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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회천 선생의 가야금 연주 음반을 들었습니다. 사실 들었다기 보다, 틀어놓은 상태에서 여기저기 다니며 물건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느라 음악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놓고는 음악이 귀에 와서 닿지 않는다고 생각을 해버렸고, 저는 아직 국악기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고 여겼으며, 저에게는 아직 국악은 멀기만 한 음악 같다고 결론을 내려버렸습니다.
제 마음을 사로잡는 음악은 한 마디의 음으로도 귀와 심장을 한 실에 꿰어버리는 바느질과 같다고 믿기에, 그런 기분을 느끼지 못하고, 마냥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느라 어떤 음이 지나갔는지 알지도 못하고 기억에 남지도 않아 저는 그런 생각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저와는 거리가 한참은 먼 음악이었노라. 어떤 음반을 찾아서 들어야 보다 쉽게 국악에 다가갈 수 있을지 참 난감하구나! 그런 생각이 곁들여졌습니다.
햇살이 한풀 꺾어지는 오후의 자락에 슬그머니 나와 앉아 다시 턴테이블을 돌려봅니다. 아직 국악의 장단과 흐름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정회천 선생의 가야금 연주 첫 음은 제게 남성적인 연주라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물론 정회천 선생이 남성이시니 그렇다는 것은 당연한 말 같지만, 지금껏 제가 들은 가야금 연주란 대체로 여성 연주자들의 연주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린 시절 드라마에서의 가야금은 기생이나 여성 연주자들의 연주였고, 국악 무대의 가야금 연주 역시도 대체로 여성들의 연주였던 것 같으며, 어린 시절 동네에서 보았던 방 안 벽에 기대서 있던 가야금 역시도 주인은 아주머니였고 할머니였습니다.

이 음반을 살 때만 해도 그런 생각은 전혀 해보질 못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연주로의 가야금 연주에 대해서 말입니다. 오전에 청소를 하느라 느껴보지 못했던 남성적 연주가 오후에서야 들려옵니다. 그리고 지금껏 제가 들었던 가야금 연주에 비해 힘이 느껴지는 반면, 가락과 가락 사이에 느껴지는 틈, 여백, 공백의 시간이 참 길게 느껴집니다. 그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외로움인지, 처연함인지, 위태롭게는 느껴지지 않지만, 어떤 결단력이 느껴지는 힘과 함께 남성의 외로움이 느껴집니다.
이런 모든 느낌은 저 혼자만의 착각이겠지요. 음악 특히 국악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도 못하기에 제멋대로 느끼고 싶은 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입니다. 투박하지만 분명 힘이 느껴지는 그렇기에 남성적인 느낌이 강한 가야금 연주입니다. 기방에서 기생들이 남정네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만들어내는 음과는 아주 다른 음악이 아닌가 싶습니다. 왼 손가락을 튕겨낸 줄을 비비기 보다 억센 힘으로 꾸욱 눌러 음을 강하게 하지만 길이는 짧게 만드는 연주, 음을 흩트려버리지 않고 간결하게 뚝뚝 끊듯이 연주하며 음을 하나하나 소진케하는 힘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야금 줄을 얼마나 단단히 조인 후 손가락이 튕겨나가지 않도록 세게 누르면 저런 소리가 날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햇살이 점점 짧아지는 11월의 오후입니다. 가야금을 들으며 괜스레 마음에 진하게 베일 듯한 남성적 고독을 느껴보려 합니다.

볼륨을 한 단 올려봅니다. 선생의 무대가 두어 발 앞으로 제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모든 현악기가 다 그렇겠지만 줄의 움직임은 울림통에 소리를 만들어 확장이 될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럼 그 소리는 하나일까? 줄을 튕기고 그 반향이 울림통을 통해 공간으로 퍼져 나가는 것이 한순간에 함께 일어나는 것일까? 줄을 건드릴 때 울림통으로 거기 전, 줄에서 나는 소리를 우리의 귀는 전혀 들을 수 없을까? 악기의 줄을 움직이게 한 후 울림통을 통해 확대된 그 소리만을 우리는 듣게 되는 것일까? 앰프의 소리 한 단을 올리고 나니 왠지 정회천 선생이 가야금줄을 누르고 문지르고 뜯을 때 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소리를 한 단 더 올린 후에 들려오는 가야금의 음률에는 보다 생소리가 담겨 있는 듯 들립니다. 녹음을 위해 마이크와 수많은 기계, 그리고 기기 작업을 통한 후에 음반으로 제작이 되고 다시 우리집 싸구려 전축이라는 기기를 거친 후 만들어져서 제 귀에 안착되는 소리가 아니라 무대 현장에서 가야금이 방금 만들어내는 소리, 마이크나 앰프, 스피커라는 기계를 통해서 전달되는 소리가 아닌, 연주자와 악기 그리고 공간으로 퍼지며 직접적으로 들려오는 그런 소리로 착각하며 듣게 됩니다. 지금 딱 이만큼의 볼륨 상태가 현재 저에게는 정회천 선생의 음반을 감상하기에 가장 적절한 소리 세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소리를 한 단 올리기 전과는 울림이 다르며 저 밑바닥에 깔렸던 탄식마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심장과 가슴 한가운데가 먹먹해져 오며 이 연주가 끝이 나지 않기를 바라게 됩니다. 정회천 선생은 사라지고 가얏고 저 혼자 울어대는 것 같습니다. 아! 어머니, 지금 저는 생애 최고의 가야금 연주를 듣고 있는 중 같습니다. 더 이상 다른 말로는 감당을 할 수가 없으며 음반이 끝이 나고 나면 다시 또 들어야겠다는 생각 말고는 그 어떤 생각도 스며들지 않습니다. 흐린 하늘을 지닌 이 오후와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연주는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 흐리고 묽은 일요일 오후를 가야금 소리에 저며들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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