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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에게 듣는 글쓰기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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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자리에서 후기를 쓰기가 두렵다. 이해도 못하고서 그저 읽었다는 기록을 남겨놓으려는 억지 후기에 대한 반성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노릇도 많이 하다보면 손에 익기 마련이다. 지금 후기 쓰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연암 박지원의 글을 읽은 탓이다. 글에 대한 철저하고 진지한 자세에 주눅든 탓이다. 꼬장꼬장하게 후배의 기사를 고치는 선배 앞에선 수습기자의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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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자리에서 후기를 쓰기가 두렵다. 이해도 못하고서 그저 읽었다는 기록을 남겨놓으려는 억지 후기에 대한 반성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 노릇도 많이 하다보면 손에 익기 마련이다. 지금 후기 쓰기를 주저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연암 박지원의 글을 읽은 탓이다. 글에 대한 철저하고 진지한 자세에 주눅든 탓이다. 꼬장꼬장하게 후배의 기사를 고치는 선배 앞에선 수습기자의 마음이 되고 말았다. 떠들자고 마음먹으면 할 말이 없는 것도 아니건만, 입을 열기가 조심스럽다. 친구에게 안부 편지를 쓰다말고도 혼자서 오른손 왼손 나눠 주사위놀이를 하며 생각을 정리하는 연암이다. 요즘으로 치자면 핸드폰 문자메시지 보내다말고 백과사전 찾아보는 정성이라고나 할까? 그런 사람이 작심하고 쓰는 글은 어떤 것일까. 일단 잘못된 글이 뭔지는 분명하다. 이른바 잘됐다는 글을 베끼면 빵점이라는 것이다. "새 글자 만들기 어렵다 해도 내 품은 생각은 써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면 "비슷하다 함은 이미 참이 아니"(曰似已非眞)기 때문이다. 잘 된 글에서는 "뜻을 본받을 뿐 그 말과 형식은 본받지 않"고(師其意 佛師其辭) 오히려 "진부한 말을 제거하기에 힘"써야 한다.(務去陳言) 즉 "표현은 자기만의 것이어야 한다"(詞必己出)는 것이다. 말하자면 "옛것을 본받으면서 변화할 줄 알고, 새 것을 만들면서도 법도에 맞도록 한다." (法古而知變 創新而能典) 이른바 문체반정이라는 사건의 처음이요 끝이다. 고루한 유생들이 살던 조선 후기에는, 그러나 이 정도의 생각마저도 받아들여 지지도 않았다. 정조는 연암에게 엄격한 고문(古文)의 형식을 갖춰 반성문을 써내도록 했다. 하지만 그 파장은 그리 간단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물며 연암의 손자로, 초기 개화파의 선구였던 박규수조차도 그가 평양감사로 이쓸때 <연암집>을 간행하자는 동생의 말에 공연히 문제 일으킬 것 없다고 묵살했을 정도였다." 과연 연암이 쓰려던 글을 무엇인가. "문장에는 방법이 있으니, 마치 소송하는 자가 증거를 들이대고, 장사치가 물건을 사라고 외치는 것과 같아야 합니다."라는 말을 유념해 볼만 하다. 독자를 염두에 둔 글이 좋은 글이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친절한 글이다. 하지만 그 친절함이란, 독자를 어린애 취급하는 것일 필요는 없다. "봉우리만 내민 산을 구름이 끊어 놓았다 해서 구름 아래 산이 없는 것이 아니다. 말은 끊어져도 뜻은 이어"(山斷雲連 辭斷意屬)지는 탓이다. 일일이 다 말하지 않고도 말한 것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니라 뜻이다. "모습이 추한대도 볼 만한 사람이 있고, 비록 추하지않지만 볼 만한 구석이라곤 없는 사람이 있다. 글이 문리는 통하지 않아도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있고, 비록 문리는 통하지만 지극히 혐오스러운 것도 있다." 그 뜻을 세우는데 필요한 것은 자신의 중심이다. "삼공과 사귈 것 없이 네 몸을 삼갈 일이다."(无交三公 淑愼爾躬) 높은 사람과 안다고 뻐길 것 없이 스스로를 단련하는게 우선이라는 말이다. 하긴 '네트워크만이 살 길'이라는 주장이 주위를 채우고 있는데, 명색이 기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내가 이런 말을 옮기기에는 창피한 감이 없지 않다. 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나 자신인 것을... 하지만 세상에 나 혼자 잘났다고 유아독존하라는 말은 아니다. 친구 없는 세상은 살 맛 안나는 세상이다. "다행히 내게 눈이 있다 해도 누구와 더불어 내가 보는 것을 함께 하며, 귀가 있다 해도 누구와 더불어 듣는 것을 함께 하며, 입이 있더라도 누구와 함께 맛보는 것을 같이 하며..." 좋은 등산장비 사서는 유독 내게만 자랑하던 후배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랑해도 부러워하지 않기 때문이라나? 바로 그 마음이 아닌가 싶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이런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 몇 안되는 보람이 아닐까.
k****9 2004.05.16.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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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위 외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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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정신앞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허공위에서 위태롭게 외줄타고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며 가슴을 졸여 본다. 중용의 자세, 삶의 항상성을 유지해낼려면 얼마나 많은 극기의 노력과 치열한 정신이 필요한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따뜻함과 차가움, 웃음과 눈물, 세심함과 무심함이 공존하며 그 양끝을 뛰어넘는 열린 마음을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뜬 구름잡는 식으로 그렇게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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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정신앞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허공위에서 위태롭게 외줄타고 있는 한 사람을 바라보며 가슴을 졸여 본다. 중용의 자세, 삶의 항상성을 유지해낼려면 얼마나 많은 극기의 노력과 치열한 정신이 필요한지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따뜻함과 차가움, 웃음과 눈물, 세심함과 무심함이 공존하며 그 양끝을 뛰어넘는 열린 마음을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뜬 구름잡는 식으로 그렇게 그렇게 살아라는 류의 글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매섭게 세상을, 인간을 ,나를 바라보는 부릅뜬 눈이 있다. 껍데기를 걷어치우고 알멩이를 찾아라는 소리를 이렇게 설득력있게 이야기한 책을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의 나의 삶, 끊임없이 변화하고 유동하는 생명에 초점을 두고 그 참의미를 찾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300여년 전의 큰 스승을 오늘의 내가 접할 수 있도록 유려한 문장으로 옮겨 주신 저자께 감사하는 마음이 가득해 진다.

