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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면서부터 걸을 수 없었던 작가이자, 배우, 변호사로 활동하는 휠체어를 타는 사람 김원영과 후천적으로 청각장애를 입은 SF 소설가로 보청기를 끼는 사람 김초엽이 만났다. 뛰어난 교육적 배경과 직업을 가진 점에서 그들은 스스로가 대다수 장애인을 대표하진 못한다고 거듭 말하면서도 두 작가는 책 속에 장애인의 삶에 대한 현실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자신들의 경험으로 녹여낸다.
책은 크게 1부 우리는 사이보그인가, 2부 돌봄과 수선의 상상력, 3부 연립과 환대의 미래론 으로 나누어져 있다. 두 저자가 번갈아 가면서 각 주제에 대한 소제목들로 글을 실었다. 후천적 청력 손실로 보청기의 이물감을 느끼며 겪게 되는 생활과 고민 등을 섬세하게 잘 드러낸 김초엽 작가의 글들은 독자를 배려한 느낌이 들 정도로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된다. 휠체어가 자기 몸의 일부와 같다고 여기는 김원영 작가의 글은 사회학과 법학을 전공한 사람답다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간 장애인의 세계가 나와는 동떨어진 세계라 여겨서 그랬는지, 아니 사실 주변 인물들이 그런 이가 없어서 그런지 문학도인 나에게 김원영 작가의 글은 다소 어려운 지점들이 있긴 했다. 덕분에 장애학 관련 새로운 어휘들 공부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상 깊게 남은 부분은 김원영 작가의 글이 많았다. 나는 전혀 알 수 없었던, 생각지 못했던 지점들에 대한 그의 예리한 시선과 논리는 신박했다.
어린 시절 여름성경학교에서 저 구절을 배울 때 나는 '앉은뱅이'라는 말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 예수님이 정말로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성인이 된 2006년의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예수님이 "일어나 걸어라"라고 말하지 않고, "걷지 않아도 좋으니 (네 방식대로) 당당히 일어나라"라고 말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p.9-김원영)
인간인지 아닌지를 매일 아침 고민하지는 않지만 '온전한 인간'인지 아닌지, '동등한 인간'인지 아닌지를 고민한 시간은 제법 길었다. (p.11-김원영)
장애인을 위한 기술에는 항상 온정적 시선이 따라붙는다. 장애인은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가 아니라 누군가가 베푼 온정의 수혜자로 위치한다. 우리 사회가 장애 접근성과 장애 권리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특정한 기업이나 단체가 소외된 장애인을 위해 시혜를 베푼다는 서사만이 반복되고 있다. (p.72-김초엽)
만약 사회가 '앉아 있는 것'을 기본으로 설정하고 설계된다면, 사람들은 세계와 근본적으로 다른 관계를 맺을 것이다. 공간, 건축물, 그리고 사회적 가정은 한 사람의 삶을 제한하는 방식이 된다. (p.132-김초엽)
나는 모든 사람이 '유능한' 세계보다 취약한 사람들이 편안하게 제 자신으로 존재하는 미래가 더 해방적이라고 믿는다. 어떤 손상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미래보다는 고통받는 몸, 손상된 몸, 무언가를 할 수 없는 몸들을 세계의 구성원으로 환대하는 미래가 더 열려 있다고 믿는다. (p.282-김초엽)
나는 연립이라는 삶의 조건을, 지금 여기를 사는 사람들의 협력과 연대, 연결을 넘어 언제 등장할지 모르는 '타자'와도 잇닿는 삶이라고 말하고 싶다. (p.305-김원영)
우리 사회의 최근 이슈 중 하나이기도 했던 전국장애인연합의 시위가 생각난다. 출근 시간대에 시민들을 볼모로 이동권을 주장하는 비문명적인 시위를 한다고 비난하는 혐오에 맞서야 하는 장애인들. 그분들이 그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조금만 더 생각해 볼 수 있다면 두 작가가 이야기하는 연립과 환대의 미래가 열릴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기적절하게 참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누구든 언제든 사이보그가 될 수 있는 이들이 아니던가? 가려운 부분을 긁어줄 수 있으니 이 책을 장애인들에게, 알지 못했던 부분을 깨우쳐줄 수 있으니 비장애인들에게, 결국 연립과 환대의 미래를 살아가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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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아주 우연히 발견했다. 김초엽 작가의 글에 푹 빠져 검색창에 '김초엽'이란 이름을 치고 나오는 책을 전부 장바구니에 담던 도중, SF 소설이 아닌 이 글이 눈에 띄었다. 나는 김초엽 작가가 써 내려가는 픽션 소설들뿐 아니라, 그의 자전적 이야기든 그의 관심사를 풀어낸 비문학이든 무척이나 관심을 가지던 시기였기에, 망설임 없이 <사이보그가 되다>를 함께 구매했다. 이후 한동안 비문학의 거리감 덕분에 내 손을 벗어나 있다가, 어느 날 한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읽고선 이 책의 존재가 떠올랐다.
