이 있기에 욕심을 경계하라는 부처의 말씀도 있는 것이다. 삶 자체가 거칠고 힘이 드는 시절이다. 숲에 들면 그나마 소박한 삶의 원형을 배울 수 있다. 숲이 있기에 삶이 도달하는 목표가 보이는 게 아닐까. 숲에서 나서 숲으로 돌아간다는 명제에 너무나 동떨어져 살고 있는 건 아닌가 싶다. 도시의 숲에서 태어나 도시의 숲으로 돌아간다고들 여기고 있는 건 아닌가. 일상에서 숲은 늘 일상을 떠나 찾아갈 곳이라는 환상으로만 남아 있다. 이럴 때 숲에서의 개인은 두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소설은 소설이 되어야 한다.

[인상깊은구절]
숲에서 가장 나쁜 것은 두려움이에요. 공포심, 바로 그것이 가장 무서운 적인 것이죠. 짐승들은 숲속에서 공포를 느끼는 자들을 가장 두려워해요. 역설적인 의미에서 겁쟁이는 가장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이죠. 나무 작대기로 뱀을 후려쳐 죽이는 자들은 그러한 행위로 자신이 겁쟁이이고, 세상에서 지극히 두려운 존재, 나쁜 자식임을 입증할 뿐이죠. 공포는 무기와 그에 비례하는 무분별한 용기를 동반하니까요. 인간 중심의 불결, 불쾌, 불안의 이미지들을 버릴 때, 바로 그 순간 숲은 모든 생명체들의 코스모폴리스, 지구 연합으로 거듭날 수가 있어요.
o******m 2000.05.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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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예언으로 가득찬 소설, 그것은 차라리 한 편의 시에 가까웠다.
"감동과 예언으로 가득찬 소설, 그것은 차라리 한 편의 시에 가까웠다." 내용보기
현재 한국 소설은 두 갈래로 나뉘어진 것 같다. 문학적 완성도는 높으나 잘 팔리지 않는 단편. 그리고 다른 하나는 문학적 완성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독자에게는 읽을 꺼리를, 작가에게는 푼돈이지만 그나마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이득을 주는 장편소설이다. 물론, 그 가치가 인정되어 소설사에 거론되는 굵은 작품들은 대부분 장편이다.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그러나, 수십년 뒤에 90년
"감동과 예언으로 가득찬 소설, 그것은 차라리 한 편의 시에 가까웠다." 내용보기
현재 한국 소설은 두 갈래로 나뉘어진 것 같다. 문학적 완성도는 높으나 잘 팔리지 않는 단편. 그리고 다른 하나는 문학적 완성도는 다소 떨어지지만, 독자에게는 읽을 꺼리를, 작가에게는 푼돈이지만 그나마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이득을 주는 장편소설이다. 물론, 그 가치가 인정되어 소설사에 거론되는 굵은 작품들은 대부분 장편이다.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그러나, 수십년 뒤에 90년대의 소설사를 쓴다면, 과연 몇 편이나 되는 장편소설이 이름을 지킬 수 있을까.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예술소설과 상업소설, 단편소설과 장편소설로 이분화시키는 것은 요즘 문학 전공자들 사이에서 그리 어색한 일이 아니다. 그 말은 곧, 잘 팔리는 단편소설집 찾아보기 어렵고, 문학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장편소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런 현실속에서 문학동네가 벌써 6회째 실시해오고 있는 문학동네문학상은 은희경의 <새의 선물="">,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의 수준 높은 중, 단편을 발굴해왔으며, 동시에 수상작을 단행본으로 출간하여 대중적 인기도 함께 누리고 있다. 물론, 나는 문학동네와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러나, 현재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매우 빈약한 문단측사정을 알고 있는 문학전공자에 한 사람으로써 함께 그 짐을 통감하고 있다. 또한 그런 의미에서 나는 제5회 문학동네 소설상을 수상한 김영래씨의 <숲의 왕="">에서 마치 숲속의 생명력이 가득한 향기를 맡았으며, 그것을 맡게해준 데 대한 고마움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보통 등단이후 여기저기에 작품을 싣고, 점점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는 수준이 되면 제법 굵직한 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되는게 일반적인 문단계의 루트인데 비해, 김영래씨는 등단은 했었지만 문단에 적을 두고 있지 않아서인지 느닷없이 출현한 신인처럼 그 이름도 낯설었고 약간의 거부감도 들게 했다. 