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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나이 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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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부터 나이들고 있었을까  확실한 건 지금 나이들고 있는 중이라는 거  그래서 이런 책들에 자꾸 눈길이 가고 재미가 샘솟습니다.    "유한성의 발견" 이라는 부제목  내 존재의 유한함을 인식하고, 내 존재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인간 존재에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책은 말한다.   하지만,, 자꾸 다가오는 죽음이, 다가오는 나의 끝이 내 눈에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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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부터 나이들고 있었을까 

확실한 건 지금 나이들고 있는 중이라는 거 

그래서 이런 책들에 자꾸 눈길이 가고 재미가 샘솟습니다. 

 

"유한성의 발견" 이라는 부제목 

내 존재의 유한함을 인식하고, 내 존재의 마지막을 준비하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인간 존재에게 주어진 축복이라고 책은 말한다.

 

하지만,, 자꾸 다가오는 죽음이, 다가오는 나의 끝이 내 눈에 보여서 인간을 미련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이건 축복이 아니라 저주 아닐까. 

 

인간은 아는 것이 힘이 되기 보다는 모르는게 약인 존재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알기를 멈추고 보다 행복하기를 선택해주세요.  

편리와 행복은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는 수평선을 그은 존재 . 

 

늙어서는 편리할 수 없으니 행복의 철로를 찾아 걸어가자!  

 

p***5 2023.04.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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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리뷰 2021-056) 나이 든다는 것은 슬프고 불행한 일일까. 나이 듦에 대한 다양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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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선한리뷰 2021-056) 나이 든다는 것은 슬프고 불행한 일일까. 나이 듦에 대한 다양한 고찰   도서명 : 나이 듦 글쓴이 : 최은주 시리즈 : 배반인문학 출판사 : 은행나무   한줄평 : 나이 든다는 것은, 나무 이파리에 단풍이 드는 것과 같다.   내가 썼지만, 한줄평이 마음이 꼭 든다. 언어의 유희를 가지면서도 사유의 폭이 있다. ‘나이들다’는 자동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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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선한리뷰 2021-056) 나이 든다는 것은 슬프고 불행한 일일까. 나이 듦에 대한 다양한 고찰

 

도서명 : 나이 듦

글쓴이 : 최은주

시리즈 : 배반인문학

출판사 : 은행나무

 

한줄평 : 나이 든다는 것은, 나무 이파리에 단풍이 드는 것과 같다.

 

내가 썼지만, 한줄평이 마음이 꼭 든다. 언어의 유희를 가지면서도 사유의 폭이 있다. ‘나이들다는 자동사로 나이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한 살 두 살 세월을 지나며 풋풋하고 여린 연두에서 풍성하고 찬란한 녹색이 되고, 나이를 먹어 우리는 단풍이 드는 것처럼 그렇게 빛이 바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똑 하고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하늘하늘 중력에 몸을 맡긴 채 아래로 낙하한다. 순수한 중력의 아름다움이다.

 

저자는 영미문학비평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몸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며 질병과 죽음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많은 책을 써왔다. 이 책은 그런 연구의 한 결과물, 사유의 총체가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는 나이를 가지고, 나이 역시 우리를 가진다. 나이를 가지는(나이가 드는) 것이 살아 있음을 뜻하듯 노화의 기호는 동시에 삶의 기호이기도 하다. (6, 마르크 오제의 글, 들어가며 첫 문장)

 

살아 있는 한 일상 세계는 지속된다. (157. 책 마지막 문장)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합을 같이 한다.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여기에 다 들어있다. 늙는다고 해서 죽음을 향해 더 가까이 가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노화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때론 불공평하게 다가온다. 늙는다는 것은 사실 우리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테제다.

 

나는 다음주 모더나 백신을 맞는다. 내가 50대 중반을 넘어섰다는 것을 추리하게 하는 대목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총 5회의 수술을 받았다. 의사들은 내 몸에서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떼어내고 깎아내고 긁어내고 뽑아냈다. 나는 어릴 때부터 병약한 유형의 아이였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늙어가면서도 여전하다. 그래서 백신을 맞는 내게 가족들은 걱정이 한 바가지다. 하지만 직장 팀원들은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당연히 치러야 할, 특별히 걱정할 필요가 없는 통과의례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나는 이미 관심의 바깥에 있다. 팀장님은 그럴 때가 됐어요. 몸 조심하세요. 이런 인사가 내게 당연하다.

