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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문화'는 애정하는 출판사 중 하나인데 미술 관련 책이 아닌 요런 편지 선집을 출간할 줄이야. <작가의 편지> 이전에 <예술가의 편지>가 작년 8월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선 바로 장바구니에 퐁당! <작가의 편지>는 94명의 작가가 쓴 94통의 편지를 담았다. 요즘이야 이메일(아마 이메일도 거의 업무용으로만 사용되고 있지 않나 싶다) 혹은 휴대폰을 통한 각종 메신저를 통해 즉각적이면서도 짧은 단문 형식의 소통 방법이 가능하다 보니 편지나 엽서는 이제 추억 소환용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사실 편지는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닌 소통 방식이다. 이 책의 94통의 편지 중 가장 오래된 편지는 에라스뮈스가 헨리 왕자(나중에 헨리8세가 되는)에게 1499년에 보낸 편지이고 가장 최근의 편지는 1988년 수전 손택이 힐다 리치에게 보낸 것이다.
책에 실린 편지의 내용은 다양하다. 그저 일상의 안부를 묻는 내용도 있고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 청탁하는 편지, 변명하는 편지, 요청을 거절하는 답장, 존경을 담은 편지 등 여러 주제를 포함해서인지 작품으로만 알고 있던 작가의 사생활을 엿보는 느낌이다. 위대한 작가로만 알고 있던 사람의 비열함이나 쪼잔함이 드러나기도 하고 동시대를 살던 작가들의 사회적 예술적 친밀도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지기도 한다. 글쓰기에 대한 고뇌와 작품에 대한 솔직한 비평도 읽을 수 있고 작가들의 의외의 인생 행보에 대한 잡학지식도 얻을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멋진 부분은 책의 편집과 구성이다. 왼쪽 페이지에는 실제 작가들이 친필로 쓴 혹은 타이핑한 편지 원본의 스캔본이 실려있고 오른쪽 페이지의 상단에는 편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편지가 쓰여진 시기와 배경에 대한 정보가 실려있고 하단에는 편지의 전문 혹은 부분의 번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냥 편지만 읽었다면 이해하지 못했을텐데 어떤 상황에서 쓴 편지인지에 대한 배경지식 덕분에 편지 쓸 당시의 감정이나 기분이 실감나게 느껴진다. 작가들의 친필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외국어인지라 명필의 여부를 정확하게 진단하기는 어려우나 악필은 정말이지 누가봐도 악필임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저런 글씨를 알아 볼 수 있다니 놀라울 뿐. 악필 작가의 원고를 받은 출판사 편집자들의 노고가 어땠을 지 짐작케 한다.
지금도 유명인들이 SNS에 올린 글이나 개인적인 메신저 내용 등이 노출되면서 사생활에 대한 원하지 않는 관심이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작가들의 편지도 마찬가지였을 듯 하다. 그들이 알리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를 고민과 고통, 비밀스러운 고백 등이 담긴 내밀한 편지를 읽고 있으니 조금은 미안해진다. 그럼에도 94통의 각양각색의 편지들이 문학작품 못지 않게 흥미진진했다는 점을 부인하긴 힘들 것 같다. 먼저 출간된 <예술가들의 편지>도 궁금궁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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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예술가의 편지]에 이어 이번엔 [작가의 편지]가 출간되었다. 이번 책에는 소설가, 시인, 극작가 등 작가 94명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가장 오래된 편지는 1499년 네덜란드 인문주의자 에라스뮈스가 잉글랜드의 헨리 왕자에게 보낸 편지고, 가장 최근 편지는 1988년 미국의 저명한 지식인 수전 손택이 토마스 만의 비서 힐다 리치에게 보낸 편지다. 타자로 친 편지도 몇 통 보이지만 대부분은 손 편지로 쓰여졌다. 때론 귀여운 그림을 덧붙인 편지도 눈에 띈다. 편지엔 생의 중요한 순간들이 담겨 있다. 새로운 작품에 대한 설명하는 편지부터 안부를 묻는 편지, 사랑을 담은 편지, 존경을 보내는 편지, 원고료를 독촉하는 편지, 자녀에게 보내는 편지까지 참 다양한 편지들이 들어 있다. 위대한 작가들의 편지이니 사실 더 기대를 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편지도 하나의 문학 작품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 실린 편지들은 작품이라기 보단 개개인의 면모를 볼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책의 구성은 이렇다. 