그러나,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던 현란하면서도 상황에 적절한 문체와 깊이 있는 주제, 박진감 넘치는 현장성...은 정말 여느 기성작가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이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평은 이미 많은 자리를 빌어 언급된 바 있다. 그러나, 나는 특별히 이 작품의 특수한 장르적 특성을 말하고자 한다. 아마도 이 작품은 90년대 문학을 얘기하는 자리에서 그 어느 장르에도 묶이지 못할 것이다. 우선 <숲의 왕="">은 소설이지만, 기존의 소설과는 다른, 오히려 시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기존의 90년대 소설들이 철저히 내면탐구에 치중해 있으며, 때문에 지극히 개인중심적이고 결론이 명확하게 내려지지 않는, 루카치가 말했듯이 전제부터 총체성은 없는 무중력의 공간에 방치되어 부유하는 삶의 덩어리와 같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중력이 존재한다. 물론, 그것은 정치나 경제처럼 딱집어 만져지지는 않는다.작가의 세계관에 의해 질서를 이루고 있는, 그러나 규정지어져버린 것과는 다른, 그 무엇이 있다. 아마도 그것은 자연이었을 것이다. 작가가 말하고자한 그 질서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으려면 이 작품은 몇 번 되풀이해서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마음 속으로 느끼고 이해하는 것은 딱 한 번으로도 가능하다. 굳이 몰입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좋다. 화가가 붓터치로, 뮤지션이 음률로, 사진작가가 뷰파인더로 하는 것처럼, 작가는 문체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김영래씨의 문체는 매우 유혹적이다. 요즘 소설이 많은 독자를 영화에 빼앗기고 있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이 작가가 만들어내는 상황과 분위기는 절대로 영화가 흉내낼 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가장 뛰어난 점은 풍부한 주제와 소재이다. 소설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깊고, 타당성 있으며, 사회현실과 긴밀한 주제는 이 소설의 생명을 아주 오랫동안 연장시킬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지상에서 신성함은 사라지고, 자연은 늙고 병들고 쇠약해지고, 생명은 위기에 처하고, 영성은 심연의 끄트머리에서 방황하고, 인간은 포만과 외눈박이 휴머니즘으로 자멸의 구렁텅이를 파고 있다는 것
y*******7 2000.06.2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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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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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아앙. 제목이 간지나서 사놓고 보지를 않던 책이다. 솔직히 말해서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이라 어느정도 퀄리티는 이미 보장되었다고 보는게 옳다. 달의 바다가 그랬고, 캐비닛도 그랬다. 재밌었다. 돈이 아깝지 않은 것. 적어도 영화 두편 보는 맛은 있었다. 아, 영화를 깎아 내리는게 아니다. 책은 혼자 보는 것이고, 거기에 온전히 내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두편의 값어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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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아앙. 제목이 간지나서 사놓고 보지를 않던 책이다. 솔직히 말해서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이라 어느정도 퀄리티는 이미 보장되었다고 보는게 옳다. 달의 바다가 그랬고, 캐비닛도 그랬다. 재밌었다. 돈이 아깝지 않은 것. 적어도 영화 두편 보는 맛은 있었다. 아, 영화를 깎아 내리는게 아니다. 책은 혼자 보는 것이고, 거기에 온전히 내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두편의 값어치가 있었다.