[인상깊은구절]
남들이 매일 보면서도 그저 지나쳐 버리는 사물들 속세서 이전에 그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감춰진 의미를 읽을 줄 아는 따뜻한 시선을 지녔다면 그것으로 내 삶이 그만큼 더 넉넉해질 터이니, 남이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고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중략)가짜로는 단지 가짜들을 속여 먹을 수 있을 뿐이지, 진짜는 언제까지 진짜일 뿐일세.
YES마니아 : 로얄 s**3 2004.01.0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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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지향의 선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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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비슷한 것은 가짜다」를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중간'이라는 단어다. 꼭 중간이 아니더라도 꼭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 '옳다↔그르다', '희다↔검다', '내 편이다↔적이다' 라는 양단논리에 지친 나에게 꼭그것이다, 라는 명제命題가 아닌 더 많은 견해가 존재한다는데 대해 찬미讚美 비슷한 공감을 갖게 했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예술론과 그의 서적들을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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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비슷한 것은 가짜다」를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중간'이라는 단어다. 꼭 중간이 아니더라도 꼭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 '옳다↔그르다', '희다↔검다', '내 편이다↔적이다' 라는 양단논리에 지친 나에게 꼭그것이다, 라는 명제命題가 아닌 더 많은 견해가 존재한다는데 대해 찬미讚美 비슷한 공감을 갖게 했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의 예술론과 그의 서적들을 바탕으로, 저자 정민 교수가 써내려간 이 책은 스스로의 문학관이자 글쓰기에 욕심을 가진 이들에게는 훌륭한 교과서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요컨대 옷과 살의 사이, 그 중간이 바로 문제의 지점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판단은 언제나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기를 요구한다.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가지 중립적 판단은 으레 회색분자로 내몰리고 만다. 그러나 복잡한 세상일에는 단정적 가치 판단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상깊은구절]
글을 쓴다는 것은 오직 '참'을 추구하는 것일 뿐이다. 그 '참'을 위해서라면 그것이 추하든 악하든 나는 가리지 않겠다. 구슬과 옥이라 해도 '참'이 아니라면 나는 버릴 것이고, 자갈돌이라 해도 그것이 '참'일진대 나는 그것을 추구하리라. 다른 사람이 그 것을 말똥구리라고 비웃어도 상관치 않을 것이고, 여룡의 여의주라고 추켜 세운다 해 도 기고만장하지 않으리라. 우리의 진정지견眞正之見은 내 이명에 현혹되지 아니하고 내 코골기(코골기는 병이 아닐진대 병이라 창피여기는 일화를 일컬음.)를 직시하는 데 서 마련될 수 있음을 나는 믿는다. '참'은 바로 그 지점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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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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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책이고, '연암 박지원의 예술론과 산문미학'이란 부제가 달려있다. 많이는 못읽었지만, 그래도 소위 '국학'을 논할때 거론되는 학자들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게 율곡과 퇴계, 그리고 다산과 연암이다. 어릴때는 에피소드식 전기로 전자들의 이야기를 접했고, 대학에 와서는 후자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은 것 같다. 그중에서도 대충... 다산은 주류, 연암은 비주류로 구분되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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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의 책이고, '연암 박지원의 예술론과 산문미학'이란 부제가 달려있다.

많이는 못읽었지만, 그래도 소위 '국학'을 논할때 거론되는 학자들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게 율곡과 퇴계, 그리고 다산과 연암이다. 어릴때는 에피소드식 전기로 전자들의 이야기를 접했고, 대학에 와서는 후자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은 것 같다.

그중에서도 대충... 다산은 주류, 연암은 비주류로 구분되는 듯 하는데... 그래서 그런가? 연암의 이야기를 더 많이 접하는 것 같고, 그 추세는 최근에 더 하다. 어쩌면 이런 비주류성으로 인해, 현대의 학자들이 대중들을 대상으로 글을 쓰기가 좀 더 손쉬울 것 같기도 하고, 인물도 좀 더 매력있게 그릴 수 있을 듯도 하다. 그래봤자 서너권이겠지만서두.

