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은 난세인가? 선뜻 대답하기가 망설여지지만, 20세기 후반 동구권이 몰락한 이후, 승승장구하던 자본주의가 21세기 들어 불협화음을 내고 있고, 그리고 그 여파가 세계경제를 장기불황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을 볼 때, 현재의 세계는 난세라 불러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유일무이하던 패권국이 그 힘을 잃고, 대국굴기 하려는 중국과 일본을 앞세워 그나마 남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미국의 대응을 보면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흔히 천하의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혼란을 동양에서는 난세라 칭했다. 그리고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난세라면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를 꼽을 수가 있을 것이다. 난세이었던 춘추전국시대, 수많은 사상가들이 등장하여 각기 자신의 사상으로 천하를 움켜지려 했고, 각국의 제후들은 천하를 쟁패하기 위해 인재들을 구했다. 그러나 난세가 끝이 났을 때, 최후의 승자는 법가이었다. 진시황이 법가사상으로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룬 것이 그 증거이다. 그렇지만 진시황의 급서로 진제국이 멸망하자, 한무제는 유학을 유일한 관학으로 인정하였다. 따라서 난세에 통용되던 법가사상은 설 자리를 잃고 말았고, 제왕의 통치술로 불리던 [한비자]는 금서로 묶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상앙의 [상군서]는 시종일관 부국강병만을 논하고 있기에 왕조가 어지러울 때마다 유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이처럼 난세를 풍미하던 법가의 기원은 누구일까? 학계에서는 여러가지 이견들이 있으나, 전국시대초기 위문후를 보필한 이회를 법가의 효시로 보는 것이 통설이라고 한다. 춘추전국시대 모든 사상들의 뿌리가 유가에 이어져 있듯, 법가 또한 그 뿌리가 유가에 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법가에 가까운 유가의 행보를 보인 사람은 많았지만, 진정한 의미의 법가는 상앙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역자는 말한다. 비록 초나라의 오기와 한나라의 신불해도 변법을 시행하여 초나라나 오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으나, 그들의 사후 변법은 폐기 되고 말았다. 또한 상앙이 추구한 농전(農戰)의 사상적 배경이 이회의 중농억상(重農抑商) 정책인 진지력지교에 있지만, 상앙의 변법은 전면적이면서도 체계적이고 혁신적이었다. 상앙 역시 오기나 신불해처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지만, 그의 변법은 계속 유지되어 진시황의 천하통일의 기반이 되었기에, 그를 법가의 진정한 기원으로 볼 수 있다고 이 책의 역자는 말한다. 당시 중국은 서쪽의 진나라와 동쪽의 6개국, 즉 전국칠웅이 쟁패를 겨루던 시기이었다. 그러나 시종일관 서쪽의 진나라가 우세했다. 그 이유는 진나라는 최강의 농업대국이었고, 동쪽의 6개국은 상업이 주를 이루었다. 또한 진나라는 변법의 실시로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고, 마침내 패자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여기에 상앙이 있었다. 상앙은 위나라 귀족가문 출신으로 본명은 공손앙이라고 한다. 진효공이 상앙과 만나면서 진나라가 서쪽의 변방에서 일약 최강국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이는 제환공이 관중과 만나면서 춘추시대 최초의 패권국이 된 것과 비유할 만 하다고 역자는 말한다. 상앙은 진효공과 만난 후, 진효공의 전폭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2차례에 걸쳐 변법을 시행한다. 상앙이 변법을 시행하기 전, 백성들이 조정의 정령을 믿게 만들기 위해 행한 남문사목의 일화는, 오늘날 정부가 어떻게 정치를 해야 국민들이 정부의 정책을 믿게 되는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상군서]는 이처럼 상앙이 실시한 변법의 내용을 기록한 책이다. 이러한 [상군서]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농전(農戰)이다. 이는 평소에는 농사를 지으며 부국에 매진하다가, 전쟁이 벌어지면 천하무적의 용사로 참전하는 것을 뜻하며, 오로지 부국강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직 중농(重農)만이 수단이었고, 오로지 승전만이 목표였다. 그렇다고 그가 상업을 억제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상인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농민의 근로의욕을 꺽거나, 농업에 피폐를 가져오지 않아야 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상앙은 상업과 수공업을 중농을 실현하기 위한 보조수단으로 활용했다. 즉, 중농억상(抑商)이 아니라 중농경상(輕商)이었다. 이는 균민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군주의 통치자체에 방점을 찍은 한비자와 구별되고, 중농억상을 토대로 한 이회의 진지력지교와 차이를 보인다. 이를 위해 상앙이 택한 것은 강력한 법치이었다. 상앙의 법치는 엄한 형벌과 신중한 포상으로 요약된다. 그는 농사를 지을 때는 수확한 식량에 따라, 전쟁을 할 때는 전공에 따라 작위를 주어야 하며, 이러한 농전을 제외한 다른 방법으로 사사로운 이익을 얻는 길이 막혀야 나라가 부강해 진다고 믿었다. 그는 형벌에 있어서도 중벌(重罰)로 통일해야 한다고 보았다. 가벼운 죄도 중벌로 다스리면 감히 죄를 지을 생각을 하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이는 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이 관심을 기울인 인성론에서 법가가 다른 계파들과 차이를 보이는 부분이기도 하다. 공자, 순자로 대표되는 유가가 인성에 초점을 두었다면, 법가의 부국강병은 민성(民性)에 초점을 두었다. 모든 인간관계는 이기심에 기초한 이해관계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성악설의 효시는 법가이었고, 상앙이었던 셈이다. 이처럼 상앙의 변법을 수록한 [상군서]는 후대인의 가필에도 불구하고, 상앙 자신이 직접 쓴 것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라고 한다. 현재 전해지는 것은 총 26편중 두 편이 망실되고, 24편이 전한다. 내용은 전편(全篇)이 농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법들로 되어 있다. 한비자가 세운 법가의 이론인 법치(法治), 술치(術治), 세치(勢治), 도치(道治) 중, 장자에서 따온 도치를 제외한 법치, 술치, 세치가 병치(兵治)와 더불어 [상군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나 [상군서]는 법가의 저작이라 할지라도 크게 보면 병법서에 해당되기도 한다. 부국강병을 목표로 그 방법들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상앙병법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는 한무제 이후 법가가 배척당하면서도 난세가 되면 [상군서]에 관심이 쏠린 이유이기도 하다. 지금의 세계는 난세이면서도 그 환경이 전국시대와는 다르다. 그렇지만 각국이 추구하는 부국강병은 그때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더 치열하다고 볼 수 있다. 많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맞대응 하면서 강력한 개혁을 추구한 상앙의 정신은 오늘날 우리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케 해준다. 그것이 우리가 [상군서]를 읽어야 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리뷰 제목 풀이> [상군서] 14편인 수권(修權)에 나오는 내용 입니다. “포상은 후하면서 신뢰성이 있어야 하고, 형벌은 엄중하면서도 반드시 실시돼야 한다. 포상할 때 관계가 소원한 사람들을 빠뜨리지 않는 부실소원(不失疏遠)을 행하고, 형벌을 내릴 때 친근한 사람을 피하지 않는 불위친근(不違親近)을 행해야 한다. 이것이 신하가 군주를 덮어 가리지 않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속이지 않는 이유다.” |
|
위나라 사람인 상앙을 진나라의 진효공이 참모로 삼게 된 배경에는, 제도와 왕도 그리고 패도를 차례로 언급한 뒤 부강한 나라가 될 수 있는 강도(疆道)를 설파한 덕분이다. 이는 실지를 회복하고 동쪽으로 진출하고자 한 진효공의 의중과 정확히 맞아 떨여졌다. 강도는 무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병가의 치도이며 병가와 법가 사상이 만나는 지점이자 부국강병이다. 상앙의 병법이 일하며 싸우는 농전에 맞춰진 배경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가 마련한 변법은 세족은 물론 일반 백성들도 크게 반발할 수밖에 없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어 군주의 강력한 추진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좌절할 위험성이 컸다. 하여 진효공은 여러 신하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상앙의 손을 들어주어 황무지 개간을 독려하는 간초령을 발표했으며 상앙은 열국의 상경에 해당하는 고관직인 좌서장으로 승진된다. 주목할 것은 상앙이 변법을 시행하기 전에 법령집행에 대한 백성들의 믿음을 '남문사목(南門徙木)'의 일화를 통해 확고히 한 점이며 이 성어는 약속을 반드시 실천에 옮긴다는 뜻으로 지금까지 통한다.
