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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에서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소년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는 지칭인 ‘a boy’를 직역한 것이며 원서의 맥락을 잘 분석해 보면 22세 이상인 청년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역자의 추론은 매우 설득력이 높다. 이런 설명으로 인해 그동안 좀 소년이 매우 어른스럽다고 생각했던 행동이 이해되었다. 소년을 10대가 아닌 20대 청년이라 번역해 놓은 이 책이 더 자연스럽게 읽혔다.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84일간 그렇다 할 소득이 없어 이웃들의 비웃음을 산다. 85일째 드디어 청새치를 잡지만 배보다 더 큰 청새치는 산티아고 혼자만의 힘으로 상대하기 만만치 않았다. 청새치와 사투를 벌일 때는 노인은 그간의 경험, 전문성, 지식, 정신력, 체력으로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다 87일째에 청새치를 손에 넣는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사이 상어들에게 청새치를 모두 다 빼앗겨 뼈만 앙상하게 남아돌아 가게 되었지만, 노인은 어부로서의 숙명과 자존심을 회복한다.
역경을 뛰어넘는 인가의 의지를 보여준 작품이라 평가받는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의 가장 주목할 만한 작품 중 하나로 간주 되며 본인 자신도 “인생을 통틀어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라 평했다. 헤밍웨이는 이 소설로 1953년에 퓰리처상과 19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스토리텔링과 인간 조건에 대한 묘사로 찬사를 받고 작품이지만 읽을 때마다 그리 쉽게 마음에 다가오는 책은 아니다. 망망대해에서 청새치와 벌이는 사투 속 그나마 산티아고가 혼잣말을 하고 물고기와 새에게 이야기하기에 답답함이 좀 해결된다. 사실 노인의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산티아고와 마놀린의 나이를 뛰어넘는 우정이 더 인상적이었다. 내가 낚시를 많이 해보지도 않았을뿐더러 멀미약 없이 낚싯배를 타는 것은 생각지도 못하기에 더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나의 이런 『노인과 바다』에 대한 얕은 감상을 고전살롱을 통해 더 깊이 이해를 할 수 있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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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주)소리 출판사
문학 작품에서 주인공을 가리키는 표현은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특히 다른 작가도 아니고 하드보일드 스타일과, 형용사의 사용을 극도로 절제한 헤밍웨이라면? 이번에 새로 나온 번역본은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전공자들끼리 쓰는 조금 재미없는 단어 중에 직시(Deixis)라는 단어가 있다. 화용론에서 문맥이나 상황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는 맥락(context)적 지시 관계를 가리키는데, 예를 들면 '나'라는 단어는 문맥이나 상황 없이는 뜻을 알 길이 없는 의미다.
이것은 화자의 의도와 상대적 거리를 나타내기도 하고, 주관성이 반영된다. 그래서 번역할 때 작가의 의도가 중요하며, 번역가가 추론과 해석을 통해 그 의도를 이해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사회적, 문화적 배경을 연구하기도 하고, 작가가 영향을 받은 다른 사람의 작품을 분석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호칭 하나만 두고 고민하더라도 등장 인물 간의 관계, 사회적 지위, 심리 상태 거기에 당연히 영어와 한국어의 언어적인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어는 주어가 흔히 생략되기 때문에, 모든 문장의 주어를 다 번역하면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오래된 작품들은 이런 면 때문에 번역이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노인과 바다>는 헤밍웨이가 1952년에 쓴 작품으로, 스페인 내전과 세계 대전을 겪은 작가임을 감안해야 한다. 특히 주인공 산티아고Santiago는 일반적으로 작품 내에서 노인old man이라고 불린다. 이를 단순히 직접 번역해 '노인', '늙은이'로 번역할 수 도 있고, '할아버지'나 '산티아고 할아버지' 등으로 부드럽게 번역할 수 도 있다.
노인이 자기 자신을 부를 때는 (작품 중반부터는 혼잣말이 많으므로) '늙은이', '영감', '할아범' 등으로 부를 수도 있다. 그리고 마놀린은 한국어의 특성 상 할아버지말곤 딱히 다른 표현이 없다. 한국어에서 나이가 많은 손윗사람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거나 '노인'이라고 부른다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두드려 맞을테니깐. 그렇다고 존경의 의미를 담아서 '어르신'이라고 한다면? <어르신과 바다>?? 정말 어색하다.