사실 다산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목민심서, 귀양, 정조, 거중기 등등 '바른생활맨'의 이미지가 강하지 않은가? 게다가 많은 정치인들이 백범에 못지 않게 자신들의 롤모델이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다산이 이런 세태를 보면 꽤나 싫어할 것도 같지만.

그 반면 비교적 최근에 접하게 되는 연암이라는 인물은 한마디로 리버럴리스트라고 보여진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여러 연암의 글과 풀이들을 몇마디 현대어로 요약해보라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근대적) 주체성을 가지고 과거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개성있는 글을 써라. 다만, 뚜렷한 자기줏대와 세계관은 필수다~!" 현대어라고 했지만, 뭐 이런 이야기 자체도 지금으로선 고루한 꼰대의 이야기라고도 하겠다. 하지만, 뭐 300년전에 그랬다고 하니...

정민의 말을 한구절 인용해보면 "글은 어떻게 써야 할까? 글이란 내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해서 쓴다. 그런데 사람들은 내 생각을 어찌해야 남에게 오해 없이 충분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하지 않고, 붓만 잡으면 어찌하면 좀더 멋있게 폼나게 쓸 수 있을까 하는 궁리만 한다." 사실 연암처럼 멋지고 폼나는 글을 쓰기도 어렵겠지만, 연암은 이를 꾸짖는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 멋이나 폼이 현대적 개성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리라.

이렇듯 뻔한 이야기들이 매력을 풍기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연암의 유머감각때문이 아닐까 싶다. 몇몇 구절을 보면 참 멋진 사람이다라는 감탄이 절로 날 정도로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 것 같다. 내가 한학에 조금이라도 눈이 띄였다면... 이란 아쉬움도 남는다.


덧붙여서... 정민이 소개한 자신의 딸이 일기에 쓴 날씨에 대한 묘사를 소개하고 싶다.  이 책 전체보다도 참신하게 느껴졌다. 다소 길다.

" 노랗고 어여쁜 개나리같이 생긴 해가 허연 수염난 구름과 둥실둥실 떠있다." "시원한 바람이 사뿐사뿐 뛰어다니고, 하늘이 울적해 보인다." "어두운 하늘에서 시커먼 구름들이 각자 심술을 내면서 귀엽고 아주 조그만 빗방울들을 하나하나씩 새나 강아지에게 먹이를 주듯이 떨어뜨린다." "탱탱볼처럼 동그랗고, 오렌지처럼 상큼하나 햇님이 방글방글 벙글벙글 신나게 수영하듯 저리 빙글 요리 빙글 거리며 파아란 하늘에 동동 떠 있다." "어버이날을 축하하듯 해가 눈치있게 제법 하얀 이까지 드러내며 하늘에서 인사를 한다." "구름이 서럽거나 우울한 일이 많았던 모양인지 얼굴이 어둑어둑하고, 마침내는 눈물을 엄청나게 흘리고 있다."

!!!

