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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고통은 내게도 고통스럽다.
"당신의 고통은 내게도 고통스럽다." 내용보기
그를 잘 알지 못하지만, 작가 한강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해 주는 최선의 말은 아마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는 불판 위에서 구워지는 고기를 보는 일도 힘겨울 때가 있어요.” 소설 『소년이 온다』를 발표한 후 어느 인터뷰에서 그녀가 한 말이다. 저 말이 단지 그녀가 채식주의자라는 사실만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극도로 민감한 감수성과 폭력에 대한 극한의 예민
"당신의 고통은 내게도 고통스럽다." 내용보기

그를 잘 알지 못하지만, 작가 한강이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해 주는 최선의 말은 아마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는 불판 위에서 구워지는 고기를 보는 일도 힘겨울 때가 있어요.” 소설 『소년이 온다』를 발표한 후 어느 인터뷰에서 그녀가 한 말이다. 저 말이 단지 그녀가 채식주의자라는 사실만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다. 그 안에는 극도로 민감한 감수성과 폭력에 대한 극한의 예민함이 작동하고 있어서, 나는 사람이 과연 저렇게까지 예민하고 섬세해질 수도 있구나를 생각하며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자면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고기가 구워지는 모습에서조차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그런 소설을 쓸 수 있었겠나. 『작별하지 않는다』도 마찬가지다. 제주도에서 벌어진 그 비극을 직접 겪은 게 아니라 해도, 그는 마치 제 일처럼 힘겨워하고 있다.

우리의 주인공 ‘경하’는 친구 ‘인선’의 새를 구하러 제주도로 떠난다. 인선의 제주도 집에 홀로 남겨진 새 ‘아마’는 누군가 물을 주지 않으면 곧 죽을 것이다. 경하는 극심한 눈 폭풍을 뚫고 아마에게 가는 와중에 여러 번 죽을 위기에 처한다. 정말 그 새가 목숨을 걸면서까지 지켜야 할 존재인지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이해할 수 없다. 아마는 나의 새가 아니다. 이런 고통을 느낄 만큼 사랑한 적도 없다.”(152면) 그러나 우리는 경하에게 왜 아마를 구하러 가느냐고 묻지 않아도 이미 안다. 경하를 대신해 한강이 직접 대답한 바 있기 때문이다. “저는 불판 위에서 구워지는 고기를 보는 일도 힘겨울 때가 있어요.” 그렇다면 며칠째 물을 마시지 못해 조금씩 죽어가는 새를 상상하는 일이란, 그에게 또한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까.

세상의 고통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을 것이다. 나의 고통과 너의 고통. 이러한 이분법은 손쉽고 명확하다. 어떤 고통 앞에서 그것이 내 것이냐 타인의 것이냐를 따질 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냉철한 판사가 된다. 만일 내 것이라면 그 고통은 과장되기 쉽겠고, 남의 것이라면 축소되거나 많은 경우 무시될 것이다. 요컨대 나의 고통은 타인의 고통을 간단히 압도한다. “바람이 몰아쳐 들어온다. 두통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내 마음은 차츰 마비되어, (…) 불안도, 구해야 할 새에 대한 생각도, 인선에 대한 마음까지도 통증이 예리하게 그어놓은 금 바깥으로 빠져나간다.”(122면) 새의 고통과 인선의 고통은 내가 직접 겪고 있는 맹렬한 추위와 두통 앞에 무력하다. 경하가 병원 로비에서 손/발가락이 절단된 사진을 바라보는 장면도 그렇다. 그 끔찍한 광경에서 “눈을 피하고 싶”(32면)었다거나 “정확히 보지 않는 편이 좋”(256면)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도 그가 타인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을 넘어설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것만 해도, 고통은 언제나 충분하다. 타인의 고통까지 받아들일 공간이 우리 안에 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한강의 소설은, 바로 이 질문에 대답하거나 혹은 반문하기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스스로의 고통만큼이나 타인의 고통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아는 인물들이 여기 있다. 눈 폭풍 속으로 새를 구하러 가는 경하만 그런 것이 아니고 학살 증언 자료집과 관련 기록물을 수년간 모았던 인선의 어머니도, 그 기록물 속에 파묻혀 하루를 보내던 인선도, 그리고 학살당한 이들을 생각하며 가끔 멍하게 환상에 빠져 지냈던 그녀의 아버지도, 다들 절망적이고 뭔가에 실패한 삶을 살아간 것처럼 보이지만 적어도 그들은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만드는 데에는 성공한 이들이다. 마치 그들이 입을 모아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의 고통은 내게도 고통스러워요. 그러니까 ‘제주 4 3’과 ‘보도 연맹 학살’ 사건은 그들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의 고통이 되어야 한다고, 저 인물들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란 대륙의 한 조각이며 또한 대륙의 한 부분이라/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간다면/유럽 땅은 또 그만큼 작아질 것이며” 영국 성공회 신부 존 던이 썼다고 알려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한 대목이다. 사람이 죽으면 종을 울리던 관습에서 저 제목이 탄생했다. 이 시에서 존 던은 누가 죽었기에 종을 울리는가 궁금해하지 말라고 전한다. “어느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감소시키나니”라는 대목이 설명하듯, 누군가의 죽음은 곧 내 일부의 죽음이므로, 종은 바로 우리를 위해 울린다는 것. 이 유명한 시와 한강의 소설은 썩 닮아 있다. 나의 고통과 너의 고통이라는 순진한 분류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결국 살리지 못한 새를 보며 “새는 새였고, 나는 인간이었을 뿐일까?”(196면)라고 비정하게 묻는 일은 너와 나의 고통이 철저히 각자의 것에 불과하냐는 물음과 같다. 과연 그런가. 70년 전 그 섬에서, 이름도 얼굴도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겪었던 고통은 나의 것이 아닌가. 정말 그렇게 말해도 괜찮은 걸까.

작중 경하와 인선이 하려는 작업(아흔아홉 그루의 나무를 들에 심어 먹을 입히고 그 위에 눈이 쌓이는 모습을 영상으로 담는 일)이 대답을 대신한다. 그들은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아니다. 상업적 목적이 있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이 아니다. 그들은 고통받으려고 그 작업을 한다. 둘은 나무를 한 그루씩 심어 나갈 때마다, 거기에 먹을 칠해 나갈 때마다, 그리고 그 위에 눈이 한 송이씩 쌓일 때마다 고통받을 것이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억울하게 고문당했고 아무 이유 없이 총살당했는데, 도저히 그것과 무관한 삶을 살 수는 없다는 듯이, 마치 고통받는 것이 그들의 마땅한 의무인 듯이. 작품 2부에는 인물들의 입을 빌려 어떤 산속 바위에 대한 전설이 언급된다. 착한 일을 해서 혼자만 살아남게 된 여자가 있고 나머지 마을 사람들은 해일에 휩쓸려 죽는데, 이때 그녀에게는 산중턱에서 뒤를 돌아보지 않아야만 살 수 있다는 조건이 붙는다. 하지만 여자는 어김없이 뒤를 돌아봤고, 결국 그 자세 그대로 돌이 되어 버렸다는, 그런 전설.

이 전설은 타인의 고통 앞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두 가지 선택지를 제시한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되어 살아가거나 뒤돌아본 채로 돌이 되거나. 그러고 보면 폭설이 내리는 밤의 숲속에서 눈 속에 둘이 함께 눕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이 소설의 결말은 뒤돌아본 대가로 돌이 되고 만 저 전설 속의 여자와 흡사하지 않은가. 경하와 인선은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작중 경하가 말한다. “돌이 됐다고 했지, 죽었다는 건 아니잖아요?”(241면) 헷갈리지 말아야 한다. 그런 상황이 오면 언제나 뒤를 돌아보겠다는 것이지, 돌이 되어 죽고 싶다는 게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모른 척하고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것이지 자신의 삶이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그 아픔들을 영원히 안고 살아가겠다는 것이지 그 아픔 때문에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는 게 아닌 것이다.

