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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한의학』조선 왕의 질병 속에서 역사의 비밀을 알게 되다
"『왕의 한의학』조선 왕의 질병 속에서 역사의 비밀을 알게 되다" 내용보기
언젠가 TV 드라마에서 허준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전국 시청률 40%를 넘길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드라마였다. 드라마에서 허준이 어의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었는데, 그는 권력을 좇는 의사이기보다는 사람에 대해 측은지심으로 바라보았던게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지 않았나 싶다. 물론 허준의 측은지심과 별도로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었다. 드라마 속에서보
"『왕의 한의학』조선 왕의 질병 속에서 역사의 비밀을 알게 되다" 내용보기

   언젠가 TV 드라마에서 허준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전국 시청률 40%를 넘길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드라마였다. 드라마에서 허준이 어의가 되는 과정을 담고 있었는데, 그는 권력을 좇는 의사이기보다는 사람에 대해 측은지심으로 바라보았던게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지 않았나 싶다. 물론 허준의 측은지심과 별도로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었다. 드라마 속에서보면 어의로서 궁궐내의 왕을 치료하고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왕이 승하하기라도 하면 어의 또한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 그만큼 어의의 역할이 중요했고 왕의 건강이 중요했던 것이다.

 

  이번에 읽은『왕의 한의학』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참고로 해 왕이 처방받은 약을 통해 왕의 질병을 살펴보았고, 왕의 질병을 통해 조선의 역사, 역사속의 비밀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사람에게는 체질도 중요하지만,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가 중요한 것 같다. 당쟁에 휩싸여, 혹은 왕족들의 권력싸움의 한가운데서 버텨오기란 쉽지 않을 것이었다. 

 

  조선의 왕들이 특히 많이 걸린 병이 종기라고 했다. 최근에는 보기 드물지만, 오래전 내가 어렸을때만 해도 종기가 꽤 많았었던것 같다. 고약을 사러 약방에 심부름을 가곤 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가 어렸을때도 종기가 있었던 듯 한데, 조선 시대에서야 더 흔한 질병이었으리라. 종기 뿐만이 아니다. 조선의 왕들은 학질도 많이 걸렸으며 안질, 소갈병(당뇨병)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소갈병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고생했다. 왕에게는 왕의 곁에서 왕의 건강을 보살피는 어의가 있었는데, 어떤 어의가 있는가에 따라 왕을 살리기도 했고, 잘못된 판단으로 왕을 죽음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환자의 역사, 즉 환자가 살아온 삶의 흐름과 이력을 읽고 질병의 함의와 맥락을 통찰하려 한다. 환자가 느끼는 신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이유를 되새기면서 환자의 상태를 수용하고 이해하려고 애쓴다. 한의사는 환자와의 만남을 통해 질병이 던지는 메시지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157페이지)

 

  우리가 흔히 야사(野史)가 진짜 숨겨진 역사가 아닐까 싶다. 야사속에서 많이 나오는 정조 독살설에 대해 나도 어느 정도 사실이 아닐까 싶었는데, 이 책 속에서 정조에게 처방했던 약들과 저자의 설명을 읽다보니 저자가 말한 것이 사실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인삼을 강하게 거부했지만, 정조의 체질을 간과했던 어의의 실수가 정조의 죽음을 부르지 않았는가 말이다. 조선의 왕 중에서 가장 장수한 왕 영조가 특히 인삼을 많이 복용했다고 했다. 인삼의 효능이 아무리 좋아도 정조의 몸에는 맞지 않았다는 것. 아무리 좋은 인삼이라도 결국엔 사람의 체질에 맞게 처방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했다.

 

  왕들의 한의학을 읽으며 조선의 역사에 더 깊이 다가간 느낌이 들었다. 비교적 자세하게 적혀진 실록이나 승정원 일기에서 사관들이 적은 내용, 자신의 병세에 대한 왕의 설명, 신하들의 처방약에 대한 권고 등을 읽으며 왕의 건강이 곧 조선을 살리는 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조선 초기에 비해 조선 후기로 갈수록 침과 뜸을 이용한 치료보다는 보약등의 예방약으로 사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현직 한의사가 쓴 글이어서 왕에 처방한 약들로 왕의 병을 진단하는 책이려니 했지만, 여느 역사서 못지 않게 왕의 질병과 질병이 생기게 된 원인등을 역사속에서 찾았다는 점이 특별했다. 역사의 비밀과 질병의 상관 관계를 제대로 살펴본 느낌이었다. 우리가 심리 상담을 받을때도 우리가 살아온 내력을 알아야 하듯, 우리의 질병도 우리가 살아온 내력에 따라 달라질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배운 작품이기도 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15.01.12. 신고 공감 6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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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들은 왜 수명이 짧았을까? 왕의 질병으로 들여다 본 역사-왕의 한의학
"조선 왕들은 왜 수명이 짧았을까? 왕의 질병으로 들여다 본 역사-왕의 한의학" 내용보기
현대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보더라도 주치의가 있고, 건강을 유지하도록 철저하게 건강관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갖고 있는 힘을 감안할 때 대통령은 현재 우리나에서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의료진과 의학적 기술을 통해 의학적인 관리를 받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의학적인 관리를 받았던 것은 비단 현대 뿐이 아니라 왕조체제였던 조선의 왕 역시나 마찬가지
"조선 왕들은 왜 수명이 짧았을까? 왕의 질병으로 들여다 본 역사-왕의 한의학" 내용보기

현대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보더라도 주치의가 있고, 건강을 유지하도록 철저하게 건강관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대통령이란 자리가 갖고 있는 힘을 감안할 때 대통령은 현재 우리나에서 받을 수 있는 최상의 의료진과 의학적 기술을 통해 의학적인 관리를 받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의학적인 관리를 받았던 것은 비단 현대 뿐이 아니라 왕조체제였던 조선의 왕 역시나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의학적 기술이야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후진적이겠지만, 왕이 받았던 진료는 당시 조선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수준이었던 것은 분명할 것이다.

 

그럼에도 조선왕들은 평균 수명이 생각보다 길지 않았고, 스물 일곱 명 왕들의 면면을 쭉 훑어보면 2,30대의 젊은 나이에 승하한 임금이 여럿이라는 점은 뜻밖이었다. 40대 장년에 죽은 왕도 그렇고. 최상의 의술로 관리를 받는데도 이렇다보니 임금들의 독살설이 등장하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그런 차원에서  현직 한의학자가 쓴'왕의 한의학'에 눈길이 쏠렸다. 전문가의 시선으로 조선 왕들이 앓았던 질병을 통해,왕들의 속사정과 당시 조선 한의학의 수준을 가늠하고 있다. 대중저술가들이 제시한 독살설의 근거와는 다른,  한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통해 분석하고 있어서, 일반 대중저술가와는 다른 차원에서 왕의 병력과 질병에 접근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조선 왕들은 걸어다니는 종합병동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조선 왕의 라이프 스타일이나 환경을 보면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는 것이, 격무에 스트레스에 운동 부족에 영양가 높은 음식까지. 비록 당시 기준으로 최상의 진료와 처방을 받았겠지만 당시의 왕을 건강을 진단하는 시스템 자체가 최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다.