e****s 2008.07.2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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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과자를 아껴먹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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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밝아지고 또렷해지나 마음은 울렁울렁 떨렸다. 아껴 읽어야지 아껴 읽어야지 했는데 어느새 다 읽어버렸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사주신 과자가 생각난다. (2001. 7. 24. 화요일) 내 책 《비슷한 것은 가짜다》의 속장에 이렇게 쓰여진 것을 오늘 발견하고 몇 마디 덧붙인다. 이 책을 읽을 당시가 기억이 난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침대에서, 책상에서, 밥 먹는 중에도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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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밝아지고 또렷해지나 마음은 울렁울렁 떨렸다. 아껴 읽어야지 아껴 읽어야지 했는데 어느새 다 읽어버렸다.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사주신 과자가 생각난다. (2001. 7. 24. 화요일) 내 책 《비슷한 것은 가짜다》의 속장에 이렇게 쓰여진 것을 오늘 발견하고 몇 마디 덧붙인다. 이 책을 읽을 당시가 기억이 난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침대에서, 책상에서, 밥 먹는 중에도 그렇게 내내 책을 놓지 못했다. 내 눈이 무엇에 홀린 듯 그렇게 푹 빠진 채로 맘에 드는 구절은 포스트잇을 부쳐 생각을 다듬고 정리하기도 하였다. 연암은 말한다. 진정한 고전은 옛날에 있지 않고 바로 지금에 있다. 우리가 옛것을 흠모하여그것을 따르고 흉내낼수록 우리는 옛것에서 멀어진다고 말이다. 그는 내게 숙제를 내 놓았다. 고전을 공부하는 내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있다. 무조건 옛것이라 존숭하라고 한다면 아니될 것이다.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지금 여기의 시선으로 봐야한다. 옛것을 공부하는 이유는 지금 여기를 아끼고 사랑하기 위해서임을 명심해야 한다. 연암처럼 고매한 정신의 소유자를 보면 한없이 우러러 봐지며 또 고개가 숙여진다. 그는 明鏡이다. ―'나는 그가 두렵다. 그래서 내가 두렵다.'그의 맑은 모습에 비추니 나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그런 깨끗한 사람은 내 양심의 소리를 일깨운다. 연암의 글이 맛난 과자와 다른 점이 있다면 다시 읽고 또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아, 다행이다. 내 두고두고 읽고 반성하며 살리라.
YES마니아 : 골드 m**j 2002.02.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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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속에서 빛이 바래지 않을 위대한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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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글을 만난 것은 6∼7년전 한 문화센터에 개설된 동양철학 강좌에서였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강사가 이 책을 쓴 정민 교수였는데, 그가 읽어준 연암의 글이 마음에 와 닿아서 눈물이 핑돌았다. 그 글은 연암이 일찍 저 세상으로 떠난 누이를 그리워하면서 썼다는 추모글로 이 책의 스물다섯번째 이야기 "강물빛은 거울 같았네"이다. 뜻풀이를 듣고 있자니 글 한 귀절 한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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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글을 만난 것은 6∼7년전 한 문화센터에 개설된 동양철학 강좌에서였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강사가 이 책을 쓴 정민 교수였는데, 그가 읽어준 연암의 글이 마음에 와 닿아서 눈물이 핑돌았다. 그 글은 연암이 일찍 저 세상으로 떠난 누이를 그리워하면서 썼다는 추모글로 이 책의 스물다섯번째 이야기 "강물빛은 거울 같았네"이다. 뜻풀이를 듣고 있자니 글 한 귀절 한 구절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였다. 시험공부 하느라 교과서에 실린 우리 옛글을 읽었을 뿐 그 이후로는 접해볼 기회가 없던 내게 연암 박지원의 글은 "이런 글도 있구나"라는 경탄을 자아내게 했다. 한편을 접해본 것 뿐인데 내 마음은 연암의 글에 이끌렸고, 그 후로는 연암의 글을 찾아 읽게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쉽게 풀이된 연암의 산문집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우리 선조들이 남긴 그 많은 소중한 글들이 우리와는 너무 멀리 있다는 것이 아쉬웠다. 그러던 어느날 신문에 실린 <연암 박지원의="" 예술론과="" 산문미학,="" 비슷한="" 것은="" 가짜다="">의 서평을 발견하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연암의 글이 내게는 쉽게 읽히지 않아서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음이 안타까웠는데 정민 교수가 꼼꼼이 풀이를 달아 놓아서 연암의 글이 좀 더 깊이 마음 깊이 와 닿아서 좋았다. 책을 읽는 동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고 때로는 무릎을 치기도 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 낼 수 있으며, 이런 지혜를 지닐 수 있을까? 사물을 꿰뚫어보는 연암의 탁월한 식견과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문장력, 그리고 밥을 굶더라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그의 절개에 어찌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필자는 서문에서 "연암의 글은 난공불락이다. 나는 그 성 밑 자락을 공연히 낡은 사다리 하나 들고서 이리저리 기웃거려본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그 성으로 가는 길에서 겨우 한 발자국 뗀 것과 같을 뿐이지만 그럼에도 연암의 글을 여러편 접할 수 있어서 반갑고 기뻤다. 책의 말미에 있는(p.315) "서구의 담론만이 진짜인 양 행세하는 동안, 정작 우리 것은 기름때에 절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버린 물건이 되고 말았다. 이제 서여오가 그랬듯이 이 뭇사람이 버린 가운데서 그 그릇의 값어치를 알아보고 묵은 때를 벗겨낼 그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란 글처럼 우리는 보물을 저 깊숙이 묻어두고 밖에서만 그것을 찾아헤메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란 생각이 들었다. 어찌 보물 같은 글들이 연암의 글만 이겠는가? 우리 선조들이 남긴 글들이 두꺼운 먼지를 벗고 그 아름다운 빛을 발할 날이 오기를, 베스트셀러에 올라 사람들이 앞 다투어 읽으며 그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는 때가 오기를 빌어본다. 선조들의 옛글에 우리가 관심을 기울이고 아끼지 않으면 뉘라서 그리할 수 있을까? 봄 기운이 점차 완연해 지고 있다. 살랑이는 봄바람을 맞으며 우리 글 한 구절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여러분과 함께 하기를, 그리고 그 깊은 맛과 멋에 빠져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기를 기원한다.

[인상깊은구절]
귀에 대고 하는 말은 듣지를 말고, 절대 남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며 할 얘기라면 하지를 말 일이오. 남이 알까 염려하면서 어찌 말을 하고 어찌 듣는단 말이오. 이미 말을 해 놓고 다시금 경계한다면 이는 사람을 의심하는 것인데, 사람을 의심하면서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 하겠소.
h*****y 2001.03.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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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과의 유쾌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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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위대한 정신은 시간 속에서 빛이 바래지 않음을 알려준 이름...(p. 325) 단지 ,,의 작가로만 알고 있던 그를 만나게 해준 정민교수에게 감사한다. 그를 통역사로 두고 박지원과 대화하는 동안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몰랐다. 며칠 동안 잠잘 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박지원과의 헤어짐이 너무나 아쉬웠고, 대화를 마치고도 그 여운은 몸 안의 열기로 남아 이 겨울 찬바람이 오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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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위대한 정신은 시간 속에서 빛이 바래지 않음을 알려준 이름...(p. 325) 단지 <양반전>,<호질>,<열하일기>의 작가로만 알고 있던 그를 만나게 해준 정민교수에게 감사한다. 그를 통역사로 두고 박지원과 대화하는 동안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몰랐다. 며칠 동안 잠잘 시간이 돌아올 때마다 박지원과의 헤어짐이 너무나 아쉬웠고, 대화를 마치고도 그 여운은 몸 안의 열기로 남아 이 겨울 찬바람이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졌다. 공부하기 좋은 계절, 좋은 책 만나기 힘든 때 이와 함께 하는 것이 어떠할지...
2***e 2003.01.12.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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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글쓰기 미학- 정민, 『비슷한 것은 가짜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글쓰기 미학- 정민, 『비슷한 것은 가짜다』" 내용보기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글쓰기 미학- 정민, 『비슷한 것은 가짜다』       정민이 지은 『비슷한 것은 가짜다』(태학사, 2004)는 조선 후기 학자인 연암 박지원의 예술론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그가 쓴 산문을 비평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 책에서 지은이는 박지원이 지향했던 글쓰기의 지점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18세기 조선 사회는 임진-병자 양란(兩亂) 이후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글쓰기 미학- 정민, 『비슷한 것은 가짜다』" 내용보기