 

사실 제목만 보고는 당연히 뭐더라, 호랑이 이야기인 줄 알았다. 숲에서 왕이면 그게 호랑이지 뭐. 그런데 이건 내셔널 지오그래픽이 아니었다. 환경 저널이었다. 그는 환경에 대해 논했고, 이 따위로 사람들이 살아가다간 망해버릴 거라고 외치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공감이 되기도 한다. 갈수록 석유는 줄어들고 석탄까지 뽑아쓰고, 오존층은 뚫리고 대기권은 얇아지는데 빙하도 녹아내리고 여전히 투발루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라의 경제를 위해 눈을 가리고, 입을 다물로 귀를 막았다. 환경따위 알게 뭐냐, 뒈져버릴. 지속 가능한 개발은 역시나 탁상공론에 눈 가리고 아웅식의 헛소리다. 주가가 3자리를 달리고 환률이 1500으로 치솟는 이 마당에 환경을 위해서 경제를 천천히 발전시켜야 합니다, 라고 했다간 당장에 내 뺨을 칠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말해야 한다.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고.

 

REX NEMORENSIS. 이 한 줄로 모든 것은 설명 된다. 이제 비폭력 무저항의 순수는 없다. 그리고 합리적 대화도 없다. 개발과 환경은 이제 양립할 수 없는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결국 환경은 제의를 올릴 수 밖에 없다. 꿈꾸는 이상을 위해 그들의 제사장은 한 없이 빌고, 빌고, 또 빈다. 이 세상을 버리고 갈 수 있게. 더 이상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을 원하지 않는다. 환경에 기대어 이 빌어먹을 난개발의 세상을 떠나고 싶은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어머니 대지는 이미 범해지고, 아버지 하늘은 죽었다. 내 부모가 죽었는데 대체 나는 왜 살아가야 하는가. 책은 강하게 외치고 있다. 생명은 위대하다. 자연은 존엄하다. 하지만 대체 왜 빌어먹을 현대인이라는 종자들은 그런 것을 도저히 모르냐는 것이다. 자연을 살려야 한다고 주둥이를 나불대지만 그래놓고 자기 집이 그린벨트로 묶이면 씨발씨발 한다. 그래, 나도 우리 집 보호지역으로 묶이면 씨발거릴 것이다. 나도 속물에 현대인이니까.

 

모든 자연은 결국 지켜오던 자에게로 돌아간다. 이 세상 석유가 다 떨어지고 더 이상 수억 와트의 전기가 뿜어지지 않을 때, 우린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연은 자신을 모르는 자에게는 냉혹하다. 냉엄한 자연의 솎아내기 속에서 결국 지켜오던 자들만이 그 분노를 피하게 되고, 인류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물론 그럴 때를 대비해서 자연을 사랑하자는 것은 아닌 것같 같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다 죽던지. 전부 자연에 패하던지. 둘 중 하나는 확실히 진실이고 그럴 때를 대비한다면 우린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안락함과 쾌락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쾌락주의의 에피쿠로스는 깨달음의 큰 쾌락을 위해 먹고 사는 작은 쾌락들을 희생했다. 우리도 생존이라는 쾌락을 위해 약간의 불필요한 쾌락을 자제해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언젠가 숲의 왕이 나타나 우리를 인도할 지도 모른다. 물론 그전에 이 빌어먹을 인류가 다 망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 때 우린 당당히

 

'살려주세요.'

 

라고 말할 자격이 있을까. 난 그것이 궁금하다.