신형철 평론가가 시인들의 책무란, “가장 먼저 울지는 못하더라도 가장 마지막까지 우는 일” (「천안함, J 선생님께」)이라 쓴 문장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가장 마지막까지 우는 자란 비극을 잊지 않거나 잊지 못하는 자다. 나의 고통 앞에 너의 고통이 잊혀지는 게 아니라, 너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만들어서 절대로 잊을 수 없게 하는 것. 그렇다면 뛰어난 작가란 오래 슬퍼하고 영원히 아파하는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들이 약해서 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오랫동안 울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들이 무력하게 고통받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차라리 사력을 다해 고통받는다고 말해야 한다. 이 소설 속 인물들이 그렇고, 작가 한강이 그렇다. 그들은 얼마든지 더 울고 더 고통스러워할 준비가 되어 있다. 뒤돌아보다 돌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래야만 그 아픔들과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겠다는 것은 망각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망각하지 않겠다는 것은 끊임없이 고통받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 영원히 고통받으며 서 있겠다는 것은 처연한 체념이 아니라 결연한 의지다. 절단된 손가락의 봉합 수술을 받은 인선은 삼 분에 한 번씩 봉합된 자리에 바늘을 찔러 넣어야 한다. “중요한 건 피가 멈추지 않게 하는 거야. (…) 계속 피가 흐르고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40면) 삼 분마다 고통을 느끼며 살아가는 인선의 처지가 왜 안쓰럽기보다는 감동적일까. 아마도 작가 한강의 모습이기도 할 그의 모습에서, 나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고통의 의무를 짊어진 자의 결연함을 본다. 무려 칠십 년이나 지난 일인가. 아니, 칠십 년 밖에 지나지 않은 일이다. 계속해서 통증을 느끼지 않으면 신경이 죽어 버린다는 저 말처럼, 우리가 제주도의 비극을 기억하며 계속 고통받지 않는다면 역사의 한 부분이 죽을 것이다.

k********n 2022.10.01. 신고 공감 241 댓글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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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어리가 채 풀리기도 전에 떠나보내는 것은 비겁하다
"응어리가 채 풀리기도 전에 떠나보내는 것은 비겁하다" 내용보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중간중간 역겨운 장면도 있었으나, 기득권의 향취에 무뎌진 목소리를 화자로 둔 것은 날것의 역함을 직접 느끼고 그것이 얼마나 현실과 맞닿아 있는지를 확인하라는 작가의 의도로 여겨 견딜 만했다. 그러나 그의 문체와 글의 짜임은 어딘가 무겁고 우울한 느낌을 내뿜었고, 책을 읽는 동안 삭아버린 분노로 인한 깊이 없는 무력함에 빠져들어 힘
"응어리가 채 풀리기도 전에 떠나보내는 것은 비겁하다" 내용보기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었다. 중간중간 역겨운 장면도 있었으나, 기득권의 향취에 무뎌진 목소리를 화자로 둔 것은 날것의 역함을 직접 느끼고 그것이 얼마나 현실과 맞닿아 있는지를 확인하라는 작가의 의도로 여겨 견딜 만했다. 그러나 그의 문체와 글의 짜임은 어딘가 무겁고 우울한 느낌을 내뿜었고, 책을 읽는 동안 삭아버린 분노로 인한 깊이 없는 무력함에 빠져들어 힘들었다. 그럼에도 그의 다른 책인 <작별하지 않는다>를 집어 든 것은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깨어지기 쉬운 것들이 나의 호기심을 미약하게나마 잡아당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나는 작가가 쓰는 이야기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었다. 약자의 편에 서서 권력자들이 지워간 역사를 다시 써 내려가는 일보다 글을 쓰는 사람이 온 힘을 다해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기나 할까. 그렇게 잊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한 명의 자취가 여러 명의 사람들을 감화시키고 감화된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힌 역사가 다시 조각조각 맞추어진다면, 그것보다 의미 있는 일이 어디 있을까. 약자들은 언제나 목소리가 잊히는 것을 두려워하니, 제목에서부터 외치고 들어가는 망각의 거부는 얼마나 큰 힘이 될까.

 

  부끄럽지만,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아는 것이 단어 한 톨만큼도 없었기에, 처음에는 이 책을 완독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강 작가가 이끌어내는 서사의 힘이 너무나 강해서 평소 책을 보다가 휴대폰을 들어 사건의 전말이나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는 일이 드문 나조차도 관성을 거스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읽은 간단한 사건의 기록은 제주 4·3 평화 재단인데, 당시 혼란스러웠던 시대상을 잘 압축해놓았으므로 사건의 면모를 간단히 확인하고 싶다면 추천한다. 어쨌든, 이렇게 일방적으로 잔인한 학살이 같은 피와 살의 총과 칼에서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비참했다. 끝없는 죽음을 반복하는 기억이 살아남은 사람들을 옥죄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비참했다.

 

  그래도 분노란 것이 마냥 삶을 갉아먹는 것은 아니다. 분노가 식어 넘쳐흐르던 용암이 검은색 딱지로 덮인 대지가 되면, 그 땅을 딛고 우뚝 서 훨씬 단단해진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 속에는 여전히 붉고 노란빛을 머금은 용암이 주룩주룩 열을 토해내겠지만, 차갑게 식은 땅은 생명이 살아갈 터지가 되리라.

 

  한강 작가는 고통을 견디는 사람들의 고통을 과하리만치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재주가 있다. 그리고 그런 고통은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보통은 경험하지 못하는 부류의 것들이기에, 적나라하게 파헤쳐 진 아픔과 핏물은 이야기를 읽는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놓고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게 한다. 내게는 그러한 첫 고비가 1부의 인선의 봉합 수술 부분이었다. 동시에 감탄하게 되고 마는 첫 부분도 동일했다. "봉합 부위에 딱지가 앉으면 안 된대. 계속 피가 흐르고 내가 통증을 느껴야 한대. 안 그러면 잘린 신경 위쪽이 죽어버린다고 했어(40p)." 이야기의 심부를 꿰뚫는 문장이어서, 주제를 감싸는 핵심을 표현하는 방식이 우아해서, 그리고 앞으로 책을 읽으며 다가올 고통의 힘겨움을 미리 맛볼 수 있어서.

 

  결국,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제주 4·3 사건과 작별할 수 없게 된다. 작별이란 얼마나 편리한 회피인가. 맞서 싸울 용기가 없어서 상대를 위한답시고 돌아서서 잊는다면 정말 편안할까. 살아가는 이유마저 잊어버리고 죽은 자와 다를 바 없게 되진 않을까. 그래서 산송장이 되기 전에, 기억하리라 외침으로써 악몽의 숲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 혼자가 아님을 알린다. 작별하지 않는다고 선언함으로써 우리는 감히 공감할 수 없는 고통이 조금이나마 식을 수 있도록 돕는다. 떠나보내는 것을 포기하고 두 눈을 부릅뜨는 순간, 우리가 느끼는 것은 차갑지만 온기를 머금은, 사람을 얼려 죽이는 눈과는 다른 종류의 눈송이 결정들이 이루어낸 함박눈일 것이다. 그 눈은 땅 아래 묻힌 억울한 혼들을 어루만지고, 검게 칠해진, 사람 키를 훌쩍 넘은 나무들을 뒤덮고 이 땅에 새로운 시작을 가져다줄 수 있지 않을까.

k*********2 2022.07.06. 신고 공감 88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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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재조명; 제주 4.3사건
"역사의 재조명; 제주 4.3사건 " 내용보기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깊은 슬픔과 아픔을 담은 작품으로,  역사적 배경을 통해 상처와 치유,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작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한 개인의 고통이 아닌,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그려내며,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치유의 길을 찾아가는지를 조명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작별이라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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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는 깊은 슬픔과 아픔을 담은 작품으로,

 역사적 배경을 통해 상처와 치유,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작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작가는 한 개인의 고통이 아닌, 우리 사회가 공유하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그려내며,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고 치유의 길을 찾아가는지를 조명한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작별이라는 행위가 단순히 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떠나간 이들과 그 흔적이 우리 삶에 끊임없이 머물러 있는 여정을 뜻함을 알게 될 것이다.

소설을 쓰는 주인공 경하의 꿈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무덤에 물이 차오르고, 무덤들이 쓸려가기 전에 뼈들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지 못하면서 꿈에서 깬다. 이런 꿈을  꾸는건 자신이 쓰고 있는 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하.

경하는 사진작가 인선에게 자신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며 영상 작업을 할 계획을 세우지만 돌연 영상 작업을 멈추겠다고 한다. 하지만 인선은 그 의견을 듣지 않고 계속 작업을 해나가게 된다.