성리학의 나라답게 조선은 의학에서도 성리학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의술 자체에 대한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물론이고 진료 과정에서도 관료들에게 참여했고, 그들에게 우선적으로 왕의 증상을 살피게 함으로써 의원들을 주눅들게 했다. 관료들은 원론적이거나 유학적 가치를 기준으로 왕에게 의학적 진단을 했는데, 그러면서도 왕이 사망할 경우, 어의에게 책임을 물었고, 심지어 정조의 주치의 강명길처럼 죽음을 당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왕의 죽음에 대한 일종의 희생양을 삼으려했던 것 같기도 하고, 의원들에게 주어진 재량권보다 책임이 더 무거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아가 기술을 우대하지 않았던 조선사의 한단면을 여기서도 엿볼 수 있었다.

 

또 하나, 종기로 고통에 시달린 왕이 정말 많았던 것도 의외였다. 독살설의 주인공 중 1인인 정조만 하더라도  필자 이상곤은 사망원인으로 종기를 꼽고 있는가 하면 세조도 종기로 고통을 겪었다. 그렇다보니 온천으로 행차하는 왕도 많았다.

 

왕들의 병력을 살피다보니, 당시 일반 백성들의 사망원인이 된 병하고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동시에 조선의 기록 문화의 위력에 감탄하게 됐다. 이렇게 왕의 병력과 질병, 증상, 처방약까지 다 전해지고 있으니, 왕의 질병기록은 조선의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야 진료 기록은 개인정보로 보호하고 당사자와 진료진 외에는 접근이 차단되는데,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개인의 병력이란 사생활면에서나 여러 점에서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왕의 경우에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왕의 권위와도 직결돼 있는 병력도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문제의 소지가 될 여지가 있었다. 

경종의 경우 간질의 증후가 발견되고 있는데, 만약 필자가 진단한 대로 간질이 맞다면 경종이 젊은 나이임에도 이복동생 연잉군을 세제로 책봉한 배경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왕의 한의학'을 읽으면서 역사연구에 타분야 전문가가 참여하는 장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사에 전문적으로 또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 역사 연구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점과, 역사가와는 다른 차원에서 훨씬 실증적이고 과학적으로 사료를 분석하고 그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인문학이면서도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분석이 뒷받침된 연구가 가능해지고, 객관성을 확보하는 인문학을 지향할 수 있지 않을까.

즉 타학문의 도움 속에서 역사연구가 더욱 정교하면서도 실증적이고 통합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고,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다방면으로 연구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해주었다.

 

 

e****0 2015.01.14. 신고 공감 4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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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실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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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들이 의외로 오래 살지 못하였다.  그 이유로 가장 유력한 것이 독살설이었다.  이덕일 님의 [조선 왕 독살설]을 읽으면서 독살설은 꽤나 신빙성 있게 들렸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그리고 가장 안타까워 했던 독살설의 주인공을 꼽자면 정조와 경종, 소현세자, 효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조선의 역사를 바꿀 수 있었던 현명한 왕들이라 여겼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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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들이 의외로 오래 살지 못하였다.  그 이유로 가장 유력한 것이 독살설이었다.  이덕일 님의 [조선 왕 독살설]을 읽으면서 독살설은 꽤나 신빙성 있게 들렸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그리고 가장 안타까워 했던 독살설의 주인공을 꼽자면 정조와 경종, 소현세자, 효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조금만 더 오래 살았더라면 조선의 역사를 바꿀 수 있었던 현명한 왕들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분명 왕에게는 역사를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이자 곧 나라 그 자체였던 조선의 왕은 거의 단명했다.  태조를 시작으로 하여 고종까지 오백년이 넘는 조선역사에  50년을 넘게 재위한 왕은 영조가 유일무이하다. 유일하게 영조가  52년 동안 왕좌를 지키며 83세까지 장수하였지만, 서자출신이라는 꼬리표와 당쟁이라는 권력의 이전투구로 불행한 삶을 살았다. 

 

왕의 한의학》은 조선 왕의 몸을 통해 조선의 역사를 재탐구하는 책이다. 흔히들 역사를 승자의 기록이라 하듯이 승자의 시선에서 쓰여진 역사가 아닌 왕의 지극히 은밀한 부분이었던 사생활과 사람의 역사에 초점을 맞춰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색다른 프레임의 역사서이다. 한의사인 저자는 환자의 몸에서 삶을 읽어내듯이 조선 왕의 몸과 마음에 남겨져 있던 삶의 흔적들이 병이 된 연유를 한의학이라는 돋보기로 보았을 때 역사에서 어느 정도의 사실성을 띠게 되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왕의 몸은 바로 조선 역사의 바로미터다.

 

조선 역사의 거울이 될 수밖에 없는 왕의 몸과 질병의 기록을 한의사의 눈으로 응시하는 작업을 왕의 한의학이라 부를 것이다. 왕의 한의학을 통해 왕의 몸과 병에 응축된 조선의 사회, 문화, 사상을 해독해 낼 수 있고, 역사 기록의 우물 속에 감춰진 진실을 퍼올릴 수도 있다.

 

왕의 몸을 통해 읽는 조선 역사는 실로 흥미로운 것이 많다. 한글창제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학질과 소갈병, 다리의 부종, 안진 , 임질, 풍질, 강직성 척추염을 앓다가 중풍으로 사망한 세종의 몸은 한 개의 병이 나으면  또 다른 병이 찾아오곤 하였다. 즉위하자마자 아버지(태종)와 어머니의 불화는 날로 심화되었고, 외삼촌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이어 장인의 처형과 장모의 노비전락과 이어진 국상으로 세종의 몸과 마음은 고통으로 유린당한 상태였다. 재위 초부터 시작된 상례로  누적된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는 결국 몸에 병을 불러왔다. 이렇게 한의사인 저자는 환자가 살아온 삶의 흐름과 이력이 질병의 함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는 의학적 견지로 조선의 역사를 이해한다. 한의사는 환자가 느끼는 신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질병이 생긴 이유를 되새기면서 환자의 상태를 수용하고 이해하여 처방을 한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다보면 마치 환자와 만나서 환자의 삶을 이야기 하듯 조선왕의 몸과 역사가 하나의 궤를 같이 하여 삶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조선의 왕은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왕이기 이전에 먼저 인간이었으며 왕이기에 앞서 아들이며 왕이기 전에 남자였기 때문이다.

 

왕의 독살설 중에 가장 신빙성있게 비춰졌던 경종의 '게장과 생감'에 대하여 저자는 독살설이라기 보다는 경종의 병약한 삶에서 비롯되었음을 역사에서 살펴보고 있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 희빈 장씨가 사약을 받는 장면을 목격한 데다가 평소 간질과 비만성 질환에 시달리는 종합병원이나 다름없었던 병약한 몸이 게장과 생감을 소화할 체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경종의 병약함을 보면 게장과 생감이 죽음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은 사실이지만 게장과 생감이 독을 만드는 조합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 [광해]에서는 왕이 매화틀(변기)에서 볼일을 보고 난 후 나인들이 뒷처리를 해주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면서 '저러니 조선 왕들이 오래 못 살았지' 라는 말이 절로 나왔던 것 같다. 태조부터 순종까지 27명의 왕 중에서 52년 동안 왕좌를 지키며 83세까지 장수한 영조가 유일무이한데 저자가 꼽은 영조의 건강 비결이다.

 

첫째. 자기의 몸 상태를 정확히 파악했다.

둘째. 자신에게 어떤 처방이 맞는지 정확하게 알았다. 

셋째. 강한 의지를 가지고 건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했다.

