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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 며칠을 앓았다. 지난 몇 년간 코로나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하면서 다녔는데 마스크를 벗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감기 몸살이 찾아왔다. 볼이 빨갛게 열이 오르고 두통과 약간의 어지럼증을 동반한 채로 병원에 들렀을 때, 나와 비슷한 증상의 환자들이 병원 대기실을 가득 메우고 있는 현실이 조금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순번을 기다려 진료를 받고 처방전을 손에 든 채 병원을 나섰을 때는 이미 퇴근 시간이 지난 후였다. 몸이 아파서 며칠 병가를 내야겠다는 사실을 회사에 알린 후 정적이 내려앉은 숙소로 돌아와 굳게 닫힌 문을 열자 밀렸던 피로감이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간신히 약만 챙겨 먹은 나는 저녁도 거른 채 침대에 쓰러져 며칠을 앓았던 것이다. 삶이란 그렇게 때로는 변덕스럽고 요란한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이렇게 한 번씩 제 몸조차 가누기 힘든 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살아야겠다는 의욕보다는 이렇게 구질구질한 경험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해야만 내 삶이 완결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끼니를 챙겨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졸음을 몰아낸 몸이 허기를 느낄 때마다 배달 음식을 시키거나 냉장고 속 남은 과일을 건져 먹었다. 그렇게 며칠을 앓았던 나는 겨우 추스른 몸으로 출근을 했고, 여진처럼 이어지는 후유증에 쉽게 잠식당하곤 했다. 갈수록 떨어지는 의욕과 몸살 후유증으로 인해 독서는커녕 텔레비전을 보는 것조차 멀리한 채 침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기면증 환자처럼 말이다. 열흘 이상의 시간 동안 나는 여행작가 최갑수의 에세이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를 겨우 읽었을 뿐이다.
"죽음을 몇 달 앞둔 여든한 살의 테라스에서,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 같은 건 들지 않을 것 같다. 다시 돌아가봐야 최선을 다하지 않으리라는 걸, 최선을 다해봐야 그다지 바뀌는 것이 없다는 걸 그때쯤이면 알고 있을 테니까. 다만 즐기지 못한 것이 아쉽고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플 것이다. 즐거움과 사랑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인데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놓치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p.85~p.86)
내가 아팠던 순간에도 지구의 시간은 꾸준히 흘러 화려했던 벚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이르게 핀 이팝나무 가로수의 몽실몽실한 꽃망울이 도로변을 환하게 빛낸다. 내가 아침마다 오르는 등산로에도 아카시아꽃의 진한 향기가 산 전체를 들썩이게 하고, 손바닥만큼 펼쳐진 상수리나무의 나뭇잎마다 바람에 날린 송홧가루가 뽀얗게 내려앉아 있다. 이만큼의 시간을 살아냈구나, 하는 뿌듯함보다 손을 놓은 채 보냈던 지난 시간들이 허전함으로 다가온다. 손가락 사이로 휑한 바람이 분다.