왼쪽 페이지에 원문 편지가 실려 있고, 오른쪽 페이지에는 작가에 대한 짧은 소개와 함께 편지 원문의 부분 또한 전문 해석해 놓았다. 박물관에 가서야 볼 수 있는 작가들의 친필을 만나는 기쁨도 쏠쏠하다. 특히 아는 이름을 대할 때면 더 반갑고 관심이 가는 게 사실이다. 아무래도 작가에 대해 좀 알아야 이해하기 쉽다. 일본과 중국 작가도 한 명씩 포함되어 있다. 작가의 편지는 일반인의 편지와 다를까? 그런 의문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저자의 말에 의하면 그렇다는 것이다. 모든 편지는 설사 일상을 담은 글일지라도 글솜씨가 돋보일 수 밖에 없다. 작가들은 알게 모르게 압박을 받는다고 한다. 문장 하나하나 심혈을 기울여 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라는 기대치가 크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인 듯 보인다. 편지는 많은 것을 말해준다. 편지 자체로 역사적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독자들은 작가들의 은밀한 부분까지 알기 원한다. 소소한 일상을 담은 편지라고 할지라도 팬들에겐 더없이 소중하다. 편지가 사라진 시대라서 그런지 이 편지들이 더 값지게 느껴진다. 메일이나 문자를 주고 받았다면 우린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을 쓴 이유를 드러낸 편지가 있다. p.83 인간이 소망할 수 있는 한, 저는 인간의 역경을 근절하고 싶습니다. 노예제도를 규탄하고, 빈곤을 몰아내고, 몽매함을 교화하고, 질병을 치료하고, 암흑을 밝히고, 증오를 배척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 신념이며 [레 미제라블]을 쓴 이유입니다. 본 서평은 책을 제공받아 개인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하였습니다. #작가의편지 #마이클버드 #올랜도버드 #미술문학 #신간 #편지 #서간 #책리뷰 #컬처블룸 #컬처블룸리뷰단 #책소개 #북스타그램 #책스타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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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편지를 쓰려고 위대한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작가는 편지도 잘 쓴다.” 그럼에도 요즘 들어 시간과 품을 들이는 손 편지를 쓰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이메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손 편지만의 매력, 감성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아닐까.`
『작가의 편지』에는 소설가, 시인, 극작가 등 작가 94명이 쓴 94통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익히 알고 있는 작가부터 새롭게 알게 되는 작가까지. 이들은 일상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사랑과 존경을 고백하거나 청탁과 요청, 원고료 독촉까지. 다양한 요구와 감정을 담아낸다. 지금이야 편지가 공개되어 내용을 알지만 편지를 쓸 당시에는 편지가 공개될 것을 염두에 두었을 리 없기에 솔직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작가의 편지는 작가의 작품들을 만나게 하는 가교가 되기도 한다. 작품의 진행 상황부터 집필 의도, 글을 쓸 때의 어려움까지. 출판사와 동료 작가들에게 솔직하게 의견들이 담겨있다. 때문에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되기도 하고, 편지에 담긴 작가의 일상들은 그 자체로도 훌륭한 문학이 된다.
다양한 문체의 편지들을 만날 수 있는 데, 정성스럽게 쓴 손 편지부터 타자기로 작성한 편지, 소속된 회사의 레터헤드가 선명하게 보이는 편지,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편지를 원본 그대로 만날 수 있다. 작가나 작품에 대해 몰라고 편지에 빠져들 수 있는 이유는 원문과 글쓴이의 설명, 편지 내용의 해석본이 수록되어 있어 읽는 데 어려움이 없다. 알면 좋지만 작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도 된다.
편지가 가진 의미, 형식, 그 안에 어떤 것들을 담아왔는지를 통해 가장 오래되고 그 자체로 역사가 되는 교류 수단을 만나보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된다.