겨우 50세를 전후해서 생을 마감한 다른 왕에 비해서 영조는 정신적으로도 강했던 왕 같다. 태조나 태종, 세종, 문종, 세조 등 조선 왕들 가운데 과반수 이상이 종기와 소갈병을 달고 살다 종기나 질병으로 사망한 것과 달리 영조는 자잘한 병을 앓긴 했지만 노환으로 죽었다. 다른 왕에 비해서 비교적 건강하게 돌아가신? 편이다. 그렇다고 다른 왕들이 의학적 지식이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세종이나 문종, 세조, 성종, 중종, 명종, 숙종, 정조 등 의학적 지식이 해박했던 왕들도 병에 걸려 갑작스럽게 죽었다. 그러고 보면 조선의 왕중에서 병으로 신하들이 간언하는 기록은 있지만 영조처럼 자신의 몸을 관리하였던 왕의 기록은 없는 듯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실천했던 왕은 영조가 유일하다.  대부분 조선의 왕이 독살당했다는 일부 역사가들의 주장에 대해 저자는 조선 왕들의 독살설은 당쟁이라는 권력의 이전투구가 낳은 설이지 독살설의 대부분은 의료 기록에 대한 오독이나 무지의 결과라고 한다. 당시 시대상으로 중증 뇌일혈과 같은 질환은 외과적 대처가 불가능한 시대였기 때문이다. 당시 사약을 내려도 죽지 않아 조광조 같은 경우에는 독한 술을 마시게 하여 죽게 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조선 시대에 오히려 독살은 성공하기 힘든 방법인 것 같기도 하다. 의학적 사고의 지평을 넓혀준다는 의의도 있는 책이지만 조선의 역사를  전혀 다른 프레임으로 바라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책이다. 

 

사람에게 죽음에 이를 세 가지 경우가 있는데

이는 다 자초하는 것입니다.

잠들 때를 놓쳐 숙면의 시기를 놓치거나,

먹고 마시는 것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과로를 하거나 지나친 편안함에 젖는 것이

그것입니다.

 

-공자가어-

 

YES마니아 : 로얄 k********2 2015.01.20.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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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 책을 읽으려고 했는가?
"나는 왜 이 책을 읽으려고 했는가?" 내용보기
나는 왜 이 책을 읽으려고 했는가    이 책의 몇 갈래 흐름   <왕의 한의학>을 읽었다. 실상 이번 종이책으로 읽으니, 이 책을 두 번째 읽는 셈이다. 전에 인터넷 신문에 연재되는 것을 통하여 이상곤의 글을 접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인터넷을 통하여 읽는 것과 종이책을 읽는 것은 맛이 다른 법! 이제 다시한번 읽으면서 인터넷을 통하여 읽었을 때와는 다르게, 이 책에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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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 책을 읽으려고 했는가 

 

이 책의 몇 갈래 흐름

 

왕의 한의학을 읽었다. 실상 이번 종이책으로 읽으니, 이 책을 두 번째 읽는 셈이다. 전에 인터넷 신문에 연재되는 것을 통하여 이상곤의 글을 접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인터넷을 통하여 읽는 것과 종이책을 읽는 것은 맛이 다른 법! 이제 다시한번 읽으면서 인터넷을 통하여 읽었을 때와는 다르게, 이 책에 흐르는 두 갈래 큰 줄기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었다.

 

한 줄기는 한의학에 관한 내용이다.

다른 한 줄기는 왕의 한의학이라 저자가 이름붙인 재료를 통하여 조선의 역사를 다시한번 - 다른 시각으로 - 살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살펴볼 수 있는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조선 왕의 몸은 당대 조선의 시대정신과 과학, 그리고 제도와 정치가 응축되었다고 할 수 있다.> (8)

왕의 몸은 조선 왕조 역사의 바로미터다. 사실 마음은 숨길 수 있지만, 몸은 정확하게 반응한다.> (8)

왕의 한의학을 통하여 왕의 몸에 응축된 조선의 사회, 문화, 사상을 해독해 낼 수 있고, 역사 기록의 우물 속에 감춰진 진실을 퍼 올릴 수 있다.> (9)

 

바로 조선왕의 몸과 질병과 그 치료법을 통하여 역사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 역사를 보고 싶었다. 그렇게 다른 역사가와는 다른 시각으로 우리에게 역사를 보여주는 저자의 혜안이 고맙다. , 그래서 저자의 인도를 따라 조선 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거머리 요법 - 기침법(蜞針法)

 

그럼 먼저 한의학에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자. 이 책 48쪽과 124쪽을 보면 거머리 요법이 등장한다.

거머리를 가지고 무슨 치료를?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기로 고통당할 때에 나쁜 피를 거머리가 빨아먹게 하는 방법으로 종기를 치료했다.(124) 문종이 종기로 고통당할 때에 거머리를 사용하여 효과를 보았다. (49) 거머리를 사용하여 종기를 치료하는 것을 동의보감에서는 기침법(蜞針法)이라 불렀는데, 다음과 같이 치료를 한다.

“ .... 종기의 꼭대기에.......그 속에 거머리 한 마리를 집어넣는다. 다음 찬물을 자주 부어 넣으면 피와 고름을 빨아먹는다. 그러면 헌데가 생긴 곳의 피부가 쭈글쭈글해지고 허옇게 된다.”(49)

 

그런 거머리 요법을 사용하고 있었길래, 다음과 같은 소설속의 묘사는 사실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모루 위에 달군 쇠를 올려놓고 망치로 때릴 때, 신출내기 숯장이나 풀무꾼은 불똥을 뒤집어 쓰고 화상을 입기가 십상이었다. 쥐를 잡아서 대가리와 꼬리, 다리를 자르고 내장을 발라 내고 껍질을 벗겨서 끓는 물에 고면 하얀 기름이 엉겼다. 서날쇠는 그 쥐기름을 걷어내어 불에 댄 자리에 발라 주었다.

덴 자리가 곪으면 고름자리에 거머리를 붙여서 썩은 피를 빨아낸 뒤 파를 으깨서 붙여주었다(김훈, 남한산성, 55)

 

종기, 나라를 망하게 하다 - 종기로 죽은 왕들

 

종기는 조선왕들을 가장 괴롭힌 질병이다. (216)

그리고 그 종기로 인한 죽음이 그 뒤의 역사를 바꾼 안타까운 경우가 되었으니, 더 안타까운 것이다.

문종의 경우, 종기로 고생하다가 일찍 죽어 세조가 왕위를 찬탈할 빌미를 제공하였고, 효종은 종기를 치료하기 위하여 사혈요법을 쓰다가 지혈이 되지 않아 죽는 바람에 북벌의 꿈은 사라졌다. 정조 역시 종기 때문에 죽었는데, 그의 죽음 이후 조선의 멸망이 가속화되었으니, 어찌 보면 종기가 나라를 무너뜨린 가장 큰 원흉이라 아니할 수 없다. (216)

 

조선 왕들에게 사랑받은 약들

 

213쪽 이하에 보면 조선의 왕들이 마음의 안정에 효험있는 약들을 찾았는데 그 중 사랑받은 약들이 어떤 것들인지, 망라되어 있다.

우황첨심원부터 우황고, 저두환 등등 많은 약들이 조선 임금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이런 약들이 사랑받은 이유가 안타깝기 짝이 없는 것이다.