진효공을 보필한 지 2년, 상앙이 선포한 제1차 변법의 시행령은 크게 천도, 관작, 십오, 준법 등 네 가지였다. 태자가 법령을 위반했을 때 그의 스승들을 코를 베는 형벌인 의형과 얼굴에 먹을 뜨는 형벌인 묵형에 처하도록 하여 법령을 비판하는 자가 없게 하였고, 칭송하는 자들까지 법령에 아부한 죄로 변경의 수졸로 보내도록 하여 법령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이 사라지게 했다. 상앙의 변법은 문자와 화폐, 도량형의 통일 등 전면적이었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실시한 일련의 개혁은 상앙의 변법을 참조한 것이다. 봉건제를 중앙집권적인 군현제로 바꾸고 인구를 대거 늘리기 위해 부모와 장성한 자식이 한 집에 살지 못하도록 조치한 것도 상앙의 뜻이었다. 그의 변법은 매우 가혹하기는 했으나 십 년이 지나 소기의 성과가 나타나자 백성들이 자연스럽게 변법을 받아들였다. 상앙의 변법은 현재까지도 중국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개혁 중 하나로 손꼽힌다.
상앙은 천도 이듬해인 진효공 11년(기원전 349), 제2차 변법을 시행했다. 치현, 개간, 증산 등 골자는 크게 세 가지였다. 제2차 변법 시행 이듬해는 농지의 면적에 따라 부과하는 부세법을 시행했고 도량형의 표준을 정했다. 군공이 없는 자는 종실일지라도 포상 대상에서 배제되었으니 세족의 소멸과 새로운 지주층의 흥기를 촉진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진나라는 진효공 때부터 이미 신분세습의 봉건정을 뿌리부터 자르기 시작한 것이다. 진나라 백성들은 전쟁이 터지면 부귀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고 서로 축하하고 자나 깨나 전쟁이 일어나기를 노래했다. 훗날 순자가 진나라 군사를 장성한 이유를 여기서 찾았으니 상앙의 변법사상은 철두철미한 부국강병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백성들은 쉼없이 훈련을 받은 까닭에 전쟁에 나가기만 하면 목숨을 걸고 용감하게 싸우는 정예군사가 되니 열국이 진나라를 두려워한 것은 자명했다. 진효공은 재위 17년, 주왕실로부터 방백의 칭호를 하사받았으니 춘추시대의 패자라는 명예를 얻은 셈이다. 진시황의 천하통일은 진효공이 중원의 패자로 공인받은 뒤 일 백여 년 뒤에 실현되었다. 결과적으로 진제국의 초석을 놓은 인물은 진효공이요, 상앙이라는 뛰어난 법가사상가의 헌신적인 보필이 결정적인 공헌을 한 것이다. 하지만 진효공 22년, 상앙의 변법을 뒷받침한 진효공이 돌연 병사하면서 상앙은 진혜문왕에 의해 거열형에 처해진다. 일족 역시 저자에서 도륙되었으니 공성신퇴(功成身退)의 이치를 깨닫지 못한 결과다. 중국의 역사를 개관해 보면 뛰어난 지략을 지닌 기려지신(타국 출신의 대신) 모두 예외 없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그럼에도 그가 실시한 변법은 높이 평가하여 진혜문왕은 그의 변법을 지속적으로 추진함으로써 마침내 천하통일의 주역이 된 것이다.
상앙 법치사상의 특징
서양에서는 17세기 초 홉스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으로 사회계약론을 언급할 때 전국시대 말기 제자백가 모두 인성론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동양에서는 맹자가 인성론의 효시니 홉스보다 무려 이천 년 가량 앞선 셈이다. 인성론은 기본적으로 '통치의 근본목적은 무엇이고 어떻게 백성을 다스리는 것이 좋은 것인가' 하는 치도 및 치술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상앙과 한비자의 민성론은 순자의 민성론과 취지를 같이 한다. 다만 순자는 악행을 저지른 사람도 성인이 만든 예제를 통해 능히 교화할 수 있다고 본 데 반해 이들은 오직 강력한 법만이 이들을 교정할 수 있다고 본 것이 다르다. 상앙과 한비자가 볼 때 이익을 좋아하는 인간의 심성은 본성에 가까웠으니 이른바 호리지성(好利之性)이고, 순자는 이익을 좇는 인간의 심성을 하나의 경향인 호리지심(好利之心)으로 파악했다. 인간의 이기적인 행보에 보다 깊은 관심을 기울인 결과로, 상앙은 모든 인간관계가 이기심에 기초한 이해관계의 끈으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통찰했다. 상가 이론의 가장 큰 특징은 부민부국의 방략을 중농(重農)이 아닌 중상(重商)에서 찾은 데 있다. 그러나 법가는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회의를 표했다. 상앙과 한비자가 공히 농민을 유사시 전사로 활용할 수 있는 농업을 적극 장려하고 이를 해치는 상공업을 적극 억제해야 한다는 중농억상(重農抑商)을 역설한 배경이다. 상가와 법가, 병가 모두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모두 인간의 호리지성을 적극 수용해 부국강병을 역설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상군서』는 반드시 『한비자』와 『관자』 및 『손자병법』 등을 곁에 두고 두루 비교하며 읽어야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상앙 법치사상의 구성
- 농전주의 상군서를 관통하는 농전(農戰)의 기본 취지는 바로 백성들이 평시에는 본업인 농사에 매진하다가 전쟁이 일어나면 자발적으로 전쟁에 적극 참여해 천하무적의 용감한 전사로 활약하게 만드는 데 있다. 상군서가 군주와 장수의 결단을 역설한 배경이다. 농전은, 농업을 중시하는 중농주의와 전쟁을 국가안위의 관건으로 삼는 승전주의(勝戰主義)를 합친 말이다. 상앙의 농전 사상은 중농이 수단, 승전이 목적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그의 중농주의는 통상 중농억상으로 해석되고 있지만 그는 상업과 수공업의 필요성을 통찰하고 있었다. 단지 농업에 대한 보조산업으로 파악한 것이 타당하니 중농억상이기 보다는 중농경상(重農輕商)에 가깝다. 그가 추진한 '억상'은 상인의 폭리와 사치 공예품의 횡행을 저지하는 데 기본 취지가 있다. 전사의 주축세력이 농민이고 부국강병의 기본이 농산 증대에 있었던 까닭에 중농에 방점을 찍었으며 기간산업인 농업이 피폐해질까 우려한 것인데 다수의 사람들은 상앙을 극단적인 농업지상주의자로 오해하고 있다. 상업과 수공업을 보조수단으로 본 이유는 군량의 수송과 뛰어난 무기 및 장비의 보급 등에서 찾을 수 있으니 그들의 조력이 없으면 불가능한 이유다. 상앙의 중농경상은 기본적으로 가난한 자를 부유하게 만들고 부유한 자의 부를 덜어내 백성을 고르게 만드는 균민(均民)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를 두고 많은 주석가들이 '부자를 가난하게 만든다'는 식으로 해석했으니 이는 상앙의 균민 사상을 크게 왜곡한 것이다. 상앙이 거강에서 말한 빈치는 부민의 재물을 덜어내 균민을 만드는 식으로 부국을 실현함으로써 강병을 달성하자는 게 기본 취지이다. 난세의 심도가 깊어질수록 '부민' 대신 '균민' 쪽으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주목할 점은 상앙이 실시한 두 차례의 변법이 '빈치'에 기초한 '균민' 이념에서 출발하는데, 이는 폭리와 사치품의 만연으로 인해 농민의 근농정신이 훼손되고 폭리행위 등에 현혹돼 농사를 팽개치고 장사나 수공업에 나설까 우려한 점이다. 상앙의 모든 사상이 농전 하나로 일이관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앙이 중농을 역설한 것은 농업증산을 통해 군량미를 넉넉히 확보하려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며, 상군서가 병서의 성격을 강하게 띤 것 역시 농전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쟁을 통해 전쟁을 제거하는 '이전거전'은 『상군서』에 나오는 병가사상의 정곡을 찌른 것이다. 막강한 무력을 배경으로 천하 만민을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는 열국의 군주를 제압해 천하를 통일해야 한다는 사상을 담고 있다. '이전거전'에서 앞에 나오는 '전'은 천하를 호령하는 왕자의 막강한 무력, 뒤에 나오는 '전'은 사리사욕을 의전으로 미화해 천하의 백성들을 전쟁으로 내모는 폭군의 용병을 뜻한다. '이전거전'은 사사로운 무력을 제거해 국가의 전력을 강화하는 데서 출발한다. 궁극적인 목표는 적과 싸워 승리는 거두는 데 있다. 선진시대 문헌 가운데 '이전거전'의 '전'처럼 같은 글자가 한 구절 내에서 전혀 다른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 식의 논법을 전개한 것은 『상군서』가 유일하다.
