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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을 때면 결말이나 진행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혼자서 주절거릴 때가 있다. 소설이 많은 사람을 만족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다양한 감상 혹은 평가가 따르게 된다. 소설은 작가의 작품이다. 취향이 아니라고 해서 작품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작품 판단하고 평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기리노 나쓰오의 『일몰의 저편』은 이 책의 발행편집인인 김 사장의 글에 유혹당해서 읽게 되었다. 그의 글을 읽을 때마다 책의 내용이 궁금해 견딜 수 없다. 작가의 작품을 몇 편 읽었지만 전작주의에 임할 만큼 매력적인 작가라고 여기지 않았는데 어쩐지 자주 읽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성애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가 문화문예윤리향상위원회로부터 소환장을 받고 어느 외딴 바닷가의 요양소에 감금되며 일어나는 이야기다. 강간이나 폭력, 범죄를 긍정하는 것처럼 썼다는 독자의 고발이 있었다고 했다. 문예윤리위원회 즉 문윤은 작가가 자기 작품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훈련하게 하여 교정 즉 갱생을 시키는 역할이다. 작가 마쓰 유메이(마쓰시게 간나)가 도착한 건물은 외부와 단절되어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곳에 감금된 작가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으며, 식당에서조차 벽을 바라보고 식사를 해야 했다. 마쓰 유메이는 그들의 말을 잘 들으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에 그들이 원하는 작문을 쓰기 시작한다. 그가 쓰지 않은 종류의 글이었다.
모두에게 올바른 소설이란 어떤 것일까. 그들에게 순응하기로 한 작가는 처우가 달라진 것을 느낀다. 바닷물 냄새가 배어 있는 미지근한 물에서 얼음조각이 들어간 시원한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거다. 감점 7점을 받아 7주간의 격리 생활을 해야 하는 작가에게 이제 남은 기간은 한 달여 남짓. 곧 나갈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들은 작가라는 표현자들, 특히 사회적 상식과 동떨어진 작품을 쓰려고 하는 작가들을 섬멸하려고 합니다. 물론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사람들도 저들에게 동조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정부 말을 잘 듣는 우민을 대량생산하는 것이겠지요. (201페이지)
문윤에서는 정부가 추진하는 방향과는 다르게 독자들을 현혹시키는 작가들을 배제하고 갱생시키는데 목적이 있었던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에도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쓰는 작가들을 비판하고 매장하려 한 적이 있었던 것처럼. 그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소설일 뿐이지만 일본도 이렇다는 것인가. 그저 작가의 상상일 뿐일까. 진행중이라는 것인가.
누구라도 공감할 아름다운 이야기만 쓴다면 미래는 어떻게 될까. 독자들은 아름다운 이야기에 금방 싫증 내고 말 것이다. 더 강력하고 짜릿한 이야기를 원할 수 있다는 거다.
작가가 외딴 요양소에 감금될 경우 대부분 다른 소설에서는 작가들이 서로 힘을 합해 그곳을 뛰쳐나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작가들은 무력하다. 체제에 순응하거나 그렇지않으면 죽음을 택한다. 과연 다른 방법은 없었는지, 왜 방법을 찾지 못하는지 안타까울 뿐이었다.
무언가 해결을 바랐던 거 같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인정받는 것, 순응하는 게 작가가 아니라 작가들을 가두고 갱생하려는 그들이었으면 하고 바랐다.
시시한 논리 들먹이지 마. 작품은 자유야. 인간의 마음은 자유니까. 무엇을 표현해도 돼. 국가권력이 그걸 금지하면 안 돼. 그게 검열이야. 파시즘이라고. (317페이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작가의 생각을 짐작하게 했다. 인간의 다양성. 다양한 인간만큼이나 그들의 고통도 다채롭다는 것. 작가는 다양한 인간의 고통을 작품으로 나타내는 역할을 하는 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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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추천으로 처음 알게된 작가인데 이로서 두번째 작품이네요. 처음 읽은건 절판된 로즈가든이었고, 이런 류의 소설을 별로 많이 읽어보진 않았는데 장르소설? 작년에 사놓은건 무지 많은데 거의 안읽고... 일몰의 저편은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재밌어서 단숨에 읽었고 앞으로도 팬 될것 같아요. 절판되었던 로즈 가든도 이북으로 다시 나왔으면 좋겠어요. 작가의 나이가 현재 칠순?정도라고 들었는데 이런 감각이 나온다는거에 감탄했고 너무 재밌었다 |
| 창작에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일까.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 일몰의 저편. 관리감독(?)하는 저놈의 단체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나만 보는게 아닌이상 이 세상에 나오는 모든 창작물들에는 어느 ‘’정도’’의 틀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제한선이 참 애매모호해서 문제겠지만 말이다. 기리노 나쓰오 작가의 글들은 기본적으로 읽으면서 막 분노하게 되는 요소들이 있다. 마냥 편하게 볼 수만은 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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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 유메이 (본명 마쓰시게 간나)가 쓰는 소설은 흔히 성애 소설이라고 부를만한 장르의 것이다. 마쓰 유메이, 나는 작년에도 한 권의 소설을 냈는데 ‘세상 사람들의 금기나 양식 따위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지점에 인간의 본질이 있다고 믿고 독자의 미간을 찡그리게 만들고’ 싶다는 의도를 가지고 쓴 것이다. 나는 ‘강간, 페도필리아, 페티시’를 모두 포함시킬 정도로 공을 들여 소설을 썼다.