바로 왕들이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바람에,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런 약들을 복용했다는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그래도

 

한의학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좌지우지 한 기록들, 또한 많은 사례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인조가 만약 자신의 건강을 이형익에게 맡기지 않고, 저주 타령에 빠지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소현세자가 번침 같은 잘못된 처방이 아니라 제대로 된 처방을 받고 치료되었다면 어땠을까? 소현세자는 새로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지 않았을까?>(212)

 

저자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토로한 글이다. 과연 그의 말처럼 소현세자가 제대로 치료받았더라면, 그래서 그가 인조 다음의 왕위를 물려받고 임금이 되었더라면 

분명 우리나라의 역사는 다시 써야 했으리라. 심양과 북경에서 강성한 청과 서양의 문물을 보고 배운 소현세자는 무언가 다른 눈을 가지고 국정에 임했으리라. 그렇다면? 분명 조선은 다른 모습의 나라가 되었을 것이고, 우리 대한민국 역시 다른 모습이 되었으리라.

 

그런데 왜 소현세자는 그러지 못했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저주 타령에 빠진 인조의 무능과 돌팔이 의사가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 것만은 분명하다.> (209)

 

소현세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여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나라가 잘 못 흘러간 것이 아쉬워서 그 소회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안타까움이 어디 소현세자뿐이랴? 그런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조의 경우 마찬가지이다. 조선을 개조하겠다는 의지로 정약용들 실학파들을 중용하던 개혁군주 정조도 허망하게 약화사고(350)로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그의 개혁정치는 끝이 나고 그 뒤로 조선이란 나라는 멸망을 앞에 두고 달려가게 되는 것이다.

 

성리학의 문제점

 

더하여 이 책을 통하여 유교와 성리학이 조선시대에서 노출한 한계를 알 수 있다먼저 성리학이 어떤 것인지 정의부터 하고 들어가자.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유학이 공자를 조종으로 하여 국가와 사회의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했다면, 성리학은 주자를 조종으로 하여 태어난 마음을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었다.>(141)

 

그래서 유학과 성리학은 안팎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유지한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왕의 질병이 생기면, 성리학자 대신들이 그 치료에 참여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어떻게 그런 제도가 가능했을?

 

조선 시대에는 문과 출신의 사대부들은 대부분 상당한 의학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정자 말하길, “효자는 의약에 대하여 알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자식이 의약 지식이 있어야 어버이가 오래오래 목숨을 부지하며 살수 있다는 의미이다.>(이덕일, <조선왕 독살사건> 1, 22)

 

그래서 성리학자인 대신들이 의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치료를 감독하는 위치에서 임금의 치료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용인된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바로 문제가 있었으니, “왕의 진료와 치료에 참여한 성리학자 대신들은 거시적 총론에는 강했지만, 미시적 각론에서는 예리한 기술적 진보에 걸림돌이 되기 일쑤였다”(10)는 기록이 보인다.

 

그래서 때로는 의원 대신에 참여한 대신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희생자가 생기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이불상(哀而不傷)의 가르침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논어 팔일편(八佾篇)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子曰 關雎樂而不淫하고 哀而不傷이니라

 

번역하자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의 첫 번째 편 관저는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낙이불음(樂而不淫) 즉 즐기되 빠지지 말고, 애이불상(哀而不傷) 즉 슬퍼하되 상처받지 말라.’하였다.

 

그러니 애사를 당하였을 때 공자말씀을 따른다면, 슬퍼하는 마음을 허용하되 그 슬픔이 몸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공자말씀을 금과옥조로 삼는 조선시대에 그 가르침을 잘 지켜졌을까? 이 책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조선왕들은 대부분 즉위하면서부터 국상을 치르다가 건강에 타격을 입는다.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른 이들을 제외하면 조선의 모든 왕들은 선대왕의 국상을 치르는 것으로 정사를 시작했고 건강을 망쳤다. 충효가 국가 운영의 근본 가치였던만큼 임금은 상사에 있어 만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문제는 선대왕의 장례절차가 새 왕의 몸을 해칠만큼 복잡하고 힘들었다는 점이다. (227)

 

따라서 이런 국상 때문에 몸을 상한 왕이 한 둘이 아니다. 인종도 그 중의 한명이다인종이 세상을 뜬 것은 지나친 효도가 스스로의 몸을 끊은 것이다라는 평가를 받는다.(144) 중종의 국상 때에 몸을 지나치게 상한 것이다. (142)

 

문종은 어떤가? 부왕인 세종이 병환이 나자 근심하고 애를 써서 그것이 병이 되었으며 상사를 당해서는 너무 슬퍼하여 몸이 바싹 야위었다, 고 실록은 전한다. (42)

 

, 조선의 왕들은 애이불상이란 가르침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나라를 위란지기로 몰아넣은 것이다.

 

다시 결론

 

이 책이 목적하는 바는 조선왕의 몸과 질병과 그 치료법을 통하여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저자가 의도하던 그 목적은 이 책 안에서 충분히 이루어졌다. 나 또한 조선 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다른 역사가와는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보여준 저자의 혜안이 고맙다.

s***h 2015.01.02.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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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도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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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조선 시대의 왕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그런 왕을 위해서는 그 당시의 모든 것이 집중이 되어 관리가 될 것으로 모두들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왕들은 가장 좋은 환경에, 가장 좋은 대접을 받으며, 가장 안락하게 지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왕들의 생활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이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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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 조선 시대의 왕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나라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그런 왕을 위해서는 그 당시의 모든 것이 집중이 되어 관리가 될 것으로 모두들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왕들은 가장 좋은 환경에, 가장 좋은 대접을 받으며, 가장 안락하게 지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 왕들의 생활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것이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등일 것이다.

저자는 이 책들에서 왕이 받았을 치료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가장 좋은 대접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인간이기에 이런 저런 처방을 받고 치료를 했을 것이기에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분석하고, 연구하여 이 책을 발간한 것이다.

 

 결론은 왕도 인간이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왕이 되는 순간부터 스트레스로 인해 없던 병도 생겼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었다. 왕이라는 직책이 단순히 자리가 아니라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을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왕의 역할을 하기 이전에는 별다른 병이 없었지만, 왕이 되는 직후에는 다양한 병을 가지게 된다. 중종을 예를 들면 이전의 기록이 없어서 이기도 하겠지만, 왕이 되고 부터 다양한 병을 가지게 된다. 어릴 적에는 병에 대한 이야기가 별로 없지만, 왕이 된 후에는 치통, 기침병, 어깨 통증 등 많은 병을 동반하게 된다.

선조도 그랬고, 인조도 그랬다.

왕실에서 법도나 체통을 지키며 왕자에서 왕이 되었던 이들은 단명을 하게 된다. 하지만, 적장자가 아닌 경우에는 그나마 다른 왕들에 비해 수명이 대체로 길었다. 이것만 봐도 왕의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는지 알수가 있는 것이다.

TV에서 단편적으로 봤던 어의에 대한 이야기도 새롭게 이해를 하게 되었다. 왕의 치료를 위해 어의가 주축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리학적 관념을 기본으로 하여 독특한 왕실 의료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기술적인 부분만 어의가 담당을 하고 진료와 치료의 논리적 타당성을 검증하는 유학자 출신의 삼제조가 맡는 구조는 지금 현재로서는 선뜻 이해하기가 힘들다. 진료와 치료를 위해서 논리적 타당성을 검증하다니 말이 되는가 말이다. 화증이라던지 이런 것도 병이 아니라, 마음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는 생각부터 하게 되니 왕의 건강은 성리학 이념에서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듯 하다.

