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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경건주의자들을 속 좁고 편협하며 율법주의적인 사람들로 보아 왔다. 반면에 경건주의자들은 행동주의자들을 귀에 거슬리며, 그리스도의 구원의 능력에 대해 관심이 없고, 구원보다는 세속적인 정치에 더 관심이 많은 사람들로 보아 왔다. 양쪽 모두는 서로를 진지하게 취급해야 하는 어떤 가능성도 무시하기 위해 상대방의 입장을 지나치게 과장해 왔다." 이것은 [개혁주의 영성]의 저자인 하워드 L. 라이스의 말이다. 그는 행동주의와 경건주의를 균형 잡힌 관점에서 보려고 노력한다. .
하워드에 의하면, 오늘날 교회에 필요한 것은 깊고 새로워진 개인적인 경건과 세상에 대한 열성적인 관심을 결합하는 영성이다. 영성 이해와 영성 훈련을 위한 탁월한 안내서인 본서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에서 게리 토마스는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 그리고 그 분을 섬기고 사랑하는 길의 다양함을 설득력 있게 펼쳐 보인다. 놀라운 통찰이 곳곳에서 빛나는 이 책은 영성에 관한 오해와 혼란으로 길을 잃은 사람들에게 명쾌한 답과 지침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양한 영성의 색깔이 있음을 상세히 진술하고 있다. 그것은 자연주의 영성, 감각주의 영성, 전통주의 영성, 금욕주의 영성, 행동주의 영성, 박애주의 영성, 열정주의 영성, 묵상주의 영성, 그리고 지성주의 영성이다. 다소 도식적인 분류라고 느낄지 모르지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명제는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다양하고, 따라서 각자의 영적 성숙의 길도 동일하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리스도인이 영적 양식을 섭취하는 방식이 매우 다양함을 성경과 교회사와 기독교고전 그리고 그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 신앙고전을 읽고 그의 여정을 남들과 나누면서 하나님과 친밀해질 수 있는 다양한 길들을 발견했다. "교회사나 신학을 공부하는 것, 찬송가를 읽거나 부르는 것, 춤추는 것, 숲 속을 거니는 것 등이 그 좋은 길들이다"(23쪽). 저자에 의하면 사람들에게는 다양한 '영적 기질'이 있고,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신앙을 드러내는 방식도 사람마다 다르다.
둘째로, 이 책에서 우리는 각자의 두드러진 영성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매 장마다 각자의 영성을 발견할 수 있는 체크리스트가 있어 자신의 영성을 알 수 있게 한다. 각각의 영성에 대한 점수를 통해 영적 기질을 파악할 수 있고, 이를 기초로 하여 독자는 '영적 성장 종합계획'을 세울 수도 있다. 자신의 두드러진 영적 성향 또는 영성을 아는 것은 장기적인 시각에서 자신의 신앙을 돌볼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영적 지도자는 획일화된 '영적 돌봄'의 틀에서 벗어나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는 분별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통찰을 가질 때, 독자는 마치 새로운 영적 지평이 열리는 듯한 희열을 맛보게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분별력과 통찰은 건강한 교회공동체에 역동성과 활력을 더해줄 것이 분명하다.
셋째로, 본서는 온전한 영성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혀준다. 오늘날 '영성'이라는 말은 충분히 정의되지 않고 남용되고 있는 듯 하다. 심지어는 비성경적인 주장이 담긴 책도 '영성'이라는 제목으로 독자의 시선을 끌려고 한다. 사실 '영성'에 관한 체계적인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본서는 아주 유익한 '영성 지침서'의 역할을 해줄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온전한 그리스도인은 이 아홉 가지 영성을 골고루 소유한 사람이다.
