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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나무와 함께한 시간은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다시피, 자연을 담은 힐링 에세이다. 자연을 담은 글 담게 글이 참 편안하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고요하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정신없는 나의 삶에 피톤치드 향을 얹어준 느낌이랄까? 이 책의 화자는 상수리 나무 옆에서 큰 위안을 얹고, 또 삶의 진리를 깨닫고, 더불어 나아갈 용기를 얹는다. 나 또한 책을 읽으며 상수리 나무에게서 많은 위로를 얻게 되었다. 누구든지 이 책을 읽는다면 큰 위안을 얻을 수 있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책을 읽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수리 나무가 우리에게 이렇게 위안과 위로를 안겨 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수리 나무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우리에게 기댈 여유를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것이 너무나도 빠르게 변해가고 있는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그 변화에 발빠르게 적응해아 한다. 사실 요즘 나는 '열심히 살지 않으면, 바쁘게 살지 않으면 지는거야!' 혹은 '지지 않기 위해서는 죽기살기로 열심히 살아야 돼'라는 다소 무서운 생각을 갖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상수리나무는 굳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어쩌면 변화하지 않아도, 움직이지 않아도, 조급하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상수리 나무는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들 그런 경험 하나씩은 갖고 있을테다. 아무말도 없이 내 말을 들어준 누군가가 조언 100마디를 해준 사람보다도 더 큰 위로가 되었던 그런 경험. 말을 그저 듣기만 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거리는 상대방을 보면서 오히려 큰 안정감을 느꼈던 그런 경험. 이 책이 나에게는 그런 존재였다. 직접적인 위로를 전해주고 있지 않지만, 그저 책이 풍기는 그 따뜻하고 온화한 분위기 (일러스트가 그 분위기에 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한다ㅎㅎ) 가 나를 어루 만져 주었던 것 같다.
월 한 달동안 정말 말 그대로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냈었다. 내 몸은 모든 걸 잘 해내고 싶다는 내 의지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아 서러운 날들이 요즘 유독 많았던 것 같다. 소위 대2병이라 불리는 감정탓인건인지... 하여튼 종강을 앞두고 있는 요즘 무기력함이 나를 사로잡았던 것 같다. 그런 무기력함 속에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상수리나무와 함께한 시간. 책의 표지가 참 좋았다. 보고 있기만 해도 마음이 안정이 되는 것만 같은 표지.
사실 책을 본격적으로 읽기도 전에 책의 표지만 몇 분동안 바라보았다. 내가 자연풍경을 -아니 자연풍경과 같은 거창한 단어도 사용할 것 없이- 내가 하늘을 바라보았던 게 언제였더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중고등학생때만 하더라도 친구들과 하늘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나의 일상이었는데 뭐가 그리도 바쁜지, 뭐가 그리도 조바심이 나는 것인지 나 자신에게 하늘 볼 시간조차 주지 않는 나 자신을 그 순간 발견할 수 있었다.
꼭, 여러분들도 이 책을 읽어보시길...! 책 속에서 가득 느껴지는 피톤치드의 향, 흙의 냄새, 방금 비에 젖은 풀의 내음을 느껴보시길 바란다.