어느날 병원에 있는 인선에게 연락이 온다. 인선은 통나무 작업을 하던 중 손가락이 잘려 봉합수술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제주도 집에 홀로 남겨진 새, 아마가 물과 먹이 없이 보낸 며칠 때문에 죽을까 걱정을 하게 된다. 인선은 경하에게 지금 당장 제주도 집으로 가 새 먹이주기를 부탁한다.

 경하는 거절하지 못하고 제주로 향한다. 제주는 폭설로 인해 앞을 내다볼 수도, 한발짝 내딛기도 힘든 상황. 그런데다가 인선의 집은 정류장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다. 

정말 그 새가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까지 지켜야 할 존재인지 스스로도 의문을 갖게된다.

무엇이 그녀를 폭설과 강풍이 몰아지는 위험한 순간에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는지... 왜 거절하지 못했는지... 인선은 왜 자신에게 그런 무리한 부탁을 했는지...

이런 눈에 인선은 익숙할까, 나는 문득 생각한다. 이런 눈보라가 그녀에게는 놀랍거나 특별한 일이 아닐까. 어디까지 구름이고 안개이고 눈인지 구별할 수 없는 저 일렁이는 회백색 덩어리가. 자신이 태어나 자란 돌집이 저 거대한 덩어리 속에 분명한 좌표로 존재하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새 한 마리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p.71

이해할 수 없다. 아마는 나의 새가 아니다. 이런 고통을 느낄 만큼 사랑한 적도 없다.

p.152

새는 단순히 인선의 애완동물이 아니라, 그녀의 외로움과 상처를 대변하는 존재로, 그녀의 내면 깊은 곳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는 생각을 했다. 

제주도에 도착할 무렵 입원 중인 인선에게 전화를 걸지만 다급한 조무사의 대답만 남은채, 인선의 행방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주지 않고 끊긴다. 인선이 끝내 완전한 회복에 이를 수 있을지에 대해 계속 의문이 남았다.

 이를 통해 작가는 상처와 회복이 결코 단순히 끝이 나는 과정이 아님을 암시하는 것 같다. 치유의 여정과 불확실성에 대해 깊이 생각할 여지를 준게 아닐까 싶다.

자신의 잔을 들고 작업대에 기대서며 인선이 활짝 웃었다. 그 미소가 가시지 않은 입술이 찻잔에 닿는 걸 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렇게 뜨거운 것을 혼이 마실 수 있나.

p.193,194

제주도 인선의 집에서 알게되는 인선의 가족사, 그리고 제주 4.3 사건의 전말.

나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건이었다. 

대규모 학살과 찾지 못한 가족에 대한 그리움.

그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찾아낸 그날의 기록들.

그 기록들을 모으며 더 아파했을 날들...

물론 추측할 수 있어, 그 사람이 외삼촌이었다면 어떻게든 이후에 섬으로 돌아왔을 거라고...... 하지만 확신할 수 있을까? 그런 지옥에서 살아난 뒤에도 우리가 상상하는 선택을 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p.291

개인의 상처와 고통뿐만 아니라, 집단이 함께 겪은 역사의 상흔을 다루며 진정한 치유와 화해의 의미를 묻는다.

 이 책은 개인과 사회가 공유하는 트라우마가 어떻게 서로의 삶에 깊숙이 남아 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우리가 진정으로 작별을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만든다.

소설에서 인선의 가족사가 얽힌 제주 4.3 사건은 우리 사회의 집단적 아픔과도 맞닿아 있다. 인선이 떠안고 있는 상처는 그녀 개인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4.3 사건은 국가의 탄압 속에서 수많은 제주도민들이 무참히 희생된 비극을 담고 있으며, 여전히 그 상처와 후유증은 한국 사회에 남아 있을 것이다. 인선과 경하가 함께 알아가는 이 사건은 단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잃어버린 이들에 대한 기억과 그리움, 잊혀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내 인생이 원래 무엇이었는지 더이상 알 수 없게 되었어. 오랫동안 애써야 가까스로 기억할 수 있었어. 그때마다 물었어. 어디로 떠내려가고 있는지. 이제 내가 누군지.

p.317

작별은 단순히 과거와 단절하는 일이 아니라, 그와 함께 걸어가는 일임을 이 책은 시사한다. 인선의 삶 속에 남아 있는 고통과 아픔은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고, 경하의 삶 속에도 그러한 흔적이 남아 깊은 영향을 미친다. 이는 기억을 계속해서 짊어지고 가는 여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렇듯, 작별하지 않는다는 상처와 기억, 치유의 의미를 담아내며 우리의 삶 속에서 작별이란 단순히 어떤 관계의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함께 걸어가야 하는 무언가임을 가슴 깊이 새기게 한다.

숨을 들이마시고 나는 성냥을 그렇다. 불붙지 않았다. 한번 더 내리치자 성냥개비가 꺾였다. 부러진 데를 더듬어 쥐고 다시 긋자 불꽃이 솟았다. 심장처럼. 고동치는 꽃봉오리처럼.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가 날개를 퍼덕인 것처럼.

p.325


우리는 때때로 완전한 작별이 불가능한 상처와 기억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숙명에 놓여있다. 이를 어떻게 담담히 받아들이고 그 상처를 어떻게 보듬어 갈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먹먹함을 남기는 그런 책!

