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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불사의 몸을 추구한 것은 오랜 역사와 함께 한다. 영생을 향한 인간의 욕망이 그만큼 오래되었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생몰연도가 기록된 사람으로서 가장 오래산 사람은 프랑스의 잔 칼망이라는 사람으로 122년을 살았을 뿐이다. 그런 극소수의 특별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면 일부 사람들은 100세를 넘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100년을 살아내기도 빠듯하다. 그런데 앞으로는 영생을 꿈꾸는 인간의 삶이 전혀 허황되지만은 않다고 한다.
미국의 과학저술가인 이브 헤롤드는 과학자들이 융합기술이라 부르는 컴퓨터기술, 초소형 전자공학, 유전자치료, 나노기술, 로봇공학 등이 다양한 의학기술과 결합한다면 의학과 인간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들어설 것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트랜스휴머니즘의 현재와 미래’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에서 현재의 융합기술이 어느 단계까지 와있고, 오랜 숙원이었던 인간의 꿈이 실현될 때 어떤 문제들이 야기될지를 철학적, 종교적, 윤리적 차원에서 조망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지금도 현실에서 과학과 의학의 발전이 가져다준 많은 혜택을 입고 있다. 우리의 신체가 장애를 일으킬 경우 약물치료를 넘어 기계에 의존하는 것은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콘텍즈렌즈나 보청기, 인공관절은 이제 당연한 치료방법이 되었고 심장 혹은 신장질환에 인공장기를 사용하여 증상을 늦추거나 완화시키기도 한다. 아직은 완전하지 않기에 영구적으로 사용하지 못하거나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지만 과학의 발전은 조만간 이를 해결해 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기술들은 질병을 치료하는데 그치지 않고 인간의 능력을 강화시키는데 까지 나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저자는 이처럼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과학자와 의사는 물론 현재 출시된 첨단의료제품을 사용 중인 환자들을 만나 그들은 이러한 신기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심장질환이나 간질환에서부터 정신질환과 항노화산업에 이르기까지, 저자가 이 책에서 다루는 의학적 신기술은 인간의 신체와 정신 모두를 아우른다. 물론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는 환자에게는 인공장기나 신기술이 복음처럼 들려올 수도 있지만, 과학의 발전은 질병을 치료하는 인공장기에서 끝나지 않고 그녀가 트랜스휴머니즘이라 부르는 인간의 모든 능력을 강화시키는 인간강화를 넘어 수명까지도 관여하게 될 것이다. 결국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이는 개인의 삶이나 사회의 모습을 바꾸고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야기하게 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더군다나 이런 신기술들이 대부분 기업에 의해 개발되고 있으며, 이들의 목표는 새로운 기술을 최대한 빨리 상업화시키는 것이다. 기업이 신기술을 통해 이윤만을 추구할 때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 민주주의와 같이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들은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도덕적, 법적, 규제의 발전 속도는 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실이기에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들은 더욱 우려스럽기만 하다. 저자는 이러한 신기술로 인해 불평등한 세상이 오지 않을지, 기술에 의해 해방된 세상에서 살게 될지 아니면 기계에 종속된 존재가 될지, 그리고 궁극적으로 인간성을 지킬 수 있을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먼저, 분배정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현실에서 신기술은 결국 가진 자들에게는 영생을 약속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더욱이 인공장기가 신체장기보다 더 강력한 내구성과 성능으로 치료수준을 넘어 인간강화단계에 이르게 될 때 사회는 양분화 될 것이고 마치 우리가 공상과학영화나 소설에서 보는 것처럼 새로운 신분사회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무한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의 속성에 의해 인류의 미래가 규정 당한다는 것, 생각만 해도 아찔한 기분이 드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이미 그렇게 흘러가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거기에 인간의 수명까지 늘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지금의 의학이 장기적으로 건강수명을 연장시키는 것은 몇 년 단위가 아니라 몇 세기 단위가 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인간의 꿈은 항상 현실로 다가왔음을 생각할 때 지구라는 행성의 자원배분문제와 맞물려 사육되는 인간이 탄생하리라는 데까지 불편한 생각이 이어진다. 또 다른 문제는 지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인공지능과도 관계가 있다. 인공장치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기술은 무선 컴퓨터기술이다. 기계들이 딥러닝을 통해 스스로 진화할 때 과연 인간은 기술에 의해 해방된 세상을 살아갈지, 기계에 종속될 지 불분명하다. 이는 인공지능과 관련된 담론에서도 항상 등장하고 있음을 볼 때, 인공지능이 탑재된 인공장기나 치료에 이용하려는 나노로봇에서도 언제나 등장할 수 있는 문제점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들 문제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아마 인간의 본질에 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사이보그를 인간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기계라고 해야 할까? 나노기술을 이용한 최첨단 뇌-컴퓨터 인터페이스가 가능하다면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누구의 생각일까? 마인드 업로딩을 통해 영생을 추구하게 된다면 인간의 본질은 바뀌게 되는 걸까? 시간이 흘러 점점 많은 사람이 많은 장치를 이식받는다면 의사와 기사에게 전송되는 인간의 신체에 관한 수많은 정보들을 누가 소유하게 될까? 저자는 수많은 질문들을 쏟아낸다. 거기에 더하여 신체의 다른 부분이 수명을 다하였음에도 이식 장기가 계속 활동을 한다면 그 사람은 죽은 것일까? 산 것일까? 장기를 비활성화 시키기 위하여 스위치를 끈다면 언제, 누가 꺼야 하는가? 저자의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아무리 환상적인 기술이 나온다 해도 아직 우리사회는 가장 중요한 신체기능을 기계에 의존할 때 인간성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지 완전한 합의에 이르지 못했’음에도 ‘기술이 당장 삶을 더 쉽고 편하게 해주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어떤 대가를 치를지 고려하지 않은 채 받아들여진다는 점’이 문제라는 저자의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인간이 오래살고 싶어 하는 것, 질병에서 해방되고 싶어 하는 것, 그것 모두는 행복해지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미래에 그런 기술들로 인해 수명이 극적으로 늘어나고, 신체적 고통에서 벗어난다면 우리는 과연 행복할까? 누구는 그런 세상을 유토피아라 말할테고, 또 누구는 디스토피아라 말할 것이지만,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융합기술의 발전은 어느 한계점을 넘으면 변화가 기하급수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러한 변화가 이루어진 미래에 어떤 문제가 일어날지, 그리고 그 때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에 대해 상상력을 발휘하여 살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변화가 시작되고 나면 이미 늦기에 그전에 우리가 그 답을 찾아야 한다는 말과 같은 셈이다.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결국 인류의 진화마저 느려지고, 진화의 방향조차도 스스로 결정하게 될 트랜스휴머니즘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지 보다는 무엇이 되기를 원하느냐에 따라 규정될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지금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백신의 발견 등 빠른 의학적 대처가 필요함에도 그러지 못하는 시점이다. 이러한 시점에 아득히 멀어 보이기만 하는 미래의 신기술을 논한다는 것이 다소 어폐가 있어 보인다. 그럼에도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기에 융합기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그리고 신기술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임에는 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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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이란 제목을 들었을 때는 sf소설인줄 알았다. 아무도 죽지 않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진짜 이 책 속에 담긴 이야기는 인공장기, 로봇공학, 인공지능, 나노기술 등의 발전된 과학기술이 인간의 수명과 삶의 질을 늘려주게 될 미래가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지, 그리고 그것에 따라오는 문제점들을 철학적, 종교적, 윤리적 차원에서 살펴보는 내용이다. 소설이 아닌, 막연한 상상이 아닌, 진짜 우리가 가까운 시기에 만나게 될 미래. 나는 발전된 기술을 누릴 미래가 궁금하고 기대도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다소 두렵기도 한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ㅡㅡㅡ 책 속 내용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트랜스휴머니즘’이 뭘까 궁금해하는 사람을 위해 먼저 이야기하고 넘어가려한다. 나도 이 책에서 처음 접한 용어였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개선하려는 신념이나 운동을 뜻한다. 트랜스휴머니즘 사상가들은 생명과학과 신생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간이 인간의 장애, 고통, 질병, 노화, 죽음과 같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이들은 인류가 2050년경 나노 바이오 정보 인지(NBIC) 기술로 대표되는 첨단 기술들이 성공적으로 융합하는 시기인 '특이점'에 도달할 것이며, 그러면 인간 이후의 존재인 '포스트휴먼(posthuman)'이 등장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여기서 포스트휴먼은 '현존하는 인간을 근본적으로 넘어서 현재 인간 기준으로는 인간이라 부르기 애매모호한 존재'를 뜻한다.” (출처: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백과사전에 나오는 트랜스휴머니즘의 설명을 가져와보았다. 과학의 발전을 이용해 장애, 노화, 질병 등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을 말한다. 한마디로 이 책이 말하고 있는 내용들이 바로 트랜스휴머니즘이다. 그런데 2050년이면 30년 뒤의 일인데 벌써 그런 변화가 다가온다니… 생각보다 가까운 미래여서 놀라웠다.
ㅡㅡㅡ 이 책에서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의사, 과학자, 공학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아보고, 현재 출시되어 있는 첨단제품을 직접 사용 중인 환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또한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신체와 뇌를 인공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대를 맞아 과학자와 생명윤리학자들에게 어려운 질문들을 던질 것이다. 그 질문은 이렇다.
“우리는 인간성을 지킬 수 있을까요? 기적 같은 기술의 혜택을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누릴 수 있을까요? 아니면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세상에서 살게 될까요? 우리 후손들은 기술에 의해 해방된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요? 아니면 결국 우리를 더 건강하고, 더 똑똑하고, 더 젊고, 더 오래 살게 해주는 기계와 장치들에 봉사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까요?” (p. 22) ㅡㅡㅡ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우리가 두려워하는 죽음의 시간을 미루고 젊음을 오래 유지하는 것은 언뜻 보기에는 장밋빛 미래로 보인다. 그러나 그 안에는 다양한 문제들이 숨어있다. 저자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문제상황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면서, 읽는 이가 계속해서 바른 답을 찾도록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에 대한 정답은 없다. 그러나 가까운 미래에 우리에게 올 현실이며, 그것이 바꿔 놓을 우리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해 생각하고 함께 토론해 나간다면 우리의 후손들은 보다 긍정적이고 건강한 미래를 가지게 될 것이다.