예를 들어 "You get your hands well, old man." 이란 문장을 다른 번역본은 이번에 새로 나온 번역은 '할아버지는 손 회복이나 신경 쓰세요'를 택했다.
많은 장면을 옮길 순 없지만 새 번역에서 단순히 호칭만 바뀐 건 아니다. 클라이막스와 마지막 장면은 특히 미묘한 차이가 있고, 헤밍웨이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충분히 재밌게 즐길만한 책이다. 본인이 소장하고 계신 번역본과 비교하면서 읽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는 앞으로도 헤밍웨이가 계속해서 새로 번역되고 재조명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런 새로운 시도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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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영문과 주제에 아직까지 이 책을 읽지않고 있다가 바로 이 책을 잡기전 다른 책을 잡았다. 그랬기에, 이 책에서 'boy'의 나이를 소년에서 청년으로 올려 정정했을때 그 바뀐 느낌이 어떨할지 생생했다. 마치 그전까지만해도 아이와 할아버지의 동화같은 환타지같았다면, 여기선 뭔가 더 생서비린내와 피가 더 풍기는 현실이다.
잡아서 먹지만, 청새치 수컷이 암컷에게 보내준 배려가 죽음으로 돌아오고. 이를 가슴 아프게 하지만, 가장 덜 고통스럽게 처리해주었던 어른스러움 (아, 난 왜 여기서 갑자기 회에 대한 장난이 내 뒤통수를 떄리는 걸까. 먹는 것에 대한, 그 생명의 희생에 대한 고마움이 왜 없었을까..), 그리고 거대한 만새기와의 죽음까지의 함께함. 그동안의 지친 작은새에 대한 너그러움, 상어떼의 공격과 방어. 바람의 고마움.
...그런데 자네를 패하게 한건. 노인이 생각했다. "없어." ...
85일만에 만나고 87일만에 낚았건만... 상어의 꼬리와 사자의 꿈.
사람은 죽을지언정 패배하지않는다. 아, 너무 멋진말인데다 이 작품의 번역을 위해 수많은 책을 봤을 번역자분의 순수함과 열정이 느껴진다. 수수한 책이지만 열정이 빛났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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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또 한 번 시도했고, 결과는 똑같았다. 곰곰이 생각해본 노인은 그것이 맞는 방법이라 판단한 뒤 다시 시도하려 했다. 한 번 더 해보는 거야. (P.144)
좋아하는 구절이다. 살며 지치는 날, 나는 이 소설을 몇 번이고 읽었던 것 같다.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모르긴 몰라도 책 좀 본다는 사람 중 노인과 바다를 읽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인과 바다가 왜 명작인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꽤 있는 듯하다. 나 역시도 처음 한두 번은 이해하지 못했다. 어느 날 회사에서 멸치처럼 볶이고 돌아가는 길, 오디오북에서 흘러나오는 저 구절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 성우가 읽은 오디오북인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 번 더 해보는 거야.”라는 구절이 그렇게 힘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이 책을 만났다. 다소 생경하게 느껴진 것은 할아버지 곁에는 “소년” 대신 “청년”이 있다는 것. 사실 처음에는 그것이 뭐 그리 중요할까, 어차피 이 책은 자신의 가치를 굳건히 지키는 노인의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착각이었다. 소년 역시 가난한 집에서 외로이 자라기에 노인과의 관계에서 애정을 찾는다 생각해왔으나 그를 청년이라 생각하니 자신이 걷는 길을 먼저 걸은 선배에 대한 동경의 행동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노인도 “신념을 가졌으나 이미 약한 존재”가 된 노인이 아니라, 평생 한길을 묵묵히 걸어온 “장인” 느낌이 강해졌다.
