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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세월을 마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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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마지막인 1866년에서 1910년까지의 세월을 온갖 역사적 사료와 함께 마치 현실 세계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마주할 수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조선의 마지막을 다시 마주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혼란스러운 시기와 조선의 마지막을 병립시키며 마주한 것은 다시 1997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던 그 아픔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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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마지막인 1866년에서 1910년까지의 세월을 온갖 역사적 사료와 함께 마치 현실 세계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마주할 수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던 조선의 마지막을 다시 마주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혼란스러운 시기와 조선의 마지막을 병립시키며 마주한 것은 다시 1997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던 그 아픔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공과 과가 극명하게 나뉘는 사람이다. 당시로선 국가 주도의 산업화 정책과 수출 위주의 국가 경쟁력 개발을 밀고 나가기 위해선 어느 정도까진 강력한 대통령제가 필요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선 이후 유신체제까지 나간 것은 정도 이상의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또한 김영삼 대통령도 군부의 하나회 쳑결이나 금융실명제 도입, 조선총독부 건물이던 중앙청의 철거, 남산의 아파트 철거 등 수많은 업적을 세웠음에도 마지막에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도록 만든 결정적 실책을 남긴, 9가지를 잘하고도 마지막 1가지를 잘못한 그런 대통령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진영은 이인제가 대선에 출마해서 보수층의 투표율을 깍아먹지 않았다면 결코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대한민국은 보수화, 우경화되어 있으며, 그 어떤 실책을 저질러도 자신을 보수 지지층이라고 자칭하는 30%의 국민들이 존재한다.

 

1860년대 조선은 이미 중국이 아편전쟁을 겪고 베이징조약을 통해 서구권 나라들인 영국, 프랑스, 러시아에 개항을 한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중국을 통한 미국과 프랑스 함대의 공격을 받아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는다. 고종이 재위하고 있었지만 섭정을 하고 있던 대원군으로선 왕권의 강화라는 현실적인 이유때문에 서구권과 교류하기보다는 척화비를 세워 그들과의 단절을 했을 것이다.

 

병인양요를 겪으며 프랑스가 가져간 외규장각 도서는 우리나라가 TGV를 고속철도로 도입하면서 반환이 되기는 하지만 실제 소유권의 이전이 아닌 영구임대의 형식을 띄게 된다(5년을 주기로 계속 갱신하기로 함). 아마도 이것은 유럽의 많은 제국들이 약탈로 수탈한 다른 국가들의 문화재들에 대해서도 같은 요구를 받을 수 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다.

 

그런데 TGV를 도입하면서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당시에 국제적 협력으로 이루어지는 HGP(Human Genome Project)에도 우리나라가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나중에 이 Project가 완성되어 논문에 실릴 때, 우리나라 학자도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당시 프랑스로선 우리나라의 과학 기술력을 믿을 수 없어서 각 나라에 분담시킨 영역을 우리나라에 맡긴 것이 아니라 각기 두 나라에 배정된 영역을 우리나라에 맡겨 Sequencing을 하도록 했었다. 그런데 그 두 나라에선 Gap으로 인식하여 읽지 못한 부분을 우리나라에선 읽어냈었다. 결국 그 부분에 대한 검증이 들어갔고, 나중에야 우리나라가 읽어낸 것이 맞다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 논문은 어느 대학의 교수 채용에 있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알고는 있어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슬픈 사실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하신 83학번 여자 박사님, 죄송합니다.

 

그럼에도 불과 10년만에 메이지 유신을 통해 막부시대를 종료하고 천황을 중심으로 한 일본 정부와 강화도 조약을 맺으며 개항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곧 이어 미국, 영국, 독일 등과도 통상조약을 맺게 된다. 척화비를 세운지 불과 5년만에 일본과 수호조약을 맺었고, 서구권과의 통상조약도 곧이어 맺게 되는 것이다. 이는 조선을 대원군이 집권하던 시대에서 고종이 친정으로 나서는 변화와도 맞물려 있다.

 

임오군란에 대해선 역사적 사료들로 그 과정을 설멍하고 있다. 허나 이런 우리 군인들의 저항으로 인해 외세는 직접적인 군사력을 조선에 투사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조선에서 우선권을 가지고 있었던 청나라와 이곳에서 새로운 거점을 찾고자 했던 일본이 가장 직접적으로 부딛히게 된다. 이는 동학농민운동에서 결정적으로 부딛히게 된다. 조선 관리의 실정으로 인해 빚어진 민란을 외세의 힘으로 제압하려 했었던 고종의 결정적인 실책은 훝날 청일전쟁으로까지 이루어지게 된다.

 

훝날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은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기도 하지만 이는 2차 평화회의였다. 먼저 1898년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가 먼저 군비 제한과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열강들의 회의를 제안한다. 하지만 이는 실제적 평화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제국주의의 팽창으로 인해 군비의 급진적 증가를 억제하고, 국가간 전쟁을 함에 있어 먼저 선전포고를 함을 제안하였을 뿐이다. 이는 그 전에 있었던 청일전쟁에서 일본은 선전포고 없이 먼저 선제공격을 통해 전쟁의 우위를 확보하였었고, 이는 훝날 러일전쟁에서도 마찬가지로 이루어졌다. 이는 이 책에서는 다루지 않는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미국 하와이에 대한 공습에서도 선 폭격, 후 포고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이런 상대방에 대한 기습은 일본인의 종특이라고나 할까.