책을 읽으면서,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편지에 담긴 글쓴이의 정성과 감성은 절대 사라지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카드. 작은 편지지에 담긴 상대방을 향한 마음. 이메일이나 문자는 결코 대신할 수 없는 그 무엇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편지쓰기에 좋은 계절이다. 소중한 사람, 그리운 사람은 물론. 나 자신에게도 솔직한 편지를 써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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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가 쓴 편지글을 모은 글이다. 작가의 손글씨 - 간혹 타이핑 된 편지도 있지만 자필 서명이 있으니 그 가치는 분명 있을것이다. - 편지가 스캔되어 담겨있고 작가에 대한 이야기와 그 편지에 대한 해설, 그리고 손편지가 해석되어 있다. 작가에 대한 짧은 이야기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데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슈테판 츠바이크의 경우 유언장을 남겼지만 경찰이 그걸 숨겨 보관하다가 은퇴하고 판매를 했다는 이야기는 좀 충격적이다. 이런 소소한 이야기들도 볼 수 있고 커트 보니것은 가족에게 편지를 썼는데 특이하게 연필로 쓴듯한 글자가 모두 인쇄체대문자로 적혀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가족에게 쓴 글이라 아이들이 읽기 쉽게 쓴 글인가,라는 생각을 해 봤지만 내용은 그가 전쟁포로로 잡힌 후의 이야기여서 딱히 그렇다고 할수는 없을 것 같은데 아무튼 심각한 내용과는 달리 글씨만큼은 좀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편지는 일반인들의 편지글과 다른가, 라는 물음에 저자는 당연히 다를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편지글이 일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그러한 이야기글이라고 하더라도 글을 쓰는 작가의 표현은 일반인과 다를수밖에 없지 않겠냐는 뜻이다. 저자의 말에 딱히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수많은 작가와 작가의 편지중에 어떤 글을 뽑아내아 이 책을 엮었을지는 좀 궁금하다. 수신대상과 내용에 따라 각각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가 딱히 마음에 남지 않는 글도 있어서 모든 편지글이 다 재미있지는 않다. 하지만 커트 보니것이나 빅토르 위고 등 작품에 대한 이야기나 작품 탄생의 배경이 되는 글들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고 작가의 개인적인 정보들도 나름 관심을 갖게 되곤한다. 특히 관심을 갖고 있는 제인 오스틴이나 에밀리 브론테, 에밀 졸라, 톨스토이 등의 작가 이야기도 그렇지만 그들의 손글씨를 보면서 성격을 가늠해보는 것도 재미있었다. 대부분 편지지에 썼지만 호텔 이름이 적혀있는 메모지에 쓴 글도 있고 손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작가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모든 이야기가 다 흥미로웠겠지만 어쩔 수 없이 관심 작가에게 더 집중이 되는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별것 아닌 것 같은 이야기에서도 포인트를 집어내보기 시작하면 편지글이 그냥 예사롭지만은 않게 느껴지기도 한다. 잭 케루악의 편지인 경우 말런 브랜도에게 쓴 글이지만 그의 유명한 작품 '길 위에서'의 영화제작에 대한 글이며 말런 브랜도가 당시 유명한 배우라는 것을 떠올리며 편지를 다시 읽어보면 내용이 새롭게 다가온다. 그러니 더 많은 작가와 작품에 대해 알고난 후 다시 이 책을 읽으면 지금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새로움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저 에밀 졸라의 손글씨가 귀엽다, 정도일뿐일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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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잠깐 먼 옛날을 상상해보도록 하자. 나무로 지어진 집 안. 벽난로 앞에서 불을 쬐며 신문을 읽는 할아버지. 그 옆에서 실을 뜨고 있는 할머니. 난로의 불은 이 두 사람의 그림자로 집 안을 채우려 애쓴다. 창문에는 성에가 껴서 밖이 잘 보이지 않는다. 두 노인은 기나긴 겨울을 잠자코 기다린다.
그때, 현관문에서 벨이 울린다. 문을 열어보니 한 남자가 서 있다. 우체부 모자를 쓴 남자는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건네준다.
멀리 있는 이와 소통할 방법이라고는 편지밖에 없던 때. 그 시대에는 편지가 어떤 의미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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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들이 서로 어떤 편지를 주고받을까 궁금했다. 특히 작가들은 어떨지 더욱 알고 싶었다.
소설책만 보면 작가라는 존재는 정말 대단한 사람 같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내용은 어마어마하지 않을까?
이번 <작가의 편지>를 읽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이거였다.
책 뒷표지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훌륭한 편지를 쓰려고 위대한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작가는 편지도 잘 쓴다' -본문에서-
이 문구를 읽고 나서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다.
편지를 잘 쓴다는 게 뭘까? 잘 쓴 편지는 어떨까? 작가들은 편지를 어떻게 쓸까?
그래서 <작가의 편지>를 읽게 되었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하나도 이어지는 내용이 없다. 오로지 'a작가가 b에게'라는 수많은 소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각 소챕터마다 원본 편지의 사진 한 장과 작가에 대한 설명, 편지 내용이 실려 있다.
여기에 실린 작가들 중에는 우리가 아는 작가도 있고 모르는 작가도 무척 많다.
마크 트웨인 버지니아 울프 헤르만 헤세 라이너 마리아 릴케 레프 톨스토이 등등..
이름만 들어도 아는 작가들이 쓴 편지가 실린 셈이다.
결론부터 말해볼까. 읽는 내내 잘 썼다는 건 모르겠고, 미소만 지어졌다.
만약 이 사람들이 쓴 편지가 잘 쓴 편지라면 대체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작가들의 편지엔 화려한 표현도 없었다. 그렇다고 글씨체가 예술이었던 것도 아니다. (나는 필기체를 전혀 모르니 예술처럼 안 보였을지도 모른다)
끝내 그들의 편지에서 느낄 수 있는 건 마음이었다.
물론 어떤 편지를 놓고 잘 썼다, 못 썼다는 말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정말 이상한 일이긴 하다.