법고창신(法古創新)’의 글쓰기 미학

- 정민, 『비슷한 것은 가짜다』

 

 

 

정민이 지은 『비슷한 것은 가짜다』(태학사, 2004)는 조선 후기 학자인 연암 박지원의 예술론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그가 쓴 산문을 비평하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 책에서 지은이는 박지원이 지향했던 글쓰기의 지점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다. 18세기 조선 사회는 임진-병자 양란(兩亂) 이후로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지식인들 사이에서 깊이 있게 논의되던 시대이다. 박지원은 그 시대의 변방에 위치한 서얼 지식인들과 어울리며 성리학적 세계관으로는 표현되기 힘든 세계에 주목했다. ‘진경(眞景)’이라고 일컬어지는 당대의 새로운 예술관은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려는 지식인들의 변모와 맞닿아 있다. 첫 글인 이미지는 살아 있다, 코끼리의 기호학에 나타나는 대로 지은이는 하늘의 섭리는 없다.”(19)는 신념으로 새로운 조선을 꿈꾸던 박지원의 면모를 그가 쓴 산문을 중심으로 살피고 있는 셈이다.

 

하늘의 섭리는 없다.”는 문장에 담긴 지은이의 생각을 의미를 부정하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지은이는 다만 절대적 의미를 부정하고 있을 뿐이다. 절대적 의미는 변화를 부정한다. 한번 만들어진 진리는 어떤 경우에도 진리이다. 하지만 세상이 과연 그런가?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사물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사람들의 생각 또한 변한다. 그런데 기득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은 이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늘의 섭리를 빌미로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운명이라는 말로 합리화하려고 한다. 까마귀의 날갯빛에서 지은이는 아()에 집착하는 속인(俗人)을 이야기한다. 그는 사물로서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의 집착을 우선하여 사물을 재려 든다. 백로의 고결을 높이 치다 보니 까마귀의 더러움을 비웃는다.”(27) 백로는 왜 고결한가? 하얗게 때문이다. 까마귀는 왜 더러운가? 검기 때문이다.

 

검다는 것만 가지고 다시 살펴보자. 검은색에도 여러 가지 광이 깃들어 있다. 검다는 것이 환기하는 의미에는 어둡다, 시커멓다, 더럽다, 음험하다, 현묘하다, 마음씨가 나쁘다 등등의 다양한 층위가 있다. 까마귀가 더럽다고 할 수 있다면, 까마귀는 현묘하다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속인은 그럴 수가 없다. 다시 연암은 검다는 말을 흑, , , 등으로 분절한다. 검다고 사물을 다 비추지는 못한다. 옻칠만이 사물을 비출 수 있고, 수면의 검은() 빛만이 사물을 비출 수 있다. 검은 옷은 사물을 비추지 못하고, 어둠도 사물을 비추지는 못한다. 단지 검다는 말 속에도 뜻밖에 이렇듯 다양한 의미망이 존재하고 있다. ‘검다라는 단어를 선입견을 가지고 보지 말아라. 그 색에 현혹되지 말고, 그 빛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29)

 

하얀 걸 하얗다고 생각하고, 검은 걸 검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인 것은 아니다. “검은색에서 여러 가지 광이 깃들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닫힌 사고가 문제다. 검은색은 나쁜 색이라는 선입견으로 하얀 색을 보면 하얀 색은 당연히 좋은 색이 된다. 하얀 색이 원래 좋은 게 아니라 검은색의 반대편에 있기에 좋은 색이 되는 셈이다. 누가 이렇게 생각하는가? 인간이다. 인간이 하얀색과 검은색을 나누고, 그것을 백로와 까마귀에 적용한다. 백로가 이 말을 들으면 좋아할 것 같은가? 까마귀가 이 말을 들으면 싫어할 것 같은가?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생각이다. 백로는 하얗다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까마귀는 검다고 자기를 무시하지 않는다. 하야면 하얀 대로, 검으면 검은 대로 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자연을 산다. 인간만이 인위를 명분으로 그 자연을 자기 식대로 생각할 따름이다. 선입견을 부정적으로 사용하면 이만큼 무서운 것이다.

