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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낳고 키운다는 것. 이건 무섭고 어렵고 힘든 일이다. 만약 아이를 낳고 교육시키는 모든 과정이 이렇게 어려운 거라면 아마 낳지 않았을 것이다. 백지 같은 도화지 같은 아이를 낳아 그 안에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는 것. 아이는 그렇게 어른이 되어간다. 그 과정에서 부모가 할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 같다. 예전엔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일단 낳아. 그럼 지가 먹을 건 알아서 타고 나는 거야. 하지만 먹기만 한다고 아이들이 잘 자랄까? 그건 아니다. 특히나 요즈음 같은 세상에선.
아이가 실종됐다. 임시 수사팀이 꾸려지고 한 달이나 지났지만 아이의 행방이 묘연하다. 담당 형사 광춘은 이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강화도로 간다. 그곳엔 유명한 무당인 영지가 있다. 그녀는 실종된 아이의 물건을 이용해 육신에 빙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무당이다. 그렇게 영지는 지유의 내면에 들어가지만 지유는 영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쫓아내려 한다. 21세기. 지유 아빠는 영지의 행동에 의심과 불신을 내 보인다. 그래도 영지는 간신히 지유의 몸에 빙의하고 지유를 찾으려 하는데...
무당이니 영적인 능력이니 하는 걸 믿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내용이 황당하지만 아이를 찾기 위한 부모와 무당 영지의 마음은 이해할 수 있다. 부모였던 영지는 아이를 꼭 찾고 싶다. 아이가 누구에게 납치(?) 되었는지, 그 사람의 목적은 무엇인지 알고 싶다. 그리고 밝혀지는 범인의 윤곽. 부모에게 아이의 존재는 무엇일까? 또한 아이에게 부모의 존재는 무엇일까? 점점 학대받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것일까? 이런 소설을 만나면 내 주변을 돌아볼 수밖에 없다. 소설이라 틀은 늘 그 시대를 반영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느 때보다 이런 소설들이 많이 등장한다. 실제로도 뉴스에 아이들의 학대가 늘어나고 심지어 죽기도 한다.
우리는 부모라는 이유로 아이들을 소유하려고 한 것은 아닐까?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가 원하는 인생이 아닌 강요의 인생을 살고, 그로 인해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끔은 나도 내 아이들에게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하고 잔소리(?)하고 싶어질 때가 많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한다. 울 부모님도 나에게 그렇게 얘기하지 않고 존중하며 키워주셨으니까. 자식 교육에 정답은 없지만 이런 소설을 읽을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서. 나는 내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는 것일까? 다시 생각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