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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93."보라!보라!저기 푸른빛 보라빛 말들이 있고…… 여명으로 빚은 집이……."
'다이팔로(Dypalo). 여명으로 빚은 집이 있었다(p.21)'로 시작해서 꽃가루로 빚은 집, 여명으로 빚은 집.퀘체디바(Qtsedaba)p.340.로 끝을 맺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나보았다. 북미 원주민들의 삶을 그려낸 아름다운 작품 <여명으로 빚은 집>은 카이오와족 출신 작가 N.스콧 모머데이에게 1969년 퓰리처상을 안긴 작품이다. 북미대륙의 주인이었지만 유럽에서 찾아온 이민자들에게 주인자리를 내주고 '인디언'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된 이들의 소외되고 왜곡된 삶을 보여주고 있다. '원주민'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보호라는 이름의 격리 생활을 해야 했던 이들의 가슴 먹먹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p.42. 그 너머로 보이는 희미한 안개 벌판은 골짜기의 바닥이었다. 창백하면서도 청록빛을 띤 그곳은 수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이야기는 슬프고 아프고 시린데 글을 만들고 있는 각각의 문장들은 아름답다. 지금까지 만나본 책들 중에서 가장 다양한 색을 접한 책인듯하다. 지구상의 거의 모든 색을 만나본 듯하다. 과하지 않은 표현들, 절제된 표현들이 색채가 가진 아름다움을 끌어내고 있는 것 같다. 자연이 만들어낸 대지와 하늘 그리고 평원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인간이 만들어낸 도시의 삭막함을 비교한다. 그리고 그 비교는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던 이들과 문명이라는 굴레에 갇혀 살던 이들의 비교로 이어진다. 자유롭게 살던 '원주민'들을 '백인'들의 굴레 속으로 끌어들이려 갖은 수를 다 쓴다.
p.175. 그는 백인이 누구인지 알 것이었고, 할 수만 있다면 그를 죽일 테니까. 사람은 할 수만 있다면 그런 원수를 죽여버리는 법이다.
하지만 주인공 아벨은 처음부터 끝까지 달린다. 아마도 자유를 향해, 자신들만의 '언어'를 향해 달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백인'들이 말하는 문명과 부딪히며 자신들의 문명을 지키려 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문명을 버리고 백인의 문명을 받아들이라 강요한다. 정말 오만방자한 '백인'을, 그들의 문명을 응징했던 아벨은 지치고 아프게 된다. 몸도 마음도. 그런 그를 지켜주려는, 그런 그에게 도움을 주려 하는 친구들이 생긴다. 문명으로부터, 백인으로부터 소외된 하지만 그들로부터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벨을 어디까지 도와줄 수 있을까? 화자가 '나'에서'그'로 바뀌는 시점을 찾아보는 것도 특별한 재미를 줄 것이다.
p.180. 주변은 온통 원수들이었으며 그는 자신이 그들의 눈에 우스꽝스러워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이 책은 소설이지만 북미 원주민들이 이어온 그들만의 문화를 접할 수 있게 해주고 있어서 색다른 재미를 선물하고 있다. 원주민의 생각을 그들의 전설, 노래 그리고 전통 의식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는 인문학 책 같은 느낌이다. 아벨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낯선 문명에 녹아들 수 있을까? 문명이라고 불리는 '백인'들과 타협할 수 있을까? 아벨은 자신을 변호해야 하는 순간 말을 하지 않는다. 타협을 거부한 듯 보인다. 문화적인 차이가 만들어낸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너와 내가 아닌 우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백인들에 의해 인도 사람(인디언)이 되어버린 북미 원주민들의 삶을, 그들의 노래를, 그들의 전설을 만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혜움이음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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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으로 빚은 집’ (1969년 퓰리처상 수상작)
주인공 <아벨>은 제 2차 세계대전 참전 후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고향땅 ‘왈라토’협곡 으로 돌아온 ‘나바호족’ 청년이다.
전쟁의 상흔으로 ‘아벨’은 정신적으로 많이 붕괴되었으며... 술에 취한 환각상태에서 백인을 살해한 혐의로 7년간의 복역하게된다.