이 책이 여러분을 자연의 중심으로 이끌테니 말이다. 상수리나무의 품에 안겨, 그의 오돌토돌한 감촉을 느끼며, 귓가에서 울리는 새 소리를 음미해보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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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수리 나무에 손을 가져다 대본다. 그 느낌, 거기서 솟아오르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오랜 상수리나무에 손을 대고 있는 동안 어떤 변화가 생길까. 그 느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는 한 생물 종과 다른 생물 종, 한 개체와 다른 개체 사이에 이뤄지는 접촉에 얼마나 중요한 가치가 있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다른 생물 종과 접촉할 때 전해지는 생명력의 감각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익숙하지만 그것을 말로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그 감각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구절이 꽤나 길지만, 말과 표현이 너무 좋아서 있는 그대로 실어 보았다. 감정, 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면 그 상황을 글로 상세히 묘사해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대개 새로운 환경을 마주하거나 처음 경험할 때, 그 순간을 기억하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우리 주변의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자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 의미를 곱씹어보면, 우리 주변의 것들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가치를 담아낸다. 일상에서는 나무를 만져볼 기회도, 생각도 하기 쉽지 않고, 설령 그러한 기회와 생각들이 주어진다고 해도, 이를 ‘하나의 생명과 다른 생명이 만나는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상수리나무와 함께한 시간’의 이 구절이 마음에 들었다. 나에게 새로운 관점을 부여해주었고, 정말 의미를 곱씹어보게 만들어주었다. 나무의 껍질을 쓰다듬는 일, 꽃의 향기를 맡는 일, 그리고 함께 계절을 보내며 달라지는 나무의 모습을 관찰하는 일. 이 모든 게 경이롭다고 할 수 있는 생명과 생명 간의 만남, 소통인데, 너무 바쁜 현대 사회로 인해 이와 같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어 아쉽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나에게 너무나도 힐링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초록색의 이미지가 머릿속에서 그려졌고, 흥미롭게 읽다가도 만약 시간적 여유가 된다면 숲이나 나무가 많은 공원에서 읽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그래서 나는 책을 사랑하는 분들이 요즘 같이 힘든 상황을 이겨내야 하는 스스로가 너무 힘겨워 보일 때, 한 번 시간을 내서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내 시간과 마음 등을 이 책에다가 투자한다고 생각하고, 꼭 꼼꼼히, 세밀하게 표현 하나 하나를 느끼면서 읽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 ‘상수리나무와 함께한 시간’을 읽은 후로 숲의 이미지를 자주 떠올리게 되었고, 간절해졌다. 이번 여름 방학에는 꼭 꼭 한 번은 숲이 우거진 곳으로 여행을 가야지! 모두들 주변의 그 무언가 (생명력을 지녔으면 좋겠다는 나의 개인적인 바람) 와 더욱 더 친해지고, 많은 것을 공유하는 삶을 살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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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기억이 시작되는 다섯 살 무렵을 고흥군 금산면에서 보내서 그런지, 초등학교 저학년이 되어 도시에 오고 나서도 나는 여전히 시골의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20년 전 쯤 금산의 풍경은 애니메이션 '토토로' 속 사츠키와 메이가 살던 마을과 닮았다. 거대한 고목 나무가 있고, 어딜 가나 벌레 투성이고, 슬리퍼 차림으로 시내를 터벅거리는 아이가 있는 곳.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고등학교의 등교길에는, 가로수로 벚나무와 동백나무를 심었는데 봄이면 벚꽃이, 겨울이면 동백꽃이 장관을 이루었다. 잎이 아닌 꽂 자체가 낙화하는 동백꽃을 보면서는 어린 마음에 충격도 받았다. 원고를 붙잡고 씨름하는 사츠키와 메이의 아버지처럼, 나 역시 먼 훗날 도시에서 시골로 돌아가 자연을 '벗 삼아' 살 수 있길 바랐다. 그런데 4년 쯤 전에, 아버지의 차를 타고 다시 다녀온 금산은 예전과는 전혀 달랐다. 다섯 살 내게 거대하기만 했던 벚나무는 평범하기 그지 없었고, 다리가 생긴 뒤로 관광객도 사람도 많아져 예전의 적막함은 사라졌다. 언제나 어린 시절의 낙원을 그리워하던 나보코프가 소련이 해체된 뒤에도 고향 러시아로 돌아가지 않은 이유가 이해된다고 하면 조금은 과장일까. 그래도, 시골을 떠올리는 요소들은 언제나 내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었다. 낮은 산을 앞뒤로, 논과 밭이 즐비한 호남의 평야는 이따금 오가는 트럭을 제하면 손님도 관광객도 그리 많지 않다. 올해 초 담양 일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더더욱 느꼈다. 코로나에, 사무치는 계절에, 더욱 줄어드는 관객과 제멋대로 문을 여는 가게. 롱패딩을 입고 펭귄처럼 뒤뚱뒤뚱 걷고 있으면 (점심 시간엔 한가해서 주로 산책을 했다) 가까이선 물까치가 무리 지어 날아다니고, 저 멀리서는 딱따구리 소리가 나고, 처음엔 그게 무슨 소리인가 하다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딱따구리가 열심히 나무를 뚫고 있는 소리인걸 알게 되면 보이지는 않아도 많은 생물이 살고 있구나. 감탄하게 됐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다지만 무수한 나뭇잎 아래서도 그 말이 통용되던가. 더운 여름 날, 햇빛 대신 하늘을 뒤덮은 푸른 잎사귀 속을 거닐다보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조용히 또 불현듯 슬픈 기분이 든다. 어쩌면 그것이 제임스 캔턴이 말한 사토리의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800년의 세월 동안 겨울이 되면 시들었다가, 봄이 되면 싹이 돋아나 너른 그늘을 만들어주고, 애벌레, 벌이 윙윙 오가는 집이 되고. 까칠까칠한 나무 껍질에 손을 대고 있으면 새끼손가락만 한 개미가 줄기를 타고 오가는 장면을 제법 보았다.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나무가 별과 같은 원리로, 그곳에 있어주기 때문에 위로가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숨 쉴 틈도 없이 사람들이 쏟아졌던 도쿄, 아름답지만 외로웠던 요코하마, 메뚜기 떼 같은 관광객이 쓸고 지나가 더는 옛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던 고향, 못지 않게 외로운 도시 서울…… 눈 깜짝 할 새 바뀌어 있는 가게와, 장식처럼 존재했던 나무들로는 느낄 수 없었던 감각을 독서를 통해 느끼게 되다니. 어쩌면 독서도 나무처럼, 거기에 있는 것을 읽어내리는 과정이라 즐거운 건지도 모르겠다. 자연적 글쓰기의 전문가인 작가의 역량일 수도 있고, 아무튼 참 신기한 일이다 싶었다. 그저 읽는 것 만으로도, 브리튼 섬의 어느 벤치에서 오크 나무를 바라보는 기분이 들었으니까.