ㅡㅡㅡ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인공지능 연구소 소장인 로드니 브룩스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 50년간 우리가 기계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다면, 새천년을 맞아 우리는 바야흐로 기계 자체가 되려는 순간을 맞고 있다.” 시력과 청력과 움직임과 기억력 장애를 겪는 사람에게 컴퓨터 칩과 전자 회로를 이식하여 기능을 회복시키려는 시도는 틀림없이 ‘정상적인’ 능력을 훨씬 넘는 수준까지 감각을 확장하고 기억력과 학습능력을 향상시키는 기술로 발전할 것이다. (p. 40)
자녀의 노화 유전자를 일부 억제하여 수명을 늘리고 건강을 개선하는 유전자치료가 개발된다면 어떤 부모가 마다하겠는가? 이런 식으로 ‘정상’과 ‘정상보다 좋은 것’의 경계는 이미 흐릿하다. 우리의 조직과 세포를 생명공학적으로 점점 쉽게 조작하게 된다면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p. 41)
‘그래도 되나?’ 싶은 영역의 발전들도 나의 개인적인 영역에 끌어와 생각해보면 ‘그래도 좋다’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된다. 사랑하는 이와 조금만 더 시간을 같이 보낼 수 있다면, 아이가 조금 더 건강하게 살 수만 있다면... 이런 바람들이 생겨나면 ‘정상’이 아니라 여겨졌던 것들도 ‘정상보다 더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ㅡㅡㅡ 그러나 이렇게 신체와 뇌를 포함하여 모든 것을 컴퓨터화하는데는 위험이 따른다. 사실 그것은 사생활과 자율성에 대한 전례없는 위험이 될 것이다. 우리 자신과 행동, 습관, 그리고 아마도 생각에 대한 모든 정보가 디지털화되어 어딘가 저장될 것이기 때문이다. (p. 42)
이미 오래 전부터 해킹으로 인해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일이 많았고 문제가 되어 왔다. 앞으로 나의 개인적인 정보가 데이터로 쌓일수록 더 많은 문제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얼마전 sns에 올린 개인적인 일상의 기록들이 유괴 및 강도 범죄에 이용될 수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특히 sns에 위치를 공유하거나 어디인지 알아볼 수 있는 사진들은 위험하다고 했다. 미래에는 이러한 문제들이 얼마나 해결되어 있을지, 내 개인적인 데이터들은 얼마나 안전할지 걱정이 된다.
ㅡㅡㅡ 저자는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심박동의 멈춤은 죽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인공심장 이식을 통해 원래의 내 심장을 제거하게 된다면 어떨까? 저자는 “타고난 심장을 몸에서 제거한다면 모든 면에서 정말로 ‘살아 있다고’할 수 있을까?” (p.60) 라는 질문을 던진다. 할 수만 있다면 인공 장기 이식을 통해 건강을 되찾고 사랑하는 이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었다. 과학, 의학의 발전을 이룩한 인류가 받아 마땅한 선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심장이 제거되어도 나는 살아있는 존재라고 할 수 있나’ 라는 물음에는 선뜻 답하기가 어렵다. 책을 읽어 나갈수록 당연한 선택이고 의심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이것이 정말 옳은 길인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ㅡㅡㅡ 설마시의 견해는 인공 이식장치와 생물학적 이식물을 뚜렷하게 구분한다는 점에서 매우 합리적이다. 인공 이식장치는 특정 조건에서 윤리적으로 작동을 중단시킬 수 있지만, 생물학적 이식물의 작동을 방해하는 것은 비윤리적이다. 하지만 왜 생물학적 이식물은 인공기술이 아니며, 전자식 이식장치는 인공기술인지가 모든 사람에게 명확하지는 않을 수 있다. 또한 그는 당장 죽어간다고 볼 수 없는 고령이나 영구적 장애를 지닌 환자가 단지 죽고 싶다는 이유로 이식장치의 비활성화를 요청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라는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p. 74~75)
인공 이식 장치를 중단할 수 있다면 생물학적 이식물은 왜 안되지? 그렇다. 기계식이 아니지만 생물학적 이식물도 원래 그 환자의 것은 아니잖아? 그리고 인공장기가 아니면 이미 죽었을 환자들이 먼 훗날 그저 죽고 싶어서 이식 장치를 비활성화해달라고 한다면? 이미 나의 일부가 아니니 비활성화해도 되는 걸까? 하나하나 질문들을 마주하고 겨우 답을 찾을까 싶으면 어김없이 또 다른 질문들이 쏟아져 나온다. 끝도 없는 질문에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다는 혼란스러움이 계속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새로운 생각 속에 빠지는 과정이 즐겁기도 했다. ㅡㅡㅡ
생명윤리학자들 중에는 유전적 강화를 허용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1) 유전적 강화가 질병을 치료하거나 결핍을 교정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작되고, (2) 그 뒤에 인공장기나 이식장치가 치료나 교정을 넘어 인간의 특성을 강화시키는 능력을 갖게 된다면 어떨까? 그때도 똑같이 생각할까? 이미 인류는 단지 미적 강화를 목적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형수술을 받고 있다. 성형 수술은 원래 사고나 질병으로 흉측하게 변형된 신체를 교정하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이제 외모를 향상시키는 방편으로 이용된다. 마찬가지로 애초에 기면발작을 치료할 목적으로 개발된 약물이 이제 군대에서 병사들의 각성 상태를 유지하고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데 사용된다. 그렇다면 다양한 질병과 장애를 치료하기 위해 현재 개발 중인 기술이 장차 ‘정상적인’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쓰일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p. 89)
질병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유전적 강화가 시작된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성형수술처럼 정상보다 더 나은 상태를 위해 사용될 것이다. 지금은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더라도 결국 우리가 맞이하게 될 미래일 것이다. ㅡㅡㅡ
인간세포가 들어 있고, 순환계와 연결되어 자연적으로 몸속에서 일어나는 과정(혈액의 조성이나 혈압조절 등)에 통합되는 장치를 ‘살아 있다’고 간주해야 할까? 이 장치는 ‘인간’일까? 이 장치를 통제하는 것은 환자인가 의사인가, 아니면 심지어 사회인가? 이식형 장치를 비활성화하거나 제거하면 얼마 안 있어 죽음을 맞게 된다고 해도 환자가 그렇게 할 권리가 있을까? 신장질환이 아니라 다른 질병으로 거의 삶의 끝에 도달해 끔찍하게 고통받는 환자라면 차라리 신부전으로 인해 비교적 평화로운 죽음을 원할 수도 있다. 이런 결정도 자살일까? 장치를 비활성화하거나 제거하는 데 의료인의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들의 행동은 안락사, 또는 심지어 살인으로 규정될까? 다시 강조하지만 현재 과학 수준은 이미 의료 윤리학과 사회적, 법적, 정치적 정책의 범위를 넘어섰다. 그리고 인공 신장은 생체 시스템과 순수한 인공기술 시스템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최초의 시도다. (p. 92~93)
책을 읽어 나갈수록 이미 엄청난 속도로 발전되어 있는 과학에 놀라워했고, 이런 발전이 가져올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준비는 매우 부족한 것을 느꼈다. 많은 이들이 한번쯤 고민해보아야 할 문제이고, 함께 답을 찾으며 대비해야 할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추천한다. 우리가 더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들,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 이 책 속에 담겨있다. ㅡㅡㅡ
미래의 뇌 기능 강화기술 중에서 심부 뇌자극은 가장 덜 급진적인 축에 속한다. 제임스 휴즈에 따르면 스펙트럼의 맨 끝에는 나노 기술을 이용한 최첨단 뇌-컴퓨터 인터페이스 BCI가 있다. 나노 로봇을 인간의 혈류 속으로 주사한다는 이론이다. 이 로봇은 얼마나 작은지 뇌혈류장벽도 쉽게 통과한다. 혈류를 타고 뇌에 도달한 로봇들은 아무 문제없이 뇌 속으로 들어가 개별 신경세포들과 외부 컴퓨터 사이에 연결망을 구축한다. 이렇게 되면 양방향으로 직접 정보를 교환할 수 있어 어떤 장치도 필요없이 직접 인터넷에 접속하고, 다른 사람의 뇌와 네트워크를 구성할 수 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벌집 뇌’가 등장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누구든 접속하여 진정한 집단의식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p. 193)
뭔가 끔찍하게 들린다. 악용된다면 나의 개인적인 기억들과 생각들은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이 공유될지도 모른다. 이보다 더한 사생활 침해는 없다. 예전에 즐겨보았던 영드 ‘닥터후’ 시리즈에 나왔던 ‘사이버맨’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감정이 없이 명령에만 따르는 기계로봇 외계인들인데, 인간들의 뇌에 연결해 그들에게 정보를 주입하는 방식으로 조종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동일한 정보를 주입하여 동일한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도록 만들었던 드라마 속 이야기가 그저 작가의 상상력이 아니라 이미 연구를 하고 있는 기술임을 알게 되어 놀라웠다. ㅡㅡㅡ
2005년에 출간된 저서 《특이점이 온다 ?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순간》에서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을 컴퓨터 기술이 아주 강력해져서 인간 뇌의 계산능력을 뛰어넘는 순간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2050년경 인간은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통해 죽음의 순간 뇌에 간직된 기억과 경험과 사고 패턴을 남김없이 슈퍼 컴퓨터에 다운로드할 능력을 갖게 된다고 전망했다. 마음과 성격을 고스란히 디지털화하고, 그 정보를 로봇이나 다른 사람의 몸에 이식함으로써 ‘영생’을 누리는 것이다. 하지만 임종의 순간 컴퓨터를 통해 복제한 뇌가 정말 실재했던 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죽지 않은 것처럼 의식의 연속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 그런 과정에서 누락되는 것은 없을까? 있다면 무엇일까? (p. 197~198)
내가 죽은 뒤 나의 성격과 기억을 업로드하여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이식한다면 그것을 이전의 ‘나’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을까? 사별의 슬픔을 대체하기 위해서 죽은 이의 정보를 그대로 로봇에게 옮겨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것은 어떨까. 이런 것들을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꼬리를 이어 의문이 이어진다.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들 중 슬픔이나 고통 같은 불쾌한 감정들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과연 바른 길일까. 물론 지금의 과학이 그런 방향으로 발전해왔기에 우리는 지금 이전보다 편안하고 안락하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미래에도 우리는 여전히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될지는 자꾸 의문이 들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너무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는 문제들인 것 같다. ㅡㅡㅡ