인디언의 뿌리로 살아가는 영혼은 백인 주류의 미국 사회에서 여명을 향해 나아가는 힘겨우며 혼란한 삶의 여정을 담는다.
그리고 주인공 아벨의 할아버지 ‘프란치스코’를 통해서는 원주민들의 삶을 엿 볼 수 있었다.
백인들에 의해 야만인으로 몰리며 그 영혼을 잃지 않기 위해 전통을 이어오는 모습들을... . .
실제 미국에서 인디언 부족들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자신들의 전통 세계에서 벗어나 낯선 세계에서 전쟁을 겪었으며 상당수가 그 경험으로 상처를 입었다.
주인공 ‘아벨’ 역시도 그 중 하나였다.
많은 인디언 젊은이들이 전쟁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자신들이 태어나 자라다가 단절된 세계에 다시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 하였다.
많은 인디언들이 이런 일을 겪고 알콜 중독자, 살인, 자살 그리고 영적 고립으로 그들은 죽어갔다. . .
솔직히 이 책 읽기 어렵다.
책의 절반을 차지하는 1952년까지의 이야기는 자연의 묘사와 동물 그리고 인디언 특유의 알 수 없는 IT(그것- 눈에 보이지 않은 신비스러운 영적인 현상) 을 다루는 표현들...
책을 읽으면서 몇 번을 회독한지 모르겠다. 그러다 중간정도 읽은 다음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저자 N. 스콧 모머데이는 실제 인디언 출신이고 더구나 ‘시인’이다.
그러다보니 미국의 자연 묘사를 인디언의 시적인 감성으로 표현하고 글의 흐름은 깨진 유리 조각 같이 흐트러져 있으며 이야기의 진행은 중간 중간 건너뛴 것처럼 다소 설명이 빠진 듯이 진행이 되어 이해하기 힘들었다. (디카프리오 주연 영화 ‘레버넌트’ 보면 자연배경이 많이 다양한데 그런 생소한 자연배경을 상상하며 읽느라 많이 힘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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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북아메리카 원주민 문학이 익숙하지 않다. 그동안 이와 관련해 읽었던 책을 떠올려 보면 곧바로 생각나는 책은 <모히칸족의 최후> <내 영혼이 따뜻해던 날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정도다. 그나마도 원주민이 직접 쓴 작품은 체로키 혈통을 이어받은 포리스트 카터의 작품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겠다(시애틀 추장의 책은 문학이라고 볼 수 없는 듯 하고). 원주민 역사에 대해서도 교과서에서 배운 정도와 이후 위의 책들을 읽을 때 찾아본 상식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런데 나바호족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성장한 카이오와족 출신 작가가 쓴 이 책을 손에 쥐고 오랜만에 만나는 북미 원주민 문학과 역사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제2차 세계대전 참전 후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져 고향 땅 왈라토와 협곡으로 돌아온 나바호족 청년 아벨과 그의 할아버지 프란치스코의 과거를 통해 원주민의 아름다웠던 땅, 하늘, 사람들과 백인들로 인해 비참하게 내몰린 그들의 이야기다.
♤ 협찬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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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허리춤까지 벗은 채였고 팔과 어깨에 재와 검댕을 칠해놓았다. 아벨은 달리고 있었다. 여명이 비치는 겨울 하늘과 기다랗고 환한 골짜기를 배경으로 그는 아주 조그맣게, 혼자서, 거의 정지한 듯 보였다.
1969년 퓰리처상 수상작 여명으로 빚은 집. 서문부터 문장 속에 빠지고 말았다. 이 글들엔 숭고한 무언가가 스며있다. 광활한 아름다움이 눈앞에 펼쳐지고 인간들은 종족을 구분할 필요도 없이 작은 점에 불과했다. 그런 광활한 대자연을 품고 사는 인디언들. 자신의 자식들뿐 아니라 7세대 이후의 미래 자손들까지를 생각하며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을 살았던 영적인 종족이 백인들의 총칼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 피를 이어 받은 아이들은 백인도 인디언도 아닌 채로 삶을 살아내야 했다. 저급한 그들의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들의 말들은 '문명'이 아니라는 이유로 점점 사라져갔다.