- 법치주의 상앙의 법치는 원래 '농전'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나온 것이다. 진나라가 최강국으로 등장한 것은 그의 변법이 차질 없이 성사된 데 있고 강력한 법치가 착오 없이 시행된 결과로 진시황의 천하통일 기반이 되었다. 하지만 상앙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이유는 변법이 지닌 이중적인 성격에 기인한 것이니 날카로운 칼자루를 놓치자마자 이내 자신을 벤 것으로 풀이하는 게 옳다. 상앙의 법치는 엄한 형벌과 신중한 포상으로 요약되는 이른바 중벌소상(重罰少賞) 위에 서 있다. 포상을 남발하면 사람들이 아무리 후상을 실행할지라도 이를 천시하게 된다. 중벌과 함께 소상을 역설한 것도 농전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함이며 일벌백계의 차원에서 전시(傳尸)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중경중(重重經重)은 가벼운 죄에도 엄한 형벌을 가애햐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게 된다고 생각한 결과로써 죄과가 빚어질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 '중벌'의 궁극적인 목적은 겁이 많은 백성을 전사로 만드는 데 있었으며 두터우면서도 희귀성이 있는 '소상'이 더해져야 백성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적과 싸우게 된다. 중벌소상은 백성들을 천하무적의 전사로 만들기 위한 효과적인 계책인 동시에 백성들이 평시에도 범죄에 연루되지 않도록 만드는 사전방지책에 해당한다. '중벌소상'의 궁극적인 목표는 백성을 천하무적의 전사로 만드는 강병에 있고, 형벌을 무겁게 하여 형벌 자체를 제거하는 '이형거형'은 백성을 본업인 농업에 매진하게 만드는 부국의 방안으로 나온 것이다. 궁극적인 목표인 승전을 이루고자 함이니 상앙의 법치주의가 승전주의의 기본 전제로 구성된 배경이다.
- 군치주의 독단을 언급한 최초의 인물은 상앙이다. 『상군서』는 이를 군단 내지 독단으로 표현해 놓았다. 난세가 극에 달했을 때 반드시 필요한 결단의 유형으로 언급한 것이다. 상앙은 사상 최초로 상황에 따른 다양한 유형의 결단을 언급한 장본인이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결단의 유형을 시간 및 공간 단위로 분류한 뒤 치도와 연결시켜 해석한 이는 상앙이 유일하다. 상앙은 진효공 밑에서 이십여 년 동안 재상으로 있으면서 철저하면서도 지속적인 변법을 강행했다. 그가 시행한 일련의 변법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정치 측면의 법치주의, 군사 측면의 군국주의, 경제 측면의 중농주의가 그것이다. 이를 하나로 요약해 놓은 게 바로 농전이며 그 효과는 지대했다. 법가가 유가와 묵가, 도가, 병가 등과 더불어 제자백가의 일원으로 본격 참여하게 된 것도 바로 그의 변법이 구체화한 데서 시작됐다. 상앙을 사상 최초의 진정한 의미의 법가로 간주하는 이유다. 상군서는 바로 진정한 의미의 법가사상을 반영한 것이다. 『한비자』가 비록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기는 하나 그 골자만큼은 모두 『상군서』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게 그 증거다. 상앙의 변법은 그만큼 전면적이면서도 체계적이고 혁신적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법치가 상앙의 등장을 계기로 시작됐다고 보는 이유다. 하지만 상앙이 취한 일련의 변법 또한 이회의 변법을 흉내낸 것임을 여러 차례 언급하고 있다.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분열을 극복하여 정치적 통일을 이루고 법가의 정치 이념으로 권력의 중앙 집중을 이룬 나라가 진나라인데 그 터전은 진시황보다 백여 년 전의 정치인이자 사상가인 상앙이 마련한 것이다. 그 거대한 대륙과 그 많은 인구를 통솔하면서도 정치적 통일성을 유지하고, 문화 역량을 키울 수 있었던 이유는 권력의 중앙 집권으로 해석된다. 민주주의 운운하는 현실 세계에 비춰보면, 거부감부터 들겠지만 개혁을 모색했던 상앙의 고민은 우리에게 무엇을 이상으로 삼아야 하는지 의문을 던져준다. 또한, 그가 추구한 독재 정치의 한계와 노선을 보면서 국가 또는 지도자가 기본 정책이나 결정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공론의 장과 지성의 비판을 필요로 하는가를 알 수 있다. 이 한 권의 무게가 미래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된다면, 우리는 그 가치에 투자할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
|
학교에서 어떤 정해진 봉사를 한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과 동등하게 상을 줘야 하는 입장에 처한 경우가 생겼다. 그런데 학칙에 ‘어떤 경우에는 상을 줄 수가 없다’라는 규정이 있다. 그 아이가 그 경우에 적용되어 상을 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인정으로 볼 때는 숱한 수고를 한 뚜렷한 공과가 있기에 지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면 그에게 시상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리고 사실상 그런 결론을 내리는 상황이 도출될 수도 있다. 허나 그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그것은 그렇지 않을 듯하다. 아무리 사소한 법일 지라도 법이 고쳐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 법과 어긋나는 일을 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언젠가 논의가 되었던 한 학생이 떠올랐다. 이 책은 법의 중요함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춘추전국시대 법가의 원조로 불리는 상앙이 기록해 놓은 아니 후대에 의해서 기록 되었을 수도 있는 저서로 법가에 대해서 잡다하게 부분적으로 알고 있었던 지식을 체계적으로 알 수 있도록 만들어준 책이다. 위나라 출신으로 진나라 효공에게 등용되어 20년 간 진의 재상으로 있으면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상앙의 삶과 그의 생각, 그리고 치적을 중심으로 그리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정치적 측면에서, 경제적 측면에서, 군사적 측면에서 물어 놓고 있다. 그 모든 것이 법질서를 강하게 지켜나가는 속에서 이루어질 수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고, 사실 그것으로 진나라는 전국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상앙은 비록 진 효공이 죽고 난 뒤에 참혹한 죽음을 당하지만, 그의 정책은 뒤에도 나라를 부강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책의 구성은 원문를 제시해 놓고 그것을 해석해 놓고 있다. 거의 직역에 가까운 해석을 해놓고 있으면서 독자가 본인의 생각으로 원전에 다가가게 만들고 있다. 번역하는 책으로는 바람직한 자세라 할 만하다. 그리고 그것을 완전 의역을 하면서 재정리하여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나름의 관점으로 해석을 하면서 다른 책들과 비교, 후대 학자들의 의견까지 첨부하여 자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읽고 있다 보면 원문 해석을 통해 잘 이해가 안 되던 것까지 이해하기가 쉽게 된다. 마음에 흡족하게 다가드는 부분이다. ‘농전’의 의미를 많이 부각시키고 있다. 부국강병을 이루는 첩경으로 ‘농전’을 활용하고 있다. 평상시에는 농사를 짓고 유휴기에는 군사 훈련을 하여 농민들이 유사시에는 병사가 되는 활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농사를 통해 국가의 창고를 넉넉하게 하고, 그들을 군사로 활용하여 보상을 해주는 시스템을 활용한다. 그들을 군사로 활용할 때 연좌제 등의 법을 엄하게 함으로 전장에 나간 사람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그리고 열심히 싸워 공을 이룬 자에게는 신분적인, 물질적인 보상을 함으로 또한 전쟁에서 강한 군대를 만들어 나간다. ‘변법’이 상앙이 나라를 통치해 나간 근본을 이룬다. 효공의 전권을 부여받은 상앙은 법을 바꾸고, 현실적으로 무자비할 정도로 그것을 엄격하게 적용한다. 법만이 부강과 국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행위다. 극단적으로 다음 대를 이를 공자(진혜문왕)가 법에 저촉되는 일이 일어나자 단죄하는 모습도 보인다. 물론 직접적으로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가르친 자들을 엄하게 단죄하는 형태로 나타나지만 그것이 공자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된다. 그 일은 효공 사후에 그의 입지를 어렵게 하고, 거열형을 당하는 이유가 된다. 물론 작가는 말한다. 상앙도 인격적인 차원에서 문제는 있지만 혜문왕이 조금만 큰 인물이었다면 상앙의 진면목을 이해하고 그를 더 중용했을 것이라고 말이다. 진혜문왕은 그의 증오심에 의해 그를 죽이기는 하지만 그의 변법을 무효화시키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것이 진시황제에 이르러 진이 전국을 통일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호리지성(好利之性)은 인간은 누구나 이익을 좇는 마음이 있다는 것이다. 이 호리지성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입장에서 상앙은 관중, 순자, 한비자, 사마천과 같은 맥락에 놓고 이야기한다. 관중은 부민부국을 주장했고 순자는 부민부국 이전에 예치(예의와 염치)가 우선한다고 보았다. 그것이 국가적인 위기에 혼란을 막는 해법이 된다고 보았다. 사마천은 관중의 편을 들어 사기<화식열전>에서 순자의 교민 방식을 비판하고 상가 이론을 집대성하였다. 그런데 상앙은 관중의 ‘중상’에서는 부민은 할 수 있어도 부국은 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중농’이다. 농사를 통해 부국을 하고 농민들을 활용하여 국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 중농주의에는 당근과 채찍이 들어있다. 그것이 법가로서의 상앙이 있게 만든 요인이다. 그는 부민보다는 나라의 곡간에 곡식이 쌓이게 하였다. 그리고 전쟁에 나가 공을 세운 사람에게 부가된 재력, 권력을 나눠 주었다. 그리고 그것을 법으로 강하게 통제하였다. 법에 조금만 어긋나도 그가 누구이든지 예외 없이 엄하게 다루었다. 결국 그는 이 중농주의와 법치를 통해 강한 진나라를 만들었고, 진이 서쪽으로 세력을 뻗을 수 있게 만들었다. 