편지는 누군가에게 마음이나 생각을 전달하려고 쓰는데 거기에 잘 썼느니 뭐니 하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떤 편지는 잘 썼다는 느낌이 온다.
그 이유는 그 편지에서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문장의 기교가 좋아서 뭔가 위대한 내용이 들어 있어서가 아니고. 그냥 상대에게 전하는 다정함, 설렘, 차분함이 좋아서 그렇다.
특히 글과는 별개로 좋았던 편지를 몇 개 수록하자면 이렇다.
토끼 그림을 그린 작가도 있었다. 이 토끼가 꼭 동화책에 나오는 그림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 누군가에게 편지 한 장 보내려고 저것을 그릴 생각까지 하다니. 그 마음이 참 가상하다. (그래도 그림을 좀 그렸을 테니 가능했겠지만..) 또 어떤 편지는 읽는 사람이 제대로 글씨를 알아볼까 싶기도 했다. 뒷면의 글씨와 겹쳐보이기도 하고 또 줄이 왔다갔다하는 것이.. 꼭 내 어릴 적 일기 같았다. 그래서인지 상대가 느낄 불편함보다는 친근함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런 편지도 있었다. 무슨 러시아 기밀문서처럼 생겨서 섬뜩하기도 했지만 타자기로 한 자 한 자 쳤겠구나 싶었다. (여기 수록된 편지 대부분이 자필이라, 타자기로 적은 편지는 보기 힘들었다)
작가들이 편지를 잘 쓰는 건 마음을 잘 전달하기 때문이구나 싶다.
헤르만 헤세의 편지를 읽을 때도 그랬다. 참 기대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별 게 없었다. 근데 그게 헤세다웠다.
헤세는 뭔가 속이 가득 찬 차분함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 데미안에서부터 느낄 수 있는, 묘한 글맛이 있다.
이제야 책 뒷표지 문구가 이해된다.
고작 편지 하나 잘 쓰려고 위대한 작가가 될 필요는 없지. 결국 마음을 가장 잘 전달한 편지가 잘 쓴 편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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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로 적은, 마지막 편지가 지금도 기억난다. 약 2년 전 크리스마스 행사로 진행했던 마니또 때였다. 선물과 함께, 손수 쓴 편지를 주었던 기억이 난다. 내게 편지를 받은 그 친구는 고마웠다며 늦은 밤에도 카톡을 보내주었다.
팬팔이라는 말도 옛말이 되었다. 이제는 휴대폰으로 명절 용돈과 안부인사를 주고받는 때다. 더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손편지를 쓰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손편지가 가진 감성은 보기 어려워졌지만 덕분에 내가 쥐어준 그 쪽지 하나가 갖는 의미는 커졌다.
간만에 편지나 하나 써 볼까. 얼굴 본 지 꽤 된 사람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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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편지를 쓰려고 위대한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작가는 편지도 잘 쓴다.” 소설에 얽힌 비화, 은밀한 사랑, 창작에의 열망, 안타까운 죽음에 이르기까지 불후의 명작을 남긴 위대한 문인 94명의 손편지가 지금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편지】 안부나 용무 따위를 적어 보내는 글을 의미한다. “이 편지가 번화가에 떨어져 나의 원수가 펴보더라도 내가 죄를 얻지 않을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써야 하고, 또 이 편지가 수백 년 동안 전해져서 안목 있는 사람들의 눈에 띄더라도 조롱받지 않을 만한 편지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다산 정양용」 문자가 발병된 후, 인류의 원거리 통신 방식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인이 생각하기에는 문자도 하나의 그림의 형태로 본다면, 구석기 시대의 동굴에 그려진 벽화 또한 무언가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편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인류 최초의 문자는 수메르의 쐐기문자라고 한다. 한자와 비슷하게 대상의 특징을 단순화시킨 상형문자이다. 하지만, 현대 인류가 생각하는 보편적인 편지는 종이에 글자로 작성한 다음, 우표라는 요금을 내고 보내는 글쓰기를 말할 것이다. 지금의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도 어찌 보면 디지털 편지의 한 양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손편지】 가장 최근에 손편지를 쓴 기억이 있는가? 한국에서 남성들은 군대에 입대하기에 반강제적으로 편지를 써서 보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흙구덩이에서 구르고, 짬빱을 먹고 흘린 눈물을 종이에 주절주절 써서 사랑하는 부모님께 보낸다. 중년의 나이가 있으면, 만화잡지나 월간지를 통해 펜팔을 해본 기억도 있을 것이다. 본인이 생각나는 편지쓰기는 이 두 가지다. 20세기 학창시절 펜팔과 군인이던 시절 편지를 쓰고, 21세기에 들어서는 편지를 써본 기억이 없다. 얼마 전 읽은 책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복잡한 마음의 생각들을 정리하는 명상의 기회가 된다고 했다. 갈수록 생각이 복잡해지고 조급해지는 것은 글을 쓰지 않아서일까? 편지가 생각난 만큼 오늘은 아무개에게라도 편지를 한번 써봐야겠다.