아벨은 아버지를 모른다. 어머니는 병으로 일찍 돌아가시고 프란치스코 할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아벨은 말 없는 소년이 되었다.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어른이 없었다. 두 문명 세계에서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전쟁은 그의 순수한 영혼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그가 전쟁에서 돌아온 그의 나라는 백인의 문명 아래 자신의 정체성마저도 희미해졌다. 자신을 말할 수 없는 아벨. 자신의 세상을 표현할 길 없는 아벨. 거대한 자연은 침묵했고, 거대 문명은 그들을 잡아먹었다.
인디언이 쓴 영문소설은 처음이다. 내가 아는 인디언은 서부영화 속에서 사람의 머릿 가죽을 벗기는 야만인들이었다. 중동의 모든 사람들이 테러범처럼 여겨지는 오늘날처럼. 백인의 문명은 자신 들것 외에는 아무것도 용인하지 않는다. 남의 문명을 미개한 걸로 치부하는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미개인이라는 사실을 더 많이 깨달았다. 여명으로 빚은 집을 통해...
그는 변하길 원치 않았거나 아니면 변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아벨은 탱크 앞에서 춤을 췄다. 백인의 형상으로 찾아온 뱀을 칼로 찔렀다. 조상들의 방식을 따랐을 뿐이었지만 문명의 법은 그걸 이해할 이유가 없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전쟁의 트라우마를 지닌 채 백인들의 문명 속에서 백인처럼 살아내야 하는 인디오들의 삶은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그들의 언어로 살아야 했던 조상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벨이 살았던 시대와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았던 세상은 같은 세상이었고 아벨처럼 우리도 우리의 모든 정체성을 잃고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아벨을 이해하려 했고, 도우려 했고, 그를 지키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은 그 사람들로 인해 상처가 아물게 되고, 마음이 따스해지게 마련이다.
그는 그들을 돕고 싶었다. 완전하게는 아니더라도, 그는 그들이 그에게 무엇을 하려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서로에게 무엇을 하는 건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내게는 압도적으로 다가왔던 문장들이 인상적이었다. 작은 책 안에서 펼쳐지는 풍경들에 숨이 막힐 거 같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손끝에서 표현되는 삶들은 처절하게 슬프다. 그 슬픔은 책을 읽는 동안 점점이 커져서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먹먹해진다.
이것들, 떠나오기 전의 모든 것들을, 그는 온전하고 세세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머릿속으로 정리할 수 없는 것은 최근의 과거로, 늘 갑작스럽고 뒤죽박죽인 시간이자 끔찍한 고요와 불일치로 가득한, 의미 없는 몇 날들과 몇 해였다.
두 세계에 발을 담그고, 두 문명을 이해하고 자란 사람의 시선은 단순한 듯 복잡하고 복잡한 듯 단순하다. 그리고 읽는 사람들에게 아주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느리게 천천히 음미하며 읽게 되는 작품이다.
여명으로 빚은 집을 읽으며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 문명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동시에 스며들게 된다. 하나는 우리가 익히 아는 것이고 하나는 생소한 것이다. 그럼에도 그것은 우리를 경계에 서게 하지 않는다. 지금은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질 수 있는 시간대에 있으므로...
아벨은 인디언이었다. 그는 인디언이었을 때 가장 자유롭고, 가장 그 다웠으며 가장 생명력이 있었다.
아벨이 자신을 위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은 저들의 저급한 언어로는 자신을 변호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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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바호족 출신 청년 아벨이 제2차 세계대전 참전 후 고향 왈라토 협곡으로 돌아왔다. 전쟁으로 인해 아름다웠던 그곳은 황폐해져 있었다. 그 땅을 배경으로 할아버지 프란치스코의 과거 이야기를 통해 원주민들이 그들의 터전에게 백인들에게 어떻게 내몰리게 된 이야기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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