YES마니아 : 골드 1*******l 2025.01.24. 신고 공감 41 댓글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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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상처를 서사적 미학으로 승화한 작품
"역사적 상처를 서사적 미학으로 승화한 작품" 내용보기
솔직히 소설의 중반부 까지는 이야기의 전개가 느리고, 서술의 흐름이 왔다 갔다 해서 다소 지루하고 읽기 어려웠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제주 희생자들의 아픔이 마치 내 가족의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와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었다. 만약 처음 기대했던 대로 4·3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단순히 줄거리를 따라 전개되었다면, 흥미롭기는 했겠지만 어딘가 뻔한 역사소설로 느껴졌을 것
"역사적 상처를 서사적 미학으로 승화한 작품" 내용보기
솔직히 소설의 중반부 까지는 이야기의 전개가 느리고, 서술의 흐름이 왔다 갔다 해서 다소 지루하고 읽기 어려웠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제주 희생자들의 아픔이 마치 내 가족의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와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되었다. 만약 처음 기대했던 대로 4·3 희생자들의 이야기가 단순히 줄거리를 따라 전개되었다면, 흥미롭기는 했겠지만 어딘가 뻔한 역사소설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한강 작가의 독특한 서술 방식과 문체 덕분에, 이 작품은 단순한 역사 서사를 넘어 진정한 문학적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중첩된 세계 속에서의 존재들 이 책은 독특한 서사 구조와 감각적 묘사를 통해 시간과 공간, 삶과 죽음이 중첩된 복잡한 상태로 전체 소설이 구성되어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살아 있으면서 죽어 있고, 서로 다른 장소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듯한 모호한 경계에 머물러 있다. 양자역학의 슈뢰딩거의 고양이 처럼, 관찰되기 전까지는 여러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가 관찰하는 순간 고양이의 생존 혹은 죽음 중 하나로 결정되는 것과 같다.
  • 인선은 손가락 절단 수술을 위해 서울의 한 병원에 있지만, 동시에 경하와 함께 제주의 집에서 가족의 비극적인 역사를 나누고 있다. 어쩌면 인선은 계속 제주에서 목공 일을 하고 있고, 경하가 서울에서 받은 문자로 제주까지 내려간 일이 환상이었을 수도 있다. "인선이 혼으로 찾아왔다면 나는 살아 있고, 인선이 살아 있다면 내가 혼으로 찾아온 것일 텐데. 이 뜨거움이 동시에 우리 몸속에 번질 수 있나"
  • 인선의 새 아마는 분명 경하가 제주 집에 도착한 후 나무 아래 묻어주었는데, 다음날 죽은 아마가 경하에게 다시 나타나 손바닥 위에 앉는다.  
  • 인선의 아버지는 제주에서 잡혀 대구형무소에 있다가 부산형무소로 이감되고 수많은 고문을 당한다. 아버지는 제주를 떠나있던 세월 동안 가족들과 살던 건천 건너편을 지켜봤다고 한다. "이제는 그게 이상한 이야기라고 생각되지 않아. 아버지가 십오 년 동안 형무소에도 있고 저 건너에도 있었던 것이"(인선)
소설 마지막 부분에 경하는 이렇게 말한다. "정말 누가 여기 함께 있나.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하는, 관측하려 하는 찰나에 한곳에 고정되는 빛처럼."   경하의 생각이 거기에 미치면 인선이도, 인선이 가족도, 제주의 희생자들도, 보도 연맹의 희생자들도... 바로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다.  "하도 생각해서 어떤 날엔 꼭 같이 있는 것 같았어" 라는 인선의 말처럼, 그들은 경하의 마음 속 깊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고통의 기억을 내피로 한 꿈과 환상   이 소설은 경하의 꿈 이야기로 시작된다. 수천 그루의 묘비 같은 검은 통나무들이 밀물에 갑자기 잠겨 버리자 위쪽에 남은 무덤들이라도 어떻게 옮겨야 할 것 같은데 혼자 어찌할 줄 몰라하는 무서운 꿈. 마지막 장면 역시 눈부신 환상 속 에 있는 듯 하다. 경하와 인선은 눈 속에 누워 눈벽을 사이에 두고 마지막 대화를 나눈다. 촛불이 점차 사그러들며 인선도 사라지고, 경하는 "네 손이 잡히지 않는다면, 넌 지금 너의 병상에서 눈을 뜬 거야. 다시 환부에 바늘이 꽂히는 곳에서. 피와 전류가 함께 흐르는 곳에서." 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 장면이 마침내 꿈의 실체와 의미를 이해한 경하가 현실로 돌아갈 준비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새와 눈, 생사의 경계 이 책에서는 '새'에 대한 묘사가 자주 등장한다. "새들은 현재까지 생존해 있는 공룡"이라는 표현에서, 이미 멸종된 존재인 공룡의 후손인 새는 죽었으나 살아있는 존재, 즉 죽음과 생명의 경계에 있는 존재로 소설 전반에 흐르는 ‘중첩’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새는 억울한 희생자를 상징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분명히 죽은 아마를 흰 무명실과 천으로 덮고, 상자에 꽁꽁 싸매어 묻었었는데 다음날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눈 앞에 나타난다.  "죽은 다음에도 배고픈 게 있어?" "죽은 다음에도 추운 게 있나" 라는 대사에서는 죽은 이들에 대한 애잔한 연민이 보였고, "새의 뼈들에는 타원형의 구멍들이 파리처럼 뚫려 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가벼웠던 거야"라는 구절에서  '뼈들의 구멍'은 아마도 총알이 뼈에 박혀 주검이 된 억울한 희생자들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한없이 무력하고 나약했기에 '가볍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되었다. 인선의 어머니와 손을 맞잡았을 때는 "내 두 손에 쥐여진 그의 손이 죽은 새처럼 작고 싸늘하다",  제주의 아픈 역사를 떠올릴 때는 "퍼덕이는 새가 목구멍을 비집고 올라오는 통증"으로 표현한다. "새가 있어. 손 끝을 건드리는 감각이 있다. 가느다란 맥박처럼 두드리는 게 있다. 끊어질 듯 말 듯 손가락 끝으로 흘러드는 전류가 있다" 작가의 감수성으로는 잊혀지지가 않는 것이다. 그 여린 생명들이 느껴지는 것이다. 새는 죽음과 고통, 억울한 희생자들의 상징으로 소설 곳곳에 등장한다. 특히 인선의 회고가 시작되는 순간 새가 살아 돌아온 것은, 잊혀져서도 안 되고 잊혀지지도 않는 이들이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고"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눈'도 소설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작용하고 있다. 인선이 엄마를 떠올릴 때 눈이 흩날렸고, 인선이 서울로 가출해서 다쳤을 때, 제주의 엄마는 다섯 살 모습의 인선의 뺨에 눈송이가 내렸는데 눈이 녹지 않더라는 꿈을 꾼다.  엄마가 어렸을 때 이모와 둘만 운좋게 살아 남아, 학살 현장에서 외조부모와 남은 형제들의 시신을 찾아다녔을 때, "사람이 죽으면 몸이 차가워지고, 맨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인선에게 안 좋은 일이 닥쳤음을 예감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 눈은 "하늘에서 어떻게 이런 게 떨어지지"라고 생각될 정도로 아름다운 것인데, 한편 '폭설'과 '눈보라'는 '험난한 여정' '장애' '고난'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눈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결정도 사실은 지상에서 올라온 먼지와 재의 입자로 가득한 것"이라는 구절처럼, 눈은 깨끗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상처와 고통이 내재되어 있다. "바람과 해류도 순환하지 않나.오래 전 먼 곳에서 내렸던 눈송이들도 저 구름 속에서 다시 응결할 수 있지 않나. 다섯 살의 내가 K시에서 첫눈을 향해 손을 내밀고 서른 살의 내가 서울의 천변을 자전거로 달리며 소낙비에 젖었을 때, 칠십 년 전 이 섬의 학교 운동장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과 여자들과 노인들의 얼굴이 눈에 덮여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 그 물방울들과 부스러지는 결정들과 피 어린 살얼음들이 같은 것이 아니었다는 법이, 금 내 몸에 떨어지는 눈이 그것들이 아니란 법이 없다"라고 경하가 말하듯, 또한 처럼 생과 사의 경계, 죽음과 삶의 혼재, 고통의 순환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다. "작별하지 않는다. "-기억과 연대의 서사 인선이 경하의 꿈을 영상으로 구현하기로 한 둘의 프로젝트 제목을 물었을 때, 경하는 "작별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다. 인선은 작별이 완성되지 않는 것인지, 기한 없이 미루는 것인지 궁금해 한다. 제주 4.3 사건으로 약 3만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고, 보도연맹에 가입했다가 6.25 전쟁 기점으로 학살되어 암매장 당한 사람들이 전국에 2-30만명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사건의 진상 규명이나 피해자들과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이 아직까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작가는 우리가 그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진실된 진상규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작별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하다. 이것이 완료되어야 진정으로 과거와 화해하고 그들을 보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때까지는 절대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을 완성할 수 없다로 들린다. 마무리 - 고통과 마주함으로써 치유되는 역사 인선은 손가락이 절단되어 통증을 느낄 때 갑자기 경하의 책(아마도 실제로는 광주 5.18을 담은 <소년이 온다>를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을 떠올린다 : "손가락 두 개가 잘린 게 이만큼 아픈데 그렇게 죽어간 사람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인선이 입원해 있던 병원 로비에서 마주친 손과 발이 절단된 사진들. 실제보다 무섭게 기억하지 않기 위해 경하는 제대로 보는데, 제대로 볼수록 고통스러운 사진이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고통은 피하기 보다 마주해야 그 고통이 거기에서 끝난다. 인선의 의사는 "3분에 한 번씩 손가락이 봉합된 자리를 찔리는 통증이 당장에는 더 강할 수 있으나, 손가락을 포기할 경우 통증은 평생 계속될 거라고" 말했다. 경하는 제주 4.3의 고통의 심연으로 들어가기 위해 눈보라를 견디고, 생존자와 유족들의 증언과 역사적 기록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때로는 인간이 저지른 폭력과 악이 너무나 끔찍하여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저지른다 해도 더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가 되기도 하지만, 이 고통을 직면하고 견뎌 내야만, 비로소 고통이 극복되고 치유될 수 있을 것이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허물어진 채, 주인공 경하의 내면과 기억, 그리고 꿈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잊고 있던 아픈 역사를 다시 돌아보고, 희생자들과 깊은 유대감을 느끼게 된다. 이는 단순히 과거를 반추하는 것을 넘어, 그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강한 다짐으로 이어진다. 또한, 혼과 죽음, 그리고 산자의 현실이 몽환적으로 혼재된 문체 속에서 느껴지는 문학적 아름다움은 마치 한 편의 예술 영화를 보는 듯한 감동을 준다. 특히 소설 속에서 묘사된 제주의 집, 폭설과 강풍, 숲, 그리고 꿈 속 이야기들은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를 남긴다. 이를 나중에 영화로 본다면, 내가 상상한 형상과 어떻게 비교될지 기대하게 만드는, 마법 같은 작품이었다. "채식주의자"는 오래 전에 읽었을 때 뭔가 기괴했었다라는 느낌이 남아있고 (다시 읽어보려고 한다), "소년이 온다"는 읽는 내내 같이 아팠고, 감동적으로 읽었었는데,  "작별하지 않는다"는 책장을 덮었을 때 뭔가 반짝이고 눈부신 아름다움이 부드럽게 내 앞에 흩뿌려지는 그런 묘한 느낌으로 여운이 길었다. 시적, 문학적 아름다움이라는게 이런 것이란 걸 제대로 보여준 작품 같다. 한강이 한강했다.
e*******2 2024.10.20. 신고 공감 39 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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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나 앞으로 제주를 생각하면 울어버릴것만 같아
"있잖아, 나 앞으로 제주를 생각하면 울어버릴것만 같아" 내용보기
나에게 제주는 가고 싶은 곳이었다. 행복하기 위해 가고 싶은 곳, 쉬러 가고 싶은 곳, 볼거리가 많아 가고 싶은 곳. 그런 제주를 생각할 때마다 입가엔 미소가 떠올랐다. 하루 빨리 가고 싶은 곳이 간 곳이 되기를 바랐다. 제주가 몇 번이나 간 곳이 된 뒤에도, 제주는 한 번도 빠짐없이 도로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내게는.   하지만 앞으론 예전처럼 제주를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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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제주는 가고 싶은 곳이었다. 행복하기 위해 가고 싶은 곳, 쉬러 가고 싶은 곳, 볼거리가 많아 가고 싶은 곳. 그런 제주를 생각할 때마다 입가엔 미소가 떠올랐다. 하루 빨리 가고 싶은 곳이 간 곳이 되기를 바랐다. 제주가 몇 번이나 간 곳이 된 뒤에도, 제주는 한 번도 빠짐없이 도로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내게는.