그 선택은 덫이나 함정, 속임수가 미치지 못하는 더 깊고 어두운 물속에서 머무르는 것이었겠지. 나의 선택은 이놈을 찾아 그곳으로 가는 것이었고. (...) 그렇게 우리는 만났고. (P.66)
어떤 면에서 이 세상 모든 건 다른 걸 죽이는 것 아닌가. 가령 고기잡이는 나를 살게도 하지만 분명 나를 죽이는 일도 하거든. 그러고 보니 마놀린도 나를 살게 하는구먼. (P.129)
노인은 마놀린을 떠올리다 더는 생각이 멀리 나가면 안 되겠다고 머리를 털어낸다. 그러나 헤밍웨이는 이 문장을 통해 청년이 노인에게, 또 노인이 청년에게 어떤 존재가 되어주는 것인지를 분명히 짚은 느낌이다. 망망대해 작은 배 위에서 그는 많은 생각을 내뱉는다. 그 생각들은 바다나 물고기, 청년 등 좁은 시야지만 절대 얕지 않다. 마치 바다의 깊이 같다. 오래 바다 위에서 살아온 이답게 그는 이미 바다를 닮아있는 것이다. 바다 그 자체인 것이다. “노인은 물고기를 생각하는 게 좋았고, 만약 자신이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다면 상어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는 것도 좋았다. (P.139)”에서 느낄 수 있듯 노인과 바다에는 경계선이 없다. 분명 헤밍웨이가 묘사하는 노인은 듣거나 본적 없는 큰 물고기와의 사투를 벌이고, 그것의 대부분을 빼앗긴 채 패잔병처럼 돌아오는 모습이지만, 그것을 읽는 나는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불분명하듯, 노인과 바다의 경계 역시 그러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청년과 새로운 계획을 나눌 때는 맑게 갠 바다를 상상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노인의 바다일까, 청년의 바다일까. 어쩌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청년이 노인이 되고 또 청년에게 다시 자신을 들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바람은 우리의 친구야. 우리의 친구와 우리의 적이 함께하는 위대한 바다. (P.143)
얼마 전, 한 글에서 내가 평생에 걸쳐 잘한 것은 딸을 낳은 것과 꾸준히 책을 읽는 것뿐인 것 같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물론 당시 내 마음이 비약적이었을 테지만, 보송보송한 지금 돌아보아도 다른 게 딱히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득 오랜만에 다시 만난 노인에게서, 이미 빼앗겨버린 물고기의 흰 뼈에서 아무것도 이룬 게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타협의 용기를 얻는다. 그저 꾸준한 것, 그것도 무엇인가 이룬 것은 아닐까. 어쨌든 책은 우리의 친구지 않은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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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부끄럽지만 이 유명한 소설을 아직 읽어본적 없었기에 서평단 체험이 있어 신청해 보았다.
헤밍웨이는 이 소설을 "인생을 통틀어 내가 쓸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라 평했고 이 소설로 퓰리처상, 노벨 문학상 까지 받았다.
옮긴이 조종상님은 원서 속 노인과 boy의 대화에서 boy의 나이를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을 발견하였고,확인 결과 boy가 20대 초반임을 알게 되었다. 나 역시 소년 하면 10대가 떠오르고 20대 초반이면 소년 보다는 청년이 더 어울리는거 같다. 노인은 멕시코 만류에서 작은 배를 타고 홀로 고기를 낚는 어부였고 그 옆에는 마놀린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원래 둘은 같이 배를 탔었는데 40일간 물고기를 잡지 못하자 청년의 부모는 청년을 다른 배로 보냈다. 매일 혼자 빈 배로 돌아오는 노인을 볼때마다 청년은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청년은 낚시줄이나 돛대를 나르며 노인을 도왔다. 청년에게 낚시를 가르쳐 준 사람이 노인이였고, 청년은 그런 노인을 사랑했다. 청년은 노인이 쓸 낚시 미끼도 구해오고, 끼니도 챙겨주고, 혼자인 노인을 돌봐 주었다.