『작가의 편지』 책은 굉장히 고급스럽게 제본되어 출간됐다. 한쪽에 작가의 편지 원본을 스캔해서 삽화로 넣었고, 편지에 대한 번역과 해설을 적었다. 수많은 작가 중에 가장 관심을 가진 것은 빅토르 위고의 편지였다.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작가인 위고는 서양 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그의 유언으로도 유명하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5만 프랑을 전한다. 그들의 관 만드는 값으로 사용되길 바란다. 교회의 추도식은 거부한다. 영혼으로부터의 기도를 요구한다. 신을 믿는다.” 그의 소설들은 시대의 민중들이 겪는 고통과 아픔이 담겨있다. 작가의 길만이 아닌 정치가의 길을 걸을 것도 실물정치로 민중을 돕기 위한 그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1862년에 출간한 레미제라블의 초판에 평단의 반응이 냉담하고 큰 반향을 얻지 못하자, 위고는 마음이 상해 존경하는 시인 라마르틴에게 편지를 보낸다. “인간이 소망할 수 있는 한, 저는 인간의 역경을 근절하고 싶습니다. 노예제도를 규탄하고, 빈곤을 몰아내고, 몽매함을 교화하고, 질병을 치료하고, 암흑을 밝히고, 증오를 배척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 신념이며 레미제라블을 쓴 이유입니다.” 그리고 책에 관해 거리낌 없이 평해 달라고 부탁한다. 위고의 기분을 느껴보자면, 세상을 향해 선한 행동을 했는데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하자 오는 쓸쓸함 같은 것이 느껴졌다. 박애주의자처럼 그 어떤 보상 없이 세상을 사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가 성인이라고 부르는 몇몇 인물을 제외하고는 물질적 보상을 떠나서, 정서적인 칭찬 정도는 받고 싶은 것이 사람이다. 이 부분에서 대문호와 나와의 유사한 점을 발견하여서 매우 기쁘다. 대문호들의 사상이나 책들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너무나 인간적인 그들의 편지를 읽어보길 추천한다. 대문호이기 이전에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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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빅토르 위고, 헤르만 헤세, 조지 버나드 쇼, 레프 톨스토이, 에드거 앨랜 포, 프란츠 카프카...... 쟁쟁하다고 해도 모자랄 정도의 작가들이 쓴 편지를 한권으로 갈무리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작가의 편지’는 소장가치가 충분한 책이다.
서간집이 흥미로운 이유는 독자들이 알지 못했던 작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 실린 편지 중 가장 오래 전에 쓴 편지는 1499년 네덜란드의 인문학자인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가 쓴 편지이고 가장 최근에 쓴 편지는 1988년 수전 손택이 쓴 편지이다. 그 말은 곧, 책에 실린 편지를 쓴 작가들은 모두 과거의 사람이라는 뜻. 그들의 작품은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수많은 사람에게 읽혔고 작가 개인의 삶 역시 공개된 모든 자료를 통해 자세하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역시 편지는 조금 내밀한 느낌이 있다. 책 속에는 업무적인 내용을 담은 편지도 있지만 대부분 상당히 개인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편지 위주라 그동안 몰랐던 작가의 다른 면모가 새삼스레 다가온다. 남자 옷을 입고 당당히 파리 거리를 누빈 여성 산책자인 조르주 상드와 귀스타브 플로베르가 주고받은 편지에서 우리는 다정하고 열정적인 할머니인 상드를 만날 수 있다. 피카소와 헤밍웨이가 드나들던 살롱의 안주인 거트루드 스타인은 벗의 어린 아들에게 ‘달달한 케이크와 달달한 캔디를 너무 많이 먹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아, 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또한 ‘프랑켄슈타인’을 쓴 메리 셸리의 부모인 정치사상가 윌리엄 고드윈과 여성주의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주고받은 편지에는 출산 직전의 긴박한! 상황이 담겨 있기도 하다. 물론 책에는 메리 셸리와 남편 퍼시 비시 셸리의 편지도 실려 있다.