성숙한 신앙생활을 위해 자신의 영적 색깔을 알기 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과 목회자, 그리고 각분야의 지도자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인상깊은구절] 우리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기회의 광활한 박물관 안에 살지 않고 방 한쪽 좁은 구석에 스스로를 가두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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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성’이라는 단어에 매우 큰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책을 처음부터 읽고 보고서를 쓰는 것이란 쉽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영성이라는 단어가 매우 친숙하고 기독교계에서 널리 쓰고 있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영성 있는 목회자’, ‘저 사람의 영성’, ‘뛰어난 영성’ 등의 말들을 들을 때 내면 깊숙한 곳에서 불편함이 올라왔다. 왜냐하면 그러한 영성을 판단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를뿐더러 겉으로 드러나는 표면적인 것들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영성’이라는 반감을 가진 한 청년에게 적어도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하나의 제목 그 이상의 긍정적인 값어치를 남겨주기에 충분했다. 29p의 “하나님은 당신을 특정한 성품과 특정한 영적 기질의 소유자로 지으셨다.”라는 저자의 말은 사람의 영성이 가지각색이라는 측면에서, 자신과 누군가의 영성을 살필 때에 긍정적이고 다양하게 볼 수 있다는 너그러운 시각을 가지게 했다.
9가지, 자연·감각·전통·금욕·행동·박애·열정·묵상·지성의 영성 중에서 나는 묵상주의 영성이 가장 높게 나왔다. 26점이었고, 그 다음으로 지성주의 24점, 자연주의 22점, 긍휼주의가 21점으로 뒤를 이었다.
사실, 각 영성의 항목 마다 매우 높게 나온 점수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내게 전통주의 영성은 14점으로 매우 낮게 나왔지만, 전통주의 항목 중에서 “교회 내의 개인 주의는 정말 위험한 것이다. 기독교는 공동체적 신앙이다”는 것은 5점으로 가장 높게 나왔다. 행동주의 항목에서 “나는 교회의 무관심을 깨우고 싶다”는 것 또한 5점으로 나왔다. 행동주의 영성이 말하는 것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동일하게 ‘교회의 무관심을 깨우고 싶다’라는 막연한 혈기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확인한 매우 부끄러운 점수라고 생각한다. 열정주의 점수는 17점으로 매우 높은 점수는 아니다. 그 중 “축제와 기쁨 같은 말이 강하게 와닿는다”는 5점이 나왔다. 이를 통해 내가 축제와 같은 삶을 추구하는 것과 예배는 삼위하나님과 성도와 성도간의 잔치라는 예배관을 가지고 있는 것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묵상주의에서 가장 크게 동의했던 점은 하나님의 임재를 의식하며 정말 자주자주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는 측면이다. 행위로서의 ‘기도’ 보다 ‘존재’로서의 기도는 하나님과의 함께함을 사모한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묵상주의와 자연주의와 긍휼주의 영성이 높게 나온 이유를 짚어보면, 어렸을 적 자라온 환경의 영향인 것 같다. 나의 인격과 하나님을 만난 체험과 신앙의 성숙이 이루어진 유년, 소년, 청소년 시절은 충청남도 대천이란 곳에서 시작되었다. 어촌과 농촌 그리고 관광도시로 어우러진 곳에 아버지의 개척목회가 이루어졌고, 개척 사역에 나도 성도로서 함께 하였다. 집 앞의 꽤 넓은 텃밭과 개구리 소리가 나던 논, 많은 곤충들이 자라던 옆집의 넓은 콩밭,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던 큰 공원, 20분 거리 안의 저수지에서 느낄 수 있었던 자연의 속삭임이 늘 나의 귓가에 있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에 대한 탐구는 북적북적한 곳의 시끄러운 노래나 격식이 있는 예배, 그룹 공부보다 훨씬 재미있었고, 흥미로웠다.
열여덟 살, 14년간 목회하시다가 소천하신 아버지의 부재는 한 집안의 장남이 가져야할 많은 책임과 무거운 것들을 가져다주었다. 이 때 이후 이십대 중반까지 나는 혼자서 조용히 하나님과 만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 특히 내 안에 깊이 자리 잡은 슬픔과 절박함, 공허함, 분노 등에 대해서 외부적 요인으로 이겨내거나 누르지 않고 내적인 싸움과 묵상과 기도로 이겨내었다. 이러한 것들이 아마도 의지할 곳 없던 청년의 묵상주의 영성이 자리 잡게 된 배경인 것 같다.