84일째 고기를 잡지 못한 노인은 85일째 되는날 청새치 한 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낚시줄에서 느껴지는 물고기의 무게감은 대단했다. 물고기는 미끼를 문 채 앞으로 나아가고 그렇게 노인과 물고기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86일째 드디어 물고기가 몸을 드러냈다. "이 배보다 족히 60센티미터는 더 큰 놈 이야" 배보다 더 큰 물고기를 어떻게 잡으려고.. 혼자 고군분투하는 노인이 안쓰러웠다. 옆에 누군가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87일째 노인은 작살로 물고기를 잡았다. 혼자 정말 힘들었을텐데.. 포기하지 않은 노인이 대단하고 존경스러웠다. 노인은 물고기를 배 옆에 잘 묶고 순조로이 항해를 했다. 그러나 피 냄새를 맡고 온 상어들 노인에게 또 다른 시련이.. 노인은 물고기를 지키키 위해 상어들과 계속 싸웠지만 결국 물고기를 지킬 수 없었다.
결과 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지만 노력에 비해 얻은게 없는 노인이 너무 안타까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노인을 보면서 내 자신을 돌아보고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워본다. <마더스 까페 서평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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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책도 때가 있다.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인 걸 알지만, 아직은 읽을 때가 아니다 싶은 책이 있다. 이 책이 딱 내겐 그랬다. 8년 전 첫째를 배에 담아 키우고 있을 때, '헤밍웨이' 강의에서 접한 이 책의 줄거리는 허탈하고 단순했다. 그저 평범해 보이는 이야기에서 나는 명작을 알아보지 못하고, 무지함을 마주할까봐 겁이 났던 것 같다. 읽을 시기는 아주 자연스레 찾아왔다. 이젠 명작에 대해 무언가를 끌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여유가 조금은 생긴 40대가 되고 나니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 읽을 수 있다!
2.줄거리 이야기는 정말 단순했다. 노인이 80여일간 아무 것도 잡지 못하다가 드디어 거대한 물고기를 잡고야 만다. 그러나 수시로 만난 상어떼들을 만나 뼈가 몽땅 발려졌다. 바다 속에서 사투를 벌이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상태인 고기를 끌고 노인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잠을 잔다. 그러나 노인은 여전히 (사자)꿈을 꾼다.
3. '소년'을 '청년'으로 번역한 <노인과 바다>
처음 읽어본 <노인과 바다>였지만, 노인과 '소년'이 등장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기존 번역본엔 '소년'이라 번역했지만, 이 책에선 '청년'이란 단어로 대체했다. 그런 점이 내겐 신선했다. 역자의 말에 의하면 내용을 엿보아 추측하건데, '소년'보다 '청년'의 나이에 더 가깝다는 게 그 이유였다. 또, 소년과 노인의 어감과 청년과 노인의 어감은 상당히 다른 분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것. 책을 읽으면 독자의 머리 속엔 대략적인 인물의 실루엣이 완성되기 마련이다. 소년과 청년의 차이, 그리고 소년 혹은 청년과 노인과의 케미는 굉장한 차이를 보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번역자는 자신은 다른 번역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겸손하게 다른 번역이 더 훌륭할 수 있다고 말했으며, 자신이 판단한 근거에 따라 기존의 언어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청년'을 선택했다고 했다. 번역에 뚜렷한 소신이자 확신이 있으니, <노인과 바다>라는 여러 번역책들 중에서 먼저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그것이다.
4. 단어들에 주목하기
대립되고, 반복되는 단어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노인 vs 청년 -상어 vs 물고기 -행운 vs 희망(?) -어깨 vs 목
또, 자주 반복되는 단어를 하나하나 이어보면 <노인과 바다>가 완성되는 느낌이다. 제목도 이해가 쉬워진다. 특히 노인의 고기잡는 며칠에서 그 과정은 우리가 사는 '인생'을 보는 듯 하다. 번잡하고 바빴던 청년의 시기를 지나 홀로 외로운 싸움을 하는 노인의 시기가 오는 것이 삶의 보편적인 모습인데, 이 책 속 청년과 노인의 모습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또, 노인의 물고기처럼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우리의 노력과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그래서 '행운'에 스리슬쩍 기대거나, 살고자 하는 본능을 따라 '희망'을 선택한다. 우리의 찬란했던 찰나를 기억하고, 때로는 어떤 영웅(야구선수)에 우리의 기대와 희망을 반영하기도 한다. 삶에 있어 우리는 희망과 기쁨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청년다움을 지니고 있다. '어깨'는 노인을 닮았지만, 단단한 '목'은 아직도 우리에게 남은 생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바다'는 인생과 같아서 우리가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책에 나온 단어를 가지고 읽으며 드는 잔상들을 나열해봤다.