"세월이 간다. 하루에 하루씩 꼬박꼬박 가고 있다. 후지와라 신야 영감을 읽다 눈에 띄는 한 구절. "이 세상 살아 있는 생물들은 모두 온 힘을 다해 살고 있는 것이다." 온 힘을 다한 적이 있었던가. 일에도 사랑에도 여행에도 그런 적이 있었던가. 시월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p.191)
여행작가라는 직업이 무색하게도 한동안 여행을 떠날 수 없었다는 작가는 일상의 곳곳에서 여행을 떠올렸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들었다고 했다. 자신이 밑줄을 그었던 여러 문장들 중에서 사람들과 함께 읽고 싶은 문장들을 뽑아내어 작가의 시선과 글을 더해 사진과 함께 완성한 이 책은 침대 머리맡에 두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신이 읽었던 구절을 곰곰 되새기며 멀리서 들려오는 뻐꾸기 울음소리에도 귀 기울이게 되는, 자주 안 쓰던 마음 관절을 움직이게 하는 그런 책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 인생은 고달프고 지루한 것이에요. 간간히 슬프고 고통스럽구요. 더 간간히 즐겁고 기쁘고 감동스럽습니다(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인생을 우리가 꾸역꾸역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인간이란 쉽게 잊어버리는 동물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요(라고 생각합니다만)." (p.348)
어제 가볍게 비가 지나간 오늘의 하늘은 무척이나 투명하다. 연속되는 지구의 시간은 이렇듯 변화무쌍하고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우리는 변화의 순간들을 매번 놓치곤 한다. 자신의 삶을 온전히 지탱하기 위해서는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보다 웬만한 변화쯤이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내는 게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 '둔갑력은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재능을 한껏 키우고 활짝 꽃 피우게 하는 가장 큰 힘'이라고 했던 어느 작가의 말처럼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민함보다는 둔감함일지도 모르지만 신록이 짙어지는 이맘때쯤에는 하나하나의 변화가 새롭기만 하다. 무기력하던 나의 몸이 겨울을 지나 봄처럼 가볍게 깨어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에도 어쩌면 그런 순간이 도래할지도 모른다. 봄처럼 가볍게 깨어나는 순간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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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 최갑수 . . <밤의 공항에서>를 읽고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문장을 자주 찾아봤고 꺼내어 곱씹었었다. 오랜 여행자로 살아왔고 살고 있는 사람의 글은 인생을 곧이곧대로 보는 것이어서, 모른척 지나치지 않는 직설이 있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좋았다. 인생이 결코 아름답지 않음을, 여행이 생각만큼 환상의 날들만이 아님을 말하는 진솔함. 무조건적인 긍정이 아닌,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을 관조하듯 담담하게 풀어가는 말들이 따뜻하고 위안이 됐다. . . 이 책 또한 그랬다. 몇 장을 펼쳐 읽어내려 가는데 너무 좋아서 무기력한 내가 스스럼없이 풀어져 버렸다. 아, 그래 그런거지, 하며 힘을 내보고 싶었다. 작가님의 글이 좋은 이유는 정확하게 그런 것들이다. 무조건 잘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면서, 그렇다고 냉정하게 던지는 말들이 아닌 것들. 어쩐지 이 분의 책을 읽노라면 여물어 버린 인생을 알아챌 수밖에 없다. 세월이 가고 있음을,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날들을, 그 속에서 우리는 꼭 잃어야 할 것들이 반드시 생기고 자연의 이치처럼 체념하고 살아가는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모른척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글을 쓰는 여행자가 있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생각한다. . . 이 책은 최갑수 작가님이 사랑한 문장들을 꺼내, 수많은 여행의 여정을 걷고 인생을 살아온 작가님의 문장들이 더해지는 글들이다. 그러니 그 문장들은 여행이고 사랑이다. 또 인생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조금씩은 웃고, 새어나오는 울음처럼 슬퍼지기도 한다. 체념과 울분이 교차하기도 하고 행복과 불행과 희망이 엇갈리기도 한다. 하지만 끝내 우리는 인생의 터널을 묵묵히 걸어 나가야 함을 말한다. ‘우연의 세계를 무사히 지나갈 주문 하나쯤은 가지고’ 말이다. 오늘은 사랑하고 여행하기 좋은 날씨라는 가장 중요한 말도 곁들이면서. 이 책은 봄이고 겨울이기도 하지만 결국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다. 그러니 새롭게 힘을 얻었다. ‘봄’같은 희망으로. 몇 번이고 읽고 썼던 아래의 문장으로 희망을 기록해 본다. . . ??우리는 어쩌면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몰라요. 불현듯 노인이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겠죠. 모든 일을 예측할 수 있고, 모든 일에 덤덤해지겠죠. 이것만이 분명한 사실이에요. 그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는 것이구요. 그러니까, 어둡고 차갑고, 끝내 상실로 가득할 우리 인생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서로를 잊지 않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것, 오직 그것. 184p . .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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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직업이다. 여행을 떠나고, 돌아와서는 그 여행에 대해 글을 쓴다. 그리고 다음 여행을 다시 떠난다. 많은 이들이 이렇게 말한다. "부러워요. 여행이 직업이라니." 하지만 그들 역시 알고 있다. 우리의 여행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만큼 낭만적이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사실을. ... (중략)... 여행을 하며 깨달은 건 삶은 모험이라는 것. 모험이 아니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 _263~266p.