 

이 책에서는 민비의 시해는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지금은 뮤지컬 명성황후로 유명하기는 하지만 실제로 그녀는 조선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기 이전에 사망했으므로 황후라는 명칭은 추존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는 자신의 일족을 조선의 중요 직책에 앉혀 실권을 휘두르는 만행을 저질렀을 뿐이다. 그녀가 끼친 해약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지금의 세월에서 명성황후로 존칭되는 것이 우스을 따름이다.

 

수명을 다해가던 조선은 대한제국을 선포하였지만 제국의로의 면모를 갖추기엔 늦은감이 있었고, 조선의 이권들은 서구 열강들에게 이미 다 빼앗긴 상태였기에 국력을 키울 수 없었다. 청일전쟁을 통해 조선에 대한 우선권을 일본제국이 가질 수 있게 되었고, 그나마 견제장치로 작동할 수 있었던 러시아마져 러일전쟁의 패배로 인해 더이상 조선에 영향을 미칠 수 없없다. 아관파천은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전 조선의 고종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긴 했었으나 러일전쟁의 결과는 일본의 우선권을 공고히 해 주었다. 그나마 조선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지는 미국이 있었으나, 이는 가쓰라=테프트 밀약을 통해 서로에게 필리핀과 조선에 대한 우선권을 갖는 물밑 협상으로 인해 조선의 선택지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을사늑약의 체결로 인해 외교권이 상실된 대한제국은 더이상 외국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으며, 병합은 시기의 문제였을 뿐이다. 결국 1910년 대한제국은 일본제국에 병합되는 수순을 통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일본제국은 대한제국 활실의 명칭과 대우만을 보장하였고, 대한제국이 사라짐은 오히려 대한민국의 성립이 시작될 수 있음도 의미한다. 이제 조선은 황제의 나라, 제국이 더이상 아니게 되었으며 이는 곧 국민의 나라, 즉 대한민국이 성립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이는 작금 대한민국의 헌법에도 그대로 나와있다. 대한민국은 1919년 상하이에서 성립된 임시정부의 국통을 이어받은 유일한 합법정부인 것이다. 물론 1945년 8월 15일 일본제국의 무조건적 항복으로 인해 조선이 대시금 독립국이 되었으나 미국과 소련에 의해 38도선을 경계로 분할통치를 받게 되었고, 이를 경계로 각기 세워진 두 독립된 정부가 존재하게 된다. 이들 두 나라는 각기 독립적으로 UN에 동시가입됨으로 서로가 인정하지는 않지만 각기 독립된 정부가 된다. 아마도 언젠가 우리가 이루어 낼 통일국가에 있어 어떤 형태를 띄어야 할지 고민이 되기는 하지만 아마도 1국가 2체제 형식의 약한 연합의 형태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1866년부터 1910년까지 불과 50년에도 못미치는 세월은 아주 격동의 시기였다. 한 국가가 왕의 나라에서 활제의 나라가 되기도 했지만 결국 다른 제국으로 병합되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면 한 국가가 어떻게 소멸할 수도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지금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이루어지는 현재 정세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생각없이 정권을 잡은 이가 현재 대한민국을 다스리고 있으며, 이에 기생하는 무리들도 적지 않다. 이런 와중에 자징 보수를 참칭하는 무리들은 친일의 깃발을 휘날리고 있다. 수많은 민중이 깨어 각성하지 않으면 현재의 대한민국이 어떤 말로를 겪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YES마니아 : 골드 e*****u 2023.04.09.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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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사실 설명과 오늘의 의미
"풍부한 사실 설명과 오늘의 의미" 내용보기
풍부한 사실에 입각하여 한반도를 둘러싸고 외세의 동향과 조선 내부의 상태를 날줄과 씨줄 삼아 설명하고 있고 그것의 오늘날의 의미를 시사하는 매우 훌륭한 책입니다.단순히 서세동점의 시기여서가 아니라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의도 신미양요 당시 미국의 의도를 사료를 통해 설명하고 있으며, 이러한 침략 상황을 청나라로부터 통보받고도 조선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있었던 점
"풍부한 사실 설명과 오늘의 의미" 내용보기
풍부한 사실에 입각하여 한반도를 둘러싸고 외세의 동향과 조선 내부의 상태를 날줄과 씨줄 삼아 설명하고 있고 그것의 오늘날의 의미를 시사하는 매우 훌륭한 책입니다.

단순히 서세동점의 시기여서가 아니라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의도 신미양요 당시 미국의 의도를 사료를 통해 설명하고 있으며, 이러한 침략 상황을 청나라로부터 통보받고도 조선이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고 있었던 점 등은 매우 안타까운 역사죠. 그리고 오늘날에도 되돌아 봐야할 지점이고요.
YES마니아 : 로얄 l*******1 2021.09.1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