5. 헤밍웨이는 이랬어요. 그의 문장은 단순하면서도, 서정성과는 조금 떨어져보이는 담백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고기잡는 여정에 많은 포커스를 두고 있고, '여성'이 거의 등장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배경인 바다를 여성처럼 다루는 노인 때문인지 군더더기 하나 없는 남성적인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고전은 읽을 수록, 곱씹을 수록 그 맛이 난다고 하는데 이번엔 맛보기였다 치고, 이 책을 다른 번역본으로도 읽어서 고전의 깊은 맛을 느껴보고 싶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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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모두 들어 한 번씩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렇지만, 나는 그 책을 여태까지 읽은 적이 없다. 얼핏 들은 이야기로 알고 있었다. 거기서도 노인과 한 소년이 바다에 떠나다 죽음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이상한 이야기로 인지하고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소년의 나이대가 20대 초반이었다는 것이다. 물론 소년과 노인의 바다를 항해하는 이야기는 이상하지 않다. 그렇지만, 소년이 노인의 뱃일을 돕는 이야기였다면 인식이 조금 바뀌었을 것이다. 아동학대 소설로 읽혔을 것이다. 그러면 작품에 집중하지 못하고, 소년의 이야기에만 집중이 되었겠지. 책을 제대로 읽을 때는 이 사실을 알고 읽어서 참 다행이다. 모르는 채로 읽었다면, 소년의 삶에 집중하여 노인의 삶의 잊힐 수 있었으니까. 이래서 그런가 번역가의 일이 참 중요하다. 작가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번역가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참 많은 변화가 일어난다.
노인과 바다 후반부에서 이 책의 내용이 기억났다. 이게 모두 꿈이었고, 실제로 노인은 죽음을 맞이했다는(물론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다. 그 내용은 어느 책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잘못된 기억을 갖은 채 읽으면서 일종의 불안감이 생겼다. 노인이 죽음을 맞이하였고, 이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 물고기면 어떡하지라는 그러한 불안감이. 그리고 수 마리의 상어가 죽임을 당하면서 믿음은 강해졌다. 다친 노인이 그렇게 많은 상어를 죽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말을 맞이하니, 내가 생각했던 내용은 이 책의 내용이 아니었고, 노인은 실제로 그 많은 상어를 죽였고, 살아있는 채 육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마놀린도 만났고, 다시 같이 일을 시작하자는 제안도 받았다. 그런 결말을 보면서 내가 지어낸(기억하던) 결말과 실제 결말이 비교되었지만, 두 결말 모두 허망한 끝을 맞이한 것을 보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실제 결말은 노인이 살아있기에 많이 다르긴 하지만. 그런 결말을 만들어 낸 나를 보며, 한편으론 부정적인 현실에 너무 익숙해진 게 아닌가 싶었다.
이 책은 어부의 에세이가 아닌가 싶었다. 내용도 낚시하는 노인이 전부고, 실제로 헤밍웨이도 낚시를 자주 했다고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낚시와 물고기, 바다에 관해 그리 관심이 많은 편이 아니라, 해박한 지식이 없다(그냥 지식도 없다). 그래서 여기서 주는 정보에만 의존한 채 읽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오는 불편함도 조금은 있었다. 개인적으로 책을 읽을 때 책의 내용이 자연스레 그려지고, 나만의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시작하는데.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속 쭉 상영되다가 물고기가 등장하면 끊기고, 낚시용품이 등장하면 끊기고 또 그냥 끊기기 때문이다. 여기 나오는 관련 내용을 전부 안 채,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이 들 것 같다. 아니면 영화를 본 후에 읽는다거나.