 

하지만 앞으론 예전처럼 제주를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제주를 떠올리면 슬퍼질 것만 같다. 제주에 행복을 위해, 쉼을 위해, 눈호강을 위해 가는 것이 망설여질 것 같다. 이 책 때문이다. 한강 작가의 최신작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나서 앞으론 그렇게 될 것만 같았다.

 

이 책은 5월에 있었던 학살에 대해서 쓴 작가의 고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여자는 죽을 마음으로 죽은 뒤의 일을 부탁할 누군가에게 유서 같은 편지를 쓰고 있다. 5월에 있었던 학살 - 아마도 광주항쟁일 그 사건 - 에 대해서 적기 위해, 그녀는 그 시절의 고통을 담은 모든 자료를 샅샅이 뒤져야 했다. 그 경험이 악몽이 되어 매일 밤 그녀를 끔찍히 괴롭힌다. 나는 그 여자가 한강 작가 본인처럼 느껴졌다. 그녀가 실제로 5.18 항쟁을 모티브로 삼은 <소년이 운다>를 썼기 때문이다.

 

한강은 <소년이 운다>를 쓰고 나서 그렇게 힘들어했으면서, 어째서 또 제주 4.3 사건을 주제로 글을 쓰려는 걸까. 광주 못지 않게 끔찍했던 제주에 대해서 쓰고 나서, 한강 작가는 또 얼마나 괴로워해야 할까. 그녀는 연이은 괴로움을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소년이 운다>에서는 광주항쟁을 직접 겪었던 사람들이 화자가 되었던 것과 달리, <작별하지 않는다> 에서는 제주 4.3사건을 귀로 듣기만 했던 화자들이 그 일을 직접 겪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대신 전달한다. 그런 구성이 <소년이 운다>에서 1980년의 광주를 몸소 체험했던 이들의 시각에서 이야기를 쓰느라 몹시도 괴로웠을 한강이, 이번 작품에서는 자신을 조금이라도 보호하기 위해서 제주 4.3사건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기로 마음 먹은 게 아닌가 싶었다. 

 

솔직히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래서 책의 초입을 지나면서 제주 4.3 사건이 광주보다는 덜 끔찍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고나서 작가가 악몽에 덜 시달릴 테니까. 하지만 제주에서 있었던 일은 너무나도 끔찍했다. 이 책을 통해서 그 때의 끔찍함을 처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해, 제주에서는 사람이 너무 많이 죽었다. 사람들이 너무나도 참혹하게 죽었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평생 무사하지 못했다. 어떤 이는 죽을 때까지 고문 후유증과 끔찍한 기억에 시달리고, 다른 이는 악몽을 피하기 위해 이불 밑에 실톱을 두고 자지만 평생을 악몽에 시달린다. 그 때 제주에서 참혹하게 죽은 자들은 산 사람들과 영영 작별하지 못하고, 산 사람의 기억 속에서, 꿈 속에서 평생 같이 산다.

 

그 때 살아남은 자들을 통해 죽은 자들에 대한 기억과 악몽은  그 자식들에게까지 전달된다. 아마도 그 자식의 자식에게도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은 전해지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아마 4.3사건으로 죽은 사람들은 산 자와 앞으로로 계속 작별하지 않을 것이다.

 

4.3 사건으로 인해 그 때 제주에서 죽었던 이들은 제주의 어느 땅에 묻혀 있거나, 제주의 바다에 작은 점이 되어 흩어졌다. 죽은 사람들의 몸이 조금씩 발견되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제주공항 활주로에서 무더기 유골이 나왔다고 한다. 여행의 설레임이 시작되는 그곳에 한 무더기의 슬픔과 고통이 묻혀 있었다. 우리의 눈을 즐겁게 만드는 제주의 바다에도, 총살당해 버려진 제주 사람들의 몸뚱이가 샅샅이 흩어져 있다. 제주의 맑고 푸른 하늘에는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혼이 아직까지도 떠올아 다니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는

제주의 하늘을, 제주의 바다를, 제주의 땅을,

다시는 예전처럼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젠 제주를 생각하면 슬퍼지겠지. 

나 또한 그 때 제주에서 죽었던 사람들과 작별할 수 없을지도. 

 

 


 

 

 

YES마니아 : 플래티넘 s*********2 2021.09.16. 신고 공감 3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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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역사적 진실은 드러내야 반복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 역사적 진실은 드러내야 반복되지 않는다" 내용보기
역사적 사건을 소설로 아는 경우가 많다. 글 쓰는 작가들의 책임이 무거운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는 것. 소설 등 다른 형식으로 독자들이 읽게 하는 역할을 하는 이가 작가라고 본다. 작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한강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여 그걸 문학으로 풀어낸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이어 제주 4.3사건에 대하여 말하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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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건을 소설로 아는 경우가 많다. 글 쓰는 작가들의 책임이 무거운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는 것. 소설 등 다른 형식으로 독자들이 읽게 하는 역할을 하는 이가 작가라고 본다. 작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한강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직시하여 그걸 문학으로 풀어낸다.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이어 제주 4.3사건에 대하여 말하는데,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가족애에 관한 이야기다. 4.3사건으로 가족을 잃어버린 사람이 찾는 그 무엇은 상실과 애도의 시간이기도 하다. 지키지 못했던 거에 대한 애달픔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안고 살아가면서 겨우 버틴다. 고통을 알기에 다른 이의 고통을 이해하고 그 길에 서기도 한다.

 

 

 

소설에서 눈은 여러 감정의 매개체다. 눈 속에 파묻혀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하며 녹아 없어지는 눈은 우리의 생과 사를 보는 듯하다. 슬픔으로 가득한 시간은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다. 눈이 내려 쌓이고, 녹는 시간이 오래 걸리듯 우리의 마음도 비슷하다. 내리는 눈은 역사가 남긴 얼룩이다. 눈 속에 파묻혀 길을 잃고 교착상태에 빠진 것도 우리의 삶을 대변하는 듯하다.