 

눈 뜬 장민이란 글에서 지은이는 박지원의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에 주목한다. 큰비에 물이 불어난 황하를 하룻밤에 아홉 번 건넌 이야기를 다룬 이 산문에서 박지원은 명심자冥心者신이목자信耳目者를 구분한다. ‘명심자란 속념을 끊어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이고, ‘신이목자는 제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감각만 인정하는 것을 가리킨다. 물이 불어난 황하는 낮에 건너면 말 그대로 공포의 대상이다. 거세게 소용돌이치는 물결을 보는 순간 감각에 눈이 먼 이들은 그만 기가 질려버린다. 밤이라고 다를까? 밤에는 귀가 문제가 된다. 황하의 거센 물결은 칠흑 같은 어둠에 묻히지만 거세게 흐르는 소리가 사람들의 공포를 한없이 자극한다. 낮에는 눈이 문제고 밤에는 귀가 문제다. 공포는 감각으로 전이되어 사람들의 몸을 굳어버리게 한다.

 

박지원은 이 상황에서 명심자를 생각한다. 소리와 빛깔의 작용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우선 그 감각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마음을 다스리지 않고 눈과 귀의 병통을 다스리기는 힘들다. 내 마음을 텅 비우면 그 소리조차 지워질 것인지를 시험해보겠다.”(57)고 지은이는 쓰고 있다. 하지만 이 일이 말처럼 쉽겠는가? 자신의 마음을 텅 비운다는 건 욕망을 내려놓는 일과 다르지 않다. 욕망을 내려놓는다고? 욕망을 내려놓은 채 우리가 과연 이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지은이는 눈 뜬 장님의 예시를 통해 분별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거듭 강조한다. 수십 년 만에 갑자기 눈을 뜬 장님이 있다. 눈을 뜨면 좋을 것 같지만 과연 좋기만 할까? 눈을 뜬 이 사람은 이제 집조차 찾아가지 못한다. 장님일 때는 쉽게 찾던 집을 눈을 뜨고는 찾아가지 못하는 게 말이 되는가 

 

자기 삶의 중심은 외물(外物)에 있지 않다. 외물은 우리 감각을 끊임없이 자극할 뿐이다. 외물로부터 오는 자극에 현혹되어 자기 삶을 이루는 기준으로 삼아버리면 오히려 나 자신을 잃게 된다. 공포에 빠진 채 황하의 거센 물결을 굽어보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라. 지은이는 자기 감각에 빠져 본질을 못 보는 이들을 서시의 찡그림을 흉내 내다가 온 마을 사람으로 하여금 대문을 닫아걸게 만들었던 동시의 이야기(64)에 연결 짓는다. 동시는 자기중심이 없는 인물이다. 서시라는 외물에 젖어 그녀는 서시를 흉내 내기에만 바쁘다. 자기를 잃은 채 외물에 종속된 동시와 자기를 잃은 채 황하의 공포에 빠진 사람들은 외물에 감각의 기준을 둔다는 데서 공통적이다.

 

우리의 글쓰기는 이러해야 하지 않을까? 겉모습은 하나도 같지 않은데 담긴 뜻은 조금도 차이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거꾸로만 간다. 옛사람의 정신은 저만치 놓아두고 겉모습만 그대로 본뜨려 한다. 그러니 겉모습이 같아지면 같아질수록 정신은 점점 더 달라만 진다. 옛사람과 비슷해지고 싶어서 옛사람을 흉내 냈는데, 그 결과는 옛사람과 오히려 멀어지고 말았다. 어디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여기서 연암은 다시 심사心似형사形似라는 두 개념을 이끌어낸다. 심사心似란 표현은 달라도 정신이 같은 것이고, 형사形似란 겉모습은 같지만 실질은 다른 것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외모는 꼭 같은데 사람은 영 딴판인 것이 형사이고, 겉모습은 전혀 다른데 마음가짐은 진실되이 바로 그 사람인 것은 심사이다. 형사는 결국 에 그치지만, 심사는 끝내 에 도달한다. (108)

 

새 것을 추구해서도 안 되고, 옛것을 따라가서도 안 된다면 어찌해야 할까? 이도 저도 안 된다면 아예 그만두는 것이 어떨까?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다소 심각해진 이 질문 앞에 연암은 비로소 처방을 슬며시 내놓는다. 그것은 법고이지변法古而知變, 창신이능전創新而能典이란 열 글자이다. 옛것을 본받으라고 하면 겉껍데기만을 흉내 내니 문제가 되고, 새 것을 만들라고 하면 듣도 보도 못한 가당치도 않은 황당한 말만 하고 있으니 문제가 된다. 그러니 옛것을 본받더라도 오늘에 맞게 변화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더라도 법도에서 어긋나지 않게 한다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이것은 결코 어정쩡한 중간항을 도출하여 적당히 타협하자는 비빔밥 문학론이 아니다. 실로 연암문학론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놓인다. (167)

 

박지원은 겉모습을 비슷하게 묘사한다고 해서 글쓰기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건 아니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처럼 비슷한 것은 가짜다.” 겉모습을 본뜨는 게 왜 가짜라는 것일까?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심사心似라는 말에 드러나듯 표현은 달라도 정신이 같은 것을 박지원은 중시한다. ‘심사와 대별되는 형사形似는 겉모습은 같지만 실질은 다른 것이다. 정신이나 실질을 핵심이라는 말로 풀어도 좋다. 겉모습을 치장하는 데만 매몰된 사람들은 자기 정신을 들여다볼 줄 모른다. 겉모습을 묘사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정신이 배제된 모방(=베끼기)은 글쓰기의 본질을 흐려버린다. 지은이는 문화가 경박해질수록 모동심이貌同心異의 저급한 모방만이 판을 친다.”(109~110)고 비판한다. 오래 살고 싶다고 80 먹은 노인의 섭양 방법을 그대로모방하면 어찌 될까? 그 결과 내가 얻은 것은 80 노인과 같이 오래도록 장수할 수 있는 건강이 아니라, 80 노인의 늙음뿐이었다.”(110)고 지은이는 이야기한다. 실질이 빠져버린 것이다.