솔직히 나도 이 책을 다 읽은 후에 명작으로 칭해질 정도인가 싶었다. 그러나 닫는 말인 번역가의 말을 읽으니 이해가 갔다. 노인의 삶을 통해 여러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과정을 통해 배울 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마놀린도 계속 노인과 일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여기서 같이 온 스티커도 있는데. 나름 귀여워서 이곳저곳에 붙여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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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는 아주 간단히 요약될 수 있는 책이다. 긴 시간 동안 물고기를 낚지 못한 노인이 큰 물고기를 낚았으나 상어들에게 결국 뺏긴다. 단조로운 줄거리로 예전에 읽었고 분명 줄거리를 이야기 할 수 있지만 내용은 생각이 안 나는 밋밋한 책이라고 생각했었다. boy가 소년이 아닌 청년으로 번역한 책이 나와서 책에 대한 인상이 달라질까 싶어서 읽기 시작했다. 바다에서 큰 물고기를 낚기 전까지의 노인의 일상은 단조롭고 어떠한 면에서는 지루했다. 그렇지만 이 문장을 보고 책에 대한 인상이 확 바뀌었다. 126, 하지만 우리는 패배하라고 지어진 존재가 아냐. 인간은 죽을지언정 패배하지는 않는다고. 희망에 가득찼다가 절망에 처한 노인이 말했기에 진실하게 다가온다. 시련이 와도 그 시련이 나를 패배자라고 낙인찍을 수는 없는거라고. 시련때문에 목숨을 잃을 지언정 나는 패배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이 부분에서도 노인의 말이 진실된다고 느꼈다. 144 ,패해 보면 쉽게 알게 되지. 예전엔 미처 몰랐어. 그런데 자네를 패하게 한 건. 노인이 생각했다. "없어." 노인이 크게 말했다. "내가 너무 멀리 나갔던 것뿐이야." 인간은 패하지 않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노인도 그런 생각이 흔들릴 때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인이 자신을 패하게 한 건 없고 단지 멀리갔을 뿐이라는 말에서 삶의 태도를 배울 수 있다. 시련을 겪기 전에 할 수 있는 다짐들이 흔들릴지언정 없어지지는 않는다고. +)번역 번역가가 여는 말로 시작하고 닫는 말로 닫는다. 자신이 boy를 왜 청년으로 번역을 하게 됐는지, "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를 왜 위와같이 해석했는지 설명해준다. 친절한 번역가 덕분에 번역된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불편함, 어색함이 없어서 좋았다. 막힘없이 부드럽게 진행된는 노인과 바다의 번역판을 찾는다면 꼭 이 책을 추천한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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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부터 수없이 들어온 명작중 명작이다. 나에게는 매년 읽고 또 읽은 책이 딱 세권있는데 그것이 어린왕자와 동물농장 그리고 노인과 바다다. 읽을 때마다 주는 감동이 다른 것이 그 이유고, 매번 다 읽고 나서 역시 좋은 책이야 라고 느끼게 만든다. 세 권 모두 다 길지 않아서 원서까지 사서 읽어 보기도 했다. 어린 시절 노인과 바다는 조금 지루했다. 초반과 끝 몇장을 제외하고는 노인이 바다에서 벌이는 사투이기 때문이다. 다 비슷비슷한 내용이고 (지금도 중간에 상어와의 싸움에서는 대충 넘기곤 한다) 결국은 우여곡절 끝에 집에 돌아온다는 내용으로 기억했었다. 그럼에도 계속 매년 한 번씩은 읽는 이유는 읽을 때마다 다른 감동을 받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그리고 얼마 전까지도 안쓰럽게만 느껴졌던 조금은 세드 앤딩이라 여겨졌던 노인과 바다는 어른이 된 나에게 해피앤딩으로 다가왔다. 바로 아프리카의 사자꿈때문이다. 노인은 더이상 아내의 꿈도 아이들 꿈도 꾸지 않았다. 그가 꾸는 유일한 꿈은 사자꿈이었다. 84일간 허탕만 치고 돌아온 노인은 사자꿈을 꾸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그리고 노인은 홀로 떠난 바다에서 잡은 5미터가 넘은 물고기를( 상어에게 다 물어 뜯겨 뼈만 남았지만, ) 가지고 돌아와 피곤에 지쳐 잠들어 다시 사자꿈을 꾸면서 끝난다. 그리고 그날 파티를 즐기던 관광객 중 한 여성이 뼈만 남겨진 노인의 배에 묶여진 것을 보며 말한다. "상어꼬리가 저렇게 멋지고 아름다운지 몰랐어." 