또한 ‘작가의 편지’는 내용을 차치하고서라도 물성을 가진 책 자체로 봐도 아름답다. 본문에 나오는 편지 내용의 일부를 음각으로 새겨 넣은 쨍한 보라색 표지부터 눈에 띈다. 그리고 본문은 왼쪽 페이지에 편지 원본, 오른쪽 페이지에 간단한 배경 설명과 함께 편지 내용의 번역이 실려 있다. 필체와 편지지, 일러스트를 그려 넣은 편지도 있어 원본만 쭉 살펴봐도 정말 흥미롭다. 같은 출판사에서 작년에 나온 ‘예술가의 편지’도 편지 한 통 한 통 정말 아껴가며 읽었고 다정한 편지의 내용이 좋아 지금도 종종 들춰보곤 하는데 ‘작가의 편지’도 후루룩 일독한 후에도 두고두고 꺼내 읽게 될 것 같다.
네이버 '컬처블룸' 카페의 서평단으로 선정되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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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렇게 멋진 보랏빛 책이라니... 음각으로 패인 편지의 일부분이 표지에 쓰여있고 노란색으로 제목과 작가가 적혀있다. 표지부터 이렇게 매혹적이어도 되는 것인가? 책에는 작가 94명의 편지 94통이 실려있다. 왼편에는 편지의 원본 사진이 오른쪽 윗편엔 편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작가의 정보와 편지가 쓰인 시기 등이 쓰여있고 아래편엔 편지의 번역본이 실려있다. 편지만 실려있었다면 작가의 당시 상황이나 배경들을 알지 못했을 텐데 페이지 구성이 완벽하다. 책을 읽기도 전에 표지와 구성에 반하기는 무척 오랜만이다. 게다가 작가의 친필을 볼 수 있다니... 정말 멋지지 않은가? 작가의 편지 중 몇 가지를 적어보자. 제인 오스틴은 원래 좋아하던 작가인데 그녀의 정갈한 글씨에 또 한 번 반해버렸다. 어떻게 줄 없는 종이에 삐뚤어지지 않게 글을 쓸 수 있는 건지 나로선 이해가 안가지만 왠지 글씨체에 제인 오스틴의 성격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했다. 그리고 프란츠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에는 너무나 이성적으로 아버지의 교육관을 비판하는 아들의 심정이 담긴 글들이 적혀있었다. 글을 쓰며 카프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어 부모로서 더욱 감정이입이 되었고 가슴이 저릿저릿했다. 허먼 멜빌과 너새니얼 호손의 우정도 편지를 통해 허먼이 호손을 얼마나 존경하고 따랐는지도 다시 한번 알 수 있었고, 에밀 졸라가 레옹 도데에게 쓴 편지에서 에밀이 목로주점으로 돈을 많이 벌어 구매한 집의 나무 아래에서 전성기를 회상하며 레옹의 풍자 모음집을 얼마나 즐겁게 읽었는지도 알 수 있다. 물론 그는 젊은 작가에게 조언과 기운을 북돋우는 말도 아끼지 않았다.
편지는 학생 시절 펜팔 하며 써본 기억이 전부인 것 같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시대에는 문자나 카카오톡, 그리고 메일을 훨씬 편하고 유용하게 사용하니 말이다. 편지는 안부나 소식을 묻거나 전하고, 용무가 있을 때 쓰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엔 업무 메일이 대부분이지만... 편지라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부분들을 쓰는 경우가 많고 이 책에 실린 글들도 그렇다. 작가들은 사후 자신의 사생활이 이렇게 편지글로 드러날지 알고 있었을까? 괜히 엿보는 기분이 들어 미안하기도 했다. 편지를 읽었을 뿐인데 누군가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되고, 가족과의 관계, 사랑과 이별, 상실감과 행복, 절망과 희망 등을 알게 되니 말이다. 그들의 편지를 통해 작가의 무명시절 힘들었던 일이나 친구에게 전하는 이야기들 그리고 그 시절 역사의 모습도 알 수 있었고, 작가들이 사랑했던 그때의 감정과 이별의 아픔, 그들의 경험과 문학작품들의 배경도 모두 알 수 있었다. 작가는 편지도 잘 쓴다는 본문의 글이 어떤 것인지 책을 읽어보니 자연스레 알게 된다. 손 편지를 쓰다 보면 내 필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괜히 더 솔직해지고, 감정에 따라 필체가 달라지기도 한다. 명작들을 인쇄된 책으로만 보았지 작가의 진짜 손글씨를 볼 기회가 많지 않은데 이 책을 통해 친필을 보고 작가의 사생활을 알게 되니 왠지 더욱 친밀감이 들었다. 94명 개개인의 삶들이 편지글이라는 짧은 글에 녹아내려있어 더욱 행복한 독서였고, 나도 손 편지를 한통 써볼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술문화]의 책은 처음인데 한눈에 반할 수밖에 없는 매력이 넘쳐흐르는 책 [작가의 편지]였다.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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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작가의 사생활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어쩌다 이런 대작을 써 내렸는지, 글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투고하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가 이따금 궁금해진다. 작가가 출판한 책을 가능한 한 모두 읽어도 그를 알고 싶은 마음은 계속해서 깊어질 뿐이다. 작가의 편지는 작가들이 쓴 편지를 스캔해서 번역한 책이다. 은밀하고 개인적이라 읽으면서도 약간의 부채감도 느꼈지만, 죄의식을 제외하고도 가장 흥미로운 책이었다. 