그리고, 가볍게 알았던 3년상이라는 것이 왕의 몸을 해칠 정도의 엄격한 것이 그로 인해 왕이 더 많은 병을 얻게 되었다니 죽은 사람때문에 산 사람도 죽게 되는 악순환이 되는 과정이었다. 그 당시야 당연했겠지만, 지금의 입장으로 보면 말도 되지 않을 일인 것 같다.

 

질병과 치료하는 방법에 따라 왕의 건강이 달라지고 그로 인해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역사적 기록에 대한 것은 기록하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사람의 몸은 상황에 대해 진실로 반응하게 되고, 그 몸을 처방하는 것에 대한 기록은 명확한 것으로 보고 이를 새롭게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만 분석한 것이 아니다. 책을 읽다 보면 각 질병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면서 <동의보감> <본초강목> 등 많은 책을 인용하고 있다. 대단한 열정과 지적 탐구를 행하였던 것 같다.

왕도 결국은 인간이었다. 의학의 선진 기술과 가장 훌륭한 어의가 있었지만, 결국은 왕들도 운명을 다했다. 그런 와중에 왕으로서의 스트레스로 인해 항상 약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은 새삼 놀라운 것이었다. 평범하게 지냈으면 없었을 질병들이 생기는 것을 보면 결코 왕이라는 직책을 부러워할 것만은 아닌가 보다. 행복은 자기 만족에 있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YES마니아 : 로얄 h****o 2015.01.06.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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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한의학 : 음모론을 배제하면 심심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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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의 나비 날개짓이 뉴욕에 폭풍을 불러 온다는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지만, 역사에서 왕의 안위보다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없을 것이다. 조선 왕조 역사에서 왕의 건강과 죽음은 시대를 흔들고 역사가 나아가는  방향을 바꾸는 거대한 변곡점이었다. 어떤 왕이 좀더 오래 살았었더라면 하는 역사의 가정이 흔한 만큼 왕의 독살설도 꾸준하게  주장된다. 정조와 경종이 유명하고 효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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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의 나비 날개짓이 뉴욕에 폭풍을 불러 온다는 나비효과라는 말이 있지만, 역사에서 왕의 안위보다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없을 것이다. 조선 왕조 역사에서 왕의 건강과 죽음은 시대를 흔들고 역사가 나아가는  방향을 바꾸는 거대한 변곡점이었다. 어떤 왕이 좀더 오래 살았었더라면 하는 역사의 가정이 흔한 만큼 왕의 독살설도 꾸준하게  주장된다. 정조와 경종이 유명하고 효종도 의문사처리되고 있으며 인종과 명종도 왕이 유명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인에 대해서 의심의 눈길을 주는 사람들이 많다. 상상이 커져 독살설 주제로 여러 책도 만들어져 거의 정설이 되었다. "왕의 한의학"은 상상과 정치적 배경을 뒤로한 채 의학 보고서만 가지고 왕의 건강을 바탕으로 역사를 재조명한다.

정치적,경제적 사건이나 시대 정신의 변화는 조선 왕의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겼다. 커다란 사건이나 심한 변화는 왕의 몸과 마음에 충격을 주었고, 이것은 바로 질병으로 이어졌다. 왕의 몸은 바로 조선 역사의 바로미터이다.

* 정조, 효종, 경종, 소현세자의 죽음을 독살이나 음모가 아닌 치료할 수 없는 병이나 의료사고로 판단한다. 음모론이 빠지면 내용은 심심해진다.

* 광해군은 67세로 장수했다. 내려 놓으니 속 편했나?

* 왕들이 겪는 병의 대부분은 스트레스로 시작했다. 

* 인조가 정말 저주를 믿어서 소현세자 처족을 죽인것일까? 죽이고 싶어서 저주를 끌어들인게 아닐까? 저자 생각에 다 동의하진 못하겠다.








ㅍㅍ

YES마니아 : 골드 l****0 2015.01.01.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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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들의 삶과 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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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죽음에 이를 세 가지 경우가 있는데   이는 다 자초하는 것입니다.   잠들 때를 놓쳐 숙면의 시기를 놓치거나,   먹고 마시는 것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과로하거나 지나친 편안함에 젖는 것이   그것입니다                                                      - 『공자가어』    성인에게 생기는 병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먹는 것,쉬는 것,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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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에게 죽음에 이를 세 가지 경우가 있는데

  이는 다 자초하는 것입니다.

  잠들 때를 놓쳐 숙면의 시기를 놓치거나,

  먹고 마시는 것을 조절하지 못하거나,

  과로하거나 지나친 편안함에 젖는 것이

  그것입니다

                                                     - 『공자가어

 

 성인에게 생기는 병들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먹는 것,쉬는 것,운동하는 것 등을 잘 조절하지 못해 생기는 것이 대부분이다.당뇨,고지혈,고혈압,심혈관계 질환 등 대사성 질환은 합병증으로 유발되어 치사에 이르기도 한다.그래서 평소 자신의 체질과 성격,생활습관을 고려하여 먹는 것,쉬는 것,운동하는 것을 적절하게 실천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병이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잘못된 생활습관으로 말미암아 서서히 인체 내부는 각종 병원성 세균,바이러스의 증가가 혈관의 막힘,혈압의 상승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증상이 급진전되면 인체에 빨간 신호가 오게 되면서 자칫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자신이 처해 있는 생활환경,사회적 환경이 어떠한지를 냉철하게 인식하면서 스스로 이에 대처하는 것이 지혜로울 것이다.개인의 성격과 취향,기질 등이 다르겠지만 환경적 요소에 너무 민감하게 대응한다든지 소홀히 하게 될 경우에도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현대인은 식습관이 서구화되고 사무직,정신노동이 많다 보니 암,고혈압,고지혈증,당뇨,심혈관질환을 유발하고 있다.그 비중은 매우 심각하며 사회적 비용은 천문학적인 수치이다.개인 모두가 건강해야 사회와 국가의 안녕과 행복지수도 커져 갈 것이다.

 

 조선시대 왕들의 일상과 건강.질병을 다룬 《왕의 한의학》은 흥미진진하기도 하고 왕이라는 개인의 질병에 대해 염탐(廉探)하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읽어 내려 갔다.한의사인 이상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 및 『승정원 일기』를 바탕으로 조선의 주요 왕들의 국정과 질병의 함수관계를 그려 내고 있다.절대권력을 수여받은 조선의 왕들은 치뤄내야 할 업무량이 방대했기에 몸과 마음에도 쉬이 향이 갔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15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조선은 한의학이 주류를 이루었기에 이 도서에 소개되고 있는 조선의 왕들은 어의(주치의)를 곁에 두고 질병에 따른 진맥,처방을 받았다.조선시대는 성리학에 기반을 두고 신권이 막강하던 시기였기에 왕과 신료간의 의견대립도 만만치 않았던 터라 왕의 건강에도 큰 여파가 갔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27명의 왕들도 권력이 다하면 자연인으로 돌아가기에 나는 왕의 신분으로 보지 않고 개인으로 왕들의 건강과 질병을 눈여겨 보았다.왜냐하면 건강의 소중함과 건강이 자산이라는 것을 알고 평소 생활습관을 잘 유지했더라면 장수와 영화를 모두 누렸을텐데...국사를 실행하다 보면 그럴 처지와 상황이 아닐 것이다.조선 왕 가운데 질병 종합세트라 할 만한 세종부터 뇌일혈로 세상을 떠난 고종에 이르기까지 조선 왕들은 대부분 국정에 의한 스트레스가 컸다.왕들도 기질과 성향이 있어 제각각이다.여색과 주색으로 기(氣)를 소진한 왕도 있고 심약형,약골형도 있는가 하면 자신의 체질에 맞춰 생이 다하는 날까지 보약을 입에 달고 살았던 왕도 있다.그중에 조선은 선군의 뒤를 바로 잇다보니 열 살도 되지 않아 국정을 맡아야 했기에 심담허겁,종마라는 말이 나왔을 법하다.