힐다 같은 로봇은 융합기술의 핵심이다. 인공지능, 무선통신, 기계공학, 언어학, 수학, 의료 영상기술, 신경과학, 심지어 심리학이 자연스럽게 통합되어야 가능하다. 그런 로봇은 보다 깊은 차원에서 기술의 혜택을 누리게 해줄 뿐 아니라, 마인드 업로딩이 정말로 가능해진다면 분명 자기 마음을 휴머노이드 로봇에게 이식하려는 사람들이 나올 것이다. 결국 미래에 로봇은 우리가 가장 기본적으로 관계를 맺는 대상이 될 것이다. 힐다는 미래의 기술처럼 보이지만, 이런 로봇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기술이 이미 존재하거나 개발중이다. 수많은 로봇공학자와 인공지능 전문가, 그리고 빌 게이츠까지 우리가 현재 1980년대의 퍼스널 컴퓨터 혁명에 버금가는 퍼스널 로봇 혁명의 문턱에 서 있다고 입을 모은다. (p. 274)
ㅡㅡㅡ 우리 앞에 수많은 질문이 놓여있다. 여정을 계속하여 인간강화라는 영역에 훨씬 깊숙이 발을 들이기까지 이 질문 중 어느 한가지도 제대로 답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이냐는 질문에 모두가 수긍할 만한 답에 도달한 사람은 아직 아무도 없다. 답은 계속 변하며, 미래에도 여전히 변할 것이다. 결국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는지보다 앞으로 무엇이 되기를 원하느냐에 의해 규정될지도 모른다. 철학자와 과학자들은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겠지만, 어쩌면 우리는 훨씬 앞선 존재가 된 후에야 백미러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p. 337~338) ㅡㅡㅡ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은 우리에게 건강한 삶을 선물해 줄 과학의 발전이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 알고 싶은 사람에게, 과학의 발전이 가져올 미래의 변화된 모습이 궁금한 사람에게, 인공적인 도움으로 건강한 삶을 얻게 될 미래의 인류가 맞이하는 문제들에 대해 철학적, 종교적, 윤리적 차원에서 생각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만나게 될 변화에 우리는 대비가 필요하고 그런 점에서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고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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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처럼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으로 인테넷뉴스를 읽는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 어느날 나의 눈길을 끈 기사가 있었다. '인도의 구세주 동생'이란 뉴스였는데 여기서 '구세주 동생'이란 선척적 장애나 질병을 앓는 형제자매를 위해 태어난 맞춤형 아이를 뜻한다. 이 사건이 윤리적인 논란에 휘말리게 된 이유가 구세주동생의 출생을 위해 행해진 '수태전 유전자 검사'가 원인이라 할수있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현존하는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거나 건강한 삶을 위해 태어난 혹은 만들어진 또하나의 생명체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본다면 과연 이는 윤리적인가 그렇지 아니한가? 만약에 이런 기술이 상용화되어 앞으로 임신전 원하는 유전자의 인위적인 조합으로 아이를 출생시키는 것이 만연화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과연 어떤 날들이 펼쳐질것인가? 과연 좋은점만 있을것인가 상상할수없이 나쁜점이 존재할것인가? 그건 그누구도 모를일이다. 이사건을 보고 한 언론인은 '판도라의 상자를 연것과 같다'고 말했듯이 자연적이고 절대적인 신의 영역이라고만 여겨졌던 인간의 생로병사에 인위적인 요인을 가할수 있게 되어버린 의학기술의 발전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큰 행운과 같은 밝은 모습과 함께 그 뒤에 감춰져있는 두렵고 공포스런 그림자가 공존하리라 생각된다. 흥미로울듯하여 구입해두고 한동안 책상위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이란 책이 앞에서 언급한 뉴스거리와 비슷한 내용을 다루고 있을듯 하여 그날밤 첫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 이책에서 주로 다루는 이야기는 아프지 않고 노화하지 않고 건강하고 오래토록 살기위해 행해지는 혹은 미래에 행할수 있는 나노기술, 로봇기술, 인공지능, 인공장기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영화속에서만 만날수 있었던 상상속의 이야기들이 먼 훗날의 일들이 아닌 바로 지금 이순간에도 끊임없이 개발되고 있고 또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목차를 살펴보면 1장 인간과 기술이 합쳐질때 2장 원래 심장보다 더 좋아요 3장 콩팥, 폐, 간질환을 정복하라 4장 당뇨병이라고요? 여기 앱이 있습니다 5장 미군을 주목하라 6장 보다나은 뇌를 만들기 위해 7장 늙지 않는 사회 8장 사회적 로봇의 시재 9장 트랜스휴머니즘을 넘어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 능력을 강화시킨 첨단기술들 예를들면 컴퓨터기술, 초소형 전자공학, 기계공학, 유전자치료, 인지과학, 나노기술, 세포치료, 로봇공학등이 결합된 여러 의학기술을 조합하는 분야를 융합기술이라고 한다. 인공장기와 주요 신체부위의 인공 대체물, 뇌기능을 강화시키는 신경이식술, 질병을 치료하고 노화를 되돌리는 나노로봇, 인체와 기계의 직접적인 결합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의 건강이 극적으로 향상되는 동시에 '인간'과 '기계'사이의 경계는 점차 흐려질것이라 말한다. 현재 심장, 콩팥, 춰장, 폐, 망막, 그리고 뇌의 일부까지 다양한 인공장기가 이미 사용중이거나 개발되고 있기에 멀지않은 미래에 많은 사람들이 그 혜택을 누릴것이라 기대한다. 이런 추세로 가다보면 정말 우리의 운명은 다시말해 죽음은 자연적인 노화나 질병의 손에 달렸기 때문에 언제 닥칠지 모르는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손에 달린 시대가 올것이라 생각되는데 과연 그렇다면 우리의 죽음은 어떻게 무엇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는가.. 미래 인공장기들의 전원 스위치는 언제 누가 왜 내려야하는가.과연 내릴순있을까.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되뇌인다. . 기술에 대해 느끼는 가장 깊은 차원의 공포는 공리적 차원과 전혀 다른 이유에서 유래한다. 그것은 생명공학에 의해 어떤 의미로 인간성을 궁극적으로 상실할 것이라는 공포다. 역사를 통틀어 인간 조건에 일어난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마음속 깊숙이 품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을 잃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다. 더 고약한것은 소중히 여기던 뭔가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조차 모른채 이런 변화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우리는 경계선이 희미해졌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채, 부지불식간에 인간의 역사와 포스트휴먼의 역사를 가르는 거대한 분수령 저쪽에 서 있게 될지도 모른다. 본질이 무엇인지 볼 수 있는 능력을 이미 상실했기 때문이다. P.110 의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전을 희망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반면 고통이 삶의 핵심적인 요소로 도덕적, 영적으로 성숙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또한 존재하기에 삶의 연장을 무조건적이고 소극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리라 여겨진다. 이부분에서 연상되는 영화가 떠오르는데 '아일랜드'이다. 이영화에서 주목해볼만한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보자면 인간의 건강하고 더나은 삶을 위해 만든 복제인간의 탄생이다. 다만 복제인간을 만들수 있는 사람들은 부유층들인데 고칠수없는 질병이나 임신을 위해 복제인간을 만들고 원래인간이 아프거나 수명을 다하게 될때 복제인간의 장기를 떼어다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방식이다. 여기에서 비윤리적인 요소가 존재하는데 복제인간또한 건강한 삶을 위해 필요한 도구적인 존재가 아닌 생각하고 살고싶고 행복하고 싶어하는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는 점인데 과연 복제인간의 생명을 똑같은 인간이 좌지우지할 권리가 있을까 생각해볼수있는 영화였기에 떠올랐다. 단지 자신의 건강만을 위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할수있는 최선의 방법들을 총동원해 최상의 조건을 찾아내느라 또다른 인간의 생명을 헤치는지도 모를정도로 윤리적인 측면에서 너무 멀리 와버리는 실수를 범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살펴볼수 있었다. 삶의 연장에 있어서 건강한 신체와 더불어 요구되는것은 건강한 뇌일것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린사람이 인공장기들의 도움으로 100세 200세까지 산다는 상상만으로도 아찔하지 아니한가. 하지만 뇌의 기능향상을 위해 만든 치료법이 알츠하이머나 인지기능저하로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환자들을 완치시키는 수단뿐만이 아니라 거기서 벗어나 정상적인 일반인들조차 이용하려하는 경우를 떠올리며 생명윤리학자들이 지적하는 바이다. 그렇기에 '치료'인지 '강화'인지 그 중간쯤에 위치하는 경계를 찾으려해도 명확하게 구분할수 없는 이식장치나 시술을 규제할필요가 있다고 보고있다. 이밖에도 따라오는 많은 문제점을 살펴보면서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되리라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늙지 않기를 바라는 이상론자들이 합리화라는 동화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다. 반드시 수명연장 같은 것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우리에게 좋을것이라고 믿는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는 오래 산다고해서 꼭 좋을 것이라고 믿을 이유를 전혀 찾을수 없으며, 추측컨대 누구도 그런 증거를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그저 믿음, 그것도 맹신에 불과하다."p.262 융합기술로 인한 미래사회는 다민족뿐만 아니라 상상할수 없는 다양한형태의 생명, 예를들어 생물학적 인간과 유전공학적으로 변형된 인간, 안드로이드, 그리고 인간과 기계 사이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이 공존할수도 있으리라 짐작해보며 그런 존재들의 탄생에 있어 어디까지를 인간으로 인정할것이냐는 기준의 확립또한 요구될것이라 제시한다. 