진 효공이 전국을 주도하는 세력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이 책이 써진 일에 대해서 많은 논란을 적고 있다. 상앙이 직접 적었다는 설도 이야기하고 있고, 후대의 사람들이 공자의 어록인 ‘논어’처럼 모은 것이라는 이야기도 한다. 그리고 확실하지는 않지만 ‘상앙학파“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보고 있다. 그들이 상앙의 통치 이념을 적절하게 모아 놓은 것이 이 책이 아니랴 여기고 있다. 물론 지금 정설처럼 되어 있는 것은 일부는 상앙이 집필하고 많은 부분을 보완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설이다. 20년을 진나라의 재상으로 집정하면서 충분히 이와 같은 책을 집필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으리라 작가는 생각해 보고 있다. 법가는 기원전 403년 위문후가 이회를 재상으로 기용하여 ‘전지력지교’ 정책을 추진하면서부터라고 보고 있다. 이회가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 ‘법경’을 반포하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법에 관한 것은 있었겠지만 구체적으로 엄한 법조항을 명시하고 그것을 통해 나라를 다스린 것은 그때부터라는 뜻이다. 상앙은 이 ‘전지력지교’에서 영향을 많이 받고 있다. 그것을 혼란한 전국에서 나라를 강하게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임을 잘 인지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 정책을 진효공과의 만남 시에 전하게 되었고 진효공은 그 말에 흠뻑 빠져 그에게 전권을 주어 나라를 경영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외에도 이념적인 여러 사항들이 많이 언급되고 있다 그러나 상앙의 통치 이념을 단적으로 표현하면 정치에는 법치주의, 경제에는 중농주의, 군사에는 군국주의다. 이 3 가지가 절묘하게 조화된 것이 상앙의 통치철학이다. 변법(법을 바꾸는 일)을 통해 이러한 정책을 만들고 엄하게 그것을 적용해 나간 결과 진이 강국이 되어간 것이다. 초나라도 ‘오기’를 통해 군사력 강대의 나라를 만들었으나 결과적으로 오기가 죽고 난 뒤에 오기의 정책을 폐기함으로 나라가 약소국으로 전락해 가게 되었다. 그런데 진나라는 상앙은 미워해도 그의 정책은 미워하지 않아 결국 지속적인 강대국으로 남게 되었고, 전국을 주도하는 나라가 되었던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위정자들이 꼭 읽어야할 책이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나가는 데는 물론이고, 백성들을 소중히 생각하는데도 꼭 필요한 책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적절하게 조화시키 나가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고, 강하게 결단하여 올바름을 추구해 나가는 방법도 표현되고 있다. 역시 고전으로의 제 몫을 다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일깨움을 주는 책이다. 읽으면서 ‘오늘에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권하고 싶은 책이다. |
|
사마천의 사기를 읽어보면 가장 흥미로운 인물 중의 하나가 바로 '상앙'이다. 상앙은 천하를 통일하여 혼란스러웠던 전국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던 진나라의 기틀을 다진 재상이다.(중국의 재상은 오늘날로 치면 CEO라고 할 수 있다. 왕의 오른팔로서 나라의 모든 행정을 총괄하는 자리다.) 상앙이 재상에 오를 때까지만 해도 진나라는 별 볼일 없는 변방의 약소국에 불과했다. 큰 나라의 틈바구니에 끼었던 나라들 대부분이 그랬듯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언제 휙하니 꺼져서 망각 속으로 사라질 지 모르는 존재였다. 그랬던 나라를 과감한 국정 개혁을 통해 강대국으로 발돋음 하게 한 이가 바로 상앙이었다. 그의 개혁이 너무도 눈부신 결과를 가져왔으므로 아직도 상앙은 강국책의 대가로서 이름이 높다. 상군서는 바로 그러한 상앙이 쓴 책이다.
![]()
상앙의 본명은 공손앙으로 원래는 위(衛)나라 측실의 아들이었다. 서자에 대한 대접은 홍길동이 그랬듯이 그 때도 별반 다르지 않아서 상앙은 일찌기 학문을 연마했으나 그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었다. 당시 전국시대는 인재가 무엇보다 귀중한 자원이었으므로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중용했는데 때문에 상앙은 자신의 재주를 귀히 여겨 줄 이를 찾아 다른 나라로 떠났다 결국 진나라 효공에 의해 중용되게 된다. 당시 진나라는 왕이 죽으면 그 신하들까지 모두 자결하여 뒤를 따르게 하였으므로 이전의 왕 목공의 죽음으로 모든 신하들이 죽어버려 그렇지 않아도 인재가 절실하던 처지였다. 거기서 진나라를 부국강병하기 위하여 내세운 정책은 '의행무명(疑行無名) , 의사무공(疑事無功)', 즉 주저하면서 행동하면 명예를 얻을 수 없고 주저하면서 일을 하면 성공할 수 없다는 정신으로 추진한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법을 어기면 절대 예외를 두지 않는 철저한 법치(法治)였다. 왕마저 예외가 아니었다. 상앙은 그런 예외가 나라의 힘을 갉아먹는 좀벌레라고 여겼다. 그가 그렇게까지 법치를 철저하게 추구했던 것은 독일의 유명한 법학자 라드부르흐가 법의 3대 이념이라고도 말한 바 있는 법적 안정성을 추구하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이 법의 힘이 문자그대로 지켜질 것임을 신뢰하여 질서를 지켜야 한다는 당위를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상군서를 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간사한 일을 금하고 과오를 그치게 하는 방안 가운데 엄형(엄중한 형벌)보다 나은 게 없다. 형벌이 엄중하고 범법자를 처벌하면 백성들 가운데 감히 시험 삼아 법을 범하는 자가 없게 된다. 나라에 형벌을 받은 사람이 없는 이유다. 나라에 형벌을 받은 사람이 없는 까닭에 사람들은 말하기를 "명확한 형벌은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고 한다.(P. 208)
독일의 형법학자 포이에르 바흐는 형법의 목적을 범법의 잠재적 가능성이 있는 자들로 하여금 예방하도록 하는 것에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상앙의 이 말은 그와 비슷하다. 범죄의 형태를 법률로 확실히 규정해놓고 이를 예외없이 일벌백계로 다스리면 그 위화효과 때문에라도 다른 이들이 범죄에 빠져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법현실을 생각해보면 상앙의 이 말에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다.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는 이제 거의 공공연해진 사실이다. 국회에서 하는 인사청문회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마치 통과의례처럼 청문회만 하면 나오는 위장전입이나 논문표절 같은 위법 사실들은 서민들이 하면 범죄지만 가진 자들이 하면 관행으로 치부된다. 이러한 예외들을 보면서 일반 사람들에겐 법을 준수하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법의 예외없는 엄격한 집행이야 말로 사람들에게 법을 신뢰하도록 만드는 척도이며 나아가서는 체제를 오래도록 안정화시키는 기틀이라는 상앙의 말은 정말 혜안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비단 형벌의 측면만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을 떨치고 싶은 이들에게도 이러한 법치는 좋은 텃밭이 될 수 있다. 상앙은 말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 포학하지 않고 상을 주는 것이 인자하지 않은 것은 나라의 법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성인은 공에 따라 관직을 내리고 수여한다. 유능한 사람들이 근심하지 않는 이유다. 성인은 허물을 용서하지 않고 형벌을 사면하지 않는다. 간사한 자가 생기지 않는 이유다. 성인이 나라를 다스릴 때 오직 포상과 형벌, 교화등 3가지 사안의 통일을 살필 따름이다. (P. 216)
즉 명확한 법과 엄중한 집행이 공정성 또한 보장하기 때문이다. 후기 조선의 세도정치 때도 그랬지만 이 때의 진나라도 벼슬길에 오르는 온갖 뒷구멍들이 있어서 능력있는 자들이 밀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더러 절차대로 공정하게 치뤄줄 것을 요구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런 일들을 저지르던 자들은 군림하는 고관대작들이었기 때문에 곧잘 무시되었다. 상앙은 이것을 개혁했다.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자는 관원을 임용하는 법제도가 공정하기 때문에 지모가 뛰어난 사람을 임용하지 않는다.(P. 50)
어떤 벼슬 자리든지 절차를 엄격히 준수하지 않고서는 오르지 못하게 했다. 뒷구멍을 통해 온갖 뇌물등 사적 이익을 취해오던 고관대작들은 그래서 상앙을 곱게 보지 않았고 더구나 철저한 개혁과 법치로 인해 그동안 누리던 특권마저 빼앗기게 되자 증오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후 상앙의 든든한 후원군이던 효공이 죽자 바로 그의 목숨을 노렸다. 결국 상앙은 그들의 손에 목숨을 잃게 되는데 그것은 자신이 끝까지 관철시켰던 법치 때문이기도 했다. 상앙이 그들의 음모를 알고 미리 피했지만 철저히 법을 준수하려는 관원들과 백성들 때문에 피하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상앙은 자신이 뿌리내리게 한 법치 때문에 죽은 것이다. 사마천도 이를 두고 상앙을 비판했다. 나라를 강건하게 만든 공은 인정하지만 형벌이 지은 죄에 비해서 너무도 무겁고 또한 융통성이 없는 것은 잘못이라고 평했다. 그렇지만 상앙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법치를 밀고 나갔던 것은 전국시대와도 같은 난세에 약소국인 진나라가 존립할 수 있는 길은 무엇보다도 백성의 신뢰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변하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이야 말로 나라가 존립할 수 있는 기반이라고 그는 여겼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그것을 주고 싶었고 그 믿음을 통해 나라의 존속을 기대하며 협력을 이끌어내려 했다.