“... 우매한 자들이 소설을 샅샅이 뒤져서 편향 혹은 변태라 판정하고 작가의 성격을 뜯어고치려고 한다. 요양소, 그리고 정신감정. 그다음에는 또 뭐가 있을까. 붕붕 소리를 내며 도는 풍력발전 터빈 소리를 바로 옆에서 듣는 느낌이 들며 신경이 마비될 것 같았다.” (pp.72~73)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총무성 문화국 문화문예윤리향상위원회’가 보낸 소환장을 받게 된다. 내용인즉슨 내 소설을 읽은 독자 중 누군가가 내 소설에 문제를 제기하였고, 출석을 요구하였으나 내가 회답을 하지 않아 다시 아래의 기일에 요청한 장소로 출두하라는 것이었다. 또한 출두 장소인 바닷가 도시에서 ‘약간의 강습’이 예정되어 있으므로 숙박 준비물도 부탁한다는 내용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배가 고프다. 화장지가 줄어들고 있다. 전화통화가 안 된다. 메일도 라인도 안 된다. 인터넷도 쓸 수 없다. 감시당하고 있다. 동료와 이야기도 못 한다. 밖에 나가고 싶지만 못 나간다. 이렇게 모든 자유를 빼앗긴 것을 알고 나면 사람은 순종적이 되는 걸까. 어제는 명치를 얻어맞고 구속복에 갇힌 여자를 보며 그토록 격분했는데 오늘의 나는 이미 활력을 잃은 상태다.” (p.158)
그리고 이렇게 해서 나는 바닷가 도시에 있는, 외부와 단절된 장소의 요양소에 감금당하게 된다. 거기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다른 작가들도 존재하는데, 그들과의 교류는 철저히 막혀 있다. 식사 시간에도 겨우 눈만 맞출 수 있을 뿐이고, 샤워 시간도 개별적으로 나뉘어져 있다. 다만 절벽의 숨겨진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는 A45와 (나는 이곳에서 이름이 아닌 B98로 불린다) 몇 마디의 말을 나눌 수 있을 뿐이다.
“뇌 과학자 소마를 달갑게 않게 여기는 다다는 아키미와 불륜 관계에 있다고 했다. 그리고 다다의 아내에 대한 질투를 숨기지 못하는 아키미. 휴일이면 성인업소에 드나드는 니시모리. 아무리 봐도 시골 아줌마로 보이는 가니에가 숨은 실력자이며, 난폭한 오치는 문학적인 인간 같다는 뜻밖의 결말. 여의사 소마는 무려 ‘시치후쿠진하마의 멩겔레’란다. 우리 가운데 누구를 실험 재료로 삼을지를 선별한다고.” (p.234)
요양소의 소장은 다다이고, 다다와 비슷한 힘을 가진 것은 정신과 의사인 소마이다. 입소 후 몇 차례 직원들과의 대립으로 벌점을 받은 나는 특별한 관리 대상이 된다. 나는 또한 베갯잇 안에서 이 방을 사용한 전임자의 메모를 발견함으로써 자신을 둘러싼 인간들의 성향을 파악하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만약 작위적인 것이라면, 누군가가 내게 제공되기를 원하는 정보일 뿐이라면...
“이때에 이르러서야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뇌를 산산이 부숴 버리면 스튜에 어울릴지 어떨지 아무도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p.351)
소설은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다만, 그 논쟁의 한가운데로 (새로운 우파의 득세에 일조하였다고 여겨지는) PC함, 정치적 올바름을 끌어들이는 것이 적당한지는 의문이다. 소환장을 보내고 요양소를 운영하는 총무성 문화국 문화문예윤리향상위원회의 손을 들어줄 수 없는 것은 물론이지만 그렇다고 혐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자 하는 PC함까지를 억압의 선상에 놓는 것에 동조할 수도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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