빈 종이와 잉크 그리고 연필로만 이루어진 책상 앞에 앉아 갈망하고 열망하게 만드는 작품을 가벼이 만들어놓은 것 같은 천재적인 것 같은 그들의 삶에서 아픔과 절절한 사랑, 무난한 일상,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었다. 독특하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고 뿜어낸 그들의 작품 속과 달리 어쩌면 평면적인 삶과 일상적인 순환을 느끼려는 작가들의 갈망을 보고 소설책을 펴니 감회가 새로웠다. 이들 중 가장 기억에 남은 편지는 버지니아 울프와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인상은 깡마른 몸과 톡 튀어 오른 매부리코, 둥근 눈매에 관철하는 눈빛과 가느다란 손에 끼워진 담배가 떠오른다. 어딘가 차가워 보이고 삶을 한순간도 놓지 못해 고뇌하는 모습과 달리 그가 프랜시스 콘 포드에게 쓴 편지는 지극히 평범했다. 자신의 작품보다 콘퍼드의 어머니로서 여성적 역할을 노련하게 수행하는 모습을 높이 사고 있고, 장을 보면서 일어났던 일상적인 일을 툴툴거리기도 했다. 미약하지만 그들의 편지에 보이는 짧은 문장 하나하나 속에 서로에 대한 애정을 볼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우울하리라 생각했던 버지니아 울프의 인생은 어쩌면 끊임없는 고뇌와 억한 답답함으로 지칠 수 있을지언정 삶을 예찬하며 순간순간에는 만족하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울프의 책을 한 장씩 넘기며 터졌던 슬픔과 깨달은 오만과 울분을 다시금 떠올리며 울프를 새로 기억하는 순간을 맞을 수 있게 되었다. 아마 다시 <등대로>를 펴게 되면, 울프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상태로 읽었던 그때와 달리 조금의 다른 해석과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다음 말하고 싶은 편지는 프란츠 카프카가 아버지에게 쓴 편지이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투박한 행동과 억압적인 말투로 가정에서 따스함을 충분히 받지 못했던 카프카의 편지 속에 아버지를 충분히 이해하려고 해봤지만 낫지 않은 아픈 과거의 쓰라림과 여전한 고통 속에 결국 받아들임으로써 용서도 하지 않고 사과도 받지 않으며 담담히 파도에 휩쓸리고 덮이는 모래알처럼 고요히 고통을 삼키기를 결정한다. 그의 편지 속에 담긴 애증과 갈망이 통증으로 다가왔다. <변신>이란 작품이 오로지 그의 상상력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온갖 아픔과 고통을 혼자 삼켜 먹다가 곪고 터져버린 인간의 삶에서 벗어난 것 같은 마음에 자신도 본인을 벌레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훔쳐본 편지 속에 애석하게도 그의 책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위로를 받아서 카프카의 잔해처럼 남은 삶에 침묵하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의 글은 통증이지만 고되고 힘들 때마다 카프카와 그의 저서를 떠올리면서 카프카가 겪으며 쌓아 올려진 무수한 아픔에 기대어 위로받으며 살아간다. 이 책을 읽으며 나에게 영향을 주었던 한명 한명의 작가들의 삶을 잠시 들춰본 것 같았다. 괴짜라고 평가받은 작가와 작품보다 평가절하당한 작가까지 개개인의 한 필로 써 내려진 편지는 그들의 생활과 생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요즘에는 휴대전화로 문자를 남기거나 가볍게 이메일을 보내는 등 자필로 쓴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아날로그적이고 구시대적 산물로 보일 수밖에 없다. 다만 자판으로 빠르게 쓴 마음도 좋지만, 자신의 글씨로 빈 종이에 잉크를 올린 글과 와닿는 감정의 크기는 아주 다르다고 생각이 된다. 대화가 남겨진다는 것이 요즘에는 꽤 두렵게 다가오지만 어릴 적 생각해보면 상자 안에 모아둔 편지들이 달갑게 여겨졌듯이 자신한테 쓰던, 사랑하는 이에게 쓰든 상관 없이 종이 위에 투박한 글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 잠시 잊었던 감정과 추억을 되살리기에도 좋을 것이다. 편지가 주었던 향수를 잊고 살았는데 이렇게 되살아 오는 것을 보면 손으로 눌러 내린 글자의 정성을 무의식적으로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작가의 편지는 좋아하는 작가의 삶에 다가가고 싶다면 읽기를 추천한다. 사생활을 훔쳐본다는 점에서 죄의식이 들 수 있지만, 그들의 작품만큼이나 가득한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출판사에서 받아 주관적으로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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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글 쓰는 걸 별로 어려워하지 않고 그냥 쭉쭉 생각나는대로 써 내려가는 편인데, 이상하게 편지만큼은 그게 잘 되지 않더라고요. 누군가 특정한 사람을 염두에 두고 쓴다는 생각을 하면 뭔가 대화처럼 자연스럽고 흐름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쓰다보면 모든 문장이 다 제멋대로에 종잡을 수 없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한때는 서간문 형식으로 된 소설을 열심히 탐독하기도 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내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읽는 글을 쓰는지 궁금했거든요.