이부분을 읽으며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써로게이트'라는 영화이다. 이영화에서 중점적으로 살펴볼 내용은 과거 장애인이나 신체적으로 활동하기 불편한 이들을 위해서 써로게이트라는 인공의체를 개발한다. 이는 뇌파로 의체를 조종하는 방식으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고자 환자들을 위해 개발하였으나 머지않아 일반인들이 하나둘 남용하게 되어 결국 사회를 영위하는건 인간이 아닌 써로게이트가 되어버리는 어처구니없는세상이 초래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영화를 통해 언제나 건강하고 아름다운 외면을 바라며 이쁘고 멋진 써로게이트가 정작 자신인냥 착각에 빠져 살면서 원래의 자신의 모습을 거부하고 버린채 거짓된 삶을 사는 인간의 이기적이고 안타까우면서 어리석은 욕심을 만나볼수 있다.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윤리적인 로봇을 만들 수 있느냐는 문제와 씨름하는 동안 우리 인간은 점점 더 로봇과 기술에 의존하게 된다는 문제를 붙들고 고심할 것이다. 로봇에게 점점 더 의존하게되면서 잃어버리게 될 가장 중요한 기술은 사회성일 것이다. 중략... 어쩌면 현재는 인류 역사상 마지막으로 의존성이라는 눈가리개를 쓰지 않은 상태에서 로봇의 사용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평가할 기회인지도 모른다. 로봇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들까, 아니면 우리를 몰락시킬까? 내가 어렸을때만 해도 로봇은 만회나 영화에서나 만날수있는 추상적으로 상상의 존재였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집에서 쉴새없이 부르는 그이름 '지니'와 '빅스비'가 산다. 언젠가부터 내가 외출중 청소해주는 로봇이 공존한다. 왠만한 가전제품은 말못하는 아이를 찾기 어려울지경이다. 만날수 없을것 같던 그 미래가 어느덧 내 일상에 함께하고 있자. 경계구분없이 조금씩조금씩 그저 나의 편의만을 추구하며 살다보니 그안에 로봇이 자기영역을 넓히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의아하기도 한 반면에 무섭기까지 하다. 트랜스휴머니즘은 혁명적이지만 요란한 팡파르를 울리지 않는다. 중랙. 트랜스휴머니스트를 자처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여기 속하는 기술은 무병장수, 넘치는 활력, 아름다움 등 예로부터 인류가 공통적으로 열망해온 것들을 일깨운다. 트랜스휴머니즘이 의학적 치료라는 형태로 삶에 들어오는 한 추세는 역적될 것 같지 않다. 널리 사용되는 인공장기, 심박동조율기, 의학적 보조장치와 정신작용제를 통해 무의식 중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고통과 치유, 장애와 정상적인 능력, 삶과 죽음을 의식적으로 선택한다. 하지만 그 선택과 함께 인간강화와 수명연장이라는 옵션이 하나의 패키지로 딸려오는 것이다. P.308 이책은 결국 트랜스휴머니즘의 도래하는 미래에 대비해 우리 인간이 지녀야할 마음가짐과 윤리와 비윤리, 인간성과 비인간성, 치료와 강화 등등 명확한 기준의 확립이 필요하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과연 인간의 본질은 건들지 않은채 더 건강하게 더 세지게 더 똑똑하게 더 오래 살려는 인류의 욕심을 어떻게 충족시켜야 하느냐를 생각해보는것이 우리의 과제가 아닌가싶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인간의 본질은 또한 무엇이냐에 대한 뚜렷하고 명확한 정의가 우선시되어야할것이라 여겨진다. 가랑비에 옷젖는줄 모른다는 옛말이 있듯이 그저 우리가 원하는 인간강화에만 중점을 둔채 조금씩 조금씩 받아들이고 변화시키는데에만 급급한다 보면 머지않아 우리 인류는 지금의 인간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또하나의 새로운 종으로 변모한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멸망은 인류의 욕심이 불러낸 인류 최대의 참사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이 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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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자마자 제일 먼저 떠오르는 2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장수 마을을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그 다큐멘터리를 계속 찾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대충 내용은 이렇다. 다큐 속 장수 마을의 한 할머니의 나이는 여든을 훌쩍 넘어 아흔이 되어 가는 나이셨던 걸로 기억한다. 그 할머니는 장수 마을에서 막내뻘에 속했다. 그 할머니는 몸에 좋다는 음식이며 영양제 심지어 영양 주사나 링거까지 정말 열심히도 직접 챙겨 맞곤 하셨다. PD가 그 이유를 묻자 "세상이 점점 좋아지는데,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그런거 다 누려보고 가야지."라고 말씀 하셨다. 그렇게 당차게 말하실 만큼 정정하시고, 활동적이셨다. 그런데, 다음 회차에서 장례식 장면이 나온다. 바로 그 할머니의 장례식이었다. 동네 친구 같은 어르신들은 조의금으로 주머니에서 꼬깃 꼬깃한 천원짜리, 오천원짜리 꺼내들고 찾아간다. 어찌나 허무하던지 인간의 생명과 관련된 과학기술의 진보와 관련된 소식을 들을 때 마다 다큐 속 그 할머니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할머니가 지금 살아계셔서 이 책 속에서 소개되는 발전된 기술의 내용을 전해 들으신다면 어떠한 반응을 떠올릴까? 책을 보며 떠올렸던 또 다른 하나는 영생과 죽음을 다룬 SF소설이다. 일본 작가 야마다 무네키의 소설 '백년법'이다. 불노화 기술인 ‘HAVI’가 도입되며, 늙지도 죽지도 않으며, 영원한 젊음을 얻게 되지만, 그로 인해 인구 포화로 문제가 생기자 불로화 시술을 받은 사람은 100년 후 죽어야 하는 생존제한법 이른바 '백년법'으로 강요된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을 맞이하고 그 법 시행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소설은 그 법을 받아 들여 죽음을 맞이하는 일반인과 총리 역시 백년법 대상에 가까워진 시점에서 만약에 공석이 될 경우를 두고 벌어질 신경전과 정치권의 싸움, 시술을 받은 자의 부작용으로 발생하는 문제 그리고 시술을 받은 자와 받지 않은 자와의 문제 등 다양한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 있는 소설이었다. 그런데, 그 소설이 마치 현실화 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을 뒷받침이라도 해주는 양 이 책에서 저자는 인간의 수명과 관련된 모든 것을 현재 개발 중이거나 이미 개발이 완료되어 승인을 기다리고 있거나 승인을 마쳐 상용화를 기다리고 있는 다양한 의료 기술들을 기본 베이스로 하여 그 것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철학적, 종교적, 윤리적 차원에서 조목 조목 짚어낸다. 그 중 저자가 가장 비중을 두는 것은 인간의 죽음과 관련하여 인간의 삶을 종결하는 시점의 의사결정권자와 윤리적 문제이다. 책 초반에 가상의 사례 1건과 실제 사례 2건이 등장한다. 30대처럼 보이는 미래인간 빅터의 실제 나이는 250살이다. 그는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 정도로 활기가 넘친다. 50대와 60대에 심장병을 심하게 앓았고, 150 살에는 당뇨병도 걸렸었다. 심지어 사고로 한쪽 팔도 잃었었다. 그런데, 알려주지 않으면 그런 일이 있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우환이 생길때마다 인공심장, 인공췌장, 인공팔을 이식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수명이 다한 눈은 망막 세포를 컴퓨터 칩으로 교체해서 안경이 필요 없다. 그리고 뇌 속 신경을 이식 받아 뇌 기능을 강화했기 때문에 기억을 저장해두고 언제든 다운로드 받는 것이 가능하다. 게다가 나노 로봇이 몸속 구석 구석 돌아다니며 노화되거나 손상된 세포들을 즉시 수리하고, 오류가 생긴 DNA를 복구하거나 제거하기 때문에 암에 걸릴일도 없어 빅터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다. 좋게 말하면 정말 환상적일 정도이다. 특히 나노로봇의 경우는 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로봇과도 같은 이 인조인간을 도대체 순수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빅터는 원래 아내와 함께 인공적 생의학기술을 거부하고 자연스러운 삶과 죽음을 옹호하던 이었다. 그렇지만, 죽음 앞에서 새로운 생명의 탄생(손자의 탄생)을 보며 자기도 모르는 마음 속 깊은 곳의 진심을 깨닫게 되고, 결국엔 인공의 힘을 빌려 250살이라는 나이가 되기에 이르고, 수 차례의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며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이번엔 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 4명의 아이를 두고 있는 40세의 스테이시는 심부전 말기이다. 어쩌면 혼자라면 삶의 끈을 놓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이 넷을 두고 갈 수는 없다. 그저 독감 증상이라고만 생각하다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된다. 스테이시가 살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심장 이식이지만, 시간 내에 이식 받을 심장을 찾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나마 있는 대안은 완전인공심장 TAH를 이식 받는 방법이다. 영구적 해결책은 아니지만 FDA의 승인이 난 상태라 선택의 여지가 없다. 다행히 수술을 무사히 마쳤고, 그 덕분에 주위 장기들이 기능까지 향상되었다. 문제는 구동기였다. 튜부 가 복부를 뚫고 나와 튜부와 연결된 6kg가 넘는 구동기를 항상 백팩에 넣고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쩄든 인공심장 때문에 이전보다 건강한 상태가 되었지만, 사회 생활에서 문제가 생기고 있다는 점이다. 회복이 안정기로 접어들자 남편가 함께 늘 다니던 교회에 갔던 스테이시는 인공심장 때문에 더 이상 교회에 나오지 말아 달라는 말을 듣게 된다. 몸에서 만약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거부반응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64세의 프랭크는 말기신장질환자였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었는데, 이들은 유전학적으로 말기신장질환이 발생할 가능성이 4배나 높다고 한다. 그에게 신장질환은 40대 후반부터 찾아왔다. 처음부터 통증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미 가족력이 있었던지라 심적으로 안정하는 것 부터 어려웠다. 더 힘든 것은 생검을 받아도 원인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다 이식 대기자 명단에 올려 순서를 기다리며 투석을 받기 시작한다. 생체장기 이식의 경우 대게 그렇듯이 뇌사자의 장기를 기다리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렇기에 기다리다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질 수 밖에 없다. 