n*********t 2009.02.1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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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영래 - 숲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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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읽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떤 인디언 추장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도 사냥을 하지만 재미로 사냥하지 않는다. 우리는 짐승을 잡고 나면 털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그게 우리에게 소중한 음식을 제공한 짐승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제목만 봐도 딱 견적이 나온다. 숲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왕도 나온다.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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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읽었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떤 인디언 추장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우리도 사냥을 하지만 재미로 사냥하지 않는다. 우리는 짐승을 잡고 나면 털 하나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그게 우리에게 소중한 음식을 제공한 짐승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제목만 봐도 딱 견적이 나온다. 숲에 관한 책이다. 그리고 왕도 나온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다분히 현학적인 내용과 긴장감 없는 사건의 진행이 아쉽다. 중간 부분부터는 소설을 읽고 있는지 인문 서적을 읽고 있는지 분간이 잘 가지 않을 정도로 인용 된 문구가 많았다. 작가는 어떤 텍스트를 읽고 새롭게 다른 텍스트를 창조해내는 직업이다. 그런 점에서 김 영래 작가는 작가로서 실격이다. 어디에서 인용되었던, 어디에서 보았던 간에 작가는 자기 것인 척해야 한다. 세상을 보고 그것을 작가 내면에서 발효시켜 쏟아 내야한다. 계속해서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숲의 고결함을 해치는 적들에 대해 숲을 지켜가는 사건의 전개가 너무 약했다. 오히려 숲에 관한 신화와 전설을 너무 많이 인용해 긴장감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리고 등장 인물들의 우화식 이름은 어색하기까지 했다. 너무 직접적으로 숲의 소중함을 말하지 않았나 싶다. 조금 더 숨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치밀한 묘사력은 가히 천부적이다. 중간에 나오는 불에대한 묘사는 정말 아름다웠다. 소설가보다는 오히려 시인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j******3 2011.11.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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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을 사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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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숲의 왕이다. 제목에 걸맞게 내용도 환경보호에 관한 글이다.       리뷰 끝.       이러고 싶다.         전쟁터에 오래 머물면 뜻하지 않는 위기 상황에 많이 봉착하게 된다. 그런 삶이 지속되다 보면 습관처럼 생기게 되는 능력이 하나있다. 바로 판독능력이다. 그 판독 능력은 문장이나 문서, 암호의 범주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지형지물을 비롯한 인간에게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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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이 숲의 왕이다. 제목에 걸맞게 내용도 환경보호에 관한 글이다.

      리뷰 끝.

      이러고 싶다.

 

      전쟁터에 오래 머물면 뜻하지 않는 위기 상황에 많이 봉착하게 된다. 그런 삶이 지속되다 보면 습관처럼 생기게 되는 능력이 하나있다. 바로 판독능력이다. 그 판독 능력은 문장이나 문서, 암호의 범주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지형지물을 비롯한 인간에게 까지도 영역이 확장된다. 다시 말해 전쟁터에서 어느 누구에게 의지할 데  없는 한 명의 병사가 자신의 생명을  지켜내기 위해서 자생적으로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 할수 있다.

      이런 습관은 한 번 생기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맹수가 자신의 새끼를 지키기 위해 항상 민감하게 주변을 경계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옳으리라.

      인간에게 위기는 촉수를 민감하게 발달시키는 하나의 도구이다. 불운속에 만들어진 재능이라 할수도 있겠다.

 

      사람은 역시 사람이다 보니 그 사람의 추구하는 바나 성향이 무엇을 통해서든 나타나게 되어있다. 특히 예술을 하는 사람일 경우는 그게 더욱 심하다고 볼 수 있다. 영화나 음악, 문학 모든 장르가 그렇다. 작가의 색채를 배제할 수 없으며 그러다 보면 그 속에서 작가 내면의 인성도 발견할 수 있다.

      실제 인간관계에서 사람을 대면하면 실제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 보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약점을 본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것은 포장된 채 드러나게 되므로 감추어진 속내를 밝혀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연유로 사람은 위기 상황 즉, 자신의 방어가 느슨해졌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그의 진가를 알 수 있다고 종종 말하기도 한다.

      술주정, 도박의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러면 반드시 그런 상황에서만 속내를 뚫어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포장지의 내부를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훈련되어진 사람들이 있다. 기업으로 치면 인사를 담당하거나 채용을 담당하는 사람이 그런 훈련을 받은 자들이다. 그런데 그런 자들보다 더 냉혹하게 깊은 곳까지 뚫어볼 수 있는 자들도 존재한다. 바로 앞서 말한 전쟁터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장수들이 그렇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를 두고 상황을 판독하는 것에 길들여진 사람은 빠르고 정확하다.

      물론 무언가를 꽤뚫어 본다는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니다. 당하는 사람도 기분이 좋을리 없겠지만 가하는 사람도 씁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만큼 가려내고 솎아내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이기에 뛰어난 사교술을 지니고 있음에도 가깝게 두려는 자는 극히 그 수가 드물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발견할 능력이 되지 않아 사람을 곁에 두지 못하는 것 보다 발견할 수 없어 곁에 두지 못하는 자의 심정이 더 고통스러운 법이다.