 

 임질,풍질,풍습,강직성 척추염,소갈증,간질,서증,치통,이명,편두통,소화불량,종기,눈병 등을 달고 살았다.한의서 『동의보감』에 바탕을 두고 침뜸을 행했다.자신의 질병을 무속과 주술에 기댔던 왕도 있고,정기가 약한 왕은 메뚜기를 보양제로 삼았던 분도 있다.조선은 내의원,전의감,혜민서라는 3서가 있었다.왕들은 내의원이 관장했다.이번에 한의학의 히포크라테스를 알게 되었다.중국 동한 시대의 장중경이라는 인물로서 『상한론』을 지었다.구한말 갑신정변의 와중에 민영익이 자상을 입었지만 서양의 알렌에 의해 완치가 되어 고종은 서양의를 적극 수용하면서 세브란스의 전신 제중원이 탄생하게 되었다.병은 치료도 목적이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할 때 건강을 챙기려는 예방의 자세에 있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좋은 섭생도 건강과 행복을 지키는 지름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j******6 2015.01.2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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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들의 건강과 질병에 관한 이야기, 왕의 한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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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조선왕조실록이 완역된 이래 다양한 컨텐츠가 나오고 있지만, 이처럼 질병에 관한 이야기는 드물다. 이런 시도는 우리 인문의 다양성과 역사의 재해석을 위해 너무 중요한 작업이 아닐지 싶다. 이상곤 박사는 현재 대구한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조선 왕실의 궁중 의학, 그리고 발전 과정까지 소상히 들려준다. 저자에 따르면 왕의 몸과 병을 살피다 보면 기존의 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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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조선왕조실록이 완역된 이래 다양한 컨텐츠가 나오고 있지만, 이처럼 질병에 관한 이야기는 드물다. 이런 시도는 우리 인문의 다양성과 역사의 재해석을 위해 너무 중요한 작업이 아닐지 싶다. 

이상곤 박사는 현재 대구한의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는 조선 왕실의 궁중 의학, 그리고 발전 과정까지 소상히 들려준다. 저자에 따르면 왕의 몸과 병을 살피다 보면 기존의 역사관으로는 파악할 수 없었던 진실을 발견할 수 있다. 왕의 몸을 진단하고 그 병을 치료한 처방 기록에는 역사를 기록한 자들이 감출 수 없었던 진실이 숨어 있다. 가령 조선 왕 독살설을 둘러싼 논쟁이 대표적이다.

 

책은 총 19장에 걸쳐 조선의 스무 왕에 대한 건강과 질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을 읽다 보면 당시 의학의 지식과 기술 수준까지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은 조선 실록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좋은 굿길 역할을 한다. 이처럼 우리 역사의 금맥을 찾는 작업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루어지면 좋겠다!

YES마니아 : 로얄 h*******c 2014.12.29.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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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운명과 직결된, 개인의 것이 아니었던 왕의 건강을 다룬 '왕의 한의학'
"국가의 운명과 직결된, 개인의 것이 아니었던 왕의 건강을 다룬 '왕의 한의학'" 내용보기
승자의 기록인 역사에도 숨길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왕의 건강 상태를 적은 세밀한 기록이다. ‘몸의 노래’에서 일본의 의학사학자인 구리야마 시게히사가 사람들은 거짓을 말할 수 있지만 맥(脈)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했지만 왕의 건강을 기록한 실록이나 일기야말로 실로 부정할 수 없는 화석과 같은 자료일 것이다. ‘낮은 한의학’으로 알려진 이상곤 박사가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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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기록인 역사에도 숨길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왕의 건강 상태를 적은 세밀한 기록이다. ‘몸의 노래’에서 일본의 의학사학자인 구리야마 시게히사가 사람들은 거짓을 말할 수 있지만 맥(脈)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했지만 왕의 건강을 기록한 실록이나 일기야말로 실로 부정할 수 없는 화석과 같은 자료일 것이다. ‘낮은 한의학’으로 알려진 이상곤 박사가 쓴 ‘왕의 한의학’은 세종, 문종, 태종, 세조, 성종, 영조, 정조 등 조선의 주요 임금들의 건강을 상세하게 기록한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를 근거로 임금 개인의 신상과 신병은 물론 조선의 정치, 경제 나아가 사회적 구조를 읽어낸 책이다.



이 책은 논쟁적이기도 하다. 그것은 저자가 정조로 대표되는 독살설의 당사자들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의 관련 부분과 심환지에 대한 어찰(御札) 등을 두루 참고한 결과이다. 저자는 “우리는 왕의 한의학에서 한의학이 서양 의학의 대두에 밀려 예방 의학, 보약 장사로 전락하기 전에 당당한 치료 의학으로 가졌던 힘과 에너지, 그리고 그 심원한 지혜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왕의 한의학이란 조선 역사의 거울이 될 수 밖에 없는 왕의 몸과 질병의 기록을 한의사의 눈으로 응시하는 작업을 의미한다.



저자는 연산군의 광기를 언급하며 그를 매도하기보다 증상을 분석하고 이해하는 작업이야말로 왕의 한의학이 추구해야 하는 지향점일 것이라 말한다.(102 페이지)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성리학은 조선 사회와 의학에 두루 걸림돌로 작용했다.(어의들이 진맥 외의 방법으로는 임금의 몸을 직접 접할 수 없었던 것이나 성리학자들이 임금의 몸과 관련된 정보들의 책임자를 자처한 것은 그 한 예이다.) 물론 왕에게 부담으로 작용한 것은 성리학 뿐만이 아니었다. 상왕과의 관계는 물론 치열한 권력 다툼과 맞물린 불행한 가족사도 한 축이었고 산적한 정사(政事)는 물론 때로 국가 중대사의 하나인 국상(國喪)의 주체가 되기도 했던 왕은 실로 자신의 것이 아닌 몸을 가졌던 존재였다.



주(酒)와 색(色)도 건강을 악화시키고 단명하게 하는 데 한 몫 했다.(그 대표적 임금이 성종, 연산군이다. 연산군은 경종, 정조와 함께 부모의 비참한 죽음에 대해 알았거나 목격한 임금들 중 하나이다. 이 사실이 연산군의 신병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경종의 어머니 희빈 장씨,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 불행한 가족사는 임금들에게 큰 부담으로 나타났다. 세종의 경우 그 불행을 새로운 왕조의 기틀로 승화시켰지만 질병을 떠안아야 했다.



