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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먼지가 없어졌다.
"마음의 먼지가 없어졌다." 내용보기
스님들의 밥그릇싸움이 꼴보기 싫어 돌아앉으셨다는 성철스님의 말씀. 어디에나 의인은 있다는 김대중대통령님의 말씀. 여기에 그것을 실천하신 스님들의 이야기가 계신다. 인생이 무엇이관대 그리도 연연하는가. 나의 선행이 자손에게 이어지거늘 티베트의 천장을 본다. 이분들의 사후와 너무도 똑같다. 나도 서울대에 시신기증을 했다. 사후에 하지만 숲속에 나머지 연구하고 남은 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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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의 밥그릇싸움이 꼴보기 싫어 돌아앉으셨다는 성철스님의 말씀.

어디에나 의인은 있다는 김대중대통령님의 말씀.

여기에 그것을 실천하신 스님들의 이야기가 계신다.

인생이 무엇이관대 그리도 연연하는가.

나의 선행이 자손에게 이어지거늘

티베트의 천장을 본다. 이분들의 사후와 너무도 똑같다.

나도 서울대에 시신기증을 했다. 사후에 하지만 숲속에 나머지 연구하고 남은 시신은

버리고 싶다 동물들에게 주려고...

지리산을 간다 북한산을 간다 중간중간에 묘지가 있다. 무슨 영화를 누리려고

산사람이 사는 곳을 풍수에서는 양택이라하고 죽은 사람이 사는 곳을 음택이라고 한다.

음택의 기운이 산사람에게 전해진다고해서 우리는 명당을 간다.

전북모악산에 고려시대 귀족이었던 김일성조상의 묘가 있다.

49년간 절대권력을 누릴명당이라해서 묘를 썼겠지

행복한가...

되짚어본다.

마음의 행복을 담고 싶은 분에게 꼭 권해드리는 책이니 읽어주시길 강력추천드리는 바이다.


어느 책이나 좋은책 나쁜책 기억에 남는책 안남는책 많지만


좋은책인데 안남는책이 있는반면 책속의 내용이 몇십년이 가도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책이 있다.


스님들은 자신의 죽은 육체를 산짐승들의 먹이로 보시하시라 말씀하신다.


위에 티베트의 '천장'을 말하였는데 그들은 시신을 바위위에 놔두면 독수리가 와서 먹고 하늘로


올라간다한다.그럼 영혼도 같이 하늘로 올라간다 생각한다.


즐겁지않은가 나의 시신이 어느 생명체에게 삶을 불어넣어준다는 것에 대하여


무덤을 만들어 이나라의 아름다운 산하를 망치면 무엇하겠는가


훌륭한 책이다.