이 말이 나에게는 힘이 되었다. 어쩌면 비록 뼈만 남았지만 그로 인해 보여진 꼬리의 아름다움으로 다시 노인의 인생이 진행될 거라는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책은 소년은 나이로 보아 20살 초반이기에 청년으로 해야함을 강조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소년이던 청년이던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YES24 리뷰어 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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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는 내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때 처음으로 읽었었다. 당시 읽고나서는 이게 뭐지? 낚시 소설인가? 하는 생각도 있었고 결말이 생각보다 허무해서 허무한 감도 있었지만 나름대로 감명도 깊게 받아서 독후감을 썼던 기억이 난다. 성인이 된 후에 읽어보니 그 느낌은 또 달랐다. 소설에 대한 의문과 허무함보다는 깊은 감동과 교훈만이 느껴졌다. 그리고 수 년 후 이 책 소개글을 보며 정말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읽었던 노인과 바다에서 일부 번역의 오류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말인가 싶어 보니 국내에 번역 출판된 노인과 바다 대부분이 주인공인 어부 노인과 더불어 서브 주인공격인 소년은 사실 소년이 아닐 확률이 높음에도 소년으로 번역하였고 또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지만 소년보다는 청년일 가능성이 높고 그게 맞을것이라고 한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러한 소개글을 보고 가장 중요한 주인공도 아니고 시작 부분과 마지막 부분에만 나오는 서브 주인공인 애가 얼마나 중요하겠나 싶었지만 그래도 그 미묘한 느낌이 궁금해서 원작에 최대한 충실하게 잘 번역한 이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의 시작부분부터 그 미묘한 차이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역자는 모 드라마 대사 일부분을 인용해서 보여주며 아이 혹은 어린애라고 말하는것은 상대적일수 있으며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역자는 원문을 보고 내용 중 야구 선수에 대한 언급을 통해 단서를 찾아가다 결국 소년이라 불리는 아이가 어쩌면 청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했다. 이러한 저자의 노력을 보고 번역가로서의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과 더 잘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특히 청년이 직접 나오는 부분은 더 집중해서 읽어보았다.
내용은 오래 전 읽었던 노인과 바다와 당연히 같다. 다만 달라진것은 만새기, 티뷰론, 소년이 청년이 된것 이런것들 뿐이다. 그래서 전체적인 줄거리만 놓고 보면 그냥 노인과 바다를 세 번 읽은 것이다. 하지만 읽는 동안 소년이 청년으로 바뀌어져 있어서 그런지 뭔가 사뭇 다른 느낌이 든건 사실이었다. 소년으로 알고 있을때는 뭐랄까 단순한 아이의 호기심과 노인은 그저 손자보듯 돌보고 바라보는 그런 관계로만 보였고 내용 흐름상에서도 소년이 나오는 부분은 생략이 되어도 이상한게 없을 정도였지만 청년으로 번역된 것으로 읽어보니 꽤나 중요한 부분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청년과 노인이 나오는 부분이 내용 흐름에 큰 영향을 주는것은 여전히 아니지만 노인의 잠재력, 능력, 최종적으로 왜 결말이 그런지를 어느정도 생각해볼수 있을 정도로 소년으로 번역된 것과는 달리 노인이라는 인물을 좀더 입체적으로 느낄수 있다는 차이가 있었다. 또 노인과 바다를 통한 교훈도 전과는 조금 다르거나 추가로 얻은 것도 있었다.
새롭게 번역된 이 책을 통해 전과는 다른 완전한 새로움을 느끼고자 한다면 실망이 크고 안 맞을수 있다. 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느낌을 느껴보고 조금 다른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아보고자 하는 분들께는 한 번 읽어보는것을 추천한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