저자는 건강은 위대한 정신이나 도덕적, 역사적 업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는 데 있음을 강조한다.(53 페이지) 건강은 여러 가지 요건들이 정합적으로 잘 맞아 떨어져 균형을 이룰 때 유지되는 것(42 페이지)이라는 말이나 건강은 비결을 통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상식적인 지혜와 실천을 통해 만들어 나가는 것(173 페이지)이라는 말도 맥락이 같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정치, 사회적인 구조 이전에 한의학이 내리는 건강에 대한 정의를 만나게 된다. 체질론이 대표적이다. 저자에 의하면 화(火)는 신경계에 에너지가 집중되어 몸 전체의 균형이 깨진 상태를 말한다. 질환이란 것이 어떤 특정 원인균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보다 몸의 전체적 균형이 깨졌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에 한의학은 본래 질환만을 치료하는 약재를 처방하는 게 아니라 환자의 몸에 맞는 약재를 처방한다는 말을 통해 우리는 진실의 단면을 짐작하게 된다.



손에 피를 묻힌 태종과 세조의 대비도 흥미롭다. 태종이 국가 이성에 충실했던 데 비해 손자인 세조는 권력 욕망에 충실함으로써 훗날 훈구파라 불리는 집단을 낳아 조선 중기 정치를 왜곡했다는 진술도 흥미롭다.(저자는 세조처럼 정당성이 약할 경우 사람을 죽였다는 죄의식은 당연히 공포로 변해 사람의 마음을 짓누르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연산군은 천리(天理)보다 인욕(人慾)을 택해 산 댓가로 병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 깨달아서 그랬지 사실 어머니의 부재로 시작된 연산군의 광기는 사실 돌아갈 지점이 있었던 것이라 말한다.(118 페이지) 연산군이 마지막 순간에 보고 싶어 했던 부인 폐비 신씨의 존재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조선 임금들의 평균 수명은 47세이다. 단서라 할 수 있는 것은 대체로 왕실에서 나고 자라 임금이 된 이들은 질병에 자주 걸리고 단명했던 데 비해 반정(反正)으로 임금이 되거나 궁궐 밖에서 살다가 갑작스럽게 임금이 된 사람들은 질병도 없이 장수했다는 사실이다.(124 페이지) 저자는 중종(우리에게는 여의 장금과 관련된 임금으로 알려진)을 약(藥)이자 독(毒)인 부자(附子)처럼 두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한다.(134 페이지) 중종은 연산군의 폭정으로 망가진 조선을 중흥시켰지만 반정 공신과 사림의 틈바구니에서 우유부단과 잔인함의 면모를 보여주면서 권신과 권력 투쟁을 일삼는 시대를 열었다.(135 페이지) 놀라운 사실은 중종이 죽인 선비들의 수가 형인 연산군이 죽인 수보다 많다는 사실이다.



인종의 경우 성리학 원리주의로 건강을 해쳤다. 인종은 독살설로 회자된 임금들 중 한 분이다. 인종이 계모인 문정왕후가 준 떡을 먹고 독살당했다는 설이 있지만 저자는 극단적인 도덕성도, 극단적인 쾌락도 건강을 해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인종과 연산군은 확인해 준다고 말한다.(145 페이지) 저자는 성리학 원리주의자였던 인종과 심약한 마마보이였던 명종은 조선의 이념적(성리학) 질곡 속에서 죽어갔다고 지적한다.(155 페이지)



저자의 책을 통해 우리는 한의학에 수행적 측면이 있음을 알게 된다. 환자의 삶 전체를 응시해야만 질병의 근본 원인을 알 수 있다는 말을 통해 우리는 그런 점을 알게 된다. 선조는 사ffla 때문에 주눅들었던 임금이다. 선조의 병은 사림과의 치열한 신경전에서 자신을 방어한 무기였고 신하들의 압박을 초래한 빌미가 되었다. 선조의 어의는 허준이었다. 선조의 소화 불량, 이명, 편두통 등은 성리학에 물든 사람과의 신경전에서 발원한 병들이라 할 수 있다.(172 페이지) 광해군은 오랜 전란과 왕위 계승을 둘러싼 암투로 마음 고생이 컸다.



여색에 집착하고 무속에도 빠졌던 광해군은 그 때문에 사대부들의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광해군 재위시 허준도 인정한 조선 최고의 침의(鍼醫)인 허임이 등장한다. 광해군(1575 - 1641)이 칠순이 되도록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침이 한 몫 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추위를 잘 타고 화병과 안질을 달고 살았지만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자 오히려 67세까지 장수한 광해군을 일러 저자는 도라지가 보통 5년 밖에 살지 못하지만 다른 땅에 옮겨 심으면 오히려 위기 의식을 느껴 20년까지 장수하는 것처럼 강화도로, 제주도로 위리안치(圍籬安置: 죄인을 배소에서 달아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귀양 간 곳의 집 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돌리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두는 형벌)되어도 치열하게 살아남은 것으로 풀이한다.(190 페이지)



소현세자(인조의 맏아들)가 독살된 조선의 인물들 중 하나로 거론되는 데에는 무리한 침 시술로 세자의 원기를 훼손한 이형익에 대한 인조의 비호가 얽혀 있다. 이는 사관(史官)의 기록으로도 뒷받침된다. 저자는 소현세자의 죽음을 이형익의 오진과 잘못된 치료로 인한 의료 사고사(事故死)로 본다. 한편 조선 시대는 우리와 많은 시대를 격해 있기에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면이 꽤 있다. 그 한 사례가 종기(腫氣, 부스럼 종, 기운 기)에 대한 것이다. 고약(膏藥)으로 치료했던 병이라는 단편적인 기억이 있지만 이 병이 조선의 임금들을 가장 크게 괴롭힌 병이라는 사실은 의외이고 실제로 이 병으로 인해 (병 자체 때문이나 치료 과정의 잘못으로) 죽은 경우(문종, 현종, 정조)가 있다고 하니 놀랍다.



조선의 임금들은 스트레스에 시달린 탓에 위가 불꺼진 용광로처럼 온기가 없어 늘 소화 불량에 시달렸다. 소화는 에너지를 엄청나게 소모하는 과정으로 당연히 온기가 필요하다.(221 페이지) 효종도 독살설의 당사자이다. 저자는 효종도 독살된 것이 아니라 의료 사고로 묵숨을 잃었다고 잘라 말한다. 현종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했던,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현종의 그런 모습을 조선 팔도가 자연재해와 당쟁에 시달린 시기와 겹친 것으로 보는 저자의 설명이다.(246 페이지)



저자는 한의학에서 간(肝)이 봄<春>과 나무를 상징한다는 말을 하며 상징은 현상과 내면 질서의 조합이라 덧붙인다. 간의 본질은 겉으로는 튀어오르는 양기(陽氣)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솟아오르는 힘을 수렴하고 진정시켜 에너지와 균형을 이루려고 하는 음기(陰氣)라는 것이다.(265 페이지) 간의 음기를 돋우는 대표적 음식이 신맛을 내는 것들(참깨, 개고기, 자두, 부추)이다. 진기한 사실은 한의학에 안과 처방이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전통 처방(냉이 씨앗인 석명자菥蓂子)으로 녹내장을 치료한 사례를 소개한다.(272 페이지)



저자는 숙종의 사례를 언급하며 국가의 운명과 왕의 건강이 직결됨을 보여주는 역사적 장면이라 설명한다.(279 페이지) ’왕의 한의학‘을 통해 우리는 당시 무능한 의사(돌팔이)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영조는 평생 인삼을 입에 달고 살았던 최장수(83세) 임금이다. 반면 영조의 손자이자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는 평생 인삼을 피했지만 절체절명의 순간에 인삼을 잘못 먹고 몸을 망쳤다. 영조는 소식(小食)과 규칙적 식사는 물론 금주를 철저히 생활화했다. 영조는 이 밖에 뜸(연제법煉臍法)을 뜨고 사슴 꼬리를 즐기는 등 철저한 맞춤형 양생(養生)에 치중했다. 영조는 어깨 통증과 침침한 눈 때문에 고통을 당한 것 외에 노환으로 해석할 수 있는 병 말고는 특별히 앓은 것이 없다.