스님들의 사후 시신을 산속짐승들에게 먹이로 보시하시는 모습 보기 좋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s*****6 2013.07.0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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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멸의 즐거움
"적멸의 즐거움" 내용보기
이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이책을 보면 요즘 사람들의 아둥바둥 살아가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 책은 적멸,말 그대로 죽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죽음이 아닌, 고승들의 숭고한 뜻을 갖고 있는듯하다. `육신보단 마음'이란 생각을 느꼈다. 산짐승의 밥으로 자신의 육신을 내놓을 수 있는 마음.. 결코 평범하지 않은, 비범한 죽음의 예
"적멸의 즐거움" 내용보기
이책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이책을 보면 요즘 사람들의 아둥바둥 살아가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이 책은 적멸,말 그대로 죽음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죽음이 아닌, 고승들의 숭고한 뜻을 갖고 있는듯하다. `육신보단 마음'이란 생각을 느꼈다. 산짐승의 밥으로 자신의 육신을 내놓을 수 있는 마음.. 결코 평범하지 않은, 비범한 죽음의 예들을 보면서 작은 것들에 연연해 가면서 살아가는 내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들은 내 생각에 동의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또 겸손한 자세로 올바르게 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인상깊은구절]
적멸은 고요와 소멸이 아니다. 그것은 법신의 태어남이요 참된 자기 모습으로 돌아감이다.
h******g 2000.05.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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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죽음이야기... 죽음은 새로 나는 것이다.
"향기로운 죽음이야기... 죽음은 새로 나는 것이다." 내용보기
나는 정휴스님을 먼 발치에서 뵈온 적이 있다. 예리하고 빛나는 눈이 크시고 이목구비가 호쾌하게 보이시던 스님은 수행정진에 조금이라도 게을리하시는 스님에게는 매우 엄격하게 호통시치던 모습을 먼 발치에 보았다. 그때에 나는 무척 무서운 큰 스님으로만 생각했었다. 설악산 기슭을 넘어가는 한 사찰에서 뵈온 스님은 매우 엄하고 서릿발 같은 분이셨다. 그런데 책에서 뵙는 스님은
"향기로운 죽음이야기... 죽음은 새로 나는 것이다." 내용보기
나는 정휴스님을 먼 발치에서 뵈온 적이 있다. 예리하고 빛나는 눈이 크시고 이목구비가 호쾌하게 보이시던 스님은 수행정진에 조금이라도 게을리하시는 스님에게는 매우 엄격하게 호통시치던 모습을 먼 발치에 보았다. 그때에 나는 무척 무서운 큰 스님으로만 생각했었다. 설악산 기슭을 넘어가는 한 사찰에서 뵈온 스님은 매우 엄하고 서릿발 같은 분이셨다. 그런데 책에서 뵙는 스님은 따뜻함이 금방이라도 묻어 날것 같이 따사롭고 한없이 부드러운 분이었다. 겉으로는 수행정진에 열심치 않은 스님들에게 그렇게 무서우시던 스님이 눈 녹고 새잎이 피는, 고 자그마한 자연을 하나도 놓치시지 않고 담아내시는 따뜻하고 정감있는 속내가 있었을까 속으로 좀 놀랍기도 하고 스님에 대한 존경심마저 들었다. 얼음장같이 차갑게 자신을 다스리시면서 수행하시고 자연의 아름다움에는 따사롭게 정을 쏟으시는 스님의 품내가 못내 다시 한번 먼 발치에서 뵙고 싶은 마음을 들게 했다. 속세인이 말하는 죽음이란 장례식장에서 곡을 크게하고 남은 사람, 가는 모두가 아쉬웁고 가슴 아픈 일이다. 울고 가슴아파하며 보내는 거싱 아쉬워 좋다는 땅을 찾아 고이 묻고 주변을 있는 정성 없는 정성으로 가꾸기도 한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흙에서 왔다가 흙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우리들이 모두 잘아는 이야기처럼 자연의 일부분으로써 새로이 다시남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진정한 깨달음이야 말로 죽음 앞에 초연하고 가진것을 버릴 줄 아는 것이 아닐까 .. 우리는 내심 죽음을 두려워만 하고 앞 뒤 가릴 것없이 내일만을 바라보고 산다. 한 치의 양보가 바보처럼 느껴지고 한 발의 뒷걸음질을 통탄하면서 살다가 죽을 때에 비로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비통해한다. 그리고는 다른 것에 자신을 맡기고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애쓴다. 항상 수행을 하시면서도 항시 두고 갈 것과 버릴것을 알고 향기로운 죽음, 즉 법신의 본질로 돌아가실 것을 생각하시는 스님이 들려주시는 향기로운 이야기는 바쁘고 답답한 공기가 가득한 도시 한가운데에 시원한 산소같이 느껴졌다.