소년, 청소년 시절 나의 교회는 지나가는 누구나 들어와서 기도하고 가기에 알맞은 곳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꽤 자주 밥을 굶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어머니가 해주신 밥을 먹고, 여행하던 사람들이 찾아와서 잠시 쉬었다가는 곳이었다. 그 때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사람들에게 베푸신 모습들은 내 안에 자리 잡은 긍휼의 시작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제대 이후 신학과 3학년부터 시작된 지적 탐구와 학문적 넓이를 넓혀가는 일에 대한 기쁨을 알게 되었다. 특히 강의시간과 이 후 개별적 과제시간에 몰두했던, 하나님에 관한 신학적 탐구는 큰 기쁨을 주었고, 내 안에 정립되지 않았던 추상적인 개념들이 신학적 개념으로 정의 될 때 희열을 느꼈다. 묵상주의, 자연주의 배경에서 자라난 뒤 새롭게 시작된, 교리와 성경을 깊이 탐구하여 얻는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는 기쁨은 내게 있어 다채로운 지성주의 영성을 가지게 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현재까지도 유효하게 이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러 영성의 개발 측면에 있어서, 특히 묵상주의 영성의 개발은 바쁜 사역의 현장 속에서 하나님과의 독대하는 시간이 많이 부족하여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자연주의 영성 또한 눈앞에 닥쳐진 여러 과업과 사역들을 쳐내다 보면 그것으로 위로나 평안이 잘 찾아오지 않는 것을 느낀다. 한 마디로 지친 가운데에서 다른 것이 아닌 많은 잠과 쉼과 돌아봄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지성주의 영성은 휴식이 필요한 가운데, 하나님에 대하여 알게 하고 새로운 것들을 아는 기쁨으로 그 휴식을 대체하게 만든다. 사실, 최근에 능동적 묵상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지금의 나에게 하나님께서 만드신 자연 안에서 그분의 임재를 느끼고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이 정말, 정말로 절실하다. 피조물이 피조세계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일하심을 보지 못하고 자꾸만 놓치는 것은 너무나 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해내야만 하는 문장과 단어들을 죽 늘어놓기만 하고, 그 단어를 내 안에서 숙성시키고 깊은 곳에서 길어내는 작업들의 기간과 횟수와 수고가 줄어드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루 2시간 이상 이러한 시간을 만들어 내야만 하고, 이것을 위해서 다른 부수적인 디지털 매체와의 단절과 필요이상의 만남들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주말 사역이외의 시간에 교회 앞 뚝방길을 따라 자전거 타기를 시작했다. 5월의 아카시아 향도 맡고 비 맞을수록 무섭게 자라는 푸른 것들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이다. 내적인 노력으로서 사역의 준비 또한 부단히 내일과 그 다음 내일을 보며 미리미리 준비하고 쳐내는 부지런함 또한 필요한 것 같다. 매주 월요일 새벽기도 설교문을 학교로 가져왔고, 유치부 설교 또한 3주치 앞까지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
앎의 시간은 이미 주어진 일주일에 20시간 이상의 주입되는 시간 말고, 스스로 찾고, 스스로 밟아나가는 단계를 시작해야한다고 생각한다. 푹 탐구의 시간에 빠질 수 있는 월요일 저녁 시간과 목요일 저녁 시간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의 책은 일에 치여 피곤과 무력함의 지우개로 여러 영성의 색깔을 지워가고 있는 나에게 구체적으로 영성색깔 덫 칠의 계획을 안겨 주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새롭게 하자’라는 개인적인 다짐과 용기를 북돋아 주어 참 고맙다. 여전히 영성이란 단어에 대해 거부감이 들고 불편함이 있지만, 지금 나의 위치를 잘 알려주고, 신학생으로서 방향을 잘 설정하게 해준 이 책을 읽는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2019년 가을에. |