<작가의 편지>의 소개를 봤을 땐 이거다! 싶었어요. 세계적으로 글 좀 쓴다~ 하는 작가들이 남긴 편지를 수십장 넘게 볼 수 있는 기회잖아요!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자연스럽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지, 그러면서도 억지로 꾸며낸 티가 안 나는지를 중점으로 열심히 봤습니다. 읽는 내내 즐거웠어요. 제가 절대로 쓰지 않을 문장이나 표현이 신기하기도 했고, 유명한 작가들이 남긴 사생활을 살짝 엿보면서 뭔가 좀 더 그 작가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기분도 들더라고요~ 좋아하는 작가님들이 여기저기서 출몰(?)하실 때마다 괜히 살짝 설레기도 했어요.
편지라는 건 발신인도, 수신인도 명확하다보니 배경지식이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아무 맥락 없이 읽었으면 '이게 뭐야' 싶었을 내용이 꽤 있어요. 그래서인지 편집자는 친절하게도 왼쪽에는 실물 편지 사진을, 오른쪽 위에는 꼭지로 간략한 정보를, 오른쪽 아래에는 편지 번역을 배치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보 꼭지가 맘에 들었어요. 몇 년도에 쓴 편지인지, 그때 이 작가의 상황이 어땠는지, 누구에게 무슨 목적으로 쓴 편지인지, 그리고 이 편지에서 눈여겨봐야 할 포인트는 뭔지 짚어주는데 그게 참 좋았어요. 사실 편지가 100% 진실은 아닌 경우가 꽤 있는데 (사람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거짓말을 하니까요) 그걸 알고 보니까 더 재밌더라고요.
읽기 전에는 사실 러브레터를 제일 기대했는데, 의외로 제일 인상깊었던 건 아첨과 술수였어요. 역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청탁도 잘 하는군... 같은 생각이 절로 들어요. <걸리버 여행기> 작가인 조너선 스위프트가 평생 궁정에서 한 자리 얻어보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안된 것까지는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 최선을 다하는 과정을 막상 글로 만나니까 어쩐지 제가 다 민망한 기분이에요. 물론 굉장히 세련되고 재치 있는 유머로 가득찬 편지이긴 했지만, 목적이 너무 분명하니까 별로 멋져보이지 않더라고요. 실라 딜레이니가 한껏 자기를 '연극을 2주 전에 처음 보고 단숨에 새로운 희곡을 써내려간 순진한 천재 극작가'를 꾸며내는 것도 그렇고요. 뭐, 사람은 누구나 다 치졸하고 교묘한 짓을 할 때가 있으니까, 비난할 수만은 없지만요.
이건 좀 다른 소린데 <작가의 편지>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편집자가 고려시대 이규보의 편지를 알았다면 분명히 여기 실어줬을 거라고 생각해요. '금림의 버들에 의탁하길 기대하오니, 원컨대 긴 가지 하나를 빌려주소서' 어쩜 청탁을 해도 저렇게 멋들어지게 해서 후세에 길이길이 남았을까요. 문인들이란.
여러모로 재밌는 책이었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작가라도 '일상'을 살고 견뎌야 했다는 건, 당연하지만 여전히 위안이 되는 사실이에요. 친구랑 싸우고 난 뒤에 화해를 청하고, 싫은 사람 뒷담화도 좀 하고, 자기가 잘못을 고해성사하면서 괜히 앓는 소리를 내고, 명절이라고 친척들 선물 사러 순회하고... 그저 그런 보통의 하루가 이들에게도 끊임없이 펼쳐졌다는 게 새삼 와 닿아서 좋았습니다. 저도 이런 일상들을 이렇게 재밌게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참, 여기 서문에 뭔가 편집이 잘못된 것 같은 부분이 있습니다. 8페이지에서 9페이지로 넘어가는 문장이 이상해요. 뭔가 그 사이에 있던 문장을 실수로 날려버린 것 같은? 몇 번을 읽어봐도 이어지지 않더라고요. 출판사에서 이거 확인해줬으면 좋겠어요! |