그나마 다행인 건 심장과 달리 신장, 간 등은 생존자에게서도 기증을 받아 이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그렇기 때문에 친구를 위해, 부모를 위해서와 같은 아름다운 이야기 보다는 장기 밀매 같은 흉악한 소식을 더 많이 듣게 된다는 점이다. 생체장기 자체의 확보가 워낙 어렵다 보니 불법임에도 의사들의 묵인하에 암묵적으로 여전히 이루어 지고 있다는 점이다. 프랭크는 결국 의사의 경우로 인공신장을 선택한다. … … … … … … … … … … … … … … 이렇게 사례 자체만 보면 나처럼 시작에서 언급한 2가지 사례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당연히 떠올릴 수 밖에 없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책 속의 내용들은 보다 현실적이고 보다 구체적이다. 그리고 단순히 의학적 부분에서 만이 아닌 경제와 문화적 관점에서도 접근한다. 책은 크게 인공장기(인공심장, 인공폐, 인공신장 등), 줄기세포, 로봇 등의 기술과 활용 상황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수 많은 문제점을 제기하고, 이러한 의학적인 기술의 연구와 미군의 연구를 통해 민간에게 상용화 되는 과정을 말해주고, 종합적으로 트랜스 휴머니즘에 대해 정리하는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앞서 언급했지만, 저자는 특히 인공장기를 이식 받은 환자의 장기 비활성화 문제 다시 말해, 사람의 종기(사망 시점)을 어떻게 그리고 누가 결정할 것이냐는 문제를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일반적으로 예상하고 있는 그 이유가 맞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질문을 보며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고, 저자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환자는 전문가인 의사가 대신 말해주기를 바라고, 의사는 환자가 먼저 말을 꺼내길 기다린다.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환자를 살리는 것이 그들의 존재하는 목적이기도 하고, 법적으로는 안락사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인공장기 제조사의 담당자가 장치를 비활성화하는 방법인데, 저자에 의하면 미국의 주요 제조사 3곳 중 한 곳에서는 자신들의 개입할 문제가 아니라고 못 박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가족에게 선택을 미루는 것도 문제이다. 결국은 책임지기 싫어 서로 회피하고 있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인데, 저자는 여기서 하나를 더 이야기 한다. 가장 중요한 이 것에 대해 환자와 의사간 서로 상의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저자는 '의사와 환자, 가족 사이에 침묵의 공모가 이루어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번에는 인공장기의 문제를 의학적 관점이 아닌 경제적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 생체장기의 경우 기증을 기다리기 어려운 것은 뇌사자의 수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사자의 신체 훼손을 거부함으로써 수 명의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인공장기가 상용화된다는 것은 한 시가 급한 이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인공장기가 다양화되고 상용화된다는 것은 부익부 빈익빈을 더 가속화되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미군에서 개발 중인 168시간(일주일)동안 자지 않아도 버틸 수 있는 약물 개발이 성공해서 상용화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민간인이라면 그 약을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사람을 시험을 앞둔 수험생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고, 며칠 씩 철야가 필요한 직업의 종사자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 사례를 보며 오히려, 부정적인 측면을 더 생각하게 된다. 상하관계가 분명한 군에서라면 자지 않고 훈련하거나 버티는 것을 강요하게 될 것이고, 연구실이나 직장에서라면 만약에 악덕 고용주라도 만났다고 생각해보자. 억지로 그 약의 섭취를 강요받고, 약을 남용하며 혹사 당하는 일이 반드시 생길거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된다. 게다가 뇌를 컨트롤 하는 뇌 이식 장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뇌 이식장치를 통해 쏟아지는 데이터의 소유 문제부터 해커의 공격이나 범죄자에 의해 밀거래 되거나 적국에 의해 조작 되거는 문제를 떠올릴 수도 있지만, 앞서 말한 잠들지 않는 약물에서 말한 것 처럼 고용주에 의해 뇌 이식 장치도 컨트롤 될 수도 있는 가능성 또한 부인할 수 없다. 너무 멀리 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경제적 이익의 문제와 연결된다면 충분히 발생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부분은 인간의 영생에 관한 부분보다는 이러한 기술과 파생되는 문제를 연구하는 기관과 투자기관에 대한 부분이었다. 한 예로 미국이 신장 프로젝트에 투자한 기관 중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와 미 국방부(DoD)가 있었다. 이를 두고 연구비 지원 기관이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은 융합기술이 삶의 거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확실히 당장 눈 앞의 결과 보다는 좀 더 멀리 내다보고 있음을 알 수 있어 한 편으로는 그런 인식을 갖고 있다는 부분이 정말 부럽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이와 관련된 융합기술에 대한 NBIC 보고서를 인용하며 융합기술이 가능하기 위해선 과학자, 엔지니어, 학계 전반에 걸친 연구기관들, 정부, 각종 전문학회, 언론까지 전 영역의 전문가들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이 연구와 관련하여 '미군의 연구에 주목하라'고 강조하며 해당 주제를 별도로 두고 있다. 굳이 따져보지 않아도 우리가 실 생활에서 사용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전신이 군에서 시작되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미군이 단순 군사목적이 아닌 의료 영역의 기술을 전투 무기와 슈퍼 군인을 개발하는데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이고, 투자 대비 효과도 상당하다는 점이다. 미군에는 TATRC라는 원격의료 및 첨단기술 연구센터를 별도로 두고 있는데, 군 관련 기관만 아니라면 그곳에 직접 가서 수학하고 싶을 만큼 이상적인 곳이었다. 그 곳의 한 박사에 의하면 "생물학자가 엔지니어처럼 생각하고, 임상의사가 물리학자처럼 생각하고, 수학적 모델을 구상하는 사람이 생물학자처럼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것이 목적이다."라고 했다. 처음엔 할 일이 늘어난다고 무관심에 수동적이던 연구진들이 한 번 회의에 참석하고 나면 먼저 다음 회의가 언제냐고 묻는 다고 한다. 그런 과정에서 수천가지의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그 과정이나 결과물을 보고 콧방귀를 끼는 언론인도 있었지만, 실제로 상용화되어 유용하게 쓰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천조국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국방에 예산을 많이 투자하는 나라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하면 부러우면서도 씁쓸한 현실이다. 이러한 기술들은 결국 인간이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물론 그 혜택을 보는 이들도 분명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로 인해 생겨날 문제점이 끝도 없이 보인다. 마치 삶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범죄 상황을 단정하여 법률 조문으로 만들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이전에 공부하며 본 교재와 논문 중에 인공지능 로봇과 관련하여 '인격권'부여와 관련된 논의를 하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이 책에서는 그 보다 더 깊은 질문들은 하지만, 아직 '인격권' 부여를 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인 상황이다. 이 책 역시 그에 대한 명확한 답안이 제시된 책이 아닌 관련 문제들에 대한 문제제기와 질문을 끝없이 쏟아내 다양한 측면에서의 문제를 제시해 주는 책이다. 그런 면에서 '융합'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자라면, 그리고 그와 관련해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주제를 찾아다니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 책을 꼭 한 번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마도 나처럼 저자의 질문들을 읽으며 그 질문들 속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새로운 파생된 질문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대안 없이 질문을 마구 쏟아내는 책이 눈이 말똥말똥해질만큼 재밌었던 건 처음인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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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에서 특이점을 컴퓨터 기술이 강력해져서 인간 뇌의 계산 능력을 뛰어넘은 순간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이는 유전공학과 나노기술, 로봇공학의 빠른 발전이 가능하게 할 것이며, 이 지점에서 로봇과 융합된 새로운 인간이 출현해 신체적 능력 뿐만 아니라 지적으로도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다는 것이다.
저자 이브 해롤드. 미국 한 TV매체와의 인터뷰 모습
빅터의 이야기는 공상과학소설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그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능력을 강화시킨 첨단 기술은 모두 현재 개발 중이다. 이런 기술은 장차 근본적인 차원에서 건강을 개선하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수명을 연장시킬 것이다. 컴퓨터 기술, 초소형 전자공학, 기계공학, 유전자치료, 인지과학, 나노 기술, 세포 치료, 로봇공학 등을 결합된 다양한 의학기술을 적절히 조합하는 분야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매우 빨리 발달하고 있다. - 21쪽
트랜스휴머니즘, 새로운 인류의 탄생
저자가 묘사한 빅터의 모습은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의 대표적인 본보기다. 트랜스휴머니즘이란 융합기술이나 특수 장비를 이용하여 인간이 원래 가진 능력을 초월하는 것을 말한다. 1957년 생물학자 줄리언 헉슬리(올더스 헉슬리의 형)가 이 용어를 맨 먼저 사용했다.