성인은 치국의 요체를 알고 있다. 백성들로 하여금 기꺼이 농사짓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는 이유다. (P. 56)
그랬던 상앙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고 진나라는 변방의 약소국에서 중국 최초의 통일 국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상군서는 이러한 상앙 사상의 중추가 담겨있는 책이다. 실제 통치자로서의 경험이 있는만큼 여기에 담긴 말들은 구체적이며 현실적이다. 물론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과유불급이라고 그의 비극적 최후마저 초래한 과도한 법집행은 확실히 문제였다. 또한 상앙은 부국강병은 오로지 역량의 집중에 있다고 보아 백성들에게 농사만 짓도록 했는데 그러한 측면에서 자유를 억압했고 다양성 또한 희생했다. 이는 '우민화'를 초래할 수도 있으므로 문제가 된다. 이렇게 비록 일장일단은 있으나 나라의 기틀을 다지고 역량을 어떻게 하면 집중시켜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상군서'만한 참고서도 없다. 그런 면에서 정말 귀 기울여 읽어볼만한 책이다.
|
|
중국 역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빈약한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상앙이라는 인물이나 그가 쓴 『상군서』가 대단히 낯설고 생소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리 중국 역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분서갱유, 아방궁, 만리장성으로 잘 알려진 진시황이 다스렸던 진나라가 법가사상을 근간으로 전국 시대를 통일한 중국 역사상 최초의 통일국가라는 사실은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진나라가 근간으로 삼았던 법가사상의 기초를 제공한 인물이 상앙이며 그런 기초가 된 책이 다름아닌 『상군서』다. ‘법가사상’하면 으레 ‘한비자’란 인물을 떠올렸던 나에게는 상앙과 『상군서』에 대한 기본 사실조차 대단히 신선한 충격 그 자체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기초 지식을 염두에 둔다면, 『상군서』가 당연히 법가사상에 바탕을 둔 부국강병책을 서술하는 내용으로 구성되리라는 것은 약간의 센스만 발휘하더라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래도 상앙이 자신의 책 『상군서』에서 제시하는 법가사상의 특징을 두 가지로 요약하면, 하나는 농전(農戰)이고 다른 하나는 엄정한 법률 시행이다. 여기서 농전이란 ‘경작하며 싸우도록 하다’는 뜻인데, 이 말을 통해서 상앙은 농사와 전쟁에 참여하는 방식만이 관직과 작위를 얻는 수단이요 포상과 작록을 기대할 수 있는 길임을 백성에게 가르칠 때 백성이 농전 한 가지에만 전념하여 국가가 부강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상앙은 엄격한 법령을 마련하고 공평무사하게 실행하여 가벼운 범죄에도 엄한 형벌을 적용할 때 경박한 유행이나 비리가 척결되고 국가 질서가 유지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물론 상앙이 『상군서』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시대적 환경의 영향을 반영하는 것이긴 하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상앙이 말하는 ‘농전’의 개념은 결국 모든 국민이 자신의 생업과 터전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는 데 힘쓰도록 해야 한다는 현대적 개념으로 변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국민 각자가 참으로 다른 외부 요소들의 영향에 좌우되지 않는 안정된 환경과 심리 상태에서 각자의 본분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될 때 국가는 마치 신진대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건강한 신체처럼 원활히 유지 발전될 수 있다.
또한 상앙이 강조하는 엄격한 법령 규정과 시행도 최근에 일련의 강력 범죄 사건들과 관련된 법원의 가벼운 판결에 대해서 답답한 심경을 느끼는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상앙이 조언하는 대로 법규가 엄격하고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무사하게 적용될 경우, 국가 기강은 자연히 바로 정립되기 마련이다. 그 가까운 예로 싱가포르를 들 수 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싱가포르는 기초 질서가 잘 지켜지는 나라이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만큼 법 규정이 엄격하고 철저하다. 그러니 국민은 자신에게 엄청난 손해가 일어나는 일을 원치 않아서 질서를 지키게 된다. 미국의 경우도 비슷하다. 우리는 미국이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대단히 크게 존중받는 국가라는 인상을 받지만, 실제로 미국에서는 법을 어겼을 때 따르는 손실과 법을 지켰을 때 주어지는 이익에 대한 인식이 철저해서(어떤 의미에서는 법의식이 높아서) 국민 개개인이 법을 잘 따른다. 결국 두 나라 모두 엄격한 법규가 국가 질서의 바탕인 셈이다.
이렇게 볼 때, 『상군서』는 새로운 미래를 꿈꾸고 새로운 국가 비전을 설정해야 하는 현재 대한민국의 실정에 가장 필요하고 적절한 책이 아닐 수 없다. 과거의 적폐를 척결하고 구태와의 단절을 선언하고자 하는 모든 위정자와 정치인들은 상앙이 자신의 책 『상군서』에서 조언하는 모든 진언(盡言)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 그리고 기업을 경영하고 사업에 전력하는 경영인들도 혁신을 통해 원하는 비전을 성취하고자 한다면 상앙이 『상군서』에서 제안하는 대로 원칙을 철저하고 투명하게 시행할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될 경우, 일반 국민들도 현재 우리나라의 암울한 환경과 조건에 대한 낙망에서 벗어나 능력이 실력으로 인정받는 사회를 꿈꿀 수 있을 것이다.
“나라를 잘 다스리는 자는 악한 자를 처벌할 뿐, 선한 자를 포상하지 않는다. 형벌을 사용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선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형벌을 사용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선한 것은 형벌이 무겁기 때문이다. 형벌이 무거우면 백성들이 감히 법을 범하지 못한다. 이는 형벌이 아예 없는 것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백성들 가운데 감히 나쁜 짓을 하는 자가 없다면 이는 결국 온 나라의 백성이 모두 선한 행동을 한다는 뜻이다. 선한 자를 포상하지 않아도 백성들이 선해진다고 말하는 이유다. 선한 자를 포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그리하면 마치 도적질을 하지 않는 자를 포상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p. 225).
오자 교정(출간된 지 꽤 시간이 흘러서 이미 지적한 부분도 있을 수 있겠다) p. 27 둘째 줄: 천사하지 → 천시하지 p. 45 다섯 째 줄: 숙박하면 → 순박하면 p. 50 넷째 줄: 강해되고 → 강화되고 p. 101 첫째 줄: 괄호 삭제 p. 141 셋째 줄: '백성들은‘ 중복 p. 175 해설의 일곱째 줄: '농전에 대한‘ 중복 p. 207 여섯~일곱째 줄: 저지르며 → 저지르면 p. 234 첫째 줄: 자신으로서 → 자식으로서 p. 245 마지막 줄: 관직이 → 관직을 p. 303 둘째 줄: 된다 → 됩니다
|
|
《자치통감》을 읽으면서 전국시대를 종결한 진나라의 천하통일은 진시황제의 노력도 있었지만, 시황제 이전부터 통일의 준비를 차곡차곡 해왔다는 점을 알게 됐다. 이를 통해 커다란 사업이나 정책은 장기간의 기간을 거쳐 역량의 축척을 바탕으로 성사된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데, 진나라의 통일 역시 마찬가지다. 시황제 이전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든 군주는 대표적으로 두 사람을 꼽을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진 목공의 시대였고, 두 번째는 진 효공의 시대였다.