 

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 속력 때문일까, 아름다움 때문일까?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어떤 사실들은 무섭도록 분명해진다. (44~45페이지)

 

시간은 자꾸 과거로 돌아간다. 경하의 시선 속에서 진행되었던 꿈으로부터, 사진을 찍고 영상물을 만드는 인선에게로, 인선의 엄마가 애타게 찾았던 외삼촌의 생사와 기억으로 향한다. 고통스러운 기억은 직접 겪지 않아도 전염되어 나타난다. 엄마가 이모와 함께 가족의 시체를 확인하러 다녔던 그 광경은 인선이 직접 겪은 것처럼 나타나 그를 괴롭힌다. 그가 영상을 제작하여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던 이유와 같다. 눈물로 얼룩진 엄마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 했고, 알리고 싶었다.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내가 직접 본 것도 아닌데,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다녔다는 여자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 (87페이지)

 

전체적으로 슬픔이 내재해 있다. 인선의 가족을 고통으로 몰고 갔다. 일하다 전기톱에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고 서울의 병원에서 접합수술을 한 것도, 신경을 죽이지 않기 위해 3분에 한 번씩 바늘로 찔러주는 장면은 마치 내 손가락이 찔린 듯 아프고 아팠다. 인선의 엄마와 아버지의 가족이 죽임을 당하고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것을 보며 자라는 것 또한 슬픔을 넘어 격통에 가깝다.

 

 

 

제주4.3의 역사의 한 장소로 우리를 안내하는 것 외에 남은 자들의 고통이 크게 느껴졌다. 등신대를 세워 사람들에게 알리는 효과도 크지만 이처럼 하나의 이야기로 나타나는 것이 우리를 그 시간에 있게 한다. 내가 인선이었다면, 내가 정심이었다면 어땠을까. 제주4.3사건을 일깨워 준 작가를 통해 우리나라가 가진 역사와 아픔을 생각해 보게 된다.

 

기억하지 않은 역사는 반복된다. 고통의 근원을 파헤치며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촛불 하나에 의지해 기억 속으로 향하는 장소는 작별의 시간을 거치는 것과 같다. 눈이 쌓인 곳에서 길을 잃고, 촛불이 꺼져가는 그곳에서 함께 걷는 길은 어둠뿐인 우리의 삶에서 한 줄기 희망의 빛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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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S마니아 : 플래티넘 h*****9 2021.12.09. 신고 공감 3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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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근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 -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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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근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해석(解釋)하지 않는다. 아니,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어떤 식으로든 독자의 생각을 풀어 얘기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고쳐 써야겠다. 한강 작가가 쓴 <작별하지 않는다>의 두 주인공 ‘경하’와 ‘인선’은 오랜 친구 사이로 닮은 구석이 많다. 한 사람은 글을 쓰고, 다른 한 사람은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며 ‘이야기 전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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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근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해석(解釋)하지 않는다. 아니,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어떤 식으로든 독자의 생각을 풀어 얘기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고 고쳐 써야겠다. 한강 작가가 쓴 <작별하지 않는다>의 두 주인공 ‘경하’와 ‘인선’은 오랜 친구 사이로 닮은 구석이 많다. 한 사람은 글을 쓰고, 다른 한 사람은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며 ‘이야기 전달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었)다. 소설에서 직접적인 언급은 없으나 경하는 장편소설 『소년이 온다』와 단편소설 『작별』을 쓴 작가라고 볼 수 있다. 자신이 쓴 소설들을 통해 왜 인간은 이토록 아름답고도 잔인한가에 대한 답을 찾아볼수록 삶의 결핍감과 부채감은 응어리처럼 가슴속에 쌓여간다. 인선은 역사라는 수레바퀴에 치이거나 깔린 사람들의 목소리를 영상으로 고이 담아내다 돌연 작가가 절필하듯 고향인 제주로 가서 목수(木手)로 활동한다. 
  어느 겨울날, 인선은 목공일을 하다 그만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를 겪는다. 누구에게나 ‘손(手)’은 소중하다. 작가와 목수에게 더더욱 없어서는 안 될 ‘손’의 연장(延長)이자 도구로서의 연장일 테다. 병원에서 수술 후 재활하던 인선이 자기 집에서 얼마간 반려조를 ‘손’봐달라고 경하에게 부탁한다. 언뜻 보면 집에 두고 온 새 한 마리가 그토록 중요한가 싶겠지만, 이 ‘새’야말로 경하와 인선, 나아가 그들과 독자를 연결해주는 전령으로서 기능한다. 한강 작가의 『희랍어 시간』에서 말을 잃어버린 여자와 보이지 않는 남자가 어두운 건물 안에 갇힌 ‘새’를 구하기 위해 애쓰는 장면이 떠오른다.
  하염없이 내리면서 쌓이는 ‘눈’ 때문에 경하가 인선이 아끼는 새를 구하러 가는 길은 여간 녹록하지 않다. 마치 소설 『흰』에 등장한 ‘눈’이 이 소설 전반에 내리는 것 같기도 하다. 경하는 “눈처럼 가볍고, 새처럼 가볍다”고 여겨지는 그들에게도 ‘무게’가 있음을 절감하게 된다. 독자는 새와 눈의 역할 못지않게 ‘바람’의 영향력 또한 소홀히 할 수 없다. 바람은 눈을 날리게 하고 새가 날 때 일어나는 존재이자 주변의 소리를 머금는 특성을 가진다. 즉 소리를 잘 들리지 않게 만드는 요인인 셈인데, 반대로 무언가를 귀 기울여 잘 들어야 한다고 속삭이거나 고함치는 것처럼 감각된다. 어쩌면 인선이 누워 있는 병실의 창문에서, 경하가 도착한 인선의 집 문 앞에서 두드리는 소리를 낸 것이 바람일지도 모르겠다.
  해몽(解夢)하지 않는다. ‘꿈속에서 문득 다른 꿈의 문을 열고 들어선 것 같은(233쪽)’ 생시 같은 꿈이 연속해서 펼쳐진다. 사건의 발단 역시 몇 해 동안 거듭되는 경하의 꿈에서 비롯한다. 인선에게 전해진 꿈, 그러니까 흰 눈이 내리는 가운데 수많은 무덤이 물에 잠겨가는 공간에서 어쩔 줄 모르는 경하의 모습은 서서히 현실로 구현된다. 갈피를 잡지 못해 고통스럽던 경하도 인선의 집에서 그 꿈의 실체를 조금씩 알아차린다. 여기서 꿈이란 무의식의 욕구와 억압된 감정을 드러내는 상징적 활동이라고 해석한 프로이트와 다른 결의 설정이 퍽 흥미롭게 다가온다.
  요즘에 소설, 웹툰, 드라마, 영화 등 다양한 매체의 소재로 사용되는 ‘평행우주’의 개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슈퍼 히어로 영화 속 대사처럼 “꿈은 또 다른 세계의 나를 만나(보)는 창문”을 여닫으며, 경하와 인선은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윗세대의 이야기를 공유한다. 과거의 크고 작은 선택과 행동이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미치기에 우리는 종종 만약에 그때 그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 혹은 후회를 하곤 한다. “인선의 손가락이 잘리지 않은 평행우주가 존재한다면(155쪽).” 경하 또한 이런 가정을 해보는 것이다.
  더불어 경하는 인선의 집으로 가는 길에 내리는 눈이 수십 년 전 학살의 현장 위로 내리던 비는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어떻게든 연결된 존재가 아닐까 하는 물음을 자신과 독자에게 던진다. 개인과 역사의 수난이 마치 이처럼 순환하여 거듭되는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더 늦기 전에 악순환을 멈추고 선순환을 이루기 위하여 개인과 사회가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설령 악몽이더라도 깨어난 현실에서 어떤 마음가짐, 또는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꿈보다 해몽 같은, 조금 더 진실에 가까운 것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작별(作別)하지 않는다. 인선이 경하에게 묻는다. “작별인사만 하지 않는 건지, 정말 작별하지 않는 건지, 그게 아니라면 작별이 완성되지 않는 건지, 작별을 기한 없이 미루는 건지”를. 두 사람의 곁에서 숨죽여 지켜본 독자로서 생각건대, 작별은 서로가 ‘잘 있음’이 전제되어야 하는 헤어짐이 아닐까 싶다. 떠나거나 보내고 남은 이 모두가 무사히 지내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작별이 아닌 이별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어떤 면에서 경하와 인선은 일종의 작별의식을 치룬 것인지도 모른다.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어느 시점을 계기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길을 걷다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둘을 묶어준 ‘실’이 끊어지려 하는 그 순간을 한강 작가가 포착한 게 아닐까 싶다. 인하의 죽음으로 인해 당장은 (현)실이 끊어지는 듯 보이지만, 인선로부터 건네받은 ‘촛불’이 경하로 하여금 계속해서 어둠을 헤쳐나갈 수 있는 (구)실이 되어준 것이리라. 이 이야기가 단지 둘만의 문제가 아님을 인선이 경하에게 일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에 엄마가 이곳에서 저 건너를 봤듯이, 아버지가 섬을 떠나 십수 년간 저 건너편을 지켜봤듯이 경하와 독자는 사건 너머 진실을 똑바로 응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매우 거북스럽거나 가슴이 뻐개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멈추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어렵사리 다 읽고 나면 힘에 겨워 벅찬 기분을 어떻게 진정시키면 좋을지 모를 수도 있다. 읽고 들을수록 눈이나 새, 바람처럼 손에 잡히지 않지만, 그저 개인의 악몽으로만 치부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는 제주 4·3 사건의 실체를 들여다봐서일 테다. 그래서 소설은 고요히 외친다. 이 미결의 얽히고설킴을 다 함께 차근차근 풀어나가자고. 이제 당신에게 ‘뻐근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담긴 책 한 권을 건네니 받아 보시길 바란다. 