[인상깊은구절]
저녁 예불을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 차를 마시고 있으니 물소리와 함께 새가 울고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 새소리가 듣기 싫었다. 들을수록 귀에 거슬렸다. 그렇다고 새를 쫓을 수도 없었다. 오히려 새소리는 접접 커지는 것 같았다. 한참 후에 깨달은 일이지만 내 마음에 새소리를 받아들이는 애정이 없었다. 모든 사물은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스스로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애정으로 대하면 빨리 싫증이 나지 않고 비록 가시 돋힌 말이 있더라도 그것을 고깝게 생각지 않고 그냥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개달은 사람들은 생각을 하고 반연을 쉬어 모든 일에 물이 흐르는 것처럼 대한다.
q********1 2001.04.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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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죽음의 존재는 뭘까??
"인생에서 죽음의 존재는 뭘까??" 내용보기
어차피 사람이 세상에 순간으로 존재했다가 결국 새벽 별빛처럼 사라지는 존재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인지 알고 싶다. 제목이 주는 중압감은 차지하고서라도, 죽음을 이미 일상적 생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된 이 나이에도 아직 나의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하고 받아들인다는게 사실 현실적으로 어렵다. 죽음 해탈 = 자기귀환 참다운 眞 我를 실
"인생에서 죽음의 존재는 뭘까??" 내용보기
어차피 사람이 세상에 순간으로 존재했다가 결국 새벽 별빛처럼 사라지는 존재라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인지 알고 싶다. 제목이 주는 중압감은 차지하고서라도, 죽음을 이미 일상적 생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게 된 이 나이에도 아직 나의 죽음을 준비하고 맞이하고 받아들인다는게 사실 현실적으로 어렵다. 죽음 해탈 = 자기귀환 참다운 眞 我를 실현하고 유한적 삶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본질적인 것을 버려야 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불가에서 말하듯 내 진정한 가치는 내 영혼이며, 내 몸은 내가 가진 소유물 혹은 그저 진정한 가치인 자성의 거처라 할지라도 언젠간 소멸되어질 것인 가아라면 가아의 죽음을 구태여 걱정해야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렇다해서 몸이 나의 자기애를 나타내는 또 다른 방편이 된 이 세상에서 몸은 그저 가아에 불과하다는 말이 얼마나 설득력이 있게 받아들여질 것이며. 또 내 자신에게도 그러하다. 아마 공해도 없고, 스트레스에 시달리지도 않았을 선조들의 행복 중의 하나였겠지만, 하지만 한곳에만 고여있는 물이 썩어들어 가기 마련이듯이 우리는 어쩌면 옷을 갈아입듯이 또는 파충류가 허물을 벗어버리듯이, 우리 몸의 죽음이란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또 그 죽음이란 게 즉시 진정한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일을 의미하는 것일 아니라, 그것을 맞이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닦아야 할 것이다. 어쩌면 바로 이러한 이유가 우리에게 죽음이 존재한다는 것을 종교성을 벗어 던진 하나의 구원이요, 또 우리가 스스로 종교라는 틀에 자신을 끼우는 이유일 것이다. 결국 책을 한장 한장 넘기면서 죽음을 단순히 하나의 떠남으로 여긴다면 마음이 이리 무겁게 여겨지지 않을 터인데, 현실을 사는 소시민이란 게 또 그렇지 않으니 그저 혈혈단신으로 홀홀히 세상을 먼지 털 듯 떠나는 고승들의 죽음 아니 해탈이 부럽기만 할 따름이었고. "번뇌를 버리려 애쓰지 말아야 한다. 내가 젊은 날 수천 수만 번뇌를 버리려 노력했으나 번뇌는 물건처럼 버려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번뇌를 사랑할 때 마음이 편해졌다. 번뇌가 지혜가 되는 도리다." 내 자신이 죽음을 앞에 두고서 현실적 이해관계와 남을 사람들의 비록 순간적인 슬픔이라도 과장하며 생각할 속세 속의 사람이어서 그랬는지 그 나름의 고민과 번뇌를 버리려 무척 노력을 했었지만, 그런 생각이 얼마나 기우였었는가를 느끼게 되는 하나의 계기였다. 죽음, 이것은 또 다른 떠남은 구원인 것이었고, 나를 묶어 놓고 있는 것은 현실의 어려움 들이 아니라 나 자신 이였다. 죽음이 해탈과 적멸의 필요조건 중 하나라면 내가 앞서서 죽음을 두려워해야 할 필요가 무엇이리. 그저 나의 생과 죽음의 완성을 위하여 살기 위해 노력해야할 것이고, 생을 버리게 될 때 죽음 또한 같이 버리리라. 죽음은 단순히 조용하게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죽음이 한없는 즐거움이 되기 위해서는 삶과 죽음을 함께 벗어 던져야 했었고. 나는 이제 그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수용하면서 살아야 할게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내 속에서 발생하고 소멸되는 것. 그렇게 한다면 죽음이란 것을 그저 하나의 허물벗기 중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번뇌를 버리려 애쓰지 말아야 한다. 내가 젊은 날 수천 수만 번뇌를 버리려고 노력했으나 번뇌는 물건처럼 버려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번리를 사랑할 때 마음이 편안해졌다. 번뇌가 지혜가 되는 논리이다.
o****n 2000.08.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