저자는 독살되었다고 알려진 조선 임금들 중 의문을 가질 만큼 갑작스럽게 죽은 경우도 있지만 대체로 질병과의 인과 관계가 논리적으로 이해된다고 말한다. 저자는 대표적 독살설의 주인공인 정조를 한의학의 대가였던 임금으로 종기 치료를 위해 인삼이 든 경옥고(瓊玉膏, 옥 경, 구슬 옥, 기름 고: 피의 순환을 고르게 하도록 돕는 약재)를 먹고 절명했다고 소개한다. 저자는 종기가 ’동의보감‘에 결핵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현재의 결핵과는 다르고(253 페이지) 내부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못해 피부로 솟아오르는 병으로 설명한다.(303 페이지) 정조는 경옥고를 마시고 혼수상태에 빠져 결국 목숨을 잃었다.



정조에게 경옥고를 처방한 논리는 열을 밀어내려면 체내에 힘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그 힘이 황기나 인삼에서 나온다는 것이었다.(346 페이지) 저자는 정조 독살설의 뿌리가 된, 수은이 함유된 연훈방(煙薰方)에 대해 그로 인해 종기 증상이 개선되자 다시 한번 사용하겠다고 한 당사자가 의학에 정통했던 정조 자신이라 말한다. 연훈방 처방이 처음에 효과를 봐 두 번째 시도때 누군가 독을 넣어 연기에 독성을 띠게 했다는 설이 있지만 저자는 정조 자신이 사망 당시 호소한 증상이 수은 중독에서 나타나는 호흡 곤란, 기침, 오심(惡心: 가슴 속이 불쾌하고 토할 듯한 느낌이 있는 증상), 두통 등과 거리가 멀다는 이유를 들어 독살설의 신빙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철종의 치료 기록에서 침이나 뜸을 활용한 외과적 치료법이 어느 새 사라지고 보약 위주의 약물 처방만이 보이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389 페이지) 값비싼 녹용이나 인삼 등이 들어가지만 구체적 질환을 치료하는 약이 아닌 비위를 다스려 소화를 돕는 범용(凡庸: 여러 분야나 용도로 널리 쓰이는 평범한)한 처방들은 한의사 입장에서는 쉽고 편하며 안전한 요법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치료법이 가진 부작용에 대한 경계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이런 왕실 의학의 흐름은 민간으로도 이어졌다.



’왕의 한의학‘에는 한의학의 비밀스러운 내용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석명자로 백내장을 치료한 것은 물론 중국 고대의 전설적인 명의였던 편작(編鵲)의 작(鵲)이 까치를 의미하는 글자로 집을 지을 때 불어올 바람을 예상해 짓기에 나뭇가지 끝에 지어도 바람에 떨어지지 않듯 편작은 바람을 잘 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설명(한의학의 명의名醫란 바람 즉 기氣의 흐름을 잘 아는 사람이다.: 59 페이지)도 그렇다. 소화기 이상이 두통 및 관절염과 연결된다고 보는 독특함이 한의학의 특징이라는 점도 그렇다.(402 페이지) 신장(腎臟)도 차가운 쪽과 뜨거운 쪽이 있는데 차가운 쪽이 신수(腎水: 왼쪽 콩팥)라면 뜨거운 쪽을 상징하는 것은 명문(命門: 오른쪽 콩팥)이라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78, 146 페이지)



본문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사실 중 우리의 역사 및 양의학과 관련해 빚어진 사건이 하나 있다. 일본에 의해 한의학이 한방(韓方)으로 폄하되며 주도권을 상실한 사건(1906년 3월)으로 이로 인해 한의학은 공적 의료로서의 지위를 박탈당했다. 이와 관련해 말할 것은 한방 외과술의 유래가 18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이다.(258 페이지) ’후한서‘가 전하듯 화타(華陀)가 마취제의 일종인 마비산(麻沸散)을 이용해 환자를 잠재운 후 복부를 째고 환부를 절제해 복강을 씻고 절개부를 봉합한 후 약초로 고약을 만들어 수술 부위에 발라 아물게 하는 외과 수술을 행한 것이다.



저자는 이에 조선 전기의 임언국(任彦國)이란 침의(鍼醫)를 예로 들며 그의 종기 치료법이 단순한 침구술이 아니라 현대적 절개술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한다.(260 페이지) 이 외과 수술 부분과 관련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조선의 의학은 성리학의 테두리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쇠락의 길을 걸었다는 설명이다.(261 페이지) 연산군,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가 대표적이지만 조선의 임금들을 정신적 문제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도세자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대하고 자주 질책한 영조는 편집성 인격 장애에 가깝다고 한다.(334 페이지) 나는 ’왕의 한의학‘을 읽고 조선의 임금들은 대신들과의 치열한 신경전, 친인척 및 형제 차원(때로 부자 차원: 인조와 소현세자의 경우처럼)의 권력 다툼(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물론 내적 갈등으로 작용한 사례까지 포함) 등과 두루 얽힌, 기운(氣運)과 건강이 부침했던 장소(場所)이자 교차로였다는 생각을 했다. 참 인상적인 ’왕의 한의학‘이 우리 한의학에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역사와 한의학에 대한 깊은 천착과 애정이 돋보이는 책 ’왕의 한의학‘을 적극 추천한다. 우선 나부터 틈나는 대로 자주 펼쳐보게 될 책이라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m******1 2014.12.2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런 책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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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저자의 발품과 전문성을 살린 책을 좋아한다. 역사책은 많다. 특히나 정치사 중심의 역사책은 이제 너무도 많이 나왔다. 더군다나 조선사는 정말 많다. 하지만 이처럼 왕의 한의학처럼, 왕의 건강에 포인트를 둔 책은 드물다. 그래서 이런 책을 좋아한다. 그 전문성과,  저자의 노력이 번뜩이는 책이다. 왕의 건강에 포인트를 두고 역사를 다시 훑어보니, 정치사 중심으로 읽어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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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저자의 발품과 전문성을 살린 책을 좋아한다. 역사책은 많다. 특히나 정치사 중심의 역사책은 이제 너무도 많이 나왔다. 더군다나 조선사는 정말 많다. 하지만 이처럼 왕의 한의학처럼, 왕의 건강에 포인트를 둔 책은 드물다. 그래서 이런 책을 좋아한다. 그 전문성과,  저자의 노력이 번뜩이는 책이다. 왕의 건강에 포인트를 두고 역사를 다시 훑어보니, 정치사 중심으로 읽어왔던 역사와는 조금 다른 측면의 역사가 보인다. 이처럼 각각의 전문가의 입장에서 다시 살펴본 역사서들이 풍성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t**j 2015.07.20.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