이달의 사락 k*****o 2025.09.19. 신고 공감 27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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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지는 고통, 마음에 깊이 박이는 여운 “작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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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소설을 읽기 전 예상했던 내용과 실제 내용의 차이? A. 제주 4.3을 다루고 있다는 배경지식만 가지고 읽기 시작한 소설. 그러나 소설 초반에는 제주 4.3보다는 막 5.18에 관해 글을 쓰고 이를 책으로 엮어낸 작가의 이야기로 시작되었고, 이는 곧 한강의 또 다른 작품인 <소년이 온다>를 떠올리게도 하였고 한편으로는 주인공 자체가 한강 작가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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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소설을 읽기 전 예상했던 내용과 실제 내용의 차이?

A. 제주 4.3을 다루고 있다는 배경지식만 가지고 읽기 시작한 소설. 그러나 소설 초반에는 제주 4.3보다는 막 5.18에 관해 글을 쓰고 이를 책으로 엮어낸 작가의 이야기로 시작되었고, 이는 곧 한강의 또 다른 작품인 <소년이 온다>를 떠올리게도 하였고 한편으로는 주인공 자체가 한강 작가일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했죠. 소설의 초반은 주인공의 고통에 초점을 두는듯 했지만, 그 고통은 주인공에게서 주인공 친구에게로 그리고 점차 서서히 제주 4.3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소년이 온다>만큼 역사적 상황에 직접 투영된듯한 소설은 아니었지만, 그 사실을 겪은 사람들의 증언과 고통은 여실히 독자에게 전해지는 듯 했습니다. 

Q.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점

A. 겨울서점에서 김겨울 작가가 이 책에 대해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의 정반합을 이룬 책인 것 같다, 라는 표현을 했었는데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이 두 소설에서 진득하게 읽고 느꼈던 부분들이 <작별하지 않는다> 곳곳에서 느껴졌기 때문이었죠. 역사적 소재에 대해 전체가 아닌 그 사건의 중심에 있었던 개개인에게 초점을 맞추어 그들의 이야기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는 점은 마치 <소년이 온다>, 그리고 마치 꿈인듯 환상인듯 아련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은 <채식주의자>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그렇기에, 저자는 자신의 책 중에 <작별하지 않는다>를 가장 처음 읽어보면 좋을 것이라 권하였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년이 온다> - <채식주의자> - <작별하지 않는다>의 순서대로 읽어본다면 그 내용이나 표현에 공감하기 더 용이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은 후반부로 갈수록 그 고통의 수치가 커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설 초반 주인공의 정신적 괴로움도 힘들었지만, 이후 친구의 신체적 괴로움은 정말.. 소설을 읽는 내내 저도 같이 속으로 ‘윽..윽’대며 읽어갔거든요. 하지만 제주 4.3에 대한 증언을 들으면서는 친구의 그 고통조차도 머릿속에서 희미해졌을 정도로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너무나도 괴로움이 크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제주 4.3에 대한 영상도 찾아보고 글도 새롭게 찾아보았습니다만, 그동안 저 혼자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제주 4.3은 정말 반의 반도 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도에 여러번 가보았음에도 왜 제주 4.3 평화 기념관 한 번 가볼 생각을 못했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마음 아픈 사건을 제대로 마주하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요. 너무 무지했고, 알려하지 않았던 제 자신을 많이 반성하게 된 소설이기도 했습니다.

Q. 소설의 미래 독자에게

A. 여운이 깊었던 소설입니다. 처음에는 소설의 초반만 조금 읽고는 그저 짧은 생각으로 ‘재밌어요, 잘 읽혀요’하고 주변에 이야기하고 다녔는데, 책을 다 덮은 지금은 그저 그런 추천이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 나의 생각이 너무나도 짧았구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 속에서 그려진 장면 하나 하나 깊이 남아서 책을 덮은 이후에도 여운이 길었던 소설이었습니다. 일독을 꼭 한 번 권해드리고픈 그런 소설입니다.

유리문 밖으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육체가 깨어질 듯 연약해 보였다. 생명이 얼마나 약한 것인지 그때 실감했다. 저 살과 장기와 뼈와 목숨들이 얼마나 쉽게 부서지고 끊어져버릴 가능성을 품고 있는지. 단 한 번의 선택으로.
a****x 2024.11.02. 신고 공감 20 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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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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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역사적 아픔과 슬픔을 담은 작품이기도 한 『작별하지 않는다』 주인공 경하의 꿈 꾸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눈 내리는 벌판에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 묘지인가 싶었다가 어느 틈에 차오르는 물. 이미 잠긴 무덤을 어쩔 수 없더라도 묻힌 뼈들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어쩔 줄 모른 채로 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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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 수상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 


제주 4.3 사건을 배경으로 역사적 아픔과 슬픔을 담은 작품이기도 한 『작별하지 않는다』 


주인공 경하의 꿈 꾸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눈 내리는 벌판에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 묘지인가 싶었다가 어느 틈에 차오르는 물. 이미 잠긴 무덤을 어쩔 수 없더라도 묻힌 뼈들을 옮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며 어쩔 줄 모른 채로 깨어버린 꿈. 학살에 대한 책을 냈을 무렵 그런 꿈을 꾸었던 것이라 생각하는 경하. 제주로 내려가 어머니를 돌보고 목공 일을 하는 친구 인선과 꾸었던 꿈을 토대로 영상 작업을 계획한다. 하지만 힘든 시기를 보내고 겨우 회복했지만 하려던 일은 하지 못했다. 


겨울의 어느 날, 인선은 통나무 작업을 하던 중 손가락 절단 사고가 나고 경하에게 제주 집에 있는 새를 구해달라 부탁한다. 인선의 간절한 부탁에 거절하지 못한 경하는 서둘러 제주로 내려간다. 하지만 때마침 강풍에 폭설에 날씨가 좋지 않은 상황이다. 그 와중에 고질적인 두통으로 힘들어하던 경하는 겨우 버스를 타고 인선의 마을로 향한다. 정류장에서 한참 떨어진 인선의 집으로 가던 경하는 폭설과 어둠에 갇혀버린다. 


이상하지 눈은, 하고 병실 창밖을 향해 중얼거렸을 때 인선이 떠올린 것도 그런 것들이었을까. 어떻게 하늘에서 저런 게 내려오지. 창 너머의 안 보이는 누군가에게 조용히 항의하는 듯 그녀는 내 얼굴을 보지 않고 물었다. 눈의 아름다움이란 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오래전 세밑의 밤에도 그렇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던 것같이. (p.94~95)

겨우겨우 인선의 집에 도착한 경하는 70여 년 전 제주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얽힌 인선의 가족사를 보게 된다. 