목공은 춘추시대에 진나라의 국력을 처음으로 만방에 알린 지도자로, 춘추오패에 거론되는 명군이기도 하다. 물론 춘추오패에 다섯 명의 영걸은 사람에 따라 거론하는 인물이 다른데 대체적으로 제 환공, 진(晉 - 천하통일하는 시황제의 진나라와 다른 나라) 문공, 초 장왕, 오 합려, 월 구천을 꼽는데, 여기에 진 목공과 송 양공, 월 부차가 추가되기도 한다. 아무튼 진 목공은 춘추오패로 거론될 정도로 진나라의 세를 대외적으로 과시한 인물이다. 목공 이후 진나라를 부흥시킨 인물은 진 효공인데, 이 때 진 효공의 개혁 정책에 앞장서서 진나라를 법치주의로 바꾼 인물이 바로 《상군서》의 저자 상앙이다.
진 효공은, 진 목공과 같이 대외적으로 진나라를 크게 넓히진 않았지만, 대내적으로 법가에 입각하여 체제를 정비하여, 내부 통치를 안정화시켰다. 《상군서》는 진 효공의 개혁을 추진한 상앙의 법치주의를 담은 고전으로, 책에서는 당시 상앙이 추진했던 법치 정치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조직이 흥할 때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나타나는데, 이를 크게 두 가지로 집약해보면 '제도'와 '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상앙의 《상군서》는 나라의 제도적인 부분을 뜯어고치는데 중점을 뒀다. 법에 근거한 정치, 그리고 군사 조직의 개편은 결국 진나라의 외형적인 제도를 뜯어고치는 것들이며, 진 효공은 이런 상앙의 변법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여 수용하였다. 그 결과 진나라는 다른 나라보다 부국강병에 있어서 훨씬 우위에 있게 되었다.
이런 의문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럼 상앙의 《상군서》는 국가의 외면적인 제도에만 집중하는 부국강병만 다루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상군서》는 표면적으로는 엄격한 법치와 군사 시스템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러한 제도의 바탕을 이루는 내면에는 '인간의 이기심'이 있으며 이를 깊이 있게 이해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상앙은 《상군서》를 통해 말한다. '백성들이여, 법을 지켜라. 그리고 군대에 가서 노력해라. 그러면 너희에게 돈이 떨어질 것이다. 너희가 군공을 세운 만큼 국가는 보상할 것이다. 법을 지키는 자는 떡을 줄 것이요, 법을 어기는 자는 사형에 처할 것이다. 법만 지키면 너희가 바라는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고, 나라에 공을 세우면 그러한 공에 합당하게 신분 상승을 약속할 것이다.' 이는 결국 제도적인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이익이며, 백성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그들의 욕망이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이기심을 적극 인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가 정책에 적용한 상앙의 철학은 당대에 모럴리스트들인 유가 학파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백성들은 이렇게 엄격한 상앙의 변법에 불만이 없었을까? 당시의 기록으로는 백성들이 대체로 상앙의 변법을 반기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상앙의 변법은 피지배층뿐만 아니라 지배층과 특권 계층인 귀족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고, 귀족들 역시 세습적으로 누리는 특권들을 포기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당시 전국시대 나라는 귀족과 특권 계층은 엄청난 특권이 주어졌고, 커다란 공이 없이도 지위를 세습하며 권력을 누렸었다. 이러한 예를 우리 역사에서 들어보자면 멀리 갈 것도 없이 조선 왕조의 양반 계층을 생각하면 된다. 그들은 문벌에 의지하여 각종 세금으로부터 자유로웠으며, 신분적 특권을 누렸는데, 전국시대의 분위기도 이와 같았다. 아무튼 이런 세습적인 특권이 상앙의 변법 아래에, 제약을 받기 시작했다. 나아가 상앙은 커다란 특권을 누리는 귀족들에게 누진세를 강하게 주장하여 귀족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진 효공의 입장에서는 상앙의 변법론을 잘만 이용하면 거대 문벌을 이루는 신권 세력을 탄압하고 왕권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상앙의 개혁론에 전폭적인 지지를 보낼 수밖에 없다. 아무튼 진나라는 상앙의 개혁 아래에서 나라의 하드웨어를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 그리고 이런 역량을 바탕으로 진시황제 때에 천하통일을 달성한다.
《상군서》를 보면서 상앙의 제도의 장점을 정리해보자면 첫 번째로 상벌이 명확하다는 점, 두 번째로는 배경이나 연줄이 아닌 실력 위주의 인사배치를 지향한 점, 세 번째로는 법을 통하여 국정 정책에 기준을 세웠다는 점, 네 번째로 병농일치의 군사력 확대를 꾀했다는 점, 다섯 번째는 인간의 이익을 부정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긍정하며 받아들인다는 점 등이다. 그럼 반대로 단점을 꼽아보자면, 첫 번째로 극단적으로 전제 왕정을 옹호하는 사상, 두 번째는 극단적인 법치주의를 주장하여 사회의 경직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 세 번째는 농사를 중시하고 상공업을 멸시하여 상품 경제의 발전을 저해한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상군서》에는 유가 학파의 철학을 비판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요지는 다음과 같다. '유가 학파들은 말만 하면 상고시대의 법과 제도를 계승하고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오늘날의 시세는 상고시대와는 전혀 다르므로, 오늘날에 맞게 현실성 있는 법과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기에 상앙은 《상군서》를 통하여 약육강식이 빈번한 전국시대에 맞는 시스템은 법을 중심으로 한 법가 사상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결국 '사회의 진보는 현실성을 바탕으로 한 개혁을 성사시켰을 때 이뤄진다.'라는 논리로 정리할 수 있는데, 이러한 논리는 상고 시대의 복고주의를 주장하는 유가 학파의 사상에 비해 굉장히 융통성 있고 현실을 고려했다는 부분에서 높게 살 만하다.그렇기에 상앙의 논리를 고려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상군서》는 뛰어난 고전이다. 중국의 제도는 진나라의 통일을 기반으로 하여, 진의 제도를 계승하고 발전시켜왔는데, 그런 시발점이 바로 상앙의 변법에서 시작됐으니, 어찌 보면 중국의 왕조국가들의 틀은 상앙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21세기의 오늘은 상앙이 살던 왕조 중심의 국가와는 다르다. 제도도 다르고 시민들의 위치와 권리 역시도 상앙의 시절과는 상이하다. 그러므로 상앙이 주장했던 《상군서》를 오늘날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오늘날 시류에 비교해볼 때 현실적이지 못한 부분이 많으니까. 그러므로 상앙의 철학은 중국 제도사에 있어서 역사적인 의의가 있지만, 오늘날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적용하려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다만 상앙이 법치주의를 통해 주장하고자 했던 내용 중에서, 조직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상벌이 명확하고, 법에 만인이 평등해야 하며, 능력을 우선하여 인재를 선발해야 한다는 제도의 필요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
이 책은 인간사랑 출판사의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임을 밝힌다. 서평단에 응모하는 책들이 대개 나의 독서 취향이거나 관심이 있는 책들이지만, 이 책의 저자인 상앙에 대해서는 커다란 상식이 없었다. 그가 법가의 창시자로서 엄격한 법을 시행한 사람이었다는 정도가 내가 아는 배경지식의 모두였다.
솔직하게 표현하면 이 책을 그리 읽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사랑의 서평 이벤트는 신동준 선생의『귀곡자』와『상군서』를 함께 읽는 것이었다. 나는 열국지의 최고 스승이었던 귀곡사에 대해서 알고 싶었고, 상앙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귀곡자』와 함께『상군서』도 받게 되니 좋구나, 정도라고 할까?
서평단에 신청하는 댓글에 내가 올린 댓글은 다음과 같다.