튼살처럼 흉터를 간직한 나무 줄기를 쓰다듬는 작가처럼, 나도 나무에 머리를 기대고 때때로 쉬어가고 싶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벚나무를 바라보던 기억을 잊지 않고 싶다. 비록 고향의 벚나무는 폐교와 함께 영영 사라져 다섯 살 꼬마의 마음에만 존재하게 되었더라도, 책갈피처럼 눈을 감으면 언제든 돌아갈 수 있으니까.
#한길사#상수리나무와함께한시간 #제임스캔턴#나무#숲#한길사대학생서포터즈#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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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어본 자연 관찰 에세이였는데, 생각보다 너무 괜찮았다
한없이 넋을 놓을 수도, 끝없이 깊은 생각에 잠길 수도 있는 책! 풍경에 대한 묘사가 자세하고 섬세해서 집중력이 좋지 않은 편임에도 글 속 풍경이 눈 앞에 보이는 것처럼 생생했다. 사실 '힐링'이라는 단어가 그닥 와닿지 않는 요즘인데 오랜만에 힐링다운 힐링을 한 것 같다. 글의 힘은 정말 대단해!
분명 자연 에세이인데, 어쩐지 인문학 책을 읽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저자는 말한다. 상수리나무는 인간이 살아가는데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처음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는데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삶의 방향을 잃은 것 같을 때, 도저히 인생이라는 문제의 답이 보이지 않을 때 우리는 말 없이 상수리나무를 바라보면 된다. 인간 역시도 자연에서 비롯된 존재이기에 때로는 자연에게서 답을 찾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언어를 잊고 나무와 풀과 하늘과 소통하는 순간 어쩌면 진정한 인생의 답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믿고 싶다. 언젠가 높은 빌딩이 아니라 커다란 나무를 바라보며 같은 생명으로서의 공감을 나눌 수 있기를
상수리나무와 함께 살아가는 나날들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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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나무라는 특정 주체를 관찰하고, 감상하고 그로부터 발현된 감정을 돌아보는 내용이다.
물론 일차원적인 숲과 나무, 생물에 대한 묘사내용도 서술되어있다. 자연 에세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읽어볼 수 있었다. 언제 상수리나무에 대해 이렇까지 자세하고 오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 싶다.
생물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닌지라 지식이 짧은데 각주 설명이 있어 다행이었다. 좀더 자세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중간중간 그려진 일러스트가 책의 분위기를 더해준다. 일러스트 자체를 한참 져다보게 되기도 하고 여기에 내 상상을 더해보기도 하고 그 속에 들어가보기도 한다.
무언가 하나를 오래도록 들여다보는 자새. 능력을 인정해주고 좋은 점을 배우고 싶어하는 마음. 나도 그런 태도를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위엄 있는 평정심"과 온유함은 나도 상수리나무에게 배우고픈 자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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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리나무와 함께한 시간>은 영국 에식스 대학에서 자연문학 글쓰기를 가르치는 제임스 캔턴이 800년 된 상수리나무, 호니우드 오크(Honywood Oak)를 관찰한 책이다. 영국 마크스 홀 에스테이트에 서식하는 호니우드 오크는 이리저리 옮겨 심어지고 벌목되는 나무의 운명을 거스르고 한 자리에서 800년을 산 나무다. 상수리나무는 약 2,600만 년 전 제3기 말엽 이후부터 이 지구상에 존재해왔다. 북반구를 가로질러 생존해온 인류의 역사는 상수리나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글의 필자는 상수리나무를 통해 많은 위로를 받았으며 자연의 신비 또한 함께 느끼며 자연에 대한, 상수리나무에 대한 안녕을 바란다.