가족을 잃고 슬퍼할 겨를도 없이 감옥에서 십오 년이나 보내야 했던 아버지, 부모와 동생을 잃고 오빠마저 생사를 알 수 없는 채로 언니와 둘이 남겨진 어머니.. 그 학살 사건 이후 오빠의 행적을 찾는 일에 수십 년을 쏟았던 인선의 어머니. 폭설로 고립된 집에서 떠오르는 그리움. 담담하게 그날의 사건을 기억하는 장면들. 어떻게 이렇게 고. 요. 하. 게- 작별하지 않을 수 없는 역사의 상처를 들여다보고 치유와 화해를 묻는지.. 과거의 기록으로 남아 두기 전에 기억해야 할 제주 4.3 사건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내와 체념, 슬픔과 불완전한 화해, 강인함과 쓸쓸함은 때로 비슷해 보인다. 어떤 사람의 얼굴과 몸짓에서 그 감정들을 구별하는 건 어렵다고, 어쩌면 당사자도 그것들을 정확히 분리해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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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읽어 본 <작별하지 않는다> .. 눈 밟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고, 바람 소리, 성냥에 불 붙이는 소리, 인선과 경화의 차분한 대화.. 정적인 듯했지만 섬세한 묘사 때문일까.. 문장에서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비극적이지만 잊지 말아야 할 '제주 4.3' .. 정치적 갈등이 무고한 사람들을 희생시킨 아픔에.. 마음이 먹먹하고 숙연해졌다. 가라앉은 묵직한 여운이 오래 남을 것 같은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않는다 #한강 #문학동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t*****j 2025.04.17. 신고 공감 15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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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 또 다른 제주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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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서 작별을 찾는다. 문득 이별과 무엇이 다른지 궁금했다. 둘 다 헤어지지만 작별은 ‘인사’를 한다. 헤어질 수 없어서 인사를 하지 못하는 것인가. 작가 한강이 직면하는 제주 4·3의 시간을 함께 간다. 사건은 끝나도, 상흔이 지속되는 한 누가 작별할 수 있을까. 광주의 일에서도 장례를 치렀어도 다시 살아남은 장례가 시작되는 것처럼. 작가의 두 작품을 연달아 읽는 일은 쉽지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 | 또 다른 제주가 왔다" 내용보기
사전에서 작별을 찾는다. 문득 이별과 무엇이 다른지 궁금했다. 둘 다 헤어지지만 작별은 ‘인사’를 한다. 헤어질 수 없어서 인사를 하지 못하는 것인가. 작가 한강이 직면하는 제주 4·3의 시간을 함께 간다. 사건은 끝나도, 상흔이 지속되는 한 누가 작별할 수 있을까. 광주의 일에서도 장례를 치렀어도 다시 살아남은 장례가 시작되는 것처럼. 작가의 두 작품을 연달아 읽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직 끝나지 않은 광주의 기억이 그를 잠식하고 있음을 알게 되자 감정이 얼마간 일렁였다. 제주 바닷가, 사방에서 총알처럼 쏟아붓는 눈을 검은 나무들이 사람처럼 웅그리고 서서 죄다 받아내고 있는 모습이 그의 꿈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가슴 먹먹하게 만든다. 홀린 듯 그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춥다. 몸도 마음도. 나는 어쩌다 보니 올 초부터 수강생이 끊긴 교실을 지키고 있다. 사람의 온기가 끊긴 교실은 히터를 틀어도 난방이 잘되지 않는다. 상상 그 이상으로 춥다. 목을 감고 후리스를 껴입고 그 위에 빵빵하게 부푼 파카를 입어도 박음질 사이를 찬 공기가 파고든다. 여기에 그의 책은 더 많은 추위를 몰고 온다. 인선과 경하의 대화를 듣는 것일 뿐인데 왜 내가 눈 덮인 허허벌판에 서있는 착각이 드는지 모르겠다.

"바람이 센 곳이라 그렇대, 어미들이 이렇게 짧은 게. 바람 소리가 말끝을 끊어가버리니까."

73쪽_새_폭설

기억한다. 정말 제주도의 바람은 정말 억셌다. 출근길, 아파트 입구에서 고작 20m 남짓 떨어진 주차장에 세워진 차로 갈 수가 없었다. 아무리 발을 떼려 해도 금세 중심이 허물어져 넘어질 것 같았다. 급히 내려온 아내의 부축을 받고서야 주차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길가의 쓰레기통은 바람개비처럼 빠르게 돌고 있고 내 키보다 큰 물탱크가 종잇장처럼 바람에 실려 떠다녔다. 그 바람이 그들일지 모른다는 작가의 말이 어쩌면 맞을지도 몰랐다.

"이상하다, 살아 있는 것과 닿았던 감각은. 불에 데었던 것도, 상처를 입은 것도 아닌데 살갗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전까지 내가 닿았던 어떤 생명체도 그들만큼 가볍지 않았다.

109쪽_새_새

이 감각적인 문장에서 가벼운 것들, 그러니까 눈이거나 새거나 혹은 더 이상 흘릴 것이 없을 만큼 쏟아져 버린 그 도시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된다. 약간의 피를 흘리거나 목이 말라도 생명이 위험해지는 새로 그렇게 다시 태어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리고 완성되지 않은 것인지 기한 없이 미룬 것인지 아니면 애초에 그럴 마음이 용기가 없던 것인지 생각한다. 경하의 작별은 무엇이었을까.

192쪽_밤_작별하지 않는다

"사람이 그렇게 많았는데, 옷가지 한 장 신발 한 짝도 없었어요. 총살했던 자리는 밤사이 썰물에 쓸려가서 핏자국 하나 없이 깨끗했습니다. 이렇게 하려고 모래밭에서 죽였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226쪽_밤_바람

찌릿한 전율이 손가락 끝부터 천천히 머리끝까지 타고 올랐다. 몰라서 더 그랬을까? 제주에서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정도의 텍스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감각들이었다. 한데 단 4줄의 문장이 온몸의 세포를 흔들어 깨운 느낌이 들었다. 무서운 일이겠다,고 생각 하는 순간 그 아름답던 제주가 참혹한 곳으로 뒤바뀌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왜 그렇게 악랄하고 잔혹함만 남은 이들을 군과 경찰로 둔갑시켰을까. 그리고 광주를 쓸고 간 그들과 마찬가지로 잘 먹고 잘 살고 있을까. 후손들들은 자신이 학살자의 피가 흐른다는 것이 무섭지 않을까. 여전히 피학살자들의 유족들에게 이 끝나지 않는 고통이 학살자에게도 이어지는지, 온전한 정신으로 살 수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220쪽_밤_바람

인선의 엄마가 고향을, 불타버렸던 집을 벗어나지 않았던 이유를, 평생 그러모았던 학살의 기록을 나는 감히 짐작조차 못한다. 그리고 그 기록이 향했던 경산의 코발트 광산 이야기는 처음 알았다. 그때 학살이 전국으로 번졌다는 걸 몰랐다. 나는 사실 타인에 대해 관심이 많지도 않지만 몸이 불편해진 이후 사회에서 얼마간 비켜난 자리에 있다 보니 무심한 감각들에 익숙해져 읽기가 쉽지 않았다.

"인간이 인간에게 어떤 일을 지지른다 해도 더 이상 놀라지 않을 것 같은 상태…"

316쪽_불꽃

개인적으로 <소년이 온다>는 일정 부분 내 경험이나 부모의 고향이 그곳 그 도시였어서 분노가 더 많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부들부들 떨게 만든다. 특히 마지막 인선의 이야기에 더욱더 동요되고 말았다.

317쪽_불꽃

인간이 그토록 잔인해지는 이유가 뭔지, 왜 그래야 했는지 물을 수 없다는 게 짜증이 났다. 극심한 두려움에 내몰려 대항 한번 못하는 나약한 이웃들을 임산부 갓난쟁이 할 것 없이 절멸에 가까운 죽음으로 내몰린 사람들의 공포를 생각한다. 그리고 과연 국가와 학살자들은 피학살자들과 제대로 작별을 했을까? 그러지 않았다면 왜 그러지 않느냐고 우리는 계속 물어야 하는 게 아닐까?

문득 바닷가에 살며 생선을 먹지 못하게 되는 일은 어떤 마음일까,를 생각한다. 그날 그 바다에 던져진 그들의 살을 뜯어 먹었을 그것들을 먹는다는 것이 끔찍하다는 노인의 말을 짐작이나 할 수 있을지. 많이 먹먹했다.

10여 년 전쯤, 우연한 기회로 제주에서 3년을 살았었다. 조천에 친구가 있어 자주 갔었다. 그곳에 4·3 기념공원이 있었다. 가보지 않았던지, 갔지만 기억에 담지 않았던지 선명하진 않지만 기억과 전혀 다른 제주가 큰 파도처럼 쓸려와 읽는 내내 힘들었다. ‘지극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였으면 한다’는 작가의 바람처럼 아프지만 그러해서 많이 공감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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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 2025.01.13. 신고 공감 15 댓글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