 

심사형사의 구분은 새 것옛것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대목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박지원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을 중시했다. 옛것을 본받아 새 것을 창조한다는 의미이다. 정확히 말하면 옛것의 실질을 본받아 지금 이 세상에 맞는 새 것으로 창조한다는 의미가 이 말에는 숨어 있다. 옛것이라고 무조건 따르기만 하는 공리공론이나 명분론을 박지원은 철저히 비판했다. 지은이는 법고창신이라는 말의 핵심을 이라는 단어에서 찾고 있다. 『주역』에도 은 궁하면 변한다. 변하면 통하니, 통해야만 오래갈 수 있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가? 변화는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기준이 된다. ‘새 것은 자기 시대가 돌아가는 상황을 정확히 아는 사람만이 창조할 수 있다는 얘기다. 옛것과 새 것을 아우르는 변증법은 결국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을 실질로 바라볼 때만이 성립될 수 있음을 지은이는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에는 가난에 얽힌 당대 선비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안분지족安分知足이니 하는 관념을 말하려고 하는 게 아니다. 실제 가난이다. 무인 백동수처럼 서자로 태어난 운명때문에 무과에 합격하고도 평생 제 뜻을 펴지 못하고 가난에 쪼들린 지식인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조선 사회에 드리워진 신분의 그늘이 얼마나 짙은지 새삼 느낄 수 있다. 그래서일까, 박지원의 산문에는 가난한 친구들과 더불어 펼쳐낸 우정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이덕무, 백동수, 박제가, 김억, 홍대용 등등을 이야기하며 박지원은 가난을 넘어서는 선비들의 우정을 핍진하게 묘사한다. 백아와 종자기처럼 이들은 가난 속에서도 마음 깊이 정을 나누며 그 시대를 견뎠다. 박지원의 산문에 드러나는 따뜻함은 어찌 보면 이런 우정의 미학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o*****s 2018.01.28.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인생선배가 전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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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고 책을 모두 읽고 난 뒤에는 순간 멍하였다. 이게 과연 200년 전의 글인가 싶다. 200년전의 글이라고 전혀 못느끼게하는 세련됨, 신선함이 느껴진다. 사실 연암집 원문에 대해서는 한자 표현이 많아 이제 갓 대학생이 된 나에게는 읽기가 버거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저자 정민은 원문은 한차례 번역하고 그리고 해설을 해주었다. 이 덕분에 글을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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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고 책을 모두 읽고 난 뒤에는 순간 멍하였다. 이게 과연 200년 전의 글인가 싶다. 200년전의 글이라고 전혀 못느끼게하는 세련됨, 신선함이 느껴진다. 사실 연암집 원문에 대해서는 한자 표현이 많아 이제 갓 대학생이 된 나에게는 읽기가 버거운 내용이었다. 하지만 저자 정민은 원문은 한차례 번역하고 그리고 해설을 해주었다. 이 덕분에 글을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또한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표현들로 해설을 해주었다. 여기서 저자 정민의 뛰어남이 들어난다. 해설부분에서는 주관이 많이 개입될 소지가 있어 자칫하다가는 남들이 이해 못하는 부분으로 자기 논리를 전개해 나갈 수 있으다. 하지만 저자는 독자들과 대화라도 하듯이 해설을 써내려가 저자가 거부감 없이 읽도록 하였다.

  본문에는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접하는 소재로 이야기를 다룬다. 그래서 더욱 박지원의 위대함이 들어난다. 우리는 평소 쉽게 생각하는 것, 접하는 것들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판단을 하기 어렵다. 대체로 사회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생각도 그에 맞추는 것이 된다. 좀 벗어나는 이야기지만 책에 있는 내용이지만 글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야기를 해보자. 요즘의 대학진학률은 80%를 웃돈다. 과연 대학생 중에서 정말 학문의 탐구를 위해 대학을 진학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신의 꿈을 위해 대학을 진학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우리 사회는 대학진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즉 자신의 진정한 진로보다 눈에 보여 지는 소위 간판, 경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2~4년이란 추가적인 교육을 했음에도 사회에선 외면 받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요즘 문제에도 연암집에서 그 문제점 진단을 해볼 수 있다. 먼저 연암은 내실 쌓기의 중요성을 비석 새기기에 비유하면서 강조한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 죽어서 비석을 남긴다 해도 그 비석은 세월이 지나면서 비석에 새긴 이름, 글씨, 업적은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말 없어지지 않는 이름은 비석에 돌에 새길 수 없다. 이처럼 이름과 드러나는 것에 집착하는 것을 비판했다. 이것을 보고 스펙 기에 급급한 우리 대학생들의 현실을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정작 자기가 나아가야 하는 길을 망각하고 간판에 집착하고 연봉에 집착하는 우리들을 반성하게 한다. 또한 똑같은 문제에 대해 연암의 다른 의견을 찾아볼 수 있다. 연암은 획일화된 가치를 거부한다. 모든 것이 하나가 아닌데 어떻게 한가지로만 살 수 있을까. 세상을 한 가지 가치로 살아가는 것 어떻게 보면 현재의 우리가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추구하는 우리의 삶을 생각해볼 수 있다. 곰곰이 생각해 본다면 우리의 현실은 획일화되기 그지없는 것 같다. 좋은 직장이 최고라는 의식이 팽배하고, 그저 유행을 따라하기에 급급하다. 과연 이것들이 우리의 삶을 풍족하게 하고 가치 있게 만드는 행동들인가.