 

환자분 나이에는 당연한 통증입니다이라는 말을 듣는 식이다. 당연하다고 하면서 환자로 분류하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런 경험을 거친 후에 개인은 이미 늙어 있으며 관심의 바깥에 놓인다. (8)

 

나이를 먹으면서 충격을 받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충격을 몸에 새기며 받았다. 30을 넘기면서, 40이 되면서, 50이라는 숫자를 받아들면서, 그리고 이제 곧 60이 된다는, 국민연금을 수령할 나이가 된다는 사회적 나이가 주는 충격이 크다. 피가 밖으로 흘러나지 않는 환자가 더 중상을 입는다는 말처럼, 겉으로 웃으며 청바지를 입고 다니지만 속으로는 내상으로 피가 흥건하다. 늙음을 처음 경험하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기만 하던 나는 어느새 늙기 시작한다. 늙음은 처음이다. 어느날 새삼스럽게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과 주름을 발견하면, 변화된 외모 때문에 정신적인 충격을 받는다. (53)

 

안티에이징이 시대 트렌드로 자리를 잡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노년의 주름, 노년의 검버섯은 없애야 할 불필요한 것이 되어가고 있다. 시대는 나이를 들어도 우아하고 고결하게 꾸미고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죽는 그 순간까지 사회적 소명을 다하는 흰머리의 교양인을 현대 노인의 표상으로 담론화한다. 얼마 전 대화의 희열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밀라논나를 아내와 같이 보았다. 참 아름다웠다. 늙어도 저렇게 늙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부러움 가득한 눈망울로 열심히 그녀의 삶을 좇았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0dd40ccf.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86pixel, 세로 328pixel

 

늙음이 거부되고 나이가 들더라도 왕성하게 활동하며 지속적으로 사회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한 노년, 새로운 노년상이라는 담론이 생성되고 있다. (93)

 

하지만 대부분의 노인은 그렇지 못하다. 독거노인이 된 지 오래된 어머니 역시 기억이 오락가락하며 했던 말 또 하고 총기도 많이 사라졌다. 요양보호사 도움 없이는 바깥에 나갈 수가 없다.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인생 완성의 단계, 지혜로운 노인의 모델은 일부 사람에게 한정될 뿐이다. 누구나 추구하지만 대부분 달성하지 못하는 목표다.

 

노년에 대한 수식은 역사적으로 지혜로움’ ‘현명함도 있어 왔으나 대체로는 쓸데없음’ ‘탐욕’ ‘추함의 수식을 받아왔다. 그런데 한 공간에 노파와 청년이 마주해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두 사람은 나이 듦에 대한 각기 다른 생각에 빠져 있다. 나이가 많이 든 노파는 온몸으로 나이 듦을 나타내며, 청년은 그런 노파를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처럼 알베르 까뮈의 안과 겉>(1958)에 수록된 (아이러니)는 노인과 청년이 마주하는 늙음에 관한 것이다. 늙음을 재현하는 병든 노인과 그 노인을 통해 늙음을 관찰하는 청년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결코 동일시할 수 없고, 공감이 어려운 이질적인 층위에 놓인다. (37)

 

노인에게 드리운 죽음의 그림자와 삶에의 집착,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태도는 늙기 전의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37)

 

게다가 우리나라는 노년층의 빈곤이 세계 제일되는 국가다. 나이가 들어도 사회가 보장해주는 부분이 적어서 가족에게 기대야 한다. 하지만 지금 시대가 어디 가족에게 부양을 맡길 수준이 되는가. 돈이 없어서 자녀도 낳지 못하는 시대다. 그러나 생산성이 떨어지는 노인의 무게를 가족이 감당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과거와 달리 특히 경제적 비용이 많이 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퇴직 상태의 장기화는 노년기를 불안으로 점철시킬 수 있다. (93)

 

60 이후 직장에 계속 남아있게 될지, 택도 없는 국민연금으로 어떻게 버텨내야 할지, 덜컥 아프기라도 하면 어떻게 될지, 치매가 오면, 암에 걸리면, 온갖 불길한 상상으로 노년의 미래는 불안하기 그지없다. 그렇게 불안이 커지고 많아지는 것은 우리에게 노년에 대한 경험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험하지 않은 노년의 삶을 복습을 할 수 없다. 당연히 미리 예습도 할 수 없다. 주변의 경험을 통해 간접 습득하는 정보는 우리의 노년을 암울하게 만든다.