‘당뇨병 비서’ 앱은 스마트 기기와 연동돼 혈당 관리를 손쉽게 할 수 있다
위장운동 조율기와 뇌박동 조율기도 개발 중에 있다. 위장운동 조율기는 위경련이나 위마비 환자에게 조율기를 체내에 이식한 후 전극을 통해 자극을 보낸다. 뇌박동 조율기는 치매 환자와 외상성 뇌 손상을 입은 사람들에게 심부 뇌전극을 심어 병변의 진행을 늦추거나 새로운 뉴런을 활성화시킨다. 나아가 나노 로봇을 이용해 뇌신경세포와 외부 컴퓨터를 연결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또한 전자건강기록이나 웨어러블 기기에서 수집한 수많은 정보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관한 것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줄기배아세포나 DNA 조작, 복제 등 인간의 생체를 다루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깊이 관련돼 있다. 안락사에 대한 논의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이제 수십 년간의 교착상태를 넘어 인간강화에 대한 논의를 새로운 차원으로 진전시킬 시점이다. 혁신적인 융합기술이 속속 등장하면서 이제 과학은 신을 들먹이며 쓸모없는 음풍농월에 빠진 사람들을 저만치 추월해간다. 트랜스휴머니즘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이고 의식적으로 통제하력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근본적인 차원에서 의무를 도외시하는 셈이다. 인류가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야 할지, 모든 것을 우연에 맡겨두어야 할지에 관해 의미없는 논쟁을 계속한다고 해서 시급히 해결해야 할 사회적 및 윤리적 문제들이 저절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중략) 기술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한다. 더 이상 스스로 운명을 통제할 용기를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두고 소득없는 논의를 계속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지를 주제로 삼아야 한다. - 336~337쪽
이 모든 맥락은 결국 인간과 생명의 본질에 관한 사유와 견해로 귀착한다. 첨단 과학과 융합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고, 질병에서 자유로울수록 이 문제는 우선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나아가 그 성과가 거대자본과 부유층에게 온전히 돌아가지 않도록 공정하고 정의로운 분배 원칙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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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공상과학영화를 좋아했다. 현실을 초월한 상상의 세계를 보면서 먼 미래를 미리 경험하는 기분이 좋았다. 어느 순간 영화 속 상상의 세계가 현실과 꽤 맞닿아 있다는 것을, 또한 영화에서 그려진 미래가 디스토피아에 가깝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부터, SF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된 듯하다. 어쩌면 의료 첨단기술 발전에 대한 나의 시각 변화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다.
처음에는 기술 발전이 가져올 편리함과 이로움에 관심을 가졌다면, 지금은 기술 발전에 대한 의구심과 우려가 더 크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더욱 궁금했다. 미국의 과학저술자가 쓴 이 책의 원제(BEYOND HUMAN), 번역된 책의 제목인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 무엇보다 ‘트랜스휴머니즘의 현재와 미래’라는 부제가 끌렸다.
‘트랜스휴먼’이라는 단어는 1927년 줄리언 헉슬리가 처음 사용했는데, 인간 유기체가 전통적 ‘인간’에서 포스트휴먼 단계로 이행하는 과정을 나타내기 위해 언급되었다. 이 책에서 ‘트랜스휴머니즘’은 인간 존재가 어느 때보다 깊은 차원에서 기술과 결합되는 현상, 그런 변화를 살펴보는 용어로 사용된다.
이 책은 미래의 인간 빅터 이야기로 시작한다. 30대로 보이지만 실상 250살인 빅터는, 인공심장 덕분에 힘과 활기가 넘치고, 당뇨병에 걸렸지만 인공췌장을 이식받아 괜찮다. 망막 세포를 컴퓨터 칩으로 교체했고, 뇌 속에 신경을 이식받아 뇌 기능을 강화했다. 그는 죽음을 걱정하지 않는다. 수십억 개의 나노로봇이 몸속을 돌아다니며 손상된 세포를 수리하고 DNA 복제 오류를 복구하며 암세포를 즉시 없애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생명을 연장시켜주는 첨단기술이 덫처럼 느껴진다. 왜 그럴까. 이 책을 통해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공상과학소설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짧은 이야기만 읽고도, 여러 질문들이 솟구친다. 빅터처럼 살면 마냥 행복할까. 과연 행복이란 무엇인가. 수많은 빅터들이 사는 세상은 공정할까. 그런 세상에서 첨단기술의 혜택을 거부하고 자연적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빅터가 되고 싶지만 이런저런 불평등한 요소로 어쩔 수 없이 노화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이 심하지 않을까. 부의 상징이 곧 수명의 길이가 되어버리는 세상, 인간과 기계의 구별이 모호해지는 세상이 오는 것은 아닐까.
“머지않아 인간은 몸속에 온갖 이식장치와 생체공학적 부품을 장착하고, 능력과 지능이 뛰어난 로봇을 비롯하여 주변 모든 것과 사물 인터넷을 통해 자연스럽게 상호작용할 것이다. 정교한 네트워킹을 통해 각자 타고난 힘과 능력을 훨씬 뛰어넘게 될 것이다. 인간이라는 정체성과 고유한 개성의 범위가 확장되어 폭넓은 전자 생태계를 포함하게 되는 것이다.”(294-295쪽)
“융합기술이 진정 인간을 해방하려면 더 이상 삶을 연장하는 것이 지나친 부담이 될 때 누구나 죽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사회가 받아들여야 한다. (중략) 우리는 각자의 죽을 권리를 반드시 인정해야 할 뿐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를 다루어야만 하며, 좋든 싫든 그 결과에 순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316쪽)
이 책의 핵심이라 할 만한 대목들이다. 저자는 책 전체를 통해 ‘트랜스휴머니즘’의 황금빛 미래를 그리는 것도 아니고, 암울한 전망을 내놓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이미 그 흐름 가운데 있기 때문에,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철학적, 윤리적 논의들을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해나가자는 입장이다. 이 책에서는 반복적으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대두된다. 변화무쌍한 첨단과학에 따라 그 대답은 달라질지 모른다. 결국 그것은 고정불변의 답을 제시하지 않은, 열린 질문인 셈이다.
저자는 "적어도 아직까지 우리가 불멸의 존재가 될 가능성은 까마득히 멀다"는 전제로, 존엄한 죽음을 맞으려면 몸속에 이식된 것들을 포함해 첨단기술의 작동을 중단시키는 규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 책에서 소개되는 기술들이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 개성, 민주주의, 자율성 등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단순히 기계와의 상호작용이 늘어나는 것뿐 아니라 기계와 실제로 통합되어 우리가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 문제까지 거론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공심장 및 여러 심장보조장치의 사용 실태, 인공신장과 인공췌장, 인공 간, 인공 폐의 개발 현황을 상세히 알려주고, 머지않아 피부나 인공망막 등 모든 신체부위가 인공장기로 대체될 현실을 전망한다. 문제는 데이터다. 대부분의 인공장기는 건강에 관한 중요한 데이터를 무선 전송할 텐데, 이때 데이터의 소유자와 공유자는 누구인가, 데이터를 사고팔 수 없는가, 해킹 방지 및 보안 유지의 법적 장치는 있는가 등의 논란이 생긴다.
심부 뇌자극은 뇌의 특정 부위에 지속적으로 전기자극을 가해 신경회로, 즉 신경세포와 시냅스를 통합한 신호 전달 패턴에 영향을 미친다.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있는지(우울증), 활성이 떨어져 있는지(파킨슨병)에 따라 회로를 통해 전달되는 신호 흐름을 빠르거나 느리게 변화시킨다. 차세대 기억강화 뇌 이식장치가 직면하게 될 문제는, 치료와 강화를 구분할 수 없는 이식장치나 시술의 규제다. 또한 컴퓨터화된 장치나 부품의 해킹 가능성이다.
미래의 뇌 강화기술 중, 나노 로봇을 인간 혈류 속에 주사한다는 이론이 흥미로웠다. 작은 로봇은 뇌혈류장벽도 쉽게 통과하고 뇌 속으로 들어가 개별 신경세포들과 외부 컴퓨터 사이의 연결망을 구축한다. 한 사람이 어떤 장치 없이도 인터넷에 접속하고 다른 사람의 뇌와 네트워크를 구성한다. 수많은 사람의 인생 경험과 기억, 엄청난 양의 정보를 마음대로 이용하는 게 이로운 것일까, 사생활 침해를 넘어 독자성, 개인성이 소멸될 가능성은 없을까.
줄기세포, 유전자 조작, 나노기술, 항노화제 등 첨단과학은 노화와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새롭게 바꿀 것이다. 저자는 지금까지의 항노화 연구 현황, 개발 중인 노화억제제, 주류 과학으로 급부상한 항노화의학을 소개하고, 융합기술의 핵심인 로봇의 개발 현황과 문제점을 제시한다.
퍼스널 로봇이 활용될 영역은 만성 질환자와 고령자의 간호 및 보조다. 일본에서 발명된 로봇 물개 ‘파로’는 요양원에서 치료용 동물 시험을 마쳤다. 파로는 쓰다듬으면 행복한 소리를 내고 거칠게 다루면 소리를 지른다. 또한 주인의 목소리와 몸짓을 인식한다. 반려 로봇이나 취약한 고령층을 모니터링하는 로봇은 유용한 역할을 하겠지만 사생활 보장 문제가 남는다. 고령자를 돌보는 로봇을 오용할 여지가 있다. 가령, 로봇이 누군가를 감시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위험하거나 파괴적인 로봇 탄생을 사전에 막을 방법을 강구하는 일, 사회성이 결여된 채 요람에서 무덤까지 로봇과 함께하는 삶이 가지는 의미를 고찰해보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이 책에서 특이한 용어는 ‘마인드 업로딩’이었다. 미래학자들은 임종 시 사람의 마음을 업로드하는 기술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용어와 관련해서도 여러 질문들을 던진다. 마인드 업로딩을 통해 복제된 로봇은 어떤 존재인가. 그 시점과 적합성을 누가 결정하는가. 로봇의 몸속이든, 다른 곳이든 업로드된 인간의 정신에 어떤 지위를 부여할 것인가. 사람이 생존해 있는 동안 정신의 상세한 복제본이 만들어진다면, 복사된 뇌는 어떤 법적 권리를 가지게 될까.