  평가보다 나의 말이 많아 진듯하다. 하지만 내가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은 연암의 글은 정말 군더더기 없이 꽉 찬 글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정민선생의 생각과 표현이 더해지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글을 옛글이지만 그 글에 담겨있는 생각은 과거 현재 미래를 통틀어 우리가 반드시 지녀야할 것이다. 그리고 옛글에서 우리에게 던지는 여러 생각들이 우리 삶의 문제점과 맞아 떨어지는 것을 보고 연암의 통찰력에 절로 탄성이 나오게 된다. 그 시대에만 집착하고 적용되는 생각이 절대 아니다. 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깊게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게 도와준다. 우리의 삶의 방향, 태도, 마음가짐 등 하나의 글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펼쳐진다. 우리는 고전을 왜 읽어야하는가. 주위에서 읽어야한다고만 들었을 뿐 그 위대함을 알지 못한다. 그저 옛날 글을 우리가 왜 읽어야하는 의문만 쌓이고 어려운 글 내용에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비슷한 것은 가짜다'라는 책을 통해 옛글에서 나오는 신선함을 느꼈고 질리지 않는 향기를 느낄 수 있다. 고전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통해 고전 읽기의 첫 발을 내딛는 것도 좋을 것이다. 끝으로 좋은 글을 써주신 저자 정민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드리고 싶다.

g*******n 2009.12.0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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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암 박지원의 세상 보는 법, 글 쓰는 법.
"연암 박지원의 세상 보는 법, 글 쓰는 법." 내용보기
정민 선생의 책을 읽고 있으면, 거푸 마신 단 커피에 시큼해진 입 속을 적당한 온도의 녹차로 행궈내는 듯한 상쾌함이 느껴진다. 정민 선생의 저작들의 형식은 늘 동일하다. 한자로 된 원작자의 본문이 있고, 그것을 일차적으로 번역을 하고, 그것을 한번 더 쉽게 풀이를 하고, 그 글 자체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코멘트를 단다. 한자 원문을 읽을 수 있다면 같은 글을 모두 네
"연암 박지원의 세상 보는 법, 글 쓰는 법." 내용보기

정민 선생의 책을 읽고 있으면, 거푸 마신 단 커피에 시큼해진 입 속을 적당한 온도의 녹차로 행궈내는 듯한 상쾌함이 느껴진다.
정민 선생의 저작들의 형식은 늘 동일하다. 한자로 된 원작자의 본문이 있고, 그것을 일차적으로 번역을 하고, 그것을 한번 더 쉽게 풀이를 하고, 그 글 자체에 대해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코멘트를 단다. 한자 원문을 읽을 수 있다면 같은 글을 모두 네 번 읽게 되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같은 내용을 세 번 반복해 읽게 되는 셈이다.

가볍게 나풀대는 텍스트의 홍수 속에서 사상은 찾아볼 수 없는 시대. 특히나 일제강점기 이후 사상이 부재하다는 비판을 받고있는 대한민국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 정민 교수님의 저작들은 1. 우리 선조들에게 이토록 훌륭한 사상이 있었구나 하는 자부심과, 2. 그런데 그것들이 모두 증발되고 나니 세상이 이토록 가볍고 어지럽구나 하는 아쉬움을 던져준다.
책의 많은 부분이 '글을 쓰는 법'에 대한 이야기들로 이루어지는데,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글을 쓰는 것이 아니고, 또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것을 옮기는 것도 아니고, 과거를 더듬는 것도 아닌, 그 너머의 '무엇'을 담아내야 한다는 것을 이런 저런 방법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글을 쓰는 사람들 뿐 아니라 인간이라면 한번씩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점검을 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책을 읽는 내내 생각을 했다. 그렇게 한다면 세상이 좀 더 풍요로와지고 너그러워지지 않겠는가 하고. 

정민 선생의 작업들은 좋은 읽을거리가 될 뿐 아니라, 여러가지 의미로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상과 철학이 없어 경쟁심과 작은 이익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한국 사회에 훌륭하나 세월에 묻혀버린 조상들의 사상과 철학들을 통해 온고지신 하는 기회를 주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작업이 없다면 TV 사극이나 국사책에서나 이름이나 겨우 들어볼 만한 인물들의 글과 사상을 어디서 이토록 세밀하고 정확하게 접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정민 선생의 글은 글 읽는 템포를 느리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원문이 여백과 느림의 미학을 아는 한학자들의 것이어서 그런 것인지 역자인 정민 선생의 호흡인지 구분할 수는 없지만 아무튼 그리 길지 않은 책을 참 오래도록 아끼고 아끼며 읽었다.

 

 

 

b***o 2008.11.09.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