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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를 대표하는 최기우 극작가의 희곡집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이 가을바람을 타고 들려왔다. 제목은 <은행나무꽃>. 은행나무 열매는 숱하게 봤어도 꽃은 본 적 없던 터라 내용이 사뭇 궁금해 곧바로 구매. 게다가 이번 희곡집은 최기우 극작가가 20년 넘게 써온 작품 중 은행나무와 관련된 작품들을 모았다기에 더욱 기대가 컸다. 도착한 희곡집은 가을과 딱 어울리는 노란 은행나무가 그려진 표지였다. 계절과 어울리니 멋스럽게 가슴에 품고 걸어도 폼 날 것 같았다. 희곡은 모두 다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은행나무꽃>과 <교동스캔들>은 전주한옥마을에 심어진 은행나무를 소재로 삼았다. <은행나무꽃>은 실제 은행나무를 심은 최담의 넷째 아들 '최덕지'를 주인공으로 한다. 샌님같은 최덕지가 당차고 거침없는 부인 이이화를 통해 진정한 입신양명의 뜻을 깨닫게 된다는 내용으로 시대를 뛰어넘는 당찬 이이화 캐릭터가 매력 뿜뿜하는 작품이다. <교동스캔들>은 <은행나무꽃>의 현대 버전으로 게스트하우스를 배경으로 남녀의 꿈과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물론 이 작품에서도 은행나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남주가 여주에게 건네는 서툰 장난질과 현실적인 대화들이 재미진 작품이기도 했다. 두 작품 모두 여성의 당찬 태도와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고 자신만의 소신과 신념으로 삶을 이끄는 모습이 돋보였다. 또 하나 눈에 띄는 작품은 <수상한 편의점>이다. 최기우 극작가가 2001년에 쓴 <귀싸대기를 쳐라>의 2015년 버전으로 양심에 어긋난 사람들을 찾아가 소심하지만 나름 정의롭게 귀싸대기를 치는 무리의 이야기다. 물론 이들 또한 모순을 가진 인물들이다. 그러나 평범한 인물들이 보여주는 통쾌하면서 배꼽 빠지는 응징 서사는 대리만족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읽는 동안 내가 그 무리가 된 듯 손을 쫙 펴 찰지게 귀싸대기를 치는 시늉을 하는 걸 보면 말이다. 대한민국연극제 작품상북연극제 희곡상,최우수작가상을 받았던 <조선의 여자>는 두말하면 잔소리일 정도로 작품성이 뛰어났다. 일제강점기, 세대를 잇는 여성의 고통에 숙연해지는 시간이었다.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평생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았을 우리네 딸들의 이야기는 최기우 극작가의 언어로 변주되어 한동안 내 삶을 강하게 흔들 것 같다. <누룩꽃 피는 날>은 전주 대표주 막걸리 이야기다. 막걸리를 통해 전주의 멋과 맛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막걸리의 역사를 저절로 알게 됨은 물론이요 서민들에게 막걸리가 가지는 의미까지 알게 되었다. 작품을 쓰는데 얼마나 많은 자료를 찾아 밤을 하얗게 지새웠을까 싶은 생각에 대충 읽어낼 수가 없었다. 꼼꼼하게 쓰인 좋은 작품은 읽는 자세를 달리 만드는 힘이 있다. 희곡집 <은행나무꽃>을 소리 내어 읽어 보시라. 지금 당신이 있는 자리가 무대가 될 것이다. 지금 책을 펼쳐 무대의 조명 아래 서 보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