저자에 따르면, 군대는 융합기술을 기반으로 하는 첨단 의학적 치료법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솔직히 ‘미군을 주목하라’는 목차를 보고 뭔가 이질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노 구조물을 이용한 폭발물’을 언급한 대목에서 현실적 위험성이 실감됐다. 이런 폭발물은 X선이나 금속탐지기에 나타나지 않으므로 테러리스트가 비행기나 건물에 반입하면 대형 재난의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군은 무인 드론, 야간투시 고글, 각성도를 높이는 약물을 이미 사용 중이고, 가까운 미래에 결정 자체를 맡은 전투용 로봇이 나올 수 있다. 문득 우리나라 군대 사정은 어떠한지 궁금해졌다. (미군이 주둔하는 곳이라 해도, 왠지 우리가 그들이 사용하는 최첨단 기술을 그대로 사용할 것 같지는 않다. 우리가 독자 개발한 최첨단 도구들이 있지 않을까.)
민간 영역에 초소형 센서와 군용 스파이 로봇을 풀어놓으면 사생활 유지가 어려워진다. 현재 군사적 목적을 염두에 둔 첨단기술의 오남용을 막을 방법이 없고, 국제사회가 어떤 규제에 합의하고 따를 가능성도 전혀 없다. 저자는 “현실적 제약 속에서 남용 가능성을 하나씩 해결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문장을 덧붙일 뿐이다. 그만큼 막막하고 심각한 현실이라는 뜻일 것이다.
첨단 의료 시스템의 발전이 어디까지 왔는지 궁금했다. 이 책을 통해 그 부분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저자는 각 장마다 여러 자료를 종합하고 해당 전문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논의를 전개한다. 생소하고 낯선 내용인 탓에, 여기서 독서 과정이 느려졌다. 어떤 첨단기술의 현황을 제시한 후 이에 수반된 문제점을 덧붙이는 저자의 서술 방식이 전체 맥락을 이해하는 데는 유용했지만, 각 문제점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같은 내용이 여러 번 반복된다는 느낌도 들었다. 중요한 내용이라 강조하는 의도로 받아들였다. 사실 기술 발전에 대한 의구심과 우려만 가졌을 뿐, 구체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어떤 공론화가 필요한지 등을 생각해보지 못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 그 부분에 대한 사유를 넓힐 수 있게 되었다.
먼 미래의 사람들은 2020년 팬데믹 시대, 100세 장수 나이를 표방하지만 실제 건강 나이는 70-80세에도 못 미치는 현재를 어떻게 바라볼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의 시각에서 보면 불행하거나 안타까운 시절에 불과한가. 수명 연장이 곧 행복의 절대조건이 될 수 있을까. 단순히 첨단기술에 대한 최신 정보와 전망을 알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독서였는데, 결과적으로 개인적 가치관과 우리 사회의 통념을 되짚어보는 계기가 되었다.
다시, 공상과학영화를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오래전, 그리고 최근 나온 SF 소설도 두루 읽고 싶어졌다. ‘트랜스휴머니즘’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 인공지능이 여러 분야에서 상용화되는 시대에,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서라도 인간 상상력의 산물, 관련 영화를 보고 소설을 읽는 일이 새삼 의미 있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물론 최신 연구 결과와 문제의식을 담은 이런 과학저술서도 필독할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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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0여년전만해도 머리카락 자르는 것조차 터부시 되던 우리 사회였다. 그러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안경을 쓰고, 콘택트 렌즈를 착용하고, 인공 와우나 인공 관절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렇게 21세기의 우리는 인공장기, 로봇공학, 인공지능, 나노기술과 같은 첨단기술의 시대를 살고 있다. 길지 않은 시간에 인류는 비약적인 기술의 발전을 이루면서 인간의 수명 또한 획기적으로 늘었고, 이제 인류는 그 기술의 발전을 멈출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아무리 인간의 수명이 늘어 난다해도 인간 뿐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맞게 되어 있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 죽음의 적당한 때란 언제인가? 그것을 인위적으로 정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히 수명을 조금 더 늘리기 위한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막상 눈앞에 죽음이 닥쳐온다면, 그런 판단을 할 수 있을까? 실제로, 당뇨 합병증이나 암으로 가족과 지인을 하나 둘, 곁에서 떠나보냈을 때, 그들을 목전의 죽음에서 구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다만 몇 년 만이라도 더 내 곁에 머물러 줄 수만 있다면...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당시에는 컸었다. 만약 이 책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에 등장하는 인공 장기들을 그들에게 이식 했다면, 지금도 살아 내 곁에 남아 주었을까?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인공장기를 비롯한 인류의 첨단 기술이 반드시 우리에게 장밋빛 미래를 안겨다 줄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책 “아무도 죽지 않는 세상”의 저자 이브 헤롤드는 첨단 과학이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푹 넓고 깊이 있게 서술하고 있다. 일반인으로서는 알기 힘든 과학 정보가 가득할 뿐 아니라, 미래에 발생 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다각도로 살피고, 그에 대한 최선의 답을 내리기 위해 노력한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달한다 해도 결국, 우리는 인간에 대해 철학적, 종교적, 윤리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첫 장에 등장하는 미래의 인간 빅터의 이야기는 흥미롭지만, 가볍지 않은 문제를 우리에게 던진다. 인공심장, 인공췌장, 인공팔, 컴퓨터 칩으로 교체된 망막, 신경을 이식받아 기능이 강화된 뇌, 몸속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질병을 막아주는 나노로봇등의 도움으로 빅터는 현재 250살이다. 그런데, 250살을 살고 있는 빅터는 행복할까? 그동안 그는 가족, 배우자와 이별을 해야 했고, 직업도 계속 바꿔야 했다. 빅터는 결국 자신을 젊고 건강하며 생산적으로 만들어준 다양한 첨단기술에 양가감정을 느낀다. 근본적으로 불평등한 세상에서 그토록 오래 사는 데 대해 때때로 죄책감을 느낀다. 그가 죽음을 맞을 수 있는 방법이란 스스로 정기적 회춘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생체공학적 이식물들이 서서히 고장 나기를 기다려 비참한 노화와 죽음을 맞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첨단 기술이 현재 개발 중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인간을 대상으로 시험 중인 것도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문제가 제기된다.
생명 보수주의자들은 인간이 ‘신의 흉내를 내는 것’을 비난하며, 인간이 오만함을 버리지 못하고 어느 한계를 넘어서면 파국적인 재앙을 불러들일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현실의 문제를 반대만 한다고 해결이 되진 않는다. 특히, 분배 정의라는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다. 수많은 사람들이 장기 이식을 기다리고 있으며, 불법 시술 또한 지금 이 시각에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선진국 환자들에게 아프리카를 비롯한 개발도상국의 국민들이 장기를 내다 팔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인공장기의 치료는 필수적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제 일부 인공 장기는 생체 장기를 이식받을 때까지 버티기 위한 가교 치료가 아니라 영구적인 해결책으로 개발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장치는 ‘인간’일까? 이 장치를 통제하는 것은 환자인가 의사인가, 아니면 사회인가? 그런데, 이 장치를 기업이 소유하고 판매하게 될 텐데, 그들의 손익 계산법에 인간의 목숨이 좌우 되는 세상이 오진 않을까 프랑스 작가 마르셀 에메의 소설 “생존 시간 카드”속엔 인간의 생산성과 효율성에 따라 생존 시간을 부여 받는 제도가 등장한다. 비생산적인 소비자들, 이를테면 노인, 퇴직자, 금리생활자(현시점에서는 아마도 부동산 임대업자등의 투자자가 될 것이다), 실업자, 기타 다른 군입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것이다. 쓸모없는 사람들은 그 무용성의 정도에 따라 일수를 정해놓고 다달이 그 일수만큼만 살게 된다. 그런데, 막상 이 제도가 시행되고 나니, 완전 생존 자격 보유자들과 부분 생존자들 사이에 반목이 생겨나는 데, 역설적이게도 완전 생존자들이 부분 생존자를 시샘하는 현상이 일어난다. 부분 생존자들이 어떤 신비와 미지의 것을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적인 죽음을 마치 휴가처럼 여기면서 자기들은 사슬에 매여 있다고 느낀다. 반면, 부분 생존자들은 언제나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면서 더욱 빠른 생활리듬을 따르다 보니 명랑한 기분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이 소설처럼 마냥 긴 세월을 살아내는 것이 인간에게 행복일 수도 없고, 충분한 수명을 누릴 자격을 인위적으로 정하는 것 또한 어불성설이다. 우리 인류는 그럼에도 현재까지 인간 강화와 수명 연장에 동의하고 그 길을 걷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이 모든 문제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모아 현명한 답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래서 이브 헤롤드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첨단 과학기술로 인간의 수명이 획기적으로 늘어날 것을 걱정해야 하는 한 편, 우린 전 세계를 휩쓴 바이러스 앞에서 큰 혼란을 겪으며 무력함을 느끼고 있다. 많은 난치병과 불치병을 치료하는 길은 열렸지만,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바이러스의 침공은 아직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과연, 우린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까? 교만하지 않으며, 인공지능, 인공장기, 로봇의 개발을 인간 삶의 질을 높이는 긍정적인 면으로만 사용 할 수 있을 것인가? 코로나 백신의 공급만해도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에 차이가 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의 미래를 유토피아로 만들 것인지, 디스토피아로 만들 것인지는 결국 우리 손에 달려 있다. 저자의 말대로 힘들더라도 모두의 지혜를 끌어 모아 하나씩 해결해 나가는 수 밖에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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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 심장, 인공 폐, 인공 췌장, 인공 팔다리. 인간의 몸이 제기능을 하지 못할 때 우리를 도와줄 인공장치들이다. 이런 인공장치들을 몸의 일부로 생각할 것인가? 인공장치들이 하나 둘 늘어나서 뇌에도 장치가 들어간다면? 