전국시대 최고의 스승인 귀곡선생! 드디어 서평단에 당첨되고, 책을 받았을 때는 몹시 기뻤다. 그러나 이내 당혹감과 함께 부담감에 사로잡혔다. 두 권 모두 방대한 분량! 특히『귀곡자』는 581쪽이었다. 지금까지 500쪽 이상 되는 책을 몇 권 읽기는 했지만, 그 책들은 대개 소설이었다. 이와 같이 인문 고전이면서 책략을 다룬 책으로 500쪽 이상 되는 책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내가 과연 이런 책을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렵기까지 했다. 사나흘을 망설인 끝에 일단『귀곡자』를 읽었고, 다음으로 펼친 책이『상군서』였다. 이 책에 대하여 내가 느낀 것을 몇 가지만 적겠다
첫째, 신동준 선생의 책 중에 가장 어려웠다. 내가 신동준 선생의 책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고전문화가이자 역사문화 평론가인 선생은『전국책』,『국어』,『후흑학』,『장자』,『한비자』등 20여 권의 저서를 남긴 바 있다. 그중에서 내가 읽은 책은『조조의 병법경영』,『귀곡자』,『상군서』의 세 권뿐이다. 즉, 세 권 중에서 이 책이 가장 어려웠다는 의미이다. 그 이유는 이 책은 『상군서』원전을 풀이하는 경서 강독의 성격을 지닌 책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조조의 병법경영』은 조조가 참전했던 다양한 전투는 물론 동서양의 각종 전투와 나라 경영에 대한 풍부한 예화 등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소설처럼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었다.『귀곡자』는 경서강독의 성격이 강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다양한 전투와 작전에 대한 예화가 담겨 있어서 지루함을 덜 수 있었다. 그러나『상군서』는 전투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80% 정도가 원전과 그에 대한 풀이 및 배경 설명이 주를 이루고 있다. 학문이나 정치 또는 군사학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애초부터 흥미와는 거리가 먼 책이었다. 둘째, 상식의 허를 찌르는 내용이 많았다. 한국인의 생각하는 유학은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하는 성리학이 중심이었다. 나 역시 그것이 중국의 사상인 줄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그렇게 인의와 예의를 중시하는 정치를 펼 수가 없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였던 음모와 지략 등이 사실은 국가 경영에 필요한 방책이었던 것이다. 신동준 선생의 저서에서는 읽을 때마다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조조의 병법경영』에서는 간웅으로 알고 있었던 조조가 중국 최고의 명군인 이유를 알았으며『귀곡자』와『상군서』를 통해서는 전투에 이기려면 나라의 힘을 키우려면 지금까지 금과옥조로 생각했던 삼강오륜 같은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셋째, 이 책은 훌륭한 한문 참고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상군서』원문을 풀이하면서, 그 글에 얽힌 배경뿐만 아니라, 한문이나 문장의 쓰임까지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 글자는 대부분 이렇게 풀이하지만, 여기서는 이렇게 풀이해야 한다. 그 이유는 ~이다.' 같이 상세하게 설명한 글을 읽다 보면 한문에 대한 지식까지도 익히게 될 듯하다. 넷째, 이 책을 바로 펼치면 상당히 힘겨운 독서가 될 듯하다. 이 책은 경서강독과 같은 성격의 글이다.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대학교재를 주면서 읽으라고 하는 몹시 곤혹스럽듯이, 이 책을 대하는 대부분의 독자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될 듯하다. 이 책을 효과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배경지식이 필요할 듯하다. 1) 삼국지, 열국지, 초한지를 읽을 것 : 특히『열국지』는 필독서이다. 상앙이 활동했던 전국시대의 역사와 전쟁을 다룬 책이 열국이이기 때문이다. 삼국지와 초한지의 전략가와 장수들은 상앙의 방책과 전략들을 활용한 것은 물론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이들도 다수이다. 또한 이 책에서도『열국지』시대의 예화를 다수 들고 있다. 위 세 책에 대한 배경지식이 풍부하다면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조조의 병법경영』-『귀곡자』-『상군서』의 순서로 읽을 것 : 저자의 책 중에서 혹시 위 세 권에 관심이 있다면,『조조의 병법경영』을 먼저 읽고, 다음에『귀곡자』를 읽은 뒤에 이 책을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다른 책들은 읽지 못했으므로 알 수가 없지만, 내가 읽은 세 권만 본다면 이와 같은 순서가 효율적이라고 본다. 만약에 이 세 권중에 한 권만 읽는다면 어떤 책이 좋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조조의 병법경영』이라고 본다. 중국 최고의 명군 중에 한 명인 조조의 삶속에는『귀곡자』와『상군서』의 책략뿐만 아니라 국가를 경영하고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모두 담겨 있다. 또한 재미있기도 하다.『조조의 병법경영』이 가장 훌륭한 책이라거나『귀곡자』와『상군서』가 그만 못하다는 것이 아니다.『조조의 병법경영』을 먼저 읽어야 다른 책들을 더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3) 중3 한문교과서를 읽을 것 : 이것은 필독은 아니다. 다만, 이 책은 경서강독의 성격을 지닌 책이니 한문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해를 하면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하는 마음으로 중학교 3학년 한문교과서(자습서도 함께)를 통해 한문에 대한 기본 상식을 익히면 이 책의 풀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알게 되리라고 본다. 중학교 1학년이나 2학년, 또는 고등학교 한문교과서 가 아니고 중3 한문 교과서라고 한 이유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고교 한문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한문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을 복습하고, 학문적인 욕구를 어느 정도 충족시킬 수 있는 책이 중3교과서라는 것이 개인적인 지론이다. 다섯째, 이 책을 통하여 제자백가의 사상을 파악할 수 있다. 이 책에는 상앙은 누구이고, 『상군서』는 어떤 책인가에 대한 상세한 해설이 부록으로 덧붙여 있다. 그 부록의 양이 웬만한 책 한 권 분량인 160쪽이다. 이렇게 방대한 이유는 상앙뿐만 아니라 공자, 맹자, 한비자 등 춘추전국시대에 활약했던 제자백가들의 사상에 대해서도 함께 설명을 해주기 때문이다. 부록을 완독하면 중국 제자백가들의 개론서를 읽은 정도의 배움이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어떤 사람이 읽으면 좋을까에 대한 내 생각으로 이 글의 마무리를 짓겠다. CEO, 정치가, 국군장교는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 뿐만 아니라 장래 그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꿈을 품고 있은 젊은이에게도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이 책은 흘러간 옛날의 고전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부국강병과 공격경영의 방법과 방향을 알려주는 책이기 때문이다. |
|
동서양을 막론하고 난세를 다스리는 공통의 치도가 있다. 바로 현실주의 전통이다. 동양사상에서 난세를 타파하는 현실주의적 실용주의적 처방책을 가장 자세히 설명한 것이 바로 법가사상이다. 중국을 놓고 보면 왕조교체기의 난국에 처할 때마다 법가의 텍스트는 생존을 위한 비급으로 취급받았다. 법가의 혁신은 그만큼 치열하고 독한 처방이었다.
법가의 대표적인 인물에는 관중, 이회, 오기, 상앙, 신불해, 신도, 한비 등을 꼽을 수 있다. 이들 가운데 이회와 오기의 텍스트는 유실되었고, 후세에 전해진 책으로는 선진법가의 관중의 《관자管子》, 신도의 《신자》, 신불해의 《신불해》, 상앙의 《상군서商君書》, 한비의 《한비자》와 《사기》에 나오는 이사의 소론 세 편 등이 전해진다. 오늘날 대다수 사람들이 한비를 법가사상의 집대성자로 알고 있고, 상앙을 신도나 신불해와 더불어 법가의 '조연' 삼인방 정도로 생각한다. 그런데 신동준 선생은 상앙을 한비와 같은 급의 주연으로 격상시키고 있다. 한비의 법술세 사상을 상앙의 텍스트에서 이미 찾아볼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상앙은 위衛나라 공족 출신이라 위앙 또는 공손앙이라고도 불리고, 후에 상商 지역 15개 읍을 봉지로 받아 상앙 혹은 상군商君이라고도 불린다. 상앙은 전국시대 진秦나라의 정치가로, 초기 법가인 이회와 오기의 영향을 깊이 받았다. 상앙은 진효공 밑에서 20여 년 동안 재상으로 있으면서 두 차례의 변법을 강행했다. 상앙의 변법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을 지닌다. 정치 측면의 법치주의, 군사 측면의 군국주의, 경제 측면의 중농주의가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상앙의 변법은 예치를 법치로 전환시키고 부국강병 정책들을 현실화시켜 후일 진제국 성립의 기반을 세웠다. 상앙이 천리마라면, 그런 천리마를 알아본 백락 진효공도 무시할 수 없다. 곽말약은 《십비판서》에서 상앙을 전폭 신뢰해 변법을 완성시킨 진효공을 중국의 역대 군주 가운데 가장 대공무사한 리더로 높이 평가하고 있다.