      남자에게 한 번 속은 여자는 남자를 믿지 않는다. 두 번 속은 여자는 남자의 꼼수를 읽어내게 되며, 세 번 속은 여자는 남자를 갖고 놀 수 있다. 갖고 노는 것이 즐거울 일 같지만 그건 달리 말하면 영원히 사랑할수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비슷한 이치들이다. 전장이 아니라면 계발되지 않을수록 좋은 재능이다.

     용병이 제대후에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화려한 문장력을 지닌 작가이다. 특히 그 묘사면에서는 발군의 실력이란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이 책의 주제는 쉽게 보아 버릴만큼 가벼운 것이 아니다. 환경이라 함이 그렇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무엇인가.

      작가의 책속에 등장하는 문구 하나를 인용해 본다.

      "한마디로 딱 부러지게 말할 수 있는 것을 현학적인 수사로 치장함으로써 초점을 흐려놓았다." 131쪽.

      자신의 작품이 그렇다.

      260쪽 정도에 해당하는 비교적 짧은 장편임에도 시종 또아리를 틀며 보게된 것은 비단 이런 이유뿐이 아니다. 그 화려한 묘사에 절제가 없다. 그러므로 중반부에 이르면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일 뿐 아니라 이전의 그 화려함도 퇴색해 버리고 만다. 소설은 반드시 완급이란 게 존재 해야 한다. 독자에 대한 배려가 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혼자 즐기려면 작품 발표를 왜 하는 가. 또는 전문가끼리 모여 최고라고 추켜 세우려면 문단 계간지에나 실어놓고 또래집단끼리 감상하고 말 일이다. 화려한 수식어를 동원하여 나같은 독자까지 꼬여내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그래, 속아 넘어간 내가 등신이다.

      동급 소설 [캐비닛]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맥도날드가 자신들의 고기를 공급받기 위해 아마존 정글을 밀어내고 있다, 그것은 지구 온난화를 비롯해 각종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너 이 새끼, 지금 햄버거 먹고 있어? 쪽팔리지!라고 비스무레하게 말하고 있다.-생각이 잘 안나서 각색했다.- 숲의 왕 260쪽 보다 캐비닛의 두 줄 문장이 훨씬 가슴에 와 닫는다.

      

      무엇보다 나의 인내심을 극한으로 끌고 갔던 이유는 나의 개인적인 성향으로 말미암아 그렇다. 나는 자신의 주장을 본인의 체험을 바탕으로한 간곡함이 없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그런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의해 온갖 전문가들의 지식을 암기하여 떠벌여대며, 그러므로 나의 말이 옳다, 라고 주장하는 부류를 한심하기 그지없는 눈길로 바라본다. 물론 내게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나는 그런 인간들을 상종하지 않는다.  그런 자를 어느 조직의 장으로 앉혀 놓아 순식간에 그 조직이 와해되는 것을 한 두 번 본게 아니다. 그런 자들은 당연히 고집도 드럽게 쎄다. 논쟁에서 지는 걸 굉장히 쪽팔려 한다. 참 실속없는 군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책으로 말할 것 같으면 잭의 80%가 남의 얘기를 짜깁기 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용해서 주장하는 것도 정도껏이어야지 간만에 책보다가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이 나마도 작가의 뛰어난 묘사력을 존중하여 이만큼이나 리뷰를 끄적여 준다.-사실, 분노의 용트림이구나!- 개인적으로 만날 일도 없는 작가이지만 만나더라도 알고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작가 인터뷰를 보고 그렇게 느꼈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자는 제의를 거절하고 읽은 책이건만 결과가 이 모양이라 분노가 더욱 극에 달한다. 

      쿠오오오오오오오오~~~~!!!!

      이 얼마나 공격성이 드러나는 리뷰란 말인가!