그땐 자격증 시험 때문에 매일 아침 지하철을 타고 학원에 출석을 하던 시기였는데, 어느 날 아침 어제와 다를 것 없이 눈을 떠 준비를 마치고 폰을 들어 보니, 장애인 단체의 시위가 있어 지하철이 지연되고 있다는 글을 보았다. 순간적으로, 내가 이용하는 호선에서 시위를 할까? 학원에 늦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빠르게 뉴스 기사를 훑어봤는데, 시위 장소가 나와는 관련이 없는 곳임을 알아내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곧바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들은 당연한 기본권을 위해 투쟁을 하는 것인데, 공감을 하지는 못할망정 피해를 보진 않을까 전전긍긍하던 모습에 스스로에게 실망을 했다. 나 역시 나의 기본적인 권리를 위해, 내가 추구하는 이상향을 위해 누군가의 공감과 동참, 하다못해 이해를 간절히 원했던 적이 있었음에도, 내가 속한 세계의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여전히 냉정할 수 있다는 것이 속상했다. 그래서 책장 속에 숨어있던 이 책을 기억해 내고 빼어 들었다. 더 배우기 위해, 나만의 세상에 갇히지 않고 더 큰 세상을 배우기 위해.
<사이보그가 되다>는 김초엽 작가와 김원영 작가가 함께 엮어낸 이야기로, 사회가 규정한 장애 당사자로서의 자전적 이야기를 포함하여, 장애와 과학 기술이 복잡히 얽힌 면모를 섬세히 파헤치고, 우리 사회가 앞으로 장애와 기술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다양한 영웅적 혹은 초인간적 서사에서 '사이보그'가 보여주는 매끄러운 모습은 현실을 살아가는 실제의 사이보그들의 마찰과 상처, 그리고 열감을 지워낸 모습이라는 점. 그리고 장애는 집단과 사회가 규정한 어떠한 상태일 뿐, 모자람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하지만 그러한 전제 속에서 발전한 기술의 수혜를 받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단순한 조치는 경계해야 한다는 점 등. 장애를 둘러싼 복잡한 사회의 결에서 탄생하는,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논의와 질문을 배울 수 있다.
또는, 장애와 기술이 서로 분리할 수도, 화합할 수도 없는 다층적인 관계 속에 놓여있음에도,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방향을 명료히 드러내기도 한다. 기술의 수혜자로서 수동적으로만 비추어지던 사람들이, 기술 속에 뛰어들어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입히고 덧대면 기술은 누군가를 배제하지 않을 수 있다. 지워진 자아를 드러내되, 그것이 단순히 페티시적인 소비로 이뤄지지 않도록 비판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멈추지 말자. 소수자를 위해 설계되었으나 그 용도가 확대되어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게 된 기술 중, 어떤 것들은 그 근원을 잊어버리고 소수자에게 날카로운 가시를 세우기도 하므로, 우리는 가치 명시적 디자인을 잊으면 안 된다.
특히, 삼매경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이음새'에 대한 내용이 마음에 들었다.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소외되는 존재를 쉽게 잊고 사회의 모든 것이 매끄럽게 굴러간다는 착각을 한순간이나마 깨트릴 수 있는 것은 아주 작은 불편함이다. 도의적으로 더 나은 사회를 향해, 혹은 기술적으로 진보된 사회를 향해 나아가는 도중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이것은 이래서 잘못되었고 저것은 저래서 누군가에게 불편할 것이라는 지적은 아주 중요하다. 혹은 얼기설기 엮어 잘못 건드리면 무너져버릴 매끄러움의 허상을 짚어줄 수 있는 존재는 소중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이보그됨'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이며, 우리 사회가 장애에 대해 규정하고 다루는 방식에 대하여 계속해서 고찰해 봐야 하는 이유이다.
올해 들어 나는 SF를 무척이나 좋아하게 되었는데, <사이보그가 되다>에서도 관련 내용이 나온다. SF는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이야기이고, 다른 존재들을 세계의 중심에 두는 이야기이며, 세계를 재설계하는 상상을 펼치기에 가장 적합한 사고 실험의 장이기도 하다, 즉, SF는 접근성을 탐색하는 이야기이다. 내가 SF를 재미있게 읽기 시작한 시점도, 기존 소설에서 주인공의 자리를 꿰찰 수 없던, 조명 밖으로 밀려난 인물의 서사가 SF에서는 중요히 다뤄진다는 것을 깨닫게 된 후였다. 현실의 암담함이 SF 세계에서는 전복되고 역전되어, 독자들에게 기분 좋은 도약을 선사한다.
이 책을 읽으며, SF 이야기에서 등장한 다양한 장애의 모습이 떠올랐다. 김초엽 작가의 <므레모사>에서 등장하는 의족을 단 무용수나, 김보영 작가의 <얼마나 닮았는가>에서 등장하는 휠체어를 탄 기술자나, 천선란 작가의 <천 개의 파랑>에서의 소아마비를 겪은 은혜. 내가 기억하기론 그들은 정말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모든 이야기에 녹아들어 있었다. SF란 장르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내게도 그렇게, 배제되는 이 없이 모두가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열망이 샘솟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