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스 안에서 화재가 발생한다. 사람이 사람에게 불을 붙였다.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는 목숨을 건졌으나 회복에 오랜 시간이 소요됐다. 그저 장난으로 치부하기에는 사태가 심각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의 잘못이 전적이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하는 경우라면 그와 같은 일을 벌이지 않을 터였다. 당연히 죗값을 치르는 게 마땅했다. 10년, 20년 혹은 그 이상? 이미 저울추는 기운 듯하다. 소설과도 같은 이야기였으나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실제로 발생한 사건이라 하였다. 제목이기도 한 ‘57번 버스’가 사건의 배경이었다. 이 버스는 상반되는 두 지역을 관통한다. 한 쪽에는 상대적으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별다른 걱정없이 살고 있는 반면, 다른 쪽에는 부모 중 한 명이 없거나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장시간 노동에 부모를 빼앗긴 아이들이 거주한다. 접점이라고는 찾기 힘들어 보이는 두 지역 아이들은 57번 버스에서 만난다. 리처드와 사샤도 그러했다. 동선이 겹친 건 불과 몇 분에 불과했다. 서로를 영영 모를 수도 있었고,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을 텐데, 바람과는 정 반대로 일이 전개됐다. 리처드는 사샤의 옷에 불을 붙였고, 이로 인해 사샤는 심히 다쳤다. 아직 미성년자인 리처드에게 어떠한 형량을 부여하는 게 바람직한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성인에 준하는 형벌을 부과하는 게 마땅하다는 의견에서부터 장래를 고려해 처벌보다는 교화에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한 쪽은 가해자요, 다른 한 쪽은 피해자라는 사실이 분명해 보였다. 세상 일이 그리 단순하지 않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리처드는 흑인이다. 그는 아버지가 없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일을 하지만 리처드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에는 빠듯하다. ADHD가 의심스럽다. 주변 친구들의 사정도 비슷하다. 그는 학업에 집중하는 편이 아니다. 때때로 수업을 빠지기도 한다. 그의 배경은 불량 청소년을 예고하는 듯했다. 이런 환경에 놓여 있으면 누구나 나쁜 길을 걷게 되리라는 예언에 부합하는 행동을 리처드는 했다. 개인의 일탈이지만 사회도 함께 책임져야 마땅하다. 어느 누구도 범죄자가 되기 위해 이 땅에 태어나진 않는다. 잘못된 행동에 대한 단죄 부분에서도 따져 보아야 하는 게 있다. 백인이 아니라 더 높은 형량을 받은 건 아닌지를 살펴야 한다. 동일한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라도 흑인은 백인보다 더 중한 처벌을 받는 일이 잦다. 리처드를 대하는 사회의 시선이 그가 흑인이기에 더 차갑지는 않은지 우리로서는 물을 필요가 있다. 사샤에 대한 부분도 생각의 여지가 있었다. 독특한 주제에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매달리는 모습이 다른 이들과 사뭇 달랐다. 야스퍼거 증후군이라고 했다. 사건 발생 당시 그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치마 입은 남자. 독특하다. 그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 무엇이다. 에이젠더, 그레이-큐피오섹슈얼, 콰이로맨틱. 이는 사샤가 자신을 정의할 때 사용한 용어인데, 부끄럽지만 난 이 중 어느 것도 들어보질 못했다. 그가 남들과 다른 게 사건 발발로 이어졌다고 많은 이들은 보았다.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가 얼마나 끔찍한 상처를 낳을 수 있는지, 사샤의 사례를 접하며 난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에 대해 어떠한 교육도 존재치 않으며, 심지어 금기시되기까지 하는 우리 사회에선 이보다 더 사악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쉬쉬 하는 게 진정 능사일까. 리처드도 사샤도 어떤 의미에선 피해자였다. 우리 사회가 잘 보듬었더라면 양산되지 않았을. 치밀했다. 두 인물이 속한 사회 구성원들을 만났고, 그들이 털어놓는 이야기의 힘으로 리처드와 사샤를 재구성했다. 전적으로 선하거나 반대로 100% 악한 인물은 없었다. 사랑받는 자녀이자 소중한 친구였다. 특히 두 인물의 부모가 각자 처한 상황이 다름에도 포옹을 하고, 리처드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해 같은 꿈을 꾸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문장이 화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건조했다. 그럼에도 뭉클했다.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가 궁금하기도 하였다. 그 날이 없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