 

      (님하 진정 쫌.) 

b******k 2008.12.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숲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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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판타지 소설이 큼 인기를 끌고 있다. 삭막하고 평범한 도시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요정과 마법사와 용사 그리고 신이란 요소는 매혹적인지도 모른다. 이번에 문학동네 소설상을 타며 화려하게 등장한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판타지 소설을 연상시킨다.처음 접하는 제목 "숲의 왕"부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 많은 신화들까지...... 그래서일까? 이 책의 분위기는 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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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판타지 소설이 큼 인기를 끌고 있다. 삭막하고 평범한 도시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요정과 마법사와 용사 그리고 신이란 요소는 매혹적인지도 모른다. 이번에 문학동네 소설상을 타며 화려하게 등장한 이 소설은 어떻게 보면 판타지 소설을 연상시킨다.처음 접하는 제목 "숲의 왕"부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수 많은 신화들까지...... 그래서일까? 이 책의 분위기는 몽환적이다. 이 점이 다른 소설과는 다른 큰 특징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약점이 되기도 한다.분명 우리의 현실을 말하고 있는 데도 우리와는 다르게 느껴진다는 점이 강렬한 주제를 희석시키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껏 이룩해 온 발전이라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곳과도 너무도 어울리지 않다는 사실.이 사실이 우리가 겪고 있는 수 많은 문제의 출발점일 수 있기에 이 책의 의미는 소중하다. 이렇게 통렬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우리 자신을 넘어 그 이상의 문제을 제기한 소설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인간은 인간을 위한 , 인간을 의한, 인간의 문명을 건설했을 뿐이다. 그러기에 이 소설의 내용은 더욱 뼈저릴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만 이 소설은 여기서 멈추어 서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 주제를 구체화시켜줄 인물들은 선과 악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 했고, 너무나 현학적이어서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과도같다.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숲의 형제단" .그 이름 자체가 서구적이다. 당나귀 이름조차 플라테로라 불리는 이 집단이 우리의 숲과 자연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적어도 당나귀 이름 정도는 소박하게 지었으면 좋았으련만..... 훌륭한 묘사력과 우리가 직면하고 있으면서도 직시하지않고 있는 것에 대한 준엄한 경고를 보내는 주제의 무게가 이 소설을 탄탄하게 지지하고 있고, 산지기인 임 노인이 자신이 숲의 왕이라는 걸 깨닫는 결말은 상당히 큰 울림이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이 소설을 이끌어 온 수 많은 외국 신화와 환상적 분위기와는 너무도 달라 당혹스럽다. 위대한 판결을 앞두고 있는 노쇠한 판사의 빈약한 지휘봉을 보는 것과 같은 슬픔을 느꼈다.
b*****5 2000.03.27.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소설영역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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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문제라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쓴 소설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적어도 숲의 왕이라는 제목과 그것이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서 인용했다는 말을 보았을때 단지 신화적 상상력에 의한 소설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읽어보니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물론 무슨무슨 상을받았다는 타이틀이 있어서 기대를 한게 아니라, 프레이저의 황금가지가 언급이 되어서 책을 갖고 싶었
"소설영역의 확장" 내용보기
환경문제라는 주제의식을 가지고 쓴 소설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적어도 숲의 왕이라는 제목과 그것이 프레이저의 황금가지에서 인용했다는 말을 보았을때 단지 신화적 상상력에 의한 소설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러나 읽어보니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물론 무슨무슨 상을받았다는 타이틀이 있어서 기대를 한게 아니라, 프레이저의 황금가지가 언급이 되어서 책을 갖고 싶었던 거다. 어쨌던 이 책은 인물들의 캐릭터와 사건, 그리고 저자의 신화적 지식의 화려함이 어우러진 책이라고 본다. 물론 그 지적 넘나듬이 눈에 거슬리는 부분도 있었다. 숲의 왕은 소설이 상상해낼 수 있는 영역을 확장시킨 면이 보인다. 근래에 읽고 싶은 소설책이 없었는데 간만에 흥미있는 책을 읽어서 반가웠다.
k******g 2000.03.31.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숲의 왕은 스스로 다다를 수 있는 지위이다. 경험으로...
"숲의 왕은 스스로 다다를 수 있는 지위이다. 경험으로..." 내용보기
내가 느꼈는지, 그가 느꼈는지, 아님 주인공이 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너무도 경계가 없는 문구의 다가옴은 내게 더 이상 책이 아닌 경험으로 존재하게 한다. 지나친 허풍이라고만 생각했던, 어느 건축가의 말처럼 "장식은 죄악"인 것처럼만 함부로 여겼던 언어의 유희란, 내게 차라리 지저분함으로까지 비추어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내게 얼마나 아름
"숲의 왕은 스스로 다다를 수 있는 지위이다. 경험으로..." 내용보기
내가 느꼈는지, 그가 느꼈는지, 아님 주인공이 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너무도 경계가 없는 문구의 다가옴은 내게 더 이상 책이 아닌 경험으로 존재하게 한다. 지나친 허풍이라고만 생각했던, 어느 건축가의 말처럼 "장식은 죄악"인 것처럼만 함부로 여겼던 언어의 유희란, 내게 차라리 지저분함으로까지 비추어져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내게 얼마나 아름다운 순간들을 전해주고 있는지... 그토록 장식을 싫어했던 만큼 표현하지 못하는 내 맘의 답답함까지 함께 담아내고 있다. 경계심이 많은 내게 거침없이, 거침이 있다면 감동을 표현하는데 오히려 더 깊은 칭찬을 우려낼 수 있는 단어까지 생각해내려는 스스로의 노력이 오히려 부담스러워진다.

