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즈키 유코의 『달콤한 숨결』은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는 소설이다. 일요일 아침부터 읽으면서 일요일을 즐겼다. 오후만 남은 일요일. 느지막이 일어나 천장을 보면서 아, 오늘은 쉬는 날이었지. 그러곤 머리맡에 놓아둔 전자책 리더기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한 여성이 병원에서 상담을 받는 장면으로 『달콤한 숨결』은 시작한다. 좋아. 시작해 보자.
꼬박 누워서 세 시간을 읽었다. 이야기는 두 개로 나뉜다. 어린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주부 다카무라 후미에의 이야기.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 하타와 나쓰키의 이야기. 각각의 사건은 후반부에 가면서 하나로 모아진다. 후미에는 마트 전단지를 보면서 싼 물품을 찾는 게 하루 일과이다. 남편 혼자 돈을 벌기 때문이다.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아서 옷 한 벌 사는 것도 고민이다. 결혼하기 전과 달라진 몸 역시.
빠듯한 생활비를 걱정하는 하루지만 후미에는 각종 이벤트에 응모하면서 기쁨을 찾는다. 어느 날 디너쇼에 당첨되면서 후미에의 인생이 달라진다. 디너쇼가 끝나고 동창인 가즈코를 만난다. 기억에는 없지만 동창이라고 반갑게 다가오는 가즈코와 이야기를 나눈다. 가즈코는 후미에를 자신의 별장으로 초대한다. 그곳에서 후미에는 가즈코의 제안을 듣는다.
화장품 대표를 맡아 달라는 제안. 후미에는 놀란다. 자신은 살이 찌고 자신감도 약해진 상태다. 이런 몰골로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다. 가즈코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학교에 다니던 시절 후미에는 예쁜 외모로 인기 쟁이었다. 다이어트를 하고 조금만 관리를 한다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부추긴다. 후미에는 급하게 살을 빼고 결혼하기 전의 시절로 돌아간다. 얼굴에 흉이 있는 가즈코 대신 후미에는 대표를 맡아 화장품 설명회 강연을 하면서 회원을 늘려 나간다.
가마쿠라 별장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남자가 흉기에 맞아 죽었다. 형사 하타는 현장으로 달려간다. 조사를 끝내고 수사팀을 꾸린다. 그의 파트너는 나쓰키라는 젊은 여자 형사였다. 하타는 예전에 여자 형사와 파트너를 이룬 적이 있었다. 수사 기법을 알려주는 과정에서 나무라는 말투가 될 때가 있었는데 파트너는 차 안에서 울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에 힘들게 됐다고 생각한다. 사건을 해결할수록 나쓰키의 총명함과 기민함이 돋보인다.
『달콤한 숨결』은 별장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을 한 축으로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간다. 이야기기 진행될수록 반전이 펼쳐진다. 제발 일요일이 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다. 예뻐지고 싶다. 부자가 되고 싶다. 남의 이목을 끌고 싶다. 인간의 다양한 욕망이 『달콤한 숨결』에 들어 있다. 감정이 있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소재로 소설을 이끌어 가는 솜씨가 탁월하다. 개성 강한 성격의 인물이 다수 등장하는데 그중에 나는 나쓰키가 매력적이었다.
자신의 소신대로 묵묵히 일을 하는 나쓰키. 예의를 갖추면서도 할 말은 한다. 눈치가 빨라 일처리가 능하다. 남성 세계인 경찰 안에서 자신을 잃지 않는다. 살인 사건의 범인이 밝혀지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 깊다. 이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신의 이름을 되뇌는 장면. 이제부터 나는 나를 위하고 지키기 위해 앞으로의 시간을 보내야겠다. 후회는 하지 말고. 그때의 결정을. 『달콤한 숨결』을 읽는 동안 잠시나마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느리지만 슬프지 않은 내일을 기대한다.