한 그루 노목을 잃는 것은 삼림지대 군락지 전체를 잃는 것과 다름없다. 하나의 오래된 나무는 박쥐, 곤충, 새, 곰팡이, 초목 등과 같이 복잡다단한 다수의 동식물 집단에게 집과 같은 존재다. 나이 든 상수리나무는 어떤 나무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폭넓고 다양한 생태계 동식물들에게 집주인 노릇을 한다. 기껏해야 몇 밀리미터나 될까 말까 한 거미가 3센티미터나 되는 거미줄 위에서 줄타기를 하며 지나간다. 극소 생명체의 세계다. 엄연히 상수리나무의 모서리와 틈새에 존재하며 살아 움직이는 실제의 우주다.
우리는 자연의 일부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연과 분리된 듯 살아가고 있다. “도끼에 베인 상수리나무는 쓰러지기 전에 끔찍한 비명이나 신음 비슷한 소리를 낸다. 그 소리는 1킬로미터 밖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다. 마치 상수리나무에게는 통곡하는데 남다른 솜씨가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필자는 숲에 우두커니 서서 파헤쳐진 나무 그루터기를 내려다보며 벌목당해 쓰러질 때 마다 울부짖었을 상수리나무들을 떠올린다.
‘모두가 인간을 보면 달아난다. 모든 생명체가 사람과 마주치면 무조건 달아나고 봐야한다는 깨우침에 몸에 배어있다. 상수리나무가 베어지는 동안 인부 두 사람이 받쳐 든 체인 톱, 상수리나무를 험악하게 내리찍는 도끼, 묵묵하고 흔들림 없이 목표에만 매진하는 사람들의 표정 등에 필자의 모든 감각이 휩쓸려간다. 인간의 욕심은 그 살집을 단단히 파고들었을 테고, 결국에는 뿌리에서 나무 전체를 베어내기에 이르렀으리라. 하지만 여전히 상수리나무는 숨을 내쉬고, 그렇게 내쉴 때 마다 자란다. 그러면서 강건함, 용기, 슬기, 노숙한 현자의 풍모 등과 같이 종종 이 땅의 사람들이 기대하는 자질에 부응하려 스스로를 가다듬는다. 상수리나무는 언제 봐도 의연하게 평소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사회적 형태를 확립하고 발전시켜 번창한 지역에는 어느 곳이든 그들 가까이에 상수리나무가 서식하고 있었다. 나무들은 이 땅에서 수백 년 동안 살아왔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여러 세대에 걸쳐 수 세기 동안 그 가지 밑에 머문 체험을 이어왔다는 의미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무를 거쳐가는 사람도, 어떠한 순간도 점점 다르고, 많아졌겠지만 모두 나무와 상생하며 위로를 받았다는 것은 분명한 공통점일 것이다.
이 책은 자연을 느끼는 방법을 알려준다. 필자는 호니우드 오크의 품에 안겨있을 때에는 정적만이 감돈다고 했다. “정적이 살금살금 주변에 스며들면, 다른 모든 소리는 서서히 잦아든다. 자연은 고요하다. 자연이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은 늘 있는 일이 아니다. 눈 내리는 순간의 숨죽인 침묵이 얼마나 인상적인지 한번 떠올려 보라. “ 이렇게 우리는 자연 앞에서 가만히 잠자코 있는 법을 익히고 귀 기울여 듣는 법을 터득한다.
우리가 경각심을 품고 살지 않는다면, ‘언젠가 또 다른 사람들이 체인 톱을 들고 나타나 이 땅에 살고 있는 상수리나무의 남은 몸통마저 베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이제 상수리나무 묘목을 보호해주지 않는다면, 앞으로 두 번 다시는 거대한 상수리나무를 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
우리 스스로 삶의 터전을 보호한다면 우리와 뺨을 맞대고 살아가는 것과 다름없는 이 세상의 여러 생명체들을 보살필 수 있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방법을 함께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나무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개별체로 다가올 때 그것을 되새겨보는 명상의 순간 속에서, 이토록 깊은 평화의 체험 속에서 어떻게 당신이 나무와 교감하는지와 관련하여 분명 뭔가가 거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