[인상깊은구절]
노인은 잠시 더 머물며 검은색의 굳은 덩어리들이 청색 물감으로 풀어지는 것을, 그리고 띠처럼 가늘어진 안개가 서서히 젖빛을 띠는 것을 지켜보다가 발길을 돌렸다.
1*****e 2000.03.15.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숲의 왕, 현학의 숲에서 길을 잃다.
"숲의 왕, 현학의 숲에서 길을 잃다." 내용보기
마지막 40페이지를 남기고 읽기를 그만두었다. '소설상' 시리즈는 잘 보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엔 내가 특히 좋아하는 모 대학 K교수의 '이 작품이 가진 장점'에 관한 설명에 마음이 혹해서 읽기 시작했었다. 처음엔 그런 대로 읽히는 문장들이었으나, 갈수록 왜 이 작품에 그런 찬사를 붙였을까 하는 생각만 불쑥 불쑥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보니, 지나치게 많은
"숲의 왕, 현학의 숲에서 길을 잃다." 내용보기
마지막 40페이지를 남기고 읽기를 그만두었다. '소설상' 시리즈는 잘 보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엔 내가 특히 좋아하는 모 대학 K교수의 '이 작품이 가진 장점'에 관한 설명에 마음이 혹해서 읽기 시작했었다. 처음엔 그런 대로 읽히는 문장들이었으나, 갈수록 왜 이 작품에 그런 찬사를 붙였을까 하는 생각만 불쑥 불쑥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보니, 지나치게 많은 인용문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와의 대담에서 작가는 '절제된' 열정이 자신의 문학과 삷이 에너지라고 하고있다.), 갈등과 긴장이 없는 이야기 서술, 평면적인 인물등에 관해 한결같이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이런 인물의 단순성에 대한 질문에 작가는 '현대인에게는 본능과 인격은 있되 성격이 없어서 인물의 성격을 극적으로 만드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하고 있다. 이런! 앞으로도 작가의 소설들에서는 납작한 평면적인 인물이외에는 기대하지 말라는 것인가. 이 책의 내용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은 소설이 아닌 K 교수의 심사평이었다. '이 소설의 취약점은...(중략)... 이 소설이 강하게 암시하고 있는 윤리적 지향성이다. 참다운 소설은 소설 자체이외의 그 무엇에도 봉사하지 않는다. 제아무리 설득력이 강한 윤리나 이념 혹은 지향성도 소설에게는 족쇄다. 이 절대자유가 보장되지 않는다면 소설은 결국 그 고유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문학의 양보할 수 없는 조건은 자유이기 때문이다.' 모처럼 만에 깊이 숨을 들이쉬고 기대에 차서 읽기 시작한 소설이 정신없이 나열되는 현학적인 수사의 숲에서 길을 잃고, 그만큼의 한숨으로 끝나버렸다. 소설이라기보다는 모 심사위원의 표현대로 '환경보고서'를 읽은 느낌이다. 윤리 강좌를 받으려고 소설을 집어든 게 아니었다.
h****i 2000.04.2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