아주 많은 신체기관이 인공장치로 대체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람인가, 장치들이 모아진 로봇인가? 제기능을 잘 하고 있는데도 더 기능을 잘하려고 장치를 사용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신기술을 소수의 권력자나 부자만 누릴 수 있다면? 책 도입부부터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책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이런 질문들에 대해 고민하기에는 너무 이른것이 아닌가?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융합기술이란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면서 극적인 도약을 이루는 특성이 있다. 어느 순간 갑자기 혁신이 일어나서 당장 이런 고민을 해야할 때가 올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지금이 바로 트랜스휴머니즘에 필요한 변화들을 시작해야 할 시점이라고 한다. 융합기술이 진정 인간을 해방하려면 더이상 삶을 연장하는 것이 지나친 부담이 될 때 누구나 죽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사회가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각자 죽을 권리를 반드시 인정해야 할 뿐 아니라,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문제를 다루어야만 하며, 좋든 싫든 그 결과에 순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의 수 많은 질문들 중 책의 주제를 관통하는 질문을 아주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질문, 아주 많은 신체기관이 인공장치로 대체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람인가, 장치들이 모아진 로봇인가? 저자는 인간이라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공장치 등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특출한 외모, 건장한 몸을 갖게 되는 시대가 온다고 가정하자. 그 시대에는 인간에게 요구 되는 것이 내면적인 요소로 바뀔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하고 있다. 주관적 자기인식, 성격, 윤리적 감수성, 친절함, 연민, 유머, 창의력 등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 두번째 질문, 인공장치인 심박동조율기를 꺼도 되는가? 사실 이 기계는 몸 속에 있을 뿐 원리나 작동하는 방법은 외부에서 제세동을 주는 것과 동일하다. 그렇다면 이는 단순한 기계장치일 뿐인걸까? 아니다. 환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 기계를 몸의 일부로, 믿음직한 친구로 생각한다. 이에 저자는 심박동조율기를 끄는 문제에 대해서 젠슨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p64) 젠슨은 심박동조율기를 꺼야할지, 끈다면 언제 꺼야 할지를 결정하기에 앞서 그것이 우리 몸에 완전히 통합된 일부인지 아닌지, 즉 우리 자신의 일부인지 아닌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썼다. 심박동조율기가 몸의 일부라면 그것을 끈다는 행위는 살인과 비슷해지는 반면, 몸의 일부가 아니라 외적인 어떤 것이라면 윤리적인 차원에서 생명을 빼앗는 행위와 무관하게 작동을 중단시킬 수 있다. ------------------------------------- 세번째 질문, 이런 신기술을 소수의 특권층만 누리는게 아닌가? 모든 신기술이 그렇듯, 이 기술도 처음에는 부자들에게 보급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모든 사람이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보편적인 이용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해서 혁신을 가로막는 것은 비합리적이다는 의견을 펼치고 있다. (P314) ----------------------------------- 네 번째 질문, 질병 치료목적이 아니라 기능 강화목적으로 쓰일수 있지 않은가? 사고로 흉측해진 신체를 교정하기 위한 성형수술이 현재 외모를 향상시키기 위한 방법이 되었듯이, 이 기술도 장차 정상적인 기능을 강화시키기 위해 쓰일 것이라고 예측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P89) 어떤 상태가 고통을 일으키는지에 관한 사회적 기준은 달라질 수 있다. 점점 많은 '상태'나 '조건'이 시나브로 '질병'이나 '장애'의 범주로 옮겨가 치료나 교정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추세이다. (P199) ------------------------------------ 다섯 번째 질문, 뇌나 기억도 이런 신기술에 영향을 받는가? 우울증 환자의 뇌 25번 영역에 심부뇌자극을 가해서 치료하는 방법을 찾는 중이다. 뇌를 자극하는 이식장치의 위치가 조금만 달라져도 치료면에서 큰 차이가 있어서 상당히 조심스럽다고 한다. 또한 '특이점이 온다'의 저자 레이 커즈와일은 2050년경 인간은 일명 '마인드 업로딩'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통해 죽음의 순간 뇌에 간직된 기억 등을 슈퍼컴퓨터에 업로드할 능력을 말한다. 너무 SF영화 같은 이야기이지만 현실성이 없지는 않다고 한다. 사망 후 뇌와 척수를 잘 보존해서 테이프모양으로 절단한 다음, 실패 모양의 스풀에 감은 후 스캐너에 장착해서 집속이온빔을 사용하면 영상화 할 수 있다고 한다. ---------------------------------- 여섯 번째 질문, 인공장치나 로봇이 잘못을 저지르면 책임소재는 어디에 있는가? 현재 사법제도에서 책임소재에 대한 판결은 인격을 인정하느냐에 달려 있으므로 몇몇 법률 전문가들은 드론과 자율주행차를 포함하여 로봇에게 법적으로 제한적 인격을 부여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 이 책의 시작부분과 끝날 무렵은 작가가 지어낸 가공의 인물 빅터의 이야기로 장식되어 있다. 트랜스휴머니즘이라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강력한 거부감을 보이던 그가 갑작스러운 응급상황으로 인해 가족의 동의로 인공장치를 몸에 지니게 된다. 기술은 나날이 발전해 그는 젊은 시절과 다름 없는 몸 상태로 지내지만 가족을 떠나보내고 250년이라는 세월을 로봇과 외롭게 살아낸다. 그는 인류 역사상 모두가 늘 꿈꿔온 불로장생을 이룬 모습이지만 아주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기술이든 로봇이든 다 행복하게 살기 위한 수단임을 생각해 볼 때, 다가올 트랜스휴먼의 시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공장기, 인공지능 등이 현재 어디까지 기술발전이 되어있는지 알고 싶다면, 새로운 기술로 인해 나타날 사회현상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면 읽어볼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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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이 책의 제목은 필연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어떻한 방법으로든 더 오래 살게하려는 최첨단 의공학 융복합 기술로 인간의 수명이 더욱 늘어나는 시대에 뜨거운 화두를 던져준다. 이 책을 다 읽은 베이붐 세대 친구들이 낮에 모여서 죽음에 대하여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계기를 가졌다. 인간의 신체와 정신을 극한까지 강화하려는 적극적인 시도를 트랜스 휴머니즘(Trans Humanism)이라고 한다. 1927년에 최초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 용어는 전통적인 신체 능력을 가진 인간이 포스트 휴먼(Post Human)이라는 상위 단계의 존재로 이행하는 과정을 뜻하기도 한다. 이 책의 영문 제목 Beyond Human은 이러한 인간 강화를 지향하는 변화를 극적으로 표현한다. 인간의 신체적인 능력을 생물학적으로 강화시키면서 완벽을 추구하려는 노력은 인간의 문명이 시작된 이후로 지속되어 왔다. 화장, 성형, 의수/의족, 인공 수정체 등의 전통적인 강화 방법은 이미 우리 주변에 흔해졌고, 최근에는 인공 장기, 로봇 공학, 인공 지능과 같이 첨단 의료과학과 융복합 기술로 말미암아 인간 강화가 더욱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과도한 방식의 인간 강화는 종교적 보주주의에 의하여 인간의 삶을 주관하는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오만으로 비난 받기도 한다. 이 책은 여러가지 인간 강화 시도 중에서 ‘무의미한 생명의 유지’ 로 인한 사회적인 문제를 가장 심각하게 지적한다. 생명이 위협받는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는 의학적인 입장에서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환자의 생명을 더 길게 유지하는 의사결정과 노력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러한 상황은 삶의 종착점에 도달한 수 많은 환자에게 오히려 불필요한 고통을 줄 수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지금의 전통적인 사법체계와 의료체계는 생명의 유지가 무의미한 사람이 헛된 의학적인 노력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고 존엄하고 평화롭게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희망을 인정하지 않는다. 죽음을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사람 앞에서 의사, 환자, 가족 중의 어느 누구도 어떻게 죽을을 맞이해야 할지 결정하는 부담스러운 책임을 떠맡지 않으려고 하면서, 죽음의 문제를 서로 회피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어떻게 존엄스럽게 죽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한다. 내 앞에서 고통받고 있는 동물을 ‘잠들게(죽게)’ 해주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은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반면에 고통받는 인간에게 무의미한 치료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많은 사람들이 완고하게 저항한다. 동물과 사람의 동일한 수준의 육체적인 고통에 대하여 사람은 이중적인 태도를 보인다. 융합기술이 진정 인간을 해방하려면 더이상 삶을 연장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판단될 때 누구나 죽을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사회가 수용하여야 한다. 죽음에 대해 논의하는 것 보다 더 날리 펴져있는 금기는 없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정해진 죽음을 맞아서는 안 된다는 의학적인 편향은 확고하기만 하다. 더이상 치료해봐야 소용이 없고 고통만 가중되는 상황에서도 그렇다. 이 시간에도 트랜스 휴머니즘은 다양한 방식을로 진행중이며 우리는 이미 그러한 결과를 삶속에 끌어들이고 있다. 이에 비하여 인간의 수명과 능력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되는 변화에 공정하고, 합리적인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아직 찾지 못했다. 생명 연장을 위하여 인체에 심어진 인공 이식장치를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비활성화 시킬 것인지 구체적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 체외 생명유지장치를 포함하여 사람의 생명을 구하거나 강화하는 이식장치를 환자 스스로 비활성화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리가 있어야 한다. 포스트 휴먼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죽을 것인지 결정하는 문제를 다루어야만 하며, 각자의 죽을 권리를 반드시 인정해야만 하며, 좋든 싫든 그 결과에 순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