 

여러 번의 사랑을 거치고도 우리는 자주 사랑에 실패한다. 사랑의 경험은 복습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나이 드는 과정 또한 복습되지 않은 것이므로 어떤 유용한 기술을 터득할 사이가 없다. (45)

 

직업이라는 틀에서 보면, 나는 40대를 방황하며 보냈다. 어줍잖게 사회복지와 상담을 공부하며 시간강사와 상담이라는 힘든 시간을 보냈고, 대입 논술 강사로 가장의 어깨를 버텨냈으며, 굶어죽기 일보 직전에 다시 맨 처음 직업군이었던 특허로 돌아왔다. 그때가 막 50이 되려는 때였다. 이미 그때 회사에서는 최고령자였고, 벤처기업들이 즐비한 판교역에 내려서 젊음이 살아있는 청년들과 어깨를 마주하며 출퇴근을 해야 했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서 90세 노인은 자신의 생애를 10년 단위로 돌아본다. 50대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보다 나이가 적음을 발견했고, 60대에는 더 이상 실수할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을 거라는 걱정에 열심히 살았으며, 70대에는 인생의 마지막 기간일 수도 있다는 불안에 끔찍했다고. (52)

 

나처럼 중년의 나이 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임원이 되어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였고, 갓 신입사원이 된 스타트업 기업의 청년들이 지하철을 통해 출퇴근을 했다. 눈을 씻고 찾아봐야 비슷한 나이대의 중년 직장인을 출퇴근 길에서 만날 수 있었다. 그때 느꼈다. 내가 늙었구나. 많이 늙었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나보다 나이가 적었다.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을 분석하며, 그녀가 겪어냈던 삶의 풍랑과 노년의 느낌을 이야기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평범한 날의 평범한 마음에 귀를 기울였다. 그렇듯 유한한 삶 속에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다른 꿈을 꾼다. (21)

 

어떤 연령에서도 나이 듦이 인식되며, 그 인식은 바로 살아 있다는, 삶의 한가운데 있다는 증거다. (21)

 

나이 듦을 관통하는 저자의 심상은 이 한 가지로 귀결되는 듯하다.

노인이 된다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그것이 바로 실존, 존재, 살아 있음의 증거라고, 내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늙어가는 그 존재의 주체로서, 삶을 살아내는 그것이 바로 노년의 의미라고.

 

무엇보다 나이 듦의 주체는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어야 하며, 나이 듦에 대한 인식 또한 스스로가 부여해야 한다. 의미 있는 것과 의미 없는 것은 객관화될 수 없으며, 다만 자신의 기억 속 또는 기억 너머 어떤 영역에 그때 무엇을 했는지가 남아 있을 뿐이다. (34)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은 사실 젊은이나 늙은이나 똑같다. 상대적일 뿐 그 가치는 공평하다. 하지만 버지니아 울프가 그려낸 델러웨이 부인처럼. 삶의 지난한 무게를 지고 있는 노년의 인생은 지금 존재하는 그것이 바로 삶의 전부다. 하루의 삶이 일생의 그것과 동일해진다. 하루 동안 생각하고 관찰하고 느끼고 만나고 사랑하고 대화하는 그 모든 것이 바로, 위대하고 거룩한 나이 듦의 실체다.

 

전쟁과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병을 앓고 난 후 댈러웨이 부인이 바라본 하루는 그 모든 시간을 나타내며, 삶의 전부다. 그 하루를 살아내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105)

 

 

(선한리뷰)

 

나는 나이 마흔이 될 때 40킬로미터의 속도로 충격을 받았고,

쉰이 될 때 50킬로미터의 속도로 부딪치는 충격을 받았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믿겨지지 않았다.

이제 시속 60킬로미터의 속도로 미래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

 

그래서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이며

얼마나 대단한 일이며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알고 있다.

 

세상은 건강한 노인,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노인을 원하지만

설령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나는 충분히 내가 기여하는 몫을 해내며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그것으로

나는 이미 성공했다.

오늘 하루에 더 충실하리라.

 

내가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곧 나의 삶이고 나의 존재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i*******n 2021.07.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