|
|
한때 빛나는 시절을 보냈지만 지금은 육아와 주부 스트레스로 인해 과식증과 함께 해리성 이인증이라는 정신장애까지 얻은 다카무라 후미에는 몰라보게 달라진 중학교 동창 스기우라 가나코와의 만남을 통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프랑스 고급 화장품의 회원제 판매 책임자 자리를 제안 받은 후미에는 혹독한 다이어트와 필사적인 노력 끝에 고소득은 물론 자신감까지 회복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후미에는 가마쿠라의 별장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체포됩니다. 가나가와 현경의 하타 게이스케는 관할서 신참 여형사 나카가와 나쓰키와 팀을 이뤄 수사를 전개하는데, 후미에를 진범으로 확신하는 상부와 달리 시간이 갈수록 ‘제3의 인물’에 대한 의심을 버릴 수 없게 됐고, 결국 사건 관련자들의 과거사를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고독한 늑대의 피’와 ‘반상의 해바라기’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난 유즈키 유코입니다. 전자에게 “오랜만에 제대로 된 경찰소설을 읽은 느낌”이란 호평과 함께 별 4.5개를 준 반면 후자에겐 3.5개라는 다소 인색한 평가를 한 적이 있어서 세 번째로 만나는 ‘달콤한 숨결’은 기대 반 우려 반의 마음이었던 게 사실입니다. 수사를 이끌어가는 주인공 하타 게이스케는 남성이지만 사건의 중심에 있는 건 모두 여성들입니다. 여성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선 굵은 문장으로 거칠기 짝이 없는 남성들의 세계를 그렸던 유즈키 유코가 처음으로 ‘여성’을 이야기의 중심에 배치시켜 일본에서도 화제가 됐다고 하는데, 그런 만큼 이 작품 속의 여성들은 때론 멈출 수 없는 욕망의 화신으로, 때론 사회적 약자로서 억압과 폭력에 시달리는 희생자로 주인공 못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원제는 ‘ウツボカズラの甘い息’로, 직역하면 ‘벌레잡이통풀의 달콤한 숨결’ 정도인데 벌레잡이통풀이란 ‘네펜테스’라고도 불리는 식충(食蟲)식물입니다. “가늘고 길게 뻗은 잎 끝부분에 항아리 같은 모양의 자루가 달려 있다. 달콤한 꿀로 벌레를 끌어들여 안으로 떨어진 벌레를 먹으면서 산다.”는 작품 속 묘사대로 오랜 시간에 걸쳐 끔찍한 범행을 저질러온 범인은 때론 돈과 외모라는 욕망에 사로잡힌, 때론 깊은 절망에 허우적대는 상대에게 달콤한 숨결을 불어넣어 유혹한 뒤 잔혹하게 자신의 탐욕을 채워온 인물입니다. 하지만 피해자 대부분 역시 헛된 욕망에 이끌려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었다는 점에서 이것저것 생각할 여지가 많은 사회파 미스터리로서의 미덕을 발휘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아쉽게 느껴지는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전작인 ‘반상의 해바라기’와 비슷한 상황들이 많았는데, 무엇보다 사족 같은 부연설명들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후미에가 체포되는 중반부까지의 이야기는 최소 절반은 사족처럼 느껴졌고, 특히 하타와 나쓰키는 지루한 탐문만 벌이거나 또는 ‘수사과정을 설명하는 내레이터’ 정도의 역할만 할뿐입니다. 뇌출혈로 쓰러져 식물인간 상태인 하타의 아내나 일일이 소개해놓고도 정작 활동상은 보여주지 않은 하타의 부하들은 시리즈를 염두에 둔 설정 같긴 해도 역시 사족으로만 보였습니다. 또 ‘여성’이 중심을 차지한 이야기에서 꽤 특별한 역할을 부여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쓰키는 ‘수사보조원에 가까운 여형사’에 그치고 말았는데, 능력보다 외모로 평가받는 부당한 현실을 비판하는 역할을 맡았지만 그러기엔 너무나도 초라한 비중이었습니다. 중반 이후 제대로 달리기 시작한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범행의 진상이 폭로되면서 비로소 속도감과 긴장감을 갖추기 시작합니다. 다만, 결과에 짜맞춘 듯한 설명과 거의 기적에 가까운 단서 확보 상황은 마지막 장을 덮고도 개운치 않게 느껴진 게 사실입니다.
아쉬움이 컸던 ‘반상의 해바라기’ 서평 말미에 ‘불길한 개의 눈’(‘고독한 늑대의 피’의 후속작)의 출간을 기대한다고 썼는데, 연이어 유즈키 유코에 대한 실망감이 크긴 했어도 긴장감 만점의 경찰소설 ‘고독한 늑대의 피’의 후속작이라면 무조건 찾아 읽을 생각입니다. 다만 그 외의 작품들은 다른 독자들의 평을 찬찬히 검토한 후에야 선택하게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