"진효공이 역사상 가장 '대공무사'한 정사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법가사상가인 상앙을 전폭 신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의 상앙에 대한 신임과 지지는 춘추시대 관중에 대한 제환공의 신임, 삼국시대 제갈량에 대한 유비의 신임, 북송대 왕안석에 대한 신종의 신임 등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361-2쪽)
《상군서》는 난세 부국강병의 방략으로 '농전'을 강조한다. 농전은 평소에 농사를 지으며 부국에 매진하다가 전쟁이 벌어지면 병사로 활약하며 강병에 헌신하는 것을 뜻한다. 《상군서》의 핵심이 농전이기에, 농전의 '농'에 주목하면 경제사상서로 읽을 수도 있고, '전'에 주목하면 병법서로 읽을 수도 있다. 이는 앞서 말한 상군학설의 연원이 이회(법가)와 오기(병가)인 것과 직결된다. 총과 칼이 난무하지 않을 뿐인 비즈니스 각축전에서 공격경영의 전략으로 일관하는 《상군서》는 21세기 글로벌 경제전쟁에 임하는 실용적인 태도를 제시한다. 또한 2만여자로 된 《상군서》의 절반이 모두 군사와 관련된 내용인데, 분량만 따지면 6천여 자의 《손자병법》보다 두 배 가량이다. 상앙은 군사적으로도 전술전략과 병법에 능통했기에 《상군서》는 '상앙병법'이라고도 불린다.
상앙의 사상적 롤모델은 전국시대 초기 위문후 치세 때 활약한 위나라의 이회다. 이회는 중국 최초의 성문 형법이라 할 수 있는 《법경》의 저자로, 당시 각국의 법률을 종합해 《이자》 32편을 편찬한 바 있고 중농억상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상앙은 부유한 자의 부를 덜어내는 '빈치貧治'를 전제로 한 '균민均民'을 강조했다. 상앙이 <거강>에서 말한 빈치는 부민의 재물을 덜어내 균민을 만드는 식으로 부국을 실현함으로써 강병을 달성하자는 게 기본 취지이다. 이는 상가의 효시인 관중이 부유한 백성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부치富治'를 토대로 부국을 만들어 강병을 실현하고자 한 것과 대비된다.
"상앙은 사람들로 하여금 힘을 다해 본업에 종사하게 했다. 밭갈이와 길쌈을 열심히 해 곡식이나 비단을 많이 바친 자에게는 본인의 부역과 부세를 면제해 주었다. 상업이나 수공업에 종사하면서 태만하고 게으른 나머지 가난하게 된 자는 모두 체포해 관청의 노비로 삼았다."(374쪽)
상앙이 바라본 유묵사상은 '국해國害'로 대변된다. 시, 서, 예, 악, 선, 수, 인, 염, 변, 혜 등 유가의 열 가지 덕목은 나라를 망치는 부학사음浮學事淫으로 매도된다. 유묵의 비현실적인 공허한 지식만 추구하는 나라는 망할 날이 멀지 않다고 강조하는데 이는 상앙이 무엇보다도 부국강병의 현실주의와 중농경상의 실용주의 노선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또한 나라를 좀먹는 6가지 일인 '6슬'을 언급하는데, 농업을 해치는 세歲와 식食, 상업을 해치는 미美와 호好, 관직을 해치는 지志와 행行이 그러하다. 세는 연말에 여분의 양식을 마련한 후 손님을 초대하는 것을 말하고, 식은 진탕 먹고 마시는 식탐을 말한다. 미는 화려하게 치장하는 것을 말하고, 호는 진기한 물건을 탐하는 것을 말한다. 지는 소극적으로 업무에 임하는 것을 말하고, 행은 복지부동의 자세로 일을 처리해 나가는 관행을 말한다.
이 책의 원문은 《제자집성》(중화서국, 1986)에 실린 엄만리의 교정본을, 역본은 장각의 《상군서전역》(귀주인민출판사, 1995)을 저본으로 삼았다. 부록에 저자의 <상앙론>과 더불어 《염철론》 제7장에 수록된 <비앙>의 역문 그리고 상앙 연보를 수록하고 있다. 저자 신동준은 <상앙론>에서 상군서의 진위문제와 상군지서와 상군지법에 얽힌 논쟁, 법가사상의 연원 등을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처음 상앙의 학설을 접하는 이들에게 무척 긴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한편, <비앙>은 상앙의 변법에 대한 한나라 유법가의 엇갈린 시각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텍스트다. 가령 법가는 상앙의 변법이 진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었다고 보고, 유가는 상앙의 변법이 백성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고 보는 식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상앙에 대한 평가도 이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새로운 재해석과 창조적인 변용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상앙과 《상군서》에 대한 평가는 <비앙>의 상반된 시각 사이에 늘 걸쳐져 있을 것이다. |
|
상군서의 모든 내용은 오직 부국강병 하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종의 국가주의라 할 수 있다. 아주 철저한 국가주의이다. 한비자를 난세 제왕 리더십의 보고, 상국서는 난세 부국강병 방략의 보고라고 평가한다. 상군서가 한비자를 누르고 법가서의 대표가 된 것은 한비자가 부국강병에 방점을 찍은 상앙과 달리 군주의 제신슬에 초점을 맞춘 데 따른 것이다. 상군서는 시종 부국강병에 초점을 맞춘 까닭에 저항감이 적었다. |
|
상군서/ 상앙/ 신동준 한비자에 강한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는 상앙의 상군서 입니다. 법가의 실질적인 시조라고 할 수 있죠. 아 물론 이전에 이회라는 인물의 법치사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강력한 부국강병은 강력한 법치로만 이룰 수 있다고 했다는 군요. 사실 법 중에 가장 엄한 법이 군법이라고 하면 법치의 강조는 결국 사회의 군대화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용은 한비자와 상당히 일치합니다만 굳이 다른 점을 표현하자면, 한비자보다 보다 강력하게 백성들을 총 무장 시키고, 그것으로 전쟁을 해서 제국을 이루는 것을 설파한 책입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전쟁광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 사실 한비자는 공맹의 저항으로 금서가 되기도 했지만 상군서는 오히려 병법책으로 분류되어 금서가 되는 걸 피했다고도 하네요.
이름하여 전국시대. 사실 그냥 그래도 분리된 데로 살아도 되는데 여기는 유럽이 아니고 중국인지라, 관성의 법칙에 따라 통일을 향해 갈 것이니 그 전까지는 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이왕지사 그럴 거라면 부국강병하여 여러 전쟁에서 승리하다보면 결국 우리가 천하통일을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공맹 따위로는 어림도 없다. 관직에 있는 자들이라면 아첨 아니면 참소를 늘어놓는 이들을 물리치고 오직 적의 수급을 베어오는 것으로 논공행상을 해야 하고 백성이라면 힘써 농사를 짓는 것과 군사로서 부역에 참가하는 것을 보고 보상을 해 줘야 한다. 상업이 발달하면 쓸데없이 사치품이 늘어나 관리고 백성이고 기강이 해이해 지니 이를 금하고 천시하도록 해야 한다. 위에서 부터 아래로 이 원칙에 따라 상벌을 철저히 하면 법이 저절로 지켜지고, 게으름을 피우는 백성이 없어지니 개간되지 않는 땅이 없게 된다. 상벌을 철저히 지켜 비겁한 장수는 먼저 베고 용감히 싸우다 전사한 이의 가족들에게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하니 백성들이 전쟁터에서 용맹하게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자.. 위 아래 가릴 것 없이 법을 엄격하게 지키게 하다는 것은 지금의 법치주의와 다르지 않겠지요. 물론 지금도 유전무죄 ...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만은... 법적으로는 그렇다는 것입니다. 상업을 억제하고 농업을 장려한다. 이건 당시에는 통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전쟁이 오래 가다 보니 군량미 싸움이 되어서 결국 진나라가 승리하는 큰 요인이 되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첨과 참소가 쓸데없는 정쟁을 일으키는 것은 이해합니다만, 모두다 농사를 짓게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겠지요.
군주가 명철하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에 법만 제대로 만들도 법대로 하면 혼군이 날뛰는 일도, 모리배가 전횡하는 일도 없게 된다고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 법을 누가 만드냐는 거죠, 그리고 그 법도 바꿀 때가 있는데, 그때는 또 어쩌냐는 겁니다.
한비자는 중복되거나 하는 곳도 많았지만 상군서는 그보다 짧고 내용도 보다 명료합니다. 다들 유교의 이상에 매달려 있을 때 사실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꿰뚫어 보고 이 많은 인구를 제대로 통치하려면 인의예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선각자입니다. 우리가 철학으로 유교를 이야기하지만, 특히 삼제시대의 이상향을 이야기 하지만 실제 현실은 어땠을까요. 전설은 전설일 뿐이고 사실 역사의 발전은 백성들의 입장에서 봤을 때 잔인한 한비자의 시대에서 아주 조금씩 공맹의 인의가 가미되어 가는 그런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진나라의 통일에 기여했으나 오히려 자신이 주장했던 사상에 의해 극형에 처해진 상앙과 한비자. 결국 인간 본성이라는 천기를 누설한 벌이었던 걸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