| 늦은 밤, 온전히 나만을 바라보는 은은한 사랑의 눈빛을 느끼며 마주한 그 분 앞에 수줍지만 속삭이며 고백한다. 맑은 하늘이 머리 위로 배경처럼 그려질 때 물씬 밀려오는 그리움으로 하늘 향해 간절한 마음을 날려보낸다. 그 분의 손길이 느껴지는 책 장을 만지고 공유하다보면 더 알고 싶은 갈망이 솟아오른다. 이것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이며 친밀한 관계를 맺어가는 삶이다. 게리 토마스의 ''영성에도 색깔이 있다''에선 하나님과 친밀해지는 방법을 사람마다 가진 영성의 기질에 따라 9가지로 분류했다. 각 장마다 몇 가지 질문들로 자신이 가진 영성의 기질을 체크해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내 경우는 묵상주의, 지성주의, 자연주의, 금욕주의 순으로 점수가 높았다. 자신에게 맞는 영성의 기질은 더 발전시킬 수 있다. 가꾸고 다듬어가면서 하나님과의 풍성한 관계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직장을 다니며 혹은 바쁜 일정에 분주하다 할지라도 내 영성을 충만하게 가꾸기 위해선 하루 중 하나님 앞에 홀로 서는 일정한 시간을 누려야하며, 책과 말씀을 꾸준히 읽으면서 지성의 바다에 빠져야 할 것이며, 가끔은 자연 속으로 들어가 임재하신 그 분의 손길을 기뻐하고, 심플한 삶으로 돌아가 잡다한 욕심들을 버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계획하는 것도 좋다. 피곤할수록 왜 철야예배에 가고 싶어지는지 늦은 밤 홀로 벽을 보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는지 산에 오르며 바람과 숲의 향기를 느낄 때 마음이 충만해지는지 하나님을 더 알게 해 주는 책을 읽을 때 마음이 그토록 잠잠해지는지를 이 책을 통해 알았다. 영성은 한 순간에 피어났다가 사그라지는 것이 아니다. 평생에 걸쳐 아름답게 지켜나갈 삶이다.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다. 역시 난 지성주의가 맞다. 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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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양식을 원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똑같은 획일적 방법이 주어질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19쪽)
‘하나님은 누군가 남이 원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진짜 당신’을 알기 원하신다. 그분은 당신을 특정한 성품과 특정한 영적 기질의 소유자로 지으셨다. 그리고 그 지으신 방식에 따라 예배 받기를 원하신다.’ (21쪽)
‘하나님이 지어 주신 모습에 맞게 그분께 예배드릴 때 우리는 그분의 창조 사역을 인정하는 것이다.’ (24쪽)
‘영성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말해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 맺는 방식, 그분과 가까워지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그 길은 하나뿐일까? 꼭 그렇지 않다.’ (28쪽)
이 책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양한 모습으로 창조하셨듯이 영성도 다양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되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남과 다른 자신의 모습 때문에 실망을 할 필요도, 다른 사람을 판단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믿음을 담는 마음의 그릇은 저마다 다르지만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의 믿음의 본질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모습에 맞게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그분의 창조 사역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작가의 말에 큰 도전이 되었다.
책을 읽으며 나의 영적 기질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실 단 하나로 내 영성을 규정짓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내가 이상적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내게도 몇 개의 영적 기질들이 복합적으로 있는 것 같다. 묵상주의 영성, 금욕주의 영성, 지성주의 영성, 박애주의 영성 등. 이 책을 통해 서로 다른 영적 기질들에 대한 관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과 함께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지음 받았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앞으로 하나님과의 더욱 긴밀하고 뜨거운 관계 회복을 위해 좀 더 마음을 모으고 시간을 투자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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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에니어그램 숫자 순서와는 다릅니다.
즉 책에 나오는 1번, 2번...이 에니어 그램의 1번, 2번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몇가지는 확실히 에니어그램의 성격 분석과 동일합니다.
지은이가 에니어그램과 연계하려다가 실패한 것인지도 모르겠지요.
책이 약간 짜임새가 견고하지는 않다는 느낌입니다.
뭐가 약간 부족한 느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