저자가 낯선 길을 걷고 사진으로 기록하며 글을 쓰는 여행작가가 읽고 발췌한 문장들과 여행에 관련한 이야기. 발췌 문장과 여행지의 사진, 그리고 글을 읽다 보면 낯선 길 위에 있었던 시간들이 떠오른다. '그때처럼 다시 여행할 수 있는 시간들이 올까?'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고 조심스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시간들...
2015년 읽었던 책을 꺼내 2021년 개정된 책과 함께 넘겨보았다. 그때 읽은 책도 참 좋았는데, 이 책들을 놓고 비교해보니 개정판의 매력을 새삼 느끼게 된다. (개정판 편집 너무 잘했잖아!!) 몇 년이 지난 책은 지난 시간을 품고 종이도 바랬지만, 플래그잇이 빼곡한 그 시간을 2021년 오늘도 이어가는 느낌이었던 에세이. '생과 사랑, 여행에 관한 문장' 생의 한가운데서 우리를 다독여주는 문장과 사진들은 오랜 시간 여행에 목마른 지금 읽기 딱! 인 책이 아닐까? 애정 하는 작가님의 친필 사인으로 더욱 소중한 책이 되었다.
스스로를 끌어안는 방법은 많다. 도무지 견딜 수 없는 시간을 견뎌내는 것. 오후 다섯 시의 유치원에서 아이가 도화지에 공룡을 그리며 엄마를 기다리듯,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시간을 견뎌내고 행복해지려 한다. 그리고 그 방법이 내게는 여행이다. 나는 여행이라는 손바닥으로 내 어깨를 쓰다듬는다. _15p.
가끔 사람들에게 이야기한다. 자기가 사는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다면 쉬어보라고, 내가 이 세상의 '리얼'을 경험한 때는 일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쉴 때였다. _36p.
당신을 사랑하는지 생각해 보기 위해 길을 멈추진 않겠지만, 내 인생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가끔 멈추어야 할 것 같아요. 이젠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요. 무언가를 위해서 남은 인생을 바칠 결연한 다짐을 하기보다는 그냥 가끔 맛있는 것이나 먹으며 즐기고 싶은 것이 솔직한 마음이랍니다. _169p.
사실, 우리 인생은 고달프고 지루한 것이에요. 간간이 슬프고 고통스럽구요. 더 간간히 즐겁고 기쁘고 감동스럽습니다(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인생을 우리가 꾸역꾸역 살아가는 이유는 뭘까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인간이란 쉽게 잊어버리는 동물이기 때문이라는 것도 그 이유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요(라고 생각합니다만). ...(중략)... 그래도 우리의 사랑이(여행이) 계속되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사랑(여행)이 없다면 생이 얼마나 밋밋할까요, 지루할까요, 권태로울까요. 모험이 없으면 경이가 없는 법. 내가 당신에게 고백을 하고 배낭을 꾸려 여행을 떠나는 것도 이 때문이겠죠. (지난번의 지루했던 사랑을, 위태로웠던 여행을 잊어버린 이유도 있겠습니다만.) 자, 어쨌든, 두 손을 맞잡고 국경을 훌쩍 다시 넘어봅시다. 저 너머엔 우리의 가습을 쿵쾅거리게 해줄 만한 뭔가가 있겠죠. 오늘은 사랑하기(여